김무궁 OGQ 대표를 처음 봤을 때 평탄하게 잘 자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외모에 대한 인상때문이기도 하지만 미리 그에 대해 얄팍하게 알고 있던 정보때문이기도 했다.카이스트를 졸업해 이른 나이에 창업을 해서 회사가 잘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어쩌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김 대표의 이야기는 이런 나의 첫 인상을 완전히 배신하는 것들로 가득했다.남들이 보기엔 화려해 보이는 명문대학생의 이면에는 생각지 못했던 많은 고충이 있었다.어떤 누구보다 평탄치 않았던 삶을 살아온 그는 여전히 좌충우돌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만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벌써 10년이 넘는 창업 경험을 가지고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겪은 김무궁 대표와 명동에서 만났다.1시간 정도 예상했던 대화는 무려 2시간 30분이 넘게 이어졌다.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리하는데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옆 사진은 대화중인 김무궁 대표..사진 제공은 kkonal)
◆컴퓨터에 노래를 불러준 소년
1남 1녀의 장남인 김무궁 대표가 처음 컴퓨터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때였다.
 당시 삼성대리점에서 일했던 삼촌께서 자신의 PC를 써보라며 ‘어린이 김무궁’에게 주고 갔기 때문이다.PC는 그에게 상상도 못하던 완전 새로운 세상이었다.
 PC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김무궁 어린이는 PC를 계속 쓰면 PC가 힘들다고 생각했었다.PC가 쉬려면 잠을 자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PC를 앞에 두고 노래를 불러줬다고 한다.

 “당시 PC에 스피커가 있었는데 그 스피커가 저에겐 귀처럼 보였어요.노래를 부르면 PC가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PC를 너무 모르다보니 사고도 터졌다.더러워졌다고 욕실로 PC를 갖고 가 물로 박박 씻은 거였다.뒤늦게 그렇게 하면 PC가 작동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물로 씻은 다음이었다.김무궁 어린이는 PC를 전부 분해해 부품을 꺼내놓고 말렸다.말린 부품을 모아 PC를 다시 조립했다.어린이가 하기엔 쉽지 않았을텐데,어릴 때 대단한 경험을 한 셈이 됐다.다행히 PC는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컴퓨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컴퓨터를 처음 만진 이듬해인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다.그런데 한 1년쯤 배우니깐 재미가 없어졌다고 한다.학원에서는 베이직만 가르쳤기 때문이다.그는 exe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싶었는데 그걸 하려면 C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학원 원장 선생님에게 듣게 된다.

 “저도 C 언어가 배우고 싶어요”
 “어림도 없는 소리.초등학생이 어떻게 C 언어를 배우냐.”

 C 언어를 배우려고 해도 말도 안된다는 대답만 듣기 일쑤였다.결국 그는 삼성동 서울 서점(지금은 바디앤루니스로 바뀌었다)에 가서 C 언어와 컴퓨터 잡지 등을 닥치는 대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그러면서 불과 2-3년전 컴퓨터에 노래를 불러주던 이 소년은 개발자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중 2때 처음 프로그램 개발
중학교 2학년이 된 ‘청소년 김무궁’은 PC통신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친구 호스트’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이 서비스는 원하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그는 학생이었지만 이를 돈받고 팔 수가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서도 그는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 이것을 팔았다.계속해서 그런 쪽으로 시도를 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그가 그런 시도를 계속 한 것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넉넉치 않은 가정 형편 속에 그는 자신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고 한다.그냥 학교 다니면서 공부만 하면 되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고 1때 단체메일 발송기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지금이야 단체로 메일을 전송하는게 아주 일반화돼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기능이 흔치 않았다.그가 만든 프로그램을 대기업에서도 찾는 일이 생겼다.그는 이 프로그램으로 1억원 이상 돈을 빌렸다.

 “어린 나이에 돈을 그렇게 벌었는데, 그게 나중에 창업 자금이 됐겠네요?” 내가 물었다.
 “아니요.집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그럴 여유가 없어지게 됐어요.” 

 청소년 김무궁은 초등학교때 그랬던 것처럼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도 자신이 잘하고, 하고 싶은 것에 올인해서 살았다.그에게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가장 자신있는 일이었고 가장 재미있는 세계였다.그 세계에 흠뻑 빠져 살던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미래를 만들었다.

◆특기생으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입학
1999년 8월 고등학교 1학년때 정보올림피아드에 나간 그는 쇼핑몰 시스템을 만들어 금상을 타게 된다.“언젠가 모든 가게들이 온라인 샵을 낼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게 눈길을 끄는데 성공했죠.” 

 정보올림피아드 특기생을 따로 뽑았기 때문에 그는 이미 고등학교 1학년때 대학 진학이 결정돼 버렸다.“대학 진학이 결정됐는데 공부할 생각이 안 들더라구요.그래서 공부는 안한다고 하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냈어요.물론 학교는 갔죠.계속 자서 문제이긴 했지만(웃음)”

 둔촌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예정대로 2002년 카이스트 전산학과에 입학했다.입시를 안 치르고 학교를 가면 얼마나 좋을까.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지,그의 경우는 꼭 좋지만은 않았다.그는 중고등학교때 교육 과정을 따라가지 않은 것 때문에 결국 나중에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된다. “정말 삼각함수도 모르고 학교를 갔어요.미적분을 알 턱이 없었죠.그런 상태에서 전산학과를 갔으니 수업을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죠.”

 첫 학기 학점은 충격적이었다.제적 기준보다 점수가 낮게 나온 것이다.학교에서도 드문 일이라 대학생 김무궁 사례를 놓고 교무회의를 열 정도로 점수가 안 좋았다.다행히 1학년 1학기를 갓 마친 학생에게 기회를 주기로 해 그는 학교에 남을 수 있게 됐다.심각함을 느낀 그는 일단 휴학을 했다.

◆창업에 골몰한 대학생
휴학을 했지만 그는 도서관으로 달려가지는 않았다.그가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은 PC를 통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였다.P2P 중고거래 메신저가 당시 그가 선택한 아이템이었다.“당시 다른 학교 선배들과 팀을 만들었는데 그때 팀의 중요성을 알게 됐어요.저랑 잘 맞지가 않았죠.일은 했고 성과도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죠.그래서 잠시 하다가 2학년때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학교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터.그는 여전히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혹시 학교 중퇴를 생각하지는 않았나요?”
 “저 혼자 생각했으면 그랬을지 모르죠.하지만 어머니나 특히 여자친구가 학교를 정상적으로 마쳐야 한다고 저를 강하게 붙들었어요.그 덕에 대학에 들어와서 뒤늦게 공부를 했어요.”

 여자친구의 격려 덕에 그는 1학년때 제적을 당할뻔 했던 상황을 딛고 높은 학점을 계속해서 받으면서 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그리고 병역특례로 군 생활을 하게 된다.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분석하는 사이람이라는 회사와 나우콤에서 2008년까지 병특 기간을 보냈다.사이람과 나우콤에서 그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훗날 창업을 같이 하게 되는 박정수,이소라씨 두 사람을 각각 사이람과 나우콤에서 만난 것이다.역시 사람은 어디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참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경우에도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병특을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그는 이번에는 영어 점수와 씨름을 해야 했다.카이스트에서 졸업 요건으로 영어 점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아마 대부분의 카이스트 학생들에게는 별 거 아니겠지만 저한테는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영어 공부를 중고등학교때 별로 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가 영어와 씨름을 하고 있을 때 학교 친구가 그에게 ‘신철호’라는 사람을 소개시켜줬다.신철호씨는 2000년대 초중반 포스닥이라는 사이트를 개발해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다.그는 같이 창업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바로 창업을 하고픈 생각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주위 사람들이 학교 졸업이 우선이라고 말렸다.“그래서 일단 영어 점수를 받고 창업을 생각해보겠다고 말씀을 드렸죠.그런데 정말 기다려주시더라구요.”

 영어 점수 받는 일이 그에겐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그야말로 아무것도 생각 안하고 도서관에서 살면서 영어공부만 했다고 한다.지난해 2월 처음 만난 이들은 김무궁 대표가 영어 시험에 통화한 지난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창업 모의를 하기 시작했다.김 대표는 사이람에서 만난 박정수씨,나우콤에서 알게 된 이소라씨를 설득해 4명의 창업멤버가 완성됐다.올 2월 이들은 OGQ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배경화면 앱으로 히트
OGQ. 무슨 뜻일까? “회사 이름을 놓고 창업 멤버들이 토론을 좀 했습니다.우리들이 지향할 바에 대해 각자 단어를 하나씩 써보기로 했죠.그러면서 세 단어가 최종적으로 선택됐습니다.Open, Global, 그리고 질문을 많이 하자는 뜻으로 Question이었죠.그 세 단어의 각각 첫 글자를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었어요.”

 이사회 의장은 제일 연장자이자 창업 자금에 공헌을 한 신철호씨가 맡았고 김무궁씨가 대표를 맡았다.이들은 TED 강연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앱인 Ted Air를 출시했다.14일 동안 개발해 5월 23일 출시한 ‘배경화면(Backgrounds)’이라는 앱이 대히트를 쳤다.50일 동안 전체 안드로이드 앱 중 1위를 했고 누적 다운로드가 800만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매일 전 세계에서 10만명 정도가 다운로드하고 있어요.조만간 1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할 것 같습니다.”

 그는 스마트폰에서 배경화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지만 양질의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기존 배경화면 앱들이 검색이 불편한 것도 문제라고 생각했다.“여성을 타깃으로 하고 성인자텐츠는 배제하는 쪽으로 갔습니다.그래야 좀 더 많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보통 페이지를 넘기는 방식을 택했지만 모바일에 적합치 않다고 봤죠.그래서 저희는 툭툭 넘기고 스크롤 해서 볼 수 있는 방식으로 기획을 했습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적중했다.수많은 배경화면 관련 앱이 있었지만,그래서 그 쪽은 완저너 레드오션 시장인 것으로 비춰지고 있었지만 그 많은 앱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OGQ가 개발한 배경화면은 독보적으로 승승장구했다.

◆1000만 다운로드 이상 가는 앱 개발하겠다
 배경화면 앱이 잘 되면서 이 앱에 붙는 광고비 만으로도 회사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됐다.배경화면 히트에 힘입어 최근 OGQ는 ‘스타 배경화면’이라는 앱을 새롭게 출시했다.스타들의 사진으로 배경 화면을 꾸밀 수 있는 앱이다.시장의 반응을 보며 본격적인 마케팅 시기 등을 조율하고 있는 단계라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직 OGQ는 본게임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뭔가 좀 더 본격적인 앱을 만들 것 같았다.그의 다음 계획은 우선 텀블러 클라이언트 앱을 만드는 거였다.소셜게임 앱도 생각하고 있었다.“소셜게임을 모바일로 할 수 있는 그런 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그런데 그 앱은 기존 소셜게임을 모바일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모바일에서 턴제 방식의 게임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턴제 방식이란 서로 번갈아가면서 플레이하는 그런 게임이다.“바둑같은 게임처럼 서로 번갈아가면서 두는 그런 그럼에 모바일에서 상당한 수요가 있다고 봅니다.턴제 방식의 게임 중에서 어떤 것을 할지,어떤 방식으로 선보일지 등을 고민하며 기획하고 있어요.”

 무엇을 내놓든 이들의 목표는 명확했다.“1000만 다운로드 이상 간다고 확신하는 그런 앱들을 개발해 출시할 겁니다.그런 분야에 집중적으로 도전하려고 합니다.굳이 아주 특이할 필요는 없습니다.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이 찾고 즐기면 되죠.그런 앱들을 다수 보유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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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업계에서 유일하게 ‘회장님’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인터넷기업협회 허진호 회장이다.그는 왠지 회장님이라는 칭호가 더 어울린다.네오위즈인터넷 대표로 재직시에도 그냥 ‘회장님’이라 불렸다.2003년부터 인터넷기업협회장을 8년째 맡아 오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가 업계에서 가진 존재의 무게감때문이다.
<허진호 대표가 분당 사무실에서 크레이지피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꼬날>

 그런 그가 2010년 게임회사를 차렸다.이름도 특이하다.크레이지피쉬.2007년 네오위즈인터넷 대표를 맡게 된 뒤로 3년 가까이 창업과 거리가 있었던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그 기간에도 계속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어 여러가지를 구상했던 것 같다.그리고 그가 택한 것은 게임이라는,그의 창업 인생에서 처음으로 택한 장르였다.그는 왜 다시 창업을 했을까.

◆한국 인터넷벤처의 살아있는 역사
 허진호 대표의 창업스토리를 쓰려면 사실 한국에서 인터넷산업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그리고 그 과정을 들으면 그가 왜 회장님으로 불리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1990년 3월 24일.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SALab(시스템아키텍처 랩)에서 한국 인터넷의 대부 전길남 교수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이벤트가 진행됐다.그때 국내 최초로 미국 하와이대학의 인터넷망과 국내의 56Kbps 전용회선을 연결하는 시도를 했다.그 전까지는 2400bps모뎀으로 국제 전화를 통해 인터넷 이메일을 이용하는 수준이었지만 전용회선이 개통되면서 이메일-뉴스그룹-고퍼-텔넷-FTP(파일전송프로토콜) 등 그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그 때의 주역들이 전길남 교수와 허진호 대표를 비롯한 당시 박사과정 학생들이었다.

 허 대표는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4년 하반기에 아이네트라는 회사를 설립해 국내 최초의 민간 ISP(인터넷 접속서비스)사업을 시작한다.국내 인터넷산업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IMF직후 아이네트를 PSI넷에 매각한 허 대표는 그 뒤 아이월드네트워킹이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폰이라는 회사의 대표를 거쳐 2007년부터 네오위즈인터넷 대표를 맡았다.
 그는 한동안 창업을 하지 않았다.그러다 2008년부터 다시 창업의 의지가 싹트기 시작했다고 한다.뭐가 그를 움직였을까.

◆회장님이 소셜게임이 꽂히다
 2008년 가을, 허 대표는 소셜게임업체 징가의 마피아워라는 게임을 접하고 한동안 그것에 꽂혀서 살았다고 한다.“저는 게임을 그렇게 오랫동안 하질 않았는데 소셜게임은 몰두하게 되는 걸 알게 되고 놀랐습니다.소셜게임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그래서 2009년 봄부터 소셜게임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소셜게임을 네오위즈인터넷 내부에서 해 보려고 했다.자신이 대표로 있으니 그 안에서 조직을 가동해서 해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 즈음부터 네오위즈인터넷 회사의 방향이 달라지면서 그는 따로 회사를 설립해야겠다고 생각했다.마침 소셜게임을 해 보고 싶다는 후배가 찾아와서 허 대표는 2009년 소셜게임회사를 설립하면서 자신은 지분 투자만 하는 형식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소셜게임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처음엔 팜빌같은 게임을 만들려고 했어요.그런데 게임이 너무 무겁게 개발되는 것 같더라구요.야구를 주제로 만들려고 했던 게임도 잘 안됐습니다.소셜게임은 가볍게 빨리빨리 나와야 하는데 과거 온라인게임 만들던 멤버들로는 어려웠습니다.그래서 제가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세번째 창업,크레이지피쉬
 허 대표는 결국 작년 4월 회사를 자신이 직접 경영하기로 하고 회사의 성격도 바꿨다.개발사가 아닌 퍼블리싱사로 전환한 것이다.그렇게 해서 세상에 알려진 회사가 크레이지피쉬.그로서는 세번째 창업인 셈이다.

 크레이지피쉬는 지난해 10월 소셜게임 ‘해피팜(Happy Farm)’을 ‘고고!농장’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 서비스하기 시작했다.국내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페이스북 기반의 소셜게임을 서비스하는 것은 당시 이 게임이 처음이었다.

 해피팜은 중국의 소셜게임 전문 개발사 파이브 미닛(Five Minutes)이 2008년 11월 출시한 게임으로 농장게임의 효시로 꼽힌다.미국 및 중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일일 최대 사용자수 2300만명,월 최대 사용자 수 8000만명에 달했다.크레이지피쉬는 해피팜을 국내 사용자 정서에 맞게 현지화했다.

 허 대표는 올해 다양한 장르의 소셜 게임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국내외를 막론하고 좋은 소셜게임을 유치해서 국내 사용자들을 위해 서비스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페이스북 유저들을 대상으로 한 맞고 게임을 설 전에 내놓을 계획이다.1월말에는 네이트 앱스토에도 소셜 게임을 런칭할 예정이다.3월말까지 네이트와 네이버 앱스토어에 2-3개의 게임을 선보이고,페이스북에는 3-4개 정도 내놓을 계획을 갖고 있다.

 왜 국내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할까? 아직은 시장이 너무 작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페이스북 유저가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올 연말에 1000만명은 된다는게 많은 전문 기관들의 예측입니다.저 역시 지금 증가하는 속도로 보면 충분히 그렇다고 보구요.페이스북 유저가 그 정도 증가하면 오히려 한국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가 생길수도 있습니다.일단 우리가 제일 잘 아는 유저들을 대상으로 국내에서 승부를 본 뒤 해외 진출은 그 뒤에 할 생각입니다.”

◆게이트키퍼의 시대는 끝났다
 그가 소셜게임을 하려는 이유는 뜻밖에도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거나 게임 비즈니스때문이 아니었다.그는 최종적으로 플랫폼을 노리고 있다고 했다.
 “징가가 소셜게임업체라고 하지만 결국 플랫폼 업체로 갈 겁니다.그냥 게임 콘텐츠만 만들어서 파는 게 아니라 그것을 플랫폼화해서 다양한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는 거죠.페이스북도 플랫폼업체입니다.징가보다 조금 더 넓은 범위라는 것만 다른 거죠.크레이지피쉬 역시 플랫폼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그래야 광고 및 유저 기반을 가지고 갈 수 있거든요.”

 어느덧 20년 가까이 인터넷산업에 몸담고 있는 그는 (1990년 인터넷 개통부터 시작하면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 시점이 쉽게 만나기 힘든 또 한번의 물결(Wave)이 오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지금 키워드는 모바일과 소셜입니다.누군가 여기에서 기회를 잡을 겁니다.우리는 이 물결에서 플랫폼을 하나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그는 모바일과 소셜이 새로운 물결이 되는 시대는 포털이 주도했던 시기와 전혀 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모바일과 소셜의 전초전을 보여주는 페이스북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이 회사는 결코 야후나 네이버 같은 게이트키퍼(Gate Keeper)가 아닙니다.그냥 장을 만들어놓고 누구나 와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만들죠.사람들도 연결해주고 놀게도 해 주고 서비스도 하게 합니다.이제 게이트키퍼의 시대는 끝났습니다.모바일과 소셜의 시대에는 이것이 좀 더 분명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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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소셜네트워크업체 A사는 서버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최근 이용자수가 급격히 늘면서 서버 확충이 절실한데 문제는 일별,시간대별 접속자수 및 이용자수 편차가 심하다는 것이다.주말 저녁 시간이나 평일 아침 시간,점심 시간 등에 특정 시간대에 접속이 급증하지만 그 외 시간대에는 3분의 1 이하로 뚝 떨어져버린다.서버를 늘리는 것은 늘어나는 고객 대응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그렇게 되면 비싸게 구입한 장비를 평소에는 절반 이상 놀리게 될 수 밖에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회사의 고민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자금 압박이 있는 회사의 경우 어려움이 심하겠지만 그래도 돈을 빌려서라도 서버를 사서 막는게 최선이었다. 고객 응대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호스팅 회사나 데이터센터와 같이 서버를 아웃소싱해주는 곳에서는 기본적인 관리만 해주기 때문에 개발자 차원에서의 대응은 거의 불가능했다. 새로운 서비스의 개발이나 사용량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탄력적인 대응, 무한한 확장성 등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점점 그럴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의 등장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아마존, 구글 등 초대형 기업들이 제공하고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플랫폼을 국내에서는 넥스알(NEXR)이라는 벤처 기업이 제공하고 있다. 넥스알이 지난해부터 제공하고 있는 아이큐브 클라우드(iCube Cloud)는 국내 최초의 Public Cloud Platform 서비스다. 넥스알은 한국에서도 IaaS(Infrastructure as a Service) 시대를 열고 있다.

◆클라우드 전사들이 이끄는 회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위치한 넥스알은 국내에선 보기 드문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분야를 사업 영역으로 하고 있다. 상당한 기술력과 이 분야에 대한 관심,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분야다. 해외에서 대부분 초대형 기업들이 이와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한재선 대표(왼쪽 사진)는 KAIST 전자전산학과 박사이자 KAIST 정보미디어 경영대학원 겸직 교수다. 한눈에 보기에도 학구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한 대표는 2007년 1월 회사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클라우드 플랫폼 개발과 상용화에 전념해왔다.

 한재선 대표와 함께 회사를 이끌고 있는 3명의 임원진은 정주환 사업총괄이사(CSO), 김연섭 개발실장(CTO), 김재균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이다.정 이사는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으로 서울대 기술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SK커큐니케이션즈,네오위즈게임즈 등에서 사업전략,기획,신사업 개발 등을 담당해왔었다.김연섭 개발실장은 KAIST 전기전자공학과 석사 출신으로 티맥스소프트에서 JEUS 개발 실장을 역임했고 삼성전자 특수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었다. 김재균 CFO는 서울대에서 글로벌 MBA를 획득하고 매그나칩반도체 전략기획팀에서 일하다가 넥스알에 합류한 케이스다.

 넥스알에는 이들외에도 총 20여명의 직원들이 본사(대전)와 연구소(분당)에 나뉘어져 일하고 있다.한 대표는 “국내 최고의 클라우드 개발 인력들이 넥스알에 다 모여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왜 클라우드에 인생을 걸었을까.

◆왜 하필이면 클라우드?
 클라우드(Cloud)는 말 그대로 구름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이라고 하면 구름 저 너머 어딘가의 전산 자산(소프트웨어,하드웨어,네트워크,컴퓨팅 파워 등을 모두 포괄한다)을 이용하는 컴퓨팅을 말한다. 즉 정보가 처리되고 저장되는 위치를 저 너머 어딘가에 숨겨놓는 것이다. 이를 클라우드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규모와 향후 변화, 그것이 가져오는 위력에 대한 일종의 찬미적인 느낌마저 풍긴다.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 대표는 아마존이 2002년 선보인 클라우드 개념을 보면서 국내에서도 이와 관련된 기술, 서비스가 매우 중요해 질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리고 인터넷이 거대화되고 복잡해질 수록, 대용량 데이터가 늘어나고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클라우드는 가장 중요한 기반 기술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 대표는 이런 생각을 네오위즈,첫눈 창업자이자 본앤젤스 대표를 맡고 있는 장병규 사장과 2006년(장 사장이 첫눈을 이끌던 시절)에 만나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플랫폼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기업들이 힘을 합쳐서 클라우드 플랫폼을 만들면 어떨까요”

 장 사장은 한 대표의 의견에 공감하고 여러 사람을 소개시켜줬는데 한 대표는 태태언컴퍼니 창업자인 노정석 사장을 만났을때 사업화의 실마리를 얻게 된다.노 사장은 ETRI와 국책 과제로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면서 ETRI에 연결을 해 줬다.2007년 ETRI와 국책 과제를 1년간 수행했고 2009년에는 ‘독립형 컴포넌트 기반서비스 지향형 페타급 컴퓨팅 플랫폼 기술개발 ’이라는 아주 긴 제목의 정부과제를 수행하기도 했다. ‘페타급 컴퓨팅 플랫폼’, 즉 클라우드에 있어서는 국내 유일의 기술 개발 기업으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왜 하필이면 클라우드였나요? 한 대표에게 물었다. “아이디어는 있는데 서버때문에,대용량 데이터 처리 때문에,그런 일을 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때문에 사업을 하기 힘들어하거나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클라우드 컴퓨팅 플랫폼은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넥스알이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입니다.‘누구든지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행할 수 있게 해 주자’ 이게 NEXR의 비전입니다.”

◆한국형 클라우드로 세계 시장 진출
 클라우드 시장은 전망도 좋다.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세계 시장 규모는 680억 달러.앞으로 4년 뒤에는 시장 규모가 1450억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4년만에 두배가 넘게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아직 시장 규모도 미미하고 제대로된 플레이어조차 많지 않은 실정이다.클라우드 컴퓨팅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2년 정도의 개발 노하우와 운영 기술 등이 필요하다.기본적인 OS 뿐 아니라 분산시스템 확장 업무 등에서도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국내에서 관련 인력도 별로 없고 업체도 많지 않은 이유다.해외에서도 많은 회사들이 시도하고 있지만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오라클 등 소수의 세계적인 회사들에 국한된다.

 그러면 넥스알은 이런 회사들과 경쟁하기에 얼마나 준비가 됐을까.한 대표는 넥스알의 사업 아이디어를 아마존에서 얻었다고 한다.그래서 서비스 형식 역시 아마존과 호환할 수 있게 만들었다.넥스알의 서비스를 이용하다 해외로 진출하는 업체가 그곳에서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이질감이 없게 하기 위한 요인도 있다.그 밖에도 장점은 많았다.아이큐브 클라우드에 등록한 지 1분 이내에 서버 환경이 구성되기 때문에 바로 이에 기반한 개발을 할 수 있다.기존 호스팅업체들이 월 단위 과금인데 비해 시간단위로 과금을 해 탄력적인 운용이 가능하며 트래픽에 따라 서버의 스케일링이 자도 변경된다.결제나 광고 등을 연계한 것도 특징이다.

 그럼 해외 서비스와 비교한 경쟁력은 어느 정도인지 물어봤다.결론은 국내에서 이용하기에는 아마존이나 구글보다 넥스알의 서비스가 월등히 좋다는 것이다.외부 조사기관에서 Network Latency Test를 한 결과 초당 파일 전송량(Kbytes 기준)에서 구글의 클라우드 서비스는 30.31, 아마존은 96.59인데 비해 넥스알의 아이큐브 클라우드는 351.76이 나왔다.같은 시간에 훨씬 많은 파일을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한 대표는 “국내에서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기에는 아무래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구글이나 아마존 등에 비해 넥스알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그럼 한국 시장만 보고 사업을 하는 건가? 그렇진 않은 것 같다.한 대표는 ”한국 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구글이나 아마존의 경우 반응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사실상 서비스가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 시장에서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넥스알 정주환 이사가 회사 사업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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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블릭스(Revlix). 회사 이름이 생소하다.당연하다.이 회사는 회사명보다는 그들이 만들었던 앱으로 더 알려졌었다.‘라스트 서퍼-뭘 먹지?’는 레블릭스가 올 초 아이폰용 앱으로 출시해 한때 앱 순위 1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레블릭스는 앱 개발사가 아니다.‘라스트 서퍼’(Last Supper)는 어찌보면 이들이 본업과 전혀 상관없지만,젊은이다운 재치로 트렌드를 읽고 실험적으로 만든 애플리케이션이었다.그럼 레블릭스는 어떤 회사일까? 라스트 서퍼로 몇차례 언급된 것을 제외하면 소개된 적이 없는 이 회사 창업자들을 만나러 분당 수내동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다.사무실에서 만난 20대 젊은이 3명은 벌써 8년전에도 창업을 경험했었던 유경험자였다.그리고 레블릭스는 벌써 수익을 내고 있었다.

◆세 청년의 8년 우정
 레블릭스의 대표이사(CEO)는 윤종일 사장.최고기술책임자(CTO)는 신화용 이사,최고정보책임자(CIO)는 김진수 이사다.윤 대표는 대구과학고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01학번으로 입학했다.신화용 이사는 인천과학고,카이스트 02학번이고 김진수 이사는 한성과학고,카이스트 00학번이다.과학고-카이스트라는 한국 이공계의 정통코스를 밟은 수재들 3명이 경영진을 구성하고 있다.

 세 사람의 인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그리고 이 인연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한국의 스타트업 시리즈 여섯번째에 소개한 바 있는 엔써즈의 이준표 이사가 있다.이준표 이사 역시 카이스트 00학번으로 김진수 이사와 함께 2002년 중소기업창업경진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이때 받은 상금이 무려 1억원!

 그런데 상금에 조건이 있었다.최우우상에 입상한 아이디어를 상용화해야 한다는 거였다.당시 아이디어는 네트워크 솔루션과 관련된 분야였다.당시 학생이었던 이준표,김진수는 똘똘한 후배들을 찾았다.함께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다.2학년이었던 윤종일 학생이 합류를 했고 당시 카이스트 방송팀에서 PD를 맡고 있던 신화용 학생은 이들을 취재하러 갔다가 매료돼 학교도 휴학하고 바로 합류했다.이들의 길고 친밀한 인연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이들은 상용화를 위해 에빅사라는 회사를 설립했다.학생들 6명이서 설립한 회사였다.이준표 학생에게 설득당한 스탠포드 졸업생 셔먼 리 역시 이때 에빅사 창업 멤버로 함께 일했다.(따지고 보면 이들 우정의 정점에는 이준표 엔써즈 이사가 있는 셈이다.이들끼리는 이준표 이사에게 ‘낚여’ 맺어진 인연이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성장의 토양이 된 넥슨과 그래텍
 에빅사는 2005년까지 계속됐다.에빅사는 일본에 진출해 지사까지 설립하고 일본에서 현지인 사장까지 구했다.이 일본인 에빅사재팬 대표는 지금도 현지에서 엔써즈와 레블릭스의 현지 사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2005년에 이들의 사업이 중단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군 문제.창업자들이 모조리 군대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윤 대표는 병특으로 넥슨을 선택했고,김진수 이사는 곰TV로 유명한 그래텍을 거쳐서 넥슨으로 갔다.신 이사 역시 그래텍으로 갔다.이준표 이사 역시 그래텍에서 경력을 쌓은 것을 보면 넥슨과 그래텍을 통해 이들은 계속 인연을 이어간 셈이다.

 윤 대표는 국내 최대 게임업체 중 하나인 넥슨에서 온라인게임의 데이터 처리와 관련된 업무를 하면서 조직운영과 새로운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고 김 이사와 신 이사는 그래텍에서 네트워크 분야에서의 경험을 체득할 수 있었다.
 “스무살때 처음 창업을 했기 때문에 좌충우돌하면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 여전히 조직 운영이나 해외 사업,신규 채용,법률 문제 등 모르는 부분이 많았습니다.넥슨과 그래텍에서 각자 경험을 쌓은 것이 결과적으로 다시 모여서 창업을 하는데 큰 보탬이 됐죠” 윤 대표의 말이다.

◆방대한 데이터 분석의 최고 기술 기업 지향
 레블릭스는 어려운 이름만큼이나 비즈니스 분야가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고 생소한 회사다.데이터 분석과 계량화,네트워크 솔루션 등이 이 회사의 주력 분야다.데이터 계량화와 관련돼 다양한 기술을 개발,이를 라이센싱하거나 네트워크솔루션 기술을 개발해 다른 기업에게 컨설팅을 제공하기도 한다.

 소셜네트워크시대가 오면서 레블릭스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되고 있다.트위터,미투데이,페이스북,요즘 등에서 네티즌들이 만든 수많은 텍스트,사진 등 콘텐츠 데이터를 모아서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도 레블릭스가 하고 있는 일이다.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뜨거운 광고 키워드는 무엇인가 등을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레블릭스가 하고 있는 영역입니다.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의미있는 내용을 뽑아내고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기업이 되고자 합니다.그것에 최적화된 단단하고 실력있는 기업이 되는 것이 레블릭스의 목표이구요.”

 라이센싱과 컨설팅 등으로 수입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이 회사는 증자를 하지도,투자를 받지도 않고 있다.2009년초기 창업 당시 달랑 5000만원으로 창업을 했는데 창업자 셋이서 지분을 나눠 가지며 아직도 자본금 변동 없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올들어 몇몇 투자회사로부터 투자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모두 거절하는 바람에 한편으론 그로 인해 화제가 되기도 하고 ‘무슨 벤처가 투자도 안 받으려 한다’는 억울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투자를 거절하는 이유는 뭘까. 윤 대표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가장 큰 이유는 지금 운영에 부족함이 없이 돈을 벌고 있기 때문입니다.처음부터 운영자금도 못 벌어서는 회사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데 가장 주력했습니다.과거 창업 경험을 하면서 외부 투자를 받으면 아무래도 의사 결정에 있어서 창업 정신이 훼손되거나 창업자들의 의지대로 꾸려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일단 당분간은 외부 투자 없이 자체 수익 모델로 회사를 키워갈 생각입니다.”

<레블릭스 창업 멤버들. 왼쪽부터 신화용 이사,윤종일 대표,김진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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