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2월27일(월)자 1면에 실렸던 김영삼 아이러브스쿨 창업자 인터뷰 내용의 전문을 싣습니다. 신문에는 지면 사정상 일부만 게재됐습니다. 임정욱 라이코스 대표님을 비롯해 여러분들이 전문을 요청하셨습니다만 제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MWC 2012 취재차 체류하고 있었던 관계로 블로그에 전문을 올리는 게 좀 늦어졌습니다. 그와 나눴던 대화 내용을 모두 올립니다. 신문에는 제목을 뽑기 위해 특정 대목을 앞으로 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만 이 글에는 시간 순서대로 제가 그를 만나 대화한 내용을 그대로 올렸습니다. 이번 취재는 윤희은 한국경제신문 기자가 1차 내용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줬습니다.
(혹시 김영삼 사장이 누군지 모르시는 분은 아마 좀 어리둥절하실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읽지 마시고 이 글 끝으로 스크롤해 내려가면 김영삼 사장이 누구인지 제가 간략히 써 놓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걸 먼저 본 후 읽으시는게 나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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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아이러브스쿨 창업자를 만나러 가는 길 내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한 벤처기업가가 크게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문턱에서 좌절한 스토리는 무엇일까. 마음 한 구석에 착잡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를 어떻게 풀어쓸까에 대한 고민은 둘째였다. 너무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괜한 과거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컸다. 한편으로는 그저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자리가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하면서 나는 점차 이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는 인터뷰 도중 뜻밖에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저는 금양 정현철 전 사장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의 의도가 어찌됐던 결과적으로 나를 속였고 그로 인해 큰 손해와 엄청난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저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마 그대로 돈을 벌고 세상이 말하는 대로 성공을 거뒀다면 저는 인간 말종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경영 철학도 없이 남이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사업을 하고 으스대고 돈을 마음껏 쓰면서 기업가가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 아니 그 전에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이 살았겠죠. 지금 돌이켜보면 금양과 주식 매각 계약을 체결하던 전후의 시점, 저는 인간으로서는 망가진 존재였습니다. 진실한 사랑도 없었고, 삶에 대한 고민도 없었죠. 그러고 보면 그런 일을 겪은 후 저는 오히려 그때보다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말종이 되지 않도록 기회를 준 정현철씨에게 감사합니다.”

 정말 뜻밖이었다. 지난 11년이라는 세월은 그에게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돈도 잃고, 친구도 잃고, 가정도 잃고, 자존심과 명예까지 모두 잃었다. 너무나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며 그냥 생을 마감해버릴까하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인터뷰를 수락한 것은 자신의 실패담이 창업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때문이었다고 한다. 내가 대화 내용 전문으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흔쾌히 동의했다. 많은 것을 초월한 듯한 그런 모습도 보여줬다. 그와 장장 3시간에 걸쳐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원래 창업에 뜻이 있었습니까.

 “창업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정보학과 연구실에서 박사과정 중에 있었는데 같은 연구실 옆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싸이월드를 만들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인맥 기반으로 하려면 학연이 최고인데 그걸 안하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내가 해보자’고 어느날 결심하고 만들었죠. 연구실에 같이 있던 이춘석, 최병구 두 사람과 같이 각자 50만원씩 내서 150만원으로 PC 사서 개발했습니다.”
▶학교에서 시작한 건가요?
 "그렇죠. 당시 카이스트는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인터넷 환경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카이스트 출신들 중 많은 IT 창업자들이 나올 수 있었죠. 저희도 학교 밖에서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이트를 오픈하고 나서 얼마 안돼 (회원이 몇 없던 시절인데) 비만 오면 사이트 접속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알아보니 당시 학교에서 건물이 낡아서 누전 우려가 있다고 비만 오면 전기를 내려버렸더군요. 이래선 서비스를 유지하기 힘들겠다 싶어서 PC를 들고 밖으로 나오게 됐죠." 
▶운영비가 많이 들텐데 자금은 어떻게 조달했나요
 “창업하고 얼마 안돼 사무실 전화비를 낼 돈이 없더군요. 집에는 쌀이 떨어졌죠. 할 수 없이 아버지를 찾아가 3000만원을 빌렸어요. 그런데 회원이 아직 1만명도 안됐던 1999년말에 KTB와 금양 두 회사가 저를 찾아왔어요. 투자할 의향이 있는 것 같길래 10억만 투자해 달라고 했죠. 지분 40%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동시에 투자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왜 금양을 택했나요?
 “KTB는 권성문 대표가 자신이 개인적으로 투자하겠다고 하더군요. 문제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반면 금양쪽은 회사 차원의 투자였습니다. 우호적으로 다가왔기에 좋게 해석했습니다. 금양은 발포제 만드는 중소기업인데, 부산에 근거가 있고 나름 견실한 회사로 알고 있었습니다. 금양이 회원 1만명일 때 10억원을 투자하면서 지분 40%를 가져갔어요.“ 
▶창업 후 얼마 안 돼 최대 주주가 변경됐네요?
 “금양이 단일 최대주주가 된 거죠. 1999년 가을에 창업했는데 그해 말에 투자를 받았어요. 저는 30% 좀 넘는 지분이 있었고 다른 창업자와 직원 등 우호지분을 합쳐 60% 가량 있었어요. 창업자 쪽 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별 문제 없을거라고 봤어요. 제가 너무 경영을 몰랐던거죠. 나중에 알고보니 창업자들이 최대주주 자리는 회사를 매각하기 전까지는 내놓지 않더군요.”
▶다른 회사도 만나 봤습니까.
 “삼성 LG 효성 등 다른 대기업도 만나 투자를 타진해 봤습니다. 다들 투자 의사는 있었어요. 그런데 다들 조금씩만 투자하려 했습니다. 외국 회사들을 만나면서 국내 회사들은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게됐죠. 국내 기업들, 투자자들은 투자를 했을 때 기존 다른 대주주와 지분 싸움을 해서 이길 정도로만 지분을 확보하려고 하더군요. 회사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해서 인수 뒤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없는 것 같았아요.”
▶외국 기업들은 어떻게 다른가요
 “외국 기업들은 벤처기업을 인수할 때 지분 전체를 인수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리고 창업자의 공로를 인정해 줘요. 지분을 다 인수하고 오히려 스톡옵션을 주고 경영권을 보장해 줍니다. 야후가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금양과 사전 조율이 없었나요
 “금양이 투자하고 5개월이 안돼 2000년 5월에 25만명 돌파했어요. 회원이 너무 빠른 속도로 늘어 추가 투자가 필요해 금양을 찾아갔는데 돈을 더 투자 못한다고 거절하더군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회원이 150만명이 됐어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어요. 당황스러웠죠.”
▶야후는 어떤 조건을 제시했나요.
 “야후는 회원 한명당 얼마씩 계산하는 그런 기준이 있었어요. 300만명일 때 야후가 왔는데 300억원으로 시가총액을 산정했어요. 그런데 한달 만에 회사 회원수가 450만명이 되니깐 야후가 그걸 보고 놀라서 일단 가치를 500억원으로 하고 투자하겠다고 하더군요. 야후코리아는 당시 한국 증시에 상장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커뮤니티가 약하다는 게 항상 약점이었어요. 아이러브스쿨을 인수해서 커뮤니티를 키우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금양이 태도가 바뀌었어요.”
▶가치를 그 정도로 평가해준 것에 반응한 거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원래 야후와는 2000년 8월31일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는데 14일에 금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경영권을 보장하고 야후와 같은 기준으로 투자를 한다는 거였어요. 일부 돈을 현금화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도 했죠.”
▶그 말대로 했나요.
 “아닙니다. 그냥 순리대로 하자는 생각에 이미 늦었다고 하고 야후와 계약을 맺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금양을 만나보니 야후와 계약을 안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야후가 100% 지분을 인수하려면 금양 지분도 사야하는데 금양은 팔 생각이 없었어요.”
▶금양이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계약을 무산시킬 수 있는 상황 아니었나요. 처음부터 무리한 계약을 추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후가 저희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정 안되면 창업자들이 갖고 있는 60% 지분이라도 사겠다고 했어요. 금양과의 지분 매각 협상은 그 뒤에 해도 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런데 제가 그걸 거절했어요.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했죠.”
▶금양과는 어떻게 됐나요.
 “최종적으로 야후와 모든 협상이 결렬된 뒤 9월6일 금양과 계약을 했습니다. 지분 11%를 81억원에 금양이 샀어요. 저는 지분을 매각해 당시 30억원을 현금화했는데 이 중 3억원을 직원 몇명에게 나눠줬어요. 그런데 그게 무슨 확고한 철학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게 멋있는 줄 알았어요. 겉멋만 부린 거죠. 금양은 지분이 51%가 되면서 아이러브스쿨을 자회사로 편입했습니다.”
▶그때 그럼 회사 주인이 금양으로 바뀐 거네요.
 “그런데 그걸 제가 몰랐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제가 아이러브스쿨의 실질적인 최고경영자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현실을 몰랐죠. 경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회원이 너무 빨리 늘어서 당황했고 쫓아가기 바빴습니다. 하루에 몇십만명씩 가입하기도 했으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금양 자회사로 편입되자마자 회사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창업자들은 다 회사를 나갔고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도 뭐하러 이 회사에 있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바로 회사를 나갔나요.
 “2000년말에 금양을 찾아갔더니 보유 지분 전부를 사주겠다는 제안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2001년 2월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장 돈을 줄 수는 없다고 하더라구요. 2달 정도 뒤에 주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걸 믿었다는 게 이상하네요.
 “믿었습니다. 그 전에 지분을 판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돈을 잘 받았거든요.그런데 그 뒤로 돈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 합치면 160억원에 달하는, 당시로서는 정말 큰 돈이었는데 말입니다.”
▶지분을 팔고 뭘 할 계획이었나요.
 “그냥 학교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회사는 커졌지만 일은 경영은 제 뜻대로 안됐고 이참에 사업하느라 못다한 공부를 마저하려고 했죠. 그런데 결국 돌아가지도 못했어요. 너무 창피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내가 돈을 많이 번 것으로 알았고, 심지어 기부 요청도 들어왔는데 저는 매각 대금도 못 받고 세금때문에 빚만 잔뜩 진 상황이었거든요. 그런 걸 왜 그리 신경썼는지. 철학이 없어서 중심도 못 잡았고 그냥 체념하는 심정으로 집에 있었습니다.”
▶세금 문제는 어떻게 된 건가요.
 “세금을 간과한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주식을 양도했으니 세금을 내야하는데 돈을 못 받아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2004년 세금부과 예비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원래 낼 돈은 8억원인데 연체료, 미신고가산세 등이 붙어 24억원으로 불었어요. 잘못하면 있는 재산을 전부 빼앗길 것 같아서 아내에게 이혼을 하자고 했어요. 일종의 위장이혼인데, 얼마 안 가 진짜로 이혼을 했어요. 아내와 처가쪽 식구들이 결국 그 힘든 시기를 견디지 못했어요. 나에게 돌아서는 걸 보면서 피눈물이 났습니다.” 
▶재기 시도를 계속 한 것으로 압니다.
 “돈 벌어서 세금 내 보겠다고 2004년에 아파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공동구매 사이트 아이티아를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투자 받으러 가도 아무도 투자를 하지 않았어요. 아이러브스쿨을 만들어 그렇게 키워본 경험이 있다는 제 경력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더군요. 시기적으로도 좋지 않았어요. 당시엔 벤처 거품이 완전히 꺼지고 난 뒤 벤처 투자에 대한 반감이 심하던 시절이었어요. 벤처 차리고 3년 지나면 다 사채업자한테 가는 거 모르냐며 외면했습니다. 결국 2005년말 사업을 완전히 접었죠.”
▶그 뒤로 공백이 많았습니다.
 “죽으려고 했습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다시 재혼하지 않았으면 아마 진작에 자살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내는 나와 함께 아이티아를 설립했던 사람이었는데. 처음엔 아이티아를 포기 못하겠다고 하다가 나까지 살려보겠다고 했습니다. 2006년 아는 분에게 오피스텔을 빌려 사업을 하려고 했지만 신용불량자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국내에선 안되겠다 싶어 2010년 중국에서 사업을 시도했지만 잘 안됐구요.”
▶왜 벤처기업에 투자를 안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국내에서는 IT벤처를 아이디어사업이 아니라 단순한 돈벌이수단으로만 생각합니다. 투자를 하고 장기적으로 추이를 봐서 회사를 키워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투자하고 빨리 이익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만 해요. 산업을 장기적으로 못 보니 결국 IT사업이 ‘빨리 피고 빨리 죽는’ 사업이 된 겁니다.”
▶벤처 창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성공을 대비하라’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대개의 사람들이 실패를 대비하지요. 대신 성공에 대해서는 ‘성공하면 성공하는 거지’하고 맙니다. 하지만 성공을 준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성공을 준비하지 않아서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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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사장은 누구>
김영삼 사장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정보공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던 1999년 연구실에서 동료 2명과 함께 아이러브스쿨을 창업했다. 아이러브스쿨은 초등학교 친구들을 연결시켜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란 새로운 개념을 앞세워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회사를 설립한 지 1년도 안돼 500만명의 회원을 모으며 세계 인터넷 사이트 순위를 매기는 알렉사랭킹에서 한국 1위, 세계 3위까지 올랐다.
 2000년 8월 야후코리아가 500억원에 인수를 추진했으나 계약이 무산된 뒤 그는 금양에 지분을 넘기고 2001년초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금양측이 지분 매각 대금을 주지 않으면서 주식 양도세를 내지 못한 그는 미납 세금, 이자 등이 더해져 개인 빚이 20억원까지 불어났다. 2004년 아이티아라는 아파트 기반의 SNS를 설립했지만 실패했고 중국에 가서 사업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아 귀국했다. 금양 전 대표이사였던 정현철씨를 상대로 주식매각대금 청구 소송(민사) 1심에서 승소했고 현재 형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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