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1.10 서른 일곱 2
  2. 2009.09.15 1Q84,하루키가 달라졌다? 2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2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또는 상실의 시대)을 처음 접했을 때는 주인공의 나이에 대해 사실 아무 느낌이 없었다. 서른 일곱살의 주인공 와타나베는 18년전 청춘 시절에 겪었던 삼각 관계에서의 아픔이 그의 성장기를 거쳐오면서 반복되는 인생을 살아왔다.37세의 남자가 비행기 안에서 두통을 느끼고 옛사랑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이야기는 시작되고,상실의 시대를 살아온 그 젊은이의 방황 속에서 이야기는 끝난다.

좋다.이야기가 어찌됐든, 주인공은 37세의 남자였다.그때는 그게 딱히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그냥 그 37세의 남자를 19세인 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아니면 주인공의 나이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루키의 또다른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 나오는 주인공 하지메도 37세로 등장한다.이 책의 표지에 나와있는 카피 문구는....지금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첫사랑의 기억에 목놓아 우는 중년 남자의 고독' 뭐 대략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 37세, 중년의 남자가 주인공이다.

중년?

정말 낯설다.충격이다.

37세를 맞이한 2010년 거울을 보면서 오랫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그 소설의 주인공들이 떠오르면서 '중년'이라는 단어가 엄습해 왔다.어느새 이런 나이가 됐단 말인가!!

그런데 '추하지 않은 중년이 되자'는 다짐이 스쳐간 것도 잠시,너무도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내가 생각했던,또는 막연히 그렸던 37세? 또는 중년의 모습과 나는 지금 너무도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중년이라는 말은 이 글에서 그만 써야겠다.너무 어색하다.당시 그 책 표지 제작자의 실수인 것 같다.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너무 다른 시대를 살아서 그런가..하루키가 그린 37세의 남자. 그런 사람의 모습은 나에게 전혀 없다. 난 지금 첫사랑의 기억 따위에 목놓아 울 상황이 아니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첫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 꿈을 꾸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며 여전히 진행중인 가족 계획에 있어서도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37년이나(?) 살아왔는데, 어이없게도 눈 깜짝할 새에 이 모든 시간들이 지나가 버린 것이 더욱 시간의 가벼움을 실감나게 할 뿐이다. 37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갔는데,앞으로 37년은 또 얼마나 빨리 지나갈 것인가!! 지금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면 74세가 되는 순간이 얼마나 빨리 찾아올 것인가!!
지나온 37년은 정말 아쉬움 그 자체였던 것 같다. 꿈도 없이, 간절한 바람도 없이 살아오면 이렇게 덧없이 순식간에 시간만 지나가버린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여기까지 와 버렸다. 그렇게 나태하게 살아오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저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도 뼈저리게 깨달을 뿐이다. 최소한 74세가 됐을 때는 이런 생각에 괴로워하고 싶지 않다.

막상 하루키 소설 주인공의 실제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주인공들의 감성에 전혀 공감이 가질 않는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나기까지 한다. 내가 너무 메마른 사람이 돼 버린 건가? 어쨋든 이제 하루키도, 그저 열심히만 사는 그런 생활도 졸업할 때가 된 것 같다. 서른 일곱, 새해가 밝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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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하루키가 달라졌다?

책 다시보기 2009. 9. 15. 23:17 Posted by wonkis

 "세계가 '비참한 것'과 '기쁨이 결여된 것' 사이의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제각각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작은 세계의 한없는 집적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창밖의 풍경은 보여주고 있었다."   -1Q84 2권 p.303에서

하루키는 역시 하루키였다.주말에 책을 사서 모두 합쳐 12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다 읽는데 채 만 하루가 소요되지 않았다.읽으면서 그 다음 이야기가 견딜수없이 궁금했고 한 장이라도 더 넘기진 않고선 잠을 잘수도,식사를 아오마메와 덴고가 과연 어떻게 만나게 될 것인가를 계속 상상하면서 읽었다.

그의 이번 작품에 대해 하루키가 변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들었지만,내가 받은 느낌은,하루키는 기본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거였다.물론 세월의 변화,그리고 그가 이번 소설에 우선적으로 담고자 했던 기본적인 내용들이 사뭇 다른 가치관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는 있다.하지만 하루키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우선,무엇보다 이 책은 읽는 내내 그의 여러 전작들을 떠올리게 했다.노르웨이의 숲,바람의 노래를 들어라,태옆감는 새,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원더랜드,국경의남쪽 태양의 서쪽,그리고 언더그라운드.

노르웨이의 숲,국경의남쪽 태양의서쪽,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그랬듯이 그는 계속 사랑을 주제로 얘기하고 있다.상실을 이야기할 때도 결론은 사랑이었고 무엇보다 그 사랑-사실 이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은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의 희미한,하지만 매우 강렬한 찰나의 순간에 대한 기억에 근거하고 있다.

사랑의 모습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도 비슷하다.그 정서상의 간격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도 확실히 예전의 느낌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하루키의 예의 비트는 듯한,묘하게 씁쓸한 유머적인 묘사도 여전하다.

가령, "심술궂게 생긴 노인이 머리가 나빠 보이는 잡종견을 산책시키고 있었다." 라던가 "어딘지 심심한 주택가의 어딘지 심심한 풍경이 그곳에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무적의 섹스 머신",  "그 방이 자신을 찾아 온 어느 누구도 환영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뒤로 꽤 오랜 세월이 흐른 것처럼 보였다"

내가 알고 있는 하루키 소설의 원류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이 책은 이렇게 끝났다.

"아오마메를 찾자, 덴고는 마음먹었다. 무슨 일이 있건, 그곳이 어떤 세계이건, 그리고 그녀가 누구이건."

끝을 속시원히 맺지 않고 여운을 주는 것은 하루키 스타일이라고도 할 법하다. 하지만 이번 끝맺음은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가 미도리와 통화하면서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 (이미 죽었을지 모르는 시마모토와의 존재로 인해 새삼 꺠닫게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암시하는 것과 좀 더 닮았다.다른 점이 있다면 '국경- 태양'에서는 그 새로운 시작의 이면에는 관계에 있어서의 종말을 내포하고 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진정한 출발의 의미를 더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극단적인 종교성,아니 종교로 포장한 극단성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를 주로 개인의 입장에서 서술해 나간 것은 언더그라운드의 배경이 기반이 된 것 같다.언더그라운드에서 하루키가 이미 보여줬듯이 종교로 포장한 극단성에 의해 엄청난 피해를 입고도 선뜻 그 죄성을 인정하지 않는 피해자들의 모순된 모습-우리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그런 부분도 이 소설 전체에 녹아들어가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너무 기대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너무나도 오랫만에 만난 하루키 본연의 소설이란 점 자체로도 충분히 즐거움을 줬다.그가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별로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그리고 종교성에 대해 천착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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