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정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향후 수익이나 비즈니스 모델의 급성장 가능성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효용을 줄 수 있는 가치있는 일을 시도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번 주인공은 2013년 한국의 스타트업 일백마흔일곱번째 이야기로 소개한 바 있는 메디벤처스(당시엔 에이디벤처스)의 창업자 이희용, 황진욱 두 대표다. 첫 만남 이후 1년반 가량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의 목표는 더욱 커지고 분명해졌다. 이들이 목표를 달성한다면 정말 우리의 삶이 달라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진료 기록 정보는 누구의 것일까.

병원에 다녀온 개인의 진료 기록 관련 정보는 누구의 것일까요.”

황진욱 대표의 질문이다. 당연히 해당 개인의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 정보를 내가 원할 때 찾아볼 수 있나요?” 그의 질문이 이어진다. 그래야 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아니 사실 방법은 있다. 내 정보를 청구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다. 과정이 지난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수시로 찾아보기란 더더욱 어렵다. 불가능에 가깝다. 뭔가 이상하다.

개인의 진료 개록은 매우 민감한 개인 정보를 담고 있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보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보건복지부나 관련 정보를 담당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공단 등의 설명이다. 일견 수긍이 간다. 그런데 보안이 너무 중시되다보니 내가 내 정보를 확인하기도 어려워졌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당장 자신의 진료 기록(언제 어떤 병원에 갔다 정도가 아니라 진료 결과, 치료 내역, 조심해야 할 사항 등 세부 진료내용)을 한번 찾아 보시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조차 막막함을 느낄 것이다.)

자 그럼 내 진료기록에 대한 보안은 정말 철통같이 지켜지고 있을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신청을 하면 내 진료 관련 정보를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다. 그런데 우편이란 게 얼마나 분실이 쉬운가. 본인에게 제대로 갈지 확실치도 않고 중간에 사라져버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서 정작 보안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개인 의료 관련 정보을 꽁꽁 숨겨두는 것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처사인가.

정말 철저하게 보안을 지키는 것도 아니면서 개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조차 어렵다면 이 정보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 이희용 황진욱 두 사람의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개인의 진료 기록은 국가의 건강 관련 통계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고 과거의 진료내역을 살펴보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 그렇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진료기록을 잘 좀 봐야하지 않을까.

메디노트(Medinote) 프로젝트

메디노트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메디노트의 출발은 이른바 빅데이터다. 국민들 대부분이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으며 이들의 진료 기록이 거의 실시간으로 남아 저장되는 대한민국의 방대한 건강보험 급여 지급 내역. 이게 없으면 사실 진료 빅데이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인 법.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더라도 이것이 체계화되고 정리돼서 누구나 이것을 찾아보고 분석하고 각자의 필요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않는다면 그 수많은 데이터는 아무 의미가 없다. 최소한 개인의 영역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건복지부 등 정부가 주도해서 만든 각종 건강정보 관련 서비스나 앱 등은 일반인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질 못하거나 부차적인 서비스에 그쳤던 게 사실이다. 그 중엔 상당히 잘 만든 앱도 있었지만 홍보 부족이나 사후 관리 부족으로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미국에는 아이블루버튼이라는 서비스가 개발됐어요. 국민들이 자신의 진료기록을 볼 수 있게 만든 서비스죠. 오바마 정부에서는 이것을 혁신적인 서비스라고 하면서 지원까지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서비스는 대단히 제한적이에요. 미국은 한국과 달리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험사들과의 데이터 공유를 통해 일부 국민의 제한적인 진료 정보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외국의 사례에 비하면 한국은 이런 서비스를 하기에 정말 최적의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5000만명 전 국민의 건강정보를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관리원 등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명을 지난해 에이디벤처스에서 메디벤처스로 바꾸고 건강 정보 관련 서비스를 하는 회사라는 정체성과 사명을 일치시킨 이들은 지난해 메디노트 시범 서비스를 실시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이용하는 일종의 건강 관리 앱이다. 정부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personal history record를 갖고 개인별 body map을 만들었다고 한다. 즉 각 사람이 병원에 다녀온 기록을 취합해서 처방전, 담당의사, 병원비, 질병 정보 등 전문화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을 띄워놓고 신체 부위별로 어떤 이상이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등 다양한 정보도 제공해준다. 이 모든 정보가 자신의 진료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된다. 그 어떤 서비스보다 정확할 수밖에 없다.

의료정보의 네이버 된다

개인화된 이런 정보는 그야말로 네이버도 할 수 없는서비스다. 건강 정보에 대해서만큼은 이 분야의 네이버가 되겠다는 게 이들의 포부. 아니 네이버도 하지 못하는 철저하게 개인화된 서비스도 가능하다.

서비스 준비는 이미 지난해 시범사업을 통해 완료했다. 다만 개인정보 관련 이슈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미 우편물을 통해 개개인의 진료 기록을 지금도 받아볼 수 있기 때문에 개인 진료 기록을 개인이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메디벤처스의 서비스가 문제될 부분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서비스가 대중화된다면 개인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의 진료 기록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자신의 약점이나 건강상의 문제점을 체크하고 예방에 관심을 갖게 될 수 있다. 의료기관이 환자를 관리하고 이들에게 건강상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예방의학 관련 연구개발을 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도 있다.

이들은 메디라떼 2.0 버전도 준비하고 있다. 메디라떼 2.0은 전국의 병원 68000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가까운 병원 및 약국 찾기, 예약하기 등 기존의 기능에 더해 상담 기능을 추가한다. 카톡 상담 아이콘을 붙여 자신의 상태에 대해 카톡으로 물어보면 긴급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도와주거나 가장 적합한 병원으로 안내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이미 150만건 이상 다운로드됐다.

병원 예약 관련 할인쿠폰 서비스로 시작해 병원 찾기 정보서비스, 진료 기록 조회 서비스, 건강 관리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는 메디벤처스. 이들의 다음 행보는 해외 의료 환자들을 향하고 있다. 황진욱 대표는 한국을 찾아오는 중국, 러시아, 중동 등의 의료관광객들에게 한국의 병원을 소개하고 맞춤형 안내를 해 주는 서비스를 하겠다이를 위해 중국의 쇼핑검색포털과 제휴를 맺고 한국 방문 관련 쇼핑 검색을 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실시간 상담과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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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느덧 점점 잊혀진 서비스가 되고 있지만 1990년대 말 시작돼 2000년대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프리챌’(http://www.freechal.com)이라는 사이트가 있었다. 이 사이트를 만든 전제완 (주)자유와도전 사장은 삼성그룹에서 일하다가 회사를 뛰쳐나와 벤처기업을 차려 대박의 꿈을 이뤄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주금가장납입 사건으로 전 사장이 긴급체포 된 후 프리챌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전제완 사장 역시 프리챌의 쇠락과 함께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다. 결국 프리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재창업에 도전했다. 하지만 과감한 투자와 공격적인 경영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했다. 두 번의 실패 이후 사라질 것 같았던 그는, 하지만 돌아왔다. 그리고 보란 듯이 투자를 유치하고 다시 한번 재기를 꿈꾸고 있다. 그는 이번에 우뚝 설 수 있을까. 사실상 세 번째 창업이자 네 번째 내놓는 서비스를 들고 전제완 사장이 다시 돌아왔다.

◆자금난 인력난에 고전한 유아짱

전제완 사장의 이야기는 블로그에서 몇 차례 소개한 적이 있기에 프리챌 시절의 이야기는 그만두고 유아짱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게 좋을 것 같다. 그가 유아짱이라는 회사 설립 준비에 나선 것은 2008년이었지만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것은 2010년이었다. 그리고 2011년 들어 짱라이브 선보였다. 짱라이브는 서비스 오픈 1년여만에 200만명이 넘는 사용자를 확보하는 등 순항했다.

초기에는 블로그 등 인터넷에서 개인 방송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서비스로 출발했지만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스마트폰용 영상SNS로 발전했다. 주로 사진이나 텍스트, 동영상 등을 올려놓고 댓글을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다른 SNS와 달리 짱라이브는 앱을 통해 서비스를 했고 사람들이 동영상을 즉석에서 찍어 올리고 동영상을 보면서 채팅을 할 수 있다는 차별점이 있었다.

앱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실시간 방송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 사용자들이 많았다. 이들 중에는 열혈 이용자들이 제법 있었다.

짱라이브 서비스의 핵심은 안정성이었다. 서비스 자체의 경쟁력이 동영상을 기반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었기 때문에 동영상 서비스가 끊기지 않고 잘 돌아가야 했다. 물론 사람들이 이용하기 쉬운 UI(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유려한 디자인 등도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데 짱라이브 서비스는 안정성에서 종종 문제가 발생했다. 동영상 재생이 끊기거나 에러가 발생하는 경우가 잦았다. UI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든 구조였다. 그러다보니 초기 열혈 이용자를 중심으로 사용자가 늘었으나 어느 정도 수준에서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동영상에서 에러가 자꾸 나면서 회사 차원에서 공격적으로 유저 수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을 전개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었다. 서버 차원의 투자를 단행해 안정성을 높이고 실력있는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영입해야 했다. 2011년말까지는 이런 작업이 순조롭진 않았어도 조금씩 이뤄졌었다. 전 사장은 다섯 군데의 투자회사로부터 13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2012년 들어 투자가 뚝 끊겼다. 투자회사들이 인터넷 회사에 투자하는 금액 규모상 더 이상의 투자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게다가 수익모델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도 보이질 않는 상태였다.

자금 유입이 중단되면서 회사는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2012년 3월에는 KT가 회선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다. 잠깐이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사용자들이 이탈을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직원들 월급을 주기 힘든 상황까지 몰렸다. 자금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전 사장은 결국 2012년 9월 12일 오후 6시부터 짱라이브 서비스를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공지에서 “2008년 10월1일 창업 이후,지난 4년간 글로벌 서비스를 목표로 영상SNS를 개발해 왔습니다. 척박한 벤처투자 환경 속에서도 5개의 국내 기관투자자가 130억원을 투자해줘서 220만명이 사용하는 국내 유일의 SNS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3개월간 필요한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만, 자금 조달을 마무리하지 못하였고 KT와 LG 측 회선사용료 미납으로 인해 더 이상 서비스 유지가 어렵게 되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전 사장은 회사 공개 매각도 추진했다. 하지만 적절한 인수 희망자를 찾기도 힘들었고 직원들이 모두 떠난 상태에서 회사는 사실상 폐업을 했다. 전 사장은 “자금난도 어려웠지만 인재를 구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에어라이브로 다시 시작하다

과거 프리챌의 실패도 겪었던 그였지만 유아짱은 더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창업멤버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났고 오래 함께 일했던 직원들도 잃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희망의 끊을 놓지 않았다. 프리챌 때에 비해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엄청난 채무를 뒤집어쓰진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다시 한번 줄기차게 사업의 기회를 모색했다. 회사는 사실상 공중분해됐지만 서비스는 아직 살아 있었다. 다만 동면상태에 있을 뿐이었다. 잠에서 깨우려면 돈이 필요했다. 좀처럼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투자자들의 문은 2014년 들어서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2014년 5월 상장사인 키스톤글로벌에서 3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짱라이브에는 대대적인 변화를 줬다. 우선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 투자를 받는 것으로 했다. 짱라이브는 기능을 업그레이드하고 디자인을 혁신한 뒤 에어라이브로 개편했다. 지배구조에도 변화를 가했다. 에어(Aire)라는 법인을 이미 1월 미국에 설립했다. 에어는 기존 유아짱의 지분 100%를 갖는 모회사다. 유아짱은 사명을 에어라이브코리아로 변경했다. 전 사장은 에어의 최대주주가 됐다.

에어라이브코리아는 10월 15일 전세계 어디서나 채팅과 동시에 화상대화를 할 수 있는 '페이스채팅(Facechat)' 기능이 탑재된 모바일 앱 '에어라이브(Airelive)' 를 출시했다.

'에어라이브'는 글이나 사진, 영상 컨텐츠를 모바일과 웹을 통해 확산시킬 수 있는 소셜 기반의 멀티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한국어와 영어, 일어버전으로 출시됐으며 특히 여러 명과 함께 화상대화를 할 수 있는 '페이스채팅' 기능이 가장 눈에 띄는 서비스다.

'페이스채팅'은 다른 메신저 서비스와 같이 채팅의 기본 기능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화상대화가 가능하다. 실시간으로 최대 4인이 동시에 얼굴을 보며 음성대화 및 채팅이 가능하고, 화상대화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4인의 영상통화를 보고 들으며 채팅창에서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기존 짱라이브의 기능도 그대로 구현했다. 자신의 일상을 모바일로 촬영해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라이브 방송 기능은 기본이다. 아바타샵에선 유명 연예인이나 캐릭터로 제작된 다양한 무료 아바타를 다운받을 수 있다. 채팅이나 타임라인, 내 홈피 등에서 자신의 감성을 아바타로 표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친구들에게 보낼 수 있는 영상쪽지 기능과 내 폰에 있는 사진으로 멋진 효과와 음악을 삽입해 사진영상을 만들 수 있는 기능, 10초간 짧은 영상을 나눠 찍어 타임라인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10초 영상 등 다양한 영상관련 기능들도 포함됐다.

그는 화상 대화 중 영상이 끊기지 않도록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데 유아짱 시절을 포함해 5년이 넘는 시간과 2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 부었다. 에어라이브는 한 마디로 유튜브와 아프리카TV,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의 기능이 모두 포함된 복합 SNS인 셈이다. 채팅이나 사진 전송은 물론이고 개인 모바일 방송, 화상 채팅 등도 가능하다. 타임라인 기능이 있어 친구들의 소식도 알 수 있다.

에어라이브는 그가 꿈꿨던 모든 기능을 담았다. 프리챌 시절부터 꿈 꿔왔던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플랫폼의 완성체가 드디어 에어라이브에서 구현된 것이다. 미국 투자를 추진하고 있는 그는 미국 투자회사의 자금을 받아 글로벌 서비스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모든 것을 다 잃고도 다시 시작한 그가 이번에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신용마저도 잃었던 그는 진짜 맨주먹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그가 겪었을 고통과 외로움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또한 그 못지않게 괴로웠을 창업멤버들과 직원들의 힘든 나날들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어찌 보면 그는 ‘자유와 도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삼성그룹을 뛰쳐나와 맨손으로 첫 창업에 도전했던 1999년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 심정인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불가능했던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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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우주(Woozoo)라는 셰어 하우스(Share house) 사업을 하고 있던 김정헌 대표는 그 새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발을 내딛었던 셰어 하우스 사업은 안착을 해 있었고 그는 인큐베이터로서, 저자로서, 창업가로서 다양한 일에 다시 도전하는 중이었다.

◆같이의 가치를 짓다

그는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2012년부터 그가 2년여 기간 동안 사업을 구상하고 멤버를 모으고 사업을 일궜던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다. 책 제목은 ‘같이의 가치를 짓다’. 그가 한 사업의 핵심을 제목에 고스란히 담았다. 프로젝트 옥, 우주 사업을 함께 했던 계현철, 이정호, 조성신, 박형수 등 창업멤버들과 함께 책을 엮었다.

지난해 초 그를 만났을 때 우주의 첫 셰어 하우스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그의 문제의식은 간단하지만 묵직했다. 꿈이 있는 사람들끼리 공간을 나눠서 같이 생활을 하자는 것. 공유경제의 일환이라고 가볍게 볼 수도 있지만 주거 문제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 기업 창업가다운 해법을 던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모든 것이 불확실했지만 그 뒤로 착실하게 사업은 진행됐다.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15개의 셰어 하우스가 나왔고 지금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처음 그의 창업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그의 생각이 난 마음에 들었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사업을 하고 싶다는 그의 생각, 그것을 위해 하나씩 준비해나가는 과정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아마 그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나에게 일일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으리라. 그가 쓴 책을 보면서 그런 어려움과 고난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기어코 해 내고야 마는 그 열정에 감탄하기도 했다.

젊은이들의 주거 문제는 사실 오늘날에는 개인들의 문제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제 점점 국가나 공공기관이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만큼 젊은 나이에 주거 문제에 대한 압박으로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운 문제에 나름의 해법을 던져보겠다고 나선 것이니 어찌 의미가 없을까.

그런데 그는 최근 회사 경영에서는 손을 떼고 새로운 것을 준비한다고 했다. 과거 함께 딜라이트라는 보청기 회사를 창업했던 김정현 대표가 우주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청년 김정헌은 다시 출발선에 섰다.

◆사회적 기업 인큐베이팅

사업이 순조롭게 되고 있는 가운데 왜 중단했을까.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불확실 가운데 뭔가를 처음 시작하는 것이 그의 적성에 보다 맞기 때문인 것 같다.

하여간 그는 그래서 현재 JP모건이 지원을 하고 희망제작소가 기획을 한 사회적 기업 스타트업 과정에서 멘토링 및 인큐베이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회적 경제 핵심인재 육성센터에서 자신의 경험을 전수해주고 방향을 잡아주고, 투자자들에게까지 연결해주는 게 그의 하는 일이다.

그는 과거 학생 시절에도 JP모건과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사회적 기업 동아리 넥스터스에서 소시지 프로젝트(Soci知 프로젝트)라는 것을 한 적이 있는데, 사회적 기업을 배우고 알아가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예전부터 JP모건이나 모건스탠리 UBS 등 글로벌 IB은행들이 사회적 기업 과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일종의 사회 공헌 사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해외에서는 일찌감치 그런 쪽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더군요.”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고 싶은 팀 중 이미 사업을 시작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팀 중 본격적으로 발전시킬 만한 그런 팀을 뽑는 게 1차 작업이다. 이미 현재 15개 창업팀을 발굴해서 컨설팅을 하고 있는 단계. 그에게 몇 가지 사례만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눈 뜨면 도착’이라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팀이 있어요. 서강대학교 학생들이 시작한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쉽게 말하면 학생들끼리 전세버스를 같이 빌리는 그런 서비스입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면 학교까지 통학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지역에 하는 학생들끼리 전세버스를 빌려서 타고 다닌다는 것. 예를 들어 일산이나 분당, 평촌, 판교, 용인, 수원, 남양주 등 수도권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신촌에 있는 학교까지 오려면 차를 여러번 갈아타거나 버스를 타고 와도 계속 서서 와야 해서 학교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기 일쑤다. 같은 지역에 사는 학생들끼리 매달 몇 만원 수준의 적은 금액만 내도 전세버스를 빌려서 차를 같이 타고 다닐 수 있다는 것. 이렇게 하면 차를 기다리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앨 뿐 아니라 계속 앉아서 갈 수 있어서 편리하다.

공실률 50%가 넘는 동네독서실의 남는 자리를 공유하는 서비스도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폐이어폰, 즉 한쪽이 들리지 않거나 못쓰게 된 이어폰을 기증을 받아서 이걸로 팔찌를 제작, 수익금을 청각장애인에게 보내는 보청기 등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는 사회적 기업도 15개 중 하나다.

사회적 기업을 컨설팅하거나 이와 관련해 인큐베이팅을 하는 곳은 제법 있다. 그가 하는 것의 차이점은 경험자가 한다는 것. 사회적 기업을 창업해 성과를 낸 창업가가 다른 사회적 기업 창업가에게 방향을 가르쳐주고 필요한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는 새로운 아이템을 창업을 하는 것도 여전히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 또 해봐야죠. 뭔가를 시작할 때 가슴이 뛰고 의욕이 생겨요.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창업의 형태로 해보겠다는 것. 그것을 계속 잡고 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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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다들 명함 정리하느라 힘들다고들 해요. 귀챦아하는 사람들도 많구요.”

“그렇죠. 명함 정리하는게 귀챦을 때가 많죠. 잠깐 안하고 있다가 잃어버리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전혀 안 힘들다고 하는 그런 부류도 있더라구요.”

“아 그래요? 누가 그렇죠?”

“난 전혀 안 힘든데. 비서가 다 해주는데. 이러는 분들이죠. 비서가 다 해주니깐 힘들 게 없는거에요.”

“그렇네요!”

“그래서 그때 생각했어요. 아 그럼 그냥 우리가 비서가 되자. 명함관리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비서가 되자. 비서가 하듯이 고객의 명함을 직접 손으로 타이핑해주자. 이렇게요.”

 이럴 수도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이걸 진짜로 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명함관리앱 리멤버를 처음 접했을 때, 놀라움 그 자체였다. 우선 기상천외한(?) 그 생각에 놀랐다. 아니 최첨단 기술로 명함을 인식해서 자동으로 저장하고 전화번호랑 연동하고 뭐 그런게 아니라 그냥 명함 사진을 찍으면 직원들이 손으로 타이핑을 쳐서 명함을 대신 입력해준다고? 심지어 관리하기 싫은 명함을 택배로 보내주면 그 명함이 몇만장이 됐던지 간에 이걸 직원들이 일일이 입력해서 그 사람 휴대폰으로 보내준다는 말을 들었을 땐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 마지막으로 또 한번 놀란 것은 이걸 만든 사람들이 바로 프로필미를 만들었던, 드라마앤컴퍼니 창업멤버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였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첫 작품은 실패

 작년 여름의 끝자락에 드라마앤컴퍼니 최재호 대표를 만났을 때 이제 막 런칭한 사업 아이템에 대한 열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도 그와 회사는 명함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명함을 만들고, 주고받고, 관리하는, 이런 세 단계의 불편함을 만드는 단계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바꿔보겠다는 거였다. 그의 생각은 거창했고, 명함과 관련된 불편함을 모두 해소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해있었다. 즉 앱을 통해 각자의 프로필을 만들어서 저장해놓고 이것을 만날 때마다 서로 주고받으면 된다는 거였다. 앱끼리 연결돼 있으면 더욱 편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문자메시지로도 얼마든지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 즉 당시 그의 생각은 모바일 명함을 전자명함으로 대체하자는 거였다. 

 작년 9월에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막 서비스가 나왔을 때였다. 명함의 불편함을 개선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좋아보였다. 하지만 그 때 글을 쓰면서 나도 그런 문제점을 지적했었다. 명함을 주고받는 것에는 단순히 이름이 적힌 종이를 교환하는 것이 아닌 문화적인 현상, 사교적인 측면의 제스처 이런 것도 상당히 많은데, 이것을 과연 전자프로필이 대체할 수 있을까. 게다가 썩 편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이미 모든 이들이 명함을 불편없이 주고받고 있는데(다만 관리가 힘든 것 뿐인데) 이 시장을 어떻게 뚫고 들어가 변화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점은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드라마앤컴퍼니도 바로 느꼈다고 한다. 사용자들이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은 대응이 매우 빠르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사용자들이 늘어나지 않는 것에 분명히 이유가 있다고 판단한 최재호 대표. 자신들이 너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꾸려고 했다는 것을 즉시 인정하고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시작했다. 

◆딱 하나만 바꿔보자

 “명함을 만드는 단계부터, 교환하고 관리하는 모든 단계의 과정을 전부 저희들이 바꾸려고 했던 게 성급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사람들이 가장 불편해하고 문제가 있는 한 가지만이라도 확실하게 바꿔보자. 이렇게 다시 시작했어요.”

 그래서 발견한 것이 명함의 가장 큰 불편함은 역시 관리라는 것. 자 그럼 이것을 어떻게 편하게 해 줄까. 시중에는 이미 이에 대한 솔루션이 나와 있었다. 바로 명함을 스캔해서 바로 저장하게 해 주는 기술과 서비스들이 그것이다. 드라마앤컴퍼니 이전에 이미 이런 고민을 했던 이들이 많았고, 이들은 나름의 해결책을 내놨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쓸까. 처음엔 몇 번 하려고 하다가 잘 안하게 된다. 왜? 인식이 잘 안되는 경우도 많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전화번호나 프로필 등을 정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식기술이 분명 앞으로 여러가지로 중요하게 쓰이겠지만, 명함 정리와 관련해서 해결책은 아니라고 판단한 최재호 대표. 그러면, 어떻게 해야 명함관리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물어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답이 바로 ‘비서가 되겠다’는 것. 이 대목에서 나누는 대화가 이 글의 처음에 썼던 바로 그 대화다.

 이런 대변화는 지난해 가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안된다면 빨리 바꾸기로 하고, 최 대표는 책임지고 투자를 받아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서비스가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더욱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투자를 유치하러 다니면서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만약 명함 인식 기술을 좀 더 개선시키겠다는 식으로  사업설명서를 갖고 왔으면 투자 검토도 안했을 거라고.”

 리멤버는 기존 명함 앱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아예 ‘수작업’을 택했다. 현재 약 150명의 타이피스트들이 명함 정보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실시간으로 입력해 준다. 이용자는 리멤버 앱에서 명함 사진만 찍어 올리면 된다. 10분 동안 열심히(?) 사진을 찍으면 100장의 명함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명함이 너무 많아 사진을 찍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리멤버 본사에 택배를 보내면 역시 타이피스트들이 손으로 입력해준다. 고객은 택배비만 부담하면 된다.

<드라마앤컴퍼니 최재호 대표>

◆모바일 링크트인 꿈꾼다

 사람들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3월에 정식 서비스가 오픈됐는데 불과 두달여만에 사용자 5만명이 들어왔다. 명함 정보만 5월말 현재 100만장이 축적됐다. 

 사람이 100% 직접 정보를 입력하기 때문에 인건비 문제가 있는게 사실. 그래서 일단 기본 서비스는 무료로 하되 유료화모델도 검토하고 있다. 최 대표가 가장 고무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초기 열혈 이용자를 확보했다는 것. 나 자신이 써 봐도 명함 관련 앱 중에서는 가장 파워풀한 것 같다. 혹시 사람이 입력하면서 실수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 내가 직접 들어가서 수정할 수도 있다. 내 명함을 리멤버 앱에 등록한 사람이 자신의 명함을 등록하면, 라이브로 뜬다. 이렇게 되면 이 사람의 정보가 변했을 때 상대방이 바로바로 알 수 있게 된다. 

 그는 20만명이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20만명의 유저만 모으면 명함 정보가 약 500만장 가량 모일 것이라는 것. 이 정도면 왠만한 사람들의 명함을 죄다 등록이 되는 셈이고 이렇게 되면 명함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맨들의 거대한 네트워크가 구축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즉 명함 기반 링크트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명함관리의 중요한 어려움들이 다 해소된 것은 아니다. 서비스도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 사용자들이 많아지면서 명함 사진을 찍어 올린 뒤 명함이 등록되는 시간이 점차 지연되고 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도 생각보다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여러번 해보면 알게 된다. 명함에 따라선 사진이 정말 잘 찍히지 않는 명함도 있었다(글자 수가 적고 바탕이 하얀 명함일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멤버는 열혈 사용자를 확보하면서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초기 단계에서 목표를 무난히 달성했다고 보여진다. 이를 입증하듯 최근에는 이택경 프라이머 대표, 정장환 링크나우 대표, 벤처캐피탈 캡스톤파트너스 등으로부터 총 1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실탄을 확보한 그는 모바일 링크트인으로 가기 위한 다음 단계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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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 창업자인 벤처 1세대 전제완 유아짱 사장이 상장사인 키스톤글로벌으로부터 50억원의 투자를 유치, 재기에 나선다. 이에 따라 지난 2012년 9월 운영자금 부족으로 문을 닫았던 영상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짱라이브’도 20개월여 만에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28일 전제완 사장은 “최근 키스톤글로벌과 50억원 투자 유치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고 이 중 20억원이 오늘 입금됐다”며 “이를 기반으로 5월중 짱라이브 서비스를 재개하고 6월15일까지 나머지 투자자금을 받아 미국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키스톤글로벌이 투자하는 회사는 한국의 유아짱이 아닌 미국 신설법인 ‘에어(Aire Inc.)’다. 에어는 올 1월 전제완 사장이 미국에 설립한 벤처회사로서 키스톤글로벌은 이번 투자로 에어의 지분 20%를 보유하게 된다. 키스톤글로벌은 이같은 내용을 29일 공시할 계획이다. 에어는 투자 유치와 함께 짱라이브를 서비스하고 있던 기존법인 유아짱을 100% 자회사로 편입하게 된다. 기존 유아짱 주주들은 정해진 비율대로 에어사의 주주로 변경된다. 전 사장은 이런 절차가 마무리되면 유아짱 사명을 에어코리아로 변경할 예정이다.

 전제완 사장은 지난 1999년 ‘자유와 도전’을 기치로 내걸고 프리챌을 창업, 2년만에 1000만명이 넘는 회원을 모으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02년 12월 주금가장납입혐의로 긴급체포되면서 프리챌은 몰락하게 됐고, 그는 훗날 개인적인 혐의는 벗었지만 230억원의 부채를 안고 파산에 이르렀다. 2008년에는 동영상 SNS 업체 유아짱을 설립, 짱라이브를 통해 한때 230만명의 회원을 모았으나 자금난을 겪다가 서비스를 중단하기도 했다.

  전 사장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영상SNS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다”며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안에 미국에서 영상SNS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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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이라는 서비스가 시작됐을 때, 업계 안팎에서 정말 많은 우려가 제기됐던 기억이 난다. 남녀간의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서비스의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인데, 본래 목적과 관계없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불륜이 횡행한다던가 사기 또는 기타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만남을 악용한다는가 하는 것. 아주 자세히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성간의 만남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이는 사실 근거 없는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많은 만남 사이트들이 그런 부작용을 피해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인식때문에 부작용이 확대 재생산되기도 했고, 오해를 받기도 하는가 하면, 서비스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음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아마 이런 선입견과 싸워나가는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놀랍게도 이음은 이를 무척이나 잘 해 왔다. 이음은 어떻게 이를 극복했을까, 그리고 앞으론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을까. 궁금증을 갖고 박희은 대표를 만났다.

◆편견과 싸워나가다

이음의 서비스가 처음 출시된 것은 지난 2010년 5월. 당시 베타 서비스로 출발해 2010년 10월 유료화 모델을 바로 도입했다. 이음의 소개팅 서비스는 세계 시장에서도 이미 유료 모델이 검증된 서비스였기 때문에 일찌감치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이음을 처음 알게 된 건 서비스가 시작된 지 얼마 안된 2011년 1월. 당시 이음은 ‘안드로메다에서 내려온 이음신이 매력적인 지구 피플에게 매일 한 명의 인연을 선물해 준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매일 한 사람씩을 소개해주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소개의 주체가 중요한데, ‘이음신’이라는 이름의 회사의 매칭프로그램이 중책을 수행했다.

 그런데 처음엔 이 이음신을 제대로 구축하는 게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서비스를 오픈하기 전에만 그랬던 게 아니라 서비스를 오픈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개발자를 구하는게 힘들었어요. 구하고 난 다음엔 제가 개발을 잘 몰라서 서비스 일정을 짜고 개발을 진행하는 데 애로 사항이 많았죠. 서비스가 나온 다음에는 매칭 고도화 작업을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매칭 서비스가 사실 시스템적으로 되는 부분도 있지만 사용자 수가 어느 정도 늘어야 가능한 일이었거든요.” 

 사용자 수가 20만명을 넘어서면서부터 매칭 고도화 작업도 탄력을 받기 시작한 듯 하다. 사실 돈을 내고 소개팅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을 소개받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 매칭고도화 작업이라는 것은 단순히 ‘좋은 사람’을 소개해준다는 차원을 넘어 각각의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 현재 하고 있는 일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적합한 사람을 연결시켜줘야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회원 숫자의 증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회원 증가와 함께 고민도 커졌다. 그것은 이음이 자칫 빠질 수 있는 함정이기도 했고, 주위에서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잘못하면 음지 서비스가 될 수 있다는 것. 유료화를 하더라도 돈을 벌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돈을 벌면 오히려 음지화가 가속화될 수 있을 거라는 것. 이런 서비스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는 것. 우려이지만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지도 모르는 일.

 그래도 이음은 이런 우려를 극복해냈다. 여러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지만, 대표이사가 여자라는 점, 그리고 그 대표의 이미지가 우울한 서비스가 될 수 있다는 느낌과는 엄청나게 거리가 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음이 처음부터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를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서비스에 내재화했다는 점이었다. 프로필을 받을 때 진지하게 생각하고 제출하게끔 하고, 불륜 등 문제가 될 만한 부분에 대해선 단계별로 경고조치 등을 통해 예방을 했다.

◆월 매출 5억 돌파

서비스 구상 단계에서부터 밝고 건강한 이미지의 소개팅 서비스를 지향했고 이를 실제로 구현한 것이 중요했지만 박희은 대표가 여성이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포인트다.

 “대표가 여성이라는 점이 이 서비스가 여성의 마음을 잘 알아야한다는 점에서 플러스 효과가 분명히 있지 않았을까요.” 박 대표 본인의 분석도 그렇다.

 항상 남자 회원은 넘쳐났다. 반면 여성 회원들을 유치하기 위해선 공을 좀 들여야 했다. 소개팅이란 역시 이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묘한 변화도 감지된다. 

 “여전히 6 대 4의 비율로 남성 회원의 문의가 많죠. 그런데 요즘에 보면 남성들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뭐가 달라졌을까.”

 “뭐랄까. 훨씬 따지고 들어요. 남자들도 조건을 많이 따지고 더 상대방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것 같아요.”

 물론 그래도 여전히 남자 회원은 충분히 많다. 여성 회원의 원활한 확보는 이음의 계속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음의 원 매출은 어느 정도 될까. 월 5억원 정도 된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 박 대표를 만났을 때와 이 글을 쓰는 시점의 시차가 약간 있어 월 매출 5억원은 올초 기준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거의 대부분은 부분 유료화 아이템 수익이고, 최근에 광고가 들어오는 게 있어서 그 부분도 일부 수익모델로 잡혀있습니다.” 

 이음을 통해서 하루에 한명씩 소개를 받는 것은 따로 돈이 들지 않는다. 다만 소개를 받았을 때 상대가 맘에 들면 OK권을 구입해야 한다. 이걸 사는게 돈이 든다. 한번에 하나씩만 구입할 수도 있고 정기권을 구매해 기간동안 쓸 수도 있다. 

 현재 이음 서비스 이용자 수는 100만명. 회원 숫자다. 매일 15만명 가량이 이음을 쓰고 있다. 소개팅 서비스로는 굉장한 숫자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느새 서비스를 시작한 지 만 3년을 훌쩍 넘긴 이음 박희은 사장 입장에서는 성이 차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 시장이 얼마나 확대될 수 있을까요.”

 “지금 20대-30대 미혼남녀가 800만명입니다. 한국에만 그렇죠. 이 중 12.5%가 이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어요. 아직 갈 길이 멀죠.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음은 아직까지 큰 고비를 겪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성장 정체가 반복되는 경험은 했다. 그 와중에도 조금씩 실적이 개선될 수 있었던 것은 창업자인 박희은 대표와 김도연 이사가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줬기 때문 아닐까. “서비스를 시작할 때 김도연 이사는 수익모델을 반드시 함께 갖고 가야한다고 주장했죠. 저는 일단 서비스를 시작하고 사람들을 모으면서 수익모델을 개발해도 된다는 입장이었어요. 이밖에도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이 많았지만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보완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해외 진출 검토

박 대표에게 해외 시장 진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온라인 소개팅 시장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업체들이 하고 있는 사업이다. 한편으로는 경쟁을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지만, 그만큼 검증이 됐다는 점에서 아직 미개척 시장에 도전해볼만 할 것 같다.

 “당연히 생각이 있죠. 하지만 우선 국내에서 확실하게 BEP(수익분기점)를 넘어서고 싶어요.”

 “BEP에 아직 도달을 안 했나요?”

 “월단위로는 BEP를 넘은 적이 많죠. 하지만 아직은 좀 들쑥날쑥해요. 투자나 마케팅에 비용을 좀 쓰게 되면 안되는 때도 있구요. 그래서 고민을 사실 해요. 어떤게 먼저일까. 해외진출이 먼저인지, 국내에서 성장하고 난 다음에 해외로 나가는 게 맞는 것인지.”

 “해외로 나가게 되면 자금이 많이 필요할텐데요.”

 “그렇죠. 현재 이음의 시스템에선 대규모 투자는 필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당분간 현지에서 수익모델없이 버텨야할 가능성이 높구요. 초기 투자비가 많이 필요해 외부 투자 자금에 대한 필요성이 커질 수도 있겠죠.”

 “투자는 한 차례 받았었죠?”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하는 시점에 미래에셋으로부터 투자를 받았구요, 2011년 11월에 알토스와 슈프리마로부터 투자를 받았어요. 그 다음엔 투자를 받지 않았죠.” 

 이음이 결혼 시장에 진출할까. 이미 소개팅 시장에서 상당한 입지를 구축했는데, 결혼 시장으로 진출하는 게 그리 뜻밖의 일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상황. 하지만 박 대표는 “현재 결혼정보회사들이 하고 있는 그런 시장 영역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사실 결혼정보회사가 하는 시장이 사람 수로 보면 그리 크지 않습니다. 1위 업체의 회원 수가 3만명이 채 되질 않죠. 물론 하나하나의 가격이 고가이기는 하지만 저희는 완전히 그쪽으로는 가지 않을 겁니다. 그야말로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그런 분야가 아니라 글쎄요, 좀 더 쿨한 시장이라고 할까요? 물론 진지한 만남이어야하겠죠. 진지하지만 좀 더 쿨한 시장, 그게 저희의 그 다음 타깃입니다.”

 이런 박 대표의 생각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 최근 출시된 아임에잇(I AM 8) 서비스. 조건에 맞는 이성을 선별, 소개해준다. 아임에잇은 초대 방식으로 운영된다. 기존 회원에게 초대를 받거나 이음 홈페이지에서 초대 신청 후 승인을 받아야만 가입할 수 있다. 또 회원의 실제 만남 성공률이 낮을 경우 ‘에잇 큐레이터’를 파견, 직접 지원해 데이트를 성사시킨다. 소개 횟수에 제한이 없는 소셜데이팅의 성격과 전담 매니저가 직접 관리하는 결혼정보업체의 성격을 동시에 띤다. 박 대표는 “좀 더 진지한 만남을 원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아임에잇을 보면, 이음은 그냥 여러 만남을 이어주던 방식에서 좀 더 선별된 만남을 도와주고 개인의 이성관계를 컨설팅하는 분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임에잇이 이음의 시즌2의 완결된 모습은 아니겠지만, 하나의 단초는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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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소프트는 2011년 ‘전혀 새로운 지역정보’를 기치로 걸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그를 만났을 때가 2011년초. 어느새 3년이 훌쩍 지났다. 중소기업 나라이비즈니스에 오래 다닌 뒤 동료들을 모아 창업에 뛰어든 김성욱 도래소프트 대표는 의욕에 충만해 있었고, 자신이 갖고 있었던 아이디어에 얼마쯤 흥분해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스스로 기대하고 있었으리라. 그를 처음 만났던 시기는 2011년 초봄. 그가 야심차게 준비한 이츠타운이 출시된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쓰라린, 하지만 헛되지 않은 실패

3년여만에 다시 만난 그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츠타운은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왜 실패했을까. 이츠타운은 지역 정보 서비스가 수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한 서비스였다. 포털에서 검색을 하면 업소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이는 포털이 모든 것을 관리하는 닫힌 시스템이기 때문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개별업소들이 자기 매장의 정보를 관리하게끔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장 주인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위치기반 블로그 형태의 서비스를 기획했다.

 당시 그는 이 서비스를 웹과 앱 버전으로 모두 개발했다. 앱을 활용하면 업주 입장에서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매장 관리와 고객 관리가 모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있는 위치나 찾고 싶은 곳의 주변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비스는 잘 안됐다. “양쪽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게 정말 어렵더라구요.” 그가 실패의 원인을 곰곰이 되짚으면서 한 말이었다. 어느 요건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업주들은 소비자들이 많이 쓰면 앱에 입점을 하겠다고 하고, 소비자들은 매장이 많이 들어와야 앱을 쓰지 않겠냐고 하더라구요. 양쪽을 동시에 충족시키면서 영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매장과 고객 사이에서 양쪽의 요구사항을 다 충족해야 하는 상황. 결국 이츠타운은 다운로드 1만여건에 불과한 초라한 실적을 냈다. 서비스야 잘 안될 수도 있지만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중요하다. 

 “2012년 상반기는 정말 힘든 시기였죠.”

 “사업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요.”

 “왜 안했겠어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더라구요. 해보고 싶었던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자존심때문에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는 생각도 했구요.”

 그 와중에 함께 창업했던 3명 중 2명이 회사를 떠났다. 버텨내기 위해 그는 증자를 하면서 자신의 돈을 더 투입했다. 힘든 나날이 이어지는 와중에 2012년 6월, 그는 우연히 한국관광공사에서 진행하는 ‘창조관광사업 아이디어 공모전’ 공고를 보게 된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제가 원래 여행, 관광 이런 거에 관심이 많았고 예전부터 해보고 싶은 서비스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을 급하게 정리해서 공모전에 제출했죠.”

 그런데 이게 왠걸? 1000대 1의 경쟁을 뚫고 덜컥 우수상에 뽑혔다. 그런데 그에겐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었다. 6개월만에 서비스를 출시하는게 수상의 조건이었다. 알파 버전이라도 출시는 해야하기에 그는 서둘러 개발에 착수했다. 

◆사용자에게 충실한 서비스가 최우선

공모전에서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가 지금 회사의 주력 서비스인 ‘여행노트’다. 여행노트는 장소를 기반으로 여행스토리를 작성하고 공유하는 서비스. 여행을 가기 전 정보를 검색하는데 막상 쓸만한 여행 정보는 찾기 힘들다는 것에 착안한 그의 아이디어를 구현한 것이다. 

 우수상을 받으면서 부상으로 받은 상금 3000만원이 개발비가 됐다.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그가 개발에 임한 자세는 어땠을까. “딱 한가지 원칙만 세웠습니다. 세상의 어떤 서비스보다 여행 기록을 정말 편하게 남길 수 있는, 그런 서비스를 만들자구요. 그거 하나만 제대로 하자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첫번째 실패에서 배운 교훈이었다.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했던 경험. 그래서 ‘소비자에게 올인하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대중들, 즉 일반 사용자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면, 여행 서비스던, 영업매장이던 따라 올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당시엔 이런 것을 다 계산하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절박했기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

 무조건 직관적으로 가장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겠다고 하니 길이 보였다. 하지만 시간과 엄청난 노력도 또한 요구됐다. “제일 먼저 필요한 게 여행 장소 DB더라구요. 그런데 이걸 어디서 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어요. 누가 갖고 있는 정보든 현재의 상황과 맞지 않았죠. 그래서 가장 방대한 자료를 구한 뒤 일일이 해당 여행 정보를 확인하면서 DB를 구축했어요.”

 전 직원이 매달리고, 아르바이트생도 구해서 DB를 구축하는데만 6개월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필요하면 전시회에 가서 책자도 받아오고, 인터넷에서 자료 수집도 했다. 이 DB는 여행 기록을 남길 때 특정 장소에 가서 앱을 실행하면 근처 여행지가 뜨고 관련 여행정보가 정확하게 제공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미 없어진 정보가 남아 있거나 최신 정보가 등재돼 있지 않으면 서비스의 신뢰성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국내 여행지 3만5000곳의 DB를 구축할 수 있었다. DB가 구축되자 서비스 개발은 빨리 진행됐다. 2013년 3월 베타서비스를 시작하고 그해 6월 정식 서비스가 문을 열었다.

 여해노트는 사람들이 자신의 스타일대로 장소를 옮겨다니면서 편하게 사진을 올리고 간단한 글을 올릴 수 있게 구성됐다. 지도를 올리는 것은 물론 페이스북 등과의 공유 시스템으로 다른사람들의 의견을 보거나 쉽게 다른 이들의 여행기를 볼 수도 있다. 여행장소와 찍은 사진의 위치 정보를 앱에서 제공하는 지도에서 쉽게 표현할 수도 있다.

 서비스를 시작하고 한달여만에 2만명이 가입했다. 여행노트 서비스 한달만에 기존 이츠타운이 1년반동안 힘겹게 쌓았던 1만여 다운로드를 두배나 앞지른 것이다. 2월말 현재 여행노트의 다운로드 건수는 약 18만건. 매일 6000여명의 사용자가 여행노트에 접속해 여행기록을 남기고 있다. 

◆여행허브가 되고 싶다

초반에 사용자 2만명이 몰리면서 서비스에 대한 각종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이것도 필요하다, 저것도 필요하다며 요청을 하는 것이다. “처음엔 여행지에 대한 정보만 구축했어요. 그거라도 잘 하자고 한 거죠. 그런데 고객들이 맛집 정보, 숙박업소 정보도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정보도 또 발품을 팔아 수집해서 넣었습니다. 전국 여행지의 맛집 정보 2만3000여개, 숙박업소 정보는 8000여개가 들어있습니다.”

 하다보니 과거 이츠타운 서비스때는 없었던 일들도 일어났다. 가만히 있는데 제휴를 하자며 지자체, 국내외 관광 관련 업체, 정부 기관 등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엔 호텔스컴바인이라는 해외 호텔 할인예약업체와 제휴도 맺었다. 지자체와의 협력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제휴를 맺은 것에 그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다음 지도에서 여행노트의 여행기록과 연동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여행노트의 사용자 기반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행노트가 발전하면서 과거 이츠타운의 실패가 새삼 약이 되고 있다. 이츠타운 당시 구축했던 지역정보를 여행노트에 연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지역 맛집이나 숙박업소들이 자신들을 등록해 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한다. 

 그에게 꿈을 물었다. 그는 “여행노트를 여행허브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항상 어디를 갈지, 가서 무엇을 할지, 어디에서 묵을지, 무엇을 먹을지 등을 결정하쟎아요. 이것을 위해 검색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죠. 여행노트는 모든 여행의 출발점이 되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 찾아보는 곳. 그리고 여행지에서는 기록을 남기고, 다녀와서는 추억을 되새기는 거죠. 이 정보는 다른 사람에게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계속 업데이트됩니다. 여행의 허브가 되는게 허황되지 않겠죠?”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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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시지온을 알게 됐을 때 이 회사 사장은 김범진 대표였다. 그게 벌써 2011년의 일이다. 3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회사는 공동 창업자였던 김미균 대표가 이끌고 있다. (김범진 대표가 군에 입대하면서 함께 창업했던 김미균 대표가 전면에 나섰다.) 댓글을 통해 인터넷 문화를 바꿔보겠다는 청년다운 패기와 꿈으로 시작됐던 이 회사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꿋꿋하게 성장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처음 접했을 때 대학생들의 벤처같은 느낌마저 강하게 났지만 이제는 어엿한 기업으로 커나가고 있다.  

 시즌2는 보통 시즌1에서 다뤘던 스토리 이후의 이야기가 중심이 됐지만, 시지온에서는 약간 다르게 전개를 해 나가려고 한다. 시즌1과 주인공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지온을 만든 또 다른 창업자의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이 회사의 스토리가 완성이 됐기 때문이다. ‘시지온 시즌2’는 이 회사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다시 시작된다. 

◆커뮤니케이션이 좋을 뿐

김미균 대표의 어릴 적 꿈은 아나운서가 되는 것. 그의 이런 꿈은 어릴적부터 방송 활동을 많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우연챦은 기회에 시작됐지만 반복되면서 자신의 미래를 규정하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김미균 대표에게 방송 일이 그랬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로 꿈이 좌절됐다. 방송 일이 좋아 2005년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는데, 대학교 1학년때 우연히 자신의 턱뼈가 마모되는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방송을 위해선 제대로된 발음을 하는 게 중요한데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면서도 기본적인 부분에서 할 수가 없게 된 상황이 온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함묵증을 앓기도 했다. 실어증이 말을 못하게 되는 것이라면 함묵증은 스스로 말을 하지 않는 것.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뜻이다. 

 “대학에 들어가고 한참 좋아야 할 시절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어요. 그러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어요. ‘나는 왜 아나운서가 되려고 했던 것일까.’”

 이 때는 2006년 말부터 2007년 초까지의 시기. 뜻하지 않은 병으로 인해 자신의 직업과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생긴 셈이다. “나는 왜 이 분야에서 직업을 택하려고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그냥 카메라 앞에 서는 것에 좋아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러다가 알게 됐죠. 난 그저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많고 그쪽 분야의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그 일을 하는데 반드시 아나운서일 필요는 없다는 결론이 났어요. 그랬더니 마음이 가벼워졌죠.” 

 마음을 고쳐먹자 함묵증도 사라졌다. 학교로 돌아온 그는 자원봉사단 활동, SK텔레콤 인턴십 등 외부 활동을 하며 연세대리더스클럽이라는 동아리를 갔다가 김범진을 만나게 된다. 취업을 하던 창업을 하던 직업을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 시대적 상황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게 두 사람의 경우가 그랬다. 두 사람이 연세대 리더스클럽에서 활동을 하던 당시 한국 사회는 어느때보다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었다. 김미균, 김범진 두 사람은 자살 이슈와 이를 둘러싼 댓글의 사회적 문제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댓글 문제는 캠페인으로 안된다

“왜 멀쩡한 사람들이 온라인에만 가면 싸울까요.”

궁금하긴 하다. 왜 그럴까. 그의 말이 이어졌다.

“왜 중도는 사라지고, 극단적인 찬반 의견만 남게 될까요.”

중도 의견은 굳이 올릴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만한 정성을 기울일 유인이 없을 터. 로그인의 장벽도 한가지 원인이 될 수 있겠다. 로그인을 해야 댓글을 남길 수 있는데 어떤 사안에 대해 분노가 치솟는 등 극단적인 감정이 들어야 로그인이라는 힘든(?) 과정을 감내하고 댓글을 남길 수 있다.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는 집단행동의 원칙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어쨌든 김미균 김범진 두 사람의 결론은 악성 댓글의 문제는 결코 캠페인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알겠다. 캠페인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할까. “기술과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김미균 대표의 설명. 김미균이 기획을 맡고 김범진이 개발을 맡았다. 경희대 컴퓨터공학과를 다니다 연세대 화공과 06학번으로 온 김범진은 프로그램도 짤 줄 알았다. 

 다분히 공익적인 성격이 강한 이 일을 어떻게 사업화할 수 있을까. NGO가 하면 후원을 받아야 해서 결국 캠페인성으로 갈 가능성이 높았다. 정부기관이 하면 정체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이들의 결론은, 어렵더라도 기업이 해야 한다는 것.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하쟎아요. 그런데 우리는 처음에 그 생각을 전혀 못했어요. 돈을 어떻게 벌어야할지에 대한 대책도, 물론 없었죠.”

 2007년에 창업은 했지만, 이러다보니 처음엔 사회적기업 성격이 강했다. 2010년까지는 수익모델이라곤 전혀 없이 버텼다. 이들이 만든 라이브리(LiveRe) 시스템의 가치는 댓글의 네트워크화에 있다. 라이브리는 댓글을 기존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연동시킨 시스템. 댓글과 SNS를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시지온이 특정 포털이나 블로그,언론사 닷컴 사이트 등과 제휴를 맺고 자신들의 플랫폼을 해당 사이트에 구축하면 이런 사이트에 들어오는 네티즌들은 라이브리라는 댓글 플랫폼을 이용해 댓글을 달게 된다. 로그인이 필요하지만 라이브리에 따로 로그인할 필요는 없다. 기존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예를 들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아이디로 로그인해서 사용할 수 있다. 몇개의 하나의 아이디로 로그인해서 들어가서 작성하면 한꺼번에 여러 종류의 SNS에 내가 쓴 댓글이 그대로 전송된다.

 이렇게 되면 댓글이 그냥 날아가버리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는 수단이 된다. 특정 기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고 SNS에 연결된 내가 아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이런 방식이 댓글의 사회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댓글을 달 때 내가 아는 사람이 내가 단 댓글을 본다면 좀 더 이성(?)을 갖고 글을 달게 될 것이라는 것. 댓글이 배설이 아니라 소통의 도구가 되면 캠페인을 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정상적인 대화의 모습을 띄게 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판단이었다. 이들의 생각이 맞았는지는 좀 더 정밀한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런 과정 속에서 이들의 사업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다음달 라이브리뷰 출시

댓글과 SNS의 반응에 민감한 곳은 많겠지만, 특히 심한 곳은 쇼핑 및 유통업체들, 그리고 언론사들, 브랜드가 중요한 대기업 등일 것이다. 평판에 민감한 정치인이나 연예인들도 댓글을 중시여긴다. 언론사들은 특히 직접적인 당사자다. 사람들이 어떤 소식을 접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 언론사의 기사를 통해서이고 기사에 대한 댓글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지온의 라이브리는 언론사들과 하나씩 제휴를 맺기 시작했다. 2011년에만 해도 걸음마 단계였는데 이제는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언론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검색하든, 언론사 사이트에서 뉴스를 보든, 뉴스를 보고 댓글을 달기 위해 로그인을 하면 라이브리 시스템에 들어가게 된다. 시지온은 SNS의 반응과 댓글에 민감한 기업체들과도 계약을 체결했다. 매년 갱신되는 이 계약이 시지온의 주된 수익모델이다.

 댓글의 네트워크화를 꾀하면서, 당연한 일이지만 댓글에 대한 엄청난 DB가 축적되고 있다. 댓글에서 어떤 반응이 나오고 있는지, 국내에서 이를 가장 잘 아는 회사가 있다면 시지온이 아닐까. 네이버에서도 댓글이 가장 많이 달린 글이 뭔지, 댓글의 반응이 어땠는지를 통계적으로 의미있게 분석하는 시스템은 마련되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쉽게 말해, 시지온은 한국의 언론사 뉴스 댓글을 모조리 갖고 있는 유일한 회사인 것이다. 

 “언론사들이 노출시키는 뉴스와 사람들이 클릭을 많이 한 뉴스, 그리고 댓글을 많이 단 뉴스가 상당 부분 겹치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우린 항상 댓글 데이터를 보기 때문에 이걸 알수 있죠. ”

 “어떤 뉴스에 댓글이 많이 붙나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자극적인 뉴스에 물론 많이 붙지만, 결국은 심층 보도를 할수록 댓글이 많이 달려요. 댓글을 분석하면 신뢰할만한 콘텐츠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지온은 이런 경험과 축적된 DB에 분석을 덧붙인 라이브리뷰(LiveReview) 앱을 다음달 출시한다. 모바일 앱으로 출시되는 이 앱은 댓글이 많거나 댓글 반응이 좋은 뉴스 등을 따로 보여준다. 시지온은 댓글 내용의 분석 등을 위해 트리움과 제휴를 맺고 기술적인 부분에서 협력하고 있다. 이 정도만 갖고도 앞으로 할 게 많을 것 같은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간 수익모델이나 비즈니스 확장 계획은 아직 고민중이란다.

 “지금까지는 투자를 받지 않고 사업을 해 왔는데요, 이제 투자를 받아야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중이에요. 해외 진출도 때가 왔고, 국내에서도 댓글DB를 활용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할 때가 됐어요.”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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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10월, VCNC 박재욱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회사 구성원은 달랑 다섯명이었다. 이 회사의 대표적인 서비스 ‘비트윈(Between)’도 아직 정식으로 출시되기 전이었다. 2년 4개월의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VCNC에는 어느새 서른명을 훌쩍 넘긴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고 서비스는 탄탄하게 성장해 다운로드수 600만을 돌파했다. 카카오 시리즈물을 제외한다면, 국내에서 벤처기업이 만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가운데 가장 내실있게 성장한 서비스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윈은 아직 더 성장해야 하는 서비스고, 넘어야 할 산들이 남아 있다. 2년 동안 부쩍 성장한 비트윈 개발사 VCNC의 박재욱 대표를 만났다. 이날은 마침 VCNC가 일본의 DeNA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는 발표를 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순조로운 성장

비트윈은 2011년 11월 오픈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커플들을 위한 SNS를 표방했다. ‘연인들을 위한 둘 만의 온라인 비밀 공간’이 비트윈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였다. 공개SNS가 대세처럼 시장을 장악해가던 시기에 폐쇄형 SNS를 준비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기도 했고, ‘얼마만큼의 시장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우려보다는 기대가 맞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트윈은 오픈베타 기간 3개월 동안에 35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2012년 3월 정식서비스를 개시한 뒤 빠른 시간 내에 1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며 순조롭게 성장해나갔다. 폐쇄형 SNS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상당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서비스가 출시되기 전에 이미 벤처캐피털(VC)로부터 상당한 인정과 기대도 받았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2011년 11월 비트윈에 투자했다. 

 둘 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비밀한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비트윈의 장점은 젊은 연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순조롭게 늘어가던 비트윈의 성장세가 눈에 띄게 꺾이기 시작했다. 원인은 빠른 성장에 따른 급격한 사용자 증가에 있었다. 

◆눈에 안보여도 고객은 다 안다

비트윈에게 첫번째 닥쳐온 위기의 시점은 2012년 여름. “이용자수나 메시지 이용 건수가 모두 정체 되더라구요. 기존의 성장 곡선이 어느날부터 멈춰선거죠.”

 왜 그랬을까. 박재욱 대표는 직원들을 소집해 대책회의를 했다. 외부 사용자들의 반응도 체크했다. 서비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적인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용자가 늘면서 에러가 자주 발생하게 되고 메시지를 보내는 데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이 생겼다. 

 “바로 서비스 안정성 개선에 나섰습니다. 백업단의 기술도 보완하고 서버쪽도 점검을 했죠. 사실 이게 눈에 보이는 부분이 아니어서 서비스를 하다보면 이런 부분의 개선은 자꾸 뒤로 미루는 경향이 생겨요. 새로운 서비스의 업데이트에만 매달리는 거죠. 스타트업은 리소스가 제한돼 있으니까 급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우선 자원을 투자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눈에 안보이는 부분을 고객들이 바로 알아차리더라구요.”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는 3개월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그래도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문제점을 해결하자 사용자 수와 메시지 수 등 주요 지표들이-그의 표현에 의하면-J커브로 급상승했다. “당시가 1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던 시점이었거든요. 아마 이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으면 상승세를 타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2012년 하반기 꾸준하게 성장하던 VCNC는 2013년초 다시 한 번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번에는 조직 내부의 이슈였다. 멤버간의 불화가 아니라 회사가 성장하는데 따른 업무의 비효율성이 문제였다. “사람이 갑자기 늘면서 일하는 프로세스에서 문제가 생기곤 하더라구요. 어떤 일이 있을 때 이것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고 누구와 논의해야하는지 등등 정해진 게 없었으니까요. 내부의 일하는 원칙을 만들고 책임과 권한에 대해 토론하고 그러면서 프로세스를 다듬는 시간이 필요했죠.”

 그때부터 박 대표는 ‘자유롭게 일하지만 강한 책임을 진다’는 업무 원칙을 설정했다고 한다.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 조직 정비에 여념이 없던 시절에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당시 일본 등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경험이 없다보니 운영과 커뮤니케이션 등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보니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더라구요. 비전 공유를 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애를 좀 먹었죠.”

◆수익모델과 해외 안착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는 2013년초 다시한번 소프트뱅크와 캡스톤, 스톤브릿지 등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2013년말 5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한 데 이어 최근 600만 다운로드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비트윈의 현황을 알 수 있는 숫자를 알려달라고 했다. 600만 다운로드에 이어 하루에 실행되는 횟수 2100만번, 지금까지 등록된 사진 1억4000만장(핀터레스트의 4분의 1 수준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메시지 125억건, 메모(장문의 편지 등) 1600만장 등등.

 비트윈이 꾸준히 성장해온 것은 맞지만, 아직 수익모델은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현재까지 수익모델 없이 진행해 온 게 맞다”는 답이 왔다. 물론 앞으로는 달라진다. 우선 선물추천, 기프티콘 보내기 등의 기본적인 수익모델을 올 여름부터 실시할 계획이다. 커플을 타깃으로 한 이벤트를 실험적으로 진행하면서 각종 이벤트 상자(광고채널) 등의 가능성을 점검해보기도 했다. 

 그에게 지금 당장 고민하고 있는 것을 물어보자 수익모델과 해외 시장 안착을 꼽았다. 2012년말부터 준비한 일본 시장은 지난해 3월 3명의 직원으로 법인을 설립한 뒤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처음 직원을 채용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간 싱가포르 법인도 올해 3월경 설립될 예정이다. 현재 비트윈의 600만 유저 중 국내 사용자는 350만명, 해외 사용자가 250만명 수준. 일본 사용자는 전체의 12% 정도를, 중국 사용자가 8%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해외 사용자가 늘면서 국가별로 사용자들의 패턴이 보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한국은 20대 중반부터 후반 사용자가 대부분인 반면 10대 유저는 없는데 일본은 10대 유저가 20대 유저 다음으로 많습니다. 미국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가장 많은 사용자가 포진해 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있을까. 그는 나라별로 미세하지만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는 그런 연령대에 차이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비트윈이 좀 더 성장한다면 어떤 것을 하고 싶을까. 아니 어떤 분야로 확장하게 될까. 박 대표는 웨딩 시장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웨딩 분야 시장 규모는 11조원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하지만, 쪼개져 있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 분야에서 새롭게 시도할 만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고 보지만 일단 이것은 당장 할 것은 아니고 아마 내년 이후에나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일본 DeNA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것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왜 해외에서, 그것도 일본의 투자를 받았을까. “비트윈의 일평균 가입자 중 60%가 해외에서 유입되고 있습니다. 이미 비트윈은 해외 사용자들이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서비스죠.” 한국어 뿐 아니라 중국어(간체/번체), 영어, 일어로 서비스되고 있는 가운데 곧 태국어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는 해외 서비스에 대한 저항이 적어요. 일본 시장은 잠재력이 크고 비트윈은 결국 해외 시장에서 크게 성장해나가야 할 겁니다. 이번 투자는 그래서 전략적 제휴의 의미도 있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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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9개월 전 처음 만났을 때는 회사 이름이 ‘스픽케어’(Speakcare)였다. 당시 스픽케어 서비스가 나온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고 직원은 10명이 채 안됐다. 시간이 흘러 이 회사는 크게 변화했다. 흔히들 이름 빼고 다 바뀌었다고 하는데, 이 회사는 이름까지 바뀌었다! 생존을 걱정하던 스타트업에서 매출 100억원을 바라보는 벤처기업으로 성장한 스터디맥스. 한국의 스타트업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처음 만났던 부부창업자이자 범상치 않은 이름을 가진 심여린 대표와 이비호 부사장의 사업 여정을 3년하고도 3개월만에 다시 쓴다. 한국의 스타트업 20회에서 다뤘던 그 이후의 스토리다.  마침, 스터디맥스의 초보자용 영어말하기 교육 서비스 스피킹맥스의 일 매출이 1억원을 돌파한 날, 이들을 만났다. 

◆투자받기 어렵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2010년 9월, 당시 스픽케어를 찾아갔을 때는 서비스가 출시된 지 6개월이 지나 조금씩 이용자 수가 늘어나던 시기.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성장세를 말하긴 이른 시점이었다. 

 스픽케어 서비스가 나오던 시점, 장병규 대표가 설립한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로부터 3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바 있었고 회원 수가 늘고 있어 두 사람은 회사의 미래에 대해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비호 부사장은 2000년대 초반 이투스를 창업한 경험이 있기에 스타트업의 성장과 자금 융통에 어느 정도 지식과 노하우도 있는 상태였다.

 “사실 투자 받기가 그렇게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경험도 있었던 데다 엔젤투자를 잘 받았고 사업 계획이나 성장성 등에서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봤거든요.” 이비호 부사장의 설명.

 그런데 이게 왠걸? 투자를 받기 위해 VC(벤처캐피털)들을 차례로 만났지만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당시 스픽케어는 새로운 서비스 스피킹맥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신규 서비스 개발을 위한 투자와 스픽케어를 성장시키기 위한 마케팅을 위해 돈이 필요했다. 본엔젤스에게서 받은 자금과 심여린 이비호 두 사람이 넣은 자금은 이미 바닥이 난 상태.

 급한 마음에 VC란 VC는 다 만났고 회사의 미래 전략인 스피킹맥스의 태브릿PC 버전 샘플까지 들고 다니며 VC들에게 보여줬다. 하지만 심지어 “당신들이 그리고 있는 그런 시장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는 혹평까지 감수해야 했다. 

 2011년이 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일단 자금줄이 말라 붙으면서 새로운 직원을 뽑을 여력도 없었고, 기존 직원들의 사기 저하도 우려되는 나날이 지속됐다. 2011년 3월에는 결국 회사 재정이 마이너스 1억원까지 내려갔다.

 “꾸준히, 비교적 순탄하게 성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과정이 있었네요.”

 나의 이런 말에 이비호 부사장이 이제는 차분해진 어투로 설명했다. 

 “뭐랄까. 좀 생소하게 보는 분들이 많았어요. 저희 교육 서비스가 인터랙티브 방식인데, 기존에 흔하게 보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쟎아요. 게다가 당시 수익이 나고 있었던 상황도 아니었고, 매출은 있었지만 향후 매출이 불확실하다는 판단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번에도 구원의 손길은 본엔젤스에서 왔다. 본엔젤스와 지인들, 그리고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의 보증대출 등을 합해 10억원을 약간 웃도는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2011년 여름께 실탄을 마련한 이들은 때마침 출시된 신규 서비스, 스피킹맥스 마케팅에 전력투구했다.

<심여린 대표(왼쪽)와 이비호 부사장. 2010년에 촬영한 사진이니, 벌써 3년이 넘게 시간이 흘렀다. 김봉간님께서 찍어주신 건데, 내가 갖고 있는 사진 중 가장 두 사람의 분위기가 잘 담겨 있(다고 내가 생각하)는 컷.>

◆2012년, 흑자전환과 도약

처음에 이들이 스픽케어를 출시했던 건 발음을 포함해 말하는 것을 교정해주고, 바르게 말할 수 있게 가르쳐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미국 등 원어민들의 도움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다보니 중요한 것을 알게 됐다. 교정을 받으려면, 일단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영어 스피킹 초보자들이 말할 수 있도록, 그 시작을 도와주고 이끌어주기 위해 시작한 것이 스피킹맥스. 

 처음 얼마동안은 반응이 느리게 나타났지만 곧 입소문이 나면서 회원이 늘기 시작했다. 다른 영어교육업체들의 서비스와 달리 미국, 영국 등 영어 원어민들이 사는 현지에 가서 직접 영상을 촬영해오고,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기 때문에 영상만 보고 있어도 외국에서 배우는 느낌을 주는 게 영어공부에 목마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힘겨웠던 2011년이 지나고 2012년이 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스피킹맥스 매출이 늘어나는 가운데 네오플럭스에서 15억원을 투자해 자금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때마침 월단위로 BEP(손익분기점)를 돌파한 것. 이제 자체적으로 벌어서 투자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가운데 회사가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에 접어든 것이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이들은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된다. 사명을 변경하기로 한 것. “회사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스픽케어라는 이름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영어 스피킹 분야 말고 다른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텐데 그러기 위해선 좀 더 포괄적인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한거죠.”

 2013년 4월, 스픽케어는 스터디맥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교육과 관련된 사업 분야 확장을 꾀하는 동시에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시장도 공략하겠다는 청사진도 세웠다. 2012년 63억원에 이어 2013년 73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2013년에는 20%에 가까운 이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2년 뒤 기업공개(IPO)한다!

이 시점에서 상장에 대한 궁금증이 안 생길 수 없다. 

“곧 상장을 할 것 같다”고 말하자, “올해는 아니다”고 심 대표가 말했다.

심 대표는 “올해 매출 100억원을 돌파하고 영업이익 20억원 이상을 내고, 내년에 매출 150억원 영업이익 30억원 이상을 달성한 뒤 2016년에 상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피킹맥스의 뒤를 이을 신규 서비스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있다. 일단 올 9월께 초등학생들을 겨냥한 영어 학습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년 가을부터 준비를 시작해 1년 동안 콘텐츠 작업을 한다. 이투스 시절부터 교육 관련 사업을 오랫동안 하면서 이 부사장은 콘텐츠가 완벽하게 준비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처음에 스피킹맥스를 출시하면서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30대 초중반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쓰더라구요. 시장을 섣불리 예측하는 것은 힘들죠. 그런 시장에서 살기 위해선 콘텐츠가 받쳐 줘야죠.”

수학교육도 이들이 도전해보고 싶은 사업. 이 부사장은 "사실 수학 교육이 정말 중요한데, 이공계 출신으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데, 수학 교육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아요. 이걸 한번 바꿔 보고 싶은 마음이 있죠. 쉽진 않겠지만, 계속 구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2010년 사업을 본격화한 지 벌써 4년이 훌쩍 넘었다. 그 동안 가장 감사한 일이 뭐였는지를 묻자, 심 대표는 “함께 창업한 양희봉 상무, 창업 직후 합류한 초기 멤버들이 회사의 여러가지 어려움과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항상 자기 몫 이상의 일을 해 낸 것”이라며 “이게 스터디맥스의 가장 큰 힘이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NHN에 다니던 아내가 회사를 나와 스타트업의 대표이사를 맡고 부부가 함께 회사를 경영하기로 했을 때 이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말 힘든 일이 많은데, 그래서 2년 정도 하다가 힘들다고 안하겠다고 하지 않을까 내심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너무 잘해서 좀 놀랐죠. 하하.” 이비호 부사장이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 이상으로 믿었기에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  여린 듯 보이지만 당차고 씩씩한 심여린 대표와 과묵하고 듬직한 이비호 부사장.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참으로 잘 맞아떨어지는 조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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