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갈 때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역시 ‘어디서 잘 것인가’다. 편히 쉴 수 있어야 경치도 눈에 들어오고, 여행을 다닐 힘도 난다. 무엇보다 어디서 먹고 자느냐가 가장 중요한 여정 중의 하나다.

 미국에서 여행을 하면서 좋았던 것은 하루 전날, 심지어 당일에도 아주 저렴한 가격에 편히 쉴 수 있는 호텔을 구할 수 있었다는 점.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게 영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싼 방에 대한 정보도 그렇게 많지 않고, 가족들과 쉴만한 호텔도 많지 않아서 그럴까. 그래서 전국의 콘도가 언제가 꽉꽉 차 있고 예약을 하려면 몇 개월 전에 해야하는 그런 상황이 된 걸까. 

 하여간 이런 이유로 시작된 회사가 이번에 소개할 봉봉랩. 이름도 통통 튀고, 왠지 좀 코믹하고 즐거운 느낌을 준다. 사탕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봉봉(bonbon)에 연구실의 랩(lab)을 붙여 만든 조어다. ‘맛있는 이름을 지으면 대박난다!’는 농담을 하다가 탄생한 이름이란다.

◆부산여행중 창업아이디어를 떠올리다

봉봉랩 창업자인 김가영 대표. 그의 창업 동기는 ‘왜 빈 방이 많은데 호텔 방을 잡기가 이렇게 힘든 걸까?’라는 물음이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물음이다. 하지만 그는 이 물음을 한때의 스쳐 지나가는 넋두리에서 멈추지 않고 창업으로 연결시켰다.

 날씨가 좋아서 무작정 놀러간 부산 해운대. 그런데 방이 없다! 여행의 묘미는 무작정, 계획없이 떠나는 것이니 이런 사람들이 많을 법도 하다. 김가영 대표 역시 그랬다. 그리고 주위에 물어보니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는 이런 아이디어에 착안, 처음에는 당일 빈 방을 찾아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생각했다고 한다.

 “오늘 빈 방이 있다면 할인해서 예약까지 할 수 있게 해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숙박업소 입장에서는 업소를 알리고 상품을 판매할 기회를 더 높일 수 있고 고객은 할인 받아서 예약할 수 있으니 서로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죠.”

 서강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진학을 앞두고 있던 김 대표였지만 창업의 생각이 그의  인생 진로를 바꿨다. 물론 그의 인생 진로가 어느날 갑자기, 혁명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그의 삶과 의식 속에 갖고 있던 생각들이 구체화됐고 그는 그것을 어느날 실현한 것 뿐이다.

 “법대에 들어갔지만 애시당초 제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미디어였어요.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미디어 관련 회사를 차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로스쿨 준비도 했었다. “그냥 남들처럼, 그렇게 살았던거죠. 어느날 문득 내가 아무 관심도 없는 일을 그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거구요.”  

 실제로 그는 잡지사에서 인턴 생활도 했다. 그런데 잡지사에서의 경험이 그에게 현실을 일깨워줬다. “거의 보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그 잡지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미디어에서 일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알게 됐어요. 미디어 관련 회사를 설립하겠다는 생각도 바뀌게 됐구요.”

 결국 창업을 결정한 그의 아이디어를 듣고 대학 동기 두 명이 합류했다. 지난해말부터 사업 준비를 개시, 올초 법인 봉봉랩을 설립했다.

<봉봉랩의 창업자인 김가영 대표(가운데)와 김진수(왼쪽), 김찬곤 이사>

◆人生之事塞翁之馬

동갑내기들이 모여 창업을 했지만 시작부터 이들은 영업이란 벽에 부닥쳤다. 봉봉랩의 첫번째 모바일 앱 서비스 호텔나우는 이름처럼 바로 지금 빈 호텔 방을 예약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포인트. 당연히 가격도 저렴하다. 아무런 정보나 네트워크없이 사업을 시작한 이들은 우선 호텔을 직접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무려 300개! 이들이 찾아다닌 호텔 수다. 빈 방이 나올 경우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된 계약을 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좋은 정보를 확보하지 않으면 고객이 찾지 않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영업은 쉽지 않았다. 호텔업계가 인맥으로 유지되는 폐쇄적인 구조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무것도 없이 열정만으로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선뜻 정보를 주는 곳도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호텔업체들은 기존 대기업과 갖고 있던 끈끈한 관계 때문에 새로운 업체의 당일 예약이라는 시스템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측면도 있었다. 그래도 끈질기게 찾아간 끝에 몇몇 호텔 지배인들이 계약을 해줬다. 그때부터 영업이 풀리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호텔업계가 조금씩 문을 연 것이다.

 영업에서 한숨 돌리니 개발에서 일이 터졌다. “처음에 일을 시작하면서 6월초에는 앱을 출시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뜻대로 안된거죠.”

 6월초라. 너무 급하기 일정을 잡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그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경쟁사들이 시장을 장악할 것을 걱정한 측면도 있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판단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앱은 시간에 맞춰 나오질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앱 개발을 외주에 맡겼는데 김 대표가 기대했던 완성도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 ““제가 경험이 없던 탓도 있었어요. 외주 업체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고 하면서 시간이 계속 흘렀는데 그냥 그 말을 믿고만 있었던 거죠.”

 결국 김 대표는 외주로 진행중이던 개발을 중단했다. 하지만 그 덕에 개발자를 뽑을 수 있었고 이 개발자는 순식간에 완성도 높은 앱을 만들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호텔과 고객들의 기대 시기를 맞추지 못했다는 압박감이 컸다. 그 사이 경쟁사도 등장했다. 소셜커머스와 대기업도 당일 예약에 뛰어든다는 소문이 들렸다. 초조했지만 남은 시간을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자는 생각에 영업지역도 늘리고, 앱 컨텐츠도 강화했다. 그러던 와중에 이 기간을 그냥 버티는 수준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활용할 방법이 떠올랐다.

 “전화로 호텔예약을 받아보면 어떨까.”

 7월중순부터 2주동안 전화예약 서비스를 했다. 호텔나우는 런칭이 늦어지는 만큼 고객들에게 빨리 다가갈 방법을 찾고 싶었기 때문.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홍보도 덜 된 작은 회사치고 전화 문의가 너무 많이 들어왔던 것. 이래저래 악재도 많았지만 그 덕에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됐다. 서비스가 매우 유용하고,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개봉박두! 호텔나우

사람들이 어떤 호텔을 좋아할까요. 분위기가 좋은 호텔?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운 호텔? 음식이 맛있는 호텔? 뭐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위치와 가격대가 맞으면 갑니다. 특별히 호텔의 브랜드와 분위기, 이런 거는 별로 크게 신경쓰지 않더라구요.” 김 대표의 설명.

 여행객이라면, 당일이나 또는 아주 임박해서 쉴 곳을 찾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위치와 가격.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런 사람들의 수요에 맞는 정보를 제공해주고 연결하고 확인시켜주는 게 필수. 그래서 김 대표는 “복잡하지 않고 아주 심플하게 필요한 정보를 잘 보이게 큐레이션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정보 제공과 연결까지는 현재 단계에서 충분히 가능. 문제는 최종 확인인데, 이를 위해선 결제가 필수다. 그런데 몇만원에서 몇십만원씩 하는 호텔비를 결제하는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휴대폰 소액 결제는 안되고 모바일에서 바로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는 방법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무통장입금을 하는 방식도 있지만 소비자들이 불편해할 가능성이 높다. 불편하다는 소문이 나면 사람들은 모이지 않는다.

 서비스 분야와 서비스 지역의 확장. 두 가지 과제도 있다. 아직은 국내 위주로 서비스를 하지만 해외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서비스다. 그 전에 모텔과 펜션, 콘도 등으로 영업을 확장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미 모텔 수백곳을 다니며 계약을 타진하고 있고 펜션쪽도 알아보는 중. 

 서비스를 내놓고 라인업에 갖춰지면 투자 유치도 적극적으로 할 계획. 아직까지는 자본금 4000만원으로 시작한 상태에서 버티고 있다.

 현재까지 버전은 8월말에 호텔나우를 오픈할 계획. 다만 결제를 어느 정도까지 매듭짓느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모바일 숙박에서 1등이 되야죠! 누구나 편리하고 저렴하게 좋은 방을 예약할 수 있는 그런 서비스. 제가 바라던 서비스였어요. 실현시켜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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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TV를 보면서 스마트폰을 쓴 경험이 있는가. 아마 대부분 있을 것이다. 그때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했는지 떠올려보자. 카카오톡? 문자? 페이스북? 검색? 뉴스? 다양하겠지만 지금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과 관계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 얼마전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보다가 투탄카멘에 대한 프로를 열심히 본 기억이 난다. 당시에 TV를 보면서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관련 기사 등을 검색했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TV를 보면서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스마트폰으로 나누거나 드라마 주인공이 입고 있는 옷이나 배경 장소를 찾아볼 수도 있다. 하여간, 관련된 행동을 한다.

 이번에 소개할 텔레톡비라는 회사는 TV를 시청하는 중에 일어나는 이런 관련 행동에 관한 서비스다. 이왕 같은 프로그램을 본다면 그 사람들끼리 일종의 동일 프로그램에 대한 SNS가 형성돼 대화도 나누고 정보도 얻을 수 있다는 식이다. 여기에서 어떤 의미있는 시장이 형성될 수 있을까.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텔레톡비는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갖고 시작됐다.

◆재수 시절 창업을 계획하다

서동준 대표는 아직 대학생이다. 홍익대 컴퓨터공학과에 재학중인 그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창업을 준비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대학에 들어가면 창업을 하리라!’ 이런 류의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재수를 할 때 그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 일종의 기숙사형 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하루종일 갇혀 있다시피한 생활을 하면서 어찌 하루종일 공부만 하겠는가. 지쳤을 때, 지루할 때, 그는 틈만 나면 떠오른 아이디어를 메모했다. 어느새 방대한 아이디어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냥 기록만 남긴 게 아니라 이 중 한 아이디어를 갖고 그는 특허출원까지 했다.

 “친구들한테 돈을 빌리고 갖고 있는 돈도 끌어모아서 200만원을 갖고 특허 신청을 했어요.”

 “무엇에 대한 특허죠?”

 “휴대폰에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고 이 아바타가 위치기반 정보를 바탕으로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나처럼 활동을 하는 그런 거였어요.”

 그럼 이 아이디어로 창업을 했을까. 그렇진 않았다. 특허 출원이 그에게 좋은 경험이 된 것은 특허 자체는 비즈니스와는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 대학에 입학도 하기 전인 2012년 1월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과 창업을 했지만 다들 창업을 하겠다고 모여 앉아보니 한숨이 나왔다. “우리가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업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아이디어를 어떻게 발전시켜 서비스를 만드는지, 개발은 어떻게 하는지 등의 문제에서부터 홍보는 어떻게 하는지,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만들어가면 되는지 등등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걸 알게됐다는 서 대표. 결국 창업 멤버들이 내린 결론은, ‘흩어져서 배우자, 그리고 다시 모이자’

 외부의 평가와 함께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외부의 각종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 등에 적극 참여했다. 2012년 1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스타트업 위크엔드에서 2등에 올랐고, 2012년 5월 서울대에서 열린 스타트업 위크엔드에서는 1등에 뽑히기도 했다.  

 스타트업 위크엔드 서울대에서 이들이 발표한 아이템은 야구경기를 보면서 팬들끼리 채팅을 할 수 있는 그런 서비스였다. 그런데 기존 인터넷TV 또는 인터넷 동영상 포털 서비스와 다른 점은 경기를 보면서 곧 벌어질 경기 내용을 예측하는 게임 기능을 붙였다는 점. 즉 이번에 타석에 등장한 타자가 안타를 때릴 지, 삼진을 당할 지, 사구로 걸어나갈 지, 홈런을 칠 지 등을 4지선다형 또는 5지선다형으로 문제를 내고 맞추면 포인트를 쌓게끔 하는 그런 서비스였다.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텔레톡비 창업 멤버들. 왼쪽 뒷줄부터 시계방향으로 임선용, 김새샘, 박현아, 강대규. 앞쪽 가운데가 서동준 대표.>

◆프라이머와의 만남

이처럼 각종 대회에 나가고 외부 강연도 열심히 듣던 중 프라이머 인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해 벤처기업 온오프믹스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된 서 대표. “온오프믹스에서 일을 하면서 일을 배우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이왕 경험을 쌓는 거 좀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1년 정도 일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엉덩이가 들썩이더라구요. 아무래도 나가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을 사업화하자고 결심했죠.”

 프라이머 창업자이자 스타트업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와 만나는 기회도 갖게 됐다. 물론 그가 개인적으로 권 대표를 알아서 그런 것은 아니고, ‘창업을 할 계획인데 투자를 받고 싶다’는 취지의 메일을 그가 권 대표에게 보낸 것. 그런데 권 대표는 화끈하게 ‘만나서 얘기합시다’라고 화답했고 바로 만나서 투자 결정이 이뤄졌다.

 프라이머를 만나면서 창업이 구체화됐다. 8월에 사무실을 구하고, 팀 빌딩에 대한 조언도 들었다. “팀은 아이템을 중심으로 모이는 게 아니더라구요. 사람 중심으로 모여야 일이 된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텔레톡비는 우선 서비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파악해보기로 했다. 어느 정도의 수요가 있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을 보이는지가 서비스의 방향에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2012년 10월, TV보면서 채팅을 즐길 수 있는 시범서비스를 출시했고 구글플레이를 통해 공개했다. 조용히 진행했지만 1200건이 다운로드됐고 채팅방만 5000개가 만들어졌다. 

 “가능성이 있다고 봤어요. 특히 채팅방이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쓰는 모습을 보면서 충분히 수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단 돈 5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프라이머로부터 2000만원의 투자를 받았고,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미래창조과학부가 주관하는 ‘창의도전형소프트웨어 R&D 지원사업’에 선정되는 행운도 있었다. 이 덕에 6개월 동안 7000만원이라는, 제법 큰 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일단 국내 소셜TV 1위가 목표

올 6월 28일 출시된 텔레톡비는 처음에 앱 형태로 나왔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이른바 ‘소셜TV’ 시장. 소셜TV 시장은 TV를 시청하면서 감정이나 다양한 의견을 교환, 상호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이 글의 모두에서 비슷한 질문을 던졌지만 실제로 리서치 기관들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TV 시청 중 스마트폰으로 SNS 웹서핑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86%가 ‘그렇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TV를 보면서도 누군가과 소통을 하고 싶어한다는 뜻이라고 텔레톡비는 해석한 것.

 텔레톡비 서비스는 간단하다. 앱을 설치하면 방송편성표를 기반으로 TV프로그램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면 TV를 보면서 채팅을 할 수 있는 창이 든다. 실시간 방송이 아닌 경우엔 게시판을 이용하면 된다. 

 사용자의 이런 수요가 있다는 것을 물론 다른 회사들이라고 몰랐을 리 없다. SBS콘텐츠허브에서는 쏘티라는 서비스를 이미 제공하고 있다. 다만 이 서비스는 SBS 프로그램만 제공하고 주로 댓글달기에 치우쳐 있다. 캐치티비, 겟글루 등도 기존에 나온 서비스들이다. 캐치티비는 드라마와 관련된 프로그램만 있고 겟글루는 미국 최대 소셜TV 서비스이긴 하지만 국내 방송은 지원이 되질 않는다. 기존 서비스들에 비해 대화를 하는 기능을 강화한 것이 텔레톡비의 차이점이다.

 최근 약간의 변화를 겪고 있다. 앱을 지원하려는 차원에서 웹 페이지를 오픈했는데 앱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들고 사용자들의 반응이 좋다는 것을 알게된 것. 그래서 이들은 일단 잘되는 웹 서비스와 페이스북 페이지를 활성화하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앱은 주로 채팅서비스를 활성화하도록 키운다는 방침. 

 이들의 첫번째 목표는 소셜TV 1위가 되는 것. 수익 모델은 TV 프로그램과 관련된 다양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커머스와 연결하는 것을 고려중이다. 사용자들이 채팅을 많이 하는 등 감정 표현이 많은 시간대나 그런 부분을 분석, 데이터베이스화하면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1등이 되야한다는 게 이들의 판단.

 “아직 시장이 초기 단계이지만 수요는 분명히 있습니다. 소셜TV 시장에선 사용자 10만명만 모아도 바로 1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장기적으로는 모바일에서 TV나 각종 동영상 프로그램과 관련된 정보도 제공하고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소통이 집중되는 그런 서비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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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을 정기배송하는 서비스는 지난해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올해도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사업 중에는 이런 유형의 것들이 있지만, 샘플을 이용해 제품 제작비 한 푼 들이지 않고 새 제품을 판매해 돈을 버는, 그야말로 대동강물 팔아 돈벌었다는 김삿갓 못지 않은 기발한 사업 모델이었다. 물론 이제는 흔한 사업이 됐다. 

 그런데 이 서비스에 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간파해내고 약점을 극복한 새로운 서비스 방식을 찾아낸 사람이 있다면? 이번에 소개하는 사람은 롤링스퀘어 이재윤 대표다. 그가 말하는 화장품 섭스크립션 서비스의 한계에 대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롤링스퀘어 창업멤버들. 맨 왼쪽이 이재윤 대표, 오른쪽 끝이 류준형 팀장>

◆3년간 두 차례 창업 도전

이재윤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 03학번.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인 2010년 유명 컨설팅 회사에 취직이 됐지만, 왠일인지 직장 생활이 하기 싫었다는 그는 취직이 되자마자 그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주변에서 보기엔  좀 뜻밖의 결정을 한다. 2010년 서울 홍대 앞에 국수가게를 차렸다. “요리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지만, 장사를 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밤을 새워 요리를 배워 가게를 차렸죠. ” 

 그가 차린 국수 가게 상호는 누들 인 더 박스(noodle in the box). 장사는 잘 됐다.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는 국내 3대 백화점에 제안서를 냈다. 그의 제안서가 통했는지,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에 2호점을 낼 수 있었다. 컨설팅 회사를 관두고 나와서 국수집을 차릴 때 그의 마음 속에 고민이 없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그가 생각한 것은, “남들처럼 똑같이 살고 싶지는 않다”였다고 한다. ‘서울대 나와서 컨설팅 회사 들어가서 일하다가 대기업으로 간다? 인생이 너무 따분할 것 같다!’ 

 “처음엔 외식업 식당을 5개 정도 열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사는 게 그렇게 제 뜻대로 되지는 않았죠.”

 2011년 경남에 있는 한 전통주 업체가 경영악화를 겪으면서 CEO(최고경영자)를 물색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 이 대표는 이 회사에 제안서를 보냈다. 제안서를 보내는 것은 그의 특기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회사를 이렇게 바꿔볼테니 자신을 사장으로 일하게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제안했다. 혼자 하지도 않았다. 그의 대학 같은 과 친구인 류주현에게 연락해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같이 새로운 일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여기서도 또 ‘제안’이 나온다.

 당시 류주현은 LG생활건강 화장품 사업부에서 일하고 있던 시절.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는 LG생활건강에 들어갔지만 제조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울러 술과 관련된 일도 그의 구미에 맞았다. 이 대표의 제안을 듣고 그는 곧 회사를 나와 합류했다. 반년이 넘는 기간동안 두 사람은 또 다른 2명과 함께 경남 지역에 내려가 그 전통주 회사의 사업을 재구축하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실업자가 된 이들은 홍대 앞으로 돌아와 공동으로 빠(Bar)를 하나 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허함이 밀려왔다. 2012년은 시련의 시기였다.

◆한 번만 더

왜 공허함을 느꼈는지, 어찌보면 당연한 질문을 했다.

 “이것도 저것도 뚜렷한 결론을 못 내면서 그런거죠. 한편으론 왜 창업에 뛰어들어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냥 평범하게 직장 다니고 그랬으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하하.”

 그래도 그의 결론은 창업이었다. 한 번만 더 해보고 싶다. 한번만 더 해보고 안되면 더 이상 창업은 없다.  나름의 배수진을 친 그는 다시 창업 동료인 류주현을 찾았다. 또 창업을 하자는 말에 경악을 할 법도 한데, 류주현은 이번에도 흔쾌히 합류했다. 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리더십이 있다. 천상 사업가다.”란 답이 돌아왔다. 

 재도전에 나선 이들은 음식료업계에서 창업을 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엔 IT(정보기술) 분야를 택했다. 이 대표가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에게 아이디어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2012년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분야가 뷰티섭스크립션(화장품 정기배송)과 리워드 분야였습니다. 그런데 둘 다 제가 볼 때는 약점이 있어서 성장이 매우 제한적이고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은 것 같더라구요.”

 그게 뭘까. 리워드앱은 소비자 기반이 취약하다는 게 그의 분석. “모든 종류의 리워드 관련 앱들은 물론 처음에 소비자들을 끌어모으는데 효과적이지만 소비자들이 그보다 나은 리워드가 있는 곳으로 쉽게 옮겨가곤 합니다.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자체적으로 커뮤니티가 돌아가면 꼭 리워드때문이 아니더라도 들어올 수 있거든요.”

 화장품 정기배송서비스의 경우 성장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게 그의 지적. “화장품 정기 배송으로 사업을 키우려면 정기배송 박스가 그만큼 늘어야하는데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기 힘듭니다. 소비자들이 민원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저마다 다르게 박스 내용물을 구성하긴 어렵죠. 비슷한 수준으로 내용품을 구성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몇만개의 샘플을 제공할 수 있는 그런 화장품 회사는 10개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이 대표는 사용자들에게 리워드를 제공하돼 뷰티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두 서비스의 단점을 보완하기로 했다. 서비스 방식도 화장품 정기 배송이 아닌 마케팅 플랫폼 형식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런 컨셉의 서비스 ‘핑크파우치’를 앱으로 만들어 7월초 출시했다. 

◆모바일 커머스 1위 되겠다

핑크파우치의 1차 목표는 Beauty community for mobile. 즉 사람들이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고 화장품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모임도 만들어지고, 화장품에 대한 사람들의 수다와 발걸음이 계속되는 곳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사람들이 몰려들 수 있는 유인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벤트를 하루에 한개씩 올려놓았다. 이 이벤트는 앱의 ‘파우치 받기’에 들어가 시도하면 된다. 파우치를 받는 사람에 한해 그 다음 메뉴인 화장품 받기 코너에 들어가 광고 동영상을 보고 화장품을 받을 수 있게 해 준다. 이벤트 때문에 매일 들어가다보면 관심도 생기고, 정보도 쌓고, 화장품도 받고 여러가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7월초에 출시해 3주만에 4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는 등 순항하고 있다. 

 이벤트에 참여해 당첨되는 사람들은 화장품을 받으면서 설문조사에도 참여하게 된다. 이 설문조사 결과는 화장품 서비스 확대를 위한 중요한 데이터로 활용된다. 광고만 보면 화장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성들의 참여가 많다. 여성 유저가 96%에 달한다. 대부분 10대부터 30대까지의 여성들이다. 핑크파우치는 특히 20대 여성들을 주요 타깃으로 설정하고 있다. 

 “업체에는 마케팅플랫폼을 제공하고, 유저들에게는 화장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모두에게 좋죠. 물론 저희는 돈을 벌 수 있구요.”

 그는 업체들에게 영업을 하러 다니면서 수만개나 되는 샘플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샘플을 늘리는 게 아니라 소비자(고객) 풀을 늘린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 아울러 몇만개씩이나 되는 샘플을 제작할 수 있는 소수의 화장품 회사 뿐 아니라 국내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500여개의 화장품 회사들의 2000여개 브랜드를 모두 포함할 수 있다는 것도 이들의 장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업체와 소비자 모두에게 부담을 덜어주면서 혜택을 넓혀주고 시장을 키워보겠다는 이들의 시도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까. 이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모바일 커머스 시장에서 1위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화장품이라는 버티컬 시장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확장해 나갈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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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든 한 가지 목표만을 생각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살 경우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궁금하다. 막연하지만, 이렇게 살 수 있다면 분명 어떤 성취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소개하는 엠버스 주시현 대표는 젊은 나이임에도 매사에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임해온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해서 성공에 이른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 현실세계의 냉혹함이지만,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일찌감치 창업을 생각하고 준비해 온 그의 살아온 궤적과 준비 과정을 지켜보는 게 상당한 의미가 있을 듯하다.

◆창업만 생각한 학창시절

2년만에 민사고를 졸업하고 2004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에 입학한 주시현. 그야말로 ‘엄마친구아들(엄친아)’의 포스가 느껴지는 그는 이걸로도 부족했는지, 수재들이 모인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그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 군대를, 그것도 일반 사병 현역으로 가 만기제대했다는 점. 통상 이공계 진학생들이 엔지니어로 병역특례를 받는다는 것에 비춰 의외의 모습이다. 카이스트에 진학한 것이나, 전산학과를 택한 것이나, 군대를 현역으로 간 것이 모두 창업때문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사실 해외에 나가 창업을 하고픈 생각에 군대를 빨리 갖다오자고 생각했어요. 군대를 해결해야 해외에 나가는 게 자유로울 테고, 병역특례는 경험은 쌓을 수 있지만 기간이 길쟎아요. 병역을 빨리 마치고 해외로 가자고 생각한거죠.”

 제대하고 2010년 코스모스졸업을 한 그는 유학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하다 외국계 컨설팅회사인 베인앤컴퍼니에 입사를 했다. 해외로 바로 나가느냐, 경험을 쌓고 해외로 가느냐의 기로에서 경험을 우선 쌓는 길을 택한 것이다. 창업을 생각했을 때 학위를 더 딸 필요가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때도 그의 생각의 중심은 창업 준비에 있었다고 한다. “경험은 없는 상태에서 회사의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는 훈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컨설팅회사에 갔죠.”

 그런데 1년2개월여만에 그는 회사를 나왔다. 왜? 컨설턴트가 하는 일은 그가 생각한 것과 좀 달랐다. 무엇보다 창업과는 큰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창업에 직접적인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한 것. “사업은 결정하고 행동에 옮기는 게 중요하쟎아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수정하면서 성장하는 거구요. 그런데 컨설팅이란 일은 그렇지 않더군요. 컨설팅은 모든 정보를 모아서 시행착오 없이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업을 하면서 충분한 시간과 충분한 정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컨설팅 회사를 그만둔 그에게 때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카이스트 선배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타일세즈(Stylesays)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것이었다. 선배 일도 돕고 일도 배울 겸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2011년 9월이었다.

◆시행착오 속에 길을 찾다

스타일세즈 입사가 주시현 대표에게 좋은 기회였던 이유는 본래 해외 창업을 꿈꿨던 그가 미국에서의 창업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처음에 그는 스타일세즈에서 경험을 쌓고 미국에서 창업을 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는 2012년 4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주시현 대표가 당초 해외에서 창업을 하려고 했던 것은 한국 시장이 작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어차피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려면 해외에서 하는게 낫겠다고 판단해서였다. 그런데 외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는 그가 모르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고 한다. “서비스 회사는 고객을 잘 알아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고객이 원하는 것을 알고, 불편함을 해소해주고 그래야 하는데 미국에 나가보니 미국 고객들의 마음을 잘 모르겠더라구요. 문화적인 차이도 분명히 있었구요. 고객의 마음을 알고 고객과 만날 수 있는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죠.”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던 한국 시장이었지만 카카오톡 등 모바일 서비스 활성화에 힘입어 급성장하는 모습도 그에게 자극을 줬을 것으로 생각된다.

 2012년 봄 한국에 들어온 그에겐 함께 창업을 할 동료도, 뚜렷한 사업 아이디어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카이스트 2년 후배이자 기숙사에서 방을 같이 썼던 산업디자인학과 김태은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한번도 창업에 대해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지만 주 대표는 김태은의 실력을 알고 그의 성격이 자신과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와 또 한 명을 설득, 2012년 6월 엠버스(Mverse)를 창업했다. 모바일(mobile)의 M과 유니버스(universe)의 verse를 딴 조어다. 모바일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망을 담은 것 같다.  

 주시현 대표가 서비스 개발을 맡고, 다른 2명의 창업자가 각각 디자인과 비즈니스를 맡기로 했다. 이들은 모바일 커머스로 자신들의 사업 영역을 정했다. “모바일 커머스 분야가 기술적인 측면에서 정말 소비자들에게 큰 가치를 줄 수 있고 혁신의 여지가 많은데 그런 부분의 발전이 거의 없다는 걸 알게됐어요.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봤죠.”

◆연말께 두번째 서비스 출시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모바일 커머스는 아직 초창기라 1위 사업자라고 할 만한 존재가 없다는 점. 모바일 커머스에서는 1등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꿈이 있고 목표가 있어야 사업을 끌어갈 수 있고, 뜻 있는 젊은이들을 모을 수가 있다.

 주 대표에게 엠버스는 사실 첫 창업이 아니다. 그는 2006년초에 학교 선배들과 창업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엔 세컨드라이프와 같은 것을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었지만 자금 부족, 경험 부족 등으로 중간에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군에 입대했다. 2012년 창업할 때 주 대표의 모습은 그때와 사뭇 달라져 있었다. 6년 전에는 선배들의 창업에 합류하는 형태였지만 이번엔 자신이 주도해 후배들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모바일에서 제일 편리하게 이용하는 커머스 플레이스 만들어보자’ 이게 이들의 목표였다.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케이큐브벤처스에서 1억원의 투자도 받았다. 2012년말 이들의 첫 작품, ‘MNOP Designs’를 출시했다. 이름이 어렵다. 주 대표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어려운 이름을 지었나? “생각을 너무 많이 했어요. 이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지었어야 했는데..”

 이 서비스는 디자이너들이 상품을 올리고 사용자들이 이를 구매할 수 있게 한 것. 모바일에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쇼핑 중에서 디자인과 관련된 상품을 선택한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사용자들이 어떤 물건이든 편하게 살 수 있는 그런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우선 소비자들에게 다가가야 하니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진만 보고도 구매를 결정할 수 있는 그런 vertical 영역을 하나 잡은 거에요.”

 출시하고 7개월여만에 150명의 디자이너들이 올리는 상품 5000여개가 축적됐다. 4만여명이 다운로드해 서비스를 이용했다. 나쁘지 않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소비자들이 편하게 쇼핑을 할 수 있게 하려는 게 목적이었는데, 막상 서비스를 시작해보니 기술적인 혁신보다 제대로된 상품을 제때 공급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 돼 버렸다. 이로 인해 정작 중요한 부분의 변화는 이루기 힘들다는 걸 알게됐다.

 주 대표는 요즘 본질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본래 서비스를 시작할 때 목표는 ‘‘좋은 제품을 편리하게 구매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품 공급을 하느라 리소스의 상당수를 투입하는 상황이 된 것. 결국 커머스의 요체는 좋은 상품이고 이에 대한 정보라는 것을 서비스를 하면서 알게 된 그는 연말을 목표로 새로운 서비스 준비에 나섰다.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끔 유도하면서 모바일에서만 제공되는 그런 특징을 가진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뭐가 나올까. 아직 초창기인 모바일 커머스 시장에서 기존 웹 기반 커머스가 보여주지 못한 것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까. 소비자들의 구매 경험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그의 목표는 아직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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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완의 우주인’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번에 하려는 얘기는 그의 과거 우주인이 되고자 했던 그런 스토리는 아니다. 여전히 우주인을 꿈꾸는 사람에 대한 다른 이야기다. 이 정도만 되도 짐작하겠지만 이번 스토리의 주인공은 고산 타이드인스티튜트 대표다.

 작년 여름 고산 대표의 강연을 처음 들었다. 그때 그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말했다. 담담했지만, 힘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연 말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우주인이 되고자 했던 저의 꿈은 미완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우주선을 쏘아올리고 싶다는 저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민간이 우주선을 쏘아올리는 시대가 옵니다. 우주선을 타지는 못했지만, 우주선을 쏘아올리겠다는 저의 꿈은 계속됩니다.”

 그 뒤로 1년이 지났다. 그의 이 말이 계속해서 생각나는 것은 그의 강연 중 인상깊었던 부분이기도 했지만, 그 뒤 그가 살아온 모습이 자신의 말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그는 그냥 계속 그렇게 살았는지 모른다. 그 과정에 그 강연이 한때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사설이 길었는데, 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로 고산 대표를 다시 찾았다. 타이드인스티튜트 사무실은 여전히 세운상가에 있었다. 가서 보고 나는 그가 왜 세운상가에 사무실을 얻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그가 자신이 왜 세운상가에 사무실을 얻었는지 그렇게 여러번 설명을 했는데,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냥 한 번 가보고 나니 알 수 있었다.

<세운상가 5층에 위치한 타이드인스티튜트 사무실에서. 고산 대표.>

그가 2011년 타이드인스티튜트를 설립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랬고, 작년에 그와 몇 차례 만나 얘기를 들을 때도 사실 나는 긴가민가했었다. 고 대표를 만났을 때 그런 생각들을 얘기했었다. 불확실한 것이 너무 많아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는, 역시 솔직한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자리도 잡았고, 어슴푸레했던 많은 부분들이 상당히 구체화됐다는게 그의 설명. 자, 그럼 얘기를 시작해보자. 타이드인스티튜트는 뭘 하는 곳인가? 아주 쉽게 말하면 벤처 창업을 도와주는 곳이다. 사단법인이고, 비영리다. 

 타이드인스티튜트가 창업 도우미로서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일은 타이드워크숍(TIDE Workshop)에 응집돼 있다. “제조업 창업의 첫 허들은 시제품 제작입니다. 그것을 넘을 수 있게 도와주자. 스스로 만들 수 있게 해주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시작했죠.”

 타이드워크숍의 모토는 ‘당신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만드는 방법’. 방법만 알려주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장소도 제공해주면 더 좋다. 고산 대표는 그래서 열린 제작 공간 팹랩(Fab Lab)을 만들었다. 미국 MIT(메사추세츠공과대학)의 Fab Lab을 본뜬 것이다. 한국에서 민간이 하는 공간으로는 최초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이드인스티튜트가 있는 세운상가 5층 사무실이 곧 팹랩의 공간이기도 했다. 찾아갔을 때 사무실에는 3D 프린터, 레이저커터 등 직접 제작하고 시제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기기들이 구비돼 있었다. 여기에 세운상가의 장점이 다시 부각된다. “나가면 바로 필요한 부품을 살 수 있쟎아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죠. ” 그가 직접 비치된 장비를 보여주면서 어떤 제품들을 만들 수 있는지 설명을 해 줬다. 지금 당장은 간단한 모형을 만들 수있는 정도의 수준이지만 앞으로 점점 더 정교한 제품들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물론 이것을 아무 준비 없이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한 것이고 타이드가 워크숍을 통해 그런 지식과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런 시도들은 미국의 로컬 모터스(Local Motors)와 같은 사례들이 국내에서 가능하게 되는 시점을 앞당길 지 모른다.

 로컬모터스는 여느 제조업체들과는 사뭇 다른, 자신들이 직접 차를 만들어 파는 그런 회사가 아니다. 일반인들이 디자인과 설계 과정에 참여하고 최종 단계에서는 로컬 모터스의 마이크로 공장에 가서 자신이 탈 자동차를 직접 조립해 온다. 랠리 파이터(Rally Fighter)는 그들의 첫 작품이었다. 자동차를 일반인들이 직접 디자인해 만든다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 속 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동차 제작 지식과 경험 등이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되고, 부품들이 모듈화되고, 제작 공간과 장비가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소비자가 프로슈머로 변신하는 일이 제조업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로컬모터스에 참여하는 대중들은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노하우를 갖춘 이들이다. 사실 이들도 전문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장벽은 점차 낮아지지 않을까.

 그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또는 DIY(Do it Yourself)를 하려는 일반인들의 양산에 목적이 있지 않다. 그보다는 창업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물론 창업 중에서도 기술 개발형과 제조형 창업이 그의 주된 관심이다. 기술이나 제조 쪽에 역량이 있지만 테크닉이 부족하거나 경험이 없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타이드 아카데미(TIDE Academy)가 그것이다. “Singularity University를 모델로 했어요.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사람들이 창조형, 선도형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 고 대표의 부연설명이다.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교육이 8가지 트랙으로 준비돼 있고, 디자인, 회계 등 스타트업을 경영하기 위한 5가지 툴에 대한 강의도 마련돼 있다. 3주간의 트렌드 교육을 거쳐, 3주간 시제품 제작 교육을 받고 나면 2주간 멘토링을 받고 선도기업 탐방도할 수 있다. 모든 과정이 중소기업청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참가비가 전혀 없다는 것도 매력적. 

 이게 다가 아니다. 고 대표는 국내와 해외에서 창업자간 또는 창업자와 VC, 정부인사, 언론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스타트업 스프링보드’와 ‘TIDE Insight’가 그것이다. 2011년 7월 처음으로 시작된 ‘스타트업 스프링보드’는 국내 스타트업 창업가들과 해외에 있는 한인 창업가들 또는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를 위해 만들어진 것. 창업경진대회나 정부 지원 프로그램에 흔히 있는, 행사 후 일회성으로 해외 인사들을 만나고 다니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창업가들 사이에 좀 더 반복적으로, 지속성이 있는 만남이 필요하다는 고 대표의 생각이 반영됐다. “스타트업 위크엔드 아시죠? 그거의 해외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해외에 있는 한인 창업가들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에 도움도 주고 실제로 사업 확대도 가능하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는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TIDE Insight’는 국내에서 밀도있게 이뤄지는 창업 관련 인물들의 네트워크다. 만나서 생각을 공유하고 전문가의 발표도 들으면서 정보를 주고받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제한된 숫자의 사람들이 만나다보니 보다 밀도있는 정보의 공유나 친밀감있는 네트워크가 가능하다는 게 고 대표의 생각.

 이런 여러 활동들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제조업 창업과 국내 제조업의 저변 확대. 고 대표가 스스로는 인큐베이터가 아닌 플랫폼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즉 그가 만든 타이드 인스티튜트는 싹수 있는 스타트업을 선정하고 이들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 기업들에 투자해서 이익을 얻는 그런 모델이 아니다. 그것은 인큐베이터들이 할 일이고, 자신은 수많은 메이커스(makers; 이때의 메이커스는 크리스 앤더슨이 쓴 최신작 ‘메이커스’의 바로 그 사람들이다. 수요를 창출해나가는, 제조업 혁명을 불러올 그런 사람들)들이 이뤄낼 새로운 혁명과 도전의 플랫폼이 되고 싶다는 것. 어찌보면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자신이 플랫폼을 만들고, 그 플랫폼 위에서 자신도 도전하고 싶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실제로 그는 직접 창업에도 도전하고 있다. 물론 이 창업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플랫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가 창업한 이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다룰 수 있을 듯 하다. 여운을 남기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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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여행과 관련된 서비스가 많아진 것 같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여행을 테마로 한 창업이 줄을 잇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여행과 관련됐다고 다 같은 서비스는 아니다. 여행을 매개로 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여행 안내 서비스, 여행 사진을 올리는 서비스 등 다양하다. 

 트립비(tripvi)는 이런 여러 유형의 서비스들 가운데도 약간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여행 사진을 올려놓으면 이것을 자신만의 동영상으로 만들어주는 서비스다. 일단 재미는 있다. 그런데 사용상의 약간의 장벽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매번 그렇게 하기엔 귀챦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사용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해줄 것인지, 동영상을 만드는 것 외에 얼마나 다채로운 재미가 있을지에 초기 성패가 달린 것 같다.

◆창업은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2000년 대학에 입학해 경영정보를 전공한 트립비 천계성 대표는 학창 시절엔 창업을 한번도 생각한 적 없었다. 2005년 광고대행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는 등 그쪽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계기가 돼 2008년 광고회사 나인후르츠미디어에 입사,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광고 일은 그의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는 특히 디지털 미디어 광고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광고 일을 하면서 중요한 인물을 만났다는 것. 몇년 뒤 함께 창업을 하는 손정욱씨를 광고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됐다.

 2009년부터 2010년에 걸쳐 천 대표는 클라이언트가 된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일을 맡아서 하게 된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는 프로젝트였다. 이름하여 ‘Korea Image-making Campaign’. 캠페인 방식은 심플했다. 주최측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여러 사진들을 웹페이지에 올려놓으면 캠페인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이 사진 중에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골라 페이스북 등을 통해 공유를 하는 거였다. “쉽게 말해 글로벌 웹 세계에 한국과 관련된 좋은 사진들을 퍼나르는 거였고 이걸 통해서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아름다운 산과 들, 도시의 발전된 모습들이 퍼져나가길 원했던 거죠.” 

 당시 페이스북이 아직 국내에서는 그리 활성화되지 않은 단계였고 지금에 비해선 글로벌 사용자 수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77개국에서 무려 3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를 해 광고주가 깜짝 놀라기도 했다. 공유를 많이 할수록 점수가 쌓이고 참가자들 간에 랭킹이 매겨지는 시스템이었다. 순위가 높은 사람들에겐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런데 한국 방문을 하려고 또는 높은 순위에 들려고 거의 하루종일 PC앞에 앉아 클릭만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함께 이 일을 하면서 천계성, 손정욱 두 사람은 손발이 잘 맞았다. 전 세계를 상대로 광고 캠페인을 하는 것이 너무나 재밌었던 천계성은 아예 외국 기업에 취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스웨덴에 있는 하이퍼아일랜드라는 디지털미디어 전문 학교에 입학을 했다. 

<지난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GMIC 행사에서. 트립비 천계성 대표(왼쪽)와 손정욱 대표>

◆공부하러 갔다가 창업에 눈뜨다

천 대표가 입학한 하이퍼아일랜드라는 학교는 아주 실용적인 교육기관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다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창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학교의 프로그램도 공교롭게도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적합한 내용이 많았다.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이 수업의 내용인 경우도 있었다. 천 대표도 학교 과제 중의 하나로 ‘Tag on TV’라는 프로젝트를 했다고 한다. “일종의 TV 카탈로그 앱이라고 보면 될 거 같아요. 약 8개월동안 진행을 했어요. 이걸 하면서 같이 공부를 하는 외국 학생들, 한국에 있는 젊은 대학생 등 여러명과 팀을 만들었죠. ”

 학교에서도 아이디어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은 천 대표는 프로토타입까지 만드는 데 성공한다. 스웨덴 현지의 VC(벤처캐피털)들에게 사업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로 더 이상 진척이 어려웠다. 실제로 사업으로 연결을 하려고 하니 저작권부터 초상권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였다. 경험있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 보니 이 모델 그대로 사업화 하기엔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실적으로 사업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바로 접었지만, 이 시도는 그의 일생에 한 전환점이 됐다. 일을 계획하고 사업화를 구상하는 과정에 너무나 매력을 느낀 것이다. 처음으로 그는 진지하게 기업가로서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 됐다.

 “‘Tag on TV’를 하면서 팀 회의를 많이 했는데, 그때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어요. 그 중에서 위치기반 아이디어를 얘기하던 중 한류를 주제로 토론을 하기도 했어요. 한류가 뜨면서 연예기획사 건물과 주변 볼거리들에 관광객들이 몰리고 의외로 이런 것들이 관광상품이 되기도 한다는 얘기가 나왔죠. 그러면서 예전에 광고 일을 할 때 한류 관련 캠페인을 했던 기억이 다시 났어요.”

 그의 기억 속에 한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그것이 불러오는 열정적인 행동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의 이런 관심과 열정을 서비스를 통해 해소해주면 어떨까. 한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좋은 기억들을 보다 아름답게, 생생하게 간직할 수 있게 해주면 어떨까. 아이템의 출발은 이거였다. 문제는 같이 할 사람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주로 디자이너, 기획자가 많았다. 그는 엔지니어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때 손정욱씨가 떠올랐다. 서울대에서 인지공학을 전공으로 한 손정욱씨는 옥시젠컴퓨팅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천 대표의 팀과 옥시젠컴퓨팅은 팀을 합쳐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다. 옥시젠컴퓨팅은 전원 엔지니어로 구성돼 있었다. 최적의 조합이었다. 이들은 회사이름을 트립비라고 지었다. 그리고 이 회사명에 자신들이 하고픈 바를 집약했다.

◆모바일 최고의 사진+영상 서비스 만들겠다

트립비(Tripvi)의 트립은 여행, 비(vi)는 Video를 뜻하기도 하고 vivid의 의미도 갖고 있다. 말 그대로 영상 분야로 승부를 내겠다는 이들의 바람, 그리고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고 이용자에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겠다는 그런 뜻이기도 하다.

 아이폰 버전은 올 1월 출시됐다. 안드로이드 버전은 7월2일 나왔다. 내용은 심플하다. 여행지를 간다. 사진을 찍는다. 그 사진을 트립비 앱에서 영상으로 만들어준다. 배경음악도 당연히 깔린다. 여행에 대한 추억을 영원히 남길 수 있게 된다. 여러장으로 흩어진 사진들 중 임팩트있는 것들만 모아 하나의 영상으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게 다는 물론 아니다. 위치 기반 정보를 이용해 여행 동선을 따라 여행의 추억들을 정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들이 많을 것 같다. 그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기존 서비스들은 대부분 텍스트리뷰 위주입니다. 사진도 덧붙이지만 영상으로까지 확대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사진이 있더라도 대부분 텍스트에 방점이 찍혀있죠. 가이드성으로 좋을 수는 있지만 개인의 경험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죠. 트립비는 사진과 영상을 기반으로 한 100% 모바일 서비스입니다. ”

 그는 모바일에서 콘텐츠가 폭발하고 있는 시점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앞으로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어날텐데 여기서 이 콘텐츠를 얼마나 잘 이용할 수 있게 서비스화되느냐에 관건이 달려있다고 본 것이다.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팩앤파트너스에서 초기 엔젤투자를 받았고 현재 시리즈A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모바일에서 여행데이터와 사진 등 사람들의 경험을 얼마나 많이 모을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여행 관련 세계적인 서비스가 많지만 트립비는 아시아에 기반을 두고 아시아 시장에 대한 여행 경험에서 강점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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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맞춤셔츠를 입은 적이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 입지 않고 있다.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 기성복에 비해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 없는 가격, 단조로운 스타일 등이 주된 이유였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더 돈을 주고서라도 기성복 매장에 가서 만들어진 셔츠나 바지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맞춤셔츠를 입는 사람들이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최근엔 맞춤형 셔츠를 입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조짐도 보인다. 이번에 소개하는 스트라입스라는 회사는 이런 맞춤형 셔츠를 판매하는 회사다. 스타트업이지만, 사업 모델은 아주 오래된 기존 사업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 뭐가 다른 걸까. 바로 조금 전 언급했던 그 단점들을 스트라입스는 극복했을까. 그 단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고객들과의 접점을 넓히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물론 이 회사는 그런 모든 것을 감안하고, 준비해서 시작했다.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로 밤을 새고프다

2001년 서강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한 이승준. 전자공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08년 아이리버에 입사를 했다. 사회 생활의 첫 발을 내딛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중요했던 것은 병역특례로 군 복무를 대신하기 위해서였다. 3년이면 끝이 나지만 그는 아이리버에 1년을 더 있었다. ‘좀 더 배우고 싶었다’는 게 그가 말한 이유. 

 그가 입사했을 때 아이리버는 이미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회사였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회사로 탈바꿈하던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제가 들어가고 얼마 안 있어서 창업자인 양덕준 대표가 회사를 나가셨어요. 그리고 회사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정말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을 때였죠.” 회사는 약간 어수선했을 수 있지만 그 덕에 그는 좋은 경험을 했다. 전자사전, MP3 플레이어, 전자책 단말기 등 온갖 회사의 새로운 사업들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여러 유형의 사업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 처음 입사해 신기술 도입을 검토하는 일을 했던 그는 얼마 안 있어 PM(프로덕트매니저)로 보직을 변경했다. 그리고 이 때 훗날 창업을 같이 하게 되는 이창훈씨를 만나게 된다. 이창훈은 UX디자인 담당자였다.

 PM과 UX디자이너는 당연히 함께 할 일이 많았을 것이다. 일이 많을 땐 몇날 며칠을 밤을 새가며 일을 하기도 했고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고 자연히 신뢰도 쌓이지 않았을까. “제가 성격이 급해서인지, 뭘 하게 되면 끝을 보지 않으면 안됐고, 그것도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해내고 싶은 마음이 많았어요. 하루에 4-5시간밖에 잠을 못자면서 일을 하는 경우가 잦았죠.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차피 이렇게 밤을 새가며 일을 할 거면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밤을 새고 싶다’고요.”

 그는 간간이 창업 계획을 이창훈씨와 얘기했다. 그리고 2012년초 아이리버를 나왔다. 자신의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일단 회사는 나왔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심지어 명확한 아이템도 없는 상태였다. 그에겐 여러가지로 준비가 필요했다.

◆지금의 남성 패션은 뭔가 이상하다

 막연하게나마 그는 남성 패션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가 하고 싶은 일로 밤을 새고 싶다고 했쟎아요. 남성 패션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와 관련된 일을 하면 얼마든지 고된 일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죠.”

 그가 생각한 것은 남성 패션 시장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 고가 브랜드나 하이클래스 남성 패션은 실제로 그 복장을 하고 어디를 다닐 수도 없는, 잡지에서나 봐야 하는 패션이고, 중가 브랜드의 패션은 가격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는 ‘기존 패션업체들과 다르게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내세운 것이 ‘상식적인 패션’이었다. 

 2012년 9월부터 창업을 준비했지만 그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자금도 부족했다. 때마침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패스트트랙아시아(FTA)가 2차 CEO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바로 여기에 지원했다. “경쟁이 치열했어요. 큰 그림이나 전략을 들고 가봤자 안먹힐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저의 경력을 살리면서도 실행력이 좋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방법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어요.” 그의 이런 방식은 효과를 발휘, 헬로네이처와 함께 FTA의 지원을 받는 2차 기업 집단에 포함됐다.

 지원당시 그의 팀은 이창훈씨와 달랑 2명이 전부였다. 개발자가 없는 상태였고, 사업 아이템도 분명하지 않았다. FTA가 달라붙어 세부적인 계획을 세웠다. “남성 셔츠 분야로 도전을 하자고 일찌 감치 계획을 수립했는데 고민이 생기더라구요. 절대로 동대문보다 더 저렴하게 옷을 구해올 수 없다는 거죠. 이들과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까. 가격이 좀 더 나간다면 무엇으로 승부를 봐야할까 엄청 고민했어요. 그래서 내린 결론이 ‘찾아가는 서비스’였죠.”

 인력을 충원하고 사람들을 추가로 채용하면서 이들은 법인을 설립했다. 2012년 1월이었다. 회사 이름도 오디너리(Ordinary)에서 스트라입스(Stripes)로 확정했다. 옷을 떠올리면서도 누구나 쉽게 알 만한 단어라는 것도 중요했다. 처음에 팀 이름을 오디너리로 할 때 생각을 보통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상식적인’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셔츠를 제공하기 위해 스트라입스 창업 멤버들은 올초 동대문 시장과 종로바닥, 광장시장 등을 샅샅이 뒤졌다. 손발이 척척 맞을 맞춤셔츠 봉제공장을 찾는 작업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찾아가는 서비스 구현을 위해 스트라입스는 로드 테일러(Road Tailor) 3명을 채용했다. 모두 여성이다. 이들은 패션을 전공으로 했으며 옷 구매나 사이즈 측정을 원하는 사람에게 직접 찾아간다. 셔츠 구매에 필요한 사이즈 측정은 물론이고 컨설팅도 해 준다. 남성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에게 맞는 옷 스타일에 대해 잘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다. 잘 알고 있더라도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새로운 경지가 열릴 수도 있다. 평소에 패션이나 옷차림에 대해서 누군가 대화를 하는 적 자체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주제에 대한 대화 자체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 대표의 이런 생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 것 같다. “로드 테일러분들이 찾아가서 피부색, 체형, 얼굴형 등을 고려한 셔츠를 제안합니다. 이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도 알게 됐구요.”  

◆7월 바지, 9월 정장 서비스도 오픈

 4월말 서비스가 시작됐다. 이제 막 두달이 된 것이다. 그 동안 3000여명의 사이즈를 쟀다. 이 숫자가 1만명에 도달하면 본격적인 서비스 성장이 가능하리라는 게 이 대표의 예상. 현재는 셔츠만 주문할 수 있지만 앞으로 상품은 더욱 확대된다. 우선 7월에 바지, 9월에는 정장과 자켓 판매도 시작한다. “지금은 셔츠만 판매하지만 곧 바지 서비스와 정장 서비스도 시작되기 때문에 고객을 방문했을 때 몸 전체 사이즈를 다 측정합니다. 물론 동의를 받고 하는 거죠. 한번 사이즈를 측정해 놓으면 이분들은 언제든 원하는 옷을 주문하실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사이즈를 측정하면 약 닷새 후 옷을 받아볼 수 있다. 와이셔츠뿐 아니라 캐주얼 남방도 맞춤형 주문이 가능하다. 가격은 4만9000원대부터 있다. 이 대표는 처음에 손님 1명당 평균 주문 가격을 5만원으로 설정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이보다 금액이 훨씬 올라갔다. “손님 1명당 평균 구매금액이 10만원을 넘습니다. 반응이 썩 괜챦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왕 사이즈를 쟀는데 한 벌 사기는 뭐하다는 심리도 있지 않을까. 

 기꺼이 돈을 내고 살만한 그런 합리적인 가격, 좋은 퀄러티, 유행이나 개인의 취향 반영 등 세 가지를 충족하겠다고 했는데 현재까지는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이 대표는 1만명의 DB(데이터베이스)가 모이면 양복 판매 뿐 아니라 남성용 소품(가방, 구두, 벨트 등)에 대한 판매와 연계해 거대한 개인 맞춤형 남성 패션 서비스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헤어지기 전, 그에게 직장을 나와 창업을 해보니 어떤지를 물었다. 

 “정말 힘들더군요.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입니다. 회사를 다니던 때도 하루에 4-5시간밖에 안 잤기 때문에, 사실 스타트업을 해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일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그때보다 늘어난 것은 아니죠. 그런데 스트레스와 고민은 비교가 안됩니다.”

 “책임감 때문 아닐까요. 대표는 어디 도망갈 데가 없죠.”

 “맞습니다. 그런 것도 있구요, 또 제가 직원으로서 일할때는 전체적인 그림으로 그리고 전략을 세우는 것에 대해선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창업을 하니 이 모두를 해야되더라구요. 무엇보다 이것으로 인해 여러사람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거죠. ”

 그래도 그는 창업을 하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에 만족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꿈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꿈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이 더욱 중요하더군요. 당장 그 꿈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일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죠. 창업을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그 말씀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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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회사는 지금쯤 ‘한국의 스타트업 시즌2’에서 다뤄야 하는데..”

 회사에 대해 얘기를 듣고, 회사를 찾아간 순간 든 느낌은 그거였다. 공교롭게도 찾아간 시점에 이 회사가 큰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래도 어쩌랴.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이미 작년에 3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지금 서른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핸드스튜디오는 스마트TV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국내에서 사실상 유일한 회사라고 한다. 스마트TV는 나 자신도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면서도 의문투성이인, 그런 분야였다. ‘사람들이 TV에 더 이상 어떤 기대를 하고 있을까.’ ‘스마트TV에서 스마트한 것은 무엇인가.’ ‘스마트TV의 미래는 뭘까.’ 이런 질문들을 안고 핸드스튜디오 안준희 대표를 찾아갔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이야기는 스마트TV에는 과연 어떤 미래가 있는지, 지금까지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등에 모아졌다. 

◆은행원에서 벤처기업가로

한동대학교 경영학과 출신의 안준희 대표는 대학 졸업 후 바로 국내 모 대형 은행에 입사했다. 부모님은 물론 동네 어르신들이 모두 기뻐했다고 한다. 갈수록 취업이 어려워지고 있는 때에 대형 은행에 입사를 했으니 아는 사람들 누구라도 축하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는 은행을 6개월여만에 그만두고 나왔다. “너무 답답했어요. 제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간 미련없이 그만두고 나왔죠.” 이 정도면 그야말로 입사원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나온 셈. 

 대기업을 뛰쳐나온 그가 간 곳은 한 중소 벤처컨설팅업체. 하지만 여기서도 1년만에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는 표철민 대표의 위자드웍스에 입사했다. 위자드웍스에서도 그의 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자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다른 조직에서 일하기는 쉽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위자드웍스에서 생활은 의미가 있었다. 여기서 그는 홍윤선 수석을 만났고 그와 함께 핸드스튜디오를 창업하게 된다. 위자드웍스에서 안 대표는 이 밖에도 허정우 이사를 비롯한 여러 인재들을 만났고, 이들은 핸드스튜디오 창업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우여곡절끝에 2년여 동안 세 군데의 회사를 거쳐 창업에 나선 안준희 대표. 그가 창업에 도전하던 2010년 초반은 아이폰과 앱스토어가 뜨거운 화두가 되던 시절이었다. 너도나도 모바일 앱 개발 관련 사업을 시작하던 때, 그는 뜬금없이 스마트TV 앱 개발을 표방했다. 안 대표에게 이유를 묻자, “그당시 생각했을 때 앱 개발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이미 레드오션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TV로 시작을 하자’고 결정한거죠.”

 그래도 대체로 대세를 따라가기 마련인데, 왜 있지도 않은 분야에서 시작을 했을까. “사업을 하면 6개월 내에 BEP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투자를 계속 받아가면서 하는 사업 모델보다는 직접 돈을 벌면서 사업을 해야 한다고 본거죠. 그러려면 경쟁자가 너무 많은 분야는 곤란하다고 생각한거구요.” 

 그럼 그는 TV에서 충분히 시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가 사업을 시작하던 무렵에는 스마트TV란 말은 물론이고,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 스마트TV가 아니라 인터넷TV라는 것을 제조사들이 막 출시하던 때였어요. 어쨌든 스마트폰 쪽 앱 개발은 너무 많은 업체가 있는 것 같아서 힘들 것 같았고, TV로 방향을 잡았는데 때마침 삼성전자에서 3월1일 인터넷TV를 출시한다고 하더라구요. 이거다 싶었죠.”

 2010년 2월 창업한 안 대표는 ‘인터넷TV 콘텐츠 개발’이라고 회사 홈페이지에 소개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사업을 스마트TV에 맞춰서 할 수는 없었다. 외주 제작을 하기도 하고 스마트폰용 앱을 간간이 제작하기도 하면서 몇 개월이 지났다.

◆스마트TV와 함께한 성공과 방황

인터넷TV란 이름은 금새 없어졌다. 곧 ‘스마트TV’란 말이 생겨났다. 삼성을 비롯해 핸드스튜디오로 연락을 하는 업체들이 늘었다. 2010년 5월 삼성전자의 스마트TV 협력업체로 선정됐고, 그해 6월 삼성의 스마트TV에 들어가는 ‘헬로코치(Hello Coach)’ 앱을 출시했다. 핸드스튜디오로서도 첫 시도였는데, 결과가 어땠을까. “국내에서는 별로였어요. 그런데 해외에서는 반응이 좋았죠. 특히 유럽에서 반응이 좋았어요. 유럽의 반응을 보면서 이 분야의 앱을 계속 만들 수 있는 동력도 생겼고, 다른 제조업체들의 시각도 달라지기 시작했죠.”

 이렇게 시작된 핸드스튜디오의 스마트TV앱 개발은 이후 200개가 넘는 앱을 만들 정도로 확장됐다. 그는 처음에 생각한 자신과의 약속(6개월 내에 BEP를 맞추겠다고 하는 것)을 지켰을까. 놀랍게도 그의 말은 실현됐다. 그는 6개월 내에 BEP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매출이 꾸준히 늘었고 직원도 계속 늘었다. 작년에 핸드스튜디오는 3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30억원의 매출. 창업 3년차 기업으로서는 적지 않은 매출임에는 분명하지만, 앱을 200개나 만든 회사로서 올린 매출이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허탈한 느낌이 없지 않다. 안 대표는 “대부분 “B2B로 매출을 올렸기 때문”이라며 “그나마 이 매출도 전부 앱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왜 그런지는 사실 필자나, 안 대표나,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 사람들이 스마트TV에서 앱이란 것을 애시당초 쓰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다. 핸드스튜디오가 그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는 것이. 

 그러면 사람들은 왜 스마트TV에서 앱을 쓰지 않을까. 아마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 아닐까. 당장 집에 가서 TV를 켜고 보면서 앱을 다운로드 받아 인터넷 검색을 한다던가, 뭔가 다른 콘텐츠를 찾아본다던가, 게임을 하던가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거의 없지 싶다. 2011년이었던 것 같은데, 한 전자회사에서 일하시는 분이 찾아와서 스마트TV에 대해 여러 설명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설명을 듣고 나서 딱 한 마디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전에 리모컨이나 좀 제대로 만드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스마트TV라는 것 자체가 뚜렷한 개념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독자적인 가치는 없는 채 스마트폰에서 이름을 차용, 화면만 키워놓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안 대표 역시 이런 지적에 수긍했다. 물론 그 자신도 오랫동안 그런 이유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스마트TV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떤 식으로 변화해야 하는가, 핸드스튜디오는 무엇을 해야 하나.’

◆앱이 아닌 다른 길이 있다

안 대표는 답을 찾았을까. 그가 명확한 답을 발견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길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안 대표는 “지금 우리들이 보는 그런 스마트TV는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애초부터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줄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없이 시작된 것이 지금의 스마트TV다. 

 그럼 어떤 스마트TV가 나올까. 안 대표는 “스마트TV의 콘텐츠는 방송하고 연계돼야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로서는 힌트를 준 셈이지만,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올들어 삼성전자가 내놓은 이른바 3세대 스마트TV는 과거의 단점을 많이 보완했다. 그야말로 리모컨도 많이 개선됐고, 화면을 보는 방식도 앱을 다운받는 것에서 패널을 넘겨가며 보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가 보기엔 이 역시 불편하고, 본질적인 개편은 아닌 것 같다.

 안 대표는 스마트TV 시장에 본질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핸드스튜디오도 그에 맞춰 준비하고 있는 셈. 그 시점은 올해 가을께, 9월에서 10월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TV는 그저 디스플레이에 불과하다는 것, 여기에 아무리 복잡한 기능을 넣어도 소비자들은 피곤해한다는 것. 그것을 가전업계도 알았고, 앱 개발사들도 알게 됐다. 이제 어떤 변화가 오게 될까. 아마 그 변화는 TV 자체에 새로운 기능을 넣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TV를 통해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방식의 경험을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어쨋든 중요한 것은 TV 시장이 진화하고, 이대로 정체되지 않을 거란 점이다. 안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TV 시청 자체에 소비자의 역할과 권한을 확대하는 한편 TV를 데이터나 다른 기기와 연동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디스플레이로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바꿔나갈 겁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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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코스모스 신철헌 대표를 만난 곳은 beLaunch 행사가 한창 열리던 지난 달 초 코엑스 행사장에서였다. 그는 어딘가 ‘꿈꾸는 소년’ 같았다. 그런 첫인상을 배반하지 않고, 그와 나눈 대화속에서 그가 진행중인 서비스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그런 모습이 오롯이 반영돼 있었다. 남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게 꿈이라는 그는 그런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가 하는 사업은 자기 계발 분야이지만, 자신과 타협하고 때로는 갈등하면서 목표를 이루기 힘들어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그는 재미와 보상이라는 요소를 도입했다. 하지만 관건은, 이 서비스의 핵심적인 가치에 사람들이 얼마나 동조하고, 이를 필요로 할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 같다.

◆너 자신의 사업을 가져라

1999년 고려대학교에 입학, 생명유전공학(경영학 부전공)을 전공으로 한 신 대표는 2007년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창업을 했다. 주저없이. 

 그가 이렇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창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시절 자신을 사로잡은 한 마디때문. 그는 로버트 기요사키가 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에서 “21세기는 전문가라도 힘들다. 비즈니스 오너가 되거나 투자자가 되라”는 문구를 발견한다. “마침 나는 뭘 할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시점이었어요. 이 책은 저에게 ‘너 자신의 사업을 가져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그런데 사업을 하면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어지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생각을 하는 대로 사물이 보이는 법. 군대에 가서도 그는 비슷한 주제로 생각을 해 왔다. 그는 화천 7사단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수색대에 배속돼 있어서 하루하루가 터프했다고 한다. “부대에서 운동도 많이 했는데, 어느날 평소와 다름없이 축구경기를 하다가 문득 뭔가 깨달았어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축구에 자신있는 사람은 공격수가 되고 잘 못차는 사람은 수비수로 뛰더라구요. 내가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까, 어떤 역할을 할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가 이 얘기를 어떤 선배에게 했는데 이 선배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글쎄. 좀 더 크 그림을 봐봐. 그 경기를 열고 컨트롤한 사람은 중대장이었지. 경기의 룰을 좌우한 것도 그 사람이고. 그런 존재가 되는 것에 꿈을 가지면 어떨까.’

 이 말은 그를 크게 자극했다고 한다. 아직 생각이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창업에 대한 열망에 불타있었던 그는 학교를 졸업한 2007년 광고솔루션 회사를 차렸다. 이 회사는 ‘인텍스트 광고 솔루션’ 서비스를 아이템으로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뉴스 등 기사 내용을 분석해 클릭해 들어갔을 때 소비자가 광고를 볼 수있게 하는 그런 솔루션이었다.

◆실패와 방황의 시간들

2008년에는 언론사 사이트에도 광고 솔루션을 적용하는 등 조금씩 확대되는가 싶었지만 좀처럼 매출은 늘지 않았다. 결국 그는 2009년 6월 1일 씨디네트웍스에 회사를 매각했다. “말이 매각이지 얼마 안되는 회사 자산을 넘기고 그 돈으로 부채를 갚는 수준이었어요.” 그의 설명이다.

 신 대표는 회사 매각 후 씨디네트웍스 자회사인 엔톰애드에서 근무를 했다. 창업을 꿈꿨고, 첫 발을 내딛었다가 실패를 겪은 이가 다른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할 때 어떤 일을 겪을까. “너무 힘들었다”는 게 그의 간략하지만, 솔직한 심정이었다. “솔직한 심정은 ‘3개월도 버티기가 힘들다’였어요. 너무 힘들어서 못 참을 정도였고 나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됐죠. 나는 도대체 왜 창업을 한 걸까. 지금 뭘 하고 있는걸까. 내가 생각했던 그 꿈은 어디로 갔을까. 앞으로 계속 그 꿈을 위해 나아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어요.”

 방황을 하던 그는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달래는 한편 자신의 애시당초 결심을 다시 한번 환기하기 위해 드림코스모스(www.dreamcosmos.com)이라는 블로그를 만들었다. ‘꿈으로 우주를 가득 채우고 싶다’는 그의 생각이 반영된 블로그다. 

 이런 블로그를 만들어서 뭘 했을까. ‘꿈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는 게 그의 답. 실제로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이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사업에 도달하게 됐는지를 짐작케 하는 것들이 눈에 띈다. 

 신철헌 대표가 이 블로그를 운영한 것은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창업 현실을 경험하고 난 뒤 창업을 했을 때의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한켠에 있었지만 여전히 젊은 나이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도전하고픈 마음도 있었을 터. 여기서 문제는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명확한 실행계획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가 선택한 것을 결국 꿈. 그리고 방황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사람들이 가슴 뛰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다”로 정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한국리더십센터를 찾았다. 2011년 2월이었다. 

◆사람들이 꿈을 이루도록 돕는다

그가 한국리더십센터를 찾아간 것은 남이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일, 즉 이른바 자기계발이나 자기 경영과관련된 일이 ‘보람은 있지만 돈이 안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첫 사업 실패로 그가 얻은 교훈은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신 대표는 이런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버는 곳이 어딜까를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한국리더십센터였다. “‘고객의 성공을 돕는다’를 모토로 하고 있으면서도 수익을 내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부사장에게 다짜고짜 이메일을 보내고 회사를 찾아갔죠.”

 그가 생각한 것은 ‘프랭클린 플래너’,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워크숍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많은 사람들이 듣고 감동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도 교육을 받을때 뿐, 교육 이후에 팔로업이 되질 않으니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지속성이나 효과성이 떨어져 재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는데 생각이 미쳤어요. 그래서 현재의 드림멜로 모델을 들고 회장님을 찾아갔죠.”

 김영사 설립자인 한국리더십센터의 김경섭 회장은 신철헌 대표의 꿈과 아이디어를 듣고 흔쾌히 그를 지원하기로 했다. 일단 센터 사무실에 들어와 사무실 대용으로 쓸 수 있는 공간도 얻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꿈과 목표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서비스, 드림멜로를 오픈했다. 2013년 5월 1일이었다. 그로서는, 오랫동안 찾던 자신의 꿈에 대한 구체적인 솔루션을 발견한 셈이기도 하다.

 드림멜로는 수많은 자기계발 강연이나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들은 후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여기서 배운 것을 계속 실천해가면서 자기 자신을 성장하게끔 도와주는 그런 서비스다. 동기 부여를 위해 미션 완수시 보상 시스템을 적용했으며 친구나 동료들과의 경쟁을 통해 노력을 유도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드림멜로는 챌린지 게임을 지향하지만, 현재 핵심기능을 구현하려다 보니 재미요소가 빠진 상태로 베타서비스 중. 안드로이드 버전만 나와 있으면 아이폰 버전을 개발 중에 있다. 각종 교육프로그램이나 컨퍼런스에 대한 follow-up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많은 행사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란 게 신 대표의 기대. 처음엔 한국에서 우선 서비스하지만 자기 계발이라는 키워드로 해외 진출 장벽이 낮다는 것도 그의 판단이다.

 사실 그가 하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삶의 매우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하지만 너무 무겁고, 심각해서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조차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꺼리는 분야이기도 하다. 변화나 성장을 위해 온갖 강연이나 교육프로그램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이를 팔로업하는 서비스를 통해 기꺼이 자신의 하루하루를 관리하고 생활을 컨트롤할 것인가? 드림멜로의 성패는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달리지 않았을까. 물론 개개인이 직면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고, 진짜 원하는 게 뭐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어쩌면 처음엔 너무 두리뭉실한, 추상적인 차원의 문제보다 개인이 갖고 있는 고질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차원에서 시작하면 사람들이 서비스를 이해하고 접근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신 대표는 이 분야의 비즈니스가 향후 크게 성장할 것이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발견해서 그것을 극대화하도록 도와주고 현재있는 교육과 코칭 비즈니스 등을 발전시키면 머지않아 큰 비즈니스가 될거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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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rocks 이창수 대표는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한번 다뤘던 인물이다. 서른한번째 이야기인 아블라컴퍼니 노정석 대표의 창업 스토리를 다루면서 그의 이름이 언급됐고, 사진도 함께 찍어 올렸다. (http://limwonki.com/414 참고)그는 아블라컴퍼니를 노정석 대표와 함께 창업했고 회사 이름도 직접 지었지만 아블라컴퍼니 스토리를 쓸 당시 주인공은 노정석 대표였다. 세월이 흘러 아블라컴퍼니는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됐고,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창수 대표가 됐다. 

 이 대표를 만나러 간 사무실에는 노정석 대표도 함께 있었다.(5rocks 사무실은 아블라컴퍼니와 같은 곳에 있다. 왜?) 5rocks는 아블라컴퍼니가 분할되면서 나온 회사고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하는 신규 법인으로 새출발을 시작한다. 노정석 대표는 “아블라컴퍼니가 기업분할을 하면서 이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며 “언론에는 최초로 공개하는 것(웃음)”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스타트업이 계속되다보니 이제 이런 사례도 나온다. 애초에 소개했던 회사가 기업분할을 하면서 둘로 나뉘고 각각 다른 사업을 하게 되는 첫 사례인 것 같다. 아블라컴퍼니는 왜 회사를 나누게 됐을까. 5rocks는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일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이 대표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파프리카랩과 아블라컴퍼니

그에게 5rocks는 세번째 창업. 하지만 그가 대표이사를 맡게 된 건 처음인 것 같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97학번인 그는 SK텔레콤에서 그 유명한 윤송이 상무와 함께 일했다. MIT(메사추세츠공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SK텔레콤에 스카웃되면서 ‘천재소녀’로 불리기도 했던 윤 상무와 함께 그가 담당했던 업무는 일종의 지능형 홈로봇 개발. KT에서 2011년 키봇을 출시하고 홈로봇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했었는데, SK텔레콤에서도 그와 유사한 사업을 일찌감치 준비했던 것이다. 

 윤송이 상무는 당시 1㎜ 서비스를 의욕적으로 추진했었고 그는 차세대 로봇팀에 배속돼 있었다. 아쉽게도 그가 개발에 참여했던 홈로봇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지만 윤 상무와 함께 일했던 경험은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살았던 그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엔지니어 세계에서도 유난히 기획력이 뛰어나고 PM으로서 놀라운 자질을 보이고 있는 것에 이때의 경험이 일조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대기업 SK텔레콤에서의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7년 이 대표는 회사를 나와 김동신 등과 함께 파프리카랩을 창업하게 된다. 그로선 첫 창업이었다. 첫 창업에 시행착오를 느껴서일까, 그는 이듬해 파프리카랩을 나와 일본으로 건너가 게임온에서 일을 했다.

 그가 일본에 가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데는 사연이 있다. 카이스트 재학 시절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갔다온 경험이 있기 때문. 당시 일본어는 한 마디도 못했던 대학생 이창수였지만, ‘영어로 대부분의 수업을 하고 영어로 살기에 불편함이 없다’는 말만 믿고(?) 일본 동경공업대학에 갔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영어 수업은 고사하고 일본어를 하지 못하면 단 하루도 지내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마음이 맞을 것 같은 일본 학생 한 명에게 제안을 했어요. 내가 영어를 가르쳐 줄테니, 일본어를 가르쳐 달라고요.” 다행히 이 전략은 통했다. 첫 학기가 지나고 바로 그 다음 학기에 그는 일본어로 수업을 들으면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전략이 통한 것도 있지만, 언어적 감각도 있고 노력도 상당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여간 일본 게임온에서 잘 지내고 있던 그에게 2009년 어느날 카이스트 선배이자 SK텔레콤에서 같이 일했던 노정석 구글 PM이 같이 창업을 하자고 연락을 했다. 별 망설임없이 수락한 그는 ‘아블라컴퍼니’라는 회사 이름 작명도 직접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Lean Startup

이창수 대표가 창업 멤버로 두번째로 참여한 회사인 아블라컴퍼니. 그는 최고기술책임자(CTO)였다. 아블라컴퍼니는 철저하게 일반 소비자들이 쓸 수 있고,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테이블K, 포잉, 불레틴, 픽쏘 등의 서비스를 만들면서 그는 사업의 단계별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성취하는지,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고민을 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그의 생각은 에릭 리스가 저술한 린스타트업이라는 책의 기본 주제와 접목하게 된다. 때마침 개발자로 일하던 그에게 뜻밖의 번역 기회가 오게 된다. 

 언어적인 능력도 뛰어난 그는 번역작업을 하면서 책 속에 소개된 린스타트업에 그야말로 푹 빠져들어갔다. 이 책은 창업을 해서 사업의 성공을 이루는 것은 개인의 특출난 역량이나 마법과도 같은 것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재현 가능한 과학적 실천에서 비롯된다는 가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극도로 제한된 자원으로 출발하는 스타트업에서는 오히려 이런 가설에 근거한 구체적인 실천 전략이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단계별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포잉과 불레틴 등을 만들면서 린스타트업을 직접 적용해봤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단계별로 꼭 해야하는 과제를 달성하고, 필요한 조건들을 충족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이 우리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더 범용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죠.”

 그가 처음 생각한 것은 일종의 모바일 게임 솔루션. 특히 ‘Monetization solution’에 초점을 맞췄다. “사실 포잉을 만들면서 저희가 필요해서 여러가지 시도를 했어요. 그 중에서도 사용자들에 대한 자세한 데이터 분석이 필요했죠. 그냥 20대가 결제를 많이 한다더라 정도가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연령대, 성별 사용자의 시간대별, 직업별 결제나 이용 실적이 필요한거든요. 이런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록 서비스에 반영해 완성도를 높이고 그러면서 성공 가능성도 높아지는 겁니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벤처기업에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실제로 그가 실험적으로 시작한 솔루션에 대해 벤처기업 사장님들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왔다.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할 것 같은데, 따로 만들어주면 안될까?’ 이런 반응이 많았다. 무엇보다 린스타트업의 정신을 구현하려고 했던 이 대표는 포잉 등을 만들면서 이 솔루션을 직접 적용했고,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다.

◆게임비즈니스를 위한 intelligence layer

여기서 잠깐. 회사 이름을 왜 5rocks라고 지었는지 궁금했다. 이 대표에게 물었다. 그의 설명이 재밌다. “오락스라고 읽으면 답이 보일까요? 오락, 즉 게임이 저희 회사의 주요 테마거든요. 게임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라는 뜻에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습니다.”

 게임플랫폼이라. 언뜻 와닿지 않는다. 게임 플레이를 위한 플랫폼이 아니라 게임 운영 및 고객 분석을 위한 플랫폼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다시 좀 전의 대화로 돌아가보자. 린스타트업과 게임 플랫폼과, Monetization solution, 그리고 5rocks 간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이들 사이에 얽힌 상관관계에서 나온 답이 5rocks의 회사 분할인 것 같다.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해서, 리소스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적인 플랫폼이 필요하고 이를 포잉 등의 개발 과정에 직접 적용해보면서 확신이 든 이들이 이 기술적인 플랫폼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회사, 5rocks를 만든 것이다. 아블라컴퍼니의 기존 사업, 즉 포잉 등 서비스업은 별도 법인이 수행하게 된다. 

 이 대표가 지향하는 것은 ‘게임비즈니스를 위한 intelligence layer’. 말이 좀 어려울 수 있지만 쉽게 말해 모바일게임 사업자 또는 개발자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 즉 언제 어떤 고객들이 어떻게 게임을 이용하고 이들의 반응은 어떠하며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분석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 이를 통해 게임이 더욱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업데이트되고 품질이 개선되고 가장 적절한 방향으로 마케팅과 광고를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다. 고객을 정확히 알아야 정확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는 글로벌라이제이션, 즉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고 싶은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모바일이 나오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어느때보다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문화에 기반을 둔 서비스나 콘텐츠로는 세계화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희는 저희가 잘 할 수 있는 것, 즉 문화를 타지 않고 스타트업은 누구나 필요한 그런 B2B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결정을 한 거죠. 분석과 운영은 우리가 할 테니 서비스나 콘텐츠 업체들은 본연의 업무만 잘 하면 되게끔 하는 거죠. 이는 궁극적으로 광고나 마케팅 툴과도 연결돼 성장성이 클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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