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어느덧 점점 잊혀진 서비스가 되고 있지만 1990년대 말 시작돼 2000년대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프리챌’(http://www.freechal.com)이라는 사이트가 있었다. 이 사이트를 만든 전제완 (주)자유와도전 사장은 삼성그룹에서 일하다가 회사를 뛰쳐나와 벤처기업을 차려 대박의 꿈을 이뤄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주금가장납입 사건으로 전 사장이 긴급체포 된 후 프리챌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전제완 사장 역시 프리챌의 쇠락과 함께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다. 결국 프리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재창업에 도전했다. 하지만 과감한 투자와 공격적인 경영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했다. 두 번의 실패 이후 사라질 것 같았던 그는, 하지만 돌아왔다. 그리고 보란 듯이 투자를 유치하고 다시 한번 재기를 꿈꾸고 있다. 그는 이번에 우뚝 설 수 있을까. 사실상 세 번째 창업이자 네 번째 내놓는 서비스를 들고 전제완 사장이 다시 돌아왔다.

◆자금난 인력난에 고전한 유아짱

전제완 사장의 이야기는 블로그에서 몇 차례 소개한 적이 있기에 프리챌 시절의 이야기는 그만두고 유아짱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게 좋을 것 같다. 그가 유아짱이라는 회사 설립 준비에 나선 것은 2008년이었지만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것은 2010년이었다. 그리고 2011년 들어 짱라이브 선보였다. 짱라이브는 서비스 오픈 1년여만에 200만명이 넘는 사용자를 확보하는 등 순항했다.

초기에는 블로그 등 인터넷에서 개인 방송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서비스로 출발했지만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스마트폰용 영상SNS로 발전했다. 주로 사진이나 텍스트, 동영상 등을 올려놓고 댓글을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다른 SNS와 달리 짱라이브는 앱을 통해 서비스를 했고 사람들이 동영상을 즉석에서 찍어 올리고 동영상을 보면서 채팅을 할 수 있다는 차별점이 있었다.

앱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실시간 방송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 사용자들이 많았다. 이들 중에는 열혈 이용자들이 제법 있었다.

짱라이브 서비스의 핵심은 안정성이었다. 서비스 자체의 경쟁력이 동영상을 기반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었기 때문에 동영상 서비스가 끊기지 않고 잘 돌아가야 했다. 물론 사람들이 이용하기 쉬운 UI(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유려한 디자인 등도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데 짱라이브 서비스는 안정성에서 종종 문제가 발생했다. 동영상 재생이 끊기거나 에러가 발생하는 경우가 잦았다. UI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든 구조였다. 그러다보니 초기 열혈 이용자를 중심으로 사용자가 늘었으나 어느 정도 수준에서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동영상에서 에러가 자꾸 나면서 회사 차원에서 공격적으로 유저 수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을 전개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었다. 서버 차원의 투자를 단행해 안정성을 높이고 실력있는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영입해야 했다. 2011년말까지는 이런 작업이 순조롭진 않았어도 조금씩 이뤄졌었다. 전 사장은 다섯 군데의 투자회사로부터 13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2012년 들어 투자가 뚝 끊겼다. 투자회사들이 인터넷 회사에 투자하는 금액 규모상 더 이상의 투자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게다가 수익모델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도 보이질 않는 상태였다.

자금 유입이 중단되면서 회사는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2012년 3월에는 KT가 회선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다. 잠깐이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사용자들이 이탈을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직원들 월급을 주기 힘든 상황까지 몰렸다. 자금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전 사장은 결국 2012년 9월 12일 오후 6시부터 짱라이브 서비스를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공지에서 “2008년 10월1일 창업 이후,지난 4년간 글로벌 서비스를 목표로 영상SNS를 개발해 왔습니다. 척박한 벤처투자 환경 속에서도 5개의 국내 기관투자자가 130억원을 투자해줘서 220만명이 사용하는 국내 유일의 SNS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3개월간 필요한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만, 자금 조달을 마무리하지 못하였고 KT와 LG 측 회선사용료 미납으로 인해 더 이상 서비스 유지가 어렵게 되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전 사장은 회사 공개 매각도 추진했다. 하지만 적절한 인수 희망자를 찾기도 힘들었고 직원들이 모두 떠난 상태에서 회사는 사실상 폐업을 했다. 전 사장은 “자금난도 어려웠지만 인재를 구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에어라이브로 다시 시작하다

과거 프리챌의 실패도 겪었던 그였지만 유아짱은 더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창업멤버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났고 오래 함께 일했던 직원들도 잃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희망의 끊을 놓지 않았다. 프리챌 때에 비해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엄청난 채무를 뒤집어쓰진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다시 한번 줄기차게 사업의 기회를 모색했다. 회사는 사실상 공중분해됐지만 서비스는 아직 살아 있었다. 다만 동면상태에 있을 뿐이었다. 잠에서 깨우려면 돈이 필요했다. 좀처럼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투자자들의 문은 2014년 들어서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2014년 5월 상장사인 키스톤글로벌에서 3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짱라이브에는 대대적인 변화를 줬다. 우선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 투자를 받는 것으로 했다. 짱라이브는 기능을 업그레이드하고 디자인을 혁신한 뒤 에어라이브로 개편했다. 지배구조에도 변화를 가했다. 에어(Aire)라는 법인을 이미 1월 미국에 설립했다. 에어는 기존 유아짱의 지분 100%를 갖는 모회사다. 유아짱은 사명을 에어라이브코리아로 변경했다. 전 사장은 에어의 최대주주가 됐다.

에어라이브코리아는 10월 15일 전세계 어디서나 채팅과 동시에 화상대화를 할 수 있는 '페이스채팅(Facechat)' 기능이 탑재된 모바일 앱 '에어라이브(Airelive)' 를 출시했다.

'에어라이브'는 글이나 사진, 영상 컨텐츠를 모바일과 웹을 통해 확산시킬 수 있는 소셜 기반의 멀티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한국어와 영어, 일어버전으로 출시됐으며 특히 여러 명과 함께 화상대화를 할 수 있는 '페이스채팅' 기능이 가장 눈에 띄는 서비스다.

'페이스채팅'은 다른 메신저 서비스와 같이 채팅의 기본 기능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화상대화가 가능하다. 실시간으로 최대 4인이 동시에 얼굴을 보며 음성대화 및 채팅이 가능하고, 화상대화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4인의 영상통화를 보고 들으며 채팅창에서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기존 짱라이브의 기능도 그대로 구현했다. 자신의 일상을 모바일로 촬영해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라이브 방송 기능은 기본이다. 아바타샵에선 유명 연예인이나 캐릭터로 제작된 다양한 무료 아바타를 다운받을 수 있다. 채팅이나 타임라인, 내 홈피 등에서 자신의 감성을 아바타로 표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친구들에게 보낼 수 있는 영상쪽지 기능과 내 폰에 있는 사진으로 멋진 효과와 음악을 삽입해 사진영상을 만들 수 있는 기능, 10초간 짧은 영상을 나눠 찍어 타임라인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10초 영상 등 다양한 영상관련 기능들도 포함됐다.

그는 화상 대화 중 영상이 끊기지 않도록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데 유아짱 시절을 포함해 5년이 넘는 시간과 2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 부었다. 에어라이브는 한 마디로 유튜브와 아프리카TV,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의 기능이 모두 포함된 복합 SNS인 셈이다. 채팅이나 사진 전송은 물론이고 개인 모바일 방송, 화상 채팅 등도 가능하다. 타임라인 기능이 있어 친구들의 소식도 알 수 있다.

에어라이브는 그가 꿈꿨던 모든 기능을 담았다. 프리챌 시절부터 꿈 꿔왔던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플랫폼의 완성체가 드디어 에어라이브에서 구현된 것이다. 미국 투자를 추진하고 있는 그는 미국 투자회사의 자금을 받아 글로벌 서비스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모든 것을 다 잃고도 다시 시작한 그가 이번에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신용마저도 잃었던 그는 진짜 맨주먹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그가 겪었을 고통과 외로움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또한 그 못지않게 괴로웠을 창업멤버들과 직원들의 힘든 나날들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어찌 보면 그는 ‘자유와 도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삼성그룹을 뛰쳐나와 맨손으로 첫 창업에 도전했던 1999년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 심정인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불가능했던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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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 창업자인 벤처 1세대 전제완 유아짱 사장이 상장사인 키스톤글로벌으로부터 50억원의 투자를 유치, 재기에 나선다. 이에 따라 지난 2012년 9월 운영자금 부족으로 문을 닫았던 영상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짱라이브’도 20개월여 만에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28일 전제완 사장은 “최근 키스톤글로벌과 50억원 투자 유치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고 이 중 20억원이 오늘 입금됐다”며 “이를 기반으로 5월중 짱라이브 서비스를 재개하고 6월15일까지 나머지 투자자금을 받아 미국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키스톤글로벌이 투자하는 회사는 한국의 유아짱이 아닌 미국 신설법인 ‘에어(Aire Inc.)’다. 에어는 올 1월 전제완 사장이 미국에 설립한 벤처회사로서 키스톤글로벌은 이번 투자로 에어의 지분 20%를 보유하게 된다. 키스톤글로벌은 이같은 내용을 29일 공시할 계획이다. 에어는 투자 유치와 함께 짱라이브를 서비스하고 있던 기존법인 유아짱을 100% 자회사로 편입하게 된다. 기존 유아짱 주주들은 정해진 비율대로 에어사의 주주로 변경된다. 전 사장은 이런 절차가 마무리되면 유아짱 사명을 에어코리아로 변경할 예정이다.

 전제완 사장은 지난 1999년 ‘자유와 도전’을 기치로 내걸고 프리챌을 창업, 2년만에 1000만명이 넘는 회원을 모으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02년 12월 주금가장납입혐의로 긴급체포되면서 프리챌은 몰락하게 됐고, 그는 훗날 개인적인 혐의는 벗었지만 230억원의 부채를 안고 파산에 이르렀다. 2008년에는 동영상 SNS 업체 유아짱을 설립, 짱라이브를 통해 한때 230만명의 회원을 모았으나 자금난을 겪다가 서비스를 중단하기도 했다.

  전 사장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영상SNS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다”며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안에 미국에서 영상SNS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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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완 유아짱 사장이 이번에 세상에 내놓은 것은 동영상 기반 소통서비스 ‘짱라이브’였다. 지난 1999년 프리챌을 창업하고 커뮤니티 서비스를 선보였던 그가 12년만에 돌아와 도전한 것은 영상소통플랫폼이란 분야.

 “소셜 동영상 모바일 풀랫폼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어 2년 내 1억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겠습니다.”

 호탕하고 씩씩하게, 전 사장은 기자간담회장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8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장에 나타난 전 사장은  “짱라이브는 기존 문자만 주고받는 모바일 메신저와 달리 영상을 주고받고 생중계도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모바일 SNS”라며 “다음달 일본을 시작으로 세계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짱라이브 앱은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무료로 다운받아 이용할 수 있다.

 짱라이브는 세가지 핵심 기능으로 이뤄져 있다. 동영상 플랫폼이 첫번째고 영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두번째, SNS 기반의 커머스가 마지막이다. 이 중에서 핵심은 기기에 상관없이 주소록을 기반으로 연동된 친구들과 문자메시지, 동영상 채팅 및 공유, 모바일 생중계 등을 가능하게 하는 SNS 기능이다. 기존 모바일 메신저들이 휴대폰 주소록에 국한돼 있지만 유아짱이 이번에 공개한 짱라이브 버전 3.0은 여기에 더해 PC 주소록과 이메일 주소록까지 연결했다. 어떤 기기로든 짱라이브 앱이나 웹페이지에 접속해 있으면 친구들과 실시간 동영상 공유가 가능하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회의하는 장면이나 동창회 장면, 결혼식 장면 등을 지인들에게 현장에서 간편하게 생중계를 할 수 있고 이를 보면서 지인들끼리 바로바로 채팅도 할 수 있다.

윤태중 부사장은 “짱라이브가 추구하는 것은 방송이 아니라 영상 소통”이라며 “방송이라고 하면 아주 거창한 장비를 들고 힘들게 준비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짱라이브의 동영상 생중계는 소통이 목적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으로 촬영을 해 이를 지인들과 나눌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릴레이 방송 기능이 있는 것도 짱라이브의 특징이다. 릴레이 방송은 친구가 생중계하는 동영상을 다른 그룹의 사용자들에게도 중계로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로 계속 연결될 수 있어서 확장성이 클 것으로 짱라이브는 기대하고 있다. 

현재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는 있는 '****톡'류의 서비스보다 한층 진화된 서비스라는 차원을 강조한 짱라이브 3.0 캐치프레이즈도 눈길을 끌었다. '톡(Talk)까지 말고 비춰봐' 어렵게 말로 하지 말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영상으로 보여주면 된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

 전 사장은 2002년 12월 프리챌 사장 시절 긴급체포되면서 이후 회사 차원의 공식 행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로서는 9년 만의 공식 행사에 모습을 나타낸 셈이다. 만감이 교차할 만한 순간이지만 그는 의외로 담담해보였다. 지나온 일보다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서일까. 2008년 그가 재기를 노리며 창업한 유아짱은 3명의 직원에서 출발해 3년여만에 120명으로 불어났고 100만명의 회원도 확보했다.

전 사장은 해외 시장에서 승부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짱라이브는 페이스북처럼 이용자가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이나 문화의 장벽이 크지 않고 세계시장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해외에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구축하는 등 공격적으로 투자할 계획입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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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의 파산을 지켜보며

뉴미디어 세상 2011. 3. 14. 14:26 Posted by wonkis
국내 1세대 인터넷 벤처이자 최초의 커뮤니티 포털사이트였던 프리챌이 결국 파산했다.프리챌의 대주주인 솔본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제 12파산부에서 프리챌의 파산선고를 결정했다고 지난 11일 발표했다.프리챌은 회사가 설립된지 12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프리챌이 파산했다고 당장 프리챌 사이트가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결국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길을 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프리챌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그 동안 사라지거나 파산한 다른 사이트들에 비해 프리챌은 존재감이 남달랐다.지금의 30대가 대학 시절 가장 많이 쓰던 서비스 중 하나가 프리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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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도전으로 시작한 프리챌
프리챌을 창업한 사람은 지금 유아짱 대표를 맡고 있는 전제완 사장이다.서울대학교 경영학과 83학번인 전 사장은 1989년 삼성물산 인사팀에 입사해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전 사장은 1991년 삼성그룹의 인사정보시스템 개발 업무에 투입돼 94년까지 이 일을 맡아서 하게 된다.

 당시 그가 이 일을 맡아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인사과에서 일하던 시절 인사 업무처리가 비효율적으로 되는 것을 보고 독학으로 컴퓨터를 공부했기 때문이다.그는 4년간 이 업무를 마치고 제1회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미국으로 1년간 지역전문가로 파견되기에 이르른다.40여일동안 미국 40개주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고,오레곤주에서 공부도 한 그는 당시 실리콘밸리에 대한 투자가 진행되던 미국의 현실에 깊은 인상을 받고 큰 자극과 도전을 받은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 3년 정도 삼성에서 더 근무했지만 대기업의 구조에서 탈피해 자유로운 생활을 동경했던 전 사장은 ‘자유와 도전’이라는 두가지 가치만 들고 미련없이 삼성을 그만뒀다.
 그가 1999년 4월 15일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한 프리챌((주)자유와도전)은 다음,네이버 등 다른 포털이나 이미 당시 국내 최대 인터넷사이트였던 야후코리아에 비해 뒤늦게 출발했지만 확실한 차별점을 갖고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인간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인터넷 상의 공간을 생각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쇼핑 섹션 바이챌, 금융 및 증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찰닷컴, 게임업체 드림챌과 조이챌, 디자인 회사 인디챌 등 그가 프리챌 설립후 확장해 나간 사업들은 이후 인터넷기업들의 모델이 될 만큼 중요한 역할들을 했었다.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꿈이었던 전제완 사장은 프리챌을 통해 그 꿈을 실현하고자 했다. 프리챌에서 강력한 커뮤니티를 구축한 것은 그런 그의 꿈을 위한 1단계였던 것이다. 커뮤니티를 통해 소프트웨어를 보급하고 그 플랫폼을 통해서 전 세계에서 누구나 자신들의 언어로 접속해 사용하는,그런 모델을 꿈꿨다고 한다.때문에 그는 다음이나 네이버 등 포털업체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봤고,독자적인 모델을 구축하려고 애썼다.

◆프리챌 돌풍
 프리챌은 당시 대학생을 주축으로 한 젊은 층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설립 2년만에 회원 1000만명을 끌어모아 야후,다음과 함께 포털 빅3로 거론될 정도로 성장을 했다.

 소프트웨어 업체의 경영자로서 그는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으로서 유료화를 생각했던 것 같다.사용자가 최소한의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필수적인 수순이었겠지만 2002년 하반기 당시엔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었다.인터넷은 전부다 공짜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절이었기에 프리챌의 새로운 시도가 미칠 영향에 다들 주목했던 것이다.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40% 이상의 회원들이 유료화에도 불구하고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전 사장은 서비스의 유료화 이후 글로벌화 및 전혀 새로운 개념의 SNS,소프트웨어 제공 등으로 서비스의 선순환을 유도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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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자유와 도전
 하지만 이런 모든 과정은 2002년 12월3일 오전 전제완 사장이 주식대금 가장납입 혐의로 전격 체포되면서 모두 끝나 버렸다.전제완 사장이 구속된 이후 그가 뽑았던 당시 인터넷 업계의 최고 인재들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회사 역시 주인을 잃고 표류하게 됐다.선장을 잃은 프리챌과 프리챌홀딩스 등은 창업 초기의 정신을 모두 상실하고 매각과 부도 등을 거치면서 완전히 다른 회사로 변했다.

 전제완 사장 개인 역시 그 이후 고난의 삶을 살았다.긴급체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가장납입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이미 그는 2년의 옥살이와 회사 부채를 개인이 떠안은 것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됐다.

 프리챌은 유료화 전환 이후 안팎으로 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었다.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유료화에 동참했다고 하더라도 책임감을 갖고 이를 진두지휘할 선장이 필요했다.하지만 전제완 사장이 구속된 이후 이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2003년에 과거 새롬기술이었던 솔본에 인수됐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인수 후에도 프리챌은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동영상 서비스,게임 등 새로 시도하는 서비스마다 실패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여기에 최대주주인 솔본과 프리챌 경영진과의 분쟁이 끊이지 않으면서 경영난이 가중됐다.지난해 프리챌 경영진은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고 소셜커머스를 위한 소셜쇼핑을 오픈하는 등 부활을 모색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프리챌이 2003년 이후 보여준 행보는 사실 전 사장이 처음 설립할 때 내세웠던 자유와 도전과는 거리가 멀었다.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보다는 기존의 서비스를 답습하는데 그쳤고,경영진과 대주주의 계속되는 분쟁은 보기에 안타까울 정도였다.

 프리챌은 여러 번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지만 솔본은 지난해 12월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다.파산신청에 앞서 솔본은 경영상황의 악화로 보유하고 있던 프리챌의 지분 83.1%를 전량 매각하고 프리챌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회사는 사라지고 사람은 남는다
 회사는 파산의 길을 걷게 됐지만 프리챌은 한국 인터넷산업에 큰 획을 그었다고 할 만하다.프리챌이 이룬 업적 때문이 아니라 프리챌이 배출한 인재들 때문일 것이다.프리챌에 청운의 꿈을 안고 입사했던 수백명의 젊은이들은 모두 당대의 실력파였다.그들은 프리챌이 몰락하는 과정에도 실력을 바탕으로 살아남아 지금 한국의 인터넷 산업을 이끄는 인물들로 성장했다.

 프리챌을 창업했던 전제완씨는 현재 인터넷 방송 및 전자상거래 플랫폼 서비스 업체 유아짱의 대표로 재직중이다.전제완 사장이 삼성물산 재직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밤세워 창업 아이템을 함께 고민했던 윤태중,장규오씨는 각각 웹젠과 블루코드 등 다른 회사를 돌아 지금은 다시 전제완 사장과 만났다.두 사람은 함께 유아짱 창업 멤버가 됐다.이태신 SK커뮤니케이션즈 본부장 역시 프리챌 창업 멤버다.

 내가 블로그에서 소개한 바 있는 이진수 포도트리 대표도 프리챌 초창기 멤버고,카카오의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고 있는 이확영 이사도 프리챌 창업 공신 중 하나다.전제완 사장이 서울대를 직접 찾아가 삼고초려했다는 일화로 유명한 조수용 전 NHN 본부장과 정욱 NHN 한게임 대표도 프리챌 초창기 멤버들이며 온라인게임 A.V.A를 만든 레드덕의 오승택 대표도 프리챌 초기 멤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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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챌 창업자인 장규오 (왼쪽부터)유아짱 상무,전제완 대표,윤태중 부사장>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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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짱,짱라이브 1.0 짱팟 오픈
 동영상 플랫폼 및 소셜네트워크 동영상업체인 유아짱은 16일 짱라이브 1.0을 오픈한다.관련 내용
 짱라이브 1.0은 영상 플랫폼 짱팟을 통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신개념 아바타를 공개할 예정이다.이 아바타는 동영상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존 아바타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소셜게임업체 선데이토즈,30억 투자 유치
소셜네트워크 게임 업체 선데이토즈(대표 이정웅)는 지난 14일 소프트뱅크벤처스와 코오롱인베스트먼트로부터 총 3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선데이토즈는 네이트 앱스토어와 네이버 소셜앱스에 아쿠아스토리,애니팡,애니사천성,애니윷놀이 등 다양한 소셜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는 회사다.이 회사의 인기 게임 아쿠아스토리는 최근 소셜 게임 최초로 단일 게임 사용자 10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또 매월 10만명씩 사용자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선데이토즈가 유치한 이번 투자는 소셜 게임 분야에 대해선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문규학 대표는 “비록 국내의 경우 소셜네트워크서비스 (SNS)의 플랫폼 정책이 미흡해 해외보다 1~2년 정도 늦게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세계적으로 소셜네트워크 게임이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현재 네이트와 네이버 등 SNS 플랫폼들이 뒤늦게나마 공격적으로 오픈 정책을 펼치고 있고 스마트폰의 빠른 보급 등 언제든 소셜 게임을 유무선으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고 있는 만큼 국내 소셜게임 1위 업체인 선데이토즈의 성장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투자 유치를 계기로 선데이토즈는 네이트 앱스토어,네이버 소셜앱스를 비롯한 국내 시장 뿐만 아니라 최근 오픈한 믹시(Mixi) 등 세계 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선데이토즈는 대표 게임 아쿠아스토리의 차기작 ‘정글스토리’를 올해 말 출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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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이라고 하면 아직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젊은이가 새로운 종류의 서비스나 상품을 들고 나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도전한다는 느낌을 준다.아마 실제 정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유아짱의 전제완 사장은 스타트업이나 스타트업 기업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일단 그는 꽤나 유명하다.프리챌의 창업자로서 이미 10년전부터 유명세를 떨쳤던 인물이다.수백억원을 투자해 한때 한국의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를 만들었던 인물인데다가 나이도 제법 많다.이래저래 흔히 생각하는 스타트업 창업자라는 이미지와는 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 사장을 한국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기업인으로 꼽았다.그가 여전히 도전의식으로 충만해 있다는 점이다.나이는 들었을지 몰라도 과거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받게 했던 명석함과 근면함은 새 출발에 대한 의지와 만나 더욱 강해졌다.과거의 영광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그는 완전히 새 출발을 했다.돈도 없고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마치 대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이가 창업하듯 황무지에서 시작했다.이렇게 생각해보면 그보다 더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머리말이 좀 길었지만 이는 전제완 사장과 그간 나눴던 대화의 내용이 나의 짧은 글솜씨로 담기에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전 사장과 만나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때로는 그의 인생관을 듣기도 하고 한때 성공했다가 몰락해버린 프리챌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을 듣기도 했다.자유와 도전을 사랑했고 자유와 도전에 청춘을 바치고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승부를 펼쳤던 그의 스토리를 듣노라면 숱한 밤을 지세워도 아마 모자르리라.이 블로그에 올리는 짧은 글 역시 그의 아이디어 중 100분의 1을 표현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그와 나눴던 대화 중 최근의 서비스 진행과 관련된 내용 일부를 정리했다.그가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보다 자세한 내용은 그의 블로그에서 접할 수 있다.내가 과거 썼던 기사블로그 글을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다.

-지난해 복귀한 뒤로 대외 활동은 많이 안하시는 것 같다.
 “요즘 서비스를 점검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 기획하고 개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조용히 지내는 편이다.”

-최근 유아짱의 방송 위젯 짱라이브의 인기가 높다고 들었다.
 “짱라이브를 플레이하는 횟수가 3월말 2만여건에서 4월25일 현재 40만건을 넘어설 정도로 급격히 증가했다.20배가 늘어난 셈이다.이 횟수가 150만에서 200만 정도 되면 손익분기점(Break Even Point)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거 프리챌과 비교해보면 어떤가.
 “당시엔 국내에서 인터넷이 막 활성화되던 시기였다.따라서 시대적인 차이점은 존재한다.하지만 단순 수치만 놓고 비교해보면 그때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것 같다.프리챌때는 300만명 방문자수를 확보하는데 2년 가까이 걸렸다.하지만 유아짱의 경우 올초부터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석달만에 40만을 넘어섰고 6개월이 되는 시점에 200만을 예상하고 있다.프리챌 시절보다 돈은 10분의 1도 쓰질 않았지만 훨씬 성장 속도는 빠르다.”

-왜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지 자체적으로 분석한 게 있나
 “현재까지 입소문의 위력으로 파악하고 있다.하나둘씩 사용자들이 짱라이브를 써보면서 쉽게 쓰고 전파가 쉽다는 것을 알고 확산되는 것 같다.과거 프리챌을 했던 시절보다 지금은 인터넷에서의 확산이 더욱 활발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평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초기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아직은 적자인 것 같은데.
 “초기이니 그렇지만 지금 속도로 보면 이르면 8월부터 흑자전환도 가능하다고 본다.”

-유아짱의 짱라이브는 누구나 쉽게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개념인데,유사한 서비스가 최근엔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다.짱라이브의 차별화된 점은 무엇인가.
 “짱라이브는 별다른 다운로드나 인스톨과정 없이 위젯 또는 플레이어 스킨을 통해,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쉽게 내 블로그 및 내 까페에서 직접 방송을 하거나 타 방송자의 방송을 중계방송할 수 있는 플래쉬 기반의 방송 서비스다.타인의 방송국을 중계할 수 있는 네트워크 방송이 가능하고,여러 개의 위젯을 활용할 경우 방송 채널 및 프로그램 편성도 가능하다.방송자가 원하는 공간,예를 들어 블로그,카페,개인 홈페이지 등에서도 방송이 가능하다.현재 대부분의 방송 관련 모델은 사용자를 자사의 사이트로 모아서 트래픽 기반의 광고수익이나 소액의 유료서비스 수익을 추구하는 ‘포털형 방송’을 지향하는 반면,짱라이브는 최초 ‘위젯퍼가기’ 이후에는 짱라이브 사이트를 방문하지 않아도 방송자가 원하는 곳에서 방송을 할 수 있는 ‘분산형 방송’을 지향하고 있다.”

-국내에서 크게 마케팅 등을 안하는 것 같다.성장 속도에 비하면..
 “일단 사용자가 어느 정도 확보되기를 기다리고 있다.좋은 방송을 많이 하고 이를 공유하는 사람들도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로 가려고 하기 때문에 돈을 써서 알리는 것보다는 입소문 등을 통해 열혈 유저가 많아지는 것을 노리고 있다.현재로선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 동영상 업체들과의 경쟁 구도는 어떻게 되나.
 “그런 것은 별로 고려하고 있지 않다.국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는 잡는 연말께부터 해외로 진출하려고 한다.12월에 영국에서부터 테스트를 시작한다.글로벌 방송 위젯 플랫폼을 지향해서 시작했기 때문에 국내 시장에만 머무를 생각은 전혀 없다.예전 프리챌때 아쉬웠던 부분도 본격적으로 날개를 펴기 전에 꺾였다는 점이다.이번엔 몸집을 가볍게 해서 일찌감치 해외에 진출,글로벌 무대에서 승부를 볼 생각이다.영국을 시작으로 영어권 국가에서 우선적으로 서비스를 하고 이어 아시아 등에도 진출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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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유아짱(www.uajjang.com)을 창업하면서 2002년 12월 이후 벤처계에 복귀한 전제완 사장은 1999년 프리챌을 창업해 전국에 프리챌 커뮤니티 열풍을 불러일으킨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전 사장은 최근 복귀와 함께 자신의 미니홈피(  http://www.cyworld.com/uaboss )도 만들었는데, 미니홈피를 통해 다시 '자유인'으로 복귀하게 된 소감과 다짐,과거 이야기 등을 비교적 자세히 풀어놓고 있다.그에 대해선 그의 홈피를 참고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겠지만,한때 인터넷 업계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에 대해 나름대로 제3자 입장에서 정리를 한번 해보는 것도 괜챦을지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장 최근의 전제완 사장의 모습.강남 사무실에서>

삼성그룹의 엘리트 사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83학번인 전 사장은 1989년 삼성물산 인사팀에 입사해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이다.전 사장은 1991년 삼성그룹의 인사정보시스템 개발 업무에 투입돼 94년까지 이 일을 맡아서 하게 된다.

당시 그가 이 일을 맡아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인사과에서 일하던 시절 인사 업무처리가 비효율적으로 되는 것을 보고 독학으로 컴퓨터를 공부했기 때문이다.그는 4년간 이 업무를 마치고 제1회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미국으로 1년간 지역전문가로 파견되기에 이르른다.지금도 그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회상하는 때다.

40여일동안 미국 40개주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고,오레곤주에서 공부도 한 그는 당시 실리콘밸리에 대한 투자가 진행되던 미국의 현실에 깊은 인상을 받고 큰 자극과 도전을 받은 것 같다.(그에 의하면 이때가 인생이 바뀐 시점이라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 3년 정도 삼성에서 더 근무했지만 대기업의 구조에서 탈피해 자유로운 생활을 동경했던 전 사장은 '자유와 도전'이라는 두가지 가치만 들고 미련없이 삼성을 그만뒀다.

자유와 도전정신으로 프리챌 창업
그가 1999년 4월 15일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한 프리챌((주)자유와도전)은 다음,네이버 등 다른 포털이나 이미 당시 국내 최대 인터넷사이트였던 야후코리아에 비해 뒤늦게 출발했지만 확실한 차별점을 갖고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인간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인터넷 상의 공간을 생각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쇼핑 섹션 바이챌, 금융 및 증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찰닷컴, 게임업체 드림챌과 조이챌, 디자인 회사 인디챌 등 그가 프리챌 설립후 확장해 나간 사업들은 이후 인터넷기업들의 모델이 될 만큼 중요한 역할들을 했었다.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꿈이었던 전제완 사장은 프리챌을 통해 그 꿈을 실현하고자 했다. 프리챌에서 강력한 커뮤니티를 구축한 것은 그런 그의 꿈을 위한 1단계였던 것이다. 커뮤니티를 통해 소프트웨어를 보급하고 그 플랫폼을 통해서 전 세계에서 누구나 자신들의 언어로 접속해 사용하는,그런 모델을 꿈꿨다고 한다.때문에 그는 다음이나 네이버 등 포털업체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봤고,독자적인 모델을 구축하려고 애썼다.

프리챌 돌풍
프리챌은 당시 대학생을 주축으로 한 젊은 층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설립 2년만에 회원 1000만명을 끌어모아 야후,다음과 함께 포털 빅3로 거론될 정도로 성장을 했다.

소프트웨어 업체의 경영자로서 그는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으로서 유료화를 생각했던 것 같다.사용자가 최소한의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필수적인 수순이었겠지만 2002년 하반기 당시엔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었다.인터넷은 전부다 공짜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절이었기에 프리챌의 새로운 시도가 미칠 영향에 다들 주목했던 것이다.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40% 이상의 회원들이 유료화에도 불구하고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전 사장은 서비스의 유료화 이후 글로벌화 및 전혀 새로운 개념의 SNS,소프트웨어 제공 등으로 서비스의 선순환을 유도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구속과 7년의 잠적
하지만 이런 모든 과정은 2002년 12월3일 오전 전제완 사장이 주식대금 가장납입 혐의로 전격 체포되면서 모두 끝나 버렸다.

그가 꿈을 안고 세웠고,현재 NHN에 있는 조수용 본부장,오승택 레드덕 대표 등 그가 직접 뽑은 최고의 인재들이 그가 구속된 이후 차례로 프리챌을 떠나게 된다.창업자가 구속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선장을 잃은 프리챌과 프리챌홀딩스 등은 창업 초기의 정신을 모두 상실하고 매각과 부도 등을 거치면서 지금은 완전히 다른 회사로 변했다.

결국 긴급체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가장납입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이미 그는 2년의 옥살이와 회사 부채를 개인이 떠안은 것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됐다.

경제적인 파산과 구속이라는 엄청난 일은 그를 이후 6년이 넘는 기간동안 조용히 지낼 수 밖에 없게 했다.2004년 12월에 출소한 이후에도 그는 여러차례 재기를 모색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한다.

텔미정보통신으로 복귀 시도
그는 2007년 텔미정보통신의 전문경영인으로 근무하면서 클릭질이라는 서비스를 개발해 오픈했다.그로서는 출소후 2년반만에 시도한 복귀전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전문경영인의 영역은 한계가 있었다.뿐만 아니라 오너와의 의견 충돌로 인해 그가 계획됐던 대로 일은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봄 그는 이 회사를 떠났고 그가 떠난 후 텔미정보통신은 폐업처리됐다.모처럼 잡은 기회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신분 회복과 유아짱 오픈
그는 2월20일을 기점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신분으로 회복됐다.그 동안 그가 대표이사로서 떠안았던 부채 등이 해결되지 않아 결국 파산 신청을 했고 그것이 20일로 최종 끝난 것이다.

최근에는 유난희 대표와 함께 유아짱의 공동 대표이사로 취임도 했다.그가 이렇게 외부에 공식적으로 대표이사로 재등장하는 것은 2002년 12월 이후 햇수로 7년만의 일이다.

그가 대표이사로 취임하는 시점에 콘텐츠 전문투자사인 베넥스인베스트먼트로부터 1억원을 투자받기로 계약을 했다.적은 돈이지만 그에겐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이 어려운 시기에,과거 큰 실패를 경험했던 그에게 다시 온 기회이기에 소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가장납입 부분응 무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실추됐던 명예 일부분을 회복헀다.하지만 대박의 문턱에서 좌절한 벤처기업인이라는 딱지에서는 아직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그가 결국 그의 명예를 온전하게 회복할 길은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하는 길 뿐일 것이다.

이를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는 듯,그의 미니홈피를 들어가보면 과거에 대한 담담한 정리와 함꼐 새로운 결의와 의지로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그가 성공을 시도하다 좌절한 숱한 다른 벤처인들과 같은 길을 갈지,두번째로 인터넷으로 대박을 일궈내는 희귀한 사례의 주인공이 될지는 조만간 밝혀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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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 창업자 전제완 사장이 과연 언제,어떻게 컴백할까?"

나는 오랫동안 이런 의문을 갖고 있었다.2001년에 접했던 프리챌은 나에겐 학창 시절 대학원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 수 있게 해 준 매개체였고 나에겐 가장 유용한 서비스였다.한창 뻗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서비스가 어느날 갑자기 이전의 모습을 잃어버렸을 때 나 역시 이 서비스의 사용을 중단했고,나는 한참 지나서 왜 그때 그 서비스가 달라졌는데 알게됐다.바로 창업자인 전제완 사장이 구속된 이후 회사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그랬던 프리챌 창업자 전제완씨가 올초 '유아짱'(http://www.uajjang.com)이라는 쇼핑몰을 창업해 컴백했다.99년 4월 '자유'와 '도전'정신을 갖고 프리챌을 창업했던 그가 구속과 파산이라는 개인적인 엄청난 시련을 딛고 다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의 재기는 단순히 한 개인의 성패 여부를 떠나 대박과 실패 모두를 경험한 한국 1세대 벤처기업인의 새로운 실험이라는 점에서 벤처기업사에도 분명히 의미가 있을 만한 일인 것 같다.삼성을 박차고 나와 자유와 도전으로 수많은 젊은이에게 꿈과 용기를 주었던 그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쇼핑호스트 유난희씨를 비롯,과거 프리챌 멤버들과 의기투합해 재기를 모색하고 있는 그와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공교롭게도 내가 미국에 나와 있을 때 연락이 닿아 주로 메신저로 대화를 나눴다..

전 사장은 이미 재작년 클릭질이라는 새로운 컨셉의 인터넷서비스로 컴백했었지만 지난해 상반기 이 회사를 떠나 재기를 모색해왔다.전 사장이 떠난 후 클릭질 서비스를 해왔던 텔미정보통신은 지난해말 최종 부도처리된 상태다.(나는 텔미정보통신과 관련된 내용을 내 이전 블로그와 기사에서 소개한 바 있다.)
<블로그>
http://limwonki.com/94
 <기사>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12786671


일단 그와 메신저와 전화로 나눈 대화 내용을 몇 차례에 나눠서 실을 예정이다.

내가 대략 생각하고 있는 순서는..
1)전제완 사장,신개념 쇼핑몰 '유아짱'으로 컴백
2)전제완 사장은 누구?
3)구속과 도전.전제완 사장 7년의 행적.(1문1답식)
4)시련의 한국 인터넷벤처 1세대.
5)한국 인터넷산업을 움직이는 (구)프리챌 멤버들


일단 이 정도인데,다른 더 좋은 안이 생길 경우 추가할 생각이다.

그가 2002년 12월 구속돼 활동을 중단한 이후 6년여만에 선보인 첫 공식 서비스인 유아짱은 (클릭직의 경우 오너가 따로 있었고 전 사장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일종의 '명품중심의 상거래 사이트'다.

전 사장은 이를 '스토리가 있는 상거래,비주얼 쇼핑'이라고 설명한다.현재는 쇼핑호스트 유난희 대표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방송시스템을 접목해 해외의 상품을 한국으로 소개하는 인터넷 방송 서비스도 할 계획이다.즉 중국,미국,인도,이탈리아 등 국의 재래시장에 있는 우수한(또는 독특한) 상품들을 마치 홈쇼핑처럼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소개하는 방식이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상품에 대한 수요가 있지만 국내에서 이를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아주 쉽게 접근하자면 명품을,또는 숨어있는 좋은 제품을 전문가의 추천으로 싸게 구입한다고 볼 수 있다)

전 사장은 이를테면 이탈리아 현지에 가서 공장도 보여주고 제품도 생생하게 소개하고 심지어 사용법까지 인터넷으로 알려주는 등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하지만 지난달 오픈한 이 사이트는 아직은 자금이 넉넉지 않아 한창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단계다.

윤태중 이사,장규오 이사를 비롯해 주요 멤버들이 과거 프리챌 창업 멤버들이다.자본금 3500만원으로 시작한 유아짱은 아주 초기 단계라 그야말로 90년대 벤처 정신으로 무장한 1세대들의 재기 실험장이 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전 사장을 비롯해 직원들 절반이 월급 없이 벤처 정신으로 버티고 있다.

7년 만에 다시 벤처기업 사장으로 돌아온 그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까?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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