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웍스 창업자인 이승일 부사장은 이전에 SK텔레콤에서 19년 동안 일하다 퇴직해 창업에 나섰다. 이 정도 오랫동안 일을 해 온 사람이 자신의 경력이나 경험과 전혀 관계 없는 듯 보이는 분야에 뛰어드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그만큼 두 번 다시 오기 힘들 것이라 생각될 만큼 좋은 기회라 판단했기 때문 아닐까. 그가 생각한 기회는 주차 대행에서 시작되는 O2O 서비스였다.

SK텔레콤과 삼성전자 출신들이 뭉쳤다

그는 SK텔레콤에서 19년 동안 일하며 무선 서비스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회사 재직 중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도 마쳤다. SK텔레콤에서는 그는 티맵, 네이트 드라이브 등의 서비스를 해 본 경험이 있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대기업에서 일했지만 그는 창업을 꿈꿔왔다고 한다. 입사한 지 10년이 한참 넘었던 시절, 2007년에 한 차례 시도도 했었다. 회사에 몸을 담고 있기에 직접 할 수는 없었고 다른 사람이 하는 사업에 지분을 투자하고 얼마쯤 도와주는 식으로 참여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직접 하지도 않는데다 본업이 아니다보니 사업이 잘 될 턱이 없었다. “결국 직접, 전력을 다해서 해야되겠더라구요. 그때 그걸 배웠어요.”

이번에는 직접 도전해보기로 했다. 같은 회사에서 티맵 기획 업무를 하기도 했던 이앙과 뜻이 맞았다. 문제는 개발자. 두 사람 다 경영과 기획 등의 업무를 주로 했고 백그라운드도 비슷했다. 이앙 대표는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나와 같은 학교에서 글로벌 MBA를 했다. 이승일 부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에서 MBA를 했다. 이들을 보완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핵심적인 개발 인력이 급했다.

<지니웍스 창업멤버 6인방. 왼쪽 세번째가 이승일 부사장, 왼쪽 네번째가 이앙 대표.>

때마침 삼성소프트웨어멤버십 출신으로 삼성전자에 있었던 개발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끼리 개발 중심의 회사를 이미 차려놓은 터였다. 각기 다른 분야이긴 했지만 삼성전자에서 개발자로 근무하고 있던 이들은 막상 회사를 설립해 경영을 하려고 보니 경영과 마케팅 등의 분야 경험이 없어 고심중이었다. 어찌보면 두 팀의 만남은 환상적인 조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SK텔레콤과 삼성전자 출신의 6명은 이렇게 모여 올 61일 지니웍스란 법인을 설립했다.

Pain point, ‘the last mile’

지니웍스는 모바일 시대에 맞춰 기술을 통해 고객의 생활을 바꾸는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이들이 첫 번째 아이템으로 삼은 것은 발렛파킹, 즉 주차대행 서비스였다.

이승일 부사장은 통신사 경력의 인물답게 주차 서비스도 통신 방식으로 설명을 했다. “무선통신도 사실 마지막 순간에 휴대폰 단말기로 전파가 가는 그 부분을 제외하면 그 전까지는 다 유선통신이거든요. 기지국간 유선으로 대부분 연결하고 마지막 부분만 무선으로 해결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거죠. 여기서 품질의 승패가 갈리거든요. 주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큰 길을 갈 때는 별 무리없이 가는데 주차하기 직전의 마지막 1마일이 문제에요. 통신에서는 the last mile이라고 하는데, 그 얼마 안되는 거리에서 시간을 상당히 많이 잡아먹고 운전자들은 가장 불편을 많이 느끼죠. 이런 불편을 해결해주겠다는 겁니다.”

사실 그렇다. 강남이나 광화문, 여의도, 신촌이나 홍대앞 등 약속이 많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갈 때 가끔 차를 갖고 가야할 상황이 생겨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근처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거나 있어도 주차하기 너무 번거롭거나 주차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 예상을 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이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거의 없다.)

지니웍스의 파킹온(ParkinOn)은 이런 사람들이 위해 주차를 대신해준다. 스마트폰으로 발렛파킹 서비스를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이미 발렛파킹 서비스는 많은데, 차별점이 있다면 스마트폰으로 부를 수 있고 나올 때 언제든 다시 부르면 차를 있는 곳으로 가져다준다는 점이다. 과거 강남에서 발렛파킹인 줄 알고 차 키를 맡겼다가 차를 도난당하는 일이 많았는데 파킹온은 업체가 운영하고, 법인대리기사들과 계약을 맺어 안전하다. 보험에 가입해서 사고시에도 대비를 철저하게 해 놨고 주차를 아무데나 하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다. “대리운전보험 뿐 아니라 차량 탁송 보험에 주차장 배상책임보험까지 들었어요. 3중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은 거죠.”

지니웍스는 파킹온 서비스를 위해 민영주차장과 계약을 체결하고 공영주차장도 곳곳에 확보해 이용을 하고 있다. 지난 715일에 베타서비스를 시작, 91일에 오픈베타로 전환했고 10월부터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 물론 아직은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주차에서 대리운전, 세차, 정비까지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얼마나 쓸까. 생각보다 서비스 확대 속도는 느리다는 게 지니웍스의 분석. 이유가 뭘까. 우선 2가지 허들이 있었다. 사실 서비스를 실제로 해 보기 전에는 예상하기 힘든 부분이다. “아직까지는 사용하기 30분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하거든요. 이게 좀 허들이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브랜드 이미지, 즉 사람들이 친숙해하고 믿을 만한 서비스인가하는 점이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모르는 사람한테 자신의 소중한 자동차 키를 맡기는 걸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결국 신뢰를 줘야했다. 신뢰를 주려면 친숙한 느낌, 어디서 많이 봐서 익숙한 느낌도 중요하고, 써 보니 믿을 만하다는 이미지도 필요했다. 우선 자체적인 이미지 개선을 위해 직원들에게 유니폼을 입히고 로고와 마크가 새겨진 모자를 쓰게 하고 아이디카드도 발급했다.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SK텔레콤의 티맵과 제휴를 맺고 이벤트도 하고 있다. 티맵에서 특정 장소에 갔을 때 직접 주차하기 어렵다면 주차대행서비스 파킹온을 부를 수 있는 클릭 버튼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결국엔 주차대행을 넘어서야 한다. 주차대행은 기본이고 차를 맡긴 고객이 운전을 할 수 없을 경우 대리 운전도 해 주거나 그 다음날 차를 가져다주는 차량 배달(Car delivery) 서비스도 가능하다. 차를 한 번 맡긴 고객의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끊김없는 서비스(Seamless service)를 제공하겠다는 것. 고객은 파킹온 앱을 통해 차량의 위치나 주차 지역, 발렛파킹 운전자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지니웍스는 서비스에 앞서 기술을 개발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는 작업을 했다. 우선 주차장, 배차 시간, 주차장까지의 경로 등을 최적화해야 하는데 이 알고리즘을 자체 개발한 것이다. 지난 7월에는 온디맨드 주차대행 서비스 제공 서버 및 서비스 제공방법에 관한 특허도 출원했다. 교통 상황과 고객 및 기사의 위치, 주차장 위치 및 상황에 따라 데이터를 분석해 탄력적으로 주차장 및 기사를 배정하는 게 특징이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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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할 때 뭐가 가장 중요할까. 과거엔 시험에 나오는, 또는 성적을 올려주는 좋은 참고서를 사 보거나 알짜배기 정보를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물론 열심히, 효율적으로 학습을 하긴 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정보는 차고 넘친다. 어디에서든 비슷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정보가 너무 많아서 뭐가 중요한지, 그 중 나에게 맞는 정보가 뭔지를 결정하고 선택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정보가 뭔지를 아는 게 진짜 지식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뤼이드는 학습에 있어서도 바로 이런 점이 중요하다고 간파했다. 천편일률적인 정보가 아니라 수험생이, 학습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정보와 학습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시작된 것이 뤼이드의 학습 플랫폼 산타!’.

인생의 대전환. 2011년 스프링보드

장영준 대표는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U.C. Berkeley)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샌프란시스코 인근으로 갔으니 이미 그때부터 IT(정보기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단다. “사업에 관심이 많긴 했어요. 그런데 IT쪽은 전혀 아니었죠. 그쪽 백그라운드도 별루 없구요. 수업도 프랜차이즈 뭐 이런 것 위주로 들었어요.”

그래도 그 동네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IT의 물결을 어찌 피해갈 수 있겠는가. 2011년 고산 타이드인스티튜트 대표가 운영하는 글로벌 스타트업 스프링보드에 참여했다가 그는 IT업계의 거물들이라고 할 만한 인물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된다. 권도균, 석종훈, 김창원, 조성문 등이 대표적이다.

제가 사업을 하고 싶었던 건 사실 판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뭔가 엄청난 영웅들의 이야기인 것 같았죠. 그런데 IT업계의 창업 스토리를 듣고 그들을 만나 도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게 아니었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게 뭐였나요.”

작지만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 거기서 시작해서 하나씩 이뤄가는 것. 그 첫걸음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됐죠. 사실 좀 충격이었어요.”

미국에서 만나 알게 된 김창원 전 태터앤컴퍼니 대표와 만나 타파스미디어를 창업한 게 그의 첫 창업 이력이 됐다. 처음엔 김창원 대표의 사업에 함께 할 만한 사람을 소개시켜주기 위해 수소문하다가 자신이 같이 하게 됐다. 사실 그는 교육 관련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타파스미디어 역시 처음엔 교육 만화 쪽으로 방향을 잡았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이 직접 시작하고 싶었다고 한다. 20136. 장영준 대표는 귀국했다.

잇따르는 실패

애시당초 교육 분야의 사업을 하고 싶었던 그는 성인 대상 교육업으로 대상을 잡았다. 2013년 여름에 한국에서 그의 두 번째 사업이자 혼자서 하는 첫 번째 사업 도전에 나섰다.

교육이란 분야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그는 영역을 좁혔다. 보험설계사들에 대한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추진했다. 보험설계사들이 수시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 현실에 비해 이들을 위한 콘텐츠나 플랫폼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보험업에 경험이 없고 콘텐츠 분야에 대해선 더더욱 아는 바가 적었기 때문에 공동창업자를 찾았다. 공동창업자에게 필수적인 경력은 물론 보험업이었다. “그래서 보험설계사와 함께 창업을 했죠. 외국계 대형 보험회사 출신이었는데 경험이나 인맥 등이 풍부하다고 판단이 됐어요.”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 개인적인 채무가 있었던 이 공동창업자가 자금을 들고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잃은 자금을 결국 나중에 상당부분 되찾긴 했지만 당장의 손실은 상당히 컸다. 게다가 당시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사람 때문에 고초를 계속 겪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데도 그가 지치지 않고 계속 사업에 나섰다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다.

어쨌든 사람 고생을 계속 하면서 그는 다른 아이템을 찾았다. 물론 교육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자신의 학창시절 수업과 학원 강의, 비슷비슷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학습프로그램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다. “학교 수업이든, 학원 수업이든 대체로 정해진 내용을 반복해서 가르치쟎아요. 실제 학습을 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나 수준과는 별 상관이 없죠.”

그는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학습 과정이 아닌 학습자에게 최적화된 교육 서비스를 기치로 내걸고 뤼이드(Riiid)를 설립했다. 20145월이었다. 회사명은 제거한다는 뜻의 영어단어를 위트있게(?)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오답노트 리노트로 기반 구축

앞선 창업에서 사람 때문에 고생한 전력이 있는 장 대표는 이번에는 멤버들 구성에 더욱 공을 들였다. 교육업체이지만 콘텐츠 회사가 아닌 기술 회사를 지향했다. 정보나 콘텐츠를 많이 끌어모으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최적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 장 대표는 뤼이드에 대해 콘텐츠 회사가 아니라 기술 회삽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하려면 회사의 인력 구성도 기술자가 중심이 돼야 했다. 개발 책임자 허재위 이사는 구글 개바자 모임(GDG) 운영자의 추천으로 만났다. 허 이사는 알고리즘 엔지니어링의 전문가로 대용량 사전의 데이터를 분석해 연관 단어를 추출하는 엔진을 개발했다. 그는 안철수연구소에서 모바일 보안 제품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콘텐츠의 차별화를 위해 디자이너도 중요했다. 디자인 총괄인 노민성 이사는 장 대표가 미국에서 타파스미디어를 창업했을 당시 함께 일했던 인물이다. 뤼이드의 브래딩과 편집 디자인 등을 총괄하고 있다.

세상의 불편함을 해결할 혁신 아이디어뤼이드의 캐치프레이즈다. 불편함 해소의 첫 번째 아이디어는 오답노트. 오답노트가 공부를 하면서 매우 중요한 도구이자 과정이지만 실제로 이를 제대로 하기엔 불편한 점이 너무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문제를 무작정 많이 풀기만 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어요. 각자 취약점이 있기 마련이죠. 그런 취약점은 사실 오답노트를 보면 다 알 수 있어요. 그런데 공부하면서 오답노트를 만들기가 쉽지 않죠. 시간도 많이 걸리구요. 무엇보다 오답노트를 만들어도 틀린 것만 반복학습하면 될지 아니면 그 다음에 어떤 단계로 나가면 되는지 판단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죠.”

뤼이드의 리노트는 일종의 오답노트를 학습자가 간편하게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용자별 오답노트가 생성되면서 엄청난 데이터가 축적된다는 것이다. 즉 어떤 사용자는 어떤 부분에서 취약한지가 오답노트를 만들면서 바로 분석이 된다는 것. 장 대표는 그렇게 많은 문제를 풀 필요도 없습니다. 사용자별로 30문제만 풀면 개인별 취약점이 바로 분석이 됩니다.”

산타! 내년 1월 정식 서비스

그의 설명이 이어지면서 왜 뤼이드가 지향하는게 많은 학습 콘텐츠를 제공하는 게 아닌,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최적화된 콘텐츠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이것을 Adaptive Learning이라고 표현했다. 사용자와 컴퓨터 프로그램이 상호간에 서로에게 적응해가면서 최적화된 학습 방법을 찾는 알고리즘이다.

내가 뭘 모르지? 이게 사실 가장 중요한 질문이죠. 공부할 때 사실 다들 이것을 알고 싶어해요. 하지만 아무도 답해주지 않죠. 그냥 계속 똑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식으로만 대응을 하고 있어요. 본질을 해결하려고 안하는 거죠.”

궁극적인 목적은 개인 맞춤형 교육 서비스. 장 대표는 이 서비스의 이름을 산타라고 명명했다. 산타클로스가 어린이들에게 각각 특성에 맞춰 선물을 해 주듯, 산타 역시 그렇게 하겠다는 것.

결국 산타는 개인별 취약점 정보의 핵심 데이터인 오답 노트에 애널리틱스 기술을 접목한 개인별 맞춤형 교육 플랫폼이다. 기술 기반이기 때문에 언어나 교과 과목에 상관없이 다양하게 확장이 가능하다. 회사의 인력 구성도 70% 이상이 개발자 출신이다.

산타는 현재 비공개서비스중이다. 일종의 클로즈베타서비스. 내년 1월에 공개 서비스로 전환된다. 수익 모델은 동영상 콘텐츠의 유료화를 검토하고 있다. 콘텐츠는 이미 제작중이다

by wonkis

<뤼이드 직원들이 산타 앱이 실행된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가운데가 장영준 대표. 사진은 뤼이드의 박윤수 매니저께서 찍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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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의 뭔가 불편한 것들을 온라인이나 모바일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시도는 이제는 대세라고 말하기에도 뒤늦은 감이 있을 정도다. 결국 생활이 달라지지 않는 IT나 기술 발전이란 큰 의미가 없기에, 그리고 진짜 시장이 있는 곳을 찾아서 너도나도 앞다퉈 오프라인 시장으로 달려들고 있다.

너도나도 할 때는 본질이 더 중요해진다. 누가 더 업의 본질을 간파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느냐에서 승부가 갈리지 않을까. 무엇보다 누가 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가의 싸움이다. O2O 전쟁터에서도 핫한 분야 중 하나가 건강분야다. 특히 피트니스센터를 연결해주는 비즈니스는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이미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도 몇몇 기업을 소개한 바 있다. 각각 다른 차원에서 비슷한 분야에 도전한 이들은 각자의 영역을 독립적으로 개척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들 중 누군가만이 살아남게 될까. 한국의 스타트업 211호의 주인공은 클래스픽 김영민 대표다.

소셜커머스의 한계, O2O의 미래

김영민 대표는 숭실대 경제학과(00학번)2008년에 졸업하고 바로 IT컨설팅 업체에 취직했다. 그런데 그가 한 일은 여러 오프라인 매장들의 IT 관련 컨설팅이었다. 왠지 이때부터 그는 오프라인 매장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컨설팅을 하고, IT를 접목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삶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된 것은 2011년 당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티켓몬스터(티몬)에 입사한 것이다. 티몬에서 그는 식당, 헬스장 등을 다니면서 필드 영업을 했다. 해당 매장들이 할인 쿠폰을 발행하고 이것을 티몬에서 판매를 하는 일이었다. 스스로 이 때 “O2O에 눈을 떴다고 회상했다.

똑같은 매장을 가더라도 누가 가서 어떻게 영업하느냐에 따라 판매가 확 달라지는 걸 알았어요. 포지셔닝이나 네이밍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걸 현장에서 처음 배웠죠. 예를 들어 이런 거에요. 식당에서 똑같이 2인분 메뉴를 내놓고 프로모션을 해도 그냥 2인분에 얼마 이렇게 표헌하는 것과 커플전용이라고 하나 붙여놓고 파는 게 확실히 관심을 받는 포인트가 다르거든요.”

하지만 그는 동시에 소셜커머스의 한계도 봤다. “소셜커머스는 서비스업종의 경우 특히 문제가 좀 있었어요. 음식이나 물건을 파는 곳과 달리 피트니스센터나 필라테스 요가 등을 하는 헬스장의 경우 3개월권, 6개월권 이런 식으로 소셜커머스 상품을 판매하는데 그것 때문에 매장에 와서 결제하고 이용하는 고객을 추가로 받기 어려워지는 일이 발생한거죠. 결국 수량은 맞췄는데 서비스 질이 떨어지거나 고객 단가가 낮아져 수익성이 떨어지게 되는 거죠.”

결국 업체를 도와주려고 시작했건만 이 업체가 이런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산하는 것도 겪었다. 소셜커머스의 한계를 절감한 그에게 때마침 변화가 온다. 2013년으로 접어들면서 티몬은 지역별, 업종별 카테고리 확장은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 다음이 뭘까 고민하던 그에게 위메프에서 제안이 온다. 신사업팀을 이끌어보지 않겠냐는 것. 위메프로 옮긴 그는 신사업팀을 맡아 다양한 새로운 시도를 한다. 컬쳐크라우드펀딩으로 아이돌이 아닌 가수들의 앨범 판매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는가 하면 알리페이의 한국 진출시 결제기능을 붙이는 작업도 했다.

2014년 봄에 그는 다시 회사를 옮겨서 새 일을 했다. 레코벨(Recobell)이라는 회사였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추천을 해주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개인화된 정보를 추천해주고 분석하는 서비스. 소셜커머스 분야에서 일하면서 빅데이터의 중요성과 이를 분석하고 체계화해 서비스로 연결하는 것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면 엄청나게 전략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런 경험들은 그가 지금의 일을 하기 위한 기반을 차곡차곡 쌓는데 일조했다.

미 클래스패스에서 아이디어 얻어

20145월 그가 레코벨에 입사한 후 10월까지는 예상했던 대로 일을 해 나가던 기간이었다. 그런데 그때 변수가 생겼다. 레코벨이 옐로모바일에 인수가 된 것이다. “그 뒤로 동기부여가 좀 떨어지게 되더라구요. 저는 벤처기업에 입사해서 마음껏 일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큰 회사에 속하게 되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사회 생활이 펼쳐졌어요.”

한동안 고민했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내 일을 한 번 해보자는 거였다. 하지만 무엇을 할 건가가 문제였다. 자신의 관심사, 소셜커머스와 iT컨설팅, 빅데이터 등 자신의 경험을 아우르는 어떤 절묘한 한 수가 필요했다. 자신이 진정 관심있어 하는 일에서 답은 나왔다.

제가 20대 초반에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람한 가슴과 탄탄한 복근이 없다면 남자가 아니다라고요. 그래서 실제 그런 몸매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닙니다만(웃음) 그 과정에서 운동을 상당히 많이 했겠죠. 그런데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발견했다는 것은 사실 우리가 다들 알고 있는 문제들이다. 운동을 하고 싶은데 집이나 회사 근처 피트니스센터에 등록을 하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클래스가 없는 경우가 많다. 1-2주 이용해보고 장기로 끊고 싶은데 당장 등록을 해야 한단다. 막상 돈을 엄청나게 내고 나면 영 아닌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나마 이 정도면 다행이다. 아예 피트니스센터가 폐업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생돈만 날린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어디나 있나보다. 미국에서 이런 문제점에 착안해 클래스패스라는 서비스가 앞서 나왔다. 물론 한국의 형태와는 약간 다르다.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는 피트니스센터에서 무료 체험권을 나눠주는데 이것을 모아서 고객에게 유료로 판매하고 대신 고객들을 몰아주는 역할을 하는 업체다. 헬스장 등 운동 관련 업체들이 갖고 있는 마케팅 고민을 해결해주고, 고객들에겐 적은 돈이나마 내고 여러 곳의 헬스장을 시험삼아 써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미미박스와 같은 화장품 섭스크립션 업체들이 샘플을 공짜로 받아 모아서 소비자들에게 유료로 판매하면서 사실상 업체와 고객 모두에게 득이 되는 사업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섭스크립션 형태로 판매를 한다는 것까지 똑같다. 흔히들 대동강 물을 팔아먹는 봉이 김선달식 서비스인데, 헬스장에도 적용을 할 수 있다.

<<클래스픽 멤버들.(왼쪽부터) 성윤환 매니저, 김정엽 매니저, 홍도희 매니저(디자이너), 김영민 대표, 류창선 팀장(개발). 사진 ; 클래스픽 제공>>

그런데 이걸 소셜커머스 식으로 판매하면 부작용이 많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할인받은 티켓을 산 사람들이 특정 시간대에 몰리거나 하면 다른 멀쩡한 회원들이 제때 운동을 못하는 일이 생긴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미리 예약을 하게 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플랫폼화하면 된다. 좌석배정제까지 도입해 클래스패스는 대박이 났다. 자 좋다. 이런 방식의 많은 서비스들이 실제로 한국에서도 서비스를 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생각은 좀 달랐다.

한국에선 클래스패스 방식으로 여러 곳의 헬스장을 계약하게 하고 어디에 있든 이곳에 가서 운동하게 하는 시스템이 맞지 않아요. 사람들의 성향이 외국과 달리 그렇게 외향적이지 않고 장소를 많이 가리거든요. 익숙한 곳에서 운동하는 걸 선호하죠. 무엇보다, 트레이닝복, 운동화, 세면도구, 화장품 등을 어떻게 일일이 들고 다니겠습니까.”

정곡을 찌르는 지적이다. 헬스장에 가면 운동복 정도는 제공하겠지만, 화장품이나 운동화, 자기만의 세면도구, 화장품 등은 각자 자신이 챙겨야 한다.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사람들이 항상 차를 갖고 다니는 문화에선 이게 가능하겠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가방만 몇 개씩 들고다녀야할 지도 모른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김 대표는 이런 문제의 본질을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운동하는 이들의 본질적인 고민은 뭘까. (1)우선 집이나 회사 중 어디에서 운동할까의 문제가 있다. (2)한 가지 운동만 하면 질릴 수 있다는 것도 고민 중 하나다. (3)내 스케줄은 수시로 변하는데 매번 업체 스케줄에 맞춰야 하는 것도 어려움이다. (4)사전 정보 없이 남의 말만 듣고 덜컥 등록을 했는데 막상 이용해보니 자신과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5)6개월이나 1년씩 장기간의 기간을 등록했는데 업체가 폐업을 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뭘까. 프라이머 지원 팀에 선정된 그는 권도균 대표의 조언을 들었다. “플랫폼부터 덜컥 만들려고 하지 말고 어떤 채널이든 미리 테스트를 해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일단 저렴한 가격에 피트니스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구상했다. 이를 자신의 블로그와 페북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렸다. 예를 들어 2주 이용권을 3만원에 파는 식이었다. 싸다고 볼 수도 있지만 고작해야 2주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유료에 반응하는 것과 이런 체험 상품에 얼마나 관심을 갖느냐는 것. 생각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빨리 왔다. “댓글로 신청해야 하고 돈 입금도 계좌이체로 해야 하고. 엄청 불편한 방식이었죠. 그런데 20개 상품을 준비했는데 바로 다 동이 나더군요. 되겠다 싶었어요.”
그는 사람들의 운동에 관한 본질적인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우선 결정 전에 체험이 가능한 상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용한 만큼만 돈을 내도록 후불이용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단위도 세분화했다. 예를 들어 10PASS를 사면 다섯 번을 갈 수 있는 방식. 좀 더 큰 단위 구매도 가능하다. 그리고 단계적으로 자신의 스케줄을 보고 예약을 할 수 있게 했다.

자 이런 방식으로 하니 그가 앞서 제기헀던 다섯가지 문제는 다 해결된다. 그는 시장은 업체가 만드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미국의 클래스패스 모델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해선 안된다는 신념도 있었다. 업체에겐 클래스패스 모델(이용 횟수 제한, 현장 결제 유도)이 좋을지 모르지만 소비자들은 불편할 수 있다. “우리는 철저하게 소비자들에게 편리한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업체에게도 좋을 겁니다. 피트니스센터들도 결국 소비자들이 만족해야 더 몰려오고 정기 결제를 하고 운동 인구가 늘어나면서 파이가 커질테니까요.”

그의 말을 듣다보면 그는 확실히 소셜커머스에서의 경험을 허투루 쓰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피트니스센터 이용권이라는 것도 하나의 할인 쿠폰 상품과 같은 것이고 이것을 이용하는 고객이 최고로 만족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게 이런 서비스업의 과제인 것이다. 소비자를 최고로 만족시키고 결국 피트니스센터 업체들에게는 최고의 마케팅 채널을 제공해주면 된다. 그에 업의 본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궁금한 게 있었다. 이 시장이 별로 크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얼마 되지 않는 운동인구, 아주 제한된 시장에서 하는 이런 방식이 얼마만큼의 수익을 가져다줄 것인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운동 클래스 예약을 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을 생각이란다. ‘건강관리 토탈 플랫폼이 그가 지향하는 가치다. 개인화된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선 물론 우선 고객이 좀 늘어야 한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생활패턴과 건강 정보도 수집가능해야 한다. 모든 것을 자신이 할 필요는 없다. 건강 관련 업체 등과 제휴해서 데이터를 모으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보여준 클래스픽의 캐치프레이즈가 눈길을 끌었다

‘Pick & Play’ (자유롭게 선택하고 즐겁게 운동하자.) 

아주 쉬운 말이지만, 지금까지 이걸 제대로 구현한 곳은 거의 없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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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유통, 언론, 게임개발, 온라인 서비스 등 온갖 다른 분야에 종사하던 이들이 한데 뭉쳤다. 목적은 세계적인 서비스를 한번 만들어보자.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것 한 가지. 각자 10년 이상씩 스타트업이나 창업 전선에서 뛰어온 이들이 뭉쳤으니 그야말로 드림팀이라고도 할 수 있을 터. 이들은 선물이라는 키워드에 자신들의 모든 역량을 결집했다. 선물을 주고받고 싶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이를 해결하는데 여전히 불편해한다는 것에 집중한 것. ‘선물로 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실력발휘를 할 수 있을까. 한국의 스타트업 210회째 주인공은 창업역사만 15년째에 접어든 크레이지랩의 황라열 대표다.

15년간 창업 한 길을 달렸다

황라열 대표의 첫 창업은 2000년에 시작됐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00학번으로 입학한 그의 대학 생활 첫 해였다. 첫 창업의 기억은 좋지 않았다. 선배들하고 같이 했는데 같이 한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면서 그는 4000만원의 빚만 떠안게 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덜컥 대표를 하겠다고 한 제 탓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빚을 일해서 갚자 하고 죽어라고 일했어요.”

아르바이트를 6,7개씩 하면서 그는 부채를 갚아나갔다고 한다. 음악을 좋아해 음반을 직접 내기도 했던 그는 음반사와 스튜디오 등을 운영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나이는 96학번 나이이지만 군대를 먼저 갔다 온 뒤 남들보다 늦게 대학을 간 그로선 일찍부터 생존과 직업에 눈을 떴기 때문일까. 하여간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숨가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찍이 수많은 사람들의 창업 스토리를 들어왔지만 그의 경우처럼 다양하게 온갖 경험을 한 이는 만나기 힘들다.

게임엔진개발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던 그는 회사를 매각한 뒤 2008년에는 수학능력시험을 다시 치른다. 삼성디자인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수능만 네 번을 봤네요. 하하.”

그가 디자인학교를 다닌 이유는 디자인에 관심이 생겨서라고. 디자인 관련해서 일을 벌여보고 싶은데, 아직 아는 게 없으니 학교를 다니면서 배우자고 한 것이다. 그야말로 도전의식이 충만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그렇게 삼성디자인스쿨에 들어가서는 당연히 자연스럽게 디자이너들과 만나 교류를 할 수 있게 됐다. 디자이너들을 만나서 친목만 다졌을리 만무하다. 그는 이들과 함께 디자인영상회사도 차려다. 국내의 각종 스포츠단과 계약을 체결하고 이들의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 이때가 2010. 그때까지 10년간 벌써 10개에 달하는 회사를 차렸다가, 접었다가, 매각하는 일을 겪었던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를 또다시 마주하게 된다.

중국에서 발견한 새로운 기회

중국 출장을 자주 갔었어요. 거기서 사람들이 선물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그가 얻은 아이디어는 중국어에 익숙치 않은 직원들이 선물을 보내기 위해 주소를 적어야 하는 어려움에서 나왔다. “중국에는 선물 문화가 정말 발달했더군요. 그런데 선물을 주고받을 때 주소를 적어야 하쟎아요. 이게 중국어을 잘 못하는 사람이 제대로 받아적기가 쉽지 않더군요. 상대방에게 일일이 주소를 물어보는게 실례가 될 수도 있고, 물어봐도 맞게 썼는지 확실하지도 않구요.”

그래서 그는 선물을 받는 사람이 주소를 입력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생각을 그가 처음 한 것은 아니었지만(당시에 이미 국내에서도 유사한 서비스가 있었다), 나중에 더 큰 서비스로 발전하는 단초가 된 것은 분명했다.

당시 그가 중국을 갔던 것은 메디치코스메틱이라는 화장품 제조업체를 차린 뒤 중국쪽 영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뜻밖에 선물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얻고 한국에 들어와 아예 별도 법인을 차렸다. 그게 20149월이었다.

선물을 보낼 때 상대방의 주소를 몰라도 선물을 보낼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이게 처음 시작이었어요. 선물을 받는 사람이 선물을 받겠다고 하면 받는 이가 스스로 주소를 입력해서 받는 거죠. 개인 정보가 새나갈 염려도 없고, 괜히 주소를 물어보는 어색함도 없구요. 국내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로든 선물을 보낼 수 있으니 시장 확장 기회도 크다고 본 거죠.”

개발자만 9명을 갖고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의 뜻을 알아본 밸류인베스트에서 제법 큰 규모의 시드머니를 투자했다. 물론 오프라인 선물하기만 되는 게 아니다. 온라인상의 선물하기도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온라인 선물하기, 즉 카카오톡의 선물하기 기능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서비스. 기프토(Giftto)는 올 6월부터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글로벌 서비스 제대로 하고 싶다

황라열 대표는 글로벌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국내 시장이 작기 때문이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해외에 엄청난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회사가 추구하는 선물을 주고 받는 방식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활용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기프토는 카카오톡의 선물하기와 같은 기능을 SNS에서 구현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은 물론, 중국의 웨이보에서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글로벌 선물이 가능한 게 매력이다. 선물을 보낼 때 받는 사람의 주소나 연락처를 몰라도 된다. 상대방과 내가 SNS 상에서 친구로 연결만 돼 있으면 된다. 베타서비스를 시작하고 불과 5개월여만에 한달에 5000만원 가까운 매출이 나오고 있다.

연예인들에게도 선물 보내기가 가능해요. 글로벌하게 서비스를 하면 한류마케팅 등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거죠.”

선물을 받는 사람이 주소를 알아서 입력하고 받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시스템이니 분명 서로간에 편하고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외국에 비슷한 서비스가 많지 않을까.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SNS를 통한 선물 보내기 서비스가 또 있지 않을까.

황 대표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SNS들이 서비스 정책을 변경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는 직접 기술 개발을 했기 때문에 서비스 정책 변경이나 외부 연결 문제가 생길 경우 저희가 직접 해결하고 그에 맞춰 기술 개발을 해서 대응을 하면 되는데 외주로 하는 대부분의 업체들은 대응하기가 힘든 거죠. 쇼핑몰 APISNSAPI를 연동하는 문제도 있어요. 이 부분을 우리 회사만큼 잘 꿰뚫고 있는 회사도 드뭅니다.”

현재는 기프토앱을 따로 다운받아서 써야 한다. 아직까지는 매출이 많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앞으로는 SNS에서 직접 선택하고 결제하는 시스템을 추구하고 있다. 현재 기프토는 알리익스프레스와 웨이버를 연동해 선물하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아마존, 이베이와 페이스북을 연동해 선물하기가 가능하게 하고 있다. 다만 국내에선 기프티콘 서비스가 메인이다. 쇼핑몰 API가 연동이 안돼있어서다.

그래도 그의 꿈은 결코 작지 않다. 목표가 전 세계 기프트 커머스 마켓이기 때문. 현재 웹사이트와 안드로이드 앱을 출시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곧 아이폰용 앱도 출시한다. 내년 2월에는 미국 법인을 설립하고 글로벌 서비스를 더욱 공격적으로 할 계획이다.

기존의 서비스들이 하지 못하고 있거나 놓치고 있는 게 많죠. 그 중 중요한 하나를 저희는 선물하기로 봤습니다. 이를 완벽하게 해결해주는 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곧 결과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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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직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20131조원을 돌파했고, 작년에 17586억원(154000만 달러)을 기록했다. 올해는 2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해외직구가 아무리 빨리 늘어난다고 해도, 해외역직구 시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중국 네티즌들의 해외직구(우리 입장에선 해외역직구)는 지난해 27조원. 2018년에는 5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물론 중국인들의 해외직구 중 한국에서 사 가는 상품은 아직 극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상당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시장임은 분명해 보인다.

비투링크는 이런 엄청난 폭풍이 불어오는 분야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재호 비투링크 대표는 미미박스 공동 창업자 출신으로 일찌감치 중국 시장에서 기회를 찾았다.

불가능한 일 도전하면서 희열을 느낀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규정설명을 잘했다. 취재하는 입장에서는 편한 상대다. 물론 그런 자기 자신에 대한 규정이 실체적 진실과 어느 정도 부합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혼란을 주기만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처음부터 그는 자기 자신을 규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남들이 안 된다고 하는 거에 도전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스타일이에요.” 안된다고 하는 일,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에 도전하는 것이 그에겐 창업으로 구체화됐다. “창업하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하고 일하는게 정말 재밌어요.”

그러다보니 스무살 때부터 창업을 했단다. 스노보드를 외국에서 사서 국내에서 판매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오래 하지는 않았다. 경험삼아 해 본 일인데 영업권을 매각해 조금이나마 돈을 벌 수 있었다. 이 때부터 남들이 안된다고 하는 일, 왜 그런 것을 하느냐고 하는 일에 뛰어들어서 성과를 내는 것의 희열을 알게 된 것 같다.

성균관대에 입학했지만 그는 학교 수업을 듣고 정규 과정을 마치는 것보다는 이렇게 창업을 하고 자기 일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태닝샵을 운영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태닝로션을 파는 일도 했다. 그의 두 번째 사업이었다. 태닝 장비를 갖춰 놓고 강남에서 매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때 제법 유명한 연예인들도 많이 와서 이용했어요. 재밌는 경험이었죠.”

그의 사업 이력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골프 TV 관련 광고 사업도 진행했다. 이 일은 여전히 진행중인 일이다. 다만 외국 회사와 하기 때문에 아직은 비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게 많다고 한다.

자 이렇게 일을 벌이면서 다니는 데 학교를 제대로 다닐 리가 없다. 자신도 솔직히 인정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걸 하챦게 생각했어요.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다녔지만 제적됐죠. 학교를 중퇴한 셈이에요.”

그는 스스로를 산만하다고 설명했다. “제가 좀 산만한 편이에요. 스스로 볼 때 어느 하나를 계속해서 파고들기 보다는 여러 가지를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스타일이죠. 제너럴리스트가 된 게 그런 성향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그는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한 것에 대해 꼭 잘 한 것 같지는 않다고 털어놨다. “그때는 그랬어요. 정말 의미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살면서 사실 그런 시기, 그런 과정을 겪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과정을 인내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나 싶어요.”

<비투링크 창업멤버들. 왼쪽부터 이소형 이사, 이재호 대표, 박현석 이사. 사진=비투링크 김윤진 매니저>

인생의 전환점, 미미박스

201111. 그와 하형석 등 3명은 미미박스를 창업한다. 지금은 종합 화장품 회사로 성장하고 있지만, 처음 창업 당시 미미박스는 화장품 샘플 섭스크립션 업체였다. 미미박스가 와이컴비네이터의 투자 및 엑셀러레이팅을 받게 되는 그 순간까지 그는 미미박스에 있었다. 미미박스에서 세계 시장을 무대로 사업을 한 그 경험, 2년의 시간이 그에게 글로벌 비즈니스에 눈 뜨게 하는 전환점이 되지 않았을까.

이재호 대표는 미미박스에 있으면서 화장품 비즈니스의 매력에 빠졌다. 그리고 일찌감치 중국 시장의 기회를 발견했다고 한다. “미미박스 시절에 이미 중국 사업 진출을 기획했어요. 그런데 스타트업인 미미박스는 리소스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중국과 미국 사업을 놓고 집중을 할 필요가 있었죠. 미미박스는 당시 와이컴비네이터 투자도 받았고 미국 시장에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었고, 저는 중국 시장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한거죠. 그래서 나왔어요.”

20131221, 이재호 대표는 자신이 창업했던 미미박스에서 나와 새롭게 출발을 했다. 혼자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친구인 이소형이 합류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맥킨지를 다니고 있던 이소형은 친구와의 공동창업에 선뜻 나섰다. 성형외과 병원에서 기획실장을 했고, 타투매거진의 대표이사이자 영업의 고수로 통하는 박현석도 함께 했다. 세 사람은 20147월 비투링크(B2Link) 법인을 공동으로 설립했다.

회사 이름이 왜 B2Link일까. 비즈니스의 기회를 연결해준다는 뜻에서, B2B라는 측면에서 B2Link 라고 한다. 실제로 이 회사는 국내의 수많은 화장품 브랜드의 마케팅과 판매를 대행하면서 이들 브랜드를 중국의 쇼핑몰에 입점해 판매하는 일을 맡아서 처리하고 있다.

관건은 뛰어난 상품, 우수한 브랜드와 제휴를 맺고 이를 중국 쇼핑몰 등에 입점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현지 판매업체들과의 네트워크, 유통망 등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미 올 상반기 기준으로 130개가 넘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과 계약을 체결하고 중국 쇼핑몰 등에 입점을 하고 있는 상태다. 중국 해외 역직구 시장을, 그것도 B2B 방식으로 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낮고 빨리 안착할 수 있다는 점이 호평을 받은 것 같다. 이미 지난해 9DSC에서 3억원의 투자를 받고 시작했고 올들어서도 10억원의 투자를 추가로 유치한 상태다.

플랫폼 통해 빅데이터 구축

이재호 대표가 발견한 것은 중국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성, 그리고 그 속에서 한국 화장품 등 뷰티 산업이 가진 장기적인 경쟁력이었다. 좋은 브랜드와 상품이 많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중국 판매채널에 전달하는 플랫폼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는 판단을 한 것이고 비투링크가 그것을 해보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

중국에서 수입하는 화장품 중 한국산이 1위에요. 2위가 프랑스죠. 그만큼 한국산 화장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요.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은 우수한 한국 화장품 업체들의 제품을 확보하려는 욕구가 크죠. 당장은 B2B로 하지만 B2C로도 확대해나가고 있어요.”

한국산 제품에 대한 선호도는 높지만 한국 업체들이 직접 중국에서 마케팅을 하기는 쉽지 않다. 짝퉁 제품이 범람하는데다 가격을 후려치는 곳이 많고 현지에서 판매관리를 하기도 어렵다. 비투링크는 이런 한국의 우수한 화장품 업체들을 대신해 중국에서 마케팅을 하고 이커머스업체들을 상대하며 효과적으로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판매 채널을 뚫어주는 역할을 한다. 일종의 브로커리지와 마케팅 대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만약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한국 화장품 회사들과 직접 계약을 체결하고 바로 제품을 받아버리면 비투링크는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중국 업체들 중에는 배타적인 관계를 갖고 싶어하는 곳이 많아요. 이를테면 특정 화장품 브랜드에게 자기네 커머스 사이트를 통해서만 제품을 판매하라는 식이죠. 그런데 비투링크는 그런 배타적인 계약을 체결하지는 않거든요. 판매채널을 다양화해야하니까요. 그러다보니 어떤 업체는 저희를 배제하고 업체들하고 바로 계약을 체결하려고 하기도 헀어요. 한국 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위험성을 알리고 설득을 했죠. 다행히 오히려 이 한국 업체들이 해당 중국 사이트에서 대거 빠지면서 우리가 가진 네트워크와 힘이 알려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그때 매출이 갑자기 줄어서 힘들긴 했죠. 하하

비투링크는 현재 LG생활건강, 스킨푸드, 클리오, 메디힐 등 한국 화장품 업체와 도매계약을 체결하고 이들 업체에서 제품을 구매해 중국 쇼핑몰에 공급하고 있다. 중국 최대 뷰티 온라인 쇼핑몰이 브이아이피닷컴 등 14개 사이트와 동남아시아 3개 이커머스업체가 포함돼 있다. 중국 업체들이 비투링크 플랫폼을 이용해 한국업체에 주문하기 때문에 판매 상황을 파악함은 물론, 빅데이터를 구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국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상품에 대한 데이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를 분석해 리포트를 작성, 컨설팅 업체나 다양한 관련 업체에 판매하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

B2C도 결국은 해야 한다. 최근 중국의 대형 오픈마켓 사이트에 입점하고 온라인 화장품 쇼핑몰 운영에 나선 것도 직접 소비자를 만나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제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는 소매업자, 도매업자, 수출업자 이런 경계가 다 무너지고 있습니다. 누가 더 소비자를 잘 알고, 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죠.”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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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를 위해, 건강 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다. 그런데 여전히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없어서, 의지가 약해서, 힘들어서,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지 못해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제때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내에 가면 어디나 그처럼 많은 피트니스센터가 있지만 비어있을 때가 많은 것도 이해가 간다.

이런 비어있는 공간, 즉 비교적 한가한 시간대의 피트니스센터를 엮으면 좀 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사람들로 하여금 운동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자극하느냐가 핵심이 아닐까. 빈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있을까. 어쨌든, 이번에 소개하는 주인공은 창업과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서 계속 도전하고 있는 먼데이프로젝트의 김지호 대표다.

세 번의 창업, 계속된 실패.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그의 창업 경력은 꽤나 다채롭다. 그리고 복잡하고, 상당히 많다.

마이스터고를 졸업하고 바로 군입대를 한 그는 전산병으로 2년 동안 복무를 하면서 처음으로 사업에 대한 눈을 뜨게 된다. 전산병들이 비공개로 사용하던 인트라넷 브레인 스토밍 그룹에 들어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기게 된 것이다.

제대 후 무작정 무전여행을 떠났던 그는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22살에 첫 창업을 하게 된다. “중국에서 물품을 납품받아서 인터넷으로 파는 게 첫 사업이었죠.”

그는 중국 청도에 있는 작은 공장과 종로 뒷골목에 숨겨져 있는 보석공방을 수소문, 보석가공품, 액세서리 등을 오픈마켓으로 파는 일을 했다고 한다. 일은 재미있었지만 돈을 벌기란 쉽지 않았다. 사업 경험이 없었던 그는 제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백화점에 납품되는 수준의 백금 도금 액세서리, 장신구 등을 내놓으면서 디자인은 젊은 층에 맞췄다. 젊은 층이 고가의 제품을 살 리 만무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부동산 사기 사건에 휘말리면서 갖고 있던 유일한 자산인 반포의 사무실을 날리는 등 전 재산이 허공에 사라지게 된다.

사기 사건은 어쩔 수 없었죠. 사실. 실패의 본질은 아니었어요. 상품을 기획하고 타깃 고객군을 설정하고 가격을 정하고, 유통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뼈저리게 배웠죠.”

지금에 와서는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 할 수 있게 됐지만 당시엔 충격이 컸다. 술로 나날을 지새우기도 하고, 외톨이처럼 꼼짝도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기도 했다고 한다.

아직 젊은 그는 다시 시작을 하기로 하고 고향인 울산으로 내려가게 된다. 이게 스물다섯때였다. 대학에 들어간 그는 다시 창업에 도전했다. 이번엔 쿠폰이었다. “경영학과에 입학했는데 학교에서 진행된 경진대회에서 우성을 해서 1000만원의 상금을 받았어요. 이걸로 두 번째 사업에 도전했죠.” 얘길 들어보니 일종의 소셜커머스 사업이었더 것 같다. 그런데 이때가 2010. 티몬을 필두로 쿠팡, 위메프 등 시장의 강자들이 출현하던 시기였다. 트렌드는 확실히 타지만 자본력도 없었고 시장 진입도 늦었던 그는 또다시 실패를 겪게 된다. 이듬해 그는 IT솔루션사업을 하는 한 중소기업에 입사해 1년간 일을 한다.

지치지 않는 도전

그런데 직원으로 일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걸까. 아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면 몸살이 나는 체질일까. 그는 두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창업에 나섰다. 이번엔 소셜 Q&A 서비스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이미 네이버가 잘 하고 있는데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이번에도 그는 2억원의 자금만 날린다. 완전 빈털터리가 된 그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했다.

첫 번째 실패보다 이때가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는 이 시기를 암흑기라고 했다. 세 번째 사업을 완전히 정리하기 전부터 자금압박은 극심했다. 직원들 월급을 제대로 못 줬기 때문에 2013년말에는 낮에는 사무실에 나가고 밤에는 강남역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결국 세 번째 사업을 최종 정리한 뒤 그는 사업 자금 부채를 갚기 위해 중소기업에 취직해 마케팅 업무를 했다고 한다. 이만하면 지칠 법도 한데, 그의 생각은 여전히 창업을 향해 가 있었다. “작년이었죠. 미래창조과학부가 주관하는 혁신적 실패사례 공모전에서 253명중 최연소로 수기가 선정된 거에요. 게다가 제가 기획한 사업이 또 수상을 했구요. 다시 창업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회사를 나온 그는 다시 창업에 나섰다. 이번엔 피트니스센터를 연계하는 서비스였다.

98000원에 어디서나 운동 가능하게

지난달 12일 공식서비스를 시작한 먼데이프로젝트는 쉽게 말해 언제 어디서나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보통 피트니스센터는 한 곳만 이용할 수 있다. 집 근처나 회사 학교 근처 등 자신이 계약하고 대금을 지불한 한 곳에 가서만 운동할 수 있는 게 기본이다.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곳이라도 매우 제한적이다.

김지호 대표는 피트니스센터와 일일이 계약을 체결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지난달까지 서울을 중심으로 180여개 피트니스센터와 계약을 맺었다. 고객은 월 98000원만 내면 180여개 피트니스센터 어디에서든 운동을 할 수 있다. 피트니스센터는 남는 시간이 고객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고객들은 시간과 장소 핑계를 대지 않고 보다 유연하게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가 해외의 피트니스센터와 제휴를 맺고 외국에서도 운동을 할 수도 있다. 해외 출장이 많은 이들에겐 상당히 유용한 서비스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의아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돌아다니면서 운동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 특정 지역에 포스트를 잡아놓고 생활을 하지 않나. 그리고 업무 중엔 비어있는 시간이라는 것은 대부분 이른 아침, 점심시간 전후, 퇴근 전후 아닐까. 어차피 3시나 4시에 갑자기 운동이 가능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학생들은 가능하겠지만, 학생들이 과연 그만한 수요가 있을까. 학생들도 어차피 대부분 학교 근처에서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

근본적으로 궁금한 것은 운동이 과연 피트니스센터의 문제인가 하는 점이다. 개인의 의지의 문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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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만, 하루에 (공식적으로) 7만여 건의 가사도우미 구인계약이 체결된다고 한다. 계약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냥 하루 가사도우미를 쓰는 것이다. 그런데 비공식적으로, 즉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가사도우미 구인은 이의 몇 배가 되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 정도라고 하니, 오늘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가사도우미를 찾고 있을 것이다.

영세한 용역업체들이 난립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 지배적인 사업자는 전혀 없다. 전국으로 따지면 분명 수조원대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이겠지만, 수천 수만개의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지역별로 파편화된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시장의 강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마진도 박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홈클 창업자 전주훈 대표는 이런 시장에 뛰어들어 IT를 활용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가사도우미 시장에서 무엇을 본 걸까. 그리고 어딜 바라보고 있는 걸까.

사업이 너무 하고 싶었던 청년

전주훈 대표는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 02학번이다. 그런데 졸업을 한 뒤 종합상사 세 군데에만 지원서를 냈다. 특이하다.

전공이 적성에 안 맞았어요. 저는 계속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학교에 가고 나서 그 생각이 더 굳어졌죠. 다만 부모님이 바로 사업을 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셨어요. 사회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하신거죠.”
전공 수업 성적은 나빴지만 틈만 나면 가서 들었던 경영학과 수업은 성적이 좋았다. 결국 졸업하고 대우인터내셔널에 취직했다. 그런데 여길 가서 그의 특이한(?) 전공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맡게 된다.

제 전공이 미생물학과라고 하니 부장께서 곡물 트레이딩을 하면 딱 되겠네 이러면서 그쪽 분야로 보내셨어요. 그래서 내심 쌀 이런 거를 거래하는 곳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웬걸. 고기(육류)를 트레이딩하는 그런 곳으로 간 거에요.”

고기를 트레이딩한다. 육류를 거래하는 곳인가?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런 것이 아니라 육류업자들이 갖고 있는 고기를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업무였다고 한다. 이런 얘기는 사실 처음 들어봤다. “그때는 마장동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어요. 고기 업자분들이 그쪽에 모여 계시거든요.”

하여간 일은 제대로 배운 것 같다. 심지어 식육 관련 학교도 다녔단다. 거기서 도축업자들의 고기 칼질법도 배웠다. 수많은 식당과 사업자들에게 고기를 공급하면서 여러 사람도 알게 됐다. 그러다 어느날 아예 식당을 한번 운영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된다. 마침 그와 뜻을 같이 하는 동기가 있어서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나와 레스토랑을 경영하게 된다. 그가 대우인터내셔널에 들어간 지 2년도 안된 시점이었다.

저는 정말 사업이 하고 싶었어요. 아마 그런 생각을 계속 했기 때문에 결국 사업의 길로 뛰어든 것 같아요. 은행에서 처음에 7000만원을 빌려서 사업을 시작했어요. 간도 컸죠? 하하. 그런데 6개월도 안되서 벌어서 다 갚았어요. 그만큼 장사가 잘 됐죠. 그리고나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역시 내가 사업을 잘 하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죠.”

그는 은행에서 대출을 더 많이 받았다. 다른 레스토랑을 또 하나 오픈했다. 그런데 이번엔 쫄딱 망했다. 사업은 잘 됐는데 소스를 만들어서 판매하려고 일을 벌인 것이 패착이 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잘 되고 있던 레스토랑마저 사건사고가 발생하면서 일을 모두 접어야 했다.

<논현동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홈클 전주훈 대표. 뒤에 청소를 안하면 새로운 우주가 탄생한다는 글이 쓰여진 포스터가 붙어있다.>

에어비앤비에서 찾은 기회

레스토랑을 시작하고 불과 2년여만에 너무 엄청난 일들을 겪은 그는 사업을 모두 그만두고 훌쩍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2013년 한해는 그냥 놀았어요. 힘들기도 했고, 좀 쉬고 싶었죠.”

그는 우연히 모 자동차회사의 이벤트에 응모를 했다가 덜컥 유럽투어에 당첨이 됐다. 이탈리아에 910일짜리 일주 여행을 가게 된다. 그리고 유럽 여행지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제가 레스토랑 사업을 하다가 다 망해서 여행이나 왔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다음엔 호텔이나 리조트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제가 하는 일에 투자를 하시겠다고 하더라구요

포부는 당찼지만, 호텔이나 객실 업무 경험이 전혀 없는 게 흠. 사업을 정리하면서 남은 돈을 다 끌어모아 오피스텔을 임대하는 일을 했다. 그냥 임대를 하면 객실업무를 배울 수가 없다. 그래서 에어비앤비에 Host로 등록을 했다. 여기서 완전히 다른 사업 아이템이 생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지만.

에어비앤비에 호스트 등록을 하고 관광객을 받았어요. 객실업무를 해보려고 시작한 일이니까 청소를 직접 해 봤어요. 어휴. 그런데 청소가 정말 너무 힘들더군요.”

그는 다른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에게도 물어봤다. 다들 공통점이 청소가 너무 힘들다는 거였다. 그럼 그 청소를 대신 해주는 사업을 하면 잘 되지 않을까. 여행지에서 만난 그 투자자도 전 대표의 이런 얘기를 듣고 기꺼이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

201410월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을 대상으로 청소 업무를 따내 사업을 시작했다. 비공식적으로 홈클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사업이 안정적으로 되려면 객실에 가서 청소를 해 주실 수 있는 분, 가사도우미를 섭외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이 수급과 서비스 품질이 잘 나와야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빨리 서비스를 확대하려면 확실히 기존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는 게 편하다. 하지만 그는 그 방법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쉽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 판단은 맞다.

그런데 일용 노동을 공급하는 가사도우미 분들과 계약을 체결하고 이분들을 관리하는 게 그에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어찌 해야 할지를 몰랐다. , ‘가사도우미 관리 노하우가 그에겐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잠깐만 생각해봐도, 보통 일이 아닐 듯 싶었다. 사업이 제대로 되려면 균질한 청소 상태 유지가 절대적이었다. 고객의 욕구를 만족할 만한 수준의 청소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려면 가사도우미들에 대한 교육과 수급 관리가 필수적. 교육과 훈련을 반복하고, 이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 주면서도 고객이 만족하는지를 끊임없이 체크하면서 서비스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 이건 정말 전문가의 영역이 아닐까.

악전고투하던 그의 고민이 풀린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인터파크홈스토리 창업 초기 멤버인 인력관리 전문가가 전격적으로 올 8월말에 홈클에 합류한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에어비앤비 클리닝 업무를 주로 하던 홈클은 서비스 영역을 일반 가정집을 대상으로 한 가사도우미 시장으로 확대하게 된다. 진짜 큰 시장에 들어온 것이다.

Hospitality가 천직

홈클의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가사도우미를 제공한다. 베이비시터 등 다른 서비스는 하지 않는다. 품질 관리를 할 수 있는 전문 분야만 일단 한다. 집 평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15평 이하는 45000원이고 이후 점점 가격이 오른다.

홈클은 직접 50여명의 가사도우미들과 계약을 체결해 관리하고 있다. 현재 이들이 고객의 주문에 따라 서울 전역을 커버한다. 고객 수가 늘면서 당연히 가사도우미 숫자도 늘리고 서비스 영역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홈클 매니저(가사도우미)는 기본적으로 설거지, 싱크대 청소, 세탁, 욕실관리, 바닥청소, 먼지제거, 쓰레기 배출 등 청소의 기본 프로세스를 충실히 따른다. 여기에 집중 청소를 요청하면 침구 및 커튼 세탁, 냉장고 청소, 창틀 및 베란다 물청소, 옷 정리정돈 등도 같이 하게 된다.

진짜 중요한 점은 홈클이 일을 해 나가는 방식이다. 전주훈 대표는 소비자들이 기존 가사도우미를 쓰면서 가장 불편해하는 점이 뭔지를 알아봤더니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방을 깨끗하게 청소해줬으면 좋겠는데 거실만 청소하고 갔다던가, 건드리지 말았으면 하는 장소는 치워놓고, 정작 치웠으면 하는 곳은 안 치울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가사도우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상호간에 소통이 잘 안되서 생신 문제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홈클은 홈클리모컨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고객의 요구사항을 기록으로 남겨놓을 수 있게 하고 홈클 매니저는 어떤 일을 요청 대로 처리했다는 피드백을 남긴다. 만약 고객이 이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매니저에게 직접 말하기 어려우면 회사에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채널도 만들었다.

홈클은 이런 모든 서비스를 앱으로 진행하고 있다.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돼 있고, 앱으로 연결을 해주니 사용자에게 보다 편리한 측면이 있다.

향후 홈클은 지역 확장과 서비스 품질 제고와 함께 영역 확대를 노리고 있다. 사실 청소 말고도 집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온갖 자잘한 일들과 마주하게 된다. 옷이나 구두 수선, 택배, 쓰레기 처리, 우편물이나 공과금 처리 등등. 집에서 해야 하는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는 서비스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다.

사실 전주훈 대표는 본래 호텔 비즈니스를 하려다가 청소 분야의 사업을 하게 됐다. 그에게 아직도 호텔 비즈니스를 하고 싶은지 물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언젠가 반드시 리조트, 호텔 등의 사업을 하고 싶다는 답이 나왔다. 왜 그는 리조트업을 하고 싶을까.

예전에 레스토랑을 운영했다고 했었죠? 그걸 하면서 정말 바쁘고 그랬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저는 사람을 맞이하고, 환대하고, 접객하는 그런 일이 너무 좋습니다. 힘이 나요. 그런 일을 할 때 기쁘고 걱정이 사라집니다. Hospitality 업무가 선천적으로 맞는 것 같아요. 레스토랑 일도 그렇고, 지금 청소도 그렇고, 다 그런 분야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언젠가 리조트 사업도 해야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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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이 없으면 안되죠. 하지만 사업은 비전으로 하는 건 아니더라구요. 시장이 있는 곳에서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해야하는 게 사업이었어요.”

코자자 조산구 대표는 힘들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주 굉장한 보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헌 보자기에 싸서 내놓는 것처럼. 하지만 재밌다고도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제야 제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알게 됐다는 게 자신의 지난 창업 역정에 대한 스스로의 돌이킴이었다.

LG유플러스 시절 처음 만나 이제는 꽤 오래 알고 지낸 조산구 코자자 대표의 4년에 걸친 창업스토리와 그 이전의 이야기를 들으러 북촌에 갔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던 그날은 10월의 절정이었다. 서울의 다른 곳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아름다운 한옥을 배경으로 따뜻한 10월의 햇살과 산들바람을 즐기며 그는 스토리를 풀어나갔다.

실리콘밸리에서의 첫 창업

그냥 미국에 있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해요.”

조산구 대표는 광운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석사까지 하고 KT에 입사했다. 좋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그는 공부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텍사스 에이앤앰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부 Bay Area로 가게 된다. U.C. Berkeley Lawrence Lab이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그의 미국 첫 직장이었다. 1998년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2000년초까지 일한다. 아마 그 어떤 계기가 없었다면 그는 계속 그곳에서 일을 했을까. 그렇다면 다른 인생을 살았을까. 조 대표가 아마 숱하게 던졌을 법한 물음일 것이다. 모른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결국은 창업을 하고 새로운 일을 찾아서 계속 뛰어다니고 있었을지도.

그 어떤 계기라는 것은 버클리 로렌스 랩에서 마이클 양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마이클 양은 가격비교사이트인 마이사이먼을 미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해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당시 조 대표는 위치기반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 마이클 양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같이 창업을 하게 됐다. 바야흐로 2000년초. 1차 닷컴 버블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의 첫 창업 서비스명은 넷지오(Net Geo)였다. 위치를 기반으로 최적화된 정보를 전달해주는 서비스였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접속하는 위치를 파악해 그 사람이 관심가질 만한 정보를 보여주는 식이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에서 접속한 사람이라면 IT(정보기술)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이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 사람이 찾는 최신 기술 관련, 또는 IT 기업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이 서비스는 한때 500만 달러를 투자받기도 했다. 나중에는 Access 경로를 파악하는 서비스로 발전해나갔다. 하지만 마이클 양과의 공동 창업 형태였던 이 서비스는 약 5년여만에 끝나게 된다. 기대를 했던 대형 제휴건이 무산된 탓도 있지만 역시 IT버블이 꺼지고 난 뒤 대규모 투자를 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큰 돈은 아니었지만 버블붐이 꺼지고 난 뒤 그 힘든 환경에서도 회사 매각에 따른 약간의 이익을 낼 수는 있었다고 한다. 2005, 조 대표는 사업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오랜 열망

한국에 들어와서 조 대표는 아루바네트웍스에서 일한다. 아루바에서 2년을 거쳐 2007년엔 다시 KT로 들어가 자회사인 KTH에서 일했다. 10년이 훨씬 넘어 친정격인 회사로 돌아온 것이다.

처음에 KT로 복귀해서 페이스북과 유사한 서비스를 기획했어요. 출시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서비스들을 기획한 동력으로 로컬스토리, 올레톡과 같은 서비스를 출시했죠.”

결과적으로 이런 서비스들은 다 성과가 별로 나질 않았다. 실행단에서의 문제일 수도 있고, 기획이 애시당초 잘못됐을 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서비스들이 그가 처음에 기획하고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거나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그는 2010LG유플러스로 옮기게 된다. KT 시절부터 잘 알고, 함께 일하기도 했던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의 부름을 받고서다. LG유플러스에서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생각을 하나씩 풀어냈다. 그 결과물이 와글, 딩동, 플레이스북 등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역시 처음 구상했던 것과 너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KT 시절과 결과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요.”

이에 대해 그는 통신과 인터넷이라는 세계가 너무 다르다고 설명했다. 즉 함께 공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통신이라는 분야는 정부 규제와 경쟁 제한, 그리고 이를 통한 독과점과 독점적 수익모델이 산업을 지배하는 키워드인 반면, 인터넷은 무한 경쟁 속에 스스로 수익모델을 만들어가야한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대신 자유롭게 어떤 시도라도 해 볼 수 있었는데 두 산업의 비즈니스적인 속성이 너무 달라 융합이 어려웠던 것이다. 어찌보면 통신사들이 하는 인터넷 서비스 중 제대로 성공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은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졌던 와글 서비스 문제를 뒤로 하고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LG유플러스의 미국 업무를 맡았지만 결국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때 그는 공유경제라는 것에 눈을 뜨고 있던 시점이었다.

공유경제가 될 것 같았어요. 이왕이면 회사에 얘기를 해서 투자도 받고 내부 팀으로 시작해 독립적으로 운영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런 제안을 회사에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국 나오게 됐죠.”

20123. 조산구 LG유플러스 상무는 회사를 공식 퇴사했다.

3년에 걸친 시행착오

회사를 퇴사하기 전에 그는 이미 팀을 꾸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회사 내에서 사업을 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2011년부터 팀 빌딩은 상당히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그의 기본적인 생각은 온라인 비즈니스가 오프라인의 비즈니스를 혁신하게 될 것이란 것. 이미 에어비앤비가 있었지만 그는 여기에 멤버십 개념을 더해 승부를 볼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에어비앤비에 소셜네트워크 기능을 더해 오프라인 숙박을 기반으로 한 페이스북과 같은 서비스를 지향했다. 하지만 사업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저는 한국에서 사업은 처음이었어요. 첫 사업을 배운 게 실리콘밸리였는데, 한국에서 해보니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죠. 온라인 사업의 경력이 대부분이었는데 오프라인 사업을 하려고 한 것도 쉽지 않은 문제였었구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팀 빌딩이었다. 처음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았던 인물이 해외에 있었던 데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도 있었다. 서비스를 개발하는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으니 서비스가 잘 나올 리 만무했다.

숙박 공유라는 비즈니스 자체의 어려움도 그가 간과했던 부분이었다. 그가 생각했던 것은 애시당초 에어비앤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의 남아있는 빈 방을 숙박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빌려주자는 것. 이를 위해 웹사이트를 열고 게스트와 호스트를 모두 모집해 진행했다. 여행지에서도 집처럼 마음 편하게 잘 수 있게 해주자는 뜻으로 서비스명을 코자자로 지었다. 사람들을 편하게 지내게 해 주자는 서비스였지만 그는 결코 편하지 못했다.

숙박 공유라는 게 양쪽의 고객 요구를 모두 맞춰줘야 하는 서비스더군요. 숙박 시설에 묵는 손님들의 요구 사항도 들어줘야 하지만 숙박 시설, 또는 남는 방을 갖고 있는 집주인들도 저희에겐 중요한 고객인거죠. 양측의 요구 사항을 다 만족시켜주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접점을 이루며 여러가지 언어로 이뤄진 손님들을 상대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구요. 무엇보다 비정형의 상품을 팔아야하는 어려움을 몸소 느끼게 된 거죠.”
사실 이런 부분은 그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문제이기도 했다. 숙박이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취향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 똑같은 아파트에 여러 명이 동시에 들어가 지낸다고 하자. 그래도 사람에 따라 만족도가 다를 수 있다. 각자 중시하는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집의 같은 집주인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어떤 고객은 만족해하지만 어떤 사람은 못마땅해 한다. 이유를 콕 집어내기도 쉽지 않고 추상적이고 모호한 경우도 많다.

결국 예상했던 문제들도 많았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3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그 사이 에어비앤비는 유니콘 기업이 된 데 이어 한국에도 진출해 공격적인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수수료 제로(0)’ 승부수

아직까지 코자자는 에어비앤비에 대해 절대적으로 약한 존재다. 기본적으로 지금까지는 비슷한 서비스 모델을 가져갔다. 빈방 공유에 홈스테이 서비스를 제공했다. 여기에 한국적인 특성을 살린 한옥스테이서비스를 추가했다. 사실 한옥스테이는 빈방 공유나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집의 형태가 한옥이라는 것 뿐이다. 다른 국가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한옥이라는 공간에서 지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인데, 이것 때문에 오히려 한옥스테이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란 인식이 생겼다. 그리고 한옥스테이는 결과적으로 보편적인 인기를 누리기는 힘든 서비스라는 점도 분명하다. 한옥에서 지낸다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기 때문이다.

결국 에어비앤비와 직접 격돌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그가 꺼내든 카드는 수수료 제로. 지금까지는 빈 방이 있는 Host와 이 집에서 하룻밤 묵기를 원하는 여행객을 연결하면 결제 금액의 약 10%를 코자자가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가는 형태를 유지해 왔다. 수수료가 에어비앤비보다는 싸지만 어쨌든 유료 모델인 것이다. 그는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수료를 낮추거나 제로로 하면 HostGuest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고 이것이 결국 코자자의 경쟁력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이 정도의 차별화가 아니면 양쪽 고객들 누구에게도 어필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코자자는 수익을 어디에서 얻을까. 프리미엄 서비스가 그가 고안중인 방안이다. 그는 이것의 이름을 원 파인 스테이(One fine stay)라고 명명했다. 그야말로 럭셔리한 홈스테이에 호텔 수준의 서비스, 즉 공항 픽업이나 여행패키지, 세탁 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실제 고급 호텔과 어떻게 차별화될 것인가도 숙제이기도 하다. 1박에 30만원 이상인 경우가 될 것이고 이 경우 수수료도 훨씬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 한옥 스테이 서비스도 더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한옥스테이의 경우 전국에서 가장 많은 500여개의 한옥을 확보하고 객실 2000여개와 계약을 마치고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Same host, same room, low price. 코자자가 지향하는 경쟁력의 포인트다. 이것이 과연 소비자들과 Host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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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탁서비스네

솔직히 그런 생각이 강했다. 요즘 세탁앱 서비스가 왜 이렇게 많지? ‘그럴만한 시장이 될까. 그리고 그만한 차별화가 가능할까.’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을 하고 워시온 채주병 대표를 만났다.

채 대표는 백그라운드가 좀 달랐다. 서비스가 지향하는 점도 확실히 다른 회사들과 차이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이런 차이점이 이 사업의 본질적인 영역일까? 그리고 이것이 차별화된 서비스로 나타날 수 있을까. 채 대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업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아는 것이 서비스의 경쟁력을 높이고 차별화를 가져올 수 있는 핵심 요인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워시온 채주병 대표(왼쪽)와 노성산 이사가 세탁물 배달에 나서기 앞서 포즈를 취했다.>

세탁공장장, IT에 도전하다

그는 말이 별로 없었다. 취재원으로서는 취재하기 쉽지 않은 상대다. 불필요한 얘기는 가급적 삼가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세탁업의 변화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말투가 강해졌다.

채주병 대표는 다양한 일을 했다고 했다. (그것이 뭔지는 자세히 얘기하질 않았다.) 분명한 것은 그가 5년 전 세탁업에 처음 발을 디뎠다는 것이다. “1년 정도 세탁소에서 일을 배웠어요. 그리고 세탁공장을 4년 정도 직접 운영을 했죠.”

그는 세탁공장을 하면서 별로 일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만큼 일이 힘들었기도 했고, 별로 변화가 없는 분야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마음에 안든다고 그냥 접어버릴 수는 없다. 1년간 일을 배우고 자신이 세탁공장을 차려서 4년간이나 운영했다.

세탁공장을 운영한 지 3년쯤 지났을 때였을까. IT분야의 한 인터넷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그를 찾아왔다. “세탁 시장이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게 그 친구의 얘기였어요.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죠.”

역시 IT 분야에 있어서인지 그 친구는 세상의 변화를 빠르게 알고 있었다. 현재의 세탁 서비스업이 별 경쟁력이 없다는 것, 무엇보다 점점 늘어나는 1인 가구와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 그런 변화에 현 서비스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꿰뚫고 있었다. 바쁜 생활이 이어지고, 예전처럼 가족 중에 누군가 드라이크리닝을 대신 맡겨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빨래나 세탁은 기본적으로 골치아픈 문제다. 며칠 동안 제대로 빨래를 하지 못하다보면 입고 갈 옷이 없다거나 괜히 불필요한 지출을 하는 등 곤란한 상황이 이어진다. 앱을 통해서 서비스를 신청하게 하고 언제든 고객에게 맞춰서 세탁을 해주고 물건을 가져다주는 방식으로 업의 근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저도 기본적으로는 동의했어요. 하지만 그런 서비스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별로 없었던 거죠. 저는 기본적으로 IT쪽은 전혀 문외한이었으니까요.”

그래도 그가 결국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 업의 본질이 IT가 아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그는 세탁서비스의 근본은 IT가 아니라고 봤다. 배달이 본질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보다 근본적인, 세탁을 넘어서는 의류에 대한 종합 관리라고 판단했다. 지엽적인 불편함이 아니라 사람들의 진짜 어려움을 해결해주자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세탁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자!

보통 세탁 서비스들은 배달에 초점을 맞춰요.”

채 대표의 말이다. 그런 것 같다. 일단 현재까지는. “어떤 서비스는 아예 약관에 세탁 품질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장까지 명시를 했더라구요.”

그것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탁소를 차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채 대표는 그렇게 해서는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업체는 배달만 한다고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죠. 그걸로 차별화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객은 그렇지 않아요. 고객은 토탈 세탁서비스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세탁물을 배달해주는 업체가 어디서 세탁을 하던 신경쓰지 않아요. 그냥 품질 좋고, 가격 싸고, 만족하면 되요. 그런데 이게 배달만 잘 한다고 해결될까요?”

201412월 채 대표는 워시온을 창업했다. 경쟁업체에 비해 한발 늦게 시작한 셈이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있다고 한다. “세탁을 좀 편하게 해 주자, 뭐 이런 차원이 아닙니다. 저희는 세탁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려고 하고 있어요. 그게 워시온의 목표입니다.”

<배달 대기중인 워시온 차량.>

이용 방법은 다른 서비스와 비슷하다. 앱을 다운받고 지역을 선택해 호출을 하면 된다. 사람이 오면 세탁물을 맡기고 원하는 시간에 받을 수 있다. 세탁물을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 바로 다음 세탁물을 맡길 수도 있다. 가격은 크린토피아와 유사하면서도 일반 동네 세탁소보다 좋은 세탁품질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워시온은 우선 성남 분당 판교 등 수도권 남부권에서 우선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용인, 평촌, 서울 송파, 수원, 안양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처음에 서비스 지역명을 듣고 약간 의아했다. ‘강남이 아니고?’

채 대표는 품질을 초기에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하기 위해 우선 서울 수도권 남부 지역에 한정했다고 설명했다. “워시온은 오토바이가 아니라 자동차로 세탁물을 배달합니다. 오토바이가 위험하기때문이기도 하고, 고객의 소중한 세탁물을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게 좀 그래서요.”

물론 그의 이런 생각은 세탁 공장을 하면서 겪은 체험에서 온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하챦은 세탁물이라도 당사자에겐 내일 입고 나가야할 소중한 옷일 수 있다. 차를 이용해서 배달을 하자니 강남은 현재로선 쉽지 않다. 주차가 어렵고, 차가 많이 막혀 제때 배달이 어려울 수 있다.

자 그러면 배달은 그렇다치고, 세탁 품질을 어떻게 담보한다는 걸까. 이 문제는 세탁공장을 운영해본 그의 노하우와 네트워크가 해결한다. 다양한 세탁공장과의 네트워크가 있는 채 대표는 업계의 생리도 잘 알고 있다. 품질을 담보할 수 있으면서도 저렴하게 세탁물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결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워시온은 세탁물 배달이 주목적이 아니다. 채 대표는 옷 보관 서비스도 가능합니다. 세탁물 배달은 출발에 불과한 거죠. 옷에 대한 모든 고민을 덜어줄 서비스가 되겠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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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물류대란의 시대다. 거꾸로 보면 물류혁명의 기회가 왔다. 창고형 마트와 대형 아울렛이 엄청나게 들어서고 있는 한 켠에서는 무거운 짐을 들고 쇼핑하러 다니기 싫어 인터넷과 모바일로 쇼핑을 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이 늘어날수록 누군가 물건을 실어 옮겨야하기에 택배업은 날이 갈수록 성장세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잡다한 물건을 팔거나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물건을 만들어 팔고자 하는 개인들도 많다. 이들은 카페24 등의 서비스를 통해 판매업자로 변신하고 있다. 이런 소규모 판매상까지 가세하면서 물류 폭발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204회의 주인공 손민재 마이창고 대표는 이런 물류대란의 시대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기자-편집장-IT업계를 거쳐 공무원까지

처음 손민재 대표를 만났을 때부터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만만치 않은 스토리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기에 상당히 사연이 있으신 분 같네요라고 운을 뗐다. 손민재 대표 역시 자신의 살아온 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목적은 아니었을 거다. 식사나 하면서 새로 시작한 일에 대한 소식을 알리겠다는 의도가 당연히 우선이었을 터. 하지만 내가 사연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분위기는 초반 그렇게 흘러갔다.

정부나 이런 쪽에서는 저를 잡지 분야나 미디어 전문가로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정작 언론계에서는 저를 IT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생각할 거에요. 막상 IT업계에서는 와인 전문가로 규정할 겁니다.”

그의 첫 마디는 이랬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방인의 삶을 살았다는 뜻일까. 그는 서울문화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우먼센스로 알려진 그 잡지사다. 그러다가 경향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문기자 일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적성에 안 맞더라구요.”

그는 다시 잡지로 돌아왔다. 이영혜 사장을 만나 디자인하우스에서 일했다. 워킹우먼 편집장의 그의 직함이었다. 그러던 중 19982월 조모상을 당하게 된다. “종손이어서 장례식장을 계속 지키는데, 문득 잡지 일을 계속 하기가 싫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바로 그만 뒀어요.”

여기까지만 들어도 독특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IMF(국제통화기금) 한파가 한창이던 때에 그냥 문득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니. 다른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그는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19981년 가까이 선물투자에 돈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의 결말이 흔히 그렇듯, 거의 전 재산은-그의 표현에 따르면 갖고 있던 모든 돈을-다 날렸다.

돈이 다 떨어졌으니 일을 다시 해야할 수밖에. 1999년 그는 쿠켄이라는 잡지의 편집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요리 잡지는 요리 전문가가 하는 게 좋을까요, 잡지를 잘 아는 사람이 맡는 게 좋을까요.”

그의 느닷없는 질문. 둘 다 잘하면 좋겠지. 하지만 그의 질문은 아마도 우선순위랄까, 아니 기본을 말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잡지를 잘 아는 사람이 만들어야 합니다. 요리 전문가는 요리 잡지에는 적합지 않아요.”

그가 이런 말을 한 까닭은 동양매직이 하는 잡지였던 쿠켄은 잡지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요리나 주방기기 등을 바탕으로 자본이 축적된 기반 위에서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즉 출발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그 역시 들어가서 알게 된 것. 그는 결단이 빠른 것 같다. 문제가 있고 자신과 맞지 않음을 알고 바로 나와 이번에는 당시 창간한 지 얼마 안 된 파이낸셜뉴스의 문화부 학술팀장으로 일하게 된다. 회사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아웃소싱 방식으로 기사를 제작하던 그 언론사의 시스템에 맞춰 기사를 아웃소싱하는 일을 한 것.

200011월에는 삼보컴퓨터, 조선일보, 코리아나화장품, 대우기술 등이 합작해 만든 여자와닷컴이라는 유명 여성포털에 들어간다. 여성포털이었지만 이 회사는 오프라인사업도 구상하고 있었고 손민재 대표는 오프라인사업본부장을 맡았다. 회사가 어려워진 뒤 총괄COO까지 됐지만 네이버가 장악한 포털 시장에서 차별점을 내세워 살아남기란 어려웠다. “2004년까지 있었어요. 그러다가 나와서 베스트레스토랑이라는 잡지사 발행인을 했는데, 집까지 날렸죠. 허허

파란만장한 그의 스토리가 이쯤되면 숨을 좀 고를 법도 한데, 그렇지가 않았다. 롤러코스터 타듯 인생의 굴곡을 맛보면서 그는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가장 잘 하는게 뭘까.”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뭐든 잘 하는 게 한 가지라도 있고, 그것을 자신있게 내세우면 된다. 그 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잡지 만드는 것, 책 만드는 것을 제일 잘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2007년 동아일보로 갔죠. 빈티지 잡지를 제안했어요. 남성지 시장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게 저의 생각이었죠.”

그는 정치 기사는 한 줄도 안 쓰고, 오로지 경제 기사를 완전히 색다르게 쓰겠다고 다짐하고 동아일보로 갔다. 아니, 그게 그의 제안이었다. 독립된 회사로 분사해 나오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20081월까지 동아일보에 있다가 나왔고 창업을 하기 전 그의 마지막 직장은 문화체육관광부였다. 국정홍보처가 폐지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국정의 홍보 기능을 총괄하게 되면서 국민들에게 정부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줄 매개체가 필요해졌다. 그는 그런 일을 맡을 적임자로 꼽혀 난데없는(?)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된 것. 2013년말까지 그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문화부에 몸을 담았지만 정작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물류혁신이 다가온다

인터넷과 유통, 물류가 가져오는 혁신에 뭔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확신했어요. 사실 전 메신저 사업이 하고 싶었죠.”

실제로 그는 공직 생활을 하기 전 아이몽(I’m on)이라는 메신저를 만든 경험이 있다. 음성메신저가 뜰 거라고 생각했어요. “문자로 치지 말고 그냥 말로 하게 하자 그러면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이게 기본 컨셉이었어요.”

그는 급성장하는 인터넷 분야의 일을 하고 싶었다. 공직 생활 중에도 다음 일을 생각했다.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카페24와 같은 쇼핑몰 서비스 덕분에 누구나 인터넷 쇼핑몰을 차리기는 쉬워졌다. 택배도 엄청나게 진화했다. 그런데 그 중간 과정의 어려움은 별로 해결되지 않았다. 그의 문제 의식은 물류, 그 중에서도 작은 쇼핑몰을 운영하는 수많은 seller들의 고통에 초점이 모아졌다.

작은 쇼핑몰을 창업했다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뭔지 아세요? 반품입니다. 반품 때문에 좌절하는 판매상들이 정말 많아요. 처음에 시작할 때는 누구나 물건을 파는 것만 생각하거든요. 반품이 들어오는 부분은 생각도 못하죠. 그러다가 판매한 물건이 쏟아져 들어오면 당황하는 거죠. 물류창고요? 어림도 없죠. 그렇게 작은 쇼핑몰들이 어떻게 물류창고를 만들겠어요.”

창고를 소유하고 있는 이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창고를 소유하고 있는 이들의 어려움. 사실 나는 손민재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런 세계를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하여간 국토교통부 자료를 찾아봐도 전국적으로 창고 숫자는 4500여개에 달한다. 이들은 대형 화물 등을 보유한 화주들과 제곱미터 단위로 계약을 체결한다. 당연히 안정적인 거래를 선호할 터. 대량의 화물을 보유했거나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창고를 쓸 만한 화주를 선호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소규모 쇼핑몰 사업주들이 찾아오면 반가울 까닭이 없다. 화물 자체가 많지가 않기 때문에 여러 명의 화주와 계약을 체결해야 하고 그러면 빈 공간이 많아지거나 불확실성이 커진다. 이래저래 피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큰 화주를 잡기 쉬운 것도 아니다. 창고는 그렇게 계속 빈 채로 남아있게 된다.

창고주와 셀러. 이들의 괴로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방안이 있지 않을까. 양쪽 다 행복할 수 있는. 그렇게 되면 판매상은 더욱 활성화되고, 셀러들이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창고주들도 행복해진다. 그는 이 둘을 연결할 방법을 찾았다. 이름하여 마이창고다.

클라우드 창고 시스템 마이창고

손민재 대표는 마이창고2014820일에 설립했다. 마이창고는 소규모 쇼핑몰 사업자들의 물품을 모아서 창고주와 계약하는 방식이다. 하나하나는 규모가 작지만 모이면 사이즈가 커진다. 화주 입장에선 대규모 화주와 계약하는 것과 규모는 비슷해질 수 있다. 소규모 화주들은 안정적으로 화물 적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것을 관리할 통합 시스템이다.

창고가 얼마나 전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글쎄. 잘은 모르지만 기본적인 전산 시스템은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들어가고 나가는 기록이라던가, 재고 수량이라던가, 그리고 이것을 주단위, 월단위 등으로 집계하는 시스템 정도? 그런데 손민재 대표는 그런 기능을 갖추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마이창고의 플랫폼은 이런 창고들을 위한 솔루션이다. 하루 1만개 화물을 보유한 화주나 100개짜리 화물을 보유한 100명의 화주나 결국 숫자로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100명의 화주를 컨트롤하고 이들 각각의 화물을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전산시스템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결국 매니지먼트가 안돼 감당이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창고주가 일일이 그런 시스템을 만들긴 쉽지 않다.

창고주들은 창고 관리 프로그램에 대해 안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게 손 대표의 전언. 창고관리솔루션인 WMS는 대체로 어렵고 돈만 들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 항상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고 정작 필요할 때는 정비를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기존 창고관리시스템의 주인은 화주였지, 창고주가 아니었다. 손 대표는 화주가 주인이 될 수 있는 창고관리시스템을 구축했다.

소호몰을 위한 물류 대행.” 손민재 대표는 마이창고의 업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했다. 소호몰들의 창고 공동구매나 창고프랜차이즈라고 볼 수도 있지만 본질은 물류 대행이라는 것. 그 말은 그냥 창고를 같이 이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존 3자 물류의 서비스들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류, 택배, 반품도 대행해주고, 컨설팅은 물론 전산 솔루션 호스팅 업무까지도 해 준다.

내년에는 하루 2만개의 물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면 연간 최대 500만개까지 물량이 늘어난다. “기존 창고와 화주들은 창고의 면적당 계산을 했지만 마이창고는 화물 개당 정산을 합니다. 공간을 파는 사업을 작업을 파는 사업으로 바꾼 거죠. 이렇게 함으로써 빈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고 단기 보관도 가능해졌습니다. 대형 화주의 틈새 화물도 받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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