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2007년 NHN을 나와 당시 아이위랩이라는 실험적 성격이 짙은 회사를 차리면서 장기적인 목표로 “벤처기업인 100인을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카카오를 설립하고 포도트리에 투자하면서 그의 이런 아이디어는 구체화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2010년 두 회사에 이어 다른 회사에 대한 추가적인 투자나 육성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김 의장을 만났을 때도 그는 “방법을 고민중”이라고만 했었다.

그랬던 김 의장이 방법을 찾은 것 같다. 김범수 의장은 3월 28일 IT분야 초기단계의 벤처기업(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케이큐브벤처스(K Cube Ventures)를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인 등록을 마치고 투자조합결성에 나선 이 회사는 다음달부터 본격적인 투자 활동을 시작한다. 29일 케이큐브벤처스 대표를 맡은 임지훈 사장과 만나 회사 설립 배경과 향후 계획 등을 들었다. 김주완 한국경제신문 IT모바일부 기자가 동행했다.

◆결국은 엔젤투자가 답

김범수 의장을 작년에 만났을 때만 해도 “벤처투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인큐베이팅 회사를 설립하는 가능성에 묻는 질문에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만의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계속 방법을 찾고 있었다는 것. 그의 이런 고민은 임지훈 소프트뱅크벤처스 수석심사역을 만나면서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전개된 것으로 보인다. 

 김범수와 임지훈 두 사람이 만난 것은 공식적으로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일하고 있던 임지훈 대표는 카카오에 대한 투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010년 여름 김범수 의장을 만나러 갔다. 사용자가 200만명이 채 안되던 시절이었다. “카카오톡이 대박이 날 거란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당시엔 외부 투자를 받기엔 적절한 때가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 뒤로도 몇 번을 찾아갔지만 투자는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작년 10월 카카오가 모바일 소셜커머스업체 로티플 인수에 나서면서 소프트뱅크벤처스에 있을 때 이 회사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던 임지훈 대표와 김범수 의장이 다시 만나게 됐다. 임 대표는 개발력이 뛰어난 로티플의 가능성을 보고 이 회사가 생긴지 한 달만에 3억원을 투자했고 서비스를 내놓기 전에 10억원을 추가로 투자했다. 로티플은 설립 8개월만에 카카오에 인수됐다. 소프트뱅크벤처스가 로티플 지분을 상당부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임 대표와 김범수 의장이 마주 앉게 된 것이다. 

 만남이 이어지면서 김 의장은 임 대표의 안목을 평가하게 되지 않았을까. 물론 이것은 김범수 의장이 직접 설명한 부분은 아니다. 임 대표의 이야기를 종합해봤을 때 그럴 것 같다는 추론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공학과 99학번인 임 대표는 졸업후 엑센추어, NHN 등에서 병특으로 병역을 마쳤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을 거쳐 2007년 6월 소프트뱅크벤처스에 합류, 최근까지 여기서 투자심사역으로 활동했다. 경력은 10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30대 초반이다. 국내 창업투자회사 대표들이 대부분 40세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30대 초반인 그의 발탁은 이례적이다. 임 대표는 벤처투자업계에서 선구안이 좋기로 소문난 인물이다.그는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5년여 동안 KINX, 처음앤씨, 한텍엔지니어링 등을 초기에 발굴, 투자해 IPO(기업공개)까지 성공시켰다. 또 선데이토즈, 두빅, 바이미닷컴, 인포마크 등 현재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벤처기업들을 초기에 투자하기도 했다. 

 임 대표가 수석심사역으로 일할 때 두드러졌던 점은 창업가들의 창업 동기, 백그라운드 등을 투자를 결정할 때 중요한 요소로 평가했다는 점이다. 특히 창업자의 됨됨이를 가장 많이 따졌다고 한다. 창업자와 창업 멤버를 10번 이상 매번 두 시간 정도 만나 그들의 열정과 집요함을 확인한다. 임 대표는 “특출나고 끈기 있는 창업자라면 실패를 하더라도 다음에 뭔가를 분명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또 인류를 좀 더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서비스와 제품을 내놓을 창업자를 선호하다. 이런 사업에는 돈도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결국 연초에 김범수 의장은 임 대표에게 자신이 설립할 투자회사의 대표를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것은 이 투자회사의 성격을 결정지을 중요한 계기가 된 것 같다. 임 대표는 아주 초기 단계의 벤처 투자가 전문인 인물. 결국 엔젤투자가 답이라는 결론을 김 의장이 내렸다는 뜻이다.

◆기업가는 가르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엔젤투자회사이지만 기존 엔젤투자와는 좀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투자 금액. 임지훈 대표는 “보통 엔젤투자자들은 1억에서 3억원 정도를 투자하지만 케이큐브벤처스에는 사실상 투자 상한선이 없다”고 설명했다. 업종의 성격에 따라, 또 필요하다면 5억원, 10억원이라도 투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임 대표는 장병규 사장이 만든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가 매우 좋은 선례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케이큐브벤처스는 인큐베이팅도 할까. 인큐베이팅은 하지 않는다. 

 “아직 사업에 서투르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조언을 해주고 가르쳐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임 대표는 단호했다. “기업가는 가르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의 이런 생각은 김범수 의장의 기본 인식과 일맥상통한 것 같다. 케이큐브벤처스는 사업 방향을 잡아주고,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하는 그런 작업은 하지 않는다. 통상의 엔젤투자자보다 큰 금액을 투자하고 네트워킹을 형성하는 것을 도와준다. 

 “우리는 마케팅을 강의로 배우는 사람에게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보다는 훨씬 뛰어난 사람에게 투자하고 싶습니다. 기업가는 그런 것을 스스로 깨쳐서 알게되는 사람입니다.”

 케이큐브벤처스 사무실은 서울시 역삼동의 카카오 사옥인 C&K 빌딩 4층에 마련됐다. 펀드 규모는 100억~150억원. 처음에는 김 의장과 그의 지인이 투자한다. 투자조합을 결성해서 펀드의 3분의 2 가량을 투자하면 바로 그 다음 투자조합을 결성하는 식이다. 케이큐브벤처스는 투자에만 그치지 않는다. 김 의장은 스타트업 기업에 구체적인 조언도 하고 필요하면 자신의 IT업계 인맥을 동원해 ‘원포인트레슨’도 할 계획이다. 또한 매달 1~2번씩 투자받은 회사들의 구성원들과 함께 난상 토론을 하는 등 같이 고개를 맞대는 자리도 만들 예정이다.

 이름을 왜 케이큐브벤처스라고 지었을까. K는 세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김범수의 K, 카카오의 K, 그리고 코리아의 K다. 정육면체, 세제곱 등의 뜻이 있는, 뭔가 아주 이공계적인 냄새가 나는 큐브


를 여기에 붙였다. 케이큐브벤처스는 엔젤투자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을까. 아직 엔젤투자가 열악한 국내 환경에서 초기기업 발굴의 고수인 임지훈 대표와 큰 그림을 잘 보는 김범수 의장이 어떤 모델을 만들어갈 지 기대된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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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무심코 내뱉는 말이 사실 자신의 속 마음이나 심리 상태를 여과없이 드러낼 때가 있다. 계속해서 일관되게 가면을 쓰고 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계속 가면을 쓰고 산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면을 쓴 그 모습도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특정 정체성의 반영인 경우가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내뱉는 말을 분석하면 어떤 특정 사안이나 현상에 대한 대중의 생각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보다 방대한 데이터, 보다 정확한 분석틀이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왜 많은 사람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 보다 수긍할 만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이 가능하다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매우 유의미하게 사용될 수 있다.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으로는 집단적 행동에 대한 예방, 진단, 치료 등이 가능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이런 일들이 이제는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방대한 데이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이번에 만나는 회사는 바로 SNS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대화, 반응,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의 욕구와 여론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트리움이라는 회사다.

<왼쪽부터 트리움 김도훈 대표, 이종대 이사, 손상원 이사>

◆사회 현상에 나타난 사람들의 집단 심리
창업자인 김도훈 대표는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96학번 출신이다. 사회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정경대(LSE)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회사의 비즈니스란 것도 결국은 대표이사, 창업자들의 관심과 역량, 의지의 반영이다. 그는 사회 현상에서 나타나는 대중들의 심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것을 연구하고 있었다. 황우석 사태가 터졌을 때였다.

 “황우석 지지자들은 왜 언론 등에 의해 황우석 교수의 연구 결과가 거짓임이 밝혀진 뒤에도 계속 그를 지지하고 공식적인 기관의 발표를 믿지 않는 것일까”

 그는 이런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사회심리 분야에서 이것을 연구했다. 애국심? 시기심? 국민성? 무엇 때문일까.

 “군중 심리 중에 황우석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그런 현상이 있었습니다. 일상의 분노를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자기 삶에 대한 항변도 깔려 있었구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인이 노력해도 안된다는 그런 생각이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음모론도 제기됐구요.”

 그는 이런 분석 결과를 정리해 이것을 한국에 있는 후배 이종대 씨에게 보냈다. 상문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후배인 이종대(연세대 경영학과 04학번)씨는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와 삼성전자 영플러스멤버십이 산학협력으로 하고 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현지화 전략 과제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선배의 논문을 영플러스멤버십에서 알게된 손상원(홍익대 산업디자인 02학번)씨에게 보여줬다. 손상원씨는 이 논문을 굉장히 인상깊게 봤다고 한다. 삼성의 영플러스멤버십은 삼성이 주최하는 공모전에 입상한 사람들로 구성된 멤버십이다. 손상원씨는 2007년 최우수상을 받을 정도의 인물이었으니 여러가지로 사업에 대한 생각을 안했을 리 없다. 논문을 통해 세 사람은 일차적으로 관심사가 비슷하다는 연결고리를 발견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세 사람은 김도훈 대표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좋은씨앗’이라는 음식점에서 만났다. 김도훈 대표는 공부를 하면서 얻은 영감을 사업화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고 두 사람과 뜻이 통했다. “좋은씨앗에서 만나 좋은 씨앗을 뿌린 셈이 됐죠” 웃으면서 김 대표가 한 말이다.

◆경영 컨설팅 회사로 출발
2010년 9월 회사는 우선 개인사업자 형태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경영컨설팅으로 사업 방향을 잡았다.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이것을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컨설팅의 새로운 분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분석한 경영컨설팅이 이들이 처음 잡은 사업이었다.  

 그런데 경영 컨설팅을 하다 보니 자동화하는 작업이 점점 많아졌다. 분석 결과를 유기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디자인 작업의 필요성도 늘었다. 디자인 분야와 기술을 총괄할 사람들이 더 필요했다. 개인사업에서 2011년 3월 회사를 법인으로 전환하던 시점에 필요한 사람들이 회사에 왔다. 김태준씨와 정영화씨다. 김태준씨는 모든 제품 디자인을 맡게 됐고 정영화씨는 비주얼 디렉터가 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김남혁씨는 인턴으로 회사에 입사했지만 탁월한 능력으로 회사의 기술 분야를 총괄하는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자리에 올랐다.

 돈은 어떻게 조달했을까. 법인을 설립할 때 자본금 3000만원으로 시작했다. 그 뒤로 한번도 투자를 받지는 않았다. “투자받지 않고 매출 계속 내면서 버틴 거죠. 지금은 투자받는 것을 고민하는 시기입니다.”

 창업멤버 중 이종대 이사는 비즈니스 허브 리드를, 손상원 이사는 크리에이티브 허브 리드를 맡았다. 사장인 김도훈 대표는 리서치 허브 리드를 맡고 이 세가지를 이어보자는 뜻에서 회사 이름을 트리움으로 지었다. 법인 전환 후 이 회사는 경영컨설팅에 머물지 않고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인 주제에 대한 폭넓은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 경영 컨설팅 뿐 아니라 정부기관, 언론사와의 일도 수행한다.

◆관계 분석에서 언어 분석으로
사회심리학을 전공으로 한 김도훈 대표는 시맨틱분석방법론을 이용해 논문을 썼다. 관계 분석이 핵심이었다. 그런데 SNS 분석을 하면서 점차 언어 분석이 중심이 되고 있다. 언어 분석은 훨씬 깊은 난이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이 당명을 개정했을 때 소셜분석을 해보니 75%가 찬성했다고 나온 그런 결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보니 이런 결과는 언어의 맥락, 반어법 등이 전혀 분석이 안됐기 때문에 나온 결과였습니다. 언어 분석에는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맞는 말이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언어 분석을 하려면 그래서 문장이나 단어 자체보다 대화나 글이 오가는 상황을 더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런 것을 계량화해서 분석 틀을 만들 수 있을까. 현재로선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게 트리움의 몫이다. 

 트리움은 굉장히 민감한 분야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분석하기로 작정한 이상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대부분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이슈인 경우가 많고, 이런 것들을 분석한다는 이유만으로 돌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트리움은 사업을 할 때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출발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리 결론을 짜맞추지 않는다는 겁니다. 기존 소셜분석 회사들 중에는 틀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에 짜 맞추게 되죠. 우리는 문제를 어떻게 하면 잘 해결할 것인가에 중점을 뒀습니다. 그러면 틀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자는 그런 원칙도 세웠죠. 마지막으로 정당한 대가를 받겠다는 원칙도 세웠습니다. 그냥 공짜로 해 주고, 싼 게 비지떡이라는 그런 사업은 하지 않겠다고 한 거죠.”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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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출장을 갔다가 현지에서 감귤을 사 갖고 온 적이 있었다. 정말 맛있었다! 얼마 뒤 동네 마트에 갔더니 마침 같은 상표의 감귤이 있길래 냉큼 사다 먹었다. 그런데 그 맛이 나질 않았다. 왜 그럴까.
 
 같은 지방에서 난 농산물을 먹었을 때 현지에서 먹었을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유통 과정에서 상품의 신선도가 떨어졌거나 같은 산지에서도 품질이 좀 떨어지는 것을 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산지직송 상품을 찾는다. 하지만 산지 직송 물품을 구매해서 집에서 받아보기란 아무때나 편하게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일단 그 상품에 대한 신뢰가 없다. 얼마나 품질이 좋은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가격이 정말 싼 것인지 회의감도 든다. 시행착오를 계속 하느니 귀챦다는 생각에 그냥 마트에 가서 사먹고 만다.

 헬로네이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이들이 그저 농수축산물의 산지 직거래 사이트 정도를 오픈할 거였으면 아마 거창하게 사업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는 차별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좀 다른 방향성을 갖고 출발했다.

◆왜 이렇게 비싸고 맛이 없지?
서울대 농경제학과 05학번 좌종호씨는 전공 수업 과제 때문에 시장조사에 나섰다가 깜짝 놀랐다. 산지에서 10㎏ 당 3500원에 불과하던 경기도 여주산 가지가 소매시장에선 3만6000원이나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복잡한 유통과정 때문이었다. 가격은 10배가량 높아졌는데 농민들 손에 쥐어진 돈은 몇 푼 되지 않았다. 신선도는 되레 떨어지고 맛도 없어졌다.  

 “제가 시골 출신이라서 산지에서 과일을 자주 먹어요. 그런데 서울에 와보니 똑같은 과일이 오히려 맛은 떨어져 있는데 값은 두 배가 된 거에요.”

 좌종호씨가 계산해보니 유통 마진은 평균적으로 80%에 달했다. 많은 고정 소비자를 확보한 유통 매장일수록 이 마진이 커졌다. 유통 마진이 원가를 넘어가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그와 고민을 같이 한 사람이 포항공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AT커니를 거쳐 쿠팡에서 일하고 있던 박병열씨였다. 

 박병열씨는 국내에서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밟고 있었다. 명문대를 나와 유명 컨설팅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그는 아마 창업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외국에 나가 공부를 더 하거나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경험을 쌓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그런 길을 택하지 않았다. AT커니에 있으면서 그는 일이 너무 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죠. 그런데 저에게는 컨설팅 일이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컨설팅을 받는 회사들을 보면 대부분 답을 이미 다 알고 있어요. 그걸 다만 외부에서 확인을 하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맥이 빠질 때가 많았습니다. 한편으론 별로 세상 경험도 없는 제가 무슨 컨설팅을 하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AT커니를 6개월여만에 나온 그는 소셜커머스업체 쿠팡에 취직했다. 소셜커머스 사업은 그에게 컨설팅보다 훨씬 큰 재미와 보람을 줬다. 하지만 소셜커머스라는 영역은 이미 많은 업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경쟁이 치열한데 마진이 박한 곳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그는 때마침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좌종호씨를 만났다. 그의 사업 아이디어를 듣고 무릎을 쳤다. 둘은 창업을 하기로 했다.

◆농촌으로 달려간 네 명의 총각들
뜻은 세웠지만 사람이 더 필요했다. 좌종호씨가 사람을 데리고 왔다. 서울대 농경제학과 10학번인 조태환씨다. 같은 학교 같은 과 후배인데다 마음이 잘 통한다는 게 장점이었다. 조태환씨는 서울대학교 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을 간략하게 올렸다. 그런데 뜻밖에 이 글을 보고 서울대 경제학과 05학번 유준재씨가 같이 일을 하고 싶다며 이들을 찾아왔다. 창업 멤버 4명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구성원을 완료한 이들은 일단 사업 기획을 하고 헬로네이처라는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엔 변변한 사무실조차 없어 친구 사무실과 커피숍을 전전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무실이 아니었다. 처음 농산물 직거래를 하기 위해선 공급자를 확보하는 게 필수였다. 그것도 믿을 만한 공급자를. 사업 의지는 충만했지만 노하우는 없었다.

 “어떻게 공급자를 섭외했나요?”
 “딱히 방법이 없더라구요. 무작정 시골로 내려갔죠.”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강원도, 제주도를 중심으로 농산물 산지를 누비고 다녔다. 그런데 이들은 시골에서 어슬렁거리기엔 너무 젊었다. 아니 어렸다. 젊은 청년들이 떼지어 다니니 사기꾼 취급을 하는 사람들마저 있었다. “이러다간 안되겠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사람들 속을 파고들기로 했어요. 강원도 산골에 가서 농가 사람들이 하는 일을 도왔죠. 김장 김치를 함께 담그고 막걸리도 나눠 마셨어요. 그러면서 하나 둘 씩 사람들 마음을 얻었죠.”

 이렇게 계약한 농가가 20여곳에 이르렀다. 농가를 확보하면서 서비스를 오픈했다.  계속 변변한 사무실도 없이 지내다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주관한 창업보육프로그램에 선정되는 행운이 주어졌다. 100여개 팀 중 4팀을 뽑는데 헬로네이처가 선정된 것이다. 덕분에 지난해말 무료로 상암동DMC(디지털미디어시티) 누리꿈스퀘어에 사무실도 얻었다. 2012년 1월에는 정식으로 법인도 설립하고 공식 출범했다.

◆농촌과의 상생모델 만들겠다
믿을 만한 농가를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남는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사람 얼굴 보고 판단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좀 친해졌다고 아무 물건이나 들여올 수도 없다. 그런 식으로 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농산품이 마구 들어오면 소비자들이 떠나게 된다.

 인터넷에서 직거래 상품을 찾을 때 소비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상대방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좀 비싸도 마트에 가서 사 먹는 이유는 그래도 대형 마트들은 품질 검수를 거쳐 어느 정도 수준 이상 되는 제품을 들여온다. 그래서 헬로네이처는 자체 품질위원회를 만들었다. 구성은 물론 외부인으로 했다. 1기 품질위원회는 요리블로거 김진옥씨와 전통음식 조리사 김선미씨. 3월5일부터 시작된 2기 품질위원회는 김선미씨와 이용자 중 지원을 받아 2명을 선정, 총 3명이 활동하고 있다.

 헬로네이처가 삼고 있는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 헬로네이처에서 상품을 판매할 때 ‘헬로네이처의 ***’이 아니라 판매자의 실명을 걸고 판매를 한다는 점. 그리고 판매가 일어날 때마다 달린 질문이나 후기 등을 취합해 생산자에게 직접 전달한다. 소비자들의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직접적으로 받은 생산자는 이를 참고해 다음 농사를 지을 때 개선할 수 있다. 또 생산자는 자신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에 대한 각종 정보를 원칙적으로 게시해야 한다. ‘내가 먹는 농산물이 누가 어떻게 생산한 것인지’를 알고 싶어하는 스마트한 소비자들의 수요에 발맞춰 친환경농산물 인증 여부와 더불어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 여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단순 ‘판매’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생산자가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채널을 열어준 것이다. 헬로네이처는 수확철이 되면 농촌관광 서비스를 기획해 수확 체험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처럼 농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자신의 브랜드를 걸고 헬로네이처에서 농산품을 판매하는 것이 다른 CJ오쇼핑 등 대기업들이 하는 직거래 서비스와 다른 점이다. 헬로네이처는 직거래 쇼핑몰을 넘어선 또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다.

“직거래만 갖고는 안정적인 매출이 나오지 않습니다. 저희는 2단계로 정기 배송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매주 또는 매달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 등을 일정 분량 정기적으로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품질이 보증된 농산품을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상품을 기획중입니다.”

 3단계도 있다. 일명 패키징 서비스다. 직거래 상품은 보통 한꺼번에 물건을 많이 구매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그나마 배송비라도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헬로네이처는 소량으로도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중이다. 정기 배송과 패키징이 결합되면 안정적인 매출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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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지난 달 KT경제경영연구소가 운영하는 디지에코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디지에코 측의 양해를 얻어 원문을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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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년부터 2000년에 걸쳐 한국 사회를 폭풍처럼 휩쓸었던 벤처붐이 10여년이 지난 지금 재현되고 있다. 신규 창업 기업의 숫자가 10년 전의 기록을 갱신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이들의 숫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하지만 10여년 전과 지금의 벤처붐은 동일선상에서 놓고 비교하기엔 힘든 측면이 존재한다. 10년 전의 벤처붐이 일종의 무분별한 광기가 시장을 지배했다면 최근의 벤처붐은 보다 조심스러운 합리적인 선택에 힘이 쏠리고 있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10여년 전의 지나친 투자 열풍으로 인한 쪽박의 경험이 투자자와 기업가 모두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정부 차원의 무분별한 지원에 대한 우려가 높지만 소규모 자본과 적은 인력으로 합리적인 수준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과거 한탕주의식 벤처 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예측을 가능케 한다.

◆대학생 벤처 기업가 대거 등장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는 대학생 벤처 기업가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말 한국 최초의 벤처붐을 일으켰던 인물들은 80년대 초중반의 학번들이었다. 이들은 대기업 등에서 직장 생활을 하거나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와서 창업을 하곤 했다. 그 당시라고 대학생 창업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주류는 아니었다.

 그런데 2010년부터 불기 시작한 제2의 벤처붐 현상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대학생 벤처 기업인들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윤자영 스타일쉐어 대표, 전해나 애드투페이퍼 대표, 김태우 모글루 대표, 권순범 이큐브랩 대표, 이참솔 로티플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고등학교때부터 창업을 한 양준철 온오프믹스 대표, 표철민 위자드웍스 대표 등도 있다. 이비호 스픽케어 부사장은 대학시절부터 창업을 해 온 인물이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창업을 하긴 했지만 심여진 스픽케어 사장은 대학 1학년때부터 창업을 준비한 사람이다.

 왜 대학생 벤처기업가들이 이렇게 많아진 걸까? 취업이 어려워지자 창업에 나선 이들이 많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일찍부터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이 많아졌다는 점, 이들이 비교적 쉽게 창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꼽을 수 있다.

 대학이나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창업 스쿨을 열고 창업 지원을 약속하는 것은 분위기 형성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생들이 과거보다 훨씬 창업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비교적 쉽게 창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모바일, 인터넷 분야 등에 한정된다. 기존 굴뚝 창업에는 그리 관심이 높지 않다. 20, 30대 창업가들, 특히 20대 대학생 벤처기업인들은 돈 탭스콧이 그의 저서 ‘Digital Native’에서 지적한 바 있는 바로 그 디지털 네이티브들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만지고 자라고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휴대폰을 쓰는데 익숙했던 이 세대들은 모바일이나 컴퓨터 분야에서의 창업을 아주 대단히 어려운 분야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창업에 대한 거부감을 낮춰준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 노린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국내에서 서비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다음에 도전한다는 게 정석처럼 여겨졌었다. 투입할 수 있는 리소스가 극히 제한돼 있는 벤처기업의 경우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최근 스타트업들은 회사를 설립하면서 거의 동시에 해외 사업을 준비한다. 특히 스마트폰용 앱을 만들거나 모바일 분야의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가 더욱 그렇다. 이런 분야에서는 과거 웹을 기반으로 한 사업을 할 때와 달리 해외 사업과 국내 사업의 차이가 크게 없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마켓과 애플 앱스토어라는 대표적인 두 개의 큰 생태계가 마련된 뒤 해외 사업을 하더라도 굳이 대규모 인력을 외국에 파견한다든가 막대한 리소스를 투입하지 않고도 앱을 만들어 해외 사용자들에게 제품을 알릴 수 있게 됐다.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그리 많지 않은데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면 해외에 진출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앱을 국내외에 동시 출시했는데 해외에서 더 좋은 반응을 얻는 경우도 꽤 있다. 브리드가 만든 어썸노트는 유료 앱이고 비교적 애플 앱스토어에 늦게 진입했지만 해외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젤리버스라는 벤처기업이 만든 큐브로라는 사진 편집 앱은 국내 사용자 못지 않게 해외 사용자를 모았다. 김무궁 사장이 설립한 OGQ에서 만든 배경화면 앱은 대부분의 사용자가 해외 소비자들이다. 언어로 이해할 필요가 없는 말 그대로 배경 화면에 관련된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장벽이 없다고 해도 어느 정도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 소규모라고 하더라도 해외에 사무실을 내거나 현지 업체와 제휴를 할 필요성은 점점 커질 수 밖에 없다. 소득이 발생할 경우 세금 문제를 비롯해 현지 사업자가 갖게 되는 다양한 혜택 등 때문이다.

 국외에 법인을 설립하고 외국 업체들과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최근의 창업자들이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는 최근 제2의 벤처붐 시기 젊은 창업자들이 선배 창업자들과 다른 점은 외국어에 능숙하다는 점이라며 이들은 해외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말헀다.

 인터랙티브 e북을 제작하는 모글루는 회사 설립 초창기부터 미국 법인 설립을 함께 추진했다. 김태우 대표와 함께 창업한 멤버 중 미국 뉴욕 출신의 공동창업자가 미국 법인을 맡았다. 뉴욕에 상주하며 사무실도 내고 해외의 전자책 유통업체나 IT업체들과 일을 하고 있다. 패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지향하는 스타일쉐어도 2011년 창업과 동시에 해외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경우다. 이 밖에 이음소시어스, 아블라컴퍼니, 페이즈캣, 포도트리 등 설립한 지 1-2년이 채 안된 신생 스타트업들도 각각 진출 국가는 다르지만 초기부터 해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해외 VC도 국내 진출
해외 벤처캐피털(VC)의 국내 진출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2000년을 전후로 한 시기 1차 벤처붐때는 해외 VC들이 국내 대형 VC가 투자하는 기업에, 그것도 적은 지분이나 소규모로 투자 참여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해외 VC가 적극적으로 국내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 거의 투자 활동이 없었던 퀄컴벤처스는 지난 2010년 한국에 사무소를 낸 뒤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10년 펄서스라는 벤처기업에 투자한 데 이어 2011 6월에는 증강현실 SNS 오브제(Ovjet) 개발사 키위플에도 15억원을 투자했다. 폴 제이콥스 퀄컴 회장은 한국은 증강현실을 비롯한 신기술 벤처가 많은 편이고 젊은이들의 창업 열기도 높아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기에 좋다중장기적으로 한국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규모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알토스벤처스, 매버릭캐피털, DCM, 인사이트벤처파트너스 등도 최근 국내에서 투자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회사들이다. DCM은 한동안 국내 시장에 대한 투자를 거의 하지 않다가 최근 카카오에 투자를 하는 등 한국 시장에서 다시 움직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게임 분야에서는 중국 최대 온라인게임업체 텐센트의 활약이 눈부시다. 국내 중소규모 온라인 게임 개발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해 왔던 이 회사는 최근에는 모바일 게임업체 페이즈캣, 모바일 광고 플랫폼 업체 퓨처스트림네트웍스 등에도 투자하는 등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내에서 10년 이상 투자를 하면서 벤처 기업 육성에도 힘을 쏟아온 소프트뱅크코리아와 소프트뱅크벤처스 역시 최근 투자 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벤처 인큐베이팅 분야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해외 VC들이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이유는 뭘까. 우선 많은 투자 회사들이 한국의 모바일 환경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4세대 이동통신 롱텀에볼루션(LTE)를 전 세계에서 16번째로 시작한 나라다. 순서상으로는 그리 빠르다고 할 수 없지만 서비스 커버리지 범위는 놀랄만큼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주요 통신 3사가 2012 4월께면 모두 전국 서비스망을 갖추게 된다. 주요 통신서비스업체들이 모두 LTE로 전국 서비스를 하게 되는 유일한 나라가 된다. 모바일 앱 이용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맷 머피(Matt Murphy) 클라이너퍼킨스 코필드 앤 바이어스(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 아이펀드(iFund) 대표는 한국은 2011년 기준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이용자들의 앱 다운로드 수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고 1인당 기준으로 보면 세계 1라며 모바일 앱 이용이 가장 활발하고 스마트폰 확산 속도도 빨라 전 세계 모바일 분야 투자회사들이 한국을 주목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확산 속도도 빠르다. 2009 11월 아이폰이 도입된 뒤 2년도 되지 않아 스마트폰 사용 인구가 2000만명을 돌파했다. 2012년 상반기 중에는 전 국민의 60%에 해당되는 3000만 명이 스마트폰을 쓰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스카이 등 휴대폰 분야의 세계적인 강자들이 이 좁은 나라에 몰려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이런 세계적인 제조업체들과 관련된 제조 분야, 소프트웨어 분야의 창업이 많기 때문이다.

 

해외 투자 회사

투자 기업들

소프트뱅크벤처스

플라이팬,VCNC,두빅,데브시스터즈,스냅스 등

알토스벤처스

이음소시어스,쿠팡,스피쿠스

스톰벤처스

비타민MD,컴투스 등

매버릭캐피털

쿠팡,카카오 등

인사이트벤처파트너스

티켓몬스터

DCM

카카오,판도라TV

싸이버에이전트

카카오

텐센트(간접 투자 포함)

레드덕,퓨처스트림네트웍스,탑픽,아이덴티티,스튜디오혼 등

퀄컴벤처스

펄서스,키위플 

◆성공한 벤처기업인의 경험 전수
‘투자와 창업,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벤처 생태계형성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소프트뱅크벤처스 문규학 대표는 최근 국내 벤처산업의 움직임을 보여 이같이 평했다. 과거 벤처붐이 일었던 1990년대 말과 1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을 비교한 것이다. 한탕주의가 휩쓸었던 10여년 전의 버블 시기와 달리 지금은 좀 더 합리적인 기업가들과 신중한 벤처투자자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벤처 1세대들이 후배 벤처인들을 육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프라이머, 본앤젤스벤처파트너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택경 다음 창업자, 권도균 이니시스 창업자, 이재웅 다음 창업자, 장병규 네오위즈 및 첫눈 창업자 등이 뭉친 프라이머는 매년 스타트업 기업들을 발굴한다. 이들이 매년 하는 데모데이는 스타트업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다. 컨설팅 한번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와이컴비네이터처럼 스타트업이 비즈니스로 데뷔하는 그런 창구가 되려는 게 이들의 지향하는 바다. 이택경 프라이머 공동 대표는실리콘밸리의 와이컴비네이터(Y combinator)처럼 그들이 주최하는 데모데이에서 발표만 해도 15만 달러 투자 유치가 보장되는 그런 인큐베이터가 되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라며장기적으로는 이런 노력으로 국내에서도 벤처생태계라는 것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병규 블루홀스튜디오 이사회 의장은 2010년 본앤젤스벤처파트너스라는 초기 벤처 투자회사를 차렸다. 투자도 하고 상담도 해 주고 필요한 인력을 구해다주기도 한다.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는 오이씨(OEC)라는 벤처 인큐베이팅 및 컨설팅 업체도 따로 만들고 직접 후배 벤처기업인들을 챙기고 있다.

최근에는 벤처 1세대들의 움직임이 좀 더 조직화되고 있다.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사장, 신현성 티켓몬스터 사장, 스톤브릿지캐피털, 인사이트벤처파트너스 등은 패스트트랙아시아(Fast Track Asia) 라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회사를 설립했다. 미국과 한국의 벤처기업인, VC들이 연합해 만들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한 것도 차별화되는 점이다. 아이디어만 갖고 오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벤처창업 분야에 있어서의 오디션과 같이 지원자들을 모두 심사하고 엔지니어가 부족한 팀에는 전문 기술 인력을, 마케터가 필요한 팀에는 마케팅 인력을 지원하는 일도 한다. 사업화 뿐 아니라 해외진출 IPO(기업공개), M&A 등도 모두 도와주는 것으로 내세웠다.

이들의 이런 움직임은 지금 벤처산업을 10년 전과 다르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벤처기업가들이 했던 시행착오를 줄일 뿐 아니라 1세대나 경험많은 이들의 지원이 벤처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벤처생태계 조성 나서는 벤처기업인들>

인물

회사

주요 활동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패스트트랙아시아 주도, 스타트업 개별 투자도 진행

장병규

본앤젤스벤처파트너스

스타트업 투자 및 벤처인큐베이팅 사업

김범수

카카오

스타트업 개별 투자 및 벤처기업가 발굴

이택경

프라이머

벤처인큐베이팅 및 컨설팅

권도균

프라이머

벤처인큐베이팅 및 컨설팅

이재웅

프라이머, 소풍

스타트업 개별 투자 및 벤처인큐베이팅

송영길

부가벤처스

벤처인큐베이팅 및 컨설팅

신현성

티켓몬스터

패스트트랙아시아 주도, 스타트업 개별 투자도 진행

허민

위메이크프라이스

스타트업 개별 투자 진행


◆소규모 자본, 합리적 선택
이 블로그에서 1 10개월째 진행하고 있는 한국의 스타트업에 게재된 70여개의 국내 스타트업 기업 중 70% 이상은 2억원 안팎의 소규모 자본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창업 인원도 2명에서 5명 사이가 대부분이다. 적은 인원이 크지 않은 자본금으로 스타트업을 하는 것이다.

 서둘러 투자를 받지 않는다는 것도 이들의 공통점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투자를 받고 싶어도 그러기가 어려워 시간이 오래 걸린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사업 시작 후 바로 외부 투자를 받는 것보다는 제품을 내놓고 어느 정도 검증을 받은 후에 외부 투자를 진행하는 길을 택했다. 과거 이름만 걸어놓고 뻥튀기 식으로 포장만 하는 등 투자 받는 것을 제품 개발보다 우선시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외부투자를 지나치게 일찍 진행하거나 너무 많은 금액을 받을 경우 오히려 원래 생각했던 사업을 계속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마저도 있었다. 즉 외부투자자들에게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어느 정도 자생력을 키운 뒤 투자를 진행하는 쪽을 택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초반에 무리하게 벌리지 않고 핵심 영역에 집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선데이토즈를 설립한 이정웅 사장의 경우 설립한 뒤 한동안 투자를 받지 않다가 2년이 지나서 투자를 받았지만 그 돈을 1년 이상 쓰지 않고 계속 갖고 있었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경영을 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알뜰하게 사업을 꾸려나간 것이다.

 물론 여전히 많은 국내의 벤처 투자자들이 아주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는 하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멘토링이나 인큐베이팅, 컨설팅 등 조언자가 많아진 것도 경험이 없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조급하게 투자받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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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스물 여섯의 나이에 벌써 사업을 해 보고 두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이것 만으로 큰 자산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번째 사업에 도전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런 사람에게 투자를 하겠는가 안하겠는가. 정수환 앱디스코 대표는 대학생 시절 창업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 시작한 사업에서 짧은 시간 안에 정착하고 있다.

대학생 시절에는 젊은 혈기와 청년다운 이상주의적인 사고로 사업에 접근했던 그는 쓰라린 경험을 겪은 뒤 현실에서의 사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몸으로 완전히 체득한 인물 같았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두 번 실패를 겪은 사람이 세번째 시작하는 사업에는 반드시 투자하라고 말을 하곤 하는데 그의 경우가 이에 해당될까. 애드라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정수환 대표를 만났다.

◆태권도 선수에서 고대 총학생회장까지
창업자들을 만나다보면 별별 사람이 다 나오지만, 이제는 드디어 운동선수 출신까지 나왔다! 정수환 대표는 중학생까지 태권도 선수였다.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고 하니, 대단한 실력의 보유자였던 것 같다.(사실 그 당시 전국체전 금메달이면 아마 해당체급에선 세계 랭킹에서 손가락에 꼽힐 수준이 아니었을까) 곱게 자란 청년같은 외모지만 운동선수였다는 경력은 꽤나 이채롭다.

 그의 부모는 부유하진 않았지만 아들의 판단과 나름의 삶을 존중하는 분들인 것 같다. 운동을 시작했을 때도, 잘 하던 운동을 그만두고 성과가 불확실해보이는 공부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도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사실상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공부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뭐든 하면 죽을 힘을 다해 하는 것이 정수환이라는 사람의 스타일일까.

 태권도를 할 때도 그랬다. 태권도 선수 초기 시절 그는 자신의 체력이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훨씬 달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술도 부족했다. 그냥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남들보다 2배 이상 연습을 했다. 타이어도 끌고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별 걸 다해봤다고 한다. 태권도를 만만치 않게 해 본 기자가 봐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공부를 해도 그는 제대로 했다. 요즘처럼 아주 어릴때부터 영재교육이다 과외다 하는 분위기에 비하면 한참 늦은 셈이다. 그래도 열심히 해 고려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2005년이었다. 

◆하고 싶은 건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그가 느낀 것은 학생들의 목소리가 학교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는 자신이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심했다. 나이 차이 때문인지 기자가 대학에 다닐 때 본 학생회 인물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른바 대의명분에도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는 ‘정치적 인간’의 모습도 띄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하고 싶은 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고 했다. 이런 성격은 나중에 사업을 하면서도 여러가지 모습을 나타난다. 고집스럽다는 단점이 있지만 판단이 맞을 경우 확실한 의지와 방향성을 갖고 일을 추진할 수 있다.

 학생회장이 된 것도 가장 큰 이유는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것 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뭐든 악착같이 달라붙어 제대로 하고야 마는 그 성격과 추진력이 그를 학생회장으로 만들었다. 2008년 그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이 됐다. 하지만 총학생회장 경험은 그에게 새로운 숙제를 안겨줬다.사회공헌 활동과 이 활동을 청년들의 단체를 통해 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더 강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추진하기에 1년이라는 총학생회장 임기는 너무 짧았다. 물론 뭐든 어떤 것을 책임지는 자리에 가면 시간이 짧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2009년 청년 단체 활동을 시작한 그는 어찌보면 처음으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게 된 것 같다. “금전적인 필요성을 느꼈어요. 돈이 없으면 사회 공헌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거죠. 그래서 외주 개발일을 맡아서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러다가 기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매력적이라는 걸 알게 됐죠.” 2010년, 대학생 정수환은 그래서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두 번의 실패
사업 경험이 없이 개발 용역만 동료들과 해본 경험이 전부였던 그에겐 경험자의 조언이 필요했다. 카카오 이제범 대표는 그에게 사업을 위한 멘토가 돼줬다. 잠시 카카오에서 일하며 사업을 한다는 것, 대표이사가 된다는 것에 대해 어깨너머로 배운 그는 법인을 설립했다. 청년 단체 활동을 하면서 외주개발을 해 모은 돈 3000만원이 사업 밑천이 됐다. “개인 사업으로 시작하면 흐지부지될까봐 주식회사로 시작했어요. 처음엔 왕십리에 하루에 만원 내면 사무실 대여해주는 곳을 썼죠. 결국엔 안암동 학교 앞에 사무실 차리게 됐습니다.”

 경험이 없다는 것, 그리고 사업을 하기로 했지만 아직 현실에 대한 감각이 부족했다는 것은 그에게 실패를 경험하게 했다. 사회공험 쪽에 관심이 많아 ‘선행을 릴레이하자’라고 하는 사회적 기업의 성격을 지닌 사업이 그의 첫 일이었다. 자본도 없고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고객 CS부터 사진 및 편집까지 그가 다 맡아서 했다. 경험 부족에 사업 성격이 모호한 점이 맞물려 첫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바로 다시 도전에 나섰다. 2010년 10월 소셜커머스 서비스 해피즌을 시작했다.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고 한다. 첫 사업을 실패한데다 소셜커머스를 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이미 티켓몬스터 쿠팡 위메이크프라이스 등이 펄펄 날고 있었고 글로벌 1위 기업 그루폰이 한국에 진출하네 마네 하는 소문이 돌던 시점이었다. “저도 힘들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긴 했죠. 그런데도 해 보고 싶어라구요. 그래서 무작정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의 만류때문인지 그는 친구들과 함께 시작하면서 시한을 걸었다. “3개월 해 보고 안되면 접자”  늦게 하다보니 투자 받기도 쉽지 않았고 지출만 늘었다. 게다가 소셜커머스라는 영역은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어느 정도 규모가 되고 ROI가 나오기 힘든 구조다. 그루폰도 아직 BEP를 맞추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결국 3개월 만에 사업을 접게 됐다. 2011년 초였다 이것저것 합하면 1억 넘는 빚만 지게 됐
다. 같이 일하던 친구들도 모두 그를 떠났다.

◆애드라떼에 모든 것을 걸었다
실패는 혹독했다. 힘들 거라 예상은 했지만 훨씬 힘들었다. “정말 아침에 일어나 해를 보기가 싫더라구요. 생각해보면 그때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빚 문제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떠나갔다는 것이 그를 더 힘들게 했다.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의 특징은 힘든 가운데도 뭔가 활동을 하면서 재기를 모색한다는 점이다. 그 역시 그랬다. 대학동기인 황원준씨를 만나 창업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최신 트렌드를 공부했다. 둘은 결국 창업을 하게 된다.  “해피즌 당시에 정말 열심히 했지만 기본적인 경험이 부족해서 초기에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판단 같은 게 부족했던 것 같아요.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실패를 곱씹던 그는 문득 그는 소셜네트워크에서 광고를 하는 것이 아직 국내에서 본격화되지 않았고 해외에서는 가능성을 이미 보여준 분야라는 것에 착안했다. 그래서 그는 2011년 7월 앱디스코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뭔가 신나게 해보고 싶다는 뜻에서 작명했다. 사업 직전 학교를 그만뒀다. 졸업을 불과 한학기 남겨뒀는데 말이다.

 “졸업은 하지 그랬어요?”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 약해지고 결단을 못 내릴 것 같아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승부사적인 면도 엿보인다. 물론 빚을 갚아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그는 그래서 ‘이 사업에 목숨을 걸었다’고 했다. 애드라떼의 키워드는 영업이었다.사업 시작 전 투자를 받으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직접 영업을 뛰면서 광고를 받았다. CJ 등에 직접 컨택해서 20여개의 대기업으로부터 미리 광고영업을 수주받은 상태에서 시작했다. 확실히 수월했다. 즉 분명하게 돈이 되는 분야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광고를 보고 카페라떼 한 잔’이 처음 내세운 모토였다. 그래서 이름도 애드라떼로 지었다.

 “해피즌처럼 수익이 나지않는 사업을 경험하고 아예 처음부터 바로 매출이 생길 수 있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애드라떼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광고의 흐름이 소비자에게 혜택을 돌려주는 쪽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독창적인 모델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발로 뛰는 영업력으로 사업을 본 궤도에 올려놨다는 평을 듣고 있다. 애드라떼 앱을 실행하면 광고주들이 올린 광고를 볼 수 있다.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기 때문에 단순 광고는 아니다. 광고를 보면 적립금이 쌓인다. 친구를 초대하면 500원씩 현금이 생긴다. 이것으로 진짜 커피를 사먹을 수 있다. 이런 보상성때문에 애드라떼는 지난해 8월 출시된 이후 4개월여만에 누적 다운로드 수 100만건을 달성했다. 일본에도 진출해 앱스토어 무료분야 전체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해외에서 성공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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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일이 이제 생길 때가 됐다.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한번 등장했던 인물이 회사를 바꿔 다시 등장하는. 써니로프트를 창업한 정주환 사장은 2010년10월 한국의 스타트업 스물두번째 회사로 기록을 남겼었던 넥스알(http://limwonki.com/394)에서도 등장했었다. 넥스알을 창업한 한재선 사장을 도와 당시 그 회사에서 사업총괄이사(CSO)를 맡았다. 그해 연말에 회사를 KT에 매각한 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지분을 팔고 새롭게 회사를 차렸다. 
 
 그가 새롭게 도전하는 써니로프트(Sunnyloft)는 이름 그대로, 햇빛이 잘 드는 다락방에서 이름을 따 왔다. 볕 잘드는 다락방에 올라가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뭔가 재밌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이름을 짓고 출발한 이 회사는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주면서도 즐겁고 재미있는 아이템을 발굴해 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친구 6명이 시작한 써니로프트
정주환 대표는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으로 같은 학교 기술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SK커뮤니케이션즈,네오위즈게임즈 등에서 사업전략,기획,신사업 개발 등을 담당했다. 공대를 나와 기술 분야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서도 경영 분야를 따로 공부한 그는 엔지니어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던 넥스알에 들어가 사업 분야를 총괄하고 회사를 KT에 매각하는 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다. 

 한재선 넥스알 사장이 넥스알을 매각하고 KT에 들어갔지만 정 대표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지분을 모두 넘기고 회사를 나온 그는 종종 연락하던 친구들과 만나 무엇을 할까 고민을 같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때마침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서로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들이 비슷한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백그라운드가 비슷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창업멤버인 정하녕 이사와 김재호 CTO(최고기술책임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으로 했다. 정하녕 이사는 NHN에서, 김재호 CTO는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각각 상품개발과 검색기술 개발 분야에서 일했다. 창업멤버인 정윤수 부사장과 나영채 팀장은 서울대에서 과는 다르지만(컴퓨터공학과) 정 대표와 비슷한 시기 동문수학한 사이고 조민구 팀장은 네오위즈게임즈에서 정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좋은 회사에서 커리어를 잘 쌓고 비슷한 백그라운드에서 함께 고민했다는 이들이 생각한 아이템은 바로 현재 떠오르고 있는 인터넷 신서비스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이나 약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의 데이팅서비스엔 소셜이 없다
이들이 우선 주목한 것은 소셜데이팅서비스였다. ‘데이팅은 분명한 데 왜 소셜이 붙은 거지?’가 의문의 출발점이다. 즉 지금 온라인에서 데이팅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들의 대부분은 소셜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그냥 회원 가입을 하고, 하루에 한 쌍씩을 랜덤으로 연결해주는 것은 소셜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 점은 지금 온라인 데이팅 업체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즉 지금의 소셜데이팅이건, 온라인데이팅이건 데이팅 서비스에는 소셜 항목이 전혀 없다. 여기서 출발해 써니로프트는 소셜 항목을 새로 시도하고 있다.

 데이팅에서 소셜이 추가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써니로프트는 소셜의 핵심을 신뢰성(credibility)라고 생각하고 있다. 데이팅 업체가 아무리 나의 프로필과 맞는 좋은 사람을 소개해준다고 해도 그 업체의 선의를 신뢰하기는 힘들다. 즉 서류상 기준은 충족할 지 몰라도 나의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딱 맞는 사람을 소개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남자인 나의 친한 남성 친구와 내 여자친구의 친한 동성 친구 중 맞는 사람이 있다면 최상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그런 것을 반복하기는 힘들죠.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것을 시작하는 데는 자신이 쓴 프로필에 대한 불신이 출발점이 됐다. “보통 소셜데이팅 서비스에는 자신이 프로필을 쓰게 돼 있쟎아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가 자기 자랑을 한다는 게 얼마나 정확할까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일견 맞는 말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를 야구 전문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야구에 정통한 친한 친구가 볼 때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친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규정도 여러가지 부문에서 균형이 필요하다.

 써니로프트가 출시한 소셜데이팅 서비스 이름은 데이트프레소(Datepresso). 이 서비스의 특징 중 두드러진 부분은 자기 자신에 대한 규정에서부터 소셜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특징 이런 것에 대해 나 스스로 나를 평가할 수도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항목에 대해 다른 사람의 냉정한 평가가 덧입혀진다. 나는 스스로를 ‘나이스한 도시 남자’라고 평할 수도 있고 ‘노래가 특기’라고 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항목을 아무도 클릭 안하면 아주 썰렁하게 남아 있는다. 남들은 나를 ‘차가운 도시 남자’라고 정 반대의 평가를 할 수도 있고 ‘노래 좀 부르지 마’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자신에 대한 평가부터 자신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소셜네트워크에서 이뤄진다. 이것을 써니로프트는 Friends of Friends Network라고 명명한다. 일종의 플랫폼이다. 참으로 적절한 이름인 것 같다. 데이트프레소에는 이것 말고도 재밌는 장치가 많다. 상대방을 찜할 수 있는 기능 Dibs도 있다. 누군가 나를 마음에 두면 Dibs를 클릭한다.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굉장히 설레는 시스템이다. ‘Woo’는 일종의 ask out 이다. 고백하는 장치다. 마음에 드는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고백할 수 있다.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검색 장치가 필요하다
 데이트프레소의 서비스를 유심히 듣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것은 사실은 데이팅을 매개로 한 다른 서비스다.’ 정확히 말하면 소셜데이팅이 아니다. 정 대표는 이것을 데이팅을 앞세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고 설명했다. 소셜데이팅이라는 범주에 넣기보다는 그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실제로 정 대표가 지향하고 있는 바도 단순 소셜데이팅의 차원을 넘어서는 거였다. 데이트프레소는 데이팅을 사람들 간의 만남과 소통을 위한 일종의 주제로만 삼았을 뿐이다. 

 써니로프트는 소셜데이팅에 그치지 않는다. 좀 더 심각하고 좀 더 큰 시장에 대한 준비도 하고 있다. 클로즈베타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는 Qranga는 지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소셜 검색 서비스다. “이미 SK커뮤니케이션즈가 하고 있지 않나요?”라고 물어볼 만 하다. 나도 그렇게 물었다.

 SK컴즈 출신답게 정주환 대표는 “네이트에서 소셜검색을 시도했지만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1촌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제한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즉 구현 방식 자체는 비슷하지만 일촌들이 미니홈피에서 한 답변 중에서 의미있는 것만 추출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결과에 제약이 많았던 것이다.

 와인에 대해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세상 최고의 와인 전문가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전문성은 그보다 좀 떨어져도 우리 집 사정도 좀 알고, 내 취향도 잘 알면서 와인을 잘 아는 친구가 전해주는 정보가 훨씬 유익할 수 있다. 프로젝트명으로 진행중인 Qranga는 이런 점에 착안했다.

 자본금 3억원으로 시작했던 이 회사는 시작하자마자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투자도 유치했다. 일단 소셜데이팅 사업은 매출이 바로 발생할 수 있는 분야라는 게 여러 기존 회사들의 시도로 입증됐다. 소셜 검색 분야에서의 매출과 수익 문제는 써니로프트가 새롭게 도전해야 할 과제다.

 “앞으로 사람들의 네트워크와 지식, 정보는 아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훨씬 더 견고해질 것 같습니다. 거기서 생겨나는 엄청난 정보와 관계도 제대로 체크하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SNS가 발전할수록 끼리끼리 문화가 더욱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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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만나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은 꽤나 독특한 경험이었다. 1시간반 가량 대화를 나누다보니 내가 지구가 아닌 다른 별나라에 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하 17도라는 너무 추운 날씨를 뚫고 1km 정도를 걸어와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대학생들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클래스메이트(Klassmate)를 만든 이두희씨를 만났을 때 나는 잠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멈칫한 상태였다. 원래 나는 권도혁 대표를 만나는 줄 알고 찾아왔는데 권 대표는 마침 자리에 없었다.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니까...대표는 권도혁 님이시고, 이두희님은 개발총괄? CTO? 그렇죠?”
 “저는 그냥 사람입니다. 개발하는 사람.”
 “아, 네...큭.”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너무나 진지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거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보통 이러면 질문에 대한 답을 잘 하지 않는 분이 많은데, 그렇지도 않았다. 인터뷰를 하기엔 너무나 편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한두번쯤 더 생각하게끔 만드는 기이한 유머감각이 있었다. 울트라캡숑. 이름에서부터 4차원적인 냄새가 물씬나는 이 회사를 찾았다.

◆정의감에 불타는 서울대의 전설적인 해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03학번 이두희 ‘사람’은 정의감에 불타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엔지니어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한번도 정의감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스토리를 들으며 정의감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강의를 자발적으로 평가하는 ‘SNU EV(snuev. com)’를 만든 사람이 그다. ‘와플스튜디오’라는 서울대학교 프로그램 개발 동아리에 있던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중이던 2008년 이 사이트를 만들었다. 일종의 강의평가시스템. 서울대의 공식 프로그램은 아니다. 순전히 그가 친구, 후배들과 함께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대 전 학생이 다 사용하는 사이트다. “2월1일에 얼마나 접속했나 보니까 1만명이 들어왔더라구요.” 서울대 재학생은 1만6000여명 수준이니 전교생이 다 쓴다는 말이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그걸 왜 만들었어요? 서울대에도 자체적으로 강의평가를 하게끔 하는 프로그램이 있지 않나요?”
 “있죠. 그런데 그것을 학생들에게 공개를 안 해요. 정작 학생들은 모른다는 거죠.”
 “아 강의 평가 결과를 교수 평가 등의 목적으로만 사용하는군요.”
 “100만원짜리 노트북 하나를 사도 20,30개 리뷰를 읽어보는데 400-500만원 수업료를 내고 학교에 다니면서 내가 듣는 수업이 어떤 내용인지, 들어본 사람들의 후기는 어떤지 등 정보도 없이 신청해야 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학교다니던 시절에도 그랬는데, 지금도 그런가 보다. 막연하게 선배들의 경험담만 듣고 수업을 신청할 수 밖에 없는 게 대학 강의 신청 시스템의 현실이다.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딱히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잘 안하는데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들자마자 그날 1000명이 등록을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밖에도 그에 대한 일화는 수도 없이 많다. 2006년 ‘서울대 정보화 포탈 3만명 신상 정보 유출’을 학교에 가장 먼저 알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도 그였다. 서울대 전산시스템을 해킹해 김태희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꺼내온 사람도 그다. “김태희 사진은 왜 해킹했어요?” “보고 싶어서요.”

<서초동 울트라캡숑 사무실에서 찍은 울트라캡숑 창업 멤버들. 맨 왼쪽이 이두희,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권도혁 대표>

◆그냥 개발이 좋았을 뿐이다
정작 사람 이두희는 창업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개발을 계속 했어요.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죠. 개발을 해서 친구들의 삶을 좀 바꿔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는 그래서 생활 자체가 프로그램 개발이었다. 기획? 그는 기획하지 않고 뭔가 불편한 점이 있다고 하면 바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친구들과 그것에 대해 토론을 했다. 와플스튜디오는 그가 주로 거주하는 곳이었다. 서울대 연구실에서 그는 거의 하루종일, 한달 내내, 일년 내내 붙어 있다시피 했다. 그러다보니 별별 앱, 별별 프로그램을 다 만들었다. 노래방 래퍼토리 추천기도 만들었다. 노래를 한번 부르면 그 사람에게 맞는 노래를 추천해주는 그런 프로그램이다.

 서울대학교 앱을 만들기도 했다. 2010년. 학교를 소개하고 지리 정보를 제공하고 곳곳의 다양한 정보나 이야기를 전해주는 그런 앱이었다. 사실 서울대가 만들만한 앱이다. 그런데 그는 이런 앱이 있으면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좋고 학생들에게도 좋지 않을까 싶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대에서 이걸 싫어했다. 학교 허락도 받지 않고 만든데다가 학교 정보가 노출된다는 점이었다. 학교에 불려가 주의를 받은 그는 결국 서비스를 몇 달 해보지도 못하고 내렸다. 그래도 한달만에 1000명이 쓸 정도로 학교 내에서 인기를 끌었다. 

◆저커버그와 샌드버그?
서울대 연구실에서 살던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권도혁 대표가 그를 찾아오면서부터다. 2010년 11월. 늦가을치고는 꽤나 쌀쌀한 어느날 권도혁 대표가 이두희씨를 찾아왔다. 마침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울트라캡숑 사무실로 권도혁 대표가 들어왔다.

 “왜 이제 오셨어요?”
 “아 두 분 이야기 좀 나누시라구요”
 “그나저나 이두희님을 어떻게 알고 찾아갔어요?” 권 대표에게 물었다.
 “이두희님 친구가 큐박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일 잘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학교를 같이 갔었습니다. 그랬다가 만났죠.”

 이두희는 그때 컴퓨터공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중이었다. 
 “뭘 만들었는지 좀 봅시다.” 권 대표가 그에게 물어봤다. 이두희가 만든 SNU EV를 본 권 대표는 즉석에서 말했다고 한다. “저랑 같이 창업합시다.”

 그렇게 해서 이두희의 창업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바로 아이템을 내놓았다. “그냥 강의 평가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수업과 관련해서 학교에서 항상 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클래스메이트를 만들었죠. 강의 평가도 하고 친구들하고 수다도 떨고 학교 정보도 주고 받고 여러가지를 할 수 있게 했어요.”

 연세대 경제학과 94학번인 권도혁 대표는 졸업 후 베인앤컴퍼니를 다니다 2004년 NHN에 입사했다. 벤처로 성공한 친구들을 보면서 그는 대기업을 다니면서 안락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고정 관념이 산산이 부서졌다고 한다. 나도 벤처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해보자 이런 마음에 2006년 4월 첫눈에 입사했는데 하필이면 입사한 지 3개월여만에 첫눈이 NHN에 매각됐다. NHN에 있다가 나온 마당에 다시 들어갈 수 없어 자신이 직접 벤처를 해보기로 결심, 미국으로 떠났다. 거기서 큐박스팀을 알게 돼 큐박스를 미국에서 서비스하는 일을 맡았다. 큐박스를 3년 넘게 했을 때 그가 만난 이들이 바로 서울대 와플스튜디오에 있던 이두희와 그의 친구, 동료 등 7명의 개발자들이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뭔가 큰 일을 낼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대로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도 저커버그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두희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샌드버그같은 역할을 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설득했죠. 지금 봐도 이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개발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팀, 어디가서 만나기 힘들 겁니다.”

◆페이스북도 시작은 학교에서 했다!
권도혁 대표는 비즈니스와 자금을 책임지기로 했다. 창업 자금은 같이 댔지만 엔젤투자도 받고 사업에 대한 조언도 필요했다. 노정석 사장이 떠올랐다.

 “해커 출신인 노정석 사장이라면 이두희님과 이야기가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두 사람을 소개시켜줬죠.”
 “그랬더니 어떻게 됐나요?”
 “왠걸. 노 사장이 두희님을 만나자마자 바로 ‘제가 투자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뭘 더 하면 좋을까요?’라고 말하더군요.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이었습니다. 하하”

 노 사장은 그의 말처럼 즉각 엔젤투자를 했다. 작년 9월 클래스메이트 서비스가 나올 때 쯤 중요한 일이 또 하나 생겼다. 하버드대 행정학과 졸업생 아벨 아쿠나(23)가 미국 서비스 총괄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아벨과의 만남도 정말 극적이죠. 제가 큐박스를 나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고민하면서 글로벌 프로젝트 차원에서 인재를 모집한 적이 있었는데 사진을 잘 찍는 아벨이 자기가 해보겠다고 지원을 하더군요. 그런데 하버드대를 다니고 있는 친구였어요. 좀 놀랐죠. 바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 봤는데 말도 통하고 일도 아주 책임감있게 하는 사람이었어요. 나중엔 두희님과 제가 미국으로 가서 미국 서비스를 다 알아서 해 보라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네요.” 권 대표의 설명이다.

 아벨 아쿠나가 현지 운영진으로 나서면서 보스턴 지역 10개 대학 학생 1000여명이 사용하게 됐다. 하버드대 학보인 ‘하버드 크림슨’에도 소개되면서 하버드대학교 학생들이 쓰는 앱으로 성장했다. 
 클래스메이트의 사용자는 아직 그리 많지는 않다. 1만명 수준. 처음 서울대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Safari라는 항목을 만들면서 학교간 대화와 네트워크의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와 이대 학생들 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학생 인증(이메일)만 하고 가입하면 자기가 익명의 아이디를 만들 수 있다. 자기를 상징하는 것은 동물이다. 이를테면 섹시한 타조, 수다쟁이 개미핥기 등등.

 “인터넷에서는 익명이 가지는 장점이 정말 많습니다. 익명이 갖는 장점을 잘 살리면서 학생들간의 커뮤니티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월에 클래스메이트는 대대적으로 개편이 될 예정이다. 강의와 수다, 교제 정도가 아니라 모든 대학의 구전돼왔던 정보들을 문서화하고 다양한 강의, 행사, 공연 등의 기록을 남기는 것도 가능하게 개편된다. 궁극적으로는 대학 생활에 대한 종합적인 사이트로 성장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알려주는 공식적인 정보보다 훨씬 알차고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으며 다른 학교의 친구들을 사귈 수도 있는 진짜 대학 생활을 온라인에서 만끽할 수 있게 하겠다는 거다. 

 “굳이 대학에 한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중학교에서도 하고 고등학교에서도 하고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런 말을 권 대표에게 했다. 그도 수긍했다. “페이스북도 처음엔 하버드 대학교 내부에서만 쓰이던 사이트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인이 쓰는 것처럼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은 대학에서 기반을 착실하게 잡는 것이 중요해요. 한국 대학생이 350만명, 미국이 1500만명인데 1차 milestone은 이 중의 절반 즉 ‘한국과 미국의 대학생 절반인 1000만명이 쓰는 서비스가 되자!’입니다. 그리고 나면 얼마든지 서비스 확장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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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공유한다는 개념의 서비스들은 꽤나 여러 곳에서 나왔다. 통신사들이 출시하기도 했고 음악 전문 사이트가 선보이기도 했다. 국내외 벤처 기업들 중에 음악을 공유하고 음악을 매개로 사람들을 이어주는 서비스들은 숱하게 있었다.
 
 미로니(Mironi)는 이런 음악을 매개로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잘 만들었다. 디자인을 훨씬 세련되게 다듬었고 모든 기능을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알기 쉽고 쓰기 편하게 제작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등 기존의 SNS와도 연결이 되고 자신의 주소록에 있는 친구들과도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게 했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보면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실력과 성격이 보인다. 미로니라는 이 서비스처럼 이것을 만든 사람들은 아주 특출난 아이디어보다는 개발 능력이라는 자신들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실력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어찌보면 아주 무모해 보이고 별로 스마트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자신들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보겠다고 정면 도전하는 우직한 사람들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아주 다르게 말이다.


◆넥슨에서 만난 창업자들
미로니라는 음악 공유 SNS를 만든 회사는 제이제이에스미디어(JJS Media). 회사 이름이 한글로 적으면 좀 긴데, 창업자들의 이름 가운데 글자 이니셜에서 따 왔기 때문이다. 대표이사인 이재석 사장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02학번이고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는 박수레 이사는 같은 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나왔다.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백진욱 이사는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으로 했고 삼성전자에서 병역특례를 한 인물이다. 

 다들 엘리트이지만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경력을 가진 이들이 만남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넥슨. 이재석 사장과 백 이사는 2000년대 중반 넥슨에서 서로를 알게 됐다. 각각 83년생 84년생인 이들은 나이도 비슷하고 금방 친해졌다고 한다. 백 이사는 당시 카네기멜론대에 다니면서 방학 기간을 이용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넥슨에서 인턴 식으로 일을 했다. 공부도 열심히 했겠지만 평소 생활도 상당히 부지런한 사람이다. 박 이사와 이 사장은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점때문에 자주 마주치던 사이였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알게 되면서-지금까지 다른 스토리가 그랬던 것처럼-친분을 쌓다가 어느날 의기투합해 창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한 사람이 먼저 움직였고 그 사람이 부지런히 다니며 다른 창업자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이야기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언급해야할 일이 있다.

◆엉뚱한 발상에서 시작된 미로니
미로니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회사와 인물이 있다. 윤종일 레블릭스 대표다. 지금 레블릭스는 엔써즈에 인수돼 윤 대표는 엔써즈에서 서비스 총괄을 맡고 있지만 작년 레블릭스를 운영하던 시절에 이런 얘기를 했었다. “음악을 공유하고 음악을 매개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그런 서비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미로니는 개발중이었다. 그리고 당시 그것을 만들고 있던 이들이 윤종일, 이재석, 백진욱, 박수레였다.

 어떻게 된 걸까. 시간을 당시 이재석, 백진욱 두 사람이 넥슨에 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때 윤종일도 넥슨에 있었다. 윤종일과 이재석은 대구과학고-카이스트 동문이다. 대구과학고-카이스트 출신들은 이 코너에서 종종 등장하는데, 여기서 나온 인물들만 봐도 장병규 본앤젤스벤처파트너스 대표, 이제범 카카오 대표, 최정이 버드랜드소프트웨어 대표 등 쟁쟁하다. 하여간 이들은 넥슨에서 이런 고민을 같이 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나와 잘 맞는 이성 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윤 대표야 레블릭스 시절에도 여자친구를 데리고 갈만한 음식점을 잘 찾기 위해 라스트서퍼라는 음식점 찾기 앱을 만들었던 인물이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음악은 좋은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악을 뭘 좋아하는지를 알게 되면 대화하기가 편해진다. 그 사람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그걸 핑계로 친해질 수도 있고, 그 사람에게 접근할 구실을 만들 수도 있다. 

 윤 대표는 생각이 상당히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람이다. 꼭 같은 회사에 묶어두지 않더라도 믿을 만한 사람들과 일을 자유롭게 같이 한다. 그는 미로니라는 서비스를 레블릭스 사람이 아닌 이재석, 백진욱, 박수레에게 맡겼다. 사실상 이들이 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개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5월 아이폰 버전으로 먼저 서비스가 나왔다. 그런데 그때 의외의 변수가 생긴다.

◆미로니를 살려야 한다
 레블릭스에 대한 M&A 논의가 다양하게 이뤄지면서 레블릭스 차원에서 미로니를 챙기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이재석 사장은 당시 창의성연구소라는 것을 창업해 운영하고 있었다. 창의성을 진단하는 기준이나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를 기업이나 교육 기관 등에 제공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는 레블릭스와 함께 미로니를 만들면서 이 서비스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미로니를 같이 만든 사람들에 대해 큰 자부심과 함께 이들과 같이 뭔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미로니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윤종일 사장에게 말했죠. 미로니의 모든 권한을 창의성연구소에서 가져가겠다구요.” 이 사장의 설명이다. 윤종일 사장과 얘기가 되서 미로니는 창의성연구소로 왔다. 하지만 그는 미로니는 전문 개발사에서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창의성연구소 지분을 포기하는 대신 미로니만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는 두 사람을 찾았다. 

 “박수레 이사는 제가 아는 한 카이스트 출신의 국내 최고 디자이너입니다. 이분을 설득하는 게 창업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박 이사는 창업멤버 중 유일하게 기혼인데다 딸이 하나 있었다. LG전자에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던 그를 데려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삼성전자에 있었지만 합류를 먼저 결심한 백 이사와 함께 박 이사를 설득했다. “우리는 사실 이미 제품이 있었죠.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벤처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창업을 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죠.” 박 이사의 설명이다.

◆한국 시장은 좁다..해외로 나간다
 서울 강남 뱅뱅사거리 근처에 둥지를 큰 이들은 지난 해 12월 18일 법인을 설립했다. 백 이사는 12월초까지 병특을 하고 나오자마자 합류하는 형식이 됐다. 이 사장의 창의성연구소 시절 그가 직접 뽑은 인턴 직원이었던 장재용씨가 이 사장을 따라 창의성연구소를 나와 JJS Media로 와 PR 매니저 일을 하기로 했다.

 법인 설립 직전인 2011년 11월 미로니 안드로이드 버전이 나왔다. 미로니를 실행하면 주소록, 트위터, 페이스북 등으로 친구들과 연결할 수 있다. 내 친구들이 지금 무슨 음악을 듣는지 알 수 있고 음악을 같이 공유할 수도 있다. 음악을 통해 채팅도 하고 사람도 소개받는다. 소개팅을 나갔다가 들어와서 상대방이 어떤 음악을 듣는지 확인하고 서로 친분을 쌓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페이스북 등 기존 SNS에서 음악을 공유하는 서비스를 하는 게 더 쉬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사장은 음악이 사람들간의 관계를 좀 더 본질적으로 다른 방향에서 규정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즉 좋아하는 음악이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관계가 끝없이 확장되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광고를 포함해 수익 모델도 새롭게 창출될 것으로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재석 사장이 걱정하는 것은 국내 시장이 너무 작다는 점. 수익 모델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지만 미로니가 기반하고 있는 디지털 음악 시장이 국내에서 너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수익 창출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해외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5000만원으로 시작해 1억원으로 불어났지만 이 정도의 초기 자본금으로는 어차피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 수익 모델 뿐 아니라 사용자 기반을 넓혀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최적화된 광고도 보고 기업들은 이에 맞는 마케팅도 할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SI는 안하겠다고 하고 백 이사, 박 이사 두 분을 설득했습니다. 음악을 기반으로 한 본격적인 SNS 시장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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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앱은 뭘까. 얼마 전까지는 카카오톡이었고 카카오톡은 여전히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부분에서는 이 앱에 자리를 내 줬다. ‘틱톡’이다.

 틱톡의 성장세는 무시무시할 정도다. 12월 한달 동안 400만명이 이 앱을 다운로드했다. 그 덕에 출시된 지 5개월 만에 1000만명이 다운받은 앱이 됐다.1월이 아직 중순도 채 안됐는데 벌써 다운로드 숫자는 1200만을 넘어선 상태. 이 속도면 곧 2000만도 돌파한다. 카카오톡이 1000만명의 사용자를 모으는 데 걸렸던 시간은 1년. NHN이 올 6월 출시한 메신저 라인은 6개월만에 1000만명을 돌파했다. 틱톡은 1000만명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에서 라인의 기록을 1개월 단축시켰다. 

 틱톡은 카이스트 출신의 엔지니어 달랑 3명이 만든 앱이라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회사 이름은 매드스마트(MAD Smart). MAD는 다들 아는 그 뜻도 있지만 Mobile Application Developer의 약자이기도 하다. 매드스마트를 창업하고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 지각변동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김창하 대표를 만났다.


◆꿈없이 살아온 대학 시절
김창하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공학과 97학번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 꿈 없이 카이스트에 입학했다’고 한다. 원자력공학과를 선택한 이유도 “한국 전력에 입사하는 데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어찌보면 평범하고, 어찌보면 이 땅의 열심히 공부하는 수재들이 대체로 그랬던 것과 비슷하게 살아왔던 그의 인생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병역특례를 하면서부터다. 넥스콘월드라는 회사에서 병특으로 군복무를 대체하기 위해 일하기 시작한 그는 네오위즈로 회사를 옮겨 병특을 마무리하게 된다. 여기서 장병규 네오위즈 창업자를 알게됐다. 병특이 끝난 후에도 네오위즈에 계속 남아있던 그는 훗날 티켓몬스터의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되는 박상진씨와 일을 같이 하기도 했다.

 창업 DNA가 충만한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한국전력에 입사해서 편하게 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인생관(?)이 달라진 것은 병특 시절 벤처기업에서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배웠기 때문이었다. 네오위즈 시절 알았던 사람들 중 그와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 상당수가 장병규 사장이 새로 설립한 첫눈이라는 검색기술 벤처기업으로 갔다. 그는 조금 뒤늦게 합류했는데 첫눈에 입사한 지 불과 6개월여만에 이 회사가 NHN에 매각됐다. 그는 NHN 검색 팀으로 자연스럽게 가게 됐다.

 NHN 생활은 어땠을까. 당시 NHN은 이미 대기업이나 다름 없었다. 2006년 NHN에 입사해 검색팀에서 2년간 일한 뒤 그는 2008년 검색팀장이 됐다. 그의 나이 만 스물아홉때였다. NHN 내부에서도 그렇고 업계에서도 최연소 팀장이었다. 국내 최대 인터넷업체에서 일하는 것은 그에게 여러가지로 좋은 경험이 많이 됐을 것 같다. 하지만 검색팀장이 되고 나서 1년이 조금 지나자 벌써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에 뭔가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2010년부터 그런 생각이 한층 강해졌죠.”

◆기존 모바일메신저의 문제를 발견하다
 2010년 9월 장병규 본앤젤스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본앤젤스 최초의 예비창업자 과정(EIR)과 관련해서였다. 창업? 창업 아이템도 없었고 창업할 생각을 딱히 해 본적도 없었지만 젊을 때 다른 것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했다. “좀 지루했는데 잘 됐다 싶었습니다. 제가 만들어보고 싶은 것들을 시험해보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구요.”

 일단 본앤젤스 사무실로 와서 6개월동안 창업 공부를 했다.  본앤젤스가 주최한 2010년말 MAD Camp를 김창하 대표가 직접 맡았을 때였다. Mobile Application Developer Camp의 약자인 이 캠프에는 당시 11명이 참여해 6주동안 캠프처럼 운영하면서 창업 아이디어를 실험해보는 방식이었다. 1기는 2010년말부터 2011년 2월까지 진행됐고 2기가 2011년 여름에 있었다. 1기 캠프때 그는 메신저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카카오톡이 막 성장하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수많은 뉴스가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비슷한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을까?

 “처음에 카카오톡을 봤을 때 별로 잘 만든 메신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시장을 제패한 메신저에서 어떤 면을 보셨나요?”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엔지니어 관점입니다. 엔지니어로서 볼 때 카카오톡은 결코 잘 만들지 못했습니다. 핵심이 문자를 전송하고 받는 시스템인데 여기에 너무 불필요한 것들이 많이 들어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기술적인 측면의 이야기입니다. 소비자들은 잘 모를 수 있죠.”

 “불필요한 것이.. 예를 들어 뭔가요?”

 “엔지니어 입장에서 모바일 메신저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버를 제대로 개발해 속도를 높이는 것, 그리고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최대한 가볍게 가져가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그런데 카카오톡은 속도를 높이는 것에는 별로 공을 들이지 않은 것 같았어요.”

<김창하 대표(뒷줄 왼쪽)와 매드스마트 창업 멤버들. 사진을 찍을 당시엔 사무실이 본앤젤스 내부에 있었는데, 지금은 나와서 사무실을 따로 차렸다.>

◆3개월만에 만들어 5개월만에 1000만 돌파
MAD Camp에서 김 대표는 무전기 프로그램,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 메뉴판 인식 프로그램 등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해봤다. 다양한 서비스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던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전화번호 기반의 소셜네트워크, 즉 모바일 메신저였다. 인기 높은 서비스들이 이미 있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있었고 기존 서비스들이 잘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물여섯살 카이스트 전산과 학생 2명과 함께 2011년 3월 매드스마트를 만들었다. 모바일메신저의 최대 주안점을 속도에 뒀다. “서버를 개발하면서 기존의 프록그램을 가져오지 않고 완전 백지 상태에서 만들었어요. 기존 언어를 같다 붙이지 않았죠. 그렇게 했으면 좀 더 빨리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중에 서비스 속도에 문자가 생길 것이라고 봤습니다.”

 NHN 검색팀에서 그가 배운 것은 지식 자체보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 문제를 그냥 알기만 해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제를 알아도 그 심각성을 판단하는 것은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일단 그의 이런 문제 인식은 성공했다. 매드스마트는 틱톡을 출시할 때 같은 메시지를 보내더라도 다른 메신저의 메시지 용량에 비해 10분의 1에서 20분의 1에 불과한 적은 데이터 용량으로 전송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 덕분에 7월에 출시된 틱톡은 불과 5개월만에 가입자 1000만명을 모을 수 있었다. 아무런 마케팅도 하지 않았지만 순전히 ‘빠르다’는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탄 결과였다.

◆다른 길을 가겠다
틱톡은 처음에 분명 빨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메신저들의 속도도 많이 빨라졌다. “틱톡이 여전히 빠릅니다. 그런데 카카오톡이 금방 쫓아오는 것을 보고 ‘역시 만만치 않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틱톡의 메신저 전송 속도가 빠르다는 게 알려지자 카카오톡이 바로 황소프로젝트라는 것을 하면서 속도를 대폭 높였습니다.”

 지금 틱톡의 관건은 다른 모바일메신저들과의 차별화. 이미 3500만명에 육박하는 사용자를 모은 카카오톡과 같은 시장에서 똑같은 사용자를 놓고 경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게 김 대표의 판단이다. 

 매드스마트가 최근 구름 기능을 틱톡에 추가한 것은 그런 목적때문이다. 구름은 자신과 관심가나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다가가고 또 자신을 자신의 생각대로 알릴 수 있는 서비스다. 즉 자신만의 공간을 틱톡 내에 따로 만드는 것이다. 이 곳은 페이스북처럼 사용자의 일상을 올릴 수도 있고 모임을 만들 수도 있다. 전화번호 기반의 페이스북같은 그런 느낌이다.

 음성 인식, 동영상 공유, 위치 기능 등을 추가하는 것도 준비하고 있다. 내 구름을 통해 오늘 모임 장소를 공지할 수도 있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녹음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를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김창하 대표는 “틱톡은 메신저가 아닌 소통과 공유의 플랫폼 분야에서 1등을 노리고 있다”며 “개인화 기능과 음성인식, 위치 기능 등을 더해 사람들이 다양한 정보와 콘텐츠를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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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오브제(Ovjet)’. 언제부터인지 이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2010년 봄 SK텔레콤이 스마트폰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대대적인 광고를 할 때 등장했던 서비스가 오브제였다. 증강현실을 이용해 스마트폰을 길거리에 비추면 커피숍 위치를 보여주는 등 스마트폰의 다양한 활용 방법으로 오브제가 광고에 나왔다. 

 그 덕에 오브제는 안드로이드 폰 이용 초기에 제법 많은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회사가 정작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다소 난해했던 서비스 페이지를 개선하고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게 해주면서 한동안 주춤했던 다운로드 건수가 다시 늘었다. 지난해 11월 1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한 이 앱은 작년 12월 중순께 1100만도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증강현실이나 위치기반 서비스 수준을 뛰어넘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오브제 개발사 키위플의 신의현 대표를 만났다.

◆휴대폰 기획을 하다가 미래를 보다
서울대 전기공학부 94학번인 신 대표는 10년 동안 휴대폰 제조업에 종사했다. 2000년 SK텔레텍에 입사, 이 회사가 팬택에 인수되면서 팬택으로 옮겼다가 SK텔레시스에서 일했고 최신원 회장실에서 근무하며 특수 업무(?)도 맡았었다. 신 대표가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했던 일은 휴대폰 상품 기획이었다. 

 팬택 시절 그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른바 ‘슬라이드폰’이라는 걸 만들었다. 지금은 터치스크린의 스마트폰이 대세고 주위에 모두들 그런 폰을 쓰는 사람들만 보이는 것 같지만 2000년대 중반에 나온 슬라이드폰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전까지 대세였던 이른바 폴더폰은 한 손으로 폴더를 열고 닫기가 쉽지 않았고 전화를 받다가 폴더가 저절로 닫히면서 전화가 끊어지는 사례가 속출했다.

 가볍게 밀어올리면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게 하는 그런 방법을 그는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기술보다 사람의 마음에 더 관심을 가졌다는 게 그가 말한 답이었다. “공대를 나왔지만 정통 개발자의 길을 가지는 않았습니다. 상품 기획이라는 게 사실 인문학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하거든요. 그런 능력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일을 하면서 자기와 맞으면 특별히 발달이 되기도 합니다. 저에겐 이 일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제품에 대한 오랫동안의 고찰은 특히 그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됐다. ‘좋은 제품은 부품의 조합이나 스치는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람에 대한 인문학적인 고찰이 중요하더라구요. 결국 사람의 기호와 선택을 따라가게 돼 있습니다. 기술을 보기 전에 인간 욕망의 본질을 봐야죠. 예를 들어 지금은 모든 휴대폰이 널찍한 네모 모양입니다. 대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기 자체가 너무 강해요. 또 달라질 겁니다.”

 그는 상품 기획을 하면서 계속해서 2-3년 후의 미래를 보는 훈련을 했다. 그리고 그 훈련 속에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았다. 그건 휴대폰 제조가 아닌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업종에 대한 위기의식, 그리고 현실에 대한 절박함이 그를 변화로 이끌었다.

◆550가지 아이디어 중 한가지
회장실에서 근무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그래서 텔레시스에서 일하던 마지막 1년6개월여 동안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내서 정리를 했다고 한다. “정리해보니 550가지나 되더라구요. 잊을까 싶어 노트에 빼곡하게 적어놨죠.” 피아식별이 가능한 무기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아이디어, 집안 내부 전체를 디스플레이화하는 시스템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 체중연동보험이나 은행이자 상품 등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오브제는 550가지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 그는 이것을 구체화하고픈 마음이 있었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그와 뜻을 같이한 사람은 SK텔레텍 시절부터 함께 일했던 동료이자 서울대 후배인 최현정 이사. 신 대표가 SK텔레텍 2년차때 서울대에 채용하러 갔다가 두 사람은 알게 됐다. “그때 신 대표님은 일반 사원이었는데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아 저 사람과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회사로 들어와서 무조건 신 대표와 같이 일하겠다고 떼를 써서 부서를 바꿨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95학번인 최 이사는 신 대표의 창업에 대한 뜻을 알고 2008년말부터 함께 오피스텔을 얻어 사업을 구상했다. 그리고 5명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더 모아왔다. 이들 7명은 2009년 8월 키위플을 창업했다.  

 키위플 창업자들은 모두들 웬만큼 직장 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각자 돈을 내 2억원의 자본금을 만들었다. 그런데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회사를 차린 지 두달만에 3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그게 꼭 좋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너무 빨리, 너무 쉽게 투자를 받아서 아 우리가 열심히 하면 투자를 받을 수 있는거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내 생각은 좀 달랐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SI 안하고 오브제 개발에 전념하신거 아닌가요? 적절할 때 투자를 받지 못해 본업을 제대로 못하고 SI만 하다가 본업을 놓치는 회사들 많습니다.”

<키위플 본사에서. 전체 직원들이 모여. 사진제공=키위플>


◆사물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낸다
 오브제 아이폰 버전을 개발하던 중 SK텔레콤에서 연락이 왔다. “안드로이드 버전으로 먼저 만듭시다” SK텔레콤은 국내에서 KT와 대항할 대표 앱이 필요했다. 오브제는 증강현실에 위치 기반까지 더해 첨단 느낌을 주기에 딱이었다. “SK텔레콤에 3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사용자에게 돈을 받지 말 것, 일정 기간만 Favor를 주고 이후엔 다른 통신사에도 개방할 것, 해외 나갈 때 도와줄 것. 양해가 되면서 안드로이드용으로 먼저 나왔죠. 그 덕에 마케팅에 큰 도움도 받았구요.”

 오브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사물 또는 장소를 ‘팔로우(Follow)’한다는 독특한 개념 때문. 트위터에서 사람을 팔로우하면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다 볼 수 있듯이 오브제에서는 장소나 사물을 팔로우하면 관련 정보나 이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반응 등을 모두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 명동점이라는 특정 장소나 국회의사당, 한국경제신문 빌딩이라는 특정 건물을 팔로우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건물이나 점포를 방문했던 사람들, 또는 그 건물에 가지 않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남긴 글과 사진, 사연 등을 통해 서로 친구가 되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건물과 장소, 사물을 통해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찾고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팔로우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해당 별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일종의 소셜네트워크가 형성된다. 내가 황소자리를 좋아해 이를 관심사로 등록하면 황소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올린 글을 볼 수 있고 서로 별자리를 놓고 대화하다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증강현실을 이용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것도 오브제의 장점이다. 앱을 실행한 뒤 하늘에 비춰보면 대낮에도 하늘에 어떤 별자리가 있는지를 증강현실로 보여준다. 커피숍을 찾고 싶어 스마트폰 카메라를 거리에 비추면 인근 커피숍이 증강현실로 나타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숍이 있으면 이를 ‘관심사’로 등록하고 여기를 방문했던 사람들이 어떤 글을 남겼는지 알 수 있다.

◆올 상반기 미국, 유럽 등에도 진출
키위플은 왜 이런 앱을 만들었을까. 신의현 대표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지만 모든 사물과 공간에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호감도가 담겨 있게 마련”이라며 “같은 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간의 공통점을 연결하면 새로운 SNS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사물을 통한 SNS라는 개념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대한 그의 인식에서 나온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면 빨간 알약, 파란 알약 둘 중에 고르게 하쟎아요. 파란 알약을 고르면 편하지만 가상 세계에 살게 되고 빨간 약을 고르면 진짜 현실을 마주하게 되죠. 저는 사람들에게 빨간 약을 권하고 싶었습니다. 온라인, 모바일을 거치면서 더욱더 가상화된 삶에 익숙해지는 사람들을 현실 세계로 끄집어내고 싶었어요.”

 2011년 여름 퀄컴벤처스에서 15억원을 투자받으며 사업 역량도 인정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 등 수익성 면에서도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동안 오브제가 너무 무겁고 거한 앱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것을 인식, 가볍고 쓰기 편한 3.0 버전을 출시한 게 반응이 좋았다. 아직까지 오브제 이용자는 전부 국내 거주자들이다. 신 대표는 “올해 가장 중요한 경영목표는 미국과 유럽 등에 진출하는 것”이라며 “앱에 붙이는 간단한 광고 모델로도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만큼 단기 수익성보다는 중·장기 성장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내실을 다져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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