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 지역과 분당, 판교, 용인, 안양 등지에선 출퇴근 시간대 카풀 서비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럭시와 풀러스라는 두 서비스가 모두 비슷한 지역권에서 서비스를 시작해 뜨거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풀러스가 지난 5월 먼저 나왔지만 3개월 가량 늦은 8월에 출시된 럭시가 가입자 수, 드라이버 수, 일 카풀 건수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풀러스를 추월하면서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뒤늦게 나온 럭시는 어떻게 풀러스를 단숨에 추월했을까. 글로벌 카풀 서비스 우버는 퇴출됐는데 이들은 어떻게 합법적인 서비스가 가능한 걸까. 아직 끝나지 않은 이들의 경쟁 속에 이들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하고 있을까. 이번 한국의 스타트업 주인공은 출퇴근 카풀 서비스 럭시를 만든 길창수와 최바다 창업자다.


다날에서 만난, 다른 듯 닮은 두 사람

럭시의 창업자 길창수, 최바다 두 사람은 모두 창업으로 잔뼈가 굵었다. 세상의 정해진 길을 가는 것보다는 기존의 것에 의문을 던지고, 불편한 것은 거침없이 바꾸는 것을 시도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최바다 이사는 1997,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에 씨봉뮤직이라는 음악사이트를 만들었다. 아직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생소하게 받아들이는 시절에 고등학생이 사이트를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광고를 붙여 돈까지 벌었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는 컴퓨터 덕후라고 불렀다. 아직 어릴 때부터 이른바 덕심이 충만했던 것 같다.


 대학 갈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있던 그는 고3 졸업을 앞두고 대학에 안 가면 바로 군에 입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단 대학 진학은 하지만 학교 공부엔 애시당초 관심이 요만큼도 없었다. 그가 만든 씨봉뮤직은 번창했다. 2000년에는 제법 널리 알려진 MAXMP3라는 사이트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는 맥스MP3 사이트의 창업멤버로 들어간 셈이다.

2006년 맥스MP3CJ에 인수되면서 그는 CJ에 합류했지만 대기업에서는 그리 오래 있지 않았다. 1년여뒤인 20076, 다날에 들어갔고 여기서 길창수 대표와 만나게 된다.


 길창수 대표의 창업 이력은 2006년부터다. 그는 부채질닷컴이라는 뉴스 사이트를 만들었다. ‘불난 이슈에 부채질하다라는 뜻의 기막힌 작명이다. 10년전 당시로서는 드물게 하루 UV100만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는 창업자로서 직접 기사도 쓰고, 광고도 유치하고, 대외적으로 자신의 회사를 알리는 등 13역 이상의 역할을 했다. 그런데 너무 인기가 많다보니 콘텐츠를 관리하고 사이트를 지속하기가 힘들어졌다. 소송 등에도 자주 휘말렸다.


 “기사를 좀 독하게 썼어요. 조회 수도 많았고 제목도 자극적으로 뽑았고 그랬죠. 그런데 소송이나 이런 저런 일에 휘말리니까 개인이 관리하고 그러기 힘들더라구요.”


 그래도 다날에서 부채질닷컴을 인수하는 바람에 그 역시 다날에 합류했다. 200712월의 일이었다. 부채질의 높은 트래픽에 점수를 준 것이다. 이후로도 2년간 부채질을 운영한 뒤 2010년부터는 페이스월드매치라는 걸 만들었다.


 페이스월드매치는 모바일 앱에 올려놓은 사용자들의 사진을 보고 이상형을 선택하게 한 뒤 토너먼트 방식으로 승자를 가리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랭킹이 결정되지만 이후 팔로워 수 등을 합산해 월드 베스트, 국가별 베스트, 내 주변의 인기인들 등을 보여주는 앱이었다. 인간의 아주 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한 앱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부채질닷컴도 그렇고 길 대표는 상당히 근본적인 욕구나 사람들의 관심사를 이끌어내는데 능한 것 같다.


 다날에서도 다양한 사업을 경험했던 그는 2014년 회사를 나왔다. ‘내 일을 하자는 생각 때문.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결국 돈은 회사가 버는 것 같았습니다. 이왕이면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었어요.”


웨딩카에서 시작된 카풀 비즈니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나와서 창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블로그나 카페 활동을 했다. 다음 카페 초창기 시절부터 활동을 하기도 했고 2008년부터는 길창수의 웨딩카 나라라는 블로그를 운영했다고 한다.


 본래 길창수의 웨딩카 나라는 그의 주말 알바 컨셉트로 시작됐다. 주말에 웨딩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길 대표가 직접 달려가서 공항 등으로 라이드를 제공해주고 대가를 받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알려지면서 고급 수입차나 중대형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는 이들에게 웨딩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일로 발전을 해 나갔다.


 이런 일을 하면서 그는 고급 수입차를 보유하고 있는 전국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과 방대한 네트워크가 구축됐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활동한 측면도 컸다. 고급차 동호회를 부지런히 다니면서 인맥을 쌓았다. 그가 2014년 다날을 나와 창업을 결심하게 된 것도 이런 사업 경험과 네트워크를 활용한 비즈니스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2014년에 그는 에어래빗이라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모바일 앱으로도 만들었는데, 일종의 고급 수입차를 활용한 주말 알바 소개 앱이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고급 수입차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곳에 활용되고 있었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웨딩카는 물론, 프로포즈를 하거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공항에 픽업을 나가거나 등등 다양한 곳에서 활용이 가능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다보면 의문이 생겼다.

물론 카푸어(Car poor)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고급 수입차를 가진 사람들은 충분히 돈이 있는 사람들 일텐데, 그런 사람들이 주말에 몇 십만원 벌려고 그런 일에 나서나요?”

그쵸. 그러니까 돈으로 접근하면 안되죠.”

“!!”

이 분들은 이미 돈은 충분히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험으로 접근을 했어요. 에어래빗에서 고객과 연결이 되면 차량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직접 운전을 해서 가야하거든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걸로 설득을 했죠. 돈을 번다는 것에는 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지만 새로운 경험과 환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움직인 분들이 많아요.”


 그의 말처럼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이들 드라이버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차량에 심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음악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은 그날의 선곡한 음악을 고객에게 선물을 하는 식이었다. 일 자체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그러니까 이런 네트워크가 장기적으로 구축될 수 있지 않았을까.


 에어래빗을 설립하면서 그는 다날에서 만난 최바다 이사와 함께 공동 창업을 했다. 뚝심있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상당히 섬세하고 돌다리도 수십번 두들기며 건너가는 최 이사의 신중한 성격이 일단 저지르고 보는 자신과 서로 장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반드시 고급 수입차가 아니더라도 남는 시간대에 차량을 빌려주거나 공유하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란 게 이들의 판단이었다. 다만 2014년말 우버가 퇴출되는 것을 보면서 고민이 시작됐다. 그래도 언젠가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카풀은 안되지만, 출퇴근 시간대의 카풀은 허용된다는 것을 알고 이 시장을 노린 서비스 준비에 나섰다. 그러던중 이들은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바로 경쟁업체가 먼저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럭시의 공동 창업자 길창수 대표(오른쪽)와 최바다 이사>


3개월만에 월 10만건 매칭


2016년 봄이었다. 이들의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자신이 있었다.

카풀은 검증된 운전자와 검증된 차량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저흰 그렇게 봤습니다. 그래야 고객에게 만족스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거든요. 제가 웨딩카 사업을 하면서 배운 건, 사람들은 결코 돈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택시보다 싼 가격에 카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상당히 좋은 조건이죠. 하지만 그게 다는 결코 아닙니다. 정말 만족스런 서비스를 제공해야 해요. 가격이 싸지만 서비스는 결코 싸구려가 되면 안되는거죠.”


 길 대표와 최 이사는 방대한 수입차 보유자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이들은 럭시의 사업모델에 기꺼이 참여했다. 이들 상당수는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출퇴근하면서 사람을 태워서 갈 수 있다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경쟁사에 비해 3개월 늦은 올 8월에야 럭시는 나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수천명에 달하는 드라이버를 확보한 채 성남, 용인, 서울 강남 등지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처음에 8월 한달간 1만건의 매칭(운전자와 탑승자 연결) 을 목표로 내걸었어요. 9월에는 27000건을 목표로 했죠. 다들 너무 무리한 목표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웬걸, 첫달에 벌써 2만건 가까운 매칭 실적을 올렸고 9월에는 4만건을 돌파했다. 10월에는 월 10만건에 달하는 매칭 실적이 예상되고 있다. 그야말로 돌풍이다. 서비스 호조에 힘입어 10월 중순에는 부산에도 진출했다.


 앱을 다운받으면 2만원의 쿠폰을 증정, 2회 정도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카풀 성공률이 높고 요금이 저렴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이용자가 급증했다. 카풀 서비스 1회당 평균 요금은 1만원. 택시비에 비해 30% 가량 저렴하니 사용자가 몰리고 운전자는 어차피 빈 차로 가는 것보다 돈을 벌 수 있으니 사람이 몰리고 있다.


 서비스는 가격과 편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카풀 서비스의 출발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자각과 의식이었다. “출퇴근하기 위해 아침에 일찍 거리에 나가 보면,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끝도 없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반면 거리의 차들은 운전자 한 명만 탄 채 출퇴근하는 차가 대부분입니다. 가까운 지역에 살면서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이들이 함께 출퇴근할 수 있게 하면 교통 정체도 줄이고 출퇴근 스트레스와 비용을 모두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우리는 큰 기업을 일궈내자는 거죠.”


 차량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는 우버와 비슷하지만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점은 다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은 자가승용차량의 유상운송을 금지하고 있으나 출퇴근시 차량 공유(카풀)은 허용(81)하고 있다. 럭시는 카풀 운전자가 출퇴근시에만 카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이를 전업으로 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 최대 카풀 제공 횟수를 3회로 제한했다. 택시 사업자들과의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지금 현재는 1 1 매칭 위주이지만 앞으론 1 대 다() 매칭을 겨냥한 서비스가 출시된다. 요금이 더욱 저렴해지는 것이다. 흔히들 카풀 서비스 얘기를 들으면, 아침에 택시를 타고 출근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라는 반응을 보인다. 아무리 싸게 한다고 해도 비용이 버스나 지하철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 하지만 여럿이 함께 카풀을 이용하면 이용 요금을 3분의 1, 4분의1로 낮출 수 있다. 확산될수록 거리의 교통체증을 줄이고 대중교통의 붐비는 현상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서울시 교통연구원를 보니까, 출퇴근시간대 총 8시간 동안 택시에 대한 수요가 공급에 비해 2배 가량 많더라구요. 택시로는 도저히 출퇴근 교통난을 해결하기 힘들다는 거죠. 거리의 수많은 나홀로 드라이버족의 차량을 공유해 출퇴근 교통정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겠습니다!”

 

by wonkis



,

저도 대학때 코딩 못했어요. 1,2학년때 프로그래밍 부진아였죠. 컴퓨터 정말 잘 못했습니다. 수업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이두희 누구나주식회사 대표와의 인터뷰 도중, 그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상당한 충격이었다. 한국 벤처업계에서 알아주는 개발자로 손꼽히는 그가 대학때 프로그래밍 수업을 못 알아들을 정도였다니.


 이두희 대표는 업계에선 천재 개발자로 통한다. 대학 재학 중 서울대 전산실을 해킹했던 사건이나 단기간에 만들었던 그의 개발작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인식이다. 멋쟁이 사자처럼의 코딩 교육, SK텔레콤이 설립한 누구나주식회사 대표 등 그간의 이력을 보면서 코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를 찾아갔다. 인터뷰는 구글 캠퍼스서울의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한국경제신문 추가영 기자와 함께 갔다.


 누구나주식회사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할지, 멋쟁이 사자처럼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지. 이 회사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등등.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런데 대학때 코딩 부진아였다니?

<즉석에서 작성한 코드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가리키고 있는 이두희 멋쟁이 사자처럼/누구나 주식회사 대표.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대학 2년까지 컴맹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코딩을 잘 하게 됐나요?”


수업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정말 힘들었어요. 학점은 전부 1점대를 깔고. 그런데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른 길을 찾아볼까 생각도 했는데, 컴퓨터공학과에 들어왔는데 어떻게든 코딩은 배우고 나가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혼자서 공부를 했죠.”


 그는 C언어가 너무 힘들어 코딩을 포기할 뻔 했다고 했다. 그래서 파이썬과 루비로 시작을 했다고. (개인적으로는 루비를 더 추천한다고 한다.)


 그가 코딩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의미를 찾았기 때문.

이 어려운 걸 배워서 뭐하나 이런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수업 시간표 프로그램도 만들고, 해킹도 하고. 이것 저것 응용이 되더라구요. 사회에 영향도 미치고. 할 게 정말 많았어요. 그때 정말 빠져들었죠.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그래밍의 의미를 찾은 그는 무섭게 코딩을 익혔다. 울트라캡숑을 창업한 것도 세상에 의미있는 변화를 주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는 울트라캡숑 창업자였지만 결국 회사를 나왔고, 끝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이 얘기를 길게 하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어쨌든 울트라캡숑을 나와 집에서 백수로 지냈다고 한다.


 “그냥 누워서 빈둥거렸어요. 할 일이 없더라구요. 기분도 안 좋았구요.”


 대학에 돌아갈까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을 밟던 도중 그만두겠다고 통보한 터였다. 결정을 번복하기는 싫었다. 할 일을 찾다가 심지어 수능을 다시 보고 약대를 갈까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실제 수능 공부도 했고, 약사 일이 어떨까 싶어서 친구가 하는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도 해 봤다. 그런데 하루 종일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했다. 자신에겐 맞지 않았다.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집에 돌아와서 고민했어요. 난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요.”


 그때 그가 생각해 낸 것이 멋쟁이 사자처럼프로젝트였다.


 “내가 잘 하고, 항상 하고 싶은 것은 코딩이니까 이걸 사람들한테 가르치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일단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얼마나 오래 할까 이런 생각도 없었어요. 내가 백수니까, 근데 백수의 왕은 사자니까, 이름을 사자로 지었구요. 나 자신에게 최면을 가하기 위해 멋쟁이 사자처럼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나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나는 멋있다. 나는 잘 할 수 있다 계속 최면을 걸었죠. 그때 저에겐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게 필요했어요.”


벼랑끝에서 시작한 멋쟁이 사자처럼


처음에 30명에게 프로그래밍 교육을 시작했다. 장소를 못 잡아서 애를 먹었는데, 자주 갔던 카페 사장님이 도움을 줬다. 이 사장님은 돈을 벌어서 네팔에 집 지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사정을 듣고 흔쾌히 장소를 내줬다고 한다.


“30명을 어떻게 모았나요?”

서울대에 안내문을 붙였어요, 10.”
그렇게 해서 얼마나 지원을 했나요?”

200명 정도?”

그 중에서 30명을 어떤 기준으로 뽑나요?” (이게 정말 궁금했다.)

정말 고마워하면서 배울 사람. 그리고 정말 전력을 다해서 배울 사람을 뽑았습니다. 코딩이 배우기 어렵거든요. 이것만 열심히 해도 배우기 쉽지 않습니다. ”


 처음에 30명을 가르쳤는데, 어려운 환경에서도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계속하기는 힘들었다. 수업을 무료로 진행하는데다 오히려 자비를 써가면서 가르쳤는데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한 번 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이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만두겠다고 페이스북에 공지를 했더니 메일이 300통이 넘게 오는 거에요. 교육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죠. 자기도 받고 싶다는 내용도 있구요.”


 지원자가 많아서 몇 차례 더 진행을 했지만 번번이 그는 그만두려고 했다. 자금 문제가 있었고, 그도 계속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가 아니라 창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4기까지 하고 정말 그만두려고 했을 때 구글에서 찾아왔다. 이걸 꼭 해야 한다는 게 구글의 요구였다. 비용도 대겠다고 했다. 구글과 손잡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수락했다. 올해 구글의 임팩트 챌린지에서 선정되면서 지속할 수 있는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해서 멋쟁이 사자처럼은 벌써 4년 가까이 진행됐다. 이 기간 중 2000여명이 과정을 거쳐갔다. 어떤 사람들이 코딩을 잘 할까. 얼마나 코딩 능력을 익혔을까. 궁금한 게 많았다.


 “2000명 중 20% 정도? 400명 가량은 코딩 능력을 습득했어요. 이 중에는 저보다 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0% 정도는 사실 중도에 포기했구요. 나머지 60% 정도는 과정은 마쳤지만 코딩 능력을 완전히 익히진 못했어요.”


 “그래도 의미가 있나요?”


 “네 의미가 있습니다. 코딩은 할 줄 몰라도 볼 줄은 알게 됐어요. 무엇보다 개발자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게 된 거죠. 처음부터 멋쟁이 사자처럼은 이걸 의도헀어요. 비전공자들이 코딩을 배워서 개발자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코딩의 핵심은 문제의식


비전공자들을 가르칠 때 어떤가요? 수학을 오랫동안 하지 않은, 예를 들어 인문계 학생들도 잘 배우던가요?”


 “
사실 인문대생들 가운데 코딩을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기본적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거든요. 사실 공대생은 이런 부분이 좀 덜해요.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개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거죠. 예를 들어 총학생회 온라인 투표 앱을 만든 학생은 불문학과 출신이에요. 정치 참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학생이었죠. 이런 문제의식이 확실히 있으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는 개발만 해 온 개발자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게 소통이라고 했다. 개발자들에게 소통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보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고 사회적인 문제의식이 있는 비전공자들에게 코딩을 가르쳐 이들이 개발자들과 소통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비전공자들에게 코딩을 가르쳤다는 것. 농대를 다니다가 멋쟁이 사자처럼의 코딩 수업을 듣고 컴퓨터공학과로 전공을 바꾼 사람도 있었다. 수업을 듣는 사람들에겐, 어쨌든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멋쟁이 사자처럼 과정은 이제 상당히 유명해졌다. 그 덕에 후원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처음의 취지를 지속하기 위해 학생들에겐 무료로 가르치고 있따. 초등학교쪽에도 진출하고 있다. 지리산 토지초등학교 영곡분교라는, 전교생 20명 밖에 안되는 곳에 가서 소프트웨어 의무교육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이곳 학생들은 집에 컴퓨터도 없기 때문에 컴퓨터 후원을 받아서 교육을 진행중이다.


 취지는 좋지만 어쨌든 돈을 벌어야 사업도 지속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는 유료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취업층을 1년 안에 개발자로 컨버팅 해 줄테니 믿고 따라와라 하는 식으로 가르칠 수도 있구요. 아주 세심하게 가르쳐야겠죠. 이것도 유료가 가능합니다.”


 이두희 대표는 멋쟁이 사자처럼 커리큘럼이 대학에서 배우는 코딩과는 매우 다르다고 했다. “대학교 프로그래밍은 이론부터 출발해요. 변수가 뭐고 분기문, 자료 구조, 알고리즘 등 용어부터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멋쟁이 사자처럼은 조합해서 이것을 만들 수 있다. 네가 만들 것을 정의해라. 3~4명 팀을 갖춰서 팀이 만들 것을 정의하라고 합니다. 만들 것이 없으면 개발하지 말라고 해요. 예를 들어 채팅 구현하기 위해서 소켓을 배워야합니다. 목적 지향적이에요. 네가 만들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하고 컴퓨터는 그 발판이 될 뿐이다라는 거죠.”


누구’, 국민 비서로 진화한다


코딩을 가르치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누구나주식회사의 대표가 된 것은 어찌 된 일일까. 그는 인공지능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SK텔레콤으로부터 올해 봄, 알파고 붐 직후 얘기를 듣고도 이게 잘 될까 싶었다고 한다. “처음 베타 버전일 때 인식률이 낮았어요. 그런데 이후 개발 속도가 상당히 빠른 걸 보고 제대로 된 뭔가가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올해 초여름경에 SK텔레콤의 누구프로젝트에 합류한 그. 누구나주식회사의 가상 대표를 맡게 된 그가 하는 일은 전문가 집단과 SK텔레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이나 이와 관련된 다양한 학문이 있어요. 여기엔 전문가 분들이 많이 있는데 이 분들의 아이디어 역시 상당히 많습니다. 회의를 자주 해요. 난상 토론을 합니다. 이 분들은 상당한 고집과 철학이 있고, 다 의미가 있는 부분이지만 사업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에요. SK텔레콤에 이런 전문가들의 지식과 제안을 사업화할 수 있게 다듬어서 다시 제안하고 함께 고민하는 게 저의 역할입니다.”


 그는 누구에 대해 기본적으로 잘 짜졌다고 평가했다. “문자 매칭이 아니라 모듈이 잘 짜여 있어요. 버전업이 빨리 될 것 같습니다. 알파고 후에 첫 번째 채널을 잘 열었고,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 에코 등 비슷한 서비스가 있지만 한국어 음성과 발음을 제대로 인식한 것은 의미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서비스는 결국 어떻게 진화되게 될까. “기획 단계에서 고민이 있었어요. 친구 역할을 할지, 비서 역할을 할지. 처음엔 대화 상대로 여기는 시리 쓰듯이 몇 살이지?’, ‘나랑 사귀자와 같은 친근한 대화로 갔습니다. 그런데 비서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앞으론 대화를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주는 그런 비서와 같은 존재로 성장할 것 같습니다.”


by wonkis

,
BLOG main image
임원기의 人터넷 人사이드
인터넷과 그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블로그.
by wonkis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766)
뉴미디어 세상 (119)
게임이야기 (66)
임원기가 만난 사람들 (55)
(책)네이버 성공 신화의 비밀-그 이후 (61)
夢幻泡影-삶과 꿈,살아가는 이야기 (55)
책 다시보기 (25)
한국의 스타트업 (293)
San Francisco&Berkeley (29)
스타트업 소식 (17)
한국의 스타트업 시즌2 (26)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VC (14)

달력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wonkis'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