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느닷없이 창업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 있는가하면,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해 서서히 창업의 길을 가게 되는 사람도 있다. 갑자기 창업에 뛰어든 사람의 경우도 통상 준비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 들어가 일정 기간 일을 하다가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게 됐다던가,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문제의식을 갖게 되는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자영업 창업이 아닌 다음에야 정말 느닷없이 창업을 하는 사례는 많지 않은 법이다. 그런데 벤디스라는 회사를 창업한 조정호 대표의 경우는 정말 갑자기 창업에 나선 스타일. 그것도 아무 경험도 없는 젊은 나이에, 전혀 다른 길을 가다가 창업에 도전했다.

◆고시준비하다 떠오른 아이디어

“창업이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었죠.” 창업가들을 만나다보면 이런 말을 많이 듣곤 한다. 창업을 한 사람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그래도 갑자기 창업을 하게 되는 사람들은 어떤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 계기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마련되곤 하는데, 그의 창업 계기는 좀 엉뚱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과 05학번으로 입학해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고시 준비를 하고 있던 학생 조정호. 때는 2010년 즈음이었다. 당시 서울-분당선 고속광역버스를 비롯해 수도권과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노선이 잠깐 화제가 됐던 적이 있었다. 요지는 직장인들이 광역버스를 타고 다니느라 고생한다는 것.

“직장인들이 버스가 부족해 서서 출퇴근하느라 힘들다는 뉴스를 봤어요. 그런데 전세버스를 빌리면 될텐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전세버스를 빌리고 사람들을 태워다주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드니까, 돈이 될 것 같았고 도저히 공부를 더 할 마음이 안들더라구요.”

그는 즉시 고시책을 헌책방에 팔았다. 사법시험을 불과 한달 앞둔 시점이었다. 그리고 사업을 하는 것을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혹 별로 고시공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준 격이라고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데, 그 정도로 결연한 의지와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

부모님께 고시 공부를 중단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했는데, 당연히 엄청난 진노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창업을 할 사람은 하기 마련이다. 공부할 때 느끼지 못했던 에너지가 넘쳤다.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창업은 열정만 갖고 되지는 않는다. 사업은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전세버스를 빌리는 일은 운수사업법상 관련 자격증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업을 했다간 당장 버스 업계의 반발을 살 수도 있었다. 이렇게 첫 창업은 꿈은 날아가버렸다. 허무하게. 고시공부하던 책까지 팔았는데 말이다.

◆좌충우돌 첫 도전

첫 아이디어는 시작도 못 해보고 무산됐지만 그냥 주저앉지는 않았다고 한다. 뭘 가지고 창업을 해 볼까. 끊임없이 생각하던 학생 조정호는 CJ ONE 카드란 것을 써 보고 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된다. 2011년의 일이었다.

“가맹 음식점에서 카드를 내고 결제하면 포인트를 적립해주더라구요. 그런데 프랜차이즈가 아닌 맛집들은 이런 걸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어요.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동네 맛집들도 살리고 사업도 되지 않을까 했던거죠.”

그는 오래 생각하기보단 바로 실행에 옮기는 스타일. 한양대 컴퓨터공학과에 다니던 후배 2명을 설득해서 서비스를 만들기로 했다. 서비스명은 숨포인트. 기획을 한 뒤 서비스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신촌으로 영업을 나갔다.

“영업이란 건 처음으로 나가본 거죠.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10군데랑 계약을 했어요. 대단하죠?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대부분이었고 거절도 많이 당했죠.”

한 업소를 찾아갔다가 이런 충고를 들었다. 쿠폰 적립 만들어도 업소 입장에서는 매출로 연결되는게 중요한데, 그걸 확신할 수 없다는 것. 즉 돈이 되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다 하는 포인트 적립 이런 것 보다는 모바일 상품권이 낫지 않겠냐는 거였다.

조정호 사장의 특징은 결단과 실행이 빠르다는 것. 그는 이런 충고를 듣고 모바일 상품권을 만들기로 했다. ‘브로컬리마켓’이라는 회사를 2011년말에 차리고 브로컬리상품권을 출시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매장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인 셈이었다. 사업을 위해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50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스스로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제가 있었다. “바코드를 인식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상품권 번호를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거였어요. 아무리 잘 만들어도 팔리지가 않았던 거죠.”

팔리지 않는 제품은 아무리 기획을 잘 하고, 디자인을 잘 해도 소용이 없다는, 단순하지만 소중한 진리를 배운 셈. 그래도 아주 헛된 시도는 아니었다. 이들의 서비스가 출시됐다는 기사를 보고 유비클의 김윤수 사장이 연락을 한 것이었다.

“유비클에서도 모바일 상품권과 관련된 사업을 기획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그러던 차에 저희가 그런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거죠. 즉시 만나서 함께 하기로 했어요. 그랬다가 김 사장님이 깜짝 놀란거죠.”

김윤수 사장이 놀랐던 이유는 바코드 인식 방식이 아니라는 점. 다행히 그는 함께 하기로 한 결심 자체는 바꾸지 않았다. 다만 이래서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판단한 김윤수 사장은 자신이 직접 자금을 투자하고 리뉴얼 작업을 하기로 했다. 엔지니어도 투입하는 등 본격적인 모바일 상품권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벤디스 창업멤버들. 맨 왼쪽이 조정호 대표.>

◆허무하게 날아간 첫 매출

한창 리뉴얼 작업을 하고 있던 중 뜻밖의 주문이 들어왔다. 국내 대형 게임사 한 곳으로부터 직원들이 새로 입주한 건물에서 쓸 수 있는 모바일 쿠폰을 만들어달라는 의뢰였다. 이 회사는 IT업체였기 때문에 종이 식권이나 종이 사용권 등을 쓰지 않고 직원들이 스마트폰만 보여주면 입주 건물 내에 있는 식당이나 커피숍 등 어디에서든 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했다.

리뉴얼 작업을 하고 있던 것과는 방향이 달랐지만 꽤나 쏠쏠한 사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리뉴얼 작업을 보류하고 이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사실 저희가 처음 생각하고 구상했던 모바일 식권하고 같은 개념이었어요. 바코드 인식이나 이런 것도 필요가 없었구요. ”

신이 나서 자신들의 처음 구상대로 모바일 식권을 만들고 있던 이들에게 날벼락같은 소식이 전해져왔다. 이 회사가 자사 건물 식당 등에 관한 운영권을 다른 회사에 팔아버린 것이다. 합의했던 내용도 당연히 휴지조각이 됐다 이전에 계약이라도 체결하고 이를 문서로 남겨놨으면 별 문제없이 진행을 할 수 있었겠지만 이들은 이런 것도 하지 않았다. 구두로 합의만 해 놓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이들은 하루아침에 매출이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너무 낙심했죠. 그런데 어느날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그 회사만 모바일 식권을 필요로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어디든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리뉴얼 작업을 하지 말고 그냥 모바일 식권을 범용화하는 상품을 만들고 기업 고객들에게 최적화해서 영업으로 뚫어보자. 이렇게 된 거죠.”

즉시 시장 조사에 나섰다. 강북 광화문 인근 식당을 돌면서 식권 제휴를 맺은 회사들이 있는지 조사를 했다. 무려 600개 이상의 기업들이 식권 제휴를 맺고 있다는 것이 파악됐다. 수요가 있으면 이들의 필요도 반드시 있겠다. 우여곡절을 거쳐 모바일 식권 밀크는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됐다.

◆밀크, 식권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밀크(Mealc)는 구내 식당이 없는 기업을 위한 스마트폰 기반 식권 발급 및 식대 관리 솔루션이다. 쉽게 말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종이 식권을 스마트폰으로 가져온 것이지만 업소 입장에서는 식대 관리까지 되는 매장 관리 솔루션도 된다.

기업이 직원 개개인에게 지원 식대 금액에 해당하는 ‘밀크’ 포인트를 지급하면 직원은 회사 인근 제휴 식당 및 전국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 매장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에 설치한 ‘밀크’ 앱을 통해 회사가 적립해준 포인트를 이용, 식대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기존 식권에 비해 좋은 점은? 인근 제휴 식당에서만 쓸 수 있는게 아니라 유명 프랜차이즈, 즉 커피숍이나 빵집 등에서도 사용 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어차피 돈 써서 직원들의 복지용으로 지급하는데, 직원들의 만족도를 훨씬 더 끌어올릴 수 있다.

식당 제휴 및 서비스 관리, 식대 정산 및 결제에 이르는 전 과정을 벤디스의 전문인력이 대행한다는 장점도 있다. 벤디스에서는 매월 세금계산서로 식대 결제를 해 주고 기업들의 여건 및 필요를 듣고 적당한 가격, 상품 등을 구성해주는 등 식권 관련 컨설팅 업무도 해 준다. 관리자 페이지에 들어가면 실시간으로 식대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새나갈 염려가 없다는 뜻이다.

‘밀크’는 모바일 식권 솔루션 ‘밀쿠폰’, 모바일 매점 솔루션 ‘밀카페’, 하이퍼로컬(hyper-local) 마케팅 솔루션 ‘밀헌트’, 폐쇄형 소셜커머스 솔루션 ‘밀당’으로 구성돼 있다. 밀당은 가입한 기업들의 직원들이 단체로 물건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공동구매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

밀쿠폰을 정점으로 한 이런 서비스들의 가장 큰 장점은 기업들이 어떤 별도의 시스템 구축이나 배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 장비를 구매할 필요도 없다. 그냥 벤디스랑 계약을 맺고 모든 것을 맡기면 된다. 그러면 각 회사의 직원 수와 예산, 특성 등에 맞는 식권이 발급 가능하도록 해 준다. 직원들이 스마트폰만 쓰면 된다. 매달, 매일 사용 내역을 알 수 있고 언제든 직원들을 위한 추가적인 서비스를 붙일 수도 있기 때문에 유용하다. 기업들을 겨냥한 마케팅을 고민하고 있는 업체들에겐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될 수도 있다. 활용도가 많다는 뜻이다.

직원들의 식사를 고민하는 기업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즉 해외에서도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것.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지만 전 사업이 체질인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나가는게 좋네요. 식권으로 출발했지만 식권을 뛰어넘어 직원들에게 다양한 복지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채널, 마케팅 도구로 발전시켜 전 세계로 확장해나가겠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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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아온 길을 돌아본 적이 있으신지? 어느 덧 올해도 연말이 가까워지고 있어 그런 생각을 한번쯤 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생각을 하노라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좋은 의미로, 어떤 이에게는 나쁜 의미로.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아무러해도 좋은 그런 의미로.

돌이켜보면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반드시 어떤 극적인 순간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하루하루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다는 것이 지금의 모습으로, 하나의 결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일 뿐. 그 과정에서 특별히 극적인 결단의 순간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떤가. 다만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게 아쉬울 뿐. 오늘도 시간은 흘러가고, 알 수 없는 미래를 보면서 한 가지만 붙들고 간다. 나는 세상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누군가에게, 세상에는 어떤 존재와 의미가 될 것인가,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번에 소개하는 리나소프트 김성관 대표는 ‘그래 결심했어!’ 따위의 극적인 순간 없이 창업의 길에 들어서 반평생을 창업과 개발에 바쳤다. 그는 삶을 통해 어떤 질문을 던졌고, 무엇을 발견했을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홈페이지 만들면서 시작한 창업인생

부산 동의대학교 컴퓨터공학과 92학번으로 입학한 부산 사나이 김성관. 그는 대학교 3학년때인 1990년대 후반부터 홈페이지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정말 코딩이 재밌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코드 짜는 걸 배우긴 하죠. 하지만 자기가 재밌어서 열심히 파지않으면 어느 수준 이상 올라갈 수가 없어요. 저는 정말 재밌었어요. 매일 새벽 2-3시까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열심히 코딩을 했죠.”

재밌어서 한 일이 돈이 됐다. 당시 친구가 디자인을 맡고 김성관이 프로그램을 짰다.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하게 외주를 받아 홈페이지를 만들어준 셈이었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이들에게 일을 맡기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한달 동안 합숙해서 친구와 둘이 홈페이지를 만들면 500만원은 거뜬히 벌었다고 한다. “당시 한 학기 등록금이 150만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죠. 벌어서 둘이 나눠도 충분히 등록금은 커버가 됐어요.”

코딩을 하다보면 재미있고, 돈도 벌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렇게 좋은 일이 있다니! ‘이렇게 쭉 하면 되겠다’라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었다. 홈페이지 경지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하는 등 제법 인정도 받았다. PC통신 천리안 나우누리가 유행하던 시절에 그에게는 일감이 더욱 쏟아져 들어왔다.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석사과정까지 끝마친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LG전자에 갈 기회가 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창업을 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어찌보면 철없는 생각일 수 있죠. 그렇게 해서 언제 돈을 버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창업을 하기로 했죠. 지금까지 계속 해왔던 일이기도 했구요.”

그의 공식적인 첫 창업은 2002년. 당시 웹에이전시 회사를 차렸다. 그런데 그는 창업을 하고나서 현실의 벽을 처음으로 느꼈다고 한다. “‘아 그냥 등록금 벌 요량으로 홈페이지 외주 제작을 하는 것과 창업을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쉽지 않더라구요.”

<리나소프트 김성관 대표>

◆모바일에서 기회를 찾다

창업은 했지만 하고 싶은 분야는 잘 손에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전자책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전자책 세상이 곧 올 것 같았어요. 사람들이 PC나 휴대폰으로 책을 보는 그런 세상. 이건 좀 될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석 달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밤을 새서 전자책 솔루션을 만들었다. 이름 하여 리얼뷰. 생각만 했던 것을 실제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감도 생겼다. 이메일 수집기로 전자책 솔루션을 무작정 뿌렸다.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그때 모 과자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제법 널리 이름이 알려진 이 회사와 계약을 맺고 카달로그를 전자책으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업체별로 e북도 만들었고 직원들 10명을 채용하기도 했다.

점차 자신감이 생긴 그는 온라인잡지 사이트를 만드는 등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그런데, 결제를 잘 안하더라구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보긴 했는데 결제를 하질 않으니 돈이 안 된거죠. 그때는 비즈니스를 너무 몰랐던 것 같아요. 지금과 같은 그런 투자나 창업 환경이 아니었는데..”

사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개인이 만든 동영상(UCC)을 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문의를 하는 등 관심을 끌었는데, 2007년말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터지면서 회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2008년은 그에게 가장 혹독한 해였다. 왜 내가 창업의 길로 들어섰을까.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하지 않았을까. 직장에 들어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계속 창업만 해와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기에 잠깐 회사에 취직해 일도 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그는 창업의 기회를 계속 찾았다. 2010년 아이폰 관련 교육 프로그램에 갔다가 모바일 분야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개발의 욕구에 불탄 그는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150만원 짜리 맥북을 ‘질렀다’고 한다. 당시 세 살 난 아들을 주려고 ‘공룡대탐험’이라는 앱을 만들었다. 그가 처음으로 만든 앱이었다. 심심풀이로 만든 앱이었는데 제법 사람들이 다운로드를 많이 받았다.

“아, 앱이 장사가 되는구나. 그런 느낌이 왔어요. 그래서 다시 1인 기업부터 시작했죠. 그게 벌써 2011년이네요. 지긋지긋할 법도 한데, 다시 창업에 뛰어든 셈이죠.”

◆계속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

2012년 그는 지금의 회사를 ‘공식적으로’ 설립했다. 리나소프트란 이름을 붙여줬다. “딸 이름이에요. 김리나. 스티브잡스가 딸 이름을 붙인 컴퓨터를 만들었쟎아요? 리사라고. 그 생각이 났어요. 부끄럽지 않은 그런 회사로 키우고 싶은거죠.”

리나소프트는 줄기차게 앱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만든 앱만 15개쯤 된다. 그 중에는 ‘싸가지없는 영어이메일’ 앱과 같은 히트작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넌 얼마나 쓰니’ 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올 1월에 출시된 이 앱은 지금까지 20만건 정도 다운로드됐다.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성적도 아니다. 다만 앱을 다운로드한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 건 고무적이다.

‘넌 얼마나 쓰니 앱’은 스마트폰 사용시간과 패턴을 분석하는 일종의 개인 스마트폰 관리 앱이다. 리나소프트는 이를 스마트폰 중독 방지 앱이라고 설명한다.

'넌 얼마나 쓰니'는 하루 동안 스마트폰을 얼마나 사용하고, 어떤 앱을 주로 사용하는지 확인하고 분석하는 게 주된 기능이다. 사용 패턴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분석 데이터를 제공하고 화면을 켜는 횟수 측정, 목표 사용시간 설정, 사용시간 알림 등의 다양한 부가기능으로 스마트폰 중독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히 복잡한 상세 데이터를 다루지만 깔끔한 디자인과 편리한 조작법으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는 게 장점.

학생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우선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자신의 시간을 관리하려나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가가 나온다. 다만 공익적인 목적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게임 앱과 같이 폭발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공공기관이나 기업 등과 제휴를 맺고 사람들의 스마트폰 사용패턴을 분석하는 쪽으로 B2B 사업 개발도 가능하다. 사업 확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

사용자가 느끼는 장벽이 낮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얼마든지 통할 수 있다. 이미 영어, 중국어, 일본어 버전에 이어 독일어 버전도 출시됐다.

자못 진지해 보이는 그는 성격 못지 않게 앱도 그런 앱을 주로 만들었다고 한다. 좋은 앱을 만들어 (물론 돈도 벌어야겠지만) 사회에 기여도 하는 것. 무엇보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찾아가고, 도전해가는 과정이 그에게 기쁨인 것 같다.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서 해보고 싶어요. 오래전부터 그랬죠. 그러니까 창업을 해서 이렇게 이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대학때 컴퓨터 언어를 배웠고 거기에 푹 빠졌어요. 어려운 일도 많았었지만 그때 그 기억과 당시 배운 기술로 인해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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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으로 생각한 것과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과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때로는 생각해내는 것 자체가 대단하기도 하지만 상품화의 벽은 높다. B2C 비즈니스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의 엄중함은 겪어보기 전엔 상상이 힘들 것이다. 퍼니버섯(Funny Busut)의 홍지현 대표는 그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몸소 체험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시도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는 재빨리 습득하고 다음 단계로 한걸음씩 나가려고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창업가를 꿈꾼 건축학도

홍 대표는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04학번)를 나왔다. 건축학을 전공한 IT 분야 창업가를 만나기는 매우 오랜만인 것 같다. 졸업을 하고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기까지 그는 다른 길을 생각해보진 않았다. 건축은 전문 분야가 뚜렷하기 때문에 그는 건축사무소에서 일할 때까지 건축가로서 성장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변화의 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 그가 일했던 사무소는 홍대 모 교수가 하는 곳이었는데, 그는 여기서 2년 동안 ‘미디어아트’ 분야를 담당했다고 한다. 건축에만 관심을 갖고 있던 그가 처음으로 IT분야에 눈을 뜨는 시점이었다.

“현실을 깨달았다는 이유도 있었어요. 건축사 사무소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고 나서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거죠.”

때마침 디자인 오픈소스와 관련된 워크샵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무작정 여기에 참가했다. 오픈소스와 협업의 힘에 관심이 생긴 그는 아예 IT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기로 한다. SK텔레콤의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와 관련한 협력사에서 일하게 된다.

“좀 생소한 분야였을 것 같은데..무슨 일을 했나요?”

“처음엔 아마존서비스 등 다른 클라우드 서비스를 분석하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나중엔 기획도 했죠.”

IT 회사에서 일하면서 비슷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동료들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 클라우드컴퓨팅을 활용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하는 개발자 2명과 함께 스마트TV 앱 공모전에도 나가게 됐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뭔가를 해보려고 하면 어떻게든 길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스마트TV협회에서 주최하는 이 대회에서 상까지 받게 된다. 수상을 한 덕에 지원금도 받고 이것으로 앱을 개발해 출시까지 했다. 이게 2013년, 작년의 일이다.

결과는? “잘 안됐어요. 사업성은 별로라는 생각을 그때도 했었죠. 그래도 했던 이유는 기술자로서 도전해볼 만한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이런 분야를 알기 위해 직접 부닥쳐봐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도 당시 기술적인 이슈가 됐던 멀티스크린 연결 방식도 배우고 앱 시장의 현실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은 작은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발자 2명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감을 익혀온 홍 대표는 드디어 2013년 11월, 창업에 나섰다. 자본금 5000만원으로 시작됐다. 이름하여 퍼니버섯의 탄생이다.

<퍼니버섯의 창업멤버들. 뒷줄 왼쪽 두번째가 홍지현 대표.>

◆생각과 현실은 달랐다

“이름이 왜 퍼니버섯이에요?”

“제가 버섯을 좀 좋아해요. 하하. 그리고 버섯이 확 퍼지잖아요. 재미가 그렇게 확 퍼지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엔 게임 개발로 시작했다. 단말기를 연결해서 여럿이 즐기는 게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클라우드업체에 다니면서 멀티스크린 관련 기술 업무를 했었던 게 창업 아이템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사람들이 모였을 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 이렇게 시작됐다. 스마트폰을 서로 꺼내서 게임을 실행하면 캐릭터가 각자의 스마트폰을 옮겨다닌다. 이를테면 이 캐릭터를 잡는 게 게임의 내용이 된다.

‘게임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사업을 시작했다.’ 이게 홍 대표의 총평.

“게임은 혼자서 하쟎아요. 네트워크로 연결되서 다른 사람과 경쟁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물리적으로는 혼자 붙잡고 하는 게 대부분인데 너무 그런 현실과 동떨어졌죠.”

게임을 4종을 개발했는데 성과는 썩 신통치 않았다. 호평을 받은 게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개발한 게임만으로 회사를 지속가능하게 운영하는 것은 힘들어보였다.

새로운 계기는 생활 속에서 나왔다. “함께 창업한 멤버들이 다들 전형적인 개발자들이에요. 평소엔 말도 없고 계속 일만 하죠. 숫기도 없어요. 그런데 온라인 대화는 정말 잘들 하더라구요. 멤버들하고 온라인 그룹채팅을 하다보니 온라인에선 유머감각들도 있고 재밌다는 걸 알았어요.”

멤버들의 독특한 유머감각을 생각하던 중 유머콘텐츠에 빠져든 홍 대표. 나름의 시장 조사를 통해 유머콘텐츠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있는 반면 콘텐츠 플랫폼은 미진하다고 판단한 그는 멤버들을 설득해 유머SNS를 만들기로 한다. “국내포털사이트의 웃긴사진, 웃긴짤, 움짤등의 키워드 검색량은 하루에 1만건이 넘어요. 웃긴사진하나로 몇십만건 이상의 공감을 얻어낸 콘텐츠도 세상에 너무 많죠. 그런데 우리는 이런 공감가는 유머콘텐츠를 만들어낸 창작자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거의 모르죠.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는 장이 확산된다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서 11월 25일 퍼니버섯이 출시됐다. 안드로이드 버전이 우선 나왔고 12월 중에는 애플 앱스토어 버전도 나온다.

◆유머SNS로 콘텐츠플랫폼 키운다

'퍼니버섯'는 쉽게 말해 유머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SNS다. 유머콘텐츠 작가들이 창작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유머캐스트' 기능을 이용, 창작자가 자신의 이름을 건 창작물을 올릴 수 있다. 이용자들은 서로의 유머캐스트에서 '개웃', '썰렁' 등의 '스티커'를 통해 각자의 유머코드에 대해 자유롭게 평가를 주고받는다. 매주 인기 있었던 웃짤을 만든 창작자를 소개하고 재미있는 유머토픽을 통해 이용자들이 공통된관심사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웹툰작가, 시인, 개그작가 뿐 아니라 다양한 UCC 창작자들도 자신의 이름을 건 콘텐츠를 자유롭게 공유 할 수 있다. 순수창작물과 그렇지 않은 것은 별도의 마크로 구분된다. 

 대화체로 키워드를 검색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 창작자가 만든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해시태그를 응용했다. #헉, #맙소사, #으리 등 유행어나 신조어로 검색이 가능하기 때문에 모바일메신저 또는 블로그글을 쓰는 사람들이 적절한 웃짤을 손쉽게 찾는 것이 가능해졌다. 

 플랫폼 콘텐츠로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에 퍼니버섯은 사용자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무분별한 광고는 지양한다는 방침. 창작자의 인기를 통해 얻은 광고수익에 대해 적정한 수익쉐어를 할 계획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SNS 자체가 활성화되야 하고 내부에서 이에 대한 의식이 형성돼 있어야 할 것 같다. 팬덤이 형성된 작가에게 대중이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수익모델을 적용할 계획이다. 구글플레이에서 '퍼니버섯'을 검색하면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고 웹으로도 접속이 가능하다. 12월말에는 애플 앱스토어에도 출시할 계획이다.

홍 대표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대우받고 이들이 정당한 권리와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궁극적으로 콘텐츠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유머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SNS에 그치지 않는다. 검색 엔진으로 연결해 언제 어디서나 유머콘텐츠를 쉽게 찾을 수 있고 이를 공유하게끔 할 계획이다. 홍 대표는 "유머콘텐츠 창작자의 권리가 보장되고 창의적인 유머작가가 발굴될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싶었다”며 “불펌의 악순환을 끊고 공유가치를 통해 창작자가 새로운 기회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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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봤을 때부터 그는 언젠가 다시 창업에 나설 인물처럼 보였다. 신념이 있고, 자신의 생각이 뚜렷한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는 당시 공동 창업을 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뭔가에 목말라 있는 듯했다. 공동 창업을 했던 회사가 온통 풍파에 휩싸이면서 그와는 한동안 연락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그는 다시 나타났다. 좀 더 홀가분한 모습으로, 하지만 여전히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비데이즈 유범령 대표다.

◆정수환을 만나 인생이 바뀌었다

학생 유범령은 국민대학교에 입학했다가 미국 학교에 도전했다. 미국 사립 명문대인 코넬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경제학과 통계학을 배웠다. 국내 대학에 다니다가 외국 대학으로의 진학을 결정하는 것은 본인의 인생에서 엄청난 결단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 대학이 유명대학이라는 이유 뿐 아니라 완전히 다른 문화 속에서 온갖 인종들, 다양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섞여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게 그에겐 더 소중한 기회가 됐다고 한다.

그가 사업가의 길을 가는 것은 코넬이 제공해주진 않았다. 당초 그는 로스쿨에 진학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로스쿨에 가기 위해 한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만난 정수환이 그의 인생 진로를 바꿔놨다. 유범령과 정수환을 비롯해 또래의 대학생들은 청년과 미래라는 사조직(?)을 결성하기도 했다.

학비 마련을 위해 유범령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도 두 사람은 자주 봤다. 그리고 유범령이 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 진학 등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정수환이 제안을 했다. “창업 같이 합시다!”

IT창업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던 그의 인생에 창업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얼마쯤은 친구의 아이디어와 열정에 끌려서 얼마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 시작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 그의 행적을 보면 코넬대학 시절 어떤 동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해외 시장을 무대로 비즈니스를 하고픈 꿈 같은 것 말이다.

앱디스코의 급성장, 그리고...

두 사람이 시작한 회사는 앱디스코. 앱디스코의 사업 모델과 초기 창업 스토리는 이 코너에서도 설명한 바 있다.

정수환, 유범령 등이 2011년 7월 설립한 앱디스코의 주력 서비스는 애드라떼. 광고를 보면 커피 한 잔이 나온다는 컨셉트로 시작된 서비스다. 정수환 대표는 당시 불과 한 학기 남은 학교(고려대)를 그만두고 사업에 ‘올인’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다.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사업에 목숨을 걸었다고 한다.

처음 애드라떼의 경쟁력은 영업이었다. 어차피 영업을 통해 광고를 따내야 했고 다행히 이들은 이 분야에 경재력이 있었다. 젊었고, 뭐든 해보겠다는 의지가 충만했으며, 마침 시장이 매우 초기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애드라떼는 광고주들이 올린 광고를 볼 수 있는 앱이라고 보면 된다.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기 때문에 단순 광고는 아니었다. 광고를 열심히 보면 적립금이 쌓였다. 친구를 초대하면 500원씩 현금이 생겼다. 이것으로 진짜 커피를 사먹을 수 있었다. 이런 보상 요인 때문에 애드라떼는 급성장했다.

물론 여기엔 어두운 측면도 있었다. 보상을 노린 사용자들이 급증하면 단기 자금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하나하나는 푼돈이지만 모이면 큰 돈이 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어려움에 빠질 때도 있었지만 이들은 부지런히 자금을 확보했다. KT에서 투자도 유치했다. 물론 나중에 KT로부터 받은 이 투자로 인해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KT와 관련된 수사가 마무리되고 관련성이 없음이 입증된 뒤 그는 앱디스코를 나왔다. 타이밍이 공교롭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는 본래 계획했던 일이었다고 한다. “처음엔 1년만 같이 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점점 늘어나 3년이 됐죠. 3년째가 되면서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서 준비를 했죠. 때가 돼서 나온 거에요.”

◆광고 시장에 아직 할 게 많다!

일단 나왔지만 그는 당장 진로를 정하진 않았다고 했다.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광고 시장에 대한 미련이 아직 있었다. 어찌보면 그가 앱디스코에서 했던 광고 상품은 틈새시장이었다. 그는 모바일 시장에 더 큰 기회가 있다고 믿었고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구체화하고 싶었다.

그가 애드라떼를 서비스하면서 만난 수많은 앱 개발사들은 모두 수익모델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광고를 탑재했고 많은 광고상품들, 모바일 광고대행사와 미디어렙 등이 이들을 위한 상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다운로드 수가 많고 이용자 수가 많은 상위 10%의 스마트폰앱은 이런 형식의 모바일 광고를 하지 않는다는 걸 유 대표는 알게 됐다. 왜? 앱이 지저분해지기 때문이다. 앱이 지저분해지면 사용자가 떠나고 사용자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상위 10%의 앱들은 바라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이것 말고도 다른 수익모델이 있기에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 대표는 이런 최상위 앱을 대상으로 한 광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를 ‘유니클로가 아니라 테일러메이드 양복같은 상품’이라고 표현했다. 월 평균 사용자수(MAU)가 최소 10만 이상 되는 100개 앱을 고객사로 모시는 것. 내년까지. 이게 그가 정한 구체적인 목표였다. 영업력은 검증됐고 업계가 돌아가는 구조는 이미 앱디스코 시절에 다 파악했다.

앱디스코 시절에 그가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개발력의 중요성. 처음부터 해외 시장 진출, 글로벌 서비스 등을 염두에 두고 통합 서비스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에 필요한 개발인력을 갖춰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번엔 처음부터 개발력을 갖추는 데 총력을 다했다고 한다.

2014년 7월, 그는 이런 생각을 구체화하는 모비데이즈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창업을 하자마자 그의 사업모델은 쟁쟁한 인물들의 인정을 받았다. 프라이머의 이택경 대표, 퓨처플레이 류중희 대표, YJM엔터테인먼트 민용재 대표, 다음카카오의 조민식 사외이사 등이 엔젤투자자로 투자를 한 것이다.

모비데이즈는 ‘국내 최초 모바일 전문 마케팅 기업’을 모토로 미디어 렙, 모바일 게임 마케팅, 에드 네트워크, 글로벌 모바일 광고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외 20개국 100여개이상의 광고대행사, 애드네트워크, Ad Exchange, SSP와 협업하는 광고 플랫폼 ‘모비 더블유(Mobi W)’를 앞세워 글로벌 비즈니스를 활발하게 계획하고 있다.

“옛날로 치면, 대우정신? 그런 게 저한테는 좀 있는 것 같아요. 국내 시장은 너무 좁아요. 해외로 가야죠. 할 게 정말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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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다음, 넥슨 출신들이 창업을 하는 사례를 이 코너에서 종종 소개했었다. 실제로 한국의 대표적인 인터넷기업으로 성장한 이들 기업에서 실력을 쌓고 나온 젊은이들이 창업에 도전하는 것은 한국 벤처 역사의 중요한 맥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새로운 강자들이 나타나면서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출신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카카오, 티몬, 쿠팡, 선데이토즈 등 성공한 신흥 벤처기업에서 경험을 축적한 이들이 그들의 첫 창업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핀스팟은 그런 사례다. 대체로 이런 창업가들은 매우 단단하다. 비록 첫 창업이지만 확실한 자신의 분야가 있고 문제의식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그들이 성공한 벤처기업에서 생활하는 것을 마다하고 뛰어나온 것일 게다.

◆형의 권유로 티몬에 입사

정원준 대표는 중앙대학교 사회체육학부 04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그가 전공으로 한 것은 스포츠산업 분야. 스타트업 창업가 중 그는 전공으로만 따지면 비교적 특이한 편에 속한다. 흔히 생각하는 그런 스포츠학과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는 운동을 두루 잘했다.

당초에 그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직업을 찾으려고 했다. 재학 중에 수상스키 강사 자격증도 땄고, 배 운전면허를 딴 것도 그 분야에서 나름 길을 찾으려는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포츠레저 관련된 일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이 과정에서 국내에서 이 분야가 아직 미진하다는 걸 느꼈다. “이런 분야에서 자리를 잡기엔 국내 인프라가 너무 취약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기업체에 취직을 해서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재학중 KT&G 등에서 인턴도 해 보고 기업 근무 경험을 쌓던 그는 어느 날 친형으로부터 놀라운 말을 듣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하던 일을 전부 그만두고 합류하고 싶은 그런 회사가 있거든? 거기 네가 지원해보면 어떨까? ”

형은 대기업에 취직해 속칭 ‘잘나가고’ 있었다. 그런 형이 하는 말이니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형이 말했던 회사가 티몬(티켓몬스터). 당시 티몬은 신현성 사장을 비롯한 5명의 창업멤버가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2010년.

스물여섯이었던 정원준 대표는 티몬에 지원해 입사했다. 형의 말을 듣고 입사를 결정한 것도 놀랍지만 막상 들어간 뒤로는 그 역시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만약 티몬이 아니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티몬은 그의 이후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원준 대표(앞줄 왼쪽)와 핀스팟 창업 멤버들>

◆성공한 창업가들을 보며 꿈을 키우다

티몬에 들어가서 그가 한 것은 지역확장 업무. 다른 쇼핑업체와의 제휴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가 입사해서 일했던 2010년에서 2013년의 시기는 티몬이 한국의 대표적인 소셜커머스 회사로서 급성장하던 시기. 이 시기에 일하면서 엄청나게 성장하는 이 벤처기업의 성장통을 함께 겪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에게 자극이 됐던 것은 그와 비슷한 또래였던 티몬의 창업가들의 행보와 회사에서 만나 함께 일했던 수많은 동료들의 행적이었다.

“티몬 출신들 중에 나가서 창업을 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 가운데는 물론 잘 안된 경우도 있지만 자리를 잡고 꾸준히 사업을 하는 사람도 많았죠.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창업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거죠.”

그는 3년 가까이 티몬에서 일을 하면서 얻게 된 경험에서 길을 찾았다. 한 사람의 일생에는 돌잔치를 비롯해 매년 돌아오는 생일 파티, 졸업, 결혼, 각종 축하 이벤트 등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게 된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장소문제, 방법 문제 등으로 똑같은 고민을 하면서도 개선되는 게 별로 없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주면 사업이 충분히 될 것이라 생각했다.

2013년 여름 티몬에서 나와 브라이니클이라는 회사에서 일을 하기도 한 그는 올 6월 자신의 이런 생각을 구체화하는 핀스팟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핀스팟은 pin과 spot의 합성어로 ‘공간을 콕 찜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공간커머스 넘버1 된다

그에게서 공간커머스라는 말을 들었을 땐 좀 생소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정 대표가 말하는 공간커머스를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다. 다만 그런 말을 굳이 붙이지 않았을 뿐이다. 티몬이나 쿠팡, 위메프와 같은 소셜커머스업체들이 처음에 식당 할인쿠폰으로 시작했는데 이 역시 넓게 보면 식당의 한 자리를 돈을 내고 빌리는 것과 유사하다. 한 자리를 빌리느냐 전체를 빌리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공간이 반드시 식당이나 호텔 방, 건물 사무실 등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나 헬리콥터, 배 등 운송수단도 그 안에서 뭔가 이벤트를 하려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공간일 뿐이다.

국내 최초, 최대의 공간커머스를 지향하는 핀스팟은 이름에 걸맞게 이런 모든 공간을 다 빌려주겠다는 야심찬 사업계획을 갖고 출발했다. 쉽고 편하게 빌리고 싶은 공간을 검색하고 예약한 뒤 결제까지 할 수 있게 해준다. 힘들게 포털 사이트에서 돌잔치․회갑연 장소, 100일 기념 레스토랑, 세미나 장소, 학회 모임 장소 등을 찾아 헤메지 말고 핀스팟에 들어오면 원샷에 다 해결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미 기존에 공간을 빌려주고 있는 업체들과 컨택해 이들의 DB를 구축하는 게 가장 급선무. 공간을 빌려주고 있는 수많은 업체 중 양질의 업체들로 DB를 쌓는 것도 중요하다. 초기 서비스 안착을 위해 좋은 평가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100개의 공간을 확보했다. 서울에서만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조만간 수도권과 주요 광역시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확장해나간다는 계획이다.

그가 서비스 설명을 위해 사이트 화면을 보여주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예약 및 결제가 됐다는 알림이 왔다. 11월 5일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매일 10건 이상 결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핀스팟을 시작하면서 정 대표는 일본의 space market 등 유사 서비스를 알아봤다고 한다. 하지만 다양한 목적의 공간을 빌려주는 서비스는 해외에서도 드물다는 게 그의 설명.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공간대여업체들을 모바일과 온라인으로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보면, ‘배달의 민족 공간판’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정 대표는 공간커머스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이렇게 표현했다. “같은 공간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미팅을 하는 방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파티장이 될 수도 있으며, 또 회의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냥 기존의 공간 대여업체들을 편하게 찾고 예약하게 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껏 찾지 못했던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를 발견해 업체와 고객들에게 제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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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느덧 점점 잊혀진 서비스가 되고 있지만 1990년대 말 시작돼 2000년대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프리챌’(http://www.freechal.com)이라는 사이트가 있었다. 이 사이트를 만든 전제완 (주)자유와도전 사장은 삼성그룹에서 일하다가 회사를 뛰쳐나와 벤처기업을 차려 대박의 꿈을 이뤄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주금가장납입 사건으로 전 사장이 긴급체포 된 후 프리챌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전제완 사장 역시 프리챌의 쇠락과 함께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다. 결국 프리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재창업에 도전했다. 하지만 과감한 투자와 공격적인 경영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했다. 두 번의 실패 이후 사라질 것 같았던 그는, 하지만 돌아왔다. 그리고 보란 듯이 투자를 유치하고 다시 한번 재기를 꿈꾸고 있다. 그는 이번에 우뚝 설 수 있을까. 사실상 세 번째 창업이자 네 번째 내놓는 서비스를 들고 전제완 사장이 다시 돌아왔다.

◆자금난 인력난에 고전한 유아짱

전제완 사장의 이야기는 블로그에서 몇 차례 소개한 적이 있기에 프리챌 시절의 이야기는 그만두고 유아짱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게 좋을 것 같다. 그가 유아짱이라는 회사 설립 준비에 나선 것은 2008년이었지만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것은 2010년이었다. 그리고 2011년 들어 짱라이브 선보였다. 짱라이브는 서비스 오픈 1년여만에 200만명이 넘는 사용자를 확보하는 등 순항했다.

초기에는 블로그 등 인터넷에서 개인 방송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서비스로 출발했지만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스마트폰용 영상SNS로 발전했다. 주로 사진이나 텍스트, 동영상 등을 올려놓고 댓글을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다른 SNS와 달리 짱라이브는 앱을 통해 서비스를 했고 사람들이 동영상을 즉석에서 찍어 올리고 동영상을 보면서 채팅을 할 수 있다는 차별점이 있었다.

앱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실시간 방송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 사용자들이 많았다. 이들 중에는 열혈 이용자들이 제법 있었다.

짱라이브 서비스의 핵심은 안정성이었다. 서비스 자체의 경쟁력이 동영상을 기반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었기 때문에 동영상 서비스가 끊기지 않고 잘 돌아가야 했다. 물론 사람들이 이용하기 쉬운 UI(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유려한 디자인 등도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데 짱라이브 서비스는 안정성에서 종종 문제가 발생했다. 동영상 재생이 끊기거나 에러가 발생하는 경우가 잦았다. UI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든 구조였다. 그러다보니 초기 열혈 이용자를 중심으로 사용자가 늘었으나 어느 정도 수준에서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동영상에서 에러가 자꾸 나면서 회사 차원에서 공격적으로 유저 수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을 전개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었다. 서버 차원의 투자를 단행해 안정성을 높이고 실력있는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영입해야 했다. 2011년말까지는 이런 작업이 순조롭진 않았어도 조금씩 이뤄졌었다. 전 사장은 다섯 군데의 투자회사로부터 13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2012년 들어 투자가 뚝 끊겼다. 투자회사들이 인터넷 회사에 투자하는 금액 규모상 더 이상의 투자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게다가 수익모델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도 보이질 않는 상태였다.

자금 유입이 중단되면서 회사는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2012년 3월에는 KT가 회선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다. 잠깐이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사용자들이 이탈을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직원들 월급을 주기 힘든 상황까지 몰렸다. 자금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전 사장은 결국 2012년 9월 12일 오후 6시부터 짱라이브 서비스를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공지에서 “2008년 10월1일 창업 이후,지난 4년간 글로벌 서비스를 목표로 영상SNS를 개발해 왔습니다. 척박한 벤처투자 환경 속에서도 5개의 국내 기관투자자가 130억원을 투자해줘서 220만명이 사용하는 국내 유일의 SNS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3개월간 필요한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만, 자금 조달을 마무리하지 못하였고 KT와 LG 측 회선사용료 미납으로 인해 더 이상 서비스 유지가 어렵게 되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전 사장은 회사 공개 매각도 추진했다. 하지만 적절한 인수 희망자를 찾기도 힘들었고 직원들이 모두 떠난 상태에서 회사는 사실상 폐업을 했다. 전 사장은 “자금난도 어려웠지만 인재를 구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에어라이브로 다시 시작하다

과거 프리챌의 실패도 겪었던 그였지만 유아짱은 더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창업멤버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났고 오래 함께 일했던 직원들도 잃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희망의 끊을 놓지 않았다. 프리챌 때에 비해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엄청난 채무를 뒤집어쓰진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다시 한번 줄기차게 사업의 기회를 모색했다. 회사는 사실상 공중분해됐지만 서비스는 아직 살아 있었다. 다만 동면상태에 있을 뿐이었다. 잠에서 깨우려면 돈이 필요했다. 좀처럼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투자자들의 문은 2014년 들어서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2014년 5월 상장사인 키스톤글로벌에서 3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짱라이브에는 대대적인 변화를 줬다. 우선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 투자를 받는 것으로 했다. 짱라이브는 기능을 업그레이드하고 디자인을 혁신한 뒤 에어라이브로 개편했다. 지배구조에도 변화를 가했다. 에어(Aire)라는 법인을 이미 1월 미국에 설립했다. 에어는 기존 유아짱의 지분 100%를 갖는 모회사다. 유아짱은 사명을 에어라이브코리아로 변경했다. 전 사장은 에어의 최대주주가 됐다.

에어라이브코리아는 10월 15일 전세계 어디서나 채팅과 동시에 화상대화를 할 수 있는 '페이스채팅(Facechat)' 기능이 탑재된 모바일 앱 '에어라이브(Airelive)' 를 출시했다.

'에어라이브'는 글이나 사진, 영상 컨텐츠를 모바일과 웹을 통해 확산시킬 수 있는 소셜 기반의 멀티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한국어와 영어, 일어버전으로 출시됐으며 특히 여러 명과 함께 화상대화를 할 수 있는 '페이스채팅' 기능이 가장 눈에 띄는 서비스다.

'페이스채팅'은 다른 메신저 서비스와 같이 채팅의 기본 기능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화상대화가 가능하다. 실시간으로 최대 4인이 동시에 얼굴을 보며 음성대화 및 채팅이 가능하고, 화상대화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4인의 영상통화를 보고 들으며 채팅창에서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기존 짱라이브의 기능도 그대로 구현했다. 자신의 일상을 모바일로 촬영해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라이브 방송 기능은 기본이다. 아바타샵에선 유명 연예인이나 캐릭터로 제작된 다양한 무료 아바타를 다운받을 수 있다. 채팅이나 타임라인, 내 홈피 등에서 자신의 감성을 아바타로 표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친구들에게 보낼 수 있는 영상쪽지 기능과 내 폰에 있는 사진으로 멋진 효과와 음악을 삽입해 사진영상을 만들 수 있는 기능, 10초간 짧은 영상을 나눠 찍어 타임라인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10초 영상 등 다양한 영상관련 기능들도 포함됐다.

그는 화상 대화 중 영상이 끊기지 않도록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데 유아짱 시절을 포함해 5년이 넘는 시간과 2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 부었다. 에어라이브는 한 마디로 유튜브와 아프리카TV,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의 기능이 모두 포함된 복합 SNS인 셈이다. 채팅이나 사진 전송은 물론이고 개인 모바일 방송, 화상 채팅 등도 가능하다. 타임라인 기능이 있어 친구들의 소식도 알 수 있다.

에어라이브는 그가 꿈꿨던 모든 기능을 담았다. 프리챌 시절부터 꿈 꿔왔던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플랫폼의 완성체가 드디어 에어라이브에서 구현된 것이다. 미국 투자를 추진하고 있는 그는 미국 투자회사의 자금을 받아 글로벌 서비스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모든 것을 다 잃고도 다시 시작한 그가 이번에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신용마저도 잃었던 그는 진짜 맨주먹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그가 겪었을 고통과 외로움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또한 그 못지않게 괴로웠을 창업멤버들과 직원들의 힘든 나날들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어찌 보면 그는 ‘자유와 도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삼성그룹을 뛰쳐나와 맨손으로 첫 창업에 도전했던 1999년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 심정인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불가능했던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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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비즈니스의 불편함을 온라인을 통해 해결한다. 확실히 요즘의 트렌드일 뿐 아니라 그동안 성공을 거뒀던 많은 비즈니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세탁은 어떨까? 지금 일상 생활에서 이용하고 있는 세탁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는가? 편리하고, 품질에 만족하며, 언제든 원할 때 쓸 수 있는가? 적절한 가격에?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번에 소개하는 이 회사에 대한 반응이 달라질 것이다.

◆취업 준비하다 창업 꿈 생겨

이번에 소개하는 워시앱코리아 임수일 대표는 아직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이다.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09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창업이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올 상반기까지도 취업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랬던 그가 창업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그는 나름대로 철저하게 취업을 위한 준비를 해 왔다.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중국어를 익히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2년 동안 중국 길림대에서 어학연수, 교환학생 등으로 지내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2013년과 2014년 상반기는 착실하게 취업 준비를 했다. 그런데 자기소개서도 쓰고 여기저기 원서도 내면서 그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건 내가 원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취업 준비 과정이 너무 힘들었나요.”

“아뇨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구요, 저는 제가 어떤 일을 한번 해보고 싶다. 이런 식으로 자기소개서도 쓰고 그런 식으로 면접도 준비하고 그런데 기업들은 그런 인재를 원하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회사에서 원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갖고 그런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 것 같았어요.”

흔히들 말하는 좋은 회사에 취업을 해도 별로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런 예감이 들면서부터 그는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창업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불현듯 찾아온,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길이었다.

<워시앱코리아 창업팀이 역삼동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세탁물 수거 및 배달을 위해 사용하는 전용 오토바이에 앉아 있는 이가 임수일 대표.>

◆생활 속의 창업 아이디어

2013년 10월, 그는 모건스탠리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연말까지 하고 올초에는 딜로이트에서 인턴생활을 했다. 5시 30분에 출근해서 10시까지 일하는, 매일같이 똑같은 일정이 반복됐다. 혼자 살고 있었던 그에게 힘들었던 점은 식사도, 문화생활도 아닌 세탁문제였다고 한다. “주변에서도 비슷한 고통을 토로하고 있더라구요. 너무 일찍 나가서 너무 늦게 들어오니 빨래할 시간이 없는 거에요. 그런데 주말에는 세탁소가 쉬는 경우도 많죠.”

세탁 분야에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면 어떨까 하는 게 그의 첫 생각. 그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찾아봤다고 한다. “미국에서 Washio라는 회사가 크게 성공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LA에서 시작했는데 빠른 시간에 자리를 잡았더군요.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한 게 올 6월. 불과 4개월전이다. 같이 창업을 할 만한 사람은? 당장은 없었다. 그래도 마음을 굳히자 몸을 빨리 움직였다고 한다. 우선 그는 시장 조사를 해 봤다. “국내 세탁소가 3만2000개인데 시장 규모는 1조5000억원 정도 됩니다. 가장 최근의 2011년 기준 통계자료에요. 그런데 미국은 6조원 시장에 3만5000개의 세탁소가 있거든요. 즉 한국 세탁소들이 훨씬 더 영세하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영세할까. 여러 가지 경쟁이 가능한 이 시장에서 오로지 가격 경쟁만 벌어졌기 때문이란 게 임 대표의 분석. 가격 경쟁에서 밀린 동네 세탁소들이 어려움에 빠지게 됐다는 것. 즉 영세화가 가속화됐다는 것이다. “크린토피아가 공격적으로 영업을 확대하면서 주로 가격 차원의 경쟁이 주를 이뤘습니다. 물론 가격 경쟁도 중요하죠. 하지만 가격만 따라간다고 소비자들이 만족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그는 최근 고급 의류, 기능성 의류 등이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이 품질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고 판단했다. 즉 세탁의 질을 높이면서 가격 면에서도 합리적으로 책정하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그러면 그는 또 하나의 세탁소를 차리려는 것일까. 세탁 체인점을 차리는 게 그의 목적일까. 아니다. 그가 찾은 시장은 세탁의 수거와 배달. “기존 세탁업소들은 세탁물의 수거와 배달이 본업이 아니에요. 세탁이 본업이고 이를 위해 수거와 배달을 하는 거죠. 즉 수거와 배달이 소비자 편의에 맞춰져 있질 않습니다. 세탁 중심으로 배달과 수거 시스템이 짜여져 있는 거죠.”

즉 그가 하려는 것은 세탁물의 수거와 배달을 전문적으로 하겠다는 것. 약간의 수수료만 받고 세탁업소들과 계약을 체결해 이 업소들은 이전처럼 세탁업무를 하고 자신은 세탁 주문과 수거, 배달을 하겠다는 것이다. 아침 10부터 밤 12시까지는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세탁물을 주문하고 완성된 의류를 받아갈 수 있다.

◆일단, 크린토피아를 넘어선다

그는 이런 생각에 올 8월18일에 회사를 설립하고 한달여가 지난 9월23일, '크린바스켓' 서비스를 출시했다. 회사 이름은 워시앱코리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세탁과 관련된 사업이 본업이고 이를 '크린바스켓' 앱을 통해 서비스하는 것이다.

가격 투명성도 워시앱코리아가 내세운 정책. 옷의 종류와 옷감에 따라 세탁비가 달라지고 이것이 모두 공개돼 있다. 바가지를 쓸 염려가 없다.

직접 세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설비투자가 대단히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업소와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는 품질을 맞추기 위해 특급 호텔에 납품을 할 정도의 세탁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우선 서초구와 강남구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동네 세탁소보다는 가격을 싸게 한다는 것. 물론 저가형 세탁업체인 크린토피아보다는 비싸다. 동네세탁소보다는 싸면서 품질은 크린토피아보다 우월하다. 이게 크린바스켓이 내세운 차별화. 그리고 소비자들의 편의를 크게 높이겠다는 것. 업체 입장에서는 가격이 다소 낮아지더라도 이로 인해 수거 배달이 원활해지면서 고객이 크게 늘어나 수지를 맞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처음 하는 사업이다보니 시행착오가 없을 리 없다. 우선 그는 개발자 출신이 아니다. 길림대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과 함께 창업을 했는데 그 역시 중국어와 무역 전공자라서 개발자는 아니다. 이들은 그래서 처음에 앱 개발을 외주를 맡겼다. 그런데 그는 이게 자신의 착각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서비스가 중심인 회사라서 개발은 외주를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군요. 개발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서비스를 하면 할수록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사업이 확장될수록 수거와 배달을 위해 수많은 직원들이 필요해지면서 수익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1조5000억원짜리 세탁시장이라면 시장이 작다고는 할 수 없지만 또 크다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얼마나 시장을 차지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도 그는 역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름의 해답이 있었다. “사업을 하기 전 ‘부탁해’나 ‘해주세요’와 같은 서비스를 알아봤습니다. 이런 곳이 어떻게 운영되느지는 본 거죠. 그랬더니 충분히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부 업체에서 세탁 관련 서비스도 배달과 수거를 해 주고 있었지만 이 분야의 전문성이 없어서 비용이 매우 많이 들고 소비자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구요.”

시장도 그는 추가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미국은 물빨래 중심, 한국은 드라이크리닝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있지만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점점 물빨래를 맡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 인구가 많고 공기질이 나빠 빨래 수요가 많은 중국 시장에서 이 모델일 통할 것이란 자신감도 있었다. “우선은 크린토피아를 국내에서 이겨야죠.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확장돼가는 세탁 시장을 선점하는 겁니다. 물빨래 뿐 아니라 해외 시장도 공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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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례허식, 예식 전 과정에 만연해 있는 상술, 불투명한 가격 등 한국 사회의 예식 문화를 둘러싸고 숱한 비판과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것은 지극히 한정된 시간에, 제한적인 정보만을 갖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하는 구매자들이 처한 상황의 특수성 때문이다. 시장도 이런 구매자의 특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이들의 약점을 이용한 상품으로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인생에 한번 뿐인, 그것도 생전에 하는 가장 큰 행사라는 점 때문에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 있어서 돈을 좀 쓰더라도, 아니 무리해서라도 폼나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소비자를 몰아간다. 실제로 그럴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도 말이다. 물론 여기엔 남들의 눈을 중요하시하는 사회적인 특성, 부모님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문화적인 배경 등도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수많은 요인이 복잡하게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것이 지금의 결혼예식 문화인데, 결국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은 결혼을 이미 했거나, 앞두고 있거나, 언젠가 해야 할 사람들이다. 즉, 전 국민이라고 할 수 있다. 과도한 결혼식 비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불만족은 가뜩이나 결혼해서 살 집을 마련할 비용도 없는 젊은이들에게 더 큰 실망감과 좌절을 줄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이번 글은 좀 무겁게 시작했다. 어떤 사회적 문제이든 문제를 직시하고 깊이 들어가자면 분위기가 어두워지기 마련이지만 결혼식 문제는 더욱 그렇다. 모두가 알면서도 별로 해결의 기미가 안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판을 바꿔보겠다고 한 벤처기업이 나섰다. 웨딩바이미 선현국 대표다.

◆잃을 게 없을 때 시작하자

선현국 대표는 웨딩 산업이나 결혼식과 관련된 어떤 비즈니스에도 종사한 적이 없다. 이것이 그가 웨딩 산업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일을 풀어나가는데 장점이 될까, 단점이 될까.

광운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학생 선현국은 애시당초 사업가를 꿈꾸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전자공학과를 간 것도 취직이 잘 된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 어찌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런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낸 그가 전자공학과에 들어가서 발견한 것은 자신의 다른 적성이었다. 프로그램을 짜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한 그는 전자공학과에 들어갔지만 그 이후의 진로는 일반적인 인문․사회대 전공 학생들의 길을 갔다.

군 복무를 마치고 3개월 간의 미국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대학에 복학해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기 시작할 때도 여전히 그에겐 취업이 화두였다. 공대생인데도 줄기차게 영업과 마케팅 분야만 지원하던 그는 운명처럼 휴맥스에 취직을 하게 됐다. 그가 맡은 일은 전략구매 파트였다. 여기서 굳이 ‘운명처럼’ 이라는 말을 쓴 것은 대한민국 벤처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휴맥스에 입사한 뒤 그가 처음으로 창업가의 세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휴맥스에 들어가서 구매 담당으로 일하면서 부품산업 분야의 창업가들을 많이 만나게 됐어요. 그때 처음으로 창업을 생각하게 됐죠.”

“그들이 좋아보였나 봅니다.”

“한편으론 힘들어보였지만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 같았어요. 자기 일을 하는 거죠.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그리고 그도 창업을 결심하게 된다. 더 늦기 전에 내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잃을 게 없을 때 시작하자는 마음도 당연히 있었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제안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잇따른 히트작, 그러나....

당시 휴맥스에서 함께 일하고 있던 한윤택은 하드웨어 업계에서 일하면서도 틈틈이 코딩을 짜곤 했던 개발자. 사실 그는 레인보우캘린더라는 앱을 개발해 히트를 치기도 했었다. 그가 2010년 앱 개발로 사업을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엔 아이폰 열풍이 전국을 강타했던 시절이었고 앱 개발만 해도 쏠쏠하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던 때였다. 한윤택은 앱 개발이 충분히 사업이 될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보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선현국이 기획을, 한윤택이 개발을 하면 훌륭하게 한 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처음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한윤택이 사촌동생 한아름을 합류시키면서 창업팀이 완성됐다. 한아름은 디자인문구 업체인 모노폴리에서 경력을 쌓은 디자이너였다. 2011년 5월 이들은 어뮤즈파크라는 사명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비록 세 명 뿐이었지만 이들의 저력은 놀라웠다. ‘데이앤뉴’를 시작으로 20여 개의 유틸리티와 엔터테인먼트 앱을 개발했고 대부분 순위권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2년10월에는 중소기업청과 KT가 주최하는 Go to global 앱 경진대회에 나가 수상했고 2012년 11월에는 KT아키텍트 3기 우수개발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KT에코노베이션센터에 입주도 했다.

2013년에는 사업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카카오톡이 야심차게 출시한 카카오톡채팅플러스에 드로잉톡 for Kakao로 입점을 하게 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 마이콘 for Kakao도 출시했다. 그해 말에는 베스트 앱에 선정되기도 했고 합쳐서 600만에 달하는 다운로드를 기록하기도 했다.

수많은 앱이 난무하는 앱 시장에서, 카카오톡이 아무리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사용자로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출시하는 모든 앱이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니다. 이 정도 인기를 끄는 앱을 연달아 만들었다는 것은 대중성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여기까지였다. 인기는 많이 끌었고 사람도 많이 모았지만 수익이 별로 나질 않았다. 즉 돈이 별로 안되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는 ‘유틸리티앱의 한계’라고 표현했다. “온라인에서도 유틸리티 앱은 공짜로 쓰죠. 대부분. 모바일에서도 그런 것 같아요. 온라인의 경험이 그대로 옮겨간 측면도 있구요.” 겉으로 보기엔 성공한 회사였는데 자금이 부족한 현상이 지속됐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도 마이콘과 드로잉톡이 무의미하진 않았다. 특히 마이콘 사용자들의 이용 패턴은 웨딩바이미의 모티브가 됐다. 당시 마이콘 사용자의 90% 가량이 여성이었는데 선 대표는 여성 사용자들이 앱 내 메리미라는 카테고리에 있는 스티커를 이용해 모바일 청첩장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연관 서비스를 떠올린 것이다. 물론 여기엔 본인이 결혼 준비를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는 과정에서 겪은 황당한 가격체계, 불편함 등도 작용했다.

웨딩서비스를 준비하기로 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기존 어뮤즈파크는 한윤택이 대표를 맡고 있었는데(개발 중심의 회사였기에) 웨딩 분야 사업을 준비하면서 사명도 웨딩바이미로 바꾸고 대표도 선현국이 맡기로 한 것이다. 업의 성격이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

◆레몬마켓 웨딩시장 바꾼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명확했다. 웨딩 시장이 너무나 소비자들에게 불리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거였다. 정보가 제한돼 있다 보니 남들이 하는 대로 하거나 업계 종사자들이 권하는대로 따라가기가 일쑤다. 당연히 비용이 올라간다. 소비자가 가격을 모르기 때문이다. 거품이 낀 것일 수도 있고 중간 과정이 복잡해지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또 비슷비슷한 결혼식만 많고 특별한 결혼식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정보, 특히 가격을 공개했다. 견적도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스스로 뽑아볼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호에 따라 결혼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상하고 스스로 상품을 구성할 수 있게 한 것이 웨딩바이미의 장점이자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스스로 이 모든 것을 구성하는 것이 불편하고 힘든 사람도 있다.

결혼식 과정의 거품을 제거할 수 있다는 장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고객의 능동성이 요구된다. 이런 능동성이 얼마나 발휘될지는 아직 미지수. 사람들이 무조건 싼 가격만 찾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변수다. 한번 하는 결혼식에서(그렇지 않은 사람도 요즘엔 많지만) 이왕이면 폼나게 돈 신경쓰지 않고 하려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이라는 가정도 이들의 사업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누구나 좋은 상품을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곳을 찾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들은 확신을 갖고 사업을 하고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시장이 사실상 고객 입장에서 한번만 경험하는 시장이라는 점이다. 반복 경험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만족한 고객이 다시 찾을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시장의 확장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래서 기본적인 수익모델, 즉 웨딩관련 업체 등을 연결해주고 여기서 수수료를 받거나 광고를 유치하는 모델 말고 그 밖의 수익모델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것을 찾아야 한다.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등 웨딩 관련 다른 분야로 접점을 넓히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이미 존재하는 웨딩컨설팅업체와 차별화하는 점도 다시 거론될 수 있을 것 같다.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가격이 더 저렴한 것은 큰 차별화가 되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시장에서 통할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불편함이 존재하고 소비자의 불만이 많은 시장에는 반드시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와 개혁은 누군가의 시도로 인해서 생겨날 수밖에 없다. 웨딩바이미의 시도가 그런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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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프라이머의 데모데이에 갔다가 베타테스트를 도와주는 솔루션을 기획한 팀의 발표를 들은 적이 있었다. 독특한 분야에 도전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들이 이후 이 서비스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들은 결국 처음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사업화하지는 못했다. 아니, 안했다고 하는 게 정확할 듯하다. 시행착오와 위기를 거쳐 이들은 좀 더 크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시장에 진출했다. 이번 주인공은 앤벗의 정현종 대표다.

◆삼성전자를 뛰쳐 나오다

공대생이지만 소설을 좋아한 대학생 정현종. 연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재학하면서 소설모임을 만들었다. 여기서 그는 4년 후배인 이한솔을 만나게 된다. 이한솔은 컴퓨터공학과. 물론 대학의 모든 모임, 동아리가 그렇듯이 이들이 정말로 항상 진득하게 소설만 봤을 리는 만무하다. 함께 학생다운 시간을 보낸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2010년 정현종은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LCD사업부 글로벌 운영팀에 입사해 기획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일단 대기업에, 그것도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갔지만 그는 막연하게나마 ‘언제가는 창업을 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도 그가 삼성에 들어갔던 이유는 일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 실제로 그랬을까?

그는 “무엇보다 큰 그림을 볼 수 있었던 게 소득”이라고 말했다. 특히 큰 조직이 굴러가는 원칙을 알 수 있었고 대기업에서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기고 비전을 수립하는 과정에 참여한 것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가 대기업에 들어가 생활하고 있는 동안 그의 친구들은 속속 창업에 나서고 있었다. 연세대 산업공학과, 컴퓨터공학과 선후배들이 창업에 뛰어드는 것을 보면서 그도 마음이 동했다. “나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그때부터 들더라구요. 그러면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그런데 현실화 가능성이 없는 게 많아서 선뜻 아이템을 결정하긴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그는 일을 저질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삼성에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2012년 1월이었다. 아이템도 정하지 않았고 함께 할 팀도 없는 상태였지만 그는 결심을 단행했다.

“너무 무모한 거 아닌가요? 삼성에 다니면서 아이템도 결정하고 사람도 구하고 주변 상황도 정리하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거 아니었나요?”

“아뇨. 전혀요. 삼성전자에 다니면서 전혀 개인 시간이 나질 않았어요.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고 그걸 다 하기엔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죠. 이대로 가다간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생각해서 일단 회사를 나왔어요.”

<앤벗 창업멤버들과 직원들. 맨 뒤 가운데 서 있는 이가 정현종 대표>

◆멤버 결성, 그리고 프라이머

회사를 나와서 그는 일단 닥치는 대로 각종 경진대회와 창업 관련 컨퍼런스 등을 다녔다. 경험도 쌓고, 아이디어도 얻고 사람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이주형을 만난 것이다.

경기대 경영학과 03학번 출신인 이주형은 매우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미국 가발회사에 취직한 그는 아프리카 가나 지사에 나가서 일하게 된다. 가나에서 2년 동안 현지인들, 극소수의 한국인들과 일한 그는 2년간의 생활을 마무리한 뒤에는 아프리카 각지를 돌면서 배낭여행을 했다. 보츠와나, 짐바브웨, 탄자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다녔다. 아프리카를 정처없이(?) 떠도는게 안가본 사람이라면 걱정을 할 법도 한데, 그는 가나에서 2년을 살아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한다.

2012년 6월 만난 두 사람은 포항 북구 창포동에 같은 아파트 위아래 층에 살고 있다는 기가막힌 인연을 발견하게 된다. 뭔가 있나보다 싶었을 것 같다. 어쨌든 때마침 이주형도 아프리카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창업을 준비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에게도 함께 창업을 모색하던 팀이 있었는데 정 대표와 만나 팀을 합치면서 둘만 남았고, 그 둘이 결국 팀이 됐다.

이 팀은 실력있는 개발자가 필요했다. 정 대표에게는 후배 이한솔이 있었다. 후배를 설득해 합류케 하면서 팀이 완성됐다. 2012년 말이었다.

이 와중에도 이들은 꾸준히 창업 아이템 발굴을 시도했다. 2012년 삼성SDS에서 하는 SGen 글로벌이라는 창업대회에 나가서 2위에 입상했고 프라이머 엔턴십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2013년 처음 구상한 이들의 아이템은 모바일앱 베타테스트를 도와주는 솔루션. “쉽게 말하면 어떤 서비스든지 베타테스트를 하고 싶은데 여건이 안되는 경우가 많쟎아요. 베타테스트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솔루션이었죠.”

솔루션 명은 베타캣. 그런데 2013년 프라이머의 인큐베이팅을 받으면서 일대 수정이 일어나게 된다. 프라이머의 지적은 2가지. 우선 시장이 너무 작다는 것. 그리고 너무 많은 영역을 커버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더 큰 시장이 있으면서 좀 더 집중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분야로의 피보팅이 필요했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모바일 앱 사용자 행동 분석 솔루션’이었다.

◆사용자 행동 분석 솔루션

이처럼 신속한 전환이 가능했던 것은 Adfresca라는 회사에 근무했던 이한솔 CTO의 경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 회사는 게임 사용자에 대한 분석툴을 제공하는 업체였다.

8월28일, 앤벗은 유저해빗(Userhabit)이라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사용자의 행동을 분석해주는 솔루션이다. 사용자의 행동을 분석하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 앱을 만든 사람들은 단순히 몇시 몇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앱을 방문했는지, 어떤 메뉴를 많이 썼는지, 언제 클릭률이 감소하는지 등의 정보만 알고 싶은게 아니다. 좀 더 자세히 사용자들의 행동 패턴을 알면 앱의 기획부터 디자인에까지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저해빗은 사용자들이 앱을 켜고 화면의 어디를 눌렀는지도 알 수 있고 페이지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경로 파악도 가능하다. 개인별로 사용패턴을 분석할 수도 있다. 소비자들이 화면을 잘못 터치하는 것까지 분석해준다.

즉 앱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단계 뿐 아니라 앱을 서비스하는 과정에서도 사용자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분석해서 이를 앱의 기능향상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데이터 분석과 더불어 사용자 의견에 대한 설문 기능도 결합돼 있어 사용자들이 특정 행동을 보이는 동기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앱의 효율성, 편의성 등을 높이려고 고민하는 모든 회사들에게 유용할 것 같다.

정 대표는 “앱의 종류가 많아질수록 치열한 경쟁 속에 사용자들의 행동패턴을 분석해 앱에 반영하려는 시도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해외 시장에서도 무리없이 통할 수 있는 모델인만큼 글로벌 서비스로 키워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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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우주(Woozoo)라는 셰어 하우스(Share house) 사업을 하고 있던 김정헌 대표는 그 새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발을 내딛었던 셰어 하우스 사업은 안착을 해 있었고 그는 인큐베이터로서, 저자로서, 창업가로서 다양한 일에 다시 도전하는 중이었다.

◆같이의 가치를 짓다

그는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2012년부터 그가 2년여 기간 동안 사업을 구상하고 멤버를 모으고 사업을 일궜던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다. 책 제목은 ‘같이의 가치를 짓다’. 그가 한 사업의 핵심을 제목에 고스란히 담았다. 프로젝트 옥, 우주 사업을 함께 했던 계현철, 이정호, 조성신, 박형수 등 창업멤버들과 함께 책을 엮었다.

지난해 초 그를 만났을 때 우주의 첫 셰어 하우스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그의 문제의식은 간단하지만 묵직했다. 꿈이 있는 사람들끼리 공간을 나눠서 같이 생활을 하자는 것. 공유경제의 일환이라고 가볍게 볼 수도 있지만 주거 문제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 기업 창업가다운 해법을 던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모든 것이 불확실했지만 그 뒤로 착실하게 사업은 진행됐다.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15개의 셰어 하우스가 나왔고 지금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처음 그의 창업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그의 생각이 난 마음에 들었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사업을 하고 싶다는 그의 생각, 그것을 위해 하나씩 준비해나가는 과정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아마 그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나에게 일일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으리라. 그가 쓴 책을 보면서 그런 어려움과 고난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기어코 해 내고야 마는 그 열정에 감탄하기도 했다.

젊은이들의 주거 문제는 사실 오늘날에는 개인들의 문제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제 점점 국가나 공공기관이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만큼 젊은 나이에 주거 문제에 대한 압박으로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운 문제에 나름의 해법을 던져보겠다고 나선 것이니 어찌 의미가 없을까.

그런데 그는 최근 회사 경영에서는 손을 떼고 새로운 것을 준비한다고 했다. 과거 함께 딜라이트라는 보청기 회사를 창업했던 김정현 대표가 우주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청년 김정헌은 다시 출발선에 섰다.

◆사회적 기업 인큐베이팅

사업이 순조롭게 되고 있는 가운데 왜 중단했을까.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불확실 가운데 뭔가를 처음 시작하는 것이 그의 적성에 보다 맞기 때문인 것 같다.

하여간 그는 그래서 현재 JP모건이 지원을 하고 희망제작소가 기획을 한 사회적 기업 스타트업 과정에서 멘토링 및 인큐베이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회적 경제 핵심인재 육성센터에서 자신의 경험을 전수해주고 방향을 잡아주고, 투자자들에게까지 연결해주는 게 그의 하는 일이다.

그는 과거 학생 시절에도 JP모건과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사회적 기업 동아리 넥스터스에서 소시지 프로젝트(Soci知 프로젝트)라는 것을 한 적이 있는데, 사회적 기업을 배우고 알아가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예전부터 JP모건이나 모건스탠리 UBS 등 글로벌 IB은행들이 사회적 기업 과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일종의 사회 공헌 사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해외에서는 일찌감치 그런 쪽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더군요.”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고 싶은 팀 중 이미 사업을 시작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팀 중 본격적으로 발전시킬 만한 그런 팀을 뽑는 게 1차 작업이다. 이미 현재 15개 창업팀을 발굴해서 컨설팅을 하고 있는 단계. 그에게 몇 가지 사례만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눈 뜨면 도착’이라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팀이 있어요. 서강대학교 학생들이 시작한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쉽게 말하면 학생들끼리 전세버스를 같이 빌리는 그런 서비스입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면 학교까지 통학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지역에 하는 학생들끼리 전세버스를 빌려서 타고 다닌다는 것. 예를 들어 일산이나 분당, 평촌, 판교, 용인, 수원, 남양주 등 수도권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신촌에 있는 학교까지 오려면 차를 여러번 갈아타거나 버스를 타고 와도 계속 서서 와야 해서 학교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기 일쑤다. 같은 지역에 사는 학생들끼리 매달 몇 만원 수준의 적은 금액만 내도 전세버스를 빌려서 차를 같이 타고 다닐 수 있다는 것. 이렇게 하면 차를 기다리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앨 뿐 아니라 계속 앉아서 갈 수 있어서 편리하다.

공실률 50%가 넘는 동네독서실의 남는 자리를 공유하는 서비스도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폐이어폰, 즉 한쪽이 들리지 않거나 못쓰게 된 이어폰을 기증을 받아서 이걸로 팔찌를 제작, 수익금을 청각장애인에게 보내는 보청기 등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는 사회적 기업도 15개 중 하나다.

사회적 기업을 컨설팅하거나 이와 관련해 인큐베이팅을 하는 곳은 제법 있다. 그가 하는 것의 차이점은 경험자가 한다는 것. 사회적 기업을 창업해 성과를 낸 창업가가 다른 사회적 기업 창업가에게 방향을 가르쳐주고 필요한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는 새로운 아이템을 창업을 하는 것도 여전히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 또 해봐야죠. 뭔가를 시작할 때 가슴이 뛰고 의욕이 생겨요.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창업의 형태로 해보겠다는 것. 그것을 계속 잡고 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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