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이라는 서비스가 시작됐을 때, 업계 안팎에서 정말 많은 우려가 제기됐던 기억이 난다. 남녀간의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서비스의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인데, 본래 목적과 관계없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불륜이 횡행한다던가 사기 또는 기타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만남을 악용한다는가 하는 것. 아주 자세히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성간의 만남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이는 사실 근거 없는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많은 만남 사이트들이 그런 부작용을 피해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인식때문에 부작용이 확대 재생산되기도 했고, 오해를 받기도 하는가 하면, 서비스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음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아마 이런 선입견과 싸워나가는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놀랍게도 이음은 이를 무척이나 잘 해 왔다. 이음은 어떻게 이를 극복했을까, 그리고 앞으론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을까. 궁금증을 갖고 박희은 대표를 만났다.

◆편견과 싸워나가다

이음의 서비스가 처음 출시된 것은 지난 2010년 5월. 당시 베타 서비스로 출발해 2010년 10월 유료화 모델을 바로 도입했다. 이음의 소개팅 서비스는 세계 시장에서도 이미 유료 모델이 검증된 서비스였기 때문에 일찌감치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이음을 처음 알게 된 건 서비스가 시작된 지 얼마 안된 2011년 1월. 당시 이음은 ‘안드로메다에서 내려온 이음신이 매력적인 지구 피플에게 매일 한 명의 인연을 선물해 준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매일 한 사람씩을 소개해주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소개의 주체가 중요한데, ‘이음신’이라는 이름의 회사의 매칭프로그램이 중책을 수행했다.

 그런데 처음엔 이 이음신을 제대로 구축하는 게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서비스를 오픈하기 전에만 그랬던 게 아니라 서비스를 오픈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개발자를 구하는게 힘들었어요. 구하고 난 다음엔 제가 개발을 잘 몰라서 서비스 일정을 짜고 개발을 진행하는 데 애로 사항이 많았죠. 서비스가 나온 다음에는 매칭 고도화 작업을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매칭 서비스가 사실 시스템적으로 되는 부분도 있지만 사용자 수가 어느 정도 늘어야 가능한 일이었거든요.” 

 사용자 수가 20만명을 넘어서면서부터 매칭 고도화 작업도 탄력을 받기 시작한 듯 하다. 사실 돈을 내고 소개팅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을 소개받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 매칭고도화 작업이라는 것은 단순히 ‘좋은 사람’을 소개해준다는 차원을 넘어 각각의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 현재 하고 있는 일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적합한 사람을 연결시켜줘야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회원 숫자의 증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회원 증가와 함께 고민도 커졌다. 그것은 이음이 자칫 빠질 수 있는 함정이기도 했고, 주위에서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잘못하면 음지 서비스가 될 수 있다는 것. 유료화를 하더라도 돈을 벌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돈을 벌면 오히려 음지화가 가속화될 수 있을 거라는 것. 이런 서비스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는 것. 우려이지만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지도 모르는 일.

 그래도 이음은 이런 우려를 극복해냈다. 여러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지만, 대표이사가 여자라는 점, 그리고 그 대표의 이미지가 우울한 서비스가 될 수 있다는 느낌과는 엄청나게 거리가 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음이 처음부터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를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서비스에 내재화했다는 점이었다. 프로필을 받을 때 진지하게 생각하고 제출하게끔 하고, 불륜 등 문제가 될 만한 부분에 대해선 단계별로 경고조치 등을 통해 예방을 했다.

◆월 매출 5억 돌파

서비스 구상 단계에서부터 밝고 건강한 이미지의 소개팅 서비스를 지향했고 이를 실제로 구현한 것이 중요했지만 박희은 대표가 여성이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포인트다.

 “대표가 여성이라는 점이 이 서비스가 여성의 마음을 잘 알아야한다는 점에서 플러스 효과가 분명히 있지 않았을까요.” 박 대표 본인의 분석도 그렇다.

 항상 남자 회원은 넘쳐났다. 반면 여성 회원들을 유치하기 위해선 공을 좀 들여야 했다. 소개팅이란 역시 이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묘한 변화도 감지된다. 

 “여전히 6 대 4의 비율로 남성 회원의 문의가 많죠. 그런데 요즘에 보면 남성들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뭐가 달라졌을까.”

 “뭐랄까. 훨씬 따지고 들어요. 남자들도 조건을 많이 따지고 더 상대방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것 같아요.”

 물론 그래도 여전히 남자 회원은 충분히 많다. 여성 회원의 원활한 확보는 이음의 계속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음의 원 매출은 어느 정도 될까. 월 5억원 정도 된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 박 대표를 만났을 때와 이 글을 쓰는 시점의 시차가 약간 있어 월 매출 5억원은 올초 기준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거의 대부분은 부분 유료화 아이템 수익이고, 최근에 광고가 들어오는 게 있어서 그 부분도 일부 수익모델로 잡혀있습니다.” 

 이음을 통해서 하루에 한명씩 소개를 받는 것은 따로 돈이 들지 않는다. 다만 소개를 받았을 때 상대가 맘에 들면 OK권을 구입해야 한다. 이걸 사는게 돈이 든다. 한번에 하나씩만 구입할 수도 있고 정기권을 구매해 기간동안 쓸 수도 있다. 

 현재 이음 서비스 이용자 수는 100만명. 회원 숫자다. 매일 15만명 가량이 이음을 쓰고 있다. 소개팅 서비스로는 굉장한 숫자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느새 서비스를 시작한 지 만 3년을 훌쩍 넘긴 이음 박희은 사장 입장에서는 성이 차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 시장이 얼마나 확대될 수 있을까요.”

 “지금 20대-30대 미혼남녀가 800만명입니다. 한국에만 그렇죠. 이 중 12.5%가 이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어요. 아직 갈 길이 멀죠.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음은 아직까지 큰 고비를 겪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성장 정체가 반복되는 경험은 했다. 그 와중에도 조금씩 실적이 개선될 수 있었던 것은 창업자인 박희은 대표와 김도연 이사가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줬기 때문 아닐까. “서비스를 시작할 때 김도연 이사는 수익모델을 반드시 함께 갖고 가야한다고 주장했죠. 저는 일단 서비스를 시작하고 사람들을 모으면서 수익모델을 개발해도 된다는 입장이었어요. 이밖에도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이 많았지만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보완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해외 진출 검토

박 대표에게 해외 시장 진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온라인 소개팅 시장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업체들이 하고 있는 사업이다. 한편으로는 경쟁을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지만, 그만큼 검증이 됐다는 점에서 아직 미개척 시장에 도전해볼만 할 것 같다.

 “당연히 생각이 있죠. 하지만 우선 국내에서 확실하게 BEP(수익분기점)를 넘어서고 싶어요.”

 “BEP에 아직 도달을 안 했나요?”

 “월단위로는 BEP를 넘은 적이 많죠. 하지만 아직은 좀 들쑥날쑥해요. 투자나 마케팅에 비용을 좀 쓰게 되면 안되는 때도 있구요. 그래서 고민을 사실 해요. 어떤게 먼저일까. 해외진출이 먼저인지, 국내에서 성장하고 난 다음에 해외로 나가는 게 맞는 것인지.”

 “해외로 나가게 되면 자금이 많이 필요할텐데요.”

 “그렇죠. 현재 이음의 시스템에선 대규모 투자는 필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당분간 현지에서 수익모델없이 버텨야할 가능성이 높구요. 초기 투자비가 많이 필요해 외부 투자 자금에 대한 필요성이 커질 수도 있겠죠.”

 “투자는 한 차례 받았었죠?”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하는 시점에 미래에셋으로부터 투자를 받았구요, 2011년 11월에 알토스와 슈프리마로부터 투자를 받았어요. 그 다음엔 투자를 받지 않았죠.” 

 이음이 결혼 시장에 진출할까. 이미 소개팅 시장에서 상당한 입지를 구축했는데, 결혼 시장으로 진출하는 게 그리 뜻밖의 일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상황. 하지만 박 대표는 “현재 결혼정보회사들이 하고 있는 그런 시장 영역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사실 결혼정보회사가 하는 시장이 사람 수로 보면 그리 크지 않습니다. 1위 업체의 회원 수가 3만명이 채 되질 않죠. 물론 하나하나의 가격이 고가이기는 하지만 저희는 완전히 그쪽으로는 가지 않을 겁니다. 그야말로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그런 분야가 아니라 글쎄요, 좀 더 쿨한 시장이라고 할까요? 물론 진지한 만남이어야하겠죠. 진지하지만 좀 더 쿨한 시장, 그게 저희의 그 다음 타깃입니다.”

 이런 박 대표의 생각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 최근 출시된 아임에잇(I AM 8) 서비스. 조건에 맞는 이성을 선별, 소개해준다. 아임에잇은 초대 방식으로 운영된다. 기존 회원에게 초대를 받거나 이음 홈페이지에서 초대 신청 후 승인을 받아야만 가입할 수 있다. 또 회원의 실제 만남 성공률이 낮을 경우 ‘에잇 큐레이터’를 파견, 직접 지원해 데이트를 성사시킨다. 소개 횟수에 제한이 없는 소셜데이팅의 성격과 전담 매니저가 직접 관리하는 결혼정보업체의 성격을 동시에 띤다. 박 대표는 “좀 더 진지한 만남을 원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아임에잇을 보면, 이음은 그냥 여러 만남을 이어주던 방식에서 좀 더 선별된 만남을 도와주고 개인의 이성관계를 컨설팅하는 분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임에잇이 이음의 시즌2의 완결된 모습은 아니겠지만, 하나의 단초는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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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소프트는 2011년 ‘전혀 새로운 지역정보’를 기치로 걸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그를 만났을 때가 2011년초. 어느새 3년이 훌쩍 지났다. 중소기업 나라이비즈니스에 오래 다닌 뒤 동료들을 모아 창업에 뛰어든 김성욱 도래소프트 대표는 의욕에 충만해 있었고, 자신이 갖고 있었던 아이디어에 얼마쯤 흥분해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스스로 기대하고 있었으리라. 그를 처음 만났던 시기는 2011년 초봄. 그가 야심차게 준비한 이츠타운이 출시된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쓰라린, 하지만 헛되지 않은 실패

3년여만에 다시 만난 그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츠타운은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왜 실패했을까. 이츠타운은 지역 정보 서비스가 수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한 서비스였다. 포털에서 검색을 하면 업소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이는 포털이 모든 것을 관리하는 닫힌 시스템이기 때문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개별업소들이 자기 매장의 정보를 관리하게끔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장 주인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위치기반 블로그 형태의 서비스를 기획했다.

 당시 그는 이 서비스를 웹과 앱 버전으로 모두 개발했다. 앱을 활용하면 업주 입장에서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매장 관리와 고객 관리가 모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있는 위치나 찾고 싶은 곳의 주변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비스는 잘 안됐다. “양쪽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게 정말 어렵더라구요.” 그가 실패의 원인을 곰곰이 되짚으면서 한 말이었다. 어느 요건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업주들은 소비자들이 많이 쓰면 앱에 입점을 하겠다고 하고, 소비자들은 매장이 많이 들어와야 앱을 쓰지 않겠냐고 하더라구요. 양쪽을 동시에 충족시키면서 영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매장과 고객 사이에서 양쪽의 요구사항을 다 충족해야 하는 상황. 결국 이츠타운은 다운로드 1만여건에 불과한 초라한 실적을 냈다. 서비스야 잘 안될 수도 있지만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중요하다. 

 “2012년 상반기는 정말 힘든 시기였죠.”

 “사업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요.”

 “왜 안했겠어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더라구요. 해보고 싶었던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자존심때문에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는 생각도 했구요.”

 그 와중에 함께 창업했던 3명 중 2명이 회사를 떠났다. 버텨내기 위해 그는 증자를 하면서 자신의 돈을 더 투입했다. 힘든 나날이 이어지는 와중에 2012년 6월, 그는 우연히 한국관광공사에서 진행하는 ‘창조관광사업 아이디어 공모전’ 공고를 보게 된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제가 원래 여행, 관광 이런 거에 관심이 많았고 예전부터 해보고 싶은 서비스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을 급하게 정리해서 공모전에 제출했죠.”

 그런데 이게 왠걸? 1000대 1의 경쟁을 뚫고 덜컥 우수상에 뽑혔다. 그런데 그에겐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었다. 6개월만에 서비스를 출시하는게 수상의 조건이었다. 알파 버전이라도 출시는 해야하기에 그는 서둘러 개발에 착수했다. 

◆사용자에게 충실한 서비스가 최우선

공모전에서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가 지금 회사의 주력 서비스인 ‘여행노트’다. 여행노트는 장소를 기반으로 여행스토리를 작성하고 공유하는 서비스. 여행을 가기 전 정보를 검색하는데 막상 쓸만한 여행 정보는 찾기 힘들다는 것에 착안한 그의 아이디어를 구현한 것이다. 

 우수상을 받으면서 부상으로 받은 상금 3000만원이 개발비가 됐다.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그가 개발에 임한 자세는 어땠을까. “딱 한가지 원칙만 세웠습니다. 세상의 어떤 서비스보다 여행 기록을 정말 편하게 남길 수 있는, 그런 서비스를 만들자구요. 그거 하나만 제대로 하자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첫번째 실패에서 배운 교훈이었다.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했던 경험. 그래서 ‘소비자에게 올인하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대중들, 즉 일반 사용자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면, 여행 서비스던, 영업매장이던 따라 올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당시엔 이런 것을 다 계산하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절박했기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

 무조건 직관적으로 가장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겠다고 하니 길이 보였다. 하지만 시간과 엄청난 노력도 또한 요구됐다. “제일 먼저 필요한 게 여행 장소 DB더라구요. 그런데 이걸 어디서 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어요. 누가 갖고 있는 정보든 현재의 상황과 맞지 않았죠. 그래서 가장 방대한 자료를 구한 뒤 일일이 해당 여행 정보를 확인하면서 DB를 구축했어요.”

 전 직원이 매달리고, 아르바이트생도 구해서 DB를 구축하는데만 6개월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필요하면 전시회에 가서 책자도 받아오고, 인터넷에서 자료 수집도 했다. 이 DB는 여행 기록을 남길 때 특정 장소에 가서 앱을 실행하면 근처 여행지가 뜨고 관련 여행정보가 정확하게 제공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미 없어진 정보가 남아 있거나 최신 정보가 등재돼 있지 않으면 서비스의 신뢰성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국내 여행지 3만5000곳의 DB를 구축할 수 있었다. DB가 구축되자 서비스 개발은 빨리 진행됐다. 2013년 3월 베타서비스를 시작하고 그해 6월 정식 서비스가 문을 열었다.

 여해노트는 사람들이 자신의 스타일대로 장소를 옮겨다니면서 편하게 사진을 올리고 간단한 글을 올릴 수 있게 구성됐다. 지도를 올리는 것은 물론 페이스북 등과의 공유 시스템으로 다른사람들의 의견을 보거나 쉽게 다른 이들의 여행기를 볼 수도 있다. 여행장소와 찍은 사진의 위치 정보를 앱에서 제공하는 지도에서 쉽게 표현할 수도 있다.

 서비스를 시작하고 한달여만에 2만명이 가입했다. 여행노트 서비스 한달만에 기존 이츠타운이 1년반동안 힘겹게 쌓았던 1만여 다운로드를 두배나 앞지른 것이다. 2월말 현재 여행노트의 다운로드 건수는 약 18만건. 매일 6000여명의 사용자가 여행노트에 접속해 여행기록을 남기고 있다. 

◆여행허브가 되고 싶다

초반에 사용자 2만명이 몰리면서 서비스에 대한 각종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이것도 필요하다, 저것도 필요하다며 요청을 하는 것이다. “처음엔 여행지에 대한 정보만 구축했어요. 그거라도 잘 하자고 한 거죠. 그런데 고객들이 맛집 정보, 숙박업소 정보도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정보도 또 발품을 팔아 수집해서 넣었습니다. 전국 여행지의 맛집 정보 2만3000여개, 숙박업소 정보는 8000여개가 들어있습니다.”

 하다보니 과거 이츠타운 서비스때는 없었던 일들도 일어났다. 가만히 있는데 제휴를 하자며 지자체, 국내외 관광 관련 업체, 정부 기관 등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엔 호텔스컴바인이라는 해외 호텔 할인예약업체와 제휴도 맺었다. 지자체와의 협력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제휴를 맺은 것에 그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다음 지도에서 여행노트의 여행기록과 연동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여행노트의 사용자 기반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행노트가 발전하면서 과거 이츠타운의 실패가 새삼 약이 되고 있다. 이츠타운 당시 구축했던 지역정보를 여행노트에 연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지역 맛집이나 숙박업소들이 자신들을 등록해 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한다. 

 그에게 꿈을 물었다. 그는 “여행노트를 여행허브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항상 어디를 갈지, 가서 무엇을 할지, 어디에서 묵을지, 무엇을 먹을지 등을 결정하쟎아요. 이것을 위해 검색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죠. 여행노트는 모든 여행의 출발점이 되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 찾아보는 곳. 그리고 여행지에서는 기록을 남기고, 다녀와서는 추억을 되새기는 거죠. 이 정보는 다른 사람에게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계속 업데이트됩니다. 여행의 허브가 되는게 허황되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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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소기업청은 이스라엘식 기술 창업프로그램(TIPS)인 ‘글로벌 시장형 창업사업화 연구개발(R&D)프로그램’의 인큐베이터 운영기관 5곳을 추가 선정했다. 이 프로그램은 성공한 벤처인과 전문 엔젤투자사가 주축이 돼 유망한 기술창업팀을 선발, 투자 및 연구개발 등을 일괄 지원해 미래 유망 창업기업을 집중 육성하는 사업이다.

 중기청은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더벤처스, 퓨처플레이,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이노폴리스파트너스 등 5곳을 새롭게 선정했다. 이 중에서 더벤처스는 지난해 동영상 자막서비스 비키를 일본 라쿠텐에 2억 달러에 매각해 화제가 됐던 호창성, 문지원 대표가 설립한 투자회사다. 두 사람을 만나 더벤처스의 취지와 향후 계획 등을 들었다.

<더벤처스 설립자 호창성(왼쪽), 문지원 대표>

△더벤처스를 언제 설립했나

 “1월2일에 설립했다. 작년 말에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작년 회계 결산을 다 해야 해서 올해자로 설립했다.”

△벤처캐피털이라고 보면 되나

 “엔젤투자회사라고 보는 게 맞겠다. 통상 VC들이 투자하는 방식이 비해 더벤처스는 보다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엔젤투자는 개인적으로도 할 수 있지 않나. 회사를 설립한 이유는 뭔가.

 “물론 개인적으로도 할 수 있다. 회사를 설립한 것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힘을 모아 투자를 하기 위해서다. 물론 투자자금을 기존 VC처럼 대거 모집한다는 것은 아니고 회사라는 형식을 통해 스타트업에 투자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할 만한 사람들을 결집할 생각이다.”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인가

 “스탠포드 재학 시절 알게 된 미국 현지 지인들과 벤처 분야 전문가들을 투자자로 끌어모을 계획이다. 호창성 문지원 두 사람의 자본이 90%, 나머지 10% 정도는 5-6명 정도로부터 모은다. 사실 이들의 지분은 상징적이다. 금전적인 지분 외 다른 분야의 도움을 받기 위해 투자를 받는 것이다. 이미 몇몇 투자자들과 연락해 진행하고 있다.”

△아무래도 해외 진출에 포커스를 맞출 것 같다.

 “맞다. 해외 진출을 목적으로 하는 스타트업을 찾아내 이들에게 투자하도록 하겠다.하지만 투자자금의 전부를 그런 회사에만 투자할 수는 없다. 또 그런 회사는 그리 많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역량이 되는 회사는 소수일 것이고, 그래서 절반 정도는 국내에서 사업하는 스타트업, 나머지 절반 가량은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게 될 것 같다.”

△함께 일 할 사람들도 더 있어야겠다

 “서너명 정도 실무진을 구성해야 한다. 이미 한 명과는 함께 일하기로 하고 호흡을 맞추고 있다. 앞으로도 추가적으로 인원을 늘려갈 생각이다.”

△투자한 회사는 있나.

 “최근에 투자할 기업 한 곳을 선정했다. 미리 자료를 다 받고 한번 만나서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냥 투자를 결정했다. 주로 그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집에 들어가면서 바로 결정해 당사자에게 통보를 했다.”

△첫 투자인데, 너무 빨리 한 건 아닌가 

 “황당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투자 방식은 이렇게 될 것이다. 어떤 사업이 성공할 지, 얼마나 시장성이 있을지 이런 거는 잘 알지 못하고 누구도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 사람의 스토리와 진정성이 그가 하고 있는, 또는 하려는 사업과 얼마나 관계가 있는지 이런 것을 주로 보게 될 것 같다.”

△빙글 사업은 어떻게 꾸려나가나

 “무게 중심은 빙글에 더 둘 것 같다. 우리는 어차피 전문적으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앞으로의 일도 빙글에 리소스의 70%를 투자하고 30% 정도를 더벤처스에 투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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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시지온을 알게 됐을 때 이 회사 사장은 김범진 대표였다. 그게 벌써 2011년의 일이다. 3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회사는 공동 창업자였던 김미균 대표가 이끌고 있다. (김범진 대표가 군에 입대하면서 함께 창업했던 김미균 대표가 전면에 나섰다.) 댓글을 통해 인터넷 문화를 바꿔보겠다는 청년다운 패기와 꿈으로 시작됐던 이 회사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꿋꿋하게 성장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처음 접했을 때 대학생들의 벤처같은 느낌마저 강하게 났지만 이제는 어엿한 기업으로 커나가고 있다.  

 시즌2는 보통 시즌1에서 다뤘던 스토리 이후의 이야기가 중심이 됐지만, 시지온에서는 약간 다르게 전개를 해 나가려고 한다. 시즌1과 주인공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지온을 만든 또 다른 창업자의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이 회사의 스토리가 완성이 됐기 때문이다. ‘시지온 시즌2’는 이 회사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다시 시작된다. 

◆커뮤니케이션이 좋을 뿐

김미균 대표의 어릴 적 꿈은 아나운서가 되는 것. 그의 이런 꿈은 어릴적부터 방송 활동을 많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우연챦은 기회에 시작됐지만 반복되면서 자신의 미래를 규정하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김미균 대표에게 방송 일이 그랬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로 꿈이 좌절됐다. 방송 일이 좋아 2005년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는데, 대학교 1학년때 우연히 자신의 턱뼈가 마모되는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방송을 위해선 제대로된 발음을 하는 게 중요한데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면서도 기본적인 부분에서 할 수가 없게 된 상황이 온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함묵증을 앓기도 했다. 실어증이 말을 못하게 되는 것이라면 함묵증은 스스로 말을 하지 않는 것.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뜻이다. 

 “대학에 들어가고 한참 좋아야 할 시절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어요. 그러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어요. ‘나는 왜 아나운서가 되려고 했던 것일까.’”

 이 때는 2006년 말부터 2007년 초까지의 시기. 뜻하지 않은 병으로 인해 자신의 직업과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생긴 셈이다. “나는 왜 이 분야에서 직업을 택하려고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그냥 카메라 앞에 서는 것에 좋아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러다가 알게 됐죠. 난 그저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많고 그쪽 분야의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그 일을 하는데 반드시 아나운서일 필요는 없다는 결론이 났어요. 그랬더니 마음이 가벼워졌죠.” 

 마음을 고쳐먹자 함묵증도 사라졌다. 학교로 돌아온 그는 자원봉사단 활동, SK텔레콤 인턴십 등 외부 활동을 하며 연세대리더스클럽이라는 동아리를 갔다가 김범진을 만나게 된다. 취업을 하던 창업을 하던 직업을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 시대적 상황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게 두 사람의 경우가 그랬다. 두 사람이 연세대 리더스클럽에서 활동을 하던 당시 한국 사회는 어느때보다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었다. 김미균, 김범진 두 사람은 자살 이슈와 이를 둘러싼 댓글의 사회적 문제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댓글 문제는 캠페인으로 안된다

“왜 멀쩡한 사람들이 온라인에만 가면 싸울까요.”

궁금하긴 하다. 왜 그럴까. 그의 말이 이어졌다.

“왜 중도는 사라지고, 극단적인 찬반 의견만 남게 될까요.”

중도 의견은 굳이 올릴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만한 정성을 기울일 유인이 없을 터. 로그인의 장벽도 한가지 원인이 될 수 있겠다. 로그인을 해야 댓글을 남길 수 있는데 어떤 사안에 대해 분노가 치솟는 등 극단적인 감정이 들어야 로그인이라는 힘든(?) 과정을 감내하고 댓글을 남길 수 있다.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는 집단행동의 원칙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어쨌든 김미균 김범진 두 사람의 결론은 악성 댓글의 문제는 결코 캠페인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알겠다. 캠페인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할까. “기술과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김미균 대표의 설명. 김미균이 기획을 맡고 김범진이 개발을 맡았다. 경희대 컴퓨터공학과를 다니다 연세대 화공과 06학번으로 온 김범진은 프로그램도 짤 줄 알았다. 

 다분히 공익적인 성격이 강한 이 일을 어떻게 사업화할 수 있을까. NGO가 하면 후원을 받아야 해서 결국 캠페인성으로 갈 가능성이 높았다. 정부기관이 하면 정체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이들의 결론은, 어렵더라도 기업이 해야 한다는 것.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하쟎아요. 그런데 우리는 처음에 그 생각을 전혀 못했어요. 돈을 어떻게 벌어야할지에 대한 대책도, 물론 없었죠.”

 2007년에 창업은 했지만, 이러다보니 처음엔 사회적기업 성격이 강했다. 2010년까지는 수익모델이라곤 전혀 없이 버텼다. 이들이 만든 라이브리(LiveRe) 시스템의 가치는 댓글의 네트워크화에 있다. 라이브리는 댓글을 기존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연동시킨 시스템. 댓글과 SNS를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시지온이 특정 포털이나 블로그,언론사 닷컴 사이트 등과 제휴를 맺고 자신들의 플랫폼을 해당 사이트에 구축하면 이런 사이트에 들어오는 네티즌들은 라이브리라는 댓글 플랫폼을 이용해 댓글을 달게 된다. 로그인이 필요하지만 라이브리에 따로 로그인할 필요는 없다. 기존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예를 들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아이디로 로그인해서 사용할 수 있다. 몇개의 하나의 아이디로 로그인해서 들어가서 작성하면 한꺼번에 여러 종류의 SNS에 내가 쓴 댓글이 그대로 전송된다.

 이렇게 되면 댓글이 그냥 날아가버리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는 수단이 된다. 특정 기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고 SNS에 연결된 내가 아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이런 방식이 댓글의 사회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댓글을 달 때 내가 아는 사람이 내가 단 댓글을 본다면 좀 더 이성(?)을 갖고 글을 달게 될 것이라는 것. 댓글이 배설이 아니라 소통의 도구가 되면 캠페인을 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정상적인 대화의 모습을 띄게 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판단이었다. 이들의 생각이 맞았는지는 좀 더 정밀한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런 과정 속에서 이들의 사업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다음달 라이브리뷰 출시

댓글과 SNS의 반응에 민감한 곳은 많겠지만, 특히 심한 곳은 쇼핑 및 유통업체들, 그리고 언론사들, 브랜드가 중요한 대기업 등일 것이다. 평판에 민감한 정치인이나 연예인들도 댓글을 중시여긴다. 언론사들은 특히 직접적인 당사자다. 사람들이 어떤 소식을 접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 언론사의 기사를 통해서이고 기사에 대한 댓글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지온의 라이브리는 언론사들과 하나씩 제휴를 맺기 시작했다. 2011년에만 해도 걸음마 단계였는데 이제는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언론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검색하든, 언론사 사이트에서 뉴스를 보든, 뉴스를 보고 댓글을 달기 위해 로그인을 하면 라이브리 시스템에 들어가게 된다. 시지온은 SNS의 반응과 댓글에 민감한 기업체들과도 계약을 체결했다. 매년 갱신되는 이 계약이 시지온의 주된 수익모델이다.

 댓글의 네트워크화를 꾀하면서, 당연한 일이지만 댓글에 대한 엄청난 DB가 축적되고 있다. 댓글에서 어떤 반응이 나오고 있는지, 국내에서 이를 가장 잘 아는 회사가 있다면 시지온이 아닐까. 네이버에서도 댓글이 가장 많이 달린 글이 뭔지, 댓글의 반응이 어땠는지를 통계적으로 의미있게 분석하는 시스템은 마련되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쉽게 말해, 시지온은 한국의 언론사 뉴스 댓글을 모조리 갖고 있는 유일한 회사인 것이다. 

 “언론사들이 노출시키는 뉴스와 사람들이 클릭을 많이 한 뉴스, 그리고 댓글을 많이 단 뉴스가 상당 부분 겹치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우린 항상 댓글 데이터를 보기 때문에 이걸 알수 있죠. ”

 “어떤 뉴스에 댓글이 많이 붙나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자극적인 뉴스에 물론 많이 붙지만, 결국은 심층 보도를 할수록 댓글이 많이 달려요. 댓글을 분석하면 신뢰할만한 콘텐츠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지온은 이런 경험과 축적된 DB에 분석을 덧붙인 라이브리뷰(LiveReview) 앱을 다음달 출시한다. 모바일 앱으로 출시되는 이 앱은 댓글이 많거나 댓글 반응이 좋은 뉴스 등을 따로 보여준다. 시지온은 댓글 내용의 분석 등을 위해 트리움과 제휴를 맺고 기술적인 부분에서 협력하고 있다. 이 정도만 갖고도 앞으로 할 게 많을 것 같은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간 수익모델이나 비즈니스 확장 계획은 아직 고민중이란다.

 “지금까지는 투자를 받지 않고 사업을 해 왔는데요, 이제 투자를 받아야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중이에요. 해외 진출도 때가 왔고, 국내에서도 댓글DB를 활용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할 때가 됐어요.”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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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10월, VCNC 박재욱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회사 구성원은 달랑 다섯명이었다. 이 회사의 대표적인 서비스 ‘비트윈(Between)’도 아직 정식으로 출시되기 전이었다. 2년 4개월의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VCNC에는 어느새 서른명을 훌쩍 넘긴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고 서비스는 탄탄하게 성장해 다운로드수 600만을 돌파했다. 카카오 시리즈물을 제외한다면, 국내에서 벤처기업이 만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가운데 가장 내실있게 성장한 서비스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윈은 아직 더 성장해야 하는 서비스고, 넘어야 할 산들이 남아 있다. 2년 동안 부쩍 성장한 비트윈 개발사 VCNC의 박재욱 대표를 만났다. 이날은 마침 VCNC가 일본의 DeNA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는 발표를 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순조로운 성장

비트윈은 2011년 11월 오픈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커플들을 위한 SNS를 표방했다. ‘연인들을 위한 둘 만의 온라인 비밀 공간’이 비트윈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였다. 공개SNS가 대세처럼 시장을 장악해가던 시기에 폐쇄형 SNS를 준비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기도 했고, ‘얼마만큼의 시장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우려보다는 기대가 맞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트윈은 오픈베타 기간 3개월 동안에 35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2012년 3월 정식서비스를 개시한 뒤 빠른 시간 내에 1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며 순조롭게 성장해나갔다. 폐쇄형 SNS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상당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서비스가 출시되기 전에 이미 벤처캐피털(VC)로부터 상당한 인정과 기대도 받았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2011년 11월 비트윈에 투자했다. 

 둘 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비밀한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비트윈의 장점은 젊은 연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순조롭게 늘어가던 비트윈의 성장세가 눈에 띄게 꺾이기 시작했다. 원인은 빠른 성장에 따른 급격한 사용자 증가에 있었다. 

◆눈에 안보여도 고객은 다 안다

비트윈에게 첫번째 닥쳐온 위기의 시점은 2012년 여름. “이용자수나 메시지 이용 건수가 모두 정체 되더라구요. 기존의 성장 곡선이 어느날부터 멈춰선거죠.”

 왜 그랬을까. 박재욱 대표는 직원들을 소집해 대책회의를 했다. 외부 사용자들의 반응도 체크했다. 서비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적인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용자가 늘면서 에러가 자주 발생하게 되고 메시지를 보내는 데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이 생겼다. 

 “바로 서비스 안정성 개선에 나섰습니다. 백업단의 기술도 보완하고 서버쪽도 점검을 했죠. 사실 이게 눈에 보이는 부분이 아니어서 서비스를 하다보면 이런 부분의 개선은 자꾸 뒤로 미루는 경향이 생겨요. 새로운 서비스의 업데이트에만 매달리는 거죠. 스타트업은 리소스가 제한돼 있으니까 급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우선 자원을 투자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눈에 안보이는 부분을 고객들이 바로 알아차리더라구요.”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는 3개월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그래도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문제점을 해결하자 사용자 수와 메시지 수 등 주요 지표들이-그의 표현에 의하면-J커브로 급상승했다. “당시가 1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던 시점이었거든요. 아마 이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으면 상승세를 타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2012년 하반기 꾸준하게 성장하던 VCNC는 2013년초 다시 한 번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번에는 조직 내부의 이슈였다. 멤버간의 불화가 아니라 회사가 성장하는데 따른 업무의 비효율성이 문제였다. “사람이 갑자기 늘면서 일하는 프로세스에서 문제가 생기곤 하더라구요. 어떤 일이 있을 때 이것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고 누구와 논의해야하는지 등등 정해진 게 없었으니까요. 내부의 일하는 원칙을 만들고 책임과 권한에 대해 토론하고 그러면서 프로세스를 다듬는 시간이 필요했죠.”

 그때부터 박 대표는 ‘자유롭게 일하지만 강한 책임을 진다’는 업무 원칙을 설정했다고 한다.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 조직 정비에 여념이 없던 시절에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당시 일본 등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경험이 없다보니 운영과 커뮤니케이션 등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보니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더라구요. 비전 공유를 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애를 좀 먹었죠.”

◆수익모델과 해외 안착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는 2013년초 다시한번 소프트뱅크와 캡스톤, 스톤브릿지 등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2013년말 5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한 데 이어 최근 600만 다운로드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비트윈의 현황을 알 수 있는 숫자를 알려달라고 했다. 600만 다운로드에 이어 하루에 실행되는 횟수 2100만번, 지금까지 등록된 사진 1억4000만장(핀터레스트의 4분의 1 수준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메시지 125억건, 메모(장문의 편지 등) 1600만장 등등.

 비트윈이 꾸준히 성장해온 것은 맞지만, 아직 수익모델은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현재까지 수익모델 없이 진행해 온 게 맞다”는 답이 왔다. 물론 앞으로는 달라진다. 우선 선물추천, 기프티콘 보내기 등의 기본적인 수익모델을 올 여름부터 실시할 계획이다. 커플을 타깃으로 한 이벤트를 실험적으로 진행하면서 각종 이벤트 상자(광고채널) 등의 가능성을 점검해보기도 했다. 

 그에게 지금 당장 고민하고 있는 것을 물어보자 수익모델과 해외 시장 안착을 꼽았다. 2012년말부터 준비한 일본 시장은 지난해 3월 3명의 직원으로 법인을 설립한 뒤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처음 직원을 채용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간 싱가포르 법인도 올해 3월경 설립될 예정이다. 현재 비트윈의 600만 유저 중 국내 사용자는 350만명, 해외 사용자가 250만명 수준. 일본 사용자는 전체의 12% 정도를, 중국 사용자가 8%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해외 사용자가 늘면서 국가별로 사용자들의 패턴이 보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한국은 20대 중반부터 후반 사용자가 대부분인 반면 10대 유저는 없는데 일본은 10대 유저가 20대 유저 다음으로 많습니다. 미국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가장 많은 사용자가 포진해 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있을까. 그는 나라별로 미세하지만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는 그런 연령대에 차이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비트윈이 좀 더 성장한다면 어떤 것을 하고 싶을까. 아니 어떤 분야로 확장하게 될까. 박 대표는 웨딩 시장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웨딩 분야 시장 규모는 11조원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하지만, 쪼개져 있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 분야에서 새롭게 시도할 만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고 보지만 일단 이것은 당장 할 것은 아니고 아마 내년 이후에나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일본 DeNA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것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왜 해외에서, 그것도 일본의 투자를 받았을까. “비트윈의 일평균 가입자 중 60%가 해외에서 유입되고 있습니다. 이미 비트윈은 해외 사용자들이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서비스죠.” 한국어 뿐 아니라 중국어(간체/번체), 영어, 일어로 서비스되고 있는 가운데 곧 태국어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는 해외 서비스에 대한 저항이 적어요. 일본 시장은 잠재력이 크고 비트윈은 결국 해외 시장에서 크게 성장해나가야 할 겁니다. 이번 투자는 그래서 전략적 제휴의 의미도 있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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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모바일 광고 시장에 혜성처럼 신예가 등장했다. 자체 미디어를 보유하지 못했고, 자금력이 풍부하지도 못했지만 출시 1년여만에 모바일 광고 시장의 강자 카울리를 제치고 다음의 아담과 맞짱을 뜰 정도로 성장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모코플렉스는 광고를 통해 돈을 벌고 싶어하는, 아니 하다못해 최소한 운영비라도 벌고 싶어하는 많은 앱 개발사들의 가려운데를 긁어주는 역할을 하면서 빠르게 부상했다. 앱 개발사들에게 광고가 막연한 기대치가 아니라 수익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수의 광고 플랫폼과의 연계를 통해 보여준 것이 먹힌 것. 모코플렉스는, 이 도저히 새로울 것 없어보이는 ‘광고’라는 분야에서 어떻게 자신의 길을 찾아냈을까.

◆한게임에서 시작된 인연

모코플렉스 창업자 박나라 대표는 흔히 공대 출신 창업가들이 그렇듯 창업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해 왔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대학 재학 시절이던 지난 2001년 NHN 한게임에서 아르바이트 겸 일을 하러 갔다가 거기서 최병민씨를 만나게 된다. 어쩌면 창업을 생각해오지 않았던 박나라 대표가 창업이라는 길에 들어선 것은 이 사람을 만났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은 나이차가 10살이나 됐지만 오히려 그런 차이가 서로를 보완하면서 창업을 함께 하게 된다. “저는 사실 지금까지 계속 개발자로서 살아왔어요. 그런데 최병민 이사는 정말 기획력과 비즈니스 사업화가 탁월한 분이죠. 저는 처음에 이분이 생각한 것을 그냥 만들었어요. 그러다보면 사업이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배워나갔죠.” 최병민은 삼성SDS 유니텔사업부에서 일하다 NHN 한게임, 소리바다 등을 거쳐 훗날 창업을 하면서 박나라 대표와 힘을 합치게 된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간 박 대표는 가톨릭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그래텍에서 병역특례로 군 복무를 대신했다. 병특을 마치고 2007년 박나라 대표는 최병민과 힘을 합해 오픈베이라는 중고장터를 열었다. “당시 penny auction이 유행을 탔었어요. 우리식으로 말하면 10원 경매죠. 국내에서는 저희가 그런 방식을 처음으로 했어요. ”

 이게 꽤 인기를 끌었다. 한달 매출이 5억원을 거뜬히 넘기기도 했다. 벤처기업으로서는 굉장한 숫자다. 당시 대표는 최병민,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박나라가 맡고 있었다. 기술 개발을 총괄했던 박나라 대표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정작 돈은 포털업체들이 다 벌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광고를 집행하는 데 몇천만원씩 돈이 들어가는데 이 돈이 결국 포털로 가더라구요. 매출은 많이 발생했지만 마진율이 낮았어요. ”

◆나에게 가장 필요해서 시작한 일

2009년 애플 아이폰 도입 직후 모바일 열풍이 불자 박나라 대표도 직접 앱 개발에 나섰다. 그런데 앱을 잘 만들어도 앱을 알리는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를 만나, 어떤 매체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광고를 하는게 좋을지 알기 쉽지 않더라구요. 제가 광고 시장에 경험이 없어서 그런 측면도 있었겠죠. 이걸 어떻게 풀어나갈까 고민하다가 아예 광고 비즈니스를 하기로 한 거에요.”

 회사의 필요성에 의해 시작한 광고 사업. 2011년 5월 박나라 대표는 모코플렉스를 설립하고 최병민 이사가 COO(최고운영책임자)를 맡았다. 모코플렉스가 주목한 것은 자신들의 ‘필요’를 다른 앱 개발사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 거라는 점. 광고를 하고 싶어도 어디에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게 좋은지 모르고, 효과를 알기도 어렵다는 것을 다른 앱개발사도 절감하고 있을 것이란 점에 주목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모바일 광고 메디에이션(mediation)이라는 분야를 택했다. 다수의 모바일 광고 플랫폼을 하나로 통합해 앱 개발 및 운영의 편의를 제공하는 게 이들의 주된 사업 영역이었다.

 2012년 2월 첫 선을 보인 이후 불과 5개월여만에 500여개 업체들과 제휴를 맺었다. 그가 스스로 광고 초짜라고 말하는 것에 비하면 빠른 성장세다. 이 즈음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로부터 3억원의 투자도 받았다.

 박 대표는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비켜나 있었던 덕분에 견제를 덜 받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죠”라고 설명했다. 네이버, 다음 등 직접 매체를 갖고 있는 기업이나 카울리와 같이 광고 플랫폼을 갖고 있는 회사들과 달리 광고를 원하는 기업들에게 다양한 매체를 연결해주고, 컨설팅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 “쉽게 말해 좀 더 효율적으로 광고를 집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인 거죠.” 박 대표의 설명.

◆어디로 갈 것인가

모코플렉스의 최대 강점은 뭘까. 앱 개발사 뿐 아니라 광고주의 불편함도 상당히 해결해줬다는 것. 앱 개발사는 여러 광고플랫폼을 직접 앱에 연동할 필요가 없어 간편하고 광고주 입장에서는 더 많은 앱에 광고가 노출되기 때문에 양쪽 모두 이득이다. 

 모코플렉스의 비즈니스는 철저하게 아이디어와 기술력에 기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한계를 알기에 앱 개발사나 광고주를 일일이 섭외하려고 하지 않고 기존의 광고플랫폼을 끌어다가 이를 분석해 최적의 광고플랫폼과 광고주를 연결해준다는 것. 이를 위해선 기술력도 뒷받침되야 하는데 여기에는 10여년간 엔지니어로 일해 온 박 대표의 역할이 컸다. 

 물론 광고는 기술력만으로 되는게 아니다. 영업을 해야 한다. 아무리 플랫폼을 잘 연결해주는 탁월한 기술력과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그래서 모코플렉스는 지난해 4월 애드립과 유사한 모바일 광고 중개업체 ‘시쿠이스’를 인수, 영업 인력을 확충했다.

 엔지니어 베이스의 그에게 광고 영업을 어떻게 해 왔는지 물었다. 그는 CTO가 아니라 CEO이기 때문에 결국 영업과 관련된 일도 최종적으로는 그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광고쪽 경험이 전혀 없는데다 지식도 부족해서 정말 힘들었죠.”

 “이 분야가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도 꽤 복잡한 영역인데요.”

 “맞습니다. 그리고 벤처기업이 흔히 하기 쉬운 오류가 기존의 광고 산업 질서를 송두리째 무시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려고 하는 건데, 그게 잘 통하지 않거든요. 당장은 사업이 되는 듯 해 보이지만 금방 한계가 드러나요. 그래서 현재 광고산업의 분위기를 최대한 익히고 그들의 룰을 존중하면서 기존 틀에서 부족한 것,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워주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그의 이런 생각은 시장에서 통한 것 같다. 내가 박 대표를 만났던 1월말경 모코플렉스의 광고 서비스 애드립의 페이지뷰는 한달에 무려 60억. 이제 국내에서는 아담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그의 목표는 미디에이션으로서 회사의 영역을 플랫폼으로 더욱 넓히는 것. 아울러 해외 시장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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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창업하셨습니까?”

간단한 질문이지만, 성공한 창업가를 만나 누구라도 가장 처음에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질문을 숱하게 던졌고 성공한 기업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 바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일 것이다.

 ‘어떻게 창업하셨습니까’라는 제목의 책은 이처럼 창업가들에게 듣고 싶은 핵심적인 질문을 주제로 출간됐다. 현재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들이, 그것도 창업을 꿈꾸고 있는 젊은이들이 직접 성공한 창업가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오가는 대화를 녹취록을 풀듯이 써내려갔다. 권도균 이니시스 창업자,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손주은 메가스터디 창업자, 장병규 네오위즈 창업자 등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만나고 싶어할만한 8명의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최대한 현장감과 자신들의 궁금함 그리고 그것이 해소되는 과정을 드러냈다. 주제 뿐 아니라 풀어나가는 방식도 흥미롭다. 어떻게 대학생들이 이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한 마음에 이들을 만났다.

<'어떻게 창업하셨습니까'의 공동 저자들. 왼쪽부터 이상호, 김준호, 최우정>

◆답답함을 풀고 싶다

서울대 법학과 05학번인 김준호 군은 책의 출발점이 된 질문을 던지고, 이 작업을 시작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법학과 학생으로는 매우 특이하게 컴퓨터공학을 부전공으로 택했고 컴퓨터와 관련된 공부를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서울대 벤처동아리인 서울대 학생벤처네트워크(SNU SV) 활동도 했다. 

 그가 처음부터 책을 써야겠다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창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막막하더라구요. 제가 엔지니어가 아니다보니 더욱 그랬구요.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래서 답답했죠. 대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도 그때부터 하기 시작한 거구요. 창업과 관련해 저 자신의 답답함을 풀어보겠다는 게 주된 목적이었죠. ”

 원래 그는 일단 대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 다음 이를 동아리 게시판에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책으로 내도 되지 않겠냐’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답답함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대가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기록으로까지 남겨보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은 그런 답답함을 안고 있어도 그냥 넘기기 때문이다. 답답함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남다른 경험에서 오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2011년에 MIT(메사추세츠공과대학)가 주최한 글로벌스타트업워크샵(GSW)이 있었는데 여기서 제가 연사 섭외하는 일을 맡았어요. 그때 황창규, 이재웅 등 성공한 기업가나 벤처기업인 등을 섭외해 보면서 인터뷰를 하는 것도 할 만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역시 무슨 계기가 있겠지 싶었다.

 하여간 이런 경험을 한 덕에 그는 자신의 창업의 궁금증, 더 나아가 창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가질 만한 그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8명이 모이다

사람을 모으기 위해 김준호군은 벤처동아리 게시판에 함께 인터뷰하는 작업을 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깃발들고, ‘일을 시작할테니 관심있는 사람은 모두 모여라!’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까다롭게 골랐다. 아무래도 그가 갖고 있는 그런 문제의식과 비슷한 문제의식, 아니 유사한 관심사가 있어야 함께 일을 해나가면서 문제가 없을 터였다. 그래서 그는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실시했다!

 “면접을 하면서 한가지 공통된 질문을 던졌어요. ‘창업을 한다면, 누구와 하고 싶은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같이 이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은 거죠.”

 그렇게 해서 김준호를 포함해 총 8명이 모이게 됐다. 이 중 6명은 서울대 학생벤처네트워크 동아리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 등 서울대생이고 나머지 2명은 연세대, 고려대 재학생이었다. 

 이들을 만났을 때 공동 저자 중 2명이 함께 나왔다. 연세대 화학공학과 09학번 이상호는 연세대학교 벤처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면서(2009년) 창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이 개발자로 변신을 꾀해야한다는 생각을 한편 하면서 창업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김준호가 올린 모집 공고를 보고, ‘창업을 하고 싶어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는 기획이다’라고 판단, 응모를 했고 함께 일을 하게 됐다고 한다. 

 2012년 SNUSV 동아리 부회장을 맡았던 최우정은 서울대 디자인 08학번. 그 역시 쟁쟁한 학교 선배들의 창업 스토리를 보면서 창업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를 더 알고 싶었다. 김준호가 올린 내용은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할 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래서 그도 합류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꿈이 생겼다

대부분 책을 쓴다는 일 자체가 처음인 대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일을 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우선,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2012년 2월에 팀원을 모집했고, 바로 인터뷰 작업에 들어갔는데, 2013년 2월에야 마지막 인터뷰가 끝났죠. 그런데 그 뒤로 책이 나오는데는 다시 1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더라구요.” 리더격인 김준호의 설명.

 이들을 만난 자리에서 저자들로부터 직접 책을 받았다. 디자인이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디자인을 전공으로 한 최우정씨가 직접 디자인을 했다고 한다. 저자가 직접 디자인을 했으니 남다를수밖에 없다. 

 이들은 김범수, 장병규, 손주은, 권도균, 이택경 등 일선 취재기자들도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들을 직접 일일이 만나 인터뷰를 했다. 자신들이 궁금한 창업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성공한 창업가들이 한 말을 그대로 녹취를 따서 옮겨 적었다. 덕분에 바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이 되는 효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대신 이들 자신의 해석이나 평가, 생각 등은 대부분 배제했다. 즉 대가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집중한 것이다. 창업가들로부터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내는, 즉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능력도 상당한 것 같았다. 덕분에 나도 잘 알지 못했던 이들의 옛 이야기, 속마음, 하고 싶은 일들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무려 2년에 걸친 작업을 하는 동안 이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김준호는 “오히려 조급한 마음이 사라졌다”고 털어놨다.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하루라도 빨리 창업을 해 보겠다는, 창업 자체에 대한 목적 의식이 강했고 그래서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는 것에 대한 조급함이 많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느긋한 마음마저 갖게 됐다는 것. “아직 병역특례 기간이 남아있어서요,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 등 해외에 나가 외국업체에서 일해보는 기회도 갖고 싶어요. 그러면서 창업을 준비해볼까 합니다.”

 함께 자리를 한 이상호는 일단 군입대를 준비하고 있다. 군대에서 개발자가 될 지 아니면 팀을 만들어 창업을 할 지 좀 더 고민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한다. 게임업체 취직을 생각하고 있던 최우정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자신만의 꿈이 생겼다고 한다. “디자이너 생산자들을 위한 툴을 만들고 싶어졌어요. 그런 목표를 갖고 앞으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다 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들 역시 2년여 시간동안 큰 변화를 겪지 않았을까. 그게 책이 나온 것 못지 않게 이들에게 중요해보였다. 그리고 2년간의 작업으로 나온 책이 창업을 고민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같은 생각과 고민의 시간을 갖게 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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눔, 700만 달러 투자 유치

스타트업 소식 2014. 2. 4. 14:01 Posted by wonkis


카디오 트레이너, 눔 다이어트코치 등 히트작을 보유한 앱 개발사 눔(Noom, Inc.)이 700만 달러(76억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4일 눔은 미국의 RRE벤처스(RRE Ventures)를 비롯, 트랜스링크 캐피탈 (Translink Capital), 일본 리크루트 그룹(Recruit Group), 퀄컴벤처스(Qualcomm Ventures), 스크럼벤처스(Scrum Ventures) 등으로부터 700만 달러의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RRE 벤처스 공동창업자이자 대표인 짐 로빈슨 4세(James D. Robinson IV)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눔의 이사회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번 투자는 미 동부 대표 벤처 투자사인 RRE Ventures와 일본 펀드가 협력해 만들어냈다. 일본 펀드로는 실리콘 벨리와 아시아 사업에 특화된 트랜스링크 캐피탈, 일본 최대 라이프스타일 인터넷 회사인 리쿠르트 그룹, 그리고 일본 스타트업계의 성공한 CEO Tak Miyata(스크럼 벤처스)가 함께 했다. 미 동부와 일본 IT산업계의 투자 협력으로 눔(Noom)은 미국과 일본 시장의 성장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리즈 A 투자는 지난 2012년 유럽 최대 모바일 벤처투자사 엠에잇캐피탈(M8 Capital)이 주도했던 프리시리즈 에이(Pre-Series)이래 약 13개월만에 이뤄졌다. 눔은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어 미국 기준에 의해 투자를 받았지만 미국 벤처업계에서도 시리즈 A 투자로서 700만 달러는 상당히 큰 금액이다. 지난 2008년 설립돼 핼스 분야 앱 개발을 지속해온 눔은 설립한 뒤 6년여만에 첫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향후 건강 관련 서비스 개발에 더욱 주력할 수 있게 됐다. 눔의 대표작인 ‘눔 다이어트 코치’ 앱은 전 세계에서 1000만 이상 다운로드를 기록했으며 구글 플레이 선정 2013년 베스트 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이 앱은 지난해 구글플레이 건강 및 운동 분야에서 최고 매출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투자 유치 직후 정세주 눔 대표는 “단순히 데이터를 추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용자들이 더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게끔 코치하고 동기부여 하는데 힘쓰겠다”며 “향후 온오프라인, 모바일을 통털어 건강 분야 넘버원 기업이 되도록 투자와 연구개발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눔은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독일, 일본 그리고 한국에 현지 법인을 세우고 총 4개국에서 현지어로 서비스되고 있다. 눔은 최근 미국 보건복지부(NIH), 그리고 국영 의료기관인 마운트 사이나이(Mount Sinai) 병원과 협력해 폭식 억제를 위한 스마트폰 기술 활용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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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멤버십과 포인트 적립을 가장 쉽고 간편하게 하는 것은 뭘까. 아무것도 필요없이 그냥 나를 알아주는 게 최고일 것이다. 얼굴이든, 지문이든, 목소리든 그 사람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뭔가를 통해 나를 인식하고 알아서 멤버십도 가입해주고 포인트 적립도 해 주는게 가장 편리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편리한 만큼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 위험도 커진다. 나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터치웍스는 개인을 식별하는 방식으로 이보다는 한 단계 불편한 방식을 택했다. 개인 정보 유출을 최소화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가장 편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전화번호와 NFC 또는 RF 칩만 있으면 소비자를 인식, 멤버십과 포인트를 처리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급에 나섰다. 

◆무난하고 재미없는 인생

터치웍스 강승훈 대표는 스스로 “무난하고 재미없는 인생을 살아왔다”고 한다.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그는 이른바 ‘엄친아’다. 1998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해서 대학을 졸업한 뒤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역특례업체에 들어가 일했다. 당시 들어갔던 회사는 KEB테크놀로지. 지금은 코나아이라는 이름으로 사명이 변경된 회사다. 비록 대기업은 아니지만 코스닥 상장사로 그는 이 회사에 들어가서 11년 동안 일하면서 인정도 받고 회사에서 많이 성장했다고 한다. 창업자이사 대표이사의 직속 부서 팀장으로 일하면서 여느 대기업 못지 않은 좋은 대우를 받았다. 

 11년 동안 그가 일한 분야는 임베디드소프트웨어. “신용카드나 교통카드, 유심카드, 각종 카드에 작은 칩이 들어가는 거 아시죠? 그런 칩의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죠. 원래는 병특으로 들어갔는데 계속 눌러앉아서 일을 했어요.”

 여기까지 보면 어림짐작할 수 있지만, 그는 애초부터 창업을 하려는 생각을 하거나 창업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그런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다. 그럼 이랬던 그가 왜 창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카드IC칩, 유심카드 이런 거 아무리 만들어도 아무런 피드백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당연하죠. 제가 한 분야가 B2B 분야였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제가 만든 것들을 사람들이 쓸 때 어떤지 궁금했거든요. 그런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죠.”

 결정적인 것은 좀 재밌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 

 “혹시 온라인게임 좋아하세요?”

 그가 불쑥 묻더니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말을 이어갔다. “게임에 보면 레벨이 있쟎아요. 만랩에 도달하면 더 이상 레벨을 키울 수는 없죠. 저에게 그런 상황이 곧 닥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지금 있는 이 곳은 만랩의 제한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 좀 더 넓은 세상에 나가서 만렙의 제한없이 승부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건거죠. 마침 큰 아이의 돌을 맞이하면서 아이에게 어떤 아빠가 될 것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다고 얘기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

 2012년 3월. 강승훈 팀장은 11년간 몸담았던 코나아이를 나왔다.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회사를 나올 당시의 상황은 사실 좀 막막했다. ‘창업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나온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 그는 막연히 B2C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었지만, 온라인이든 모바일이든 B2C 비즈니스는 그가 잘 알지 못했다. 몇가지 아이디어가 있었던 그는 코나아이 시절 함께 일하다가 그보다 먼저 나와 투자은행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던 박형순에게 연락을 했다. “형이 하려고 하는 사업이 왜 안되는지 설명해주겠다”는 박형순의 말에 약이 오른 강 대표는 그를 만나 자신의 구상을 말했다.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나와 KTF에서 일하다가 나와 다른 일을 하고 있던 나준채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가 구상했던 아이템에 대해 번번이 안된다는 비판을 하던 두 사람이 기존 인프라를 활용한 ‘오프라인 개인화 서비스’에는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될 것 같다’ 정도가 아니라 자신들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함께 하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신중한 강 대표는 예전 코나아이 시절에 함께 일했던 이참솔 로티플 창업자도 만나 그의 아이디어를 말해 ‘합격점’을 받았다. 

 그의 아이디어는 우연히 나왔다. 회사를 나와서 커피숍에 있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결제를 하고 포인트를 적립하는 과정을 보면서 ‘사람들은 쉽게 포인트를 적립하고 매장 주인들은 고객의 성향을 파악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즉시 현재 매장의 멤버십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관련 오프라인-모바일 연계 서비스들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조사했다.

 시장 조사를 통해 그는 자신이 생각한 방식이 통할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그가 생각한 것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NFC, RF 등의 단말기나 카드 등을 서비스의 인프라로 활용, 오프라인 개인화 식별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것. 이 분야는 그가 예전에 있었던 코나아이에서 종사했던 분야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결국 잘 아는 분야로 돌아온 거네요?”

  “그렇죠.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게 다르더라구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온 거죠.”

 2012년 9월 법인을 설립하고 이듬해 3월, 모바일멤버십 서비스 ‘터칭’이 출시됐다. 

◆오프라인의 개인화 식별 끝판왕

터칭은 중소상공인들과 수많은 멤버십카드 때문에 지갑이 복잡해진 소비자들을 위한 서비스. 터칭이 있으면 새로운 카드를 발급받을 필요도 없고, 앱을 깔 필요도 없다. 특별한 조작을 하거나 상대방에게 자신을 증명하는 뭔가를 보여줄 필요도 없다. 

 매장에서 물건을 산 다음, 교통카드나 사원증, 스마트폰을 갖다 대기만 하면 매장의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다. 매장 입장에서는 이것을 도입하는 데 큰 돈이 들지도 않는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터칭 서비스를 직접 써 봤다. NFC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을 터칭 단말기에 대자 관리자 PC에 ‘등록이 안 된 카드’라며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등록할 것을 요구하는 화면이 떴다. 전화번호만 입력하자 바로 등록이 됐다. 스마트폰 입력하면 그 매장의 회원이 되고 앞으로는  갖다 전국 어디서든 해당 매장을 방문해서 스마트폰을 대기만 하면 포인트가 적립된다. 물론 꼭 스마트폰이 아니어도 된다. 회사 사원증도 등록이 가능하다. 개인 정보를 가져가는게 아니라 해당 단말기 칩과 전화번호를 동기화시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멤버십 등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통신사들도 전자지갑을 만들었다. 결제도 가능한 서비스다. 그런데 아직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강 대표는 이에 대해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그런 서비스가 있어도 앱을 다운받거나 앱을 실행해야 하고 실행한 다음 뭔가를 열고 보여주고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죠. 불편해요. 사람들에게 자꾸 여러가지 행동을 요구하면 불편해서 다음엔 안쓰게 되거든요.”

 매장이 터칭 단말기를 도입하는데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도 장점. 몇십만원짜리 아이패드 등 별도의 단말기가 없어도 된다. 기존 노트북이나 PC에 3만원짜리 RF리더기만 연결하면 된다.

 당장은 전자지갑 등과 경쟁해야할 처지. 해피포인트나 오케이캐시백과 같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멤버십은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중소 매장의 멤버십 등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수준.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얼마든지 확대해나갈 수 있다는 게 강 대표의 생각.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결제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오프라인에서 개인화 서비스의 끝판왕이 되는 게 목표. “정보 유출의 걱정없이 개인을 식별하는 게 가능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매장 주인들이 많은 서비스를 할 수 있죠. 소비자들은 그만큼 편해질 수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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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병원이나 외과, 응급실 등 병원 곳곳에서 비교적 흔하게 접하는 초음파진단기기를 쉽게 휴대할 수 있게 되면 어떤 장점이 있을지, 무엇이 달라질 지,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나는 이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지금 생각한들 딱히 신통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류 대표는 물론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하게 됐을까.

 ‘먼 길을 돌고 돌아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할 만큼 그는 복잡하고 굴곡진 삶을 살았지만, 그리고 자기 길을 찾기 위해 자주 멈춰서서 생각에 잠기고 방황해야 했지만, 그래도 어느 것 하나 헛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연속에서 자신도 생각지 못했던 인생의 길이 열렸다.

◆엔지니어-벤처 창업-의사

1992년. 학생 류정원은 동국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군대에 가기 전에 1년 동안 학교 수업에 그닥 성실하지 않았던 그가 빠지지 않고 열성을 보였던 것은 로봇동아리 활동. “미로 탐색하는 마이크로 마우스 로봇, 이런 것도 직접 만들고 그랬어요. 대충 한 게 아니었죠.”

 그는 대학 입학 이듬해인 1993년부터 벤처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계기는 아주 우연히, 그의 실수에 의해 만들어졌다. “입대 지원서를 내려고 병무청에 갔더니 휴학생은 안된다는 거에요. 그 당시엔 그랬나봐요. 군대를 가려고 휴학했더니 입대지원서를 못 내는 상황이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휴학하고 좀 기다리면 입영통지서가 날아온다네요. 그래서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죠.”

 갑자기 시간이 붕떠버린 류정원 학생. 마냥 놀 수는 없어서 1993년 나눔기술이라는 벤처기업에 들어가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다. 

 “사장님이 처음엔 좀 황당해했죠. 대학교 1학년짜리 학생에게 기술회사에서 무슨 일을 시켜야 하나 고민이 됐는지, 복사하고 전화받고 등 잔심부름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거 싫다고, 프로그래밍하겠다고 했어요.”

 “원래 프로그래밍을 잘 하셨나봐요.”

 “아뇨, 몰랐어요. 새로 배웠어요. 책이랑 뭐 이런 걸로 배워서 했죠.”

 8개월간 일을 하다가 군대를 갔다. 군대를 가기 전에 그는 제대를 하고 어떻게 살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 당시엔 보통 삼성 현대 등 대기업에 들어갔어요. 선배들이 주로 그랬는데 나한테는 잘 안 어울릴 것 같았어요. 뭐랄까. 답답할 것 같았죠.”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인생 50년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내가 잘 하는 것은 뭘까.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고 살아갈까. “따져보다보니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군대 갈 때도 책을 싸들고 들어갔어요.”

 군대에서 당연히 생각한 것 만큼 공부할 시간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결심을 한 것이 도움은 됐다. 나오자마자 그는 ‘공부를 제대로 한 번 해보자’고 대성학원에 들어갔다. 1996년. 그리고 그는 97학번으로 서울대 자연과학부에 입학했다. 진짜 공부를 ‘제대로’ 한 셈이다. 

 다시 대학에 들어갔지만 그는 여전히 벤처에 관심이 많았다. 1999년, 3학년이 되면서부터 다시 벤처 회사에 들어갔다. “짧게 여러 회사에서 일한 것 같아요. 그러다가 2000년에는 Embeded System Forum(ESF)를 만들었어요. 이게 나중에 창업하는 기반이 됐죠. 이를 통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거든요.”

 2001년 그는 디지젠(Digigen)이라는 회사를 처음으로 창업하게 된다.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등을 제작하는 사업을 하는 회사였다. “벤처에서 계속 일을 하고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나도 창업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창업을 하게 됐어요.”

◆Connecting the Dots

그런데 첫 창업은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예정됐던 대규모 딜이 깨지면서 2002년 사업을 정리하게 된다. “저한테는 첫 좌절이었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하고자 했던 일을 다 하면서 살아왔는데, 안되는 일이 있네요.” 2003년 유학 준비를 시작했지만 몸이 근질거렸다. 그래서 또 다시 벤처기업에 들어가 일을 했다. 이번엔 CTO(최고기술책임자)로 들어가 신호처리기술을 개발했다. 소음제거솔루션, 음성인식 솔루션, 이미지퀄리티제어기술 등이 그가 한 일. “원래 인공지능쪽에 관심이 계속 있었어요. 신호처리 관련 일을 하다보니 신경분야를 배워야겠더라구요.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의대를 가야 배울 수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의대 진학 준비를 했습니다.” 2005학번으로 그는 가천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

 의전원 1기로 들어간 그가 생각한 것은 의학지식과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사업을 하는 것. 남들이 안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자는 게 그의 목표였다고 한다. “남들이 안하는 게 뭘까. 그래서 얻은 결론이 두 가지, 우주와 뇌였어요. 이제 자유롭게 우주로 가는 시대가 올 것 같아서 2006년엔 우주인에 지원도 했지만, 아시다시피 안됐죠. 그래도 그쪽 분야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접은 건 아니에요.”

 의대에 재학중이던 시절에도 계속 의학지식과 비즈니스화를 궁리하던 그는 2009년 졸업후 KMI 검진센터에서 일하게 된다. 물론 의사로서 말이다. 이어 한 지역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다가 그를 창업으로 이끈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날 응급실에 만삭의 임신한 여성이 실려왔어요. DOA(Dead on arrival)였죠. 응급실에선 그런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 분이 지체장애가 있는 분이었어요. 같이 따라온 남편도 그랬죠.”

 그가 이들 부부의 상황을 유독 안타깝게 느낀 것은 당시 그의 아내도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 아마도 감정이입이 됐을 터였다. 둘 다 지체장애로 인해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 못하는 것도 안타까움을 더했다. “심폐소생술로 일단 살렸지만 큰 병원으로 옮겨야 했어요. 20분 걸려 대학병원으로 가는데 데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의사들이 각자 초음파진단기를 들고 다니면 문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가 이런 생각을 한 것도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였다. 종합병원으로 옮겨주고 그는 돌아왔지만 나중에 그 여성과 뱃 속의 아이는 결국 모두 숨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물론 휴대용 초음파진단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삶과 죽음의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고 장담은 못하죠. 하지만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의사가 현상을 좀 더 빨리 제대로 파악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최소한 장비가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탄식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가 창업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살아온 삶의 과정들이 아무 의미없이 흩어져 있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 연결돼 오늘날 그가 하는 사업의 하나하나를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료 분야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그는 전자공학을 배웠고, 벤처에서 일했으며, 신호처리분야에서 일했고, 의대를 졸업하고 의료 현장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Connecting the Dots’가 멀리 남의 얘기가 아니다.

<힐세리온은 아직 제품 출시전이라 홈페이지 이미지를 캡쳐해 올렸다. 맨 왼쪽이 류정원 대표.>

◆휴대용 무선초음파진단기, 상반기 출시

자, 이렇게 해서 의사로서의 삶은 중단되고 벤처기업가로서 인생이 다시 펼쳐졌다. 자신이 필요해서, 그는 휴대용 무선초음파진단기 개발을 시작했다. 의료에 IT 기술을 접목해 좀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출발점이 됐다.

 2012년 2월, 류 대표는 힐세리온(Healcerion)을 설립했다. 휴대용 무선초음파진단기를 만드는 게 첫번째 일이다. 물론 현재도 휴대용 초음파진단기가 있지만, 현재 제품보다 크기가 훨씬 작다.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 무선으로 작동한다는 것도 차별화된 점. 그러면서도 가격은 기존 제품들의 10% 수준으로 저렴하게 책정할 계획. 제품이 상반기 내에 출시될 예정인데, 보안을 위해서 자세한 내용은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앱으로 건강을 체크하고 관리할 수 있는 그런 서비스들도 다수 만들어갈 계획. 모바일 헬스케어 시장은 이제서야 태동기에 있다는 게 그의 판단. 

 그는 궁극적으로는 해외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초음파진단기 얘기를 꺼내면 의사들이나 일반 소비자들도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거 병원에 가면 다 있쟎아?’ 하지만 사실 현실은 일부 극소수 잘 사는 나라들에서나 그렇다는 겁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임산부 배에 고깔을 대고 아이 상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필요로 하는 곳은 무궁무진합니다. ”

 그는 무선초음파진단기를 의사들의 개인장비로 만들겠다고 한다. 그래서 초음파진단기를 ‘제2의 청진기’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 사업 확장 못지 않게 그는 사람을 살리는 사업,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했다. 그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물론 사업도 잘 돼야지요. 잘 할 수 있을 거라 확신이 있기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합니다. 직원들하고도 이런 얘기를 많이 하죠. ‘만약에 우리 사업이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가 개발한 이 제품이 누군가의 삶을 살리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걸로 또한 족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살아난 사람은 누군가의 아버지일 것이고, 누군가의 아내이거나 어머니일 수 있으며, 누군가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녀일 수도 있다. 그거면 되지 않나.’ 이렇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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