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 산업 중 최대의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뷰티(Beauty)’ 아닐까. 아모레퍼시픽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실적이 어닝서프라이즈를 보이는 것도, 국내 면세점 시장이 급성장하는 것도, 한국의 경쟁력이 있는 뷰티산업에 대해 세계 소비자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때문 아닐까.

설사 한국 뷰티 산업의 경쟁력이 조금 쇠퇴하더라도 그와 관계없이 앞으로 미용이나 피부건강과 관련된 비즈니스가 소득수준 향상과 고령화, 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 등의 추세에 힘입어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다만 이 분야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느냐의 문제가 관건인 것 같다.

화장품 사업은 미용이나 피부건강을 지키거나 돋보이게 하는 쪽이다. 앞으로 성장하겠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반면 내 자신의 피부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명확하게 진단하고 이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분야는 아직 화장품만큼 활발하게 발달된 분야가 아니다. 여기에 어떤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화장품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청년이지만, 피부 측정과 피부건강 관리 시장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웨이웨어러블 문종수 대표가 한국의 스타트업 일백여든일곱번째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사업가 기질을 타고난 청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04학번으로 입학한 학생 문종수는 좀 별났다. 삼성SDS에서 인턴 경험을 잠깐 했고 이후 군대를 가려고 했는데 시기가 잘 안 맞아서 약 1년간 시간이 비게 됐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그냥 학교를 조용히 다니다가 군대를 가도 될텐데, 그렇게 서둘러서 학교 과정을 끝마칠 필요도 없었고 흔히들 하는 과외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택한 것이 장사.’

그의 말에 따르면 모든 것은 즉흥적으로 이뤄졌다. 분당선 미금역 근처 황금상권이라 판단되는 곳에 적당한 건물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고 다니던 중 뜻밖에 아주 좋은 위치의 건물 목좋은 1층 자리가 권리금도 없이 나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뭔가 분명 이유가 있을터. 알아보니 이곳에서 사업하는 사람들마다 망해서 나간 사연이 있었다. 개의치 않고 돈 적게 들어서 좋네 하고 덜컥 계약을 하고 그 자리를 받은 문종수.

뭘 해야 할지도 막막했지만 친구를 불러 도움을 요청하니 냉장고를 하나 들고 왔다. 그렇게 해서 그의 편의점 사업이 시작됐다. (그의 편의점 창업기에는 하루 종일 들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지만 여기서 그것이 본류가 아닌만큼 간략하게 넘어가려고 한다.)

지자체에서 담배 판매 허가를 받고 아무것도 없는 편의점 문을 열자마자 담배회사들이 판매대 등을 설치해주고 갔다. 처음엔 친구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는 스스로도 놀랄만큼 수완을 발휘해 편의점을 운영했다. 대형 프랜차이즈 편의점에 소속되는 대신 작지만 독립 브랜드의 편의점을 낸 그는 끼워팔기와 할인을 적절히 배합하고 시간대와 손님에 맞는 판매전략을 구사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냥 장사일 뿐이라고 그는 말했지만, 그에게는 확실히 사업가 기질이 있었다. 결국 군에 입대하기 전 그는 상당한 권리금을 받고 편의점을 넘길 수 있었다.

준비없이 시작했던 첫 창업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학생 문종수는 장사가 아닌 사업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었다. 삼성SDS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IT(정보기술) 분야에 눈뜬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뒤 2011년 겨울 친구와 함께 창업했다. 당시 그는 헬스케어를 아이템으로 삼았다. 의료정보 등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건강관리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건강관리를 위해 다양한 운동을 하쟎아요. 그 운동을 스스로 보면서 따라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든 거였어요. 요가 동작이나 헬스트레이닝 동작을 전문 강사 등이 올린 동영상을 보면서 따라하다보면 건강관리가 되겠다, 뭐 이런 거였죠.”

서비스명은 디자인유어바디(Design your body)’. 시장 자체는 잘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많을 터. 수준 높은 동영상이 DB(데이터베이스)화되도록 했고 유료 결제 방식도 도입했다. 23만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매출이 오르는 듯 했다가 정체됐다. 사용자들도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왜 그랬을까.

외국 사용자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서비스의 잦은 에러 때문에 사용자들이 불편했죠. 예를 들어 영어로 서비스하는 페이지에서 가끔씩 뜨는 안내 팝업 창에는 한글로 적혀있는 그런 식이었어요. 무슨 소리인줄 모르니까 불편하고, 불만이 생기는 거죠. 이런 사례들이 좀 있었어요. 그랬더니 사용자들이 확 줄어들더군요.”

해외 사용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외국의 유명 피트니스 강사와 계약도 체결하고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그리고 실제 상당한 콘텐츠를 확보했지만) 서비스단의 이런 에러와 오류가 겹치자 고객의 마음을 붙들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때 일부 고객이 언급했던 것인데, 정말 잊을 수가 없었던 지적이 있었어요. 뭔가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않은 그런 서비스 같다는 지적. 맞는 말이었어요. 준비를 제대로 하질 못했어요. 서비스의 본질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한 셈이었죠.”

디자인유어바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웨이웨어러블 창업멤버들. 왼쪽에서 세번째가 문종수 대표.>

영역을 좁혀라

그래도 그는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디자인유어바디를 기획했을 때의 당초 생각은 건강관리를 해주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정작 전문가들이 만든 콘텐츠만 나열했지 관리는 못해줬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사람들의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 특히 이왕이면 건강에 관심이 많고, 실제 관련 활동도 많이 하는 여성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서비스를 기획했어요. 기획안을 들고 이스라엘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죠. 이때가 대 전환점이 됐어요.”

20149월 문 대표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개최되는 DLD 컨퍼런스에 참가하게 된다. 이에 앞서 현지에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와 만나는 시간도 있었다. 이 기간이 3주 정도 됐다고 한다. “3주 동안 아이디어를 들고 가서 발표도 하고 토론도 했어요. 이때 엄청 깨졌죠. 하하.”

왜 깨졌을까. “저희들의 아이디어가 너무 광범위했거든요. 여성들의 건강 관리를 위한 모든 서비스를 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터무니없었겠어요. 난타를 당했죠.”

맞는 말이다.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런데 그 와중에 그는 한 가지를 발견했다. 피부관리에 대해 설명할 때 누구나 관심을 보였다는 것. 심지어 피부관리 분야에 포커스를 맞춰서 서비스를 다시 설명하자 이런 서비스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서비스 기획안을 전면 수정한 문 대표는 결국 3주 과정이 끝난 후 펼쳐진 DLD 컨퍼런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친구이자 피부과 의사인 오가나 원장(초이스피부과의원)의 자문을 받았다. 피부관리를 위한 최적의 솔루션은 뭘까. 우선 피부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관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시중에 피부에 좋은 화장품이나 관련 제품은 많아도 내 피부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할 뿐 아니라 내가 처한 환경이 어떤지를 파악하게 해 주는 제품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항상 들고다니면서 피부 상태를 측정하고 주변 환경을 진단할 수 있다면 여성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지 않을까.

항상 휴대할 수 있는 피부측정+관리기를 만들어보자! 그러려면 피부과의사의 합류가 필수적이었다. 오가나 원장이 합류하면서 경영자+엔지니어+의사+마케터+기획자 등으로 구성된 창업팀이 완성됐다.

Personal skin care companion

여성의 삶의 길에서 여성을 응원하고 여성의 삶을 도와준다는 거창한 의미를 가진 웨이웨어러블(way wearable)이라는 회사명이 도출됐다. 첫 번째 상품명도 웨이(WAY).

본래 웨이는 스마트워치 형태로 고안됐다. 하지만 패션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생각해볼 때, 스마트워치로 할 경우 본연의 기능보다 시계로서의 기능이나 패션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결국 여성 화장품처럼 휴대하고 다니는 모양으로 기획했다.

웨이는 미니 도넛처럼 보이지만 피부 진단, 전력 컨트롤, 센서 등 각종 기술이 융합돼 있는 IT기기다. 특히 피부 진단 기술이 웨이의 핵심이다. 웨이는 피부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전류를 흘려보내 피부 위 유분과 각질부터 표피, 진피까지 다 체크한다. 사용자가 웨이를 얼굴에 가져다 대기만 해도 유분, 수분의 양 등 피부의 다양한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웨이는 각종 센서로 자외선 지수, 습도 등 각종 주변 환경 정보를 끊임없이 수집한다. 주위 공기가 건조할 경우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하는 등 이용자가 있는 환경에 적합한 피부 관리 팁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피부에는 바르는 화장품도 중요하지만 환경도 중요하기 때문이란 게 문 대표의 설명. 피부 트러블의 원인이 맞지 않는 화장품 탓인지 주위 환경 탓인지 알지 못한 채 화장품과 피부과 약에만 의존하던 여성들에게 새로운 관리법이 열리는 셈이다.

웨이는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전용 앱을 통해 수시로 사용자에게 알려준다. 사용자는 이것을 보면서 주위 환경과 자신의 피부상태를 확인하고 적절한 관리를 할 수 있게 된다.

문 대표는 향후 수집한 피부 정보를 분석해 적합한 화장품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도 개발할 게획이다. 여성의 피부 고민이 데이터로 축적될 경우 보다 더 개인의 피부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화장품을 추천할 정도로 화장품도 개인화될 수 있다는 게 문 대표의 생각. 물론 피부과병원이나 화장품 브랜드와의 연계도 가능하다.

문 대표는 웨이를 지난 12일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인디고고(www.igg.me/at/HelloWAY)’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첫 선을 보였다. 목표 모금액은 5만 달러였는데 27일 현재 이미 목표금액을 초과달성, 111%를 모금한 상태다. 얼리버드 가격 89달러, 기본 가격 99달러에 기초 화장품 큐레이션 박스를 제공하며 10월부터 배송이 시작된다. 크라우드펀딩을 하기 전 이미 스파크랩스 등으로부터 투자도 유치했다.

문 대표에게 회사의 지향점을 물었다.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즉각 나왔다. “영화 빅히어로를 보셨나요? 영화에 등장하는 힐링로봇 베이맥스가 주인공에게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죠. ‘your personal healthcare companion’이라고요. ‘그걸 보면서 저는 아 저거다!’ 하고 무릎을 쳤어요. 우리 회사와 서비스는 당신의 피부관리 동반자가 되고 싶어요. ‘your personal skin care companion’.”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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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면 누구나 최소한 하나쯤은 굴러다니는 휴대폰 배터리가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 스마트폰용 배터리다. 스마트폰은 버렸거나 처분하더라도 보조 배터리는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나의 경우는 대여섯 개는 되는 것 같다.)

이 중고 배터리가 사실은 출시 당시에 비해서도 여전히 80% 이상의 성능을 보유하고 있고 상당히 쓸모가 많다는 것을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중고 배터리를 재활용해 휴대용 보조배터리로 탈바꿈시킨 인라이튼(Enlighten)의 신기용 대표를 만났다.

태양광램프에서 시작된 사업

언젠가는 제 일을 하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생각만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창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그러진 않았지만요. ”

그래도 이런 막연한 생각이 인생의 큰 방향을 결정짓곤 한다.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디자인공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생시절 자신의 전공을 어떻게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계속 해 왔다. 울산과학기술원에 진학해 기회를 찾던 중 20139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최한 소셜벤처경연대회가 계기가 됐다. 당시 그는 태양광램프를 개발해 아프리카로 보내자는 주제로 제품을 기획했다.

대학원에 다닐 때 아직도 15억명의 인구가 등유 램프를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대부분 아프리카 등 어려운 지역들이죠. 위험한데다 여기서 나오는 블랙카본이라는 물질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더라구요. ”

그는 모듈형 태양광 램프 개발을 기획했다. 전기로 충전할 필요없이 평소에 태양광으로 충전을 했다가 필요한 시간에 쓸 수 있는 램프다. 기존의 50달러짜리 태양광램프를 10달러짜리로 만들자는 게 그의 아이디어. 태양광 램프는 이미 기존 제품이 있는데 그는 이것을 병렬로 연결해 장시간 쓸 수 있는 아이디어를 더했다. 그리고 소셜벤처경연대회에서 덜컥 글로벌부문 최우수상을 받게 된다.

용기를 얻은 그는 그해 연말 대학원을 나와 본격적으로 창업 준비에 돌입했다. “그땐 혼자였어요. 혼자서 준비했지만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기뼜죠.” 하지만 현실은 그가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인라이튼 창업멤버. 오른쪽 두번째가 신기용 대표.>

새롭게 알게 된 현실

태양광램프 가격을 대폭 낮춰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장시간 쓸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전력난을 겪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그의 구상은 처음부터 벽에 부딪쳤다. 우선 사회단체 등에서 램프를 무상으로 나눠주는 경우가 많았다. 태양광 램프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썩 좋지 않다는 것도 이때 알게 됐다. “수시로 태양광으로 충전을 해야 하는데, 이걸 귀챦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역시 아무리 좋은 제품도 번거로우면 쓰질 않더라구요.”

중국산 저가 제품이 범람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물론 태양광램프는 아니고 건전지를 쓰는 제품이었지만 가격이 싼 데다 쓸 만큼 쓰고 버리는 제품이었는데 수요가 많았다.

당황했죠. 대학원까지 그만두고 나왔는데. 3, 4개월 정도 방황했던 것 같아요. 현실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답을 멀리서 찾지 말고 우리 주변의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결론을 내렸죠. 에너지 풍족 시대에 유일하게 겪는 에너지 부족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게 뭘까. 휴대폰 배터리가 아닐까.”

사실 그의 생각은 틀렸다. 지금은 에너지 풍족 시대가 아니다. 에너지는 전 세계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하지만 이런 전제는 지금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맞는 답을 찾았으니 말이다. 스마트폰의 폐배터리를 활용하는 방법을 그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쓰지 않는 중고 배터리를 이용해 충전을 하면 환경에 도움이 되고(재활용), 소비자의 부담을 줄일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그는 중고 배터리를 모아서 상태를 점검했다. 2년 이상 쓴 스마트폰의 경우에도 배터리는 80%이상 성능이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집에 이처럼 배터리가 남아 돌아가는데 일상 생활에서는 스마트폰 배터리가 부족해 충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 상당히 아이러니한 상황이긴 하다.

신기용 대표 본인을 비롯해 제품 디자니어, 그래픽 디자이너, 마케터, 4명이 모였다. 20147월 법인 인라이튼(Enlighten)을 설립했다. 세상을 밝게 비추자는 뜻에서 나온 이름. 제품명을 짓기 위해 모여서 회의를 하던 중 김동민 총괄이사가 아이디어를 냈다. 배터리의 를 다시 쓴다는 뜻의 re로 하면 어떻겠냐는 것. 이왕이면 배터를 Better로 하자는 아이디어가 더해졌다. Better Re. 라는 기가 막힌 이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름이 정해지는 순간 다들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기발한 이름인 것 같다. 하여간 배터리(Better Re)라는 회사이름에는 기존 배터리를 재활용한다는 뜻 외에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신기용 대표의 창립 이념이 고스란히 배어들어갔다.

더 나은 세상, Better.Re.

배터리는 출발부터 좋았다. 기술은 이미 개발돼 있었고 디자인이 중요했는데 지난해 9월 레드닷디자인어워드를 받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엔젤투자 등을 제외하고 별도의 투자를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 대량 생산 등을 위해서 투자가 필요하다. 신기용 대표는 크라우드펀딩을 택했다. 최근 실시한 크라우드 펀딩에서 이미 첫날 목표한 5만 달러 중 3만 달러를 채웠다. 이후 2주가 지나면서 목표는 대부분 달성했다. 9월 이후 양산을 계획하고 있기에 추가적인 펀딩 등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시제품을 만들던 시점부터 각계 각층에서 연락이 오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심지어 탄자니아에 있는 한 소셜벤처기업으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그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먹을 걸 아끼면서도 휴대폰을 사서 쓴다고 하는데 충전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하더라구요. 폐배터리나 배터리 충전기를 활용한 다양한 사업이 가능한데 관련해서 얘기를 좀 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가 실제로 중고 배터리를 응용한 사업을 시작해보니 과거 태양광램프 시절 하지 못했던 그의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오히려 구체화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충전기로 쓸 수도 있지만 이 제품에 LED 램프를 달면 그가 생각했던 태양광램프를 대체하는 제품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인라이튼은 지금까지 상당히 순조롭게 보조 배터리(휴대용 충전기) 비즈니스를 해오고 있지만 앞으로는 예상되는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기존 보조 배터리와 경쟁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보조 배터리 가격은 5만원대 안팎이지만 중국산 저가 제품들이 몰려들어오면서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상당수 중국산 제품은 2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인라이튼의 제품이 이 가격보다 높게 형성될 경우 시장 진입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인라이튼은 초기 제품 가격을 49달러로 잡았는데, 물론 대량 생산하기 전의 가격이다. 앞으로는 가격 측면에선 상당히 낮춰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기술적인 장벽이 낮다는 것도 극복해야 하는 과제다. 다만 누구든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범용 제품이지만 병렬 방식을 적용, 사용 시간을 늘리는 등 추가적인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인라이튼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특허를 신청해 놓은 상태.

더 얇고 더 작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들고 다닐 때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이 회사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 확대.

시장을 선점하는 게 최우선 과제죠. 당연히 국내만 보고 있지는 않구요. 아마존 판매망도 개척하고, 개도국에 활발하게 진출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계획입니다. 개도국을 밝혀야죠. 그게 처음 사명을 지을 때의 뜻과 부합하는 것일 겁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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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씽은 스마트 화분 플랜티를 만드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분이 전부는 아니다. B2C 사업으로서 화분도 충분히 의미가 있겠지만 이 회사는 더 큰 시장을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큰 목표를 가능하게 한 것은 창업자의 사업에 대한 관심과 열정도 분명히 작용했지만 강렬한 경험과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깨달음의 영향이 더 큰 것 같다. 화분 판매에 그치지 않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 한국의 스타트업 일백여든다섯번째 주인공 엔씽의 김혜연 대표를 만났다.

독학으로 프로그래밍 배운 고등학생

고등학교 때부터 프로그램 짜는 걸 좋아했어요.”

김혜연 대표의 이야기는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올라갔다. 당시 학생 김혜연은 혼자서 컴퓨터를 공부해 홈페이지 등을 만들었다. 실력이 알려지다 보니 외주를 받아 웹사이트를 구축해주는 일도 했다고 한다. 학교 공부보다 이게 더 재밌었다. 대학 진학하는 것보다 이렇게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정도.

2001년 가을,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청소년벤처인연합회가 서울에서 출범식을 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된다. 당시 고향 이천에서 살고 있던 김혜연은 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다. 그리고 충격을 받게 된다.

분명히 고등학생들인데, 정말 다들 양복 빼입고 와서 명함 나눠주고 인사하고, 그야말로 사업가처럼 보이더라구요. 근데 사업 내용이 별 게 없는 것 같았어요. 홈페이지 제작, 웹호스팅, 등록대행 뭐 이런 거였죠. 저도 다 할 수 있는 것들이고 당시 하고 있던 것들이었는데 동년배들은 서울에서 사업으로 하고 있는 걸 확인한거죠.”

기가 죽었나요?”

우물안 개구리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그 뒤로 창업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게 된 게 소득이었죠.”

한양대 전자공학과 04학번으로 입학하고 그는 다양한 경험을 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들어가 매니저 일도 그 중 하나였다. “운전도 하고 스케줄도 짜고 온갖 일을 했죠. 기간은 고작 3개월에 불과했지만요.”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 갔더니 회사 문이 닫혀있더란다. 관계자 어느 누구와도 연락도 되질 않았다. 개인 카드로 회사 비용을 대신 결제한 게 있었는데 그 돈도 받을 길이 없어져버렸다. 막막해진 그는 아르바이트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다가 SK텔레콤에서 트렌드보고서 작성 보조 일을 하게 된다. 2008년의 일이었다.

이게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죠. 그 때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10, 20년후 트렌드 자료를 정말 열심히 봤거든요. 당시에 벌써 IoT(사물인터넷), 3D 프린터 이런 내용이 다 들어있었어요. 지금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현실이 되고 있는 사업들인데, 그 당시에도 이런저런 예측이 나와 있었던 거죠.”

물론 그가 여기서 좋은 정보를 얻었다고 해서 바로 사업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연처럼 이렇게 곳곳에서 엮인 관계와 정보가 나중에 사업을 시작하는데 결국 크게 밑거름이 된 것만은 분명했다. 당시엔 몰랐지만. 마치 그 누군가가 말한 ‘Connecting the dots’처럼.

우즈베키스탄에서 생긴 꿈

2009년 영국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2010년부터 그는 창업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일단 카페나 하나 차려봐서 사업에 대한 감을 좀 잡아볼까.’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던 그에게 친척 어른의 전화가 걸려왔다. “남자는 장사를 하는게 아니라 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일 배우라고 포천으로 오라고 하시더군요.”

이 어른은 경기도 포천에서 농자재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농자재의 시공 생산 유통을 모두 하는, 국내에서는 해당 분야에서 제법 큰 회사다. 그가 한 일은 우즈베키스탄에 농자재,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비닐하우스를 수출하는 거였다. 농업에 대한 사전 지식이 그에게 있을리 만무했지만 그는 비닐하우스 운영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농장 운영과 비닐하우스 및 식물 재배의 원리 등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농작물이 참 신기한 게, 생각보다 단순해요. 질소, , 칼륨 즉 NPK 세 가지가 식물이 섭취하는 핵심 영양소인데요, 이를 비롯해 중요한 영양성분을 어떻게 배합해서 공급하느냐에 따라 당도, , 탄성 등 식물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요.”

물론 이 배합을 실제로 적용해서 건강하고 맛있는 농작물을 키우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런 원칙을 알게 됐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우즈벡을 오가는 생활을 1년여간 하면서 그는 이 시장이 상당한 잠재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한국의 영농회사들이나 음식 관련 회사들이 재배시설은 잘 만드는데요, 식물을 잘 키우는 기술 쪽은 많이 연구를 안 한 것 같았어요. 특히 식물 재배는 일류 재배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그런 분야 사람이 별로 없었죠. 시설재배(비닐하우스 등) 면적은 세계3위일 정도로 엄청나지만 그에 부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짧은 기간 동안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했을 것 같지만 이 당시만 해도 그는 이것이 나중에 자신의 창업과 어떻게 연결이 될지 인과관계를 찾지는 못한 것 같다. 2011년 친척의 회사를 나온 그는 자신의 첫 창업에 도전하게 된다.

첫 실패 그리고 재도전

친구 두 명과 함께 처음 창업에 나선 김혜연 대표. 당시 그는 자신의 정보를 등록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자신의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놓고 사람들이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트북을 갖고 있고, 아이폰을 쓰며, 사진에 취미가 있어 고급 카메라를 보유하고 있다는 등 자신이 보유한 물건이나 현재 하고 있는 활동 등을 적다보면 그 사람의 취미나 성향 등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를 기반으로 재미있는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게 김 대표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시도는 보기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개발을 외주를 줬는데요, 정말 시간이 오래걸리더군요. 그때 생각했죠. 아 다시는 외주를 주지 말아야겠다고요. 아주 간단한 서비스 하나 만드는게 무려 7개월이나 걸렸습니다. 그리고도 결국 원하는 제품이 나오질 않았죠.” 결국 1년여만에 폐업했다.

개발을 외주로 준 문제도 있었지만 아이템 자체가 기획이 잘못된 거 아니었을까. 어쨌든 첫 실패 후 그는 한국전자부품연구원에 들어가 위촉연구원으로 활동을 했다. 20126월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약 1년간 있었다고 한다. 이때 그는 학교로 복귀해 수업도 들었다. 첫 실패의 교훈을 바탕으로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섭외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후배들과 인사하고 좋은 개발자를 수소문했다. 연구원에서는 IoT(사물인터넷) 관련 플랫폼을 만들고 연구원이 보유한 각종 관련 기술을 서비스화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다양한 경험들이 의미있는 시간들이 돼서 그의 창업이라는 하나의 결실을 맺는 중요한 밑거름이 된 것 같다. 그 순간에는 그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수 있지만.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듯했던 경험과 사건들이 연결되면서 그의 두 번째 창업 주제가 정해졌다. 그것은 화분이었다. 화분이 적절해보였다. 농자재와 관련한 그의 경험을 살리면서도 사물인터넷이 가능한 분야였다.

그는 화분이라는 아이템을 정하면서 이를 세 가지 각도에서 바라봤다. 서비스도 물론 그렇게 준비했다. 우선 앱. 식물을 키우는 과정을 기록하고 이것이 축적돼 거대한 데이터가 되면 서비스 전체를 풍성하게 할 수 있다. 그 다음엔 화분에 꽂는 센서. 누구나 화분의 식물을 잘 키울 수 있게 환경을 체크하는 센서다. 마지막으로 화분 그 자체. 항상 인터넷을 통해 스마트폰이나 다른 기기와 연결된 스마트 화분은 앱으로 제어가 가능하고 사람들에게 식물을 키우는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엔씽의 창업멤버들. 맨 왼쪽이 김혜연 대표.>

IoT, connection < contents

화분의 식물을 키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키우는 사람은 아주 드물죠.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경우가 사실 대부분입니다. 건조하게 키워야 하는 식물에게 물을 잔뜩 준다던가, 서늘한 곳에 놓아야 하는 식물을 해가 쨍쨍 내리쬐는 창가에 둔다던가 하면서 문제가 생기는 거죠. 엔씽의 서비스는 이런 사람들의 문제를 다 해결해줍니다.”

김혜연 대표가 서비스를 세 가지 차원으로 만든 것은 한 가지 방법만으론 화분을 키우는 고객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화분 관리를 하고 있는 고객으로선 앱만 갖고도 충분할 수 있다. 이 앱은 식물 관리를 하면서 기록을 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다. 화분의 상태는 물론, 식물의 종류, 관리방법, 날씨 등은 물론이고 이런 기록들은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공유하고 사람들에게 알릴 수도 있다. 이 앱은 이미 지난해 6월 출시됐다. 식물 키우는 과정을 기록하는 사람들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벌써 7700종의 식물 키우는 과정이 수록됐다.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앱이 활성화되고 유용해진다.

기존에 화분이 많이 있는데 자꾸 식물이 죽는 경우엔 센서가 유용하다. 블루투스로 휴대폰과 연결돼 스마트폰에 정보를 전달해준다. 이 정보를 받아 앱으로 관리를 해 나가면 된다. 이 센서는 곧 출시될 예정.

스마트화분은 하반기께 본격 출시된다. 화분이 없는 사람이라면, 화분과 센서를 별도로 구매할 필요 없이 엔씽의 스마트화분 Planty를 구매하면 된다. 항상 인터넷으로 연결돼서 어디서든 앱으로 제어가 가능하다. 필요한 시간에 물도 주고, 화분의 상태도 관찰할 수 있다. 이 모든 게 원격에서 제어된다. 단 와이파이가 있어야 한다. 집에 화분을 두고 직장이나 밖에서 화분을 관리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여러 분야의 인재가 필요했다. 센서는 이미 아이디어를 갖고 제품을 출품한 사람이 있었다. 2013년 레드닷디자인어워드에서 Best of the best 상을 수상한 정희연씨. 그가 디자인상을 수상한 제품이 바로 화분에 꽂는 센서. 그는 엔씽의 디자인 책임자가 됐다. 8년차 프로그래머 김준영씨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책임지고 있고 생산기술연구원 출신 백경훈씨는 하드웨어 개발을 책임지고 있다. 비즈니스는 Kenny Chung, 영업과 마케팅은 남세기 이사가 담당하고 있다.

엔씽은 이미 머스크앤젤클럽(MOUSQ), 스파크랩 등으로부터 45000만원의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그리고 최근 킥스타터에 런칭을 해 이미 목표 금액(10만 달러)을 달성한 상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엔씽의 회사소개서에는 ‘change the whole agricultural industry’라고 쓰여 있다. 화분으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B2B로 가려는 것이다. 개개인의 화분 소비 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농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 농업 혁명으로 가는 꿈까지 꾸고 있다.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IoT는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이죠. 하지만 커넥션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콘텐츠입니다. IoT 세상에서 오히려 인터넷 커넥션이 될수록 커넥션 자체는 별로 중요해지지 않죠. 화분에서도 농업에서도 콘텐츠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걸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겁니다.”

그의 말은 IoT의 정곡을 찌른 듯 했다. 이 회사가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정말 궁금해지지 않는가.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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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시작하기 전 무엇으로 창업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돈이 될 만한 일? 지금 뜨고 있는 아이템?

직장 생활의 경험을 통해 창업 아이템을 얻었거나 뭔가 분명한 동기가 있어서 특정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는 이들은 이런 고민이 상대적으로 덜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아이템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 없다. 이런 고민을 하는 많은 이들에게 이 사람의 사례는 상당한 참고가 되지 않을까.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이것을 왜 하는가를 놓고 그는 상당한 공을 들였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창업을 하다 자신의 일을 찾은, (DOT)의 김주윤 대표가 한국의 스타트업 일백여든네번 째 주인공이다.

百聞不如一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학생 김주윤. 그는 미국 시애틀의 University of Washington 사회과학대에 진학했다. 그는 처음부터 창업을 목표로 미국 유학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창업을 할 수 있을텐데요?

좀 더 큰 시장을 보고 싶었어요. 그런 시장에서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구요.”
그래서 그는 입학하고 학교 적응 기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창업 관련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창업 스쿨도 다니고 컨퍼런스도 할 수 있는 한 많이 참여했다. 그리고 2012년 첫 창업을 하게 된다.

창업스쿨 이런 곳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물론 많이 배웠죠.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스쿨 열심히 다니는 것보다 한번 창업하는 게 훨씬 낫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빨리 실행을 하자 이렇게 판단하고 창업했죠.”

그는 Founder Institute라는 창업스쿨에서 만난 인도출신 엔지니어와 함께 창업했다. 아이템은 링크트인과 유사한 네트워크 서비스. 이름하여 Dreams Linker. 그런데 얼마 안 가 문제가 생겼다. 공동 창업자인 이 엔지니어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모국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제품 개발과 기획을 책임졌던 인물이 사라져버리니 회사를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었다. 어이없게 첫 사업은 그렇게 끝났다.

그때 무슨 생각이 들던가요?”

이해는 됐어요. 하지만 처지가 비슷한 사람과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핵심 인재가 빠져나가니 사업을 그냥 접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도 처해보니 내가 핵심인재가 돼야겠다는 생각도 했구요. IT 분야에서 창업을 할 때는 개발이 핵심이쟎아요.”

그래서 그는 직접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대학가 중고물품 판매를 잠깐 했다가 이어서 또 다른 창업에 나섰다. 세 번째 아이템은 트럭판 우버라고 할 수 있는 ‘Wagon’. 학생들의 이사수요나 가구점들의 수요가 몰리는 시기에 트럭을 찾는 이들이 많은데 평소에는 남아도는 이들 트럭이 수요자들과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럴 듯한 생각이다.

트럭 드라이버들은 반겼다. 그런데 웬걸? 고객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트럭 렌탈 서비스라는 게 이미 있었어요. 고객들 입장에서는 그런 대체 서비스가 있으니까 저희가 새로 만든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성장에 한계가 왔고, 그는 이런 식으로 사업을 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온 마음을 다할일을 찾다

그는 그 동안의 사업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트렌디한 것만 찾아다닌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될 것 같은 사업, 이런 것을 찾아다녔던 거죠. 그런데 저에겐 열정을 다해 일 할 무언가가 필요했어요. 될 것 같은 사업을 찾아 내가 세운 가설을 검증해 나가는 그런 방식이 아닌, 오로지 그 업에 대한 열의에 가득차서 도전해 보고픈 그런 거요.”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는 우연처럼 찾아왔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중 클래스메이트 가운데 점자책으로 공부를 하는 한 여학생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의 책보다 2배 이상 컸고, 무겁고, 불편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점자책으로 나온 책도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 학생을 통해서 점자책 시장이 너무도 열악하다는 걸 알게 된 김주윤. 점자책의 불편함과 콘텐츠의 부족함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일을 해야겠다. 이 일이라면 사명감을 갖고 정말 열성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그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간절하게 찾던 동기였다.

사업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게 있어요. 필요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게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고, pain killer가 될 수 있는 그런 일을 반드시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자꾸 가설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 도움이 되는 것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이번에는 한국에 들어와 사업을 하기로 했다. 비자 문제로 외국인이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충분히 겪었기 때문. 바로 시장 조사에 들어간 그는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점자책 시장이 매우 왜곡됐음을 알게 된다.

전 세계 시각 장애인은 25000만명에 달하는데, 문맹률이 95%에 달해요. 읽을 만한 책이 우선 없어요. 출판된 책 중 점자책은 1%가 채 안되고, 한국은 0.1%도 안돼요. 일반 책을 점자책처럼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점자리더기가 있는데 이건 가격이 너무 비싸요. 보통 300만원대 정도? 그러다보니 점자를 읽는 법을 아예 배우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죠. 문맹과 실업, 가난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시각 장애인들에게 문자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기쁨을, 보행하는 자유를, 공부하고 발전하는 즐거움을,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기업이 되자. 그는 이런 목표를 정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흔히 말하는 점자책 리더기를 훨씬 저렴하게, 그러면서도 좋은 품질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로 했다.

<닷 창업 멤버들. 왼쪽에서 두번째가 김주윤 대표>

braille kindle 만든다

2013년말부터 조사에 들어간 그는 시장을 확신하고 지난해 법인을 차렸다. 회사 이름은 Dot(). 점자 관련 서비스를 하는 회사다운 이름이다.

우선 10만원(100달러)대 제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처음부터 당장 그 가격에 출시하긴 힘들겠지만 (현재 시중에 있는 점자책 리더기들은 200-300만원대다), 그래도 20만원대에서 출시하는 것은 처음부터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는 설명을 하면서 현재 개발중인 제품의 모델을 하나 갖고 와 보여줬다. 물론 작동은 하지 않는 제품이다. 손목에 차고 다니는 스마트워치와 흡사했다. 디스플레이 대신에 점자를 표시한다는 게 달랐다. 그 외엔 유사했다. 블루투스로 스마트폰 등 다른 기기와 연동되고 자체적으로 저장 기능도 있어서 녹음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각종 콘텐츠 등을 저장할 수도 있게 돼 있다. 블루투스 4.04GB 메모리칩이 장착돼 있다. 시계 기능은 당연.

저장돼 있는 전자책을 점자화해서 볼 수 있게 해 준다. 시각장애인들로서는 손목에 차고만 다니면 시간도 보고, 책도 읽을 수 있고, 필요한 내용을 녹음해서 쓸 수도 있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Braille kindle을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한 기본적인 설계와 기술 개발 등을 위해 아마존과 제휴도 맺었다.

이런 과정을 해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인재의 영입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쭉 들으면서 아니 과연 이런 엄청난 일을 이 분야에 아무런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냥 혼자서 공부하고 잠깐 남의 도움을 받는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나 현재 창업멤버 6명 중 3명이 이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회로설계 및 기구설계 전문가와 점자기술 전문가 등이 포함됐다. 소프트웨어 개발 등은 UW에서 김 대표와 함께 왜건 창업을 했던 Titus Cheng이 맡았다. 이런 기술자들의 협업을 바탕으로 Dot은 기존 점자책 리더들이 쓰는 점자 Actuator에 비해 크기는 20분의 1, 가격은 10분의 1로 낮출 수 있었다고 한다.

비싼 점자 기기를 살 수 없는 전 세계의 시각장애인 대부분(95%)에게 Dot을 공급할 경우 시장 규모만 15000억원에 달한다. 돈을 뭉치로 쌓아두고 있는 대기업도, 공익사업을 해온 공공기관도 하지 못했던(아니 하지 않았던), 이 어렵고도 지난한 작업을 작지만 큰 꿈을 가진 벤처기업이 해 낼 수 있을까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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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정오. 식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로 거리엔 온통 차가 뒤엉켜 있다. 유명 식당이 있는 건물 앞이나 골목길에는 진입을 하기도 힘들 정도로 차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슬쩍 끼어들기라도 하려다간 사방에서 삿대질과 경적을 각오해야 한다. 운전을 잘 하는 사람도 이쯤되면 짜증이 날 법.

이때! 어디선가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혼잡한 도로에 서 있는 한 차량으로 간다. 차주에게 차 키를 받아들고 차를 몰고 유유히 사라진다. 차주인 여성은 뒤엉켜있는 다른 차 주인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한 눈에 받으며 식당 안으로 표표히 사라진다.

이 여성은 주차대행 서비스 솔버에 연락을 했다. 솔버의 발렛파킹 전문가가 나와서 주차를 고민하는 이 여성 대신 주차를 해 준 것이다.

지금까지 주차난을 겪는 운전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겠다며 다양한 서비스가 나왔지만 이런 서비스는 처음이다! 처음 이 서비스의 개념을 들었을 때 별천지였다. 그래, 이런 생각도 가능하구나. ‘발상의 전환이라기보다는 한 분야의 고수가 내놓을 수 있는 해결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서비스를 만든 김정태 솔버 본부장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으면서 확실하게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문제의식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안을 만들었다. 일견 듣기에도 신선한 충격을 줄 만한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야말로 기존 시장의 판도를 흔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의 아이디어에 대해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분야든 혼신을 다해 그 분야에 매진하고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한국의 스타트업 일백여든세번째 주인공은 주차대행 서비스 솔버의 창업자 김정태 본부장이다.

발렛파킹 13년 경력자의 문제의식

김정태 본부장은 발렛파킹 분야에서 13년을 종사했다. 13! 한때 대리운전 사업을 하기도 했던 그는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발렛파킹 분야에 뛰어들었다.

처음에 그는 발렛파킹 일을 잠깐 하는 일로 생각했다고 한다. 계기도 우연히 이뤄졌다. 아는 식당에서 주차를 하려는 손님이 너무 많이 몰려 주차를 대신 해주는 일을 하다가 그 모습을 본 주변 식당에서 하나둘씩 요청이 왔다.

이거 사업이 되겠는걸?” 이렇게 생각한 그는 아예 사업자 등록을 하고 발렛파킹 사업을 시작했다. “‘주차대행이라는 사업자로 등록을 한 사람은 아마 제가 처음일걸요? 하하

발렛파킹을 하면서 그는 이 시장의 문제점을 알게 됐다. 우선 주차시설은 한정돼 있는데 차량이 늘어나면서 발렛파킹을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

청담동이나 압구정동 등 강남에서 사람들이 식당을 잡을 때 뭘 제일 먼저 보는지 아세요? 그 식당에 발렛파킹이 되는지를 확인합니다. 안되면 그 식당에 안가요. 발렛파킹이 되는지 보고 그 다음에 음식의 맛과 식당 분위기를 살펴볼 정도에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식당으로선 무조건 발렛파킹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비용이 만만치 않다. 식당은 발렛파킹 업체와 계약을 맺고 업체는 식당에 직원을 파견한다. 일반 고객들이 식당 등에 갔을 때 마주치는 발렛파킹 해주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1명을 쓰는데 매달 3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 고객이 많아지면 사람이 더 필요하다. 3명만 파견을 받아도 1000만원에 육박한다. 그런데 고객이 항상 많은 것은 아닐 터. 분명히 식사시간, 밤 시간 등 특정 시간대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

고객이 몰릴 때는 주차대행해주시는 분들을 여러명 고용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1명만 고용하고 이렇게 하면 좋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발렛파킹 용역업체들이 그렇게 탄력적으로 운영을 하질 않아요.”

비용이 부담이 되다보니 대부분의 발렛파킹 운영 매장에서 비용의 일부를 고객에게 받고 있다. 발렛파킹을 하면 1000, 2000원을 내는 게 이런 경우다. 서비스 품질 관리가 되지 않는 것도 그가 발견한 문제점. 용역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하게 운영되다보니 친절한 발렛파킹 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왜 고객이 주차창을 찾아 헤매야 하는가!

2012년부터 김정태 본부장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발렛파킹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싶어도 비용부담 때문에 못하는 음식점, 매장들이 많아요. 그런 집 중에는 정말 맛집도 많고, 발렛파킹을 제외하면 다른 서비스가 훌륭한 곳도 많죠. 그런 곳이 발렛파킹이 된다면 고객도 좋고,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도 득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가 볼 때 문제 해결은 간단했다. 고객의 입장에서 가장 편한 것이 무엇일까. 식당을 갈 때 발렛파킹이 되는지 미리 알아보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고, 어딜 가든 편하게 주차를 맡기고 들어가는 방법. 그 고객이 있는 곳에 주차를 대신 해주는 사람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주차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한 서비스들이 많이 나왔더라구요. 그런데 그건 고객에게 수고를 전가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고객에게 식당 근처 주차할 건물을 찾아준들 결국은 그 고객이 그 건물을 찾아서 가야하는 거거든요. 고객으로서는 주차장을 찾아야 하고, 차를 대고 나와서 다시 걸어서 자신의 본래 목적지(식당이든, 백화점이든)로 가야하는 거죠. 주차 공간이 있다고 해서 갔다가 허탕을 치는 경우도 많구요.”

왜 고객이 주차장을 찾아 헤매야하는가!’ 이게 그의 서비스 정신이다. “주차는 전문가에게 맡기시면 되요.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주차 때문에 망치거나 주차 때문에 만남의 시간이 줄어들어서는 안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2012년부터 이런 생각을 했지만 구체화되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일단 앱 개발이 쉽지 않았다. 제가 워낙 이런 분야에 전혀 아무런 감이 없어서요, 처음엔 외주를 맡겼죠. 그래서 앱이 나왔지만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두 번을 엎었어요. 결국 지금의 창업팀을 꾸리고 나서야 앱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직접 만들어야되더라구요.”

회사명, 서비스명은 솔버(Solver)로 정했다.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뜻. 솔버를 실행하고 마치 우버를 쓰듯 내가 가는 매장 위치를 클릭한 뒤 서비스를 요청하면 끝이다. 그러면 해당 장소에 주차대행자, ‘솔버맨이 달려온다. 키를 맡기고 그냥 가면 된다. 나올 때 다시 솔버맨을 부르면 차를 몰고와 갖다 준다.

앱을 만들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주차대행을 할 만한 선수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의 경력으로 이 부분은 어렵지 않게 해결됐다. 창업멤버도 구성됐다. IT 분야 경영 경험이 있는 길아성씨가 대표이사를 맡았고, 소셜커머스 플랫폼 등을 개발한 경력이 있는 이정욱씨가 CTO(최고기술책임자), 영업 및 운영은 오경석 COO가 맡았다. 김정태 본부장은 주차대행 현장을 총괄하는 책임자다.

주차가 끝이 아니다

초기엔 서비스 안착을 위해서 강남 일대를 서비스 지역으로 정했다. 하지만 서비스를 강남에만 국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단다. 그가 추산하기에 서울 시내 주차 대행 서비스 시장만 1조원. 강남에만 매일 200만대의 차량이 출입한다. 서울 시내 뿐 아니라 에버랜드, 종합운동장(야구장) 등 차량과 인파가 몰리는 곳은 어디든 서비스 대상지다.

솔버는 편리하기만 한 게 아니다. 차를 맡기면 1시간 기본 이용료가 5000. 2시간이면 8000원이다. 1시간 이후로는 10분에 500원이니까 강남에서는 그냥 기본 주차장 이용 금액 정도밖에 안된다.

주차를 대신해주는 것이 끝이 아니다. 바쁜 고객은 차를 맡기면서 다른 일도 처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엔진오일을 간다던가, 차량 정기점검을 한다던가, 세차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비만 부담하면 끝.

카드사나 커피매장과 제휴를 해 포인트, 할인쿠폰 등을 발급하는 것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식사를 하고 커피 한 잔 하러 이동하려는 사람이 많다. 솔버를 이용하면 차는 그대로 두고 할인쿠폰을 받아 저렴하게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서비스 신뢰를 위해 솔버는 고객이 솔버맨을 부르면 주차대행을 해주는 사람의 이력과 사진을 띄워준다. 얼굴 확인을 하라는 뜻이다. 차량을 받으면 계기판, 미터기, 기름 게이지 등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준다. 차량에 흠이 있는지 없는지 등도 미리 알려줘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한다.

등록 승용차 수가 2000만 대를 넘겼다고 하고, 차가 너무 많다고들 하죠. 하지만 그래도 주차 공간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걸 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합니다. 이제 주차 걱정은 하지 마시길.”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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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살 없는 몸매, 짧은 머리, 반듯한 자세. 한 눈에 보기에도 그는 운동을 제대로, 오랫동안 해 온 사람임에 분명했다. 게다가 전공까지 체육교육이었다고 하니 무슨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랴!. 이런 사람이 수년간 했던 평범한 직장인의 생활을 그만두고 자신의 전공인 단련과 몸관리분야에서 창업을 했다. 오랫동안 그는 몸이 아파보기도 했고, 이론과 실제에서 체육을 공부하기도 했으며,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 수상을 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살을 빼기 위해, 건강을 지키기 위해, 그 밖의 다양한 이유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나 피트니스센터를 이용하면서 겪는 애로사항 등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 않을까. 퍼스널트레이너와 고객을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 헬로마이코치를 개발한 바디온 조재현 대표가 주인공이다.

길을 찾아가는 여정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학과 01학번으로 입학한 학생 조재현은 신체 단련과 이를 통한 건강한 생활에 본래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재학 중 허리를 다친 경험이 그에게 건강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는지도 모른다.

허리를 다치고 1년 가까이 아무것도 못했어요.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정말 노력을 많이 했죠. 운동을 꾸준히 한 것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사범대에서 체육을 전공으로 할 때만 해도 체육 교사 생각이 없었을 리 없겠지만 체육 교사의 TO 문제 등 현실적인 고려를 하지 않았을까. 체대 입시학원에서 애들을 가르치며 자신감이 붙은 그는 서울대 후문 낙성대 쪽에 체대입시학원을 차리기도 했다.

입시학원 원장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군 복무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 병역을 위한 신체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은 그는 운동을 해서 신검 재검을 받고 기어이 ROTC(학군단)로 군에 갔다. 1사단 DMZ에서 복무를 마치고 나와 그가 택한 진로는 뜻밖에 대기업 입사.

체대입시학원을 같이 창업한 친구가 전담해서 하게 되면서 저는 지분을 다 정리하고 나왔죠. 그리고 일단 대기업에 입사해 일을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2008년 통신업체 LG유플러스에 입사해 영업지원 업무를 했지만 그의 기본적인 관심사는 절대 변하지 않았다. 2010Men’s Health에서 주최하는 이른바 몸짱대회에 출연해서 쿨가이로 입상이 되기도 했다.(1200명 지원자 중 단 25명이 입상을 했다고 한다.)

본인이 매일같이 운동을 하러 피트니스센터에 다니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대회에도 나가는 등 열성을 보이면서 그는 이 시장의 문제점이나 현실적인 어려움도 속속들이 알게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을 갖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항상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건강관리, 몸매가꾸기, 신체단련 등의 활동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두가 불만족인 시장

그는 우선 퍼스널트레이닝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향후 유망한 사업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몸매관리 및 건강증진 등의 목적으로 퍼스널트레이닝(코치와 함께 피트니스센터 등에서 운동을 하는 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서울에만 100만명에 달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숫자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물론 지방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면 숫자는 훨씬 커진다.

그런데 고객들과 트레이너 모두 불편과 불만이 가득하다는 게 현 퍼스널트레이닝 시장의 문제점. “고객들은 자기에게 맞는 트레이너를 찾는 게 중요한데 그런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은 거죠. 막상 만나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트레이너가 갑자기 그만두거나 사라지는 등 황당한 일이 많아요. 트레이너들 입장에서도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데 무작정 나가서 전단지를 돌린다고 될 일이 아닌거죠. 자신만의 장점이나 특기, 매력 등을 어필하기도 쉽지 않구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트레이너들의 실력이 너무나 천차만별이라는 데 있다. 고객들이 진짜 전문가나 실력있는 사람을 검증하기 어려운데다 국가에서 주는 공통된 자격증 같은 게 없기 때문에 누가 실력있는 트레이너인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트레이너를 만난다는 것은 운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는 것.

당연히 소비자들의 불만이 많다. 소비자보호원 등에는 트레이너나 피트니스센터 관련한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트레이너(강사)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자신에게 맞지 않는 강사를 만날 확률이 높고 환불이 안되거나 결제 관련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방법이 뭐가 없을까. 대기업을 다니면서도 틈틈이 몸짱 대회에도 나가고 계속 운동을 하면서 시장을 면밀히 보던 조재현 대표는 강사와 운동을 원하는 고객을 매칭시켜주는 서비스를 고안해냈다. 일정 기간 이상의 운동 경력에 자격증을 갖고 그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창업멤버들과 함께 최근 LG유플러스를 나와 바디온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퍼스널트레이너를 찾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헬로마이코치’(Hello my coach)라고 이름붙인 서비스를 개발했다. 서비스는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서비스 개시에 앞서 그는 피트니스센터를 확보하기 위해 현재 영업을 다니고 있다.

코치-소비자 단순 매칭을 뛰어넘어

헬로마이코치는 기본적으로 강사가 자신의 스타일 등을 기록해 등록을 하면 이를 원하는 소비자와 연결해주는 시스템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집이나 회사 등 주된 거주지 근처에서 피트니스센터를 검색한 뒤 원하는 스타일의 트레이너를 찾으면 된다. 바로 결제까지 되기 때문에 편하다. 결제는 에스크로 방식이어서 먹튀도 예방할 수 있다는 설명.

이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있고 신뢰할 수 있는 트레이너의 등록. 바디온에서 피트니스센터를 다니며 영업을 하는 것도 이런 실력있는 트레이너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다.

바디온은 피트니스센터와 계약을 맺고 각 트레이너들이 개별적으로 헬로마이코치 시스템에 등록을 하는 방식. 그런데 바디온은 트레이너들의 실력 검증을 반드시 한다는 방침. 예를 들어 자격증을 반드시 보유해야 하고, 특히 자격증 3개 이상 보유자는 우대하며 경력은 최소 2년 이상, 체육 전공을 할 경우 고객들에게 추천될 확률이 높아진다.

고객들은 다양한 스타일의 코치들 중에서 원하는 코치를 선택할 수 있다. 코치들의 전공 분야도 다양하다. 다이어트에 특화된 코치부터, 팔뚝살제거반, 여신제조기 등 각양각색. 스타일도 스파르타식, 센스쟁이, 긍정적인 스타일 등 구분돼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의지박약이고 다이어트를 하는데 강한 리더십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다이어트 전공에 스파르타식 코치를 선택하면 된다.

스스로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코치를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코치매니저도 운영할 계획이다. 영양사 분야를 공부한 사람들도 배치해서 식단을 관리해주는 것도 가능하게 한다는 방침. 결제까지 바로 진행되고 결제한 회원은 리뷰도 남길 수 있고 헬로마이코치의 관리도 받게 된다. 결제한 금액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기 때문에 수익모델은 확실한 편.

지금 서울만 따져도 퍼스널트레이닝(PT) 시장이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성장성도 크다고 판단합니다. 기업들의 임직원 복지프로그램 등과 연계할 여지도 많구요. 단순히 코치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수준을 넘어 헬스케어, 웨딩, 각종 스포츠와의 연결프로그램 개발 등을 통해 사업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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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확실히 일상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그렇고, 스타트업 창업 과정에서도 그렇다. 성공을 거둔 사람의 공통점은 실패를 통해 그 자리에 왔다는 것이고, 아직 성공에 이르지 못한 이들도 공통점은 여전히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계속 시도할 수 있다면 행운아다. 언젠가 반드시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의 기회는 오기 때문이다. 계속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는 게 어려울 따름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일백여든여덟번째 이야기는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계속 도전해가며 성공의 확률을 높이고 있는 한 창업가의 스토리다.

소셜네트워크 보면서 창업의 꿈

한국외국어대학교 98학번으로 입학한 박우람은 대학에서 음악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일어과 2년 후배인 박정우를 만났다. 음악을 좋아한 공통점 때문에 둘은 자주 어울렸고 학교를 떠나서도 관계가 지속됐다.

음악을 좋아하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대한 관심 때문에 첫 직장으로 JYP를 선택한 박우람. 이 곳에서 그는 아티스트들에 대한 관리, 신사업 개발 등의 업무를 했다고 한다. 대학 후배인 박정우는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네이버에 입사했다. 친분을 이어간 두 사람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더 자주 만났다. IT(정보기술) 분야와 크게 관련이 없었던 박우람이 이쪽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첫째는 박정우와 만나서 대화를 한 덕분이고 둘째는 그가 회사에서 신사업 개발 업무를 맡으면서 IT쪽으로 업무를 넓혀나갔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때 이들에게 창업의 영감을 준 것은 영화 소셜 네트워크였다. 마크 저커버그가 친구들과 함께 대학 재학 중 창업하는 초기 스토리를 다룬 이 영화를 보면서 이들도 창업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2010년 겨울부터 두 사람은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네이버에 다니고 있던 박정우가 스타트를 끊었다.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해서 사진 등을 주고받는 일종의 SNS가 주된 아이디어였다. 20111년간을 꼬박 사업을 준비한 이들은 20124월 법인을 설립하고 첫 서비스를 출시했다. 마그나랩의 창업이다. 박정우는 직접 네이버 출신 직원 10명을 설득해 함께 창업멤버를 꾸렸고 박우람과 네이트 출신의 다른 개발자들이 합류해 창업멤버가 꾸려졌다. 박정우가 대표를, 박우람이 CFO를 맡아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첫 서비스는 잘 안됐다.

<마그나랩 창업멤버들>

뭔가 될 것 같은데...

아이디어에 대한 고민도 상당한 기간 동안 했고, 개발자나 기획,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서비스가 처음에 잘 안풀렸다. 왜 그랬을까.

일단 창업자가 너무 많은 게 문제였다.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각각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 융화되기 힘들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은 많았다.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너무 다양했다.

물론 이런 문제점이 있다고 해서 사업을 그냥 접을 수는 없다. 사업은 사업대로 계속 돌아가야 했다. 이들은 첫 개발작의 시장 반응이 썩 좋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다른 시도를 했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진저장서비스, ‘옐로리본(Yellow ribbon)’이라는 위치기반 메시지 서비스 등도 출시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는 것을 계기로 늘어나고 있는 전국의 게스트하우스를 엮어서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출시하기도 했다. 성적표는 다 고만고만했다.

성적이 신통치 않은 가운데 첫 서비스가 출시되고 1년여만에 열대여섯명에 달했던 창업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떨어져나갔다. 지금은 4명이 남았을 뿐이다. 출시작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자금 운용에도 어려움이 생겼다. 결국 서비스 개발을 하면서도 외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공들여 만든 서비스가 왜 잘 안됐을까. 잘 될 듯 하면서도 결국 시장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고객의 마음을 얻기는 정말 어려웠다. 비즈니스 모델이 아직 검증이 안 된 가운데 비슷한 서비스들이 많아 차별화를 하기도 어려웠다. 고심하던 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에서 다시 승부를 보기로 결심한다. 본래 음악동아리에서 만난 이들이니만치 음악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기존 음악을 활용한 서비스에 주력하는게 아니라 음악과 영상을 결합한 서비스를 만들기로 했다. 물론 SNS 기능도 들어갔다. 이들의 다섯 번째 작품 콜라보는 이렇게 앞선 네 번의 실패를 딛고 태어났다. 2013년말부터 준비한 이들의 다섯 번째 서비스 콜라보는 8월 출시됐다.

동영상 글로벌 플랫폼 꿈꾼다

콜라보(Collavo)는 쉽게 말해 동영상 촬영도구다. 그냥 동영상 촬영도구라고 하면 기존에도 이미 많이 존재한다. 콜라보는 모바일 비디오 제작에 최적화된 도구. 8초에서 32초의 짧은 동영상을 음원으로 꾸밀 수 있게 해 주는 앱이다. 실시간 콜라보레이션 기능이 특징. 내가 촬영한 영상 뿐 아니라 나와 연결돼 있는 다른 사람들, 예를 들어 가족이나 친구가 촬영한 동영상을 나의 콜라보앱에서 불러와 하나로 합쳐 하나의 완성된 동영상을 만들 수도 있다. 페이스북과 연동이 돼 있어서 친구를 불러서 같이 촬영한 뒤 각자의 위치에서 촬영한 영상을 미리 지정한 디렉터폰으로 전송하면 디렉터는 마치 영화감독처럼 이런 영상을 합치고 편집해 마음에맞는 영상으로 다시 만들면 된다.

영상의 분위기를 다양하게 바꿀 수 있는 이른바 필터 기능이 30개나 돼 자신의 개성에 맞는 동영상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영상을 갖고도 강렬한 느낌 또는 로맨틱한 느낌의 동영상을 만드는 식이다.

시대가 영상으로 가고 있다는 점, 사람들이 영상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있다는 점 등은 서비스가 가진 긍정적인 포인트. 하지만 이번에도 경쟁자가 존재하고 이런 경쟁자에 비해 좀 늦게 나온데다 특히 초기 자금 부담으로 적시에 마케팅을 진행하지 못한 부분은 약점으로 볼 수 있다. “2013년말부터 개발을 진행했는데 2014년초에 스냅무비라는 경쟁사 제품이 먼저 나왔어요. 다행히 콜라보와 같이 여러 영상을 하나로 합쳐서 새로운 영상을 만드는 기능은 없어요. 우리만의 차별을 잘 부각해야 하는게 숙제죠.”

글쎄..차별점도 차별점이지만, 일단 편하고 재미있게, 쉽게 쓸 수 있다는 인식 확산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실제로 에러가 최소화되야 하고 직관적으로 쉽게 쓰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부각될 필요가 있다.

박우람 CFO는 공식적으로는 재정을 맡고 있지만 스타트업의 특징답게 안팎으로 온갖 업무를 다 하고 있다. “예전에 다음카페 시샵, 운영자 등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그때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카페로 키우는 경험을 해 봤죠. 그런 경험을 살려서 SNS를 활성화시키고 사람들이 모이는 그런 앱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그냥 사람들이 모이는 앱이 아니다. 마그나랩은 콜라보를 동영상 기반의 플랫폼으로 만들고자 한다. 지난달부터는 소비재 기업들과 제휴를 맺고 일반인들이 해당 기업의 광고를 찍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일반인으로서는 거대 기업의 제품 광고를 자신이 만들어본다는 재미요소가 있고 기업으로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생각지 못했던 광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잘 된 작품은 온라인 등에서 해당 기업 제품의 광고로 활용될 수도 있다.

예전에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서 창업을 꿈꾸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지금 와서 보니 의지나 배경만 갖고 사업을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현실은 쉽지 않지만 요즘 소비자들이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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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을 하든 못하든 우리는 살면서 정말 온갖 것을 거래한다.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 친구 숙제를 해주는 대신 딱지를 받았다던가, 중학교 때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고 드래곤볼 만화책을 빌려봤다던가 하는 사소한 일상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마찬가지다. 다만 인터넷이 발달하고 모바일이 일상화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주변 지인 수준을 넘어서 거래 상대방을 보다 광범위하게 찾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개인이 제공할 수 있는 일상의 다양한 서비스(번역, 디자인, 심지어 고민들어주기 등)를 연결해주는 사이트도 많이 등장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오투잡이 이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자신이 뭘 제공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이들에게 가이드 역할까지 한다는 것이다. , 직접 시장을 창출해나가는 기능이 있다. 그 외에도 차별점이 있지만 이것은 글을 읽으면서 찾아보시길. 한국의 스타트업 일백여든번째 주인공은 오투잡 최병욱 대표다.

일찌감치 겪은 시행착오

학생시절 최 대표는 음악을 사랑했다. 음악을 좋아하고, 예술이 하고 싶어서 예술대학에 갔다고 한다. 하지만 웬걸, 계속 할 자신이 없었다. 막상 그 분야에 가보니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동안 방황도 하고 고민도 했던 그는 제대를 한 뒤 정말 우연처럼 창업의 세계에 들어오게 된다.

친구의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하던 도중 쿠폰을 싸게 팔면 돈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들 좋은 생각이라고 했죠. 그래서 음식점, 매장 등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는 쿠폰을 할인판매하는 일을 준비했어요.”

2009년의 일이었다. 아직 소셜커머스가 국내에서 본격화되기 전이었다. 그런데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사업의 과정은 더디기만 했다.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이 해는 훌쩍 넘어가고 티켓몬스터를 비롯해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준비가 부족했음을 자인할 수 밖에 없었다. 계약을 맺으러 매장을 다녔지만 이미 한발 앞선데다 막강한 영업력을 갖춘 소셜커머스업체들이 이미 시장을 장악한 뒤였다. 결국 그의 첫 창업 시도는 시작하자마자 끝나고 말았다.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창업에 도전했다. 이번엔 북장터라는 중고책 거래 사이트. 자신의 대학생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전공 서적이 정말 비싸더라구요. 자기가 벌어서 책을 사야 하는 학생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생각이 비슷하면 다 본 전공서적을 싸게 팔면 서로 이득이 될 거라고 본거죠. 주변에 보니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거래하는 사이트는 아무도 안 만드는 거에요. 제가 스스로 이건 너무 불편하다 싶어서 직접 사이트를 만들었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북장터는 제법 번창했다. 수 만권의 중고 전공서적이 등록되고 거래가 늘었다. 경진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고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도 받았다. 좋은 아이디어라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북장터의 교훈

축적된 DB와 늘어나는 거래. 커머스사업 활성화의 이상적인 조건을 갖췄지만 문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돈을 벌려면 결제 기능을 붙여야 했고 에스크로, 고객응대시스템, 콜센터, 판매자 관리, 환불 등 다양한 부가 기능이 필요했다. 그는 결제 기능을 붙이면 사용자가 줄어 학생들이 간편하게 누구나 어디서나 전공서적을 싸게 사게 하겠다는 본래 목적이 훼손된다고 생각했다반면 결제기능이 없으니 일부 광고 외에는 돈을 벌 방법이 없어 사용자는 늘어나는데 관리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딜레마에 빠진 것도 맞지만, 본격적으로 사업을 할 수 없거나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닐까. 갖춰야 할 게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거꾸로 보면 답이 분명하기도 했다. 어쨌든 당시에 그는 답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 사이트를 그대로 운영하고 있지만 비영리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 대학생들의 전공서적 거래 사이트로 남겨둔 것이다. 대학생들은 북장터에서 정보를 확인하고 학교에서 만나 직접 물건을 확인하고 거래를 하기 때문에 사이트는 정보창구의 역할만 할 뿐 결제는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경험을 하면서 사업에서 필요한 것들에 대한 감을 익히지 않았을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경험으로 배우면서 한 발씩 더 나가는 게 그의 창업 과정의 특징.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31월 오투잡을 창업했다.

오투잡의 아이디어는 다양한 재능거래에 대한 관찰에서 나왔다. “인터넷 카페같은 곳에서 '5,000원에 모닝콜 해드립니다', '5,000원에 포토샵 해드립니다' 등의 글들이 올라오고 그것이 거래되는 것을 봤어요. 실물이 아닌 이런 무형의 서비스도 웹 사이트로 만들어서 '신뢰성 있는 중계역할을 해주면 좀 더 안전하게 거래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게 됐죠.”

그는 단순 거래 사이트에 그치지 않도록 여기에 하나의 비전을 붙였다. ‘나의 두 번째 직업’. 그래서 이름이 오투잡(O two job)이다. “하기 싫은, 시간 때우는 직장 일이 아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고, 그것이 직장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꿈을 갖게돼 오투잡을 시작했습니다.“

잘 하는 일로 돈도 벌 수 있는 세상.

최병욱 대표는 오투잡을 시작하면서 한 가지 원칙을 분명하게 했다. 수익모델이 있는 사업을 하겠다는 것. “힘들게 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확실하게 수익이 나는 일을 하자고 했어요. 북장터를 하면서 얻은 교훈인 셈이죠.”

기존에도 개인의 여러 가지 재능을 거래할 수 있는 창구는 존재했다. 대신 번역을 해 준다던가, 교정을 봐 준다던가, 글을 써 준다던가, 포토샵, PPT 자료 등을 대신 만들어주는 일 등이 그것이다. 오투잡이 이런 기존의 창구와 다른 점은 판매자에 대한 깐깐한 검증 절차를 거친다는 점과 결제를 편리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실물거래 오픈마켓으로 지마켓이 있다면 서비스거래엔 오투잡이 있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

최 대표가 세운 서비스 철학은 세 가지. (1)웹 사이트가 단순해도 좋으니 최대한 직관적으로 만든다. (2)오투잡과 판매자, 구매자간 신뢰구축이 최우선. (3)소비자 의견을 즉시즉시 반영한다.

특히 그는 재능을 거래하는데 판매자에 대한 신뢰를 검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이를 위해 프로필 인증제도를 구축했다. 예를 들어 번역 판매자라면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졸업’, ‘토익 985’, ‘책 번역 경험등의 이력을 증서로 보내주면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런 검증 절차로 인해 등록요청된 판매건의 절반만 승인을 받아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안전한 거래를 위해 에스크로 서비스도 제공한다. 거래와 각종 문의, 주문 사항 등을 문자로 알려주는 등 북장터에서 하지 않았던 편의와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다. 창업한 지 2년여만에 현재 월 거래 건수는 3000건을 넘어섰고, 거래액은 1억원을 돌파했다. 디자인 전공인 한 회원은 오투잡 사이트를 통해 로고제작으로 매월 200만원 가량의 수익을 내는 등 성공사례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직장이 있는 사람들은 오투잡을 두 번째 직장으로, 대학생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수익을 벌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만들겠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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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입장에서 쇼핑할 때 중요한 것은 역시 '정보'다. 가격 정보, 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 각종 이벤트나 행사에 대한 정보 등등. 그러다보니 쇼핑 분야에서는 항상 제품을 직접 팔고 사는 거래와 물류, 유통 못지 않게 정보를 모아 보여주고 비교하는 사업도 번창해왔다. 하루하나 정성민 대표는 쇼핑은 DB와 마케팅 싸움이라는 생각을 갖고, 직접적인 거래보다는 메타사이트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일을 주로 해 왔다. 시장을 먼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시장 선도자의 문턱에서 미끄러졌던 그가 이번에는 모바일 분야의 라이브홈쇼핑을 들고 나왔다. 

10년 간의 대기업생활 끝에 첫 창업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 90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한 정성민 대표. 그는 막연하게 창업에 대한 동경을 가진 채 한동안 평범한 직장생활을 해 왔다고 한다. 졸업하고 몇몇 기업을 거쳐 SK에너지에 들어간 그. 때는 2002년이었다. 이른바 굴뚝 기업에 들어갔지만 그가 소속된 파트는 인탠저블사업부. 그야말로 뭐라 설명하기 힘든, 무형의 사업을 담당했다는 뜻인데, 손에 잡히고 눈에 훤히 보이는 일을 주로 하는 전통 산업체에서 그런 분야의 일을 했다는 것은 신규사업 발굴을 했다는 뜻이다.

에너지 회사에서 무슨 신규사업을 발굴했을까. 대표적인 게 엔카닷컴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니 감이 온다. 회사의 기존 사업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차원에서 온갖 시도를 했을 것 같다. 그 덕에 그는 IT(정보기술) 분야에서 간접적인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는 일을 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언젠가 이런 것을 현실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대기업에서는 의사결정 과정이 오래 걸리는데다가 회사에서 정한 사업상의 순위, 중요도 등에서 밀리면 썩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하더라도 그냥 묻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아까웠죠. 정말. 아이디어만 갖고 사업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고. 특히 보고서로만 남기고 그냥 끝나는 일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 심해졌죠.”

결과적으로 수많은 아이디어 기획을 하고 이것을 보고서로 작성하는 과정에서 현실화하고픈 욕구가 들었다는 것. 특히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쇼핑 분야였다. 그 자신이 쇼핑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의 가능성이었다.

디지털 시대에 수많은 사업 아이템이 있겠지만 저는 게임, 광고, 그리고 커머스 이렇게 세 가지를 핵심으로 봤어요. 여전히 진화하고 있고 사업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 이 중에서 제가 도전해볼 만한 분야로 커머스를 택한 거죠.”

2009. 대기업 직원이었던 정성민은 회사를 나와 자신의 첫 벤처기업을 차렸다. 하루하나의 탄생이었다

반복되는 시행착오

그가 하루하나를 창업하는데 동기부여를 한 것은 그가 회사를 나오기 2년 전 쯤 등장한 원어데이라는 쇼핑몰이었다. “하루에 한 가지 물건만 집중적으로 판매한다는 컨셉이었죠. 시장이 될 거라고 봤어요. 아직 초창기여서 경쟁은 심하지 않았고, 직접 그런 사이트를 만드는게 아니라 메타사이트를 만들면 시장 안착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본 거죠.”

그의 생각대로 초기 시장은 순항했다. 순식간에 하루에 한 가지만 파는 쇼핑몰 수십개가 등장했다. 급성장에 아찔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생각보다 시장이 더 커지질 않은 거였다. 시장이 커지질 않으니 규모의 경제가 불가능했고 비용 절감도 쉽지 않았다.

하루에 한 가지만 판다는 컨셉이 처음부터 시장이 확 커지기 어려운 구조였던 것 같아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시장을 확대할 방법을 생각해야 했을 터. 하지만 빠르게 입소문을 타면서 내부 이슈가 많아져 그런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는 대응이 빨랐다. 하루에 한 가지만 파는 개념으로는 안된다 싶은 그때 소셜커머스가 주목을 받자 소셜커머스 메타 사이트로 변신을 시도했다. 2010년 여름부터 붐이 일기 시작한 소셜커머스의 원조격이 하루 한 가지만 파는 원어데이와 같은 쇼핑몰이었기에 변신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남보다 빨리 치고 나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심지어 이제 모바일쇼핑 시대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남보다 한 발 앞서 움직였다.

“20103월에 하루하나 앱을 런칭했어요. 그리고 바로 전체 앱 순위 7위까지 오르기도 했죠. 사실 2009년말에 하루 한 가지 쇼핑몰로는 답이 안 나온다고 판단했어요. 빨리 움직인 편이죠. ”

적시에 움직인 덕에 2010년부터 2011년 상반기까지 전성기를 달렸다. 하루하나의 뒤를 이어 쿠차, 쿠폰모아 등 소셜커머스 메타사이트들이 나왔지만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시장의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였다. 소셜커머스 사이트들이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메타사이트란 경쟁하는 서비스업체들이 많아야 반사이익을 많이 누릴 수 있다. 각 소셜커머스 서비스들을 한데 모여서 보여주려면 업체들이 많을수록 좋은데 티몬, 쿠팡, 위메프 등 빅3를 중심으로 시장이 정리되면서 메타사이트 분야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이다.

대응도 제때 하지 못했다. 개발 문제도 컸다. 정 대표는 아이폰이 한국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2011년을 기점으로 안드로이드마켓이 시장을 휩쓴 것이다. 아이폰 앱스토어에 최적화된 개발 인재만 보유하고 있던 하루하나는 뒤늦게 안드로이드 개발자를 충원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보다 늦게 들어온 후발주자들이 오히려 기민하게 대응하면서 하루하나는 그들에게 고객을 빼앗겼다. 한때 1위를 달렸던 하루하나 앱은 순식간에 3위로 추락했다.

모바일 홈쇼핑, 아직 기회는 있다!

한때 10명 가까이 불었던 직원은 다시 3명으로 줄었다. 풀타임 직원으로 하면 그와 핵심개발자인 CTO 두 명만 달랑 남았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모바일에서 다시 기회를 봤다. 모바일에서도 일반적인 소셜커머스가 아닌 홈쇼핑이 급격하게 성장할 것이란 게 그의 예측이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03000억원대에 불과헀던 모바일쇼핑 시장 규모는 20116000억원, 201217000억원 등 급성장하고 있다. 2013년에는 4조원에 육박했고 2014년 올해 시장 규모는 10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홈쇼핑 시장의 성장세는 괄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홈쇼핑업체인 GS샵의 경우만 봐도 PC, TV, 카탈로그 매출 등은 대부분 정체되거나 감소추세에 있는데 비해 모바일쇼핑 분야의 매출만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20배가 넘게 거래가 늘었다.

원래 정 대표는 20124월 하루하나 모바일 앱에 처음 모바일홈쇼핑 서비스를 넣는 시도를 했다. 그런데 당시엔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고객군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소셜커머스는 20,30대가 위주인 반면 홈쇼핑은 30, 40, 50대가 주 소비자층이고 대부분 여성이다. 특히 여성의 비중이 80%는 웃돈다.

그는 이런 여성 유저들을 타깃으로 한 라이브홈쇼핑 서비스 앱을 올 3월 출시했다. 6개 홈쇼핑사의 상품을 모두 모아서 보여주고 구매까지 연결되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다. 그리고 물론 이 홈쇼핑업체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비즈니스다.

그가 라이브홈쇼핑 앱을 출시할 당시 시장 상황은 이제까지와 사뭇 달랐다. 그는 항상 먼저 움직이는 쪽이었다. 언제나 시장의 움직임을 남보다 조금 빨리 알아차리는 사람인 셈이다. 아니 단순히 인지가 빠른 게 아니라 행동에 옮기는 것이 빠르다고 할 수 있다. 인지만 먼저 하는 사람이나 조직이야 수두룩할 것이다. 그들이 인지를 했는지 못했는지를 우리는 행동에 옮겨졌을 때 알 수 있는데 행동이 빠른 사람이나 조직들이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 이런 사람이나 조직이 시장을 선점하곤 한다.

그런데 그의 경우 그러질 못했다. 그가 실컷 시행착오를 하는 동안 후발주자들이 과실을 따갔다. 이번엔 그가 거꾸로 후발주자가 됐다. 라이브홈쇼핑 서비스를 올 3월 출시했지만 경쟁서비스인 홈쇼핑모아는 지난해 3, SK에서 하는 티쇼핑도 지난해 출시된 바 있다. 그래도 경쟁자들보다 늦게 나왔지만 9개월여만에 다운로드 10만명을 달성하는 등 순항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20만 다운로드를 달성하고 본격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성민 대표는 항상 메타사이트를 추구해왔다. 직접 쇼핑 서비스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고 그는 쇼핑 그 자체보다는 사실상 마케팅비즈니스인 메타서비스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메타서비스는 사실 DB사업이에요. 마케팅이 중요하죠. 보다 고부가가치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냥 수많은 사이트로 가는 게이트웨이에 만족하고 싶지 않아요. 플랫폼으로 가고 싶습니다. 커머스분야의 광고 플랫폼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러기에도 메타사이트가 더 매력적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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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상의 수많은 홈페이지, 웹사이트 중 가장 지저분한 곳은 어딜까. 여기서 지저분하다는 것은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또는 심지어 보기 싫은 광고로 뒤덮여 있다는 뜻이다. 생각이나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한글로 된 웹사이트만 따지면 언론사 홈페이지 아닐까. 특히 영세한 곳일수록 더욱 그렇다. 뉴스를 보기 위해 들어갔지만 글씨를 제대로 읽기 힘들 정도로 광고로 뒤덮여 있는 경우가 많다. 기사 옆은 온통 낯 뜨거운 광고로 도배돼 있다시피 해서 아이들이 이런 사이트에 들어오면 어쩌나하는 걱정마저 든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물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광고를 덕지덕지 갖다 붙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고객이 누구인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들을 끌어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경로나 대상을 타겟팅해야하는지 매체들은 모르고 광고 기획사들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답은 명확하다. 사이트가 지저분하다고 느끼면 고객은 목적만 이루고 점점 더 빨리 해당 사이트를 벗어난다. 고객 분석과 루트가 분석이 안되니 돈을 벌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그러니 더 많은 광고를 갖다 붙이게 된다. 광고를 붙이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애드오피(ADOP) 이원섭 대표다.

비전을 찾아가는 여정

그는 명함에서부터 대표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냥 애드오피 이원섭이다. 법적으로, 등기상으로는 엄연히 대표이자 최대주주이지만 그런 게 어딨냐는 투다. “그냥 영업 담당하고 있어요.” 아주 잠깐만 봐도 매우 특이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될 듯하다.

그는 본래 광고나 미디어쪽 인물이 아니었다. 동양공전을 졸업하고 자동차 내 에어컨 등의 도면 그리는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전공이나 종사했던 분야나 모두 지금 하고 있는 분야와는 완전히 다른 쪽 일이다.

3년 동안 해당 분야에서 일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일의 자부심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얼마나 오랫동안 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3년을 넘기진 않은 셈. 1999년 그는 쇼핑몰을 창업하면서 IT(정보기술) 분야에 들어왔다. “한국의 옷을 중국에 도매로 판매하는 일을 했어요.” 처음으로 인터넷 기반 창업이란 것을 한 건데, 잘 됐을까. 잘 안됐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했다. 2004년에는 검색광고 대행사업을 했다고 한다. 번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전이 보이질 않았다. 특히 하는 일에 대한 직원들의 자부심이랄까, 이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보람이랄까 이런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을 뒤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모니터를 보면서 키워드 광고 입찰액을 조정하는 일이 너무 단조롭고, 보람을 찾을 수가 없는 일이더군요. 직원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한 한탄도 하는 것을 듣고 안되겠다 싶었어요.”

때마침 와이즈넛에서 인수 제안이 들어왔다. M&A인 셈이었지만 거창한 인수합병이라기보다는 인력승계에 가까웠다. 와이즈넛에 합류한 그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이 회사에서 일했다고 한다. 와이즈넛의 생활을 일종의 전환점이 됐다. 처음으로 매체에 대해 생각하고 대한민국의 수많은 매체들을 접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매체를 위해 고민하는 광고회사

매체를 생각하고 매체를 위해서 고민해주는 그런 광고회사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회사가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광고회사들이 광고주만 바라보고 있는데, 매체를 위한 회사도 하나쯤 있으면 좋지 않을까. 이게 생각의 출발점이 됐죠.”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그는 2010년 와이즈넛을 나와 판도라TV로 옮겨 일을 했다. 온라인 매체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20115000만원으로 창업을 했다. 회사 이름은 애드오피라고 지었다. ADOP. 이름부터 광고와 관련된 뭔가라는 느낌이 온다. 하지만 ADOP는 정확하게는 All distribution optimization platform의 약자다. 회사가 광고와 관련된 것은 맞다. 하지만 이름에서부터 광고를 위한 회사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즉 광고를 하려는 광고주보다 콘텐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은 콘텐츠가 보다 잘 노출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한국은 온라인광고 밸류체인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그가 볼 때 제대로된 생태계가 되려면 양질의 콘텐츠와 함께 그에 걸맞는 최적의 광고가 결합되야 한다. 그래야 광고주는 원하는 광고 효과를 얻고 콘텐츠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며 더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상생의 선순환이 이뤄지게 된다. 이런 이상적인 구조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국내 언론사 사이트는 이처럼 지저분해지게 된 것이다.

그는 나름의 해결책을 최적화에서 찾았다. 검색을 통해서 콘텐츠들이 독자를 만나는 경로가 최적화될 때 콘텐츠를 위한 상생의 선순환이 만들어지는 첫 출발이 가능해진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의 고객은 광고주가 아니라 미디어다. 온라인커뮤니티나 작은 온라인 매체들, 언론사들이 그의 주된 고객이다. 이들에게 트래픽을 올려주고 최적화된 광고를 제공해준다. 이것이 애드오피가 갖고 있는 차별화된 경쟁력인 것이다. “매체가 이익을 보게끔 광고를 최적화해줍니다. 흔히들 잘못 생각할 수 있는데, 좋은 콘텐츠를 갖고 있는 매체도 이익을 내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래야 온라인 광고시장이 제대로 성장하고 궁극적으로 광고주들도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콘텐츠를 잘 만들게 도와 준다

그의 말처럼 매체들이 제대로 독자들에게 노출되고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자신들의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다면 트래픽을 올라감은 물론 광고 단가도 상승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이런 것을 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구글은 이런 시도를 많이 해 왔고 해외에선 상당히 효과를 거두고 있다-그의 지적처럼 국내에서는 이런 시도가 상당히 미흡한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일단 네이버, 다음을 필두로 한 국내 포털 시스템에서는 검색을 통해 제대로 콘텐츠를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특히 네이버의 경우 자사 콘텐츠 위주, 도무지 기준을 알 수 없는 콘텐츠 배열 순서(그들 나름대로는 다 알고리듬이 있다고 한다) 등을 고집하고 있어 콘텐츠, 미디어 분야와 상생을 도모하기 힘들다.

물론 그도 대뜸 포털과 경쟁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일단 국내 시장이 작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고 특히 동남아시아 시장에 주력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소비자들과 효과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매체들이 있는 곳이면 그에게 최고의 시장인 셈이다.

국내에서도 거점을 넓히고 있다. 온라인커뮤니티나 중소형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사람들이 검색을 했을 때 이들의 콘텐츠가 노출될 수 있도록 인덱싱 작업을 해 주고 키워드 맞춤광고를 가능하게 해 준다. 그렇게 해서 트래픽이 높아지면 DB 분석을 바탕으로 최적화된 광고 솔루션도 제공한다. 이런 작업을 하려면 기술 인력이 필요하다. 최근 고객사가 급격히 늘면서 1년여전 6명 이었던 직원은 올해 26명까지 불었다. 하지만 기술 인력이 더 필요해 10여명의 엔지니어를 더 충원할 계획이다. 급성장을 위해선 자급도 필수적인데, 마침 올 초 알토스벤처스로부터 투자를 받아 실탄도 확보했다. 

170개 고객사를 확보한 그는 인도네시아, 태국에 이미 진출했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남미 시장에도 진출할 채비를 갖췄다. 중국에도 내년초 진출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동남아 시장에서 거점을 넓히고 중남미 시장에 진출을 하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라고 했다.

헤어지기 전, 그는 상당히 인상적인 말을 했다. 나로선 이것이 그가 갖고 있는 신념이라고 생각했고, 부디 그가 이 신념을 지킬 뿐 아니라 보란 듯이 성공을 거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업을 해 보니 목적보다는 비전이, 비전보다는 철학이 더 중요하더라구요. 기업의 목적은 물론 돈을 버는 것이지요. 하지만 돈만 벌면 장사꾼에 그치고 말아요. 저는 나름대로 뚜렷한 철학과 비전을 갖고 있다고 봐요. 제가 갖고 있는 기업 경영의 철학은 기업은 세상에 올바르게 기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비전은 작은 언론사들이 자기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지원해나가는 것. 이게 저의 비전이고 철학이죠. 타협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부끄럽지 않게 돈을 벌 겁니다. 콘텐츠 만드는 사람들이 정말 보람차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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