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지난 달 KT경제경영연구소가 운영하는 디지에코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디지에코 측의 양해를 얻어 원문을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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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년부터 2000년에 걸쳐 한국 사회를 폭풍처럼 휩쓸었던 벤처붐이 10여년이 지난 지금 재현되고 있다. 신규 창업 기업의 숫자가 10년 전의 기록을 갱신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이들의 숫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하지만 10여년 전과 지금의 벤처붐은 동일선상에서 놓고 비교하기엔 힘든 측면이 존재한다. 10년 전의 벤처붐이 일종의 무분별한 광기가 시장을 지배했다면 최근의 벤처붐은 보다 조심스러운 합리적인 선택에 힘이 쏠리고 있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10여년 전의 지나친 투자 열풍으로 인한 쪽박의 경험이 투자자와 기업가 모두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정부 차원의 무분별한 지원에 대한 우려가 높지만 소규모 자본과 적은 인력으로 합리적인 수준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과거 한탕주의식 벤처 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예측을 가능케 한다.

◆대학생 벤처 기업가 대거 등장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는 대학생 벤처 기업가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말 한국 최초의 벤처붐을 일으켰던 인물들은 80년대 초중반의 학번들이었다. 이들은 대기업 등에서 직장 생활을 하거나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와서 창업을 하곤 했다. 그 당시라고 대학생 창업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주류는 아니었다.

 그런데 2010년부터 불기 시작한 제2의 벤처붐 현상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대학생 벤처 기업인들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윤자영 스타일쉐어 대표, 전해나 애드투페이퍼 대표, 김태우 모글루 대표, 권순범 이큐브랩 대표, 이참솔 로티플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고등학교때부터 창업을 한 양준철 온오프믹스 대표, 표철민 위자드웍스 대표 등도 있다. 이비호 스픽케어 부사장은 대학시절부터 창업을 해 온 인물이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창업을 하긴 했지만 심여진 스픽케어 사장은 대학 1학년때부터 창업을 준비한 사람이다.

 왜 대학생 벤처기업가들이 이렇게 많아진 걸까? 취업이 어려워지자 창업에 나선 이들이 많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일찍부터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이 많아졌다는 점, 이들이 비교적 쉽게 창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꼽을 수 있다.

 대학이나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창업 스쿨을 열고 창업 지원을 약속하는 것은 분위기 형성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생들이 과거보다 훨씬 창업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비교적 쉽게 창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모바일, 인터넷 분야 등에 한정된다. 기존 굴뚝 창업에는 그리 관심이 높지 않다. 20, 30대 창업가들, 특히 20대 대학생 벤처기업인들은 돈 탭스콧이 그의 저서 ‘Digital Native’에서 지적한 바 있는 바로 그 디지털 네이티브들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만지고 자라고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휴대폰을 쓰는데 익숙했던 이 세대들은 모바일이나 컴퓨터 분야에서의 창업을 아주 대단히 어려운 분야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창업에 대한 거부감을 낮춰준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 노린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국내에서 서비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다음에 도전한다는 게 정석처럼 여겨졌었다. 투입할 수 있는 리소스가 극히 제한돼 있는 벤처기업의 경우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최근 스타트업들은 회사를 설립하면서 거의 동시에 해외 사업을 준비한다. 특히 스마트폰용 앱을 만들거나 모바일 분야의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가 더욱 그렇다. 이런 분야에서는 과거 웹을 기반으로 한 사업을 할 때와 달리 해외 사업과 국내 사업의 차이가 크게 없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마켓과 애플 앱스토어라는 대표적인 두 개의 큰 생태계가 마련된 뒤 해외 사업을 하더라도 굳이 대규모 인력을 외국에 파견한다든가 막대한 리소스를 투입하지 않고도 앱을 만들어 해외 사용자들에게 제품을 알릴 수 있게 됐다.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그리 많지 않은데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면 해외에 진출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앱을 국내외에 동시 출시했는데 해외에서 더 좋은 반응을 얻는 경우도 꽤 있다. 브리드가 만든 어썸노트는 유료 앱이고 비교적 애플 앱스토어에 늦게 진입했지만 해외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젤리버스라는 벤처기업이 만든 큐브로라는 사진 편집 앱은 국내 사용자 못지 않게 해외 사용자를 모았다. 김무궁 사장이 설립한 OGQ에서 만든 배경화면 앱은 대부분의 사용자가 해외 소비자들이다. 언어로 이해할 필요가 없는 말 그대로 배경 화면에 관련된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장벽이 없다고 해도 어느 정도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 소규모라고 하더라도 해외에 사무실을 내거나 현지 업체와 제휴를 할 필요성은 점점 커질 수 밖에 없다. 소득이 발생할 경우 세금 문제를 비롯해 현지 사업자가 갖게 되는 다양한 혜택 등 때문이다.

 국외에 법인을 설립하고 외국 업체들과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최근의 창업자들이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는 최근 제2의 벤처붐 시기 젊은 창업자들이 선배 창업자들과 다른 점은 외국어에 능숙하다는 점이라며 이들은 해외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말헀다.

 인터랙티브 e북을 제작하는 모글루는 회사 설립 초창기부터 미국 법인 설립을 함께 추진했다. 김태우 대표와 함께 창업한 멤버 중 미국 뉴욕 출신의 공동창업자가 미국 법인을 맡았다. 뉴욕에 상주하며 사무실도 내고 해외의 전자책 유통업체나 IT업체들과 일을 하고 있다. 패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지향하는 스타일쉐어도 2011년 창업과 동시에 해외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경우다. 이 밖에 이음소시어스, 아블라컴퍼니, 페이즈캣, 포도트리 등 설립한 지 1-2년이 채 안된 신생 스타트업들도 각각 진출 국가는 다르지만 초기부터 해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해외 VC도 국내 진출
해외 벤처캐피털(VC)의 국내 진출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2000년을 전후로 한 시기 1차 벤처붐때는 해외 VC들이 국내 대형 VC가 투자하는 기업에, 그것도 적은 지분이나 소규모로 투자 참여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해외 VC가 적극적으로 국내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 거의 투자 활동이 없었던 퀄컴벤처스는 지난 2010년 한국에 사무소를 낸 뒤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10년 펄서스라는 벤처기업에 투자한 데 이어 2011 6월에는 증강현실 SNS 오브제(Ovjet) 개발사 키위플에도 15억원을 투자했다. 폴 제이콥스 퀄컴 회장은 한국은 증강현실을 비롯한 신기술 벤처가 많은 편이고 젊은이들의 창업 열기도 높아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기에 좋다중장기적으로 한국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규모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알토스벤처스, 매버릭캐피털, DCM, 인사이트벤처파트너스 등도 최근 국내에서 투자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회사들이다. DCM은 한동안 국내 시장에 대한 투자를 거의 하지 않다가 최근 카카오에 투자를 하는 등 한국 시장에서 다시 움직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게임 분야에서는 중국 최대 온라인게임업체 텐센트의 활약이 눈부시다. 국내 중소규모 온라인 게임 개발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해 왔던 이 회사는 최근에는 모바일 게임업체 페이즈캣, 모바일 광고 플랫폼 업체 퓨처스트림네트웍스 등에도 투자하는 등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내에서 10년 이상 투자를 하면서 벤처 기업 육성에도 힘을 쏟아온 소프트뱅크코리아와 소프트뱅크벤처스 역시 최근 투자 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벤처 인큐베이팅 분야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해외 VC들이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이유는 뭘까. 우선 많은 투자 회사들이 한국의 모바일 환경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4세대 이동통신 롱텀에볼루션(LTE)를 전 세계에서 16번째로 시작한 나라다. 순서상으로는 그리 빠르다고 할 수 없지만 서비스 커버리지 범위는 놀랄만큼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주요 통신 3사가 2012 4월께면 모두 전국 서비스망을 갖추게 된다. 주요 통신서비스업체들이 모두 LTE로 전국 서비스를 하게 되는 유일한 나라가 된다. 모바일 앱 이용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맷 머피(Matt Murphy) 클라이너퍼킨스 코필드 앤 바이어스(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 아이펀드(iFund) 대표는 한국은 2011년 기준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이용자들의 앱 다운로드 수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고 1인당 기준으로 보면 세계 1라며 모바일 앱 이용이 가장 활발하고 스마트폰 확산 속도도 빨라 전 세계 모바일 분야 투자회사들이 한국을 주목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확산 속도도 빠르다. 2009 11월 아이폰이 도입된 뒤 2년도 되지 않아 스마트폰 사용 인구가 2000만명을 돌파했다. 2012년 상반기 중에는 전 국민의 60%에 해당되는 3000만 명이 스마트폰을 쓰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스카이 등 휴대폰 분야의 세계적인 강자들이 이 좁은 나라에 몰려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이런 세계적인 제조업체들과 관련된 제조 분야, 소프트웨어 분야의 창업이 많기 때문이다.

 

해외 투자 회사

투자 기업들

소프트뱅크벤처스

플라이팬,VCNC,두빅,데브시스터즈,스냅스 등

알토스벤처스

이음소시어스,쿠팡,스피쿠스

스톰벤처스

비타민MD,컴투스 등

매버릭캐피털

쿠팡,카카오 등

인사이트벤처파트너스

티켓몬스터

DCM

카카오,판도라TV

싸이버에이전트

카카오

텐센트(간접 투자 포함)

레드덕,퓨처스트림네트웍스,탑픽,아이덴티티,스튜디오혼 등

퀄컴벤처스

펄서스,키위플 

◆성공한 벤처기업인의 경험 전수
‘투자와 창업,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벤처 생태계형성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소프트뱅크벤처스 문규학 대표는 최근 국내 벤처산업의 움직임을 보여 이같이 평했다. 과거 벤처붐이 일었던 1990년대 말과 1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을 비교한 것이다. 한탕주의가 휩쓸었던 10여년 전의 버블 시기와 달리 지금은 좀 더 합리적인 기업가들과 신중한 벤처투자자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벤처 1세대들이 후배 벤처인들을 육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프라이머, 본앤젤스벤처파트너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택경 다음 창업자, 권도균 이니시스 창업자, 이재웅 다음 창업자, 장병규 네오위즈 및 첫눈 창업자 등이 뭉친 프라이머는 매년 스타트업 기업들을 발굴한다. 이들이 매년 하는 데모데이는 스타트업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다. 컨설팅 한번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와이컴비네이터처럼 스타트업이 비즈니스로 데뷔하는 그런 창구가 되려는 게 이들의 지향하는 바다. 이택경 프라이머 공동 대표는실리콘밸리의 와이컴비네이터(Y combinator)처럼 그들이 주최하는 데모데이에서 발표만 해도 15만 달러 투자 유치가 보장되는 그런 인큐베이터가 되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라며장기적으로는 이런 노력으로 국내에서도 벤처생태계라는 것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병규 블루홀스튜디오 이사회 의장은 2010년 본앤젤스벤처파트너스라는 초기 벤처 투자회사를 차렸다. 투자도 하고 상담도 해 주고 필요한 인력을 구해다주기도 한다.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는 오이씨(OEC)라는 벤처 인큐베이팅 및 컨설팅 업체도 따로 만들고 직접 후배 벤처기업인들을 챙기고 있다.

최근에는 벤처 1세대들의 움직임이 좀 더 조직화되고 있다.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사장, 신현성 티켓몬스터 사장, 스톤브릿지캐피털, 인사이트벤처파트너스 등은 패스트트랙아시아(Fast Track Asia) 라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회사를 설립했다. 미국과 한국의 벤처기업인, VC들이 연합해 만들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한 것도 차별화되는 점이다. 아이디어만 갖고 오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벤처창업 분야에 있어서의 오디션과 같이 지원자들을 모두 심사하고 엔지니어가 부족한 팀에는 전문 기술 인력을, 마케터가 필요한 팀에는 마케팅 인력을 지원하는 일도 한다. 사업화 뿐 아니라 해외진출 IPO(기업공개), M&A 등도 모두 도와주는 것으로 내세웠다.

이들의 이런 움직임은 지금 벤처산업을 10년 전과 다르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벤처기업가들이 했던 시행착오를 줄일 뿐 아니라 1세대나 경험많은 이들의 지원이 벤처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벤처생태계 조성 나서는 벤처기업인들>

인물

회사

주요 활동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패스트트랙아시아 주도, 스타트업 개별 투자도 진행

장병규

본앤젤스벤처파트너스

스타트업 투자 및 벤처인큐베이팅 사업

김범수

카카오

스타트업 개별 투자 및 벤처기업가 발굴

이택경

프라이머

벤처인큐베이팅 및 컨설팅

권도균

프라이머

벤처인큐베이팅 및 컨설팅

이재웅

프라이머, 소풍

스타트업 개별 투자 및 벤처인큐베이팅

송영길

부가벤처스

벤처인큐베이팅 및 컨설팅

신현성

티켓몬스터

패스트트랙아시아 주도, 스타트업 개별 투자도 진행

허민

위메이크프라이스

스타트업 개별 투자 진행


◆소규모 자본, 합리적 선택
이 블로그에서 1 10개월째 진행하고 있는 한국의 스타트업에 게재된 70여개의 국내 스타트업 기업 중 70% 이상은 2억원 안팎의 소규모 자본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창업 인원도 2명에서 5명 사이가 대부분이다. 적은 인원이 크지 않은 자본금으로 스타트업을 하는 것이다.

 서둘러 투자를 받지 않는다는 것도 이들의 공통점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투자를 받고 싶어도 그러기가 어려워 시간이 오래 걸린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사업 시작 후 바로 외부 투자를 받는 것보다는 제품을 내놓고 어느 정도 검증을 받은 후에 외부 투자를 진행하는 길을 택했다. 과거 이름만 걸어놓고 뻥튀기 식으로 포장만 하는 등 투자 받는 것을 제품 개발보다 우선시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외부투자를 지나치게 일찍 진행하거나 너무 많은 금액을 받을 경우 오히려 원래 생각했던 사업을 계속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마저도 있었다. 즉 외부투자자들에게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어느 정도 자생력을 키운 뒤 투자를 진행하는 쪽을 택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초반에 무리하게 벌리지 않고 핵심 영역에 집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선데이토즈를 설립한 이정웅 사장의 경우 설립한 뒤 한동안 투자를 받지 않다가 2년이 지나서 투자를 받았지만 그 돈을 1년 이상 쓰지 않고 계속 갖고 있었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경영을 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알뜰하게 사업을 꾸려나간 것이다.

 물론 여전히 많은 국내의 벤처 투자자들이 아주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는 하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멘토링이나 인큐베이팅, 컨설팅 등 조언자가 많아진 것도 경험이 없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조급하게 투자받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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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와 인터넷은 삶을 포기할 뻔 했던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습니다.인터넷을 통해 다시 태어난 만큼 이제는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임현수 위인터랙티브 사장은 1급 지체·언어장애를 가진 중증 장애인이다.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힘겨웠다. 하지만 현재 그는 직원 11명을 거느린 벤처기업의 어엿한 CEO(최고경영자)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이 사람 사연이 보통 많은 게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그가 성장하면서 겪은 어려움과 이를 극복한 불굴의 의지를 어찌 사람의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진작부터 그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제대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주저하고 있었다. ‘우선 만나보고 그날 받은 느낌과 공감의 분위기를 그냥 풀어내도록 하자’ 하는 생각에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장애를 극복한 벤처기업인라는 차원에서 만난 것은 아니었다. 여기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찾고 있는 불굴의 기업가 정신, 그리고 새로운 시대로의 모험은 어떤 역경이나 환경 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장애를 극복했다는 것을 뛰어넘어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그를 상암동 위인터랙티브 사무실에서 만났다.


◆생후 6개월만에 찾아온 장애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뇌성마비에 걸리면서 그는 중증 장애인이 됐다. 정작 본인이 이를 의식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장애에도 불구하고 또래들을 뛰어넘는 총명함을 보인(이 부분은 그가 아니라 이날 인터뷰를 돕기 위해 동행한 김재갑 이사가 전한 말이었다. 김 이사는 임 사장의 대학교 동창이고 학교에서는 김 이사가 선배였지만 임현수 사장과 뜻을 같이해 함께 창업하게 됐다.) ‘어린이 임현수’는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얼마 안 있어 장애 아동을 위한 학교로 옮기게 됐다.
 그런데 몸은 불편해도 머리는 남달랐던 그에게 장애 학교 수업은 도저히 맞지가 않았다. 결국 그의 고집으로 그는 일반 학교로 다시 옮겼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의 장애가 문제가 됐다. 말만 좀 더듬어도 놀림당하기 십상인 철없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그의 존재가 부각될 수 밖에 없다.
“정말 철저하게 고립됐습니다. 어찌보면 그냥 얌전히 왕따만 당하는 것을 감사해야할 지도 모를 정도였죠. 정말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살고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삶을 포기하는 것 마저도 저에겐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더 이상 자세히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상황이 이해가 갔다.

 힘든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3이 됐을 때 그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1995년 당시 국내에 막 도입된 인터넷을 접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 세상에서 임현수 사장은 일반 사람과 똑 같았다. 열개의 손가락 중 한 개의 손가락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삶의 의욕을 찾으면서 학교 성적도 급격하게 올랐다.

 “처음에는 책을 보고 베이직으로 간단한 프로그램도 만들었습니다만 제가 원하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이때부터 대학을 가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죠.”

◆인터넷에서 삶과 꿈을 찾다
독학으로 홈페이지 만드는 법을 터득한 그는 인터넷 세상에서 펄펄 날아다녔다.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홈페이지 제작 방법을 알려주는 웹사이트를 열기에 이르렀다.“당시 개인이 만든 사이트인데 하루 5만여명이 접속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어요.사이트가 유명해지다 보니 라이코스가 관련 홈페이지 제작 관련 콘텐츠를 공급해 달라고 해서 졸지에 사업자가 됐습니다.”

 임현수라는 이름이 인터넷 업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고등학생이었지만 그가 홈페이지 제작에서 보여준 성과는 인터넷 업체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지금도 홈페이지 제작을 외주에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이와 관련된 업을 일찌감치 감각적으로 터득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000년엔 청와대와 제 2 건국위원회가 선정하는 신지식인으로도 뽑혔다. 막연하게 컴퓨터가 좋아서 몰두했던 그가 창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2001년 성균관대에 입학해 컴퓨터공학과 경영학을 복수전공한 그는 졸업을 앞두고 취직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그는 창업을 하고싶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우선 인터넷 분야의 비즈니스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2005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 입사해 인터넷에 대한 실무를 배웠다.

◆상금 5000만원으로 창업
“사장님은 경진대회의 제왕이에요”
임현수 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위인터랙티브 직원이 지나치듯 불쑥 던지고 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금껏 각종 경진대회, 공모전 등에서 상을 받았다. 얼추 잡아 각종 컴퓨터 경진대회와 벤처창업 경진대회에서 20여 차례 수상했고 정보통신부 장관상도 지금까지 네 번이나 받았다. 그의 사무실 벽 한쪽에는 그가 받은 경진대회 상장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2008년에는 창업경진대회에 출전해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개발해 대상을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3년전인데 그때 벌써 지금의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를 아이템으로 대회에 출전했어요.사람들이 깜짝 놀랐죠.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걸로 창업을 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여간 아이디어 하나는 참 많다. 옆에서 지켜보전 김재갑 이사도 한 마디 거든다. “대학때부터 10여년간 계속 지켜봤는데 정말 신기할 정도입니다.어디 가서 상도 잘 받고, 재미있는 생각도 많이 해요.”

 창업대회 대상으로 받은 상금 5000만원을 갖고 임 사장은 2008년 위인터랙티브를 창업했다. 지금 와서 모바일 메신저를 창업 아이템으로 할 걸 하고 생각하지만 당시엔 사실 시장 상황이 그에 적합하지 않았다. 너무 이른 시기였기에 꼭 성공했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래서 인생이나 창업이나 가정은 무의미한 듯 하다. 어쨋든 김재갑 이사와 함께 창업을 했지만 한동안 창업 아이템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검색 기술이나 소셜네트워크를 연결한 무엇을 계속 고민했지만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는 것과 이를 구체적으로 비즈니스화한다는 것은 확실히 조금 다른 문제였다.한동안 생각한 대로 사업이 풀리지 않으면서 어려움도 겪었다.

 “그동안 시장의 변화 등으로 인해 개발만 해놓고 오픈하지도 못한 서비스가 두 개나 있었습니다. 이러한 실패의 과정 속에서 자신감을 상실해 좌절에 빠지기도 했죠. 다행히 그때마다 구성원들이 응원을 해줬고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를 극복해 ‘1000만명이 이용하는 서비스를 만들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청년기업인 돕는 벤처사업가 되겠다
올들어 위인터랙티브는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현재 임현수 사장은 SNS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검색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SNS의 명성과 평판이 기본이 되기 때문에 검색에서 중요한 문서 자체의 신뢰도 뿐 아니라 문서 작성자의 신뢰도 역시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다. 이 회사가 개발중인 소셜검색 서비스의 이름은 ‘퀵플’.응답이 빠르다는 뜻이다. 빠르면 올 연말,늦어도 내년 초에는 출시될 예정이다. 우선 웹 서비스로 내놓고 바로 이어 모바일 서비스로도 출시할 계획이다. 모바일로 만들면 게임 등을 접목해 다양한 재미를 주는 것도 가능하다.

 지체장애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활발하게 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요즘 취업 등의 문제로 힘겨워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그는 “그런 심정에 십분 공감한다”면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식산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존 산업에 대한 일자리는 줄었지만 새로운 산업도 많이 생겨나고 있고 여기서 파생된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회사에 취직하는 것에만 목을 매고 있을 것이 아니라 좀더 큰 시야로 세상을 보면 세상에는 할 일도 많고 기회도 많습니다.‘청년들이여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임 사장은 실제로 청년들의 도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그는 “나의 몸은 불편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 세상에는 장애가 없다는 생각으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 왔다”며 “초기창업자들을 위한 벤처캐피털을 만들고 단지 돈만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멘토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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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궁 OGQ 대표를 처음 봤을 때 평탄하게 잘 자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외모에 대한 인상때문이기도 하지만 미리 그에 대해 얄팍하게 알고 있던 정보때문이기도 했다.카이스트를 졸업해 이른 나이에 창업을 해서 회사가 잘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어쩌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김 대표의 이야기는 이런 나의 첫 인상을 완전히 배신하는 것들로 가득했다.남들이 보기엔 화려해 보이는 명문대학생의 이면에는 생각지 못했던 많은 고충이 있었다.어떤 누구보다 평탄치 않았던 삶을 살아온 그는 여전히 좌충우돌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만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벌써 10년이 넘는 창업 경험을 가지고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겪은 김무궁 대표와 명동에서 만났다.1시간 정도 예상했던 대화는 무려 2시간 30분이 넘게 이어졌다.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리하는데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옆 사진은 대화중인 김무궁 대표..사진 제공은 kkonal)
◆컴퓨터에 노래를 불러준 소년
1남 1녀의 장남인 김무궁 대표가 처음 컴퓨터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때였다.
 당시 삼성대리점에서 일했던 삼촌께서 자신의 PC를 써보라며 ‘어린이 김무궁’에게 주고 갔기 때문이다.PC는 그에게 상상도 못하던 완전 새로운 세상이었다.
 PC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김무궁 어린이는 PC를 계속 쓰면 PC가 힘들다고 생각했었다.PC가 쉬려면 잠을 자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PC를 앞에 두고 노래를 불러줬다고 한다.

 “당시 PC에 스피커가 있었는데 그 스피커가 저에겐 귀처럼 보였어요.노래를 부르면 PC가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PC를 너무 모르다보니 사고도 터졌다.더러워졌다고 욕실로 PC를 갖고 가 물로 박박 씻은 거였다.뒤늦게 그렇게 하면 PC가 작동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물로 씻은 다음이었다.김무궁 어린이는 PC를 전부 분해해 부품을 꺼내놓고 말렸다.말린 부품을 모아 PC를 다시 조립했다.어린이가 하기엔 쉽지 않았을텐데,어릴 때 대단한 경험을 한 셈이 됐다.다행히 PC는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컴퓨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컴퓨터를 처음 만진 이듬해인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다.그런데 한 1년쯤 배우니깐 재미가 없어졌다고 한다.학원에서는 베이직만 가르쳤기 때문이다.그는 exe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싶었는데 그걸 하려면 C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학원 원장 선생님에게 듣게 된다.

 “저도 C 언어가 배우고 싶어요”
 “어림도 없는 소리.초등학생이 어떻게 C 언어를 배우냐.”

 C 언어를 배우려고 해도 말도 안된다는 대답만 듣기 일쑤였다.결국 그는 삼성동 서울 서점(지금은 바디앤루니스로 바뀌었다)에 가서 C 언어와 컴퓨터 잡지 등을 닥치는 대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그러면서 불과 2-3년전 컴퓨터에 노래를 불러주던 이 소년은 개발자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중 2때 처음 프로그램 개발
중학교 2학년이 된 ‘청소년 김무궁’은 PC통신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친구 호스트’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이 서비스는 원하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그는 학생이었지만 이를 돈받고 팔 수가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서도 그는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 이것을 팔았다.계속해서 그런 쪽으로 시도를 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그가 그런 시도를 계속 한 것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넉넉치 않은 가정 형편 속에 그는 자신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고 한다.그냥 학교 다니면서 공부만 하면 되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고 1때 단체메일 발송기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지금이야 단체로 메일을 전송하는게 아주 일반화돼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기능이 흔치 않았다.그가 만든 프로그램을 대기업에서도 찾는 일이 생겼다.그는 이 프로그램으로 1억원 이상 돈을 빌렸다.

 “어린 나이에 돈을 그렇게 벌었는데, 그게 나중에 창업 자금이 됐겠네요?” 내가 물었다.
 “아니요.집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그럴 여유가 없어지게 됐어요.” 

 청소년 김무궁은 초등학교때 그랬던 것처럼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도 자신이 잘하고, 하고 싶은 것에 올인해서 살았다.그에게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가장 자신있는 일이었고 가장 재미있는 세계였다.그 세계에 흠뻑 빠져 살던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미래를 만들었다.

◆특기생으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입학
1999년 8월 고등학교 1학년때 정보올림피아드에 나간 그는 쇼핑몰 시스템을 만들어 금상을 타게 된다.“언젠가 모든 가게들이 온라인 샵을 낼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게 눈길을 끄는데 성공했죠.” 

 정보올림피아드 특기생을 따로 뽑았기 때문에 그는 이미 고등학교 1학년때 대학 진학이 결정돼 버렸다.“대학 진학이 결정됐는데 공부할 생각이 안 들더라구요.그래서 공부는 안한다고 하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냈어요.물론 학교는 갔죠.계속 자서 문제이긴 했지만(웃음)”

 둔촌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예정대로 2002년 카이스트 전산학과에 입학했다.입시를 안 치르고 학교를 가면 얼마나 좋을까.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지,그의 경우는 꼭 좋지만은 않았다.그는 중고등학교때 교육 과정을 따라가지 않은 것 때문에 결국 나중에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된다. “정말 삼각함수도 모르고 학교를 갔어요.미적분을 알 턱이 없었죠.그런 상태에서 전산학과를 갔으니 수업을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죠.”

 첫 학기 학점은 충격적이었다.제적 기준보다 점수가 낮게 나온 것이다.학교에서도 드문 일이라 대학생 김무궁 사례를 놓고 교무회의를 열 정도로 점수가 안 좋았다.다행히 1학년 1학기를 갓 마친 학생에게 기회를 주기로 해 그는 학교에 남을 수 있게 됐다.심각함을 느낀 그는 일단 휴학을 했다.

◆창업에 골몰한 대학생
휴학을 했지만 그는 도서관으로 달려가지는 않았다.그가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은 PC를 통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였다.P2P 중고거래 메신저가 당시 그가 선택한 아이템이었다.“당시 다른 학교 선배들과 팀을 만들었는데 그때 팀의 중요성을 알게 됐어요.저랑 잘 맞지가 않았죠.일은 했고 성과도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죠.그래서 잠시 하다가 2학년때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학교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터.그는 여전히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혹시 학교 중퇴를 생각하지는 않았나요?”
 “저 혼자 생각했으면 그랬을지 모르죠.하지만 어머니나 특히 여자친구가 학교를 정상적으로 마쳐야 한다고 저를 강하게 붙들었어요.그 덕에 대학에 들어와서 뒤늦게 공부를 했어요.”

 여자친구의 격려 덕에 그는 1학년때 제적을 당할뻔 했던 상황을 딛고 높은 학점을 계속해서 받으면서 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그리고 병역특례로 군 생활을 하게 된다.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분석하는 사이람이라는 회사와 나우콤에서 2008년까지 병특 기간을 보냈다.사이람과 나우콤에서 그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훗날 창업을 같이 하게 되는 박정수,이소라씨 두 사람을 각각 사이람과 나우콤에서 만난 것이다.역시 사람은 어디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참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경우에도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병특을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그는 이번에는 영어 점수와 씨름을 해야 했다.카이스트에서 졸업 요건으로 영어 점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아마 대부분의 카이스트 학생들에게는 별 거 아니겠지만 저한테는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영어 공부를 중고등학교때 별로 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가 영어와 씨름을 하고 있을 때 학교 친구가 그에게 ‘신철호’라는 사람을 소개시켜줬다.신철호씨는 2000년대 초중반 포스닥이라는 사이트를 개발해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다.그는 같이 창업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바로 창업을 하고픈 생각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주위 사람들이 학교 졸업이 우선이라고 말렸다.“그래서 일단 영어 점수를 받고 창업을 생각해보겠다고 말씀을 드렸죠.그런데 정말 기다려주시더라구요.”

 영어 점수 받는 일이 그에겐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그야말로 아무것도 생각 안하고 도서관에서 살면서 영어공부만 했다고 한다.지난해 2월 처음 만난 이들은 김무궁 대표가 영어 시험에 통화한 지난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창업 모의를 하기 시작했다.김 대표는 사이람에서 만난 박정수씨,나우콤에서 알게 된 이소라씨를 설득해 4명의 창업멤버가 완성됐다.올 2월 이들은 OGQ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배경화면 앱으로 히트
OGQ. 무슨 뜻일까? “회사 이름을 놓고 창업 멤버들이 토론을 좀 했습니다.우리들이 지향할 바에 대해 각자 단어를 하나씩 써보기로 했죠.그러면서 세 단어가 최종적으로 선택됐습니다.Open, Global, 그리고 질문을 많이 하자는 뜻으로 Question이었죠.그 세 단어의 각각 첫 글자를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었어요.”

 이사회 의장은 제일 연장자이자 창업 자금에 공헌을 한 신철호씨가 맡았고 김무궁씨가 대표를 맡았다.이들은 TED 강연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앱인 Ted Air를 출시했다.14일 동안 개발해 5월 23일 출시한 ‘배경화면(Backgrounds)’이라는 앱이 대히트를 쳤다.50일 동안 전체 안드로이드 앱 중 1위를 했고 누적 다운로드가 800만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매일 전 세계에서 10만명 정도가 다운로드하고 있어요.조만간 1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할 것 같습니다.”

 그는 스마트폰에서 배경화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지만 양질의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기존 배경화면 앱들이 검색이 불편한 것도 문제라고 생각했다.“여성을 타깃으로 하고 성인자텐츠는 배제하는 쪽으로 갔습니다.그래야 좀 더 많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보통 페이지를 넘기는 방식을 택했지만 모바일에 적합치 않다고 봤죠.그래서 저희는 툭툭 넘기고 스크롤 해서 볼 수 있는 방식으로 기획을 했습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적중했다.수많은 배경화면 관련 앱이 있었지만,그래서 그 쪽은 완저너 레드오션 시장인 것으로 비춰지고 있었지만 그 많은 앱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OGQ가 개발한 배경화면은 독보적으로 승승장구했다.

◆1000만 다운로드 이상 가는 앱 개발하겠다
 배경화면 앱이 잘 되면서 이 앱에 붙는 광고비 만으로도 회사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됐다.배경화면 히트에 힘입어 최근 OGQ는 ‘스타 배경화면’이라는 앱을 새롭게 출시했다.스타들의 사진으로 배경 화면을 꾸밀 수 있는 앱이다.시장의 반응을 보며 본격적인 마케팅 시기 등을 조율하고 있는 단계라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직 OGQ는 본게임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뭔가 좀 더 본격적인 앱을 만들 것 같았다.그의 다음 계획은 우선 텀블러 클라이언트 앱을 만드는 거였다.소셜게임 앱도 생각하고 있었다.“소셜게임을 모바일로 할 수 있는 그런 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그런데 그 앱은 기존 소셜게임을 모바일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모바일에서 턴제 방식의 게임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턴제 방식이란 서로 번갈아가면서 플레이하는 그런 게임이다.“바둑같은 게임처럼 서로 번갈아가면서 두는 그런 그럼에 모바일에서 상당한 수요가 있다고 봅니다.턴제 방식의 게임 중에서 어떤 것을 할지,어떤 방식으로 선보일지 등을 고민하며 기획하고 있어요.”

 무엇을 내놓든 이들의 목표는 명확했다.“1000만 다운로드 이상 간다고 확신하는 그런 앱들을 개발해 출시할 겁니다.그런 분야에 집중적으로 도전하려고 합니다.굳이 아주 특이할 필요는 없습니다.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이 찾고 즐기면 되죠.그런 앱들을 다수 보유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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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뭔가 빈 공간이 있다.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으신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지금의 대부분 SNS들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비슷비슷하고 항상 유사한 사람들끼리 계속 겹쳐서 사용하는 SNS가 아닌 좀 특별한 SNS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박재욱 VCNC 대표다.

 그는 SNS가 모바일을 통해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회사를 차렸고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회사 이름을 VCNC(Value Creator and Company)로 만들었다.VCNC가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을까.서울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VCNC 사무실을 찾아갔다.오랫만에 Kkonal님과 동행했다.


◆그저 부속품으로 살긴 싫다
박재욱 대표는 서울대 전기공학과 04학번이다.좋은 학교를 나왔으니 그에게는 분명 다른 많은 길이 있을 터였다.삼성이나 LG같은 대기업에 입사할 수도 있을 것이고 서울대에서 유행하는 각종 고시준비반에 들어갈 수도 있다.그 밖에도 무수하게 많은 선택 가능성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창업을 했다.왜 그랬을까?

 우선 박 대표는 창업에 대한 생각을 대학 입학 때부터 했다고 한다.자신이 갖고 있는 꿈이 직장 생활이나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실현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럼 그는 어떤 꿈을 갖고 있었을까?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싶었습니다.직장인으로서 살기 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일들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그래서 대학시절부터 주위 사람들과 창업 이야기를 계속 하면서 같이 할만한 사람들을 모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박재욱 대표의 설명이다.

 그렇게 해서 모인 사람들이 함께 VCNC를 창업한 김영목,이정행,우경재,조성욱이다.하지만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뜻이 맞아 단번에 창업을 하자고 의기투합한 것은 아니었다.이들이 모이는 데는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그리고 박재욱 대표 역시 무엇으로 창업을 할 지에 대한 뚜렷한 아이디어가 없었다.

◆인포뱅크에서 창업 기반을 닦다
 2008년 대학생 박재욱은 병역특례로 군생활을 대신하기로 하고 인포뱅크라는 인터넷 솔루션 업체에 입사했다.여기서 일하면서 그는 훗날 창업에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는 일을 맡게 된다.

 인포뱅크는 원래 휴대폰에서 기업용 단체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하는 등 모바일 인터넷 솔루션 등을 제공해주는 기업이다.작년 매출이 600억원에 달하는 탄탄한 중견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주로 B2B(기업간 거래)에 집중하는 이 회사가 작년초 전국적인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다.바로 스마트폰용 메신저 엠앤톡(M&Talk)을 만들면서부터다.재미있는 것은 이 서비스를 만든 실무를 담당했던 이가 박재욱이었다.

 병역특례로 일하고 있던 그는 2009년말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를 개발하라는 명을 받고 함께 일하던 병역특례 직원 2명과 함께 달랑 세명이서 두달여만에 엠앤톡을 만들었다.“만들면서 이 서비스는 반드시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픈 욕구가 있는데 스마트폰에서 최적화된 서비스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미국에서 유사한 서비스인 왓츠앱이 뜨는 것도 확인했구요.”

 그의 예상대로 2010년초 출시된 엠앤톡은 돌풍을 일으켰다.그는 엠앤톡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서 2010년 3월 병역특례를 마치고 회사를 나왔다.“엠앤톡이 출시되고 6개월만에 200만명 가입자를 모았죠.그런 전국적인 서비스를 만들었다는 게 아주 신기했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엠앤톡은 결정적인 순간에 서비스를 더 확대하지 못하고 카카오톡의 출시와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엠액톡이 더 성장하고 확산될 수 있었는데 중요한 순간에 리소스를 더 투입하질 못했습니다.카카오톡이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최고경영자의 결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2년동안 자본금 5000만원을 모으다!
그는 인포뱅크에서 경험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을 쌓았다.바로 돈이다.창업을 하려면 자본금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이것을 병역특례를 하면서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2년 동안 월급을 받아서 모두 저축을 했어요.돈을 모아야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월급을 하나도 안 썼어요.그런데 그러다보니 생활이 어려워졌지요”(웃음)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그는 어떻게 직장 생활을 했을까.그가 택한 것은 공모전이었다.대학생벤처창업경진대회 등 숱한 공모전이나 창업 대회 등에 응모를 해서 여기서 받은 상금으로 버텨보자고 결심한 것이다.

 “김영목 CTO는 서울대 전기공학과 04학번 동기입니다.그래서 서로를 잘 알고 계속 창업을 논의했던 사이였죠.같은 과 동기인 우경재,고려대 컴퓨터공학과 07학번 이정행,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 05학번 조성욱 등과 함께 남자 5명이서 2008년부터 창업 스터디를 하고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내공을 쌓았습니다.”

 물론 내공 못지 않게 생활비를 버는 것도 중요했다.이들은 2010년에는 한꺼번에 공모전 2개에 응모해 1등과 2등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그가 돈을 모은 과정을 들어보면 ‘악착같이’모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실 이때 공모전을 준비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확인 과정으로서의 의미도 컸습니다.각자 창업에 대한 확신을 굳히는 동시에 이 멤버로 창업을 해도 될지를 확인해야 됐거든요.호흡을 맞추는 것도 중요했구요.”

 처음에 사무실이 없어 창업 멤버인 우경재씨 집에서 모여서 같이 살았다고 한다.비용을 아끼고 계속해서 일에 전념하며 준비 기간을 거쳤다.이렇게 해서 확신을 갖게 된 이들은 박재욱 대표의 창업자금 5000만원에 나머지 멤버들이 돈을 보태 자본금 8000만원으로 VCNC를 설립했다.법인 설립 기준으로는 올 2월 10일의 일이다.

◆끼리끼리 SNS ‘비트윈(Between)’ 출시
 VCNC의 첫 작품은 ‘비트윈(Between)’이다.현재 알파테스트 중이고 11월초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커플들을 위한 SNS를 표방하고 있다.

 “지금의 SNS를 보면 너무 공개돼 있고 개인적인 공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자기가 정말 좋아하거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일상을 공유하는 그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친밀한 관계에 집중했을 때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첫 타깃은 커플이다.그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앱을 살짝 보여줬다.앱을 통해 커플들끼리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여기서 그들만의 앨범을 만들어 사진을 공유하거나 기념일을 챙기고 특정 날짜와 시간을 정해 예약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일단은 커플로 시작하지만 가족,학교,학원 등 오프라인에 친밀감이 높은 소규모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는 분야면 어디든 확장 가능하다.

 관건은 널리 알리는 것이다.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접속돼서 쓰는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에 대중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박 대표도 이런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그래서 여러 업체들과 제휴해 서비스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소셜데이팅 업체 이음소시어스와 제휴를 맺고 여러가지를 해 보려고 합니다.그 때문에 박희은 이음 대표와 자주 상의를 하곤 하죠.범주는 다르지만 둘다 연애와 만남 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거든요.이음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 비트윈에서 애정을 키워나갈 수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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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위스캔 대표를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나는 무릎을 쳤다.“인식의 미래는 검색이다”라는 그의 말 때문이었다.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그의 이 말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의 모바일 생활이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그런데 우리의 일상 생활은 여전히 과거 PC 시절이나 피처폰 시절의 행동 양식이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그러다보니 불편한 일이 많다.좁은 화면에 검색창을 띄워놓고 오타가 자꾸 나는 터치스크린 자판을 두드려가며 힘들게 검색을 한다.피처폰시절 밤을 지새우며 친구들과 채팅하느라 익힌 휴대폰 자판이 스마트폰 시절엔 완전히 쓸모가 없어져버렸다.

 이런 불편한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까.위스캔은 그런 불편함이 오래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회사다.그리고 그 불편함을 해소하면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고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사람들의 습관이 된 기술이나 서비스는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다.

 위스캔 이태호 대표는 이 불편함이 ‘인식’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판단했다.인식은 스캐닝으로 구체화된다.스마트폰을 비롯해 각종 모바일 기기에 장착된 카메라를 이용해 사물을 인식하고 스캔하면 그것으로 수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모르는 어려운 한자가 나왔을 때 이를 스캔해 바로 뜻을 찾을 수도 있고 이름도 모르는 처음 보는 제품을 봤을 때 이를 스캔해 제품명과 가격 등을 찾을 수도 있다.명함을 인식해 주소록에 바로 저장할 수도 있고 수많은 기존 오프라인 사진들을 스캔해 모바일에서 나만의 앨범을 만들 수도 있다.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그래서 이 대표는 회사 이름도 위스캔(Wescan·우리는 스캔한다)로 지었다.

◆왜 제대로 된 인식 기술을 가진 회사가 없을까
한국외대 87학번인 이 대표는 공학을 전공으로 하진 않았다.인문학을 전공으로 했지만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다.그에겐 컴퓨터를 만지는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지금은 좀 낯설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는 컴퓨터가 취미인 사람이었다.당시엔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졸업직후인 91년 당시 럭키(지금 LG화학)에 입사했다.하지만 그가 계속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여전히 컴퓨터였다.당시 아직 회사 일에 컴퓨터가 별로 쓰이지 않던 시절이었다.그는 인터넷과 IT(정보기술) 관련 일에 종사하고 싶었다.94년 하이텔로 옮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정말 행복했죠.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하루 종일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하이텔은 시대가 바뀌면서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 못했다.중간에 외환위기마저 닥치면서 회사는 더욱 어려워졌다.하지만 그는 직업이 된 취미생활을 계속 하고 싶었다.그는 2001년 5월부터 KTH에서 일하면서 KT의 사내메신저 아이맨을 만들었다.아이디스크도 그의 작품이라고 한다.2004년부터는 KTH의 모바일 사업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실력을 인정받아 2007년에는 KT 본사로 와 윈도우 사업팀장,클라우드 사업팀장,컨버전스 서비스 사업팀장 등을 역임했다.

 KT에서 일하면서 그는 인식 기술의 필요성을 처음 느끼게 됐다.특히 스마트폰이 도입된 후 인식으로 인해 많은 불편함이 해소되고 거기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판단했다.“처음부터 사업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그런데 인식 기술을 구하러 다니다보니 필요한 기술을 확보한 회사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국내에 관련 업체들이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해외 기술을 사다 쓰고 있었습니다.해외 사례를 보니 심지어 구글도 고글즈라는 인식 비즈니스를 했는데 러시아 기술을 갖다가 썼더군요.이걸로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기술을 직접 갖고 있으면 활용도가 높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스캔한다
올 5월 KT를 나온 그는 6월 1일 자신이 100% 지분을 투자해 위스캔을 설립했다.예전 KTH 시절부터 함께 일해왔던 동료 전인갑씨가 합류해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았다.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위주로 개발진이 꾸려졌다.

 회사 이름 그대로 이 회사는 인식과 스캔에 초점을 맞췄다.하지만 기술만 제공하는 회사는 아니다.“기존 회사들을 보니 기술 개발 회사는 서비스를 잘 못하더라구요,서비스 회사들은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구요.그러다보니 쓸만한 기술을 갖고도 소비자들에게 별로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위스캔은 이런 기술과 서비스의 간격을 좁히는데 힘을 쏟았습니다.‘우리가 직접 기술을 개발하고,서비스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직접 이를 서비스화해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자’ 라구요.기본에 충실한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는 기술진과 함께 인식 기술을 만들면서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이미지 인식 및 스캔 관련 앱들의 이미지 인식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도 알게 됐다.그로선 다행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스캐닝하는 것을 기치로 내 건 이 회사는 우선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문자 인식부터 개발했다.문자 인식부터 시작해 차츰 영역을 확대하려는 계획이다.인식을 통해 보관된 모든 데이터와 경험을 체계화하고 이것을 다른 사용자들과 연동해 소셜화하는 것이 그 다음 단계다.소셜화된 데이터와 경험을 공유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소셜형 소통 수단을 제공하는 것은 그 다음 단계로 계획돼 있다.

◆명함 기반 통합 SNS
 자체 개발 기술력과 KT 시절의 다양한 서비스 노하우를 기반으로 위스캔이 선보일 위스캔(회사명과 서비스명이 같다)은 쉽게 말해 명함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고 할 수 있다.위스캔은 이 서비스를 추석 직후인 9월 중순께 출시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이 서비할를 개발하기에 앞서 명함이 가진 의미에 주목했다.“명함에는 사실 정말 많은 정보가 들어있습니다.이름부터 직책,회사,전화번호,이메일 등 그 사람의 공식적인 모든 것이 다 나와있죠.그리고 살다보면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형성된 인맥도 상당합니다.그런데 명함은 방치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하루이틀 지나다보면 명함이 꽤 많이 쌓이게 되는데 이것을 수시로 정리해주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기도 합니다.”

 맞는 말이다.명함은 나중을 위해 꼭 정리하는 게 좋지만 항상 그러기는 쉽지 않다.이 대표가 명함 인식 앱을 만든 것은 자기 자신의 이런 필요성 때문이었다.하지만 시중에는 명함을 인식해 저장해주는 앱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여기서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까.

 그는 명함을 스캐닝한 뒤 이것이 서로 소셜네트워크처럼 사람들 간에 연결될 수 있게 할 방침이다.주소록을 직접 만들어 입력하는 방식으로 스마트폰 사용자끼리 연결되는 것이 카카오톡이라면 위스캔은 명함을 기반으로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SNS다.명함을 기반으로 하다보니 직장별,직업별 친구 맺기도 가능해진다.누군가 나의 명함을 보고 나를 등록하면 친구 추천이 뜨는 방식도 기존 카카오톡과 유사하다.명함을 통한 SNS에 도전하는 서비스다.

 이게 다는 아니다.위스캔은 위위박스(WeWeBox)라는 소셜 웹 서비스도 선보일 예정이다.인식하고 스캐닝한 모든 것을 올려놓을 수 있고 자신만의 소셜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종합 관리할 수 있는 페이지다.그는 이런 서비스들을 통해 인식과 스캔의 영역을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그는 “인식의 미래는 검색이다”라고 말했다.하지만 그의 설명을 듣다 보니 스마트 모바일 시대에는 인식이 검색을 대체할 수 있을 거란 생각마저 든다.인식의 미래가 검색이라기보다는 검색의 미래가 인식일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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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을 하면서 생기는 문제의 90%는 돈문제가 아닙니다.”
  이택경 프라이머 대표는 ‘창업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 중 가장 힘든 일이 뭘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진짜 핵심적인 문제는 돈이 아닌데 벤처기업가들이 당장 눈 앞의 돈 문제에 연연해 핵심 과제를 놓치면서 사업이 어려움을 겪는다는게 그의 지적이었다.

 이 대표가 지난해 1월 권도균 전 이니시스 창업자(현 프라이머 공동대표),장병규 블루홀 이사회 의장,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송영길 부가벤처스 대표 등과 함께 설립한 프라이머는 스타트업(초기단계의 벤처)을 인큐베이팅하는 회사다.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스타트업을 발굴,컨설팅하고 지원하고 있는 이 대표가 생각하는 국내 벤처기업들의 문제는 뭘까.


◆우주볼펜이 아닌 우주선을 만들어야
 그는 이것을 세 가지로 명쾌하게 정리했다.‘돈보다 경영,재능보다 진정성,경험보다 자질’

 이 세가지는 프라이머가 인큐베이팅하려는 스타트업을 선정하는데 핵심 기준이기도 하다.이 대표는 특히 진정성과 자질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이런 모든 것을 갖추고도 쉽지 않은 게 창업이다.특히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초반에 사업 방향을 잘못 잡으면 허송세월하기 쉽다.

 “우주볼펜 이야기를 아시나요?”
 인터뷰 도중 그가 갑자기 물었다.우주볼펜 이야기가 뭘까.그는 실제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창업과 관련해 많이 비유되는 일종의 우화라며 우주볼펜 이야기를 해줬다.“우주공간에 나가면 볼펜이 나오질 않습니다.중력이 없기 때문이죠.그래서 NASA(미 항공우주국)가 우주공간에서 쓸 수 있는 볼펜을 만들었습니다.시행착오를 겪으며 수십년에 걸쳐 볼펜을 만들었습니다.그러느라 우주선 개발이 늦어졌조.그 사이에 소련이 먼저 우주선을 만들어 우주에 보냈죠.우주볼펜을 완성한 NASA가 의기양양하게 소련에 물었습니다.‘너희는 볼펜 만들었어?’ ‘아니,우린 그냥 연필 써!’”

 그는 창업가들 중에 이런 경우가 많다고 했다.우주선은 못 만들고 우주볼펜만 만드느라 정작 밖으로는 한발짝도 못 나간다는 것이다.이들에게 방향을 잡아주고,우주볼펜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우주선을 만들 수 있도록 조언해주는 게 프라이머의 역할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기존 경영학 교과서는 스타트업에 맞지 않다
 그가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은 직접 창업을 해 본 자신의 경험때문이다.이 대표는 1995년 이재웅(현 다음 최대주주),박건희(작고)씨와 함께 다음을 창업한 인물이다.연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학교 4년 선배인 이재웅 사장이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만나 함께 다음커뮤니케이션을 만들었다.

 “구체적인 사업모델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다만 이재웅 사장이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며 함께 사업을 하자고 했죠.” 이재웅 사장의 아이디어는 이거였다.‘앞으로는 컴퓨터가 컴퓨팅 도구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가 될 것 같다.그 시대를 준비하자’

 방향은 맞았지만 그 뒤로 3∼4년 동안 정말 엄청나게 고생했다.창업 초기 단계에서 조언을 해주고,엔젤투자를 해주고,수익모델을 만들고 벤처캐피탈과 연결해주는,흔히 말하는 벤처 생태계가 있었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그에게 지금의 일을 하게 만들었다.이 대표는 “기존 경영학 교과서의 내용 중 상당수는 대기업의 성공사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자본도 없고,경험도 없는 스타트업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프라이머는 현재 엔턴십과 인큐베이팅 등 2가지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엔턴십은 창업 아이디어 수준의 팀에게 사업화를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작년 12개팀이었고 올해는 25팀이 참여하고 있다.인큐베이팅은 이미 사업을 시작한 팀이 대상이다.대부분 수익모델도 갖췄다.애드투페이퍼,위트스튜디오,모비틀,스타일쉐어,온오프믹스,핀포스터,퀵켓 등 7개 팀이다.

 프라이머는 인큐베이팅 7개팀과 엔턴십 중 7개팀 등 총 14개팀이 공개된 자리에서 투자자와 업계 관계자들에게 발표하고 검증을 받는 데모데이를 이달 30일 실시할 예정이다.이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와이컴비네이터(Y combinator)처럼 그들이 주최하는 데모데이에서 발표만 해도 15만 달러 투자 유치가 보장되는 그런 인큐베이터가 되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라며 “장기적으로는 이런 노력으로 국내에서도 벤처생태계라는 것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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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KT경제경영연구소가 운영하는 디지에코에 지난달 제가 기고했던 글입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올 1 IT분야(정보처리 및 제조업)에서 신규 법인으로 등록된 건수는 888건에 달했다.지난 한 해 이 분야에서 1년간 992개 업체가 등록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1월 신선 법인 수는 최근 10년간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했다.


 
신설 벤처 기업으로 방향을 조금 달리해서 봐도 마찬가지다.국내 벤처기업 수는 올 3월말 25000개를 돌파했다.2010년 한 해 동안 5752개가 늘어 역대 최다 창업을 기록했다.올해 1~2월에도 680여개 벤처가 생겼다.올들어 휴일을 뺀 근무일 기준으로 하루 평균 17개 벤처기업이 창업한 셈이다.1990년대 후반 벤처 붐에 이은2의 벤처 붐이라 할 만하다.


 작년초부터 한국에서 벤처 열풍을 느끼고 이들 중에서도 인터넷과 모바일 분야에서 이제 막 시작했거나 아주 초기 단계에 있는 벤처들,이른바 스타트업을 집중적으로 취재하기 시작했다.한국의 스타트업 대표주자는 누구인가,한국에서 스타트업이라 하면 어딜 꼽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첫번째 물음이었다.이들의 특징은 무엇이고 어떤 성과를 냈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도 관심사였다.아울러 이런 회사를 창업한 이들은 누구며 이들은 왜 창업을 했는가도 나에겐 중요한 질문이었다.


 
한국의 스타트업 현황을 면밀하게 바닥부터 볼 수 있다면 한국의 IT 산업이 나갈 방향에 대해서도 알 수 있지 않을까,기업가 정신과 경영 원칙의 핵심에 대해서도 필드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이거였다.한번 뿐인 인생에서 기득권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그 동기는 과연 무엇인가였다.그것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하겠다.


 
작년 3월에 시작했으니 이런 일을 한 지도 벌써 만 1년이 지났다.이 글은 지난 1년간 한국의 스타트업을 취재하면서 느낀 점들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한 글이라고 하겠다.

 

◆제2의 벤처 전성 시대

 앞서 언급한 숫자만 봐도 가히 2의 벤처 전성시대라고 할 만하다.이 중에는 혼자 소규모 자본으로 시작하는 ‘1인 창업기업도 많다.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언급할 정도로 지난해 초부터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중소기업청이 2009 5월 개설한 1인 창업 지원 사이트 아이디어비즈뱅크에 가입한 회원 수는 올 3월말까지 14000여명에 달한다.대기업·중소기업을 다녔던 직장인 출신은 물론 대학교수와 대학생·대학원생도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국내 벤처캐피탈(VC) 회사들도 투자를 재개했다.벤처캐피탈의 2009년 투자금은 8300억원에 불과했지만 작년 약 11100억원에 이어 올해는 12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중소기업청도 올해 32075억원의 중소기업정책자금을 풀 계획이다.


 
지난해 벤처 투자 규모를 늘렸던 벤처캐피탈 중에는 올해도 투자 계획을 늘릴 예정인 곳이 많다.지난 해 2200억원 정도를 투자했던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올해 5000억원 이상을 벤처 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한국투자파트너스는 지난해 700억원 정도를 집행했지만 올해는 1000억원 이상을 생각하고 있다.LB인베스트먼트는 작년 570억원에서 올해는 900억원 이상을 투자할 예정이고 한화기술금융 역시 지난해 기술벤처에 500억원 정도 투자했는데 올해는 1000억원을 계획하고 있다.


 
벤처가 뜬다는 느낌은 벤처와 별 상관없어 보이는 주체들이 나설 때 확연히 느낄 수 있다.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벤처캐피탈을 직접 설립하려고 나서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대전시는 최근 대덕이노폴리스벤처협회와 지역 벤처기업인 애니솔루션 등과 함께 벤처캐피탈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목표 설립 시한은 오는 5월이다.대전시는 총 250억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해 대전 지역의 유망 벤처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대전시의 이런 움직임은 다른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되고 있다.모태(
母胎)펀드를 운영하는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주로 공업단지와 연구시설을 보유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벤처캐피탈 설립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그동안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했거나 출범을 도운 벤처캐피탈은 AK강원인베스트먼트(강원도대경창업투자(대구시그린부산창업투자(부산시) 등 일부에 불과했다.


 
물론 이런 지자체들은 지역 벤처기업에 투자할 재원을 마련해 지방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하지만 지자체가 나섰다고 하더라도 직접 VC를 설립하기보다는 창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거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최근 일부 지자체의 이런 움직임은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소셜과 모바일이 화두

 그렇다면 이런 창업 열기가 최근 확산되는 이유는 뭘까.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최근 IT 분야의 키워드는 3D와 소셜,그리고 모바일이라고 말했다.굳이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업계에 있는 종사자들 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까지도 3D 영상과 관련된 각종 장치산업 및 소프트웨어 기술,그리고 소셜,모바일이 화두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창업 열기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창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들은 소셜과 모바일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특히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과 관련 부품 사업은 창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주요 사업 아이템이다.여기에 소셜커머스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소셜게임 등 관련 창업도 늘고 있다.


 
이런 서비스들이 가능하게 된 것은 모바일 인터넷이 획기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과거 막대한 요금 부담 때문에 거의 아무도 쓰지 않았던 모바일 인터넷을 이제는 누구나 자유롭게 쓰는 시대가 됐다.그리고 모바일 인터넷을 이렇게 변화시킨 것은 뭐니뭐니해도 2009 10월 국내에서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장병규 본앤젤스투자파트너스 대표는 2010년이 역사에 남는다면 아마 모바일인터넷을 거의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사실 브로드밴드로 인터넷 산업의 토양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NHN,엔씨소프트도,네오위즈도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지금 모바일 분야의 사용 기반 마련이 마련됐기 때문에 또 다른 벤처 신화를 기대할 시기가 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아이폰이 이런 환경의 촉매제가 됐다는 것이 우리가 아이폰에 의미 부여를 하는 이유이고요.”

 

◆왜 창업을 하는가

 소셜과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창업 열기를 지핀 것은 분명해 보인다.하지만 새로운 트렌드가 보인다고 해서 무작정 사람들이 창업 전선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무엇이 젊은 창업자들의 기업가 정신을 자극했을까.무엇이 이들을 이 불확실한 세계에 뛰어들게 했을까.


 
한국형 창업 성공 모델의 특징 중 하나는 대학생 창업보다 직장을 다니다 나와서 창업을 해 크게 성공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이 그렇고 NHN을 창업한 이해진,김범수 의장이 그렇다.이들 말고도 대부분 크게 성공을 거둔 경우는 직장을 다니다 나와서 창업을 한 사례다.


 
블로그에서 한국의 스타트업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한국에서 창업을 하는 사람들의 창업 동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들 역시 대부분 좋은 회사를 다니다 창업을 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에서 자랑스런 삼성인상까지 받았던 전제완 사장은 왜 뛰쳐나와 프리챌을 만들었을까.옥살이까지 하고 그렇게 고생을 거듭했으면서도 왜 또다시 창업을 했을까.이노무브 장효곤 대표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잘 나가던 컨설턴트 일을 하다가 갑자기 회사를 차렸다.그는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KT라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에 잘 다니던 한명제 사장은 왜 나와서 벤처 회사를 창업했을까.이런 의문이 드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장효곤 사장은새로운 변화시키는 것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즐거웠고 그것만 하면 인생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이게 그의 직장 생활에 대한 결론이었다.그래서 그는 과감하게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자신이 있는 직장에서 아무런 도전을 느끼지 못할 때,재밌던 일이 재미없다고 느껴질 때 창업을 결심하는 것 같다.물론 여기에는 개인의 성격이 크게 작용한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자들 대부분은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느꼈을 때 창업을 결심했다.그것은 벤처를 창업해 큰 성공을 거뒀던 김범수 카카오 의장도 그랬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창업을 경험한 온오프믹스 양준철 대표도 마찬가지였다.재미로 창업을 결심하는 사람은 없었다.하지만 창업을 한 뒤에 이들 중 상당수는 성공 여부를 떠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것 같았다.조직의 구성원이 아닌,진짜 자기 자신 말이다.


 
직장 생활을 하던,학교를 다니던,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한다.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 어느 정도 그 문제에 해답을 주길 원한다.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런 혜택을 받는 이는 거의 없다.일부는 그런 혜택을 받았지만 자신이 당초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른 것에 실망하고 나오기도 한다.결국 조직과 자신의 비전을 일치시킨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이 찾는 것은 꿈이었다.그리고 조직 생활의 어려움을 생각해본다면 결국 벤처를 하나 직장 생활을 하나 성공 가능성이 낮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이다.그렇다면 이왕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결론을 내릴 만도 하다.


 
또 한가지 재밌는 부분은돈을 벌겠다는 목적 하나만 있다면 창업을 하지 않는게 좋다는 것을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는 점이다.돈을 벌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돈 이외의 보다 큰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을 향해 가는 이들은 분명하게 이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마음에 부담이 있는 만큼 성장하고,절박한 만큼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창업자들의 유형

 여기서 좀 정리를 해 보자.자의적인 기준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최근 창업가들의 면면을 보면서 한가지 큰 특징적인 사례로 성공 경험을 가진 이들의 생애 두번째,세번째 창업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대표적인 사례가 김범수 NHN 창업자다.1998년 한게임을 설립하고 2000년 네이버와 합병해 NHN이라는 국내 벤처 사상 최고의 성공 신화를 만들었던 김범수 사장은 2007년 아이위랩을 만들었다.2010 3월 출시한 카카오톡이 뜨면서 회사 이름도 카카오라고 바꿨다.지금 카카오는 국내에서 1000만명이 넘는 사용자를 확보하고 또 다른 성공 신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네오위즈와 첫눈을 창업해 대박을 터뜨렸던 장병규 사장도 대표적인 인물이다.그는 지난 2007년 블루홀스튜디오를 창업해 온라인 게임 테라를 올초 선보였다.온라인게임 테라는 게임 시장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2010년에는 본앤젤스라는 앤젤투자회사를 설립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자신의 성공 노하우와 창업 경험을 살려 후배 기업가들을 도와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1990
년대말 보안업체 인젠을 창업했다 SK텔레콤 등을 거쳐 2000년대 중반 태터앤컴퍼니를 창업해 벤처 창업 성공 모델을 보여준 노정석 사장도 이에 해당된다.노 사장은 태터앤컴퍼니를 구글에 매각한 뒤 구글에 2년 정도 몸을 담았다가 지난해 나와 다시 아블라컴퍼니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2000
년대 초반 이투스라는 교육 업체를 차려 성공한 바 있는 이비호 사장도 성공 경험을 가진 인물의 두번째 창업 사례다.그는 이투스를 SK커뮤니케이션즈에 매각한 뒤 지난해 스픽케어라는 온라인 영어 말하기 교육 회사를 차렸다.교육이라는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것이 그의 특징이기도 하다.


 
김범수,장병규,노정석 세 사람의 공통점은 또 있다.이들이 창업을 다시 한 것 뿐 아니라 창업하는 후배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그런 점에서 보면 이들은 창업가 출신 투자자 시대의 제 1막을 여는 인물들이라고 할 것이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는 재기를 노리는 인물들의 창업 역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대표적인 인물은 프리챌 창업자인 전제완 사장이다.전 사장은 1999년 프리챌을 창업해 국내 최초 최대의 커뮤니티로 키운 인물이다.2002년 긴급 체포되고 2년간 옥살이를 하면서 프리챌 경영권을 빼앗겼고 지난 2009년 유아짱을 설립해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아크릴의 박외진 사장도 전제완 사장과는 조금 사례가 다르지만 역시 재기를 노리는 인물이다.2000년대초 WRG라는 모바일 솔루션 회사를 만들었던 그는 재작년 감성검색 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들고 나왔다.WRG는 그에게 생소했던 온라인게임이라는 분야에 도전했다가 회사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번에는 본업에 검색과 솔루션에 충실하겠다는 각오다.


 
노상범 홍익세상 대표,김규동 JDF 대표도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노 대표는 1990년대말 홍익인터넷을 창업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최근 홍익세상이라는 인터넷 회사를 설립했다.김 대표는 과거 핸디소프트 대표이사를 지냈다.


 
또 다른 사례는 아마 대기업에 몸담고 있다 창업에 도전하는 인물들일 것이다.한명제 아이트로스 대표는 KT에 다니면서 투자할 회사를 물색하는 일을 했었다.그러다가 자기가 투자할 만한 회사가 없자 그럴 만한 회사를 만들어보겠다고 KT를 뛰쳐나온 인물이다.미국의 명문대 유펜을 나와서 맥킨지앤컴퍼니를 다니다 한국에 들어와 티켓몬스터를 차린 신현성 대표도 이 유형에 해당된다.NHN을 다니다 소셜게임 업체를 차린 이정웅 선데이토즈 사장,역시 NHN 출신인 이진수 포도트리 사장도 유사한 사례다.NHN과 엔씨소프트를 거쳐 지난해 소셜게임 회사를 만든 김미영 소셜인어스 사장도 여기에 해당된다.

 

◆과연 버블인가

 국내 소셜게임 업체는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소셜커머스 업체는 이보다 훨씬 많은 300여개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두 업종의 공통점은 해외에서는 엄청나게 큰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그만한 시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수익 모델은 분명히 있지만 시장이 아직 크지 않은 단계에서 너무 많은 업체들이 난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법 하다.


 
하지만 숫자가 많다고 그대로 버블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사실 국내 벤처 투자 분위기는 아직까지는 1990년대말의 버블 트라우마가 많이 남아 있다.그때의 강렬한 경험으로 인해 묻지마 투자를 하기란 쉽지 않다는 뜻이다.버블의 조짐은 업체 난립 뿐 아니라 무분별한 투자가 이뤄지고 정부의 터무니없는 지원책이 남발할 때 분명해지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창업 열기와 비교해볼 때 한국의 창업 현황은 아직 버블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친 감이 있다.일단 기업가들이 대규모 자본을 끌어들이려고 하기보다는 소규모 자본의 창업을 위주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과 모바일 혁명으로 인해 리스크가 적은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 수많은 회사들이 한꺼번에 도산할 가능성이 적은 것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지난 19990년대말에 비해 고액 투자를 처음부터 무리하게 받기보다 엔젤투자를 받는 사례들이 늘면서 벤처 회사 자체가 휘청거린다거나 펀드 등을 통해 돈을 집어 넣은 수많은 소액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줄었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벤처기업인들의 고민은?

 벤처를 하는 분들은 어떤 고민을 갖고 있을까.이 부분은 이 짧은 글에서 한 두가지 사례로 정리할 수 있는 그런 주제는 아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정부의 지원만 쳐다보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대부분은 정부에 바라는 것을 물었을 때별로 바라는 것이 없다는 응답을 했다.


 
오히려 이들의 바람은 소박했다.큰 자금을 지원해주길 바라지도 않았고,어느날 갑자기 모든 규제가 사라지는 것을 꿈꾸지도 않았다.그저 병역특례 제도가 이공계를 위해 좀 확대됐으면 하거나,정말 말도 안되는 길고 지루한 서류 작업이 줄었으면 하는 정도였다.


 
물론 기본적인 고민은 누구에게나 공통됐다.잘 이해가 안되는 행정 절차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인지,긴급한 상담이 필요할 때 누구와 상의를 해야 하는지,아직도 벤처투자자들이 비즈니스의 가능성보다는 수익 모델을 우선 보려고 하기 때문에 투자 유치가 어려운 데 이럴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인지,회사를 알릴 방법이 없는 것에 대한 고민 등등.


 
한국에서 스타트업이 조성될 만한 생태계가 없다는 것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문제는 생태계가 정부 주도로는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우리는 그것을 이미 1990년대 말에 했다.정부가 그렇게 나섰지만 한국에서 스타트업,벤처를 위한 생태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결국 이들의 고민은 자신들이


 
이 생태계를 직접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자신의 사업을 제대로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벤처캐피탈(VC)이 돈 잘 버는 것을 보여줘야 연기금 등 장기 투자자금이 이 분야로 들어오게 마련이다.VC가 돈을 잘 벌려면 당연히 창업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투자할 만한 절대적인 대상이 없으면 이게 힘들어진다.얼마전까지만 해도 창업하는 사람들이 없고,젊은이들의 도전 정신이 사라졌다는 것이 문제의 귀결이었다.하지만 이제는 그런 비관적인 결론으로 꼭 귀결될 필요는 없는 것 같다.서두에서 밝혔듯,벤처에 도전하는 이들은 지금 그 어느때보다 많고 이들의 움직임은 활발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들은 10년 전 선배들보다 훨씬 더 냉정한 현실에 자신들이 발을 딛고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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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트위터 간담회는 예상대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양상이었다.

당초 예상했던,그리고 이날 오전부터 이미 실시된 한국어 서비스 실시를 제외하면 크게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한국 방문 자체와 기자들과의 첫 인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었다.이미 하루 전날 LG유플러스,다음커뮤니케이션 등을 다니면서 목적을 이미 다 달성했다고 생각해서였는지 기자간담회는 아주 짧고 간결하게 끝났다.발표 내용 역시 트위터 유저라면 이미 알 만한 것들이었다.

이미 트위터 상에서 엄청나게 하루종일 돌아다닌 내용이지만,간략하게 창업자인 에반 윌리엄스의 발언 위주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트위터는 실시간 글로벌 정보 네트워크다.
트위터는 단순 소셜네트워크라서비스(SNS)라기보다는 정보네트워크다.
트위터는 정보를 먹기 좋은 크기(한입 크기?)로 제공해 준다.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한국어 트윗의 성장률은 무려 3400%에 달한다.한국 트윗은 전 세계 평균 성장률보다 훨씬 높다.
한국이 트위터 성장에 왜 중요한가? 한국은 IT기술이 발달한 나라이고 한국에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오늘 이 자리에 온 것도 한국에서 작년 하반기에 트위터가 급성장하면서 한국인들에게 보답하려는 마음도 좀 있다.아울러 몇가지 협력 내용을 알리고 새로운 소식도 알리기 위해 온 것이다.
한국은 SNS 분야의 리더이다.
트위터는 지금 한국에 존재하는 많은 SNS 서비스를 보완하길 바란다.
트위터를 보면서 한국에서도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픈 말은..꼭 존재해야 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집중해라.
남이 말하는 것이나 현재 있는 큰 시장에 너무 신경쓰지 말아라.
나는 3개월 전 CEO에서 물러나 지금은 제품 부문 및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그리고 그래서 이렇게 한국에 올 시간도 있었다.

 

공식 기자회견이 끝나고 케이티 센튼 트위터 부사장과 뒷자리에 서서 대화를 나눴다.그때 나온 짧은 대화 한 토막.

케이티 부사장 왈, “어제(18일) 청와대를 방문했는데,만난 청와대 분들이 모두 명함에 트위터 아이디가 있었다.정말 놀라웠다.그래서 즉시 본사에 연락을 했다.여기 지금 한국인데,그리고 Blue House인데,여기 명함에 다 트위터 아이디를 넣고 다닌다!”
나 “만난 분이 누구인가? 대변인?”
케이티 부사장 “잠깐..알아보겠다.” (누군가에게 가서 물어보더니) “아 김철균 비서관과 그 팀이었다.”
일동  아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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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일 아침 라디오연설을 통해 한국판 주커버그를 키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이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올해 모바일 분야 1인 창조기업 지원책이 확대 시행되는 것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실제로 정부는 개인의 창의적 아이디어로 지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1인 창조기업이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된다고 보고 작년부터 육성책을 시행해 왔다.올해에는 특히 모바일 분야에 중점을 두고 1인 창조기업의 왕성한 활동을 돕는 시책을 마련한다.모바일 앱 창작터가 늘어나고 글로벌 앱 지원센터가 가동되는 것이 단적인 예다.

 하지만 나는 이 대통령의 말씀을 들으면서 계속 답답했다.왜 시장은 진화하는데 정부는 옛날 생각 그대로인가?기업을 하는 사람들,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깨닫고 있는데 왜 정부의 높은 사람들은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선 육성책을 쓰면 된다’는 생각에만 빠져있는가.대통령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기업을 망치려면 기업에 돈을 주면 된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얼마전 나와 만났을 때 이런 말을 했었다.“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아이를 망치려면 돈을 주면 된다고..기업도 마찬가지다.기업을 망치려면 기업에 돈을 자꾸 주면 된다.”

 그의 이런 말이 정부의 모든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정부가 벤처기업 발전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게 모두 허사라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닐 거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벤처 기업을 키워보겠다고, 정부가 나서서 육성해보겠다고 하는 것들이 오히려 기업과 벤처생태계를 망치는 일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는 담고 있다.

 과거 벤처 버블 시기를 돌이켜보면 정부의 과도한 정책은 오히려 독이 됐다.그로 인해 일정 성과가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제 그로 인한 성과와 부작용을 구별하고 평가를 할만한 시기도 됐다.이제는 정부의 육성책이 나오면 가장 두려워하는게 기업인들이다.
 전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인 전하진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겸임교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역설적으로 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으면 더 강한 기업이 나올 수 도 있다.정부가 직접 창업자금을 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행정 우려
 기업인들은 이런 것을 다 체득하고 이를 사업에 적용하고 있는데 MB 정부의 지원책은 과거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가장 큰 문제점은 기업인들이 원하는 것에는 귀를 막고 ‘자 돈 주고 판도 깔아주고 지원해 줄 테니까 잘들 커봐’ 이런 식이라는 것이다.정작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해결해 주지 못한다.정부는 기업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뭔지 알고 있는가? 진지하게 조사를 해 본 적이 있나? 동대문 시장을 다니는 것처럼 스타트업 기업인들,중소기업인들,창업을 고민하는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해 본적이 있는가.그렇지 않고 육성책을 내놓는다면 그건 그냥 과시용 정책에 다름 아니다.정부의 성과 리스트에 한줄 올려놓기 위한.‘이 정부는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이런 정책을 펼쳤다’고 자랑하기 위해서일 뿐이라는 생각만 들게 한다.

 내가 만나본 벤처인들의 바람은 의외로 소박했다.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바라는 벤처인들이나 정부가 무슨 큰 앱 창작터 같은 것을 만들어주길 바라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기껏 지원책이라봐야 공대생들의 군입대로 인한 산업인재 고갈을 막기 위해 병역특례를 좀 확대해줄 것을 바라는 정도? 였다. 그럼 이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뭘까?

◆쓸데없는 규제 푸는 것에 중점둬야
 이러닝 업체로 등록하는데 사무실 평수를 따지고,게임 사업자로 등록하는 데 입주한 건물 주차장 지붕을 문제삼고,게시판에 민원을 접수하려고 하는데 전화로 사실 확인을 하고, 그러고도 접수하는데 2-3일씩 걸리고,인터넷 가입 하려면 아직도 모든 개인 정보를 다 넣어야 하고,게임을 키운다고 하고는 앱스토어에 게임 카테고리도 없고.. 등등..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얼마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주차장 지붕 때문에 게임 등록을 못 한 사람의 일화는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아닐까.

 벤처인들이,또는 창업을 내심 꿈꾸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이런 규제를 없애주는, 또는 완화해주는 것이다.그리고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정부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고 시장의 힘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이 선행되야 할 것이다.

 내가 모든 벤처인들을 만난 것도 아니고 모든 사업하시는 분들을 아는 것도 아니다.하지만 나의 제한된 경험 속에서 비춰봐도 성공한 어떤 기업인도 정부 지원을 받아서 자리잡은 사람은 없었다.치열하게 시장에서 경쟁하고 수익을 내기 위해 열심히 달린 결과일 뿐이다.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정부 지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처구니 없는 규제 때문에 괴로워한다.한가하게 종이 쪽지나 내고 가라고 기업들을 오라가라 할때 그들의 경쟁력은 점점 떨어져간다.

 주커버그는 정부 지원을 받아서 성공하지 않았다.모바일 앱 장터에서 1등한 게 아니었다.주커버그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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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입주한 오피스텔 주차장 지붕이 불법 건축물이라 게임을 만들 수 없다는 게 말이 될까.

이런 말을 들으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하기 싶상이다.나 역시 그랬다.6일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에서 화제가 됐던 한 게임개발자의 눈물겨운 사연은 아무리 내용을 들여다봐도 ‘이게 정말 사실일까?’ 싶을 정도다.거짓말이 아닐까 눈을 의심하게 된다.

 이미 많은 분들이 ‘좌절개그’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이 분의 사연을 접하셨겠지만 제 블로그에 들어오는 분들을 위해(특히 요즘 구글 크롬번역기로 제 블로그 내용을 보시는 분들을 위해) 대충 내용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3D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인 정덕영씨(필명 몽마)는 지난해 다니던 회사를 뛰쳐나와 지인들과 함께 모바일 게임 업체를 창업했다.몇 달전 해외시장에 내놓은 게임을 한국 앱스토어에서도 출시하기 위해 게임물등급위원회에 심사 절차를 밟기 시작한 건 지난 3일.그런데 정씨가 심사를 받는 것은 MMORPG의 퀘스트를 깨는 것보다 힘들었다.

 우선 그는 별도의 법인용 공인인증서를 발급받기 위해 전국에 단 한 곳 있는 발급 업체(한국전자인증)를 찾아가 심사를 받고,신용정보업체에 실명 인증을 신청해야했으며,게임설명서를 작성하고,심의료를 납부해야했다.여기까지는 그래도 필요한 절차거니 하고 발에 땀나게 뛰어다니면서 처리를 했다.그런데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벽에 부닥쳤다.

 정씨는 “처음에는 간단히 서류를 작성해 내면 될 줄 알았는데 어이없는 이유로 심사 신청도 못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오피스텔 주차장의 아크릴제 지붕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서울시 마포구청 관할의 게임제작업체로 등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정씨는 “구청 담당 직원도 황당해 했다.공장을 짓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규정이 있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의 글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제가 빌린 오피스텔 건물의 주차장 지붕이 불법건축물이기 때문에, 그걸 철거하거나, 벌금을 물기 전까지 게임업체 등록을 시켜줄수 없다는 겁니다.
  제 입대차 계약서를 검색하면 불법건물이라고 나오기 때문에 등록시켜줄수 없다는군요.
  제가 10월 말에 입주했는데, 11월 중순에 불법건물 지정이 되었습니다.
  구청 문화체육과에서 저보고 참 딱하다고, 상황은 이해가 되고 하는데 운이 없으시다며.
  해결방법은 이사가랍니다.
  그게 젤 쉬운 방법이랍니다.

 이 글을 읽은 네티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필자 몽마님에 대한 격려의 멘트와 함께 정부에 대한 비난도 쏟아졌다.
 ‘게임강국은 무슨..... 개머리해안에서 보온병던지는 소리죠.’ ‘전문 프린트해서 청와대에라도 보내고 싶네요...’
 ‘어떻게든 게임심의를 안내주겠다는 나라의 녹을 쳐 받으시는 분들의 불굴의 의지를 보는것 같습니다.’
  ‘게등위에 게임을 심의 받는 험난한 과정을 MMORPG 게임으로 만드는겁니다. 아... 만들어도 심의 받기가 어렵구나.’

 이런 내용은 계속 문제가 되고 MB가 그렇게 강조해왔지만 전혀 현장에서 약발이 먹히지 않는 행정만능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몽마님이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무슨 심사를 받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할애해서 서류를 들고가면
 ‘거기에 두고 가세요’
 이런 말만 듣는다. 왜 서류를 여기에 내려고 요즘같은 세상에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을 당연히 하지 않을까.

 그런데 게임 등급 심사만 문제가 아닌 것 같다.이 글에 대한 네티즌들의 댓글 중에 이런 게 있었다.이 글을 보고 게임위 게시판에 글을 올리려고 한 네티즌이 겪은 일이다.
 “게임위 게시판에 몇자 적으려고 했는데
  회원가입이 황당하네요 “유선확인 후 담당직원 승인”
  정부기관 홈피들중 회원가입시 ‘유선확인’ 하는곳이 게임위 말고 또 있나요???
  참여마당에 질문/답변 게시판에 몇 자 적은것도 회원가입하라고 하고
  회원가입시 유선확인 이라니요???? 국민을 귀찮게 해서 쓴 소리는 안듣게다는 의도가 분명하지요? ”
 <변경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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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선확인 후 담당직원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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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정말일까. 나도 궁금해서 게임위 홈페이지로 갔다.그리고 게시판을 글을 남기려고 시도를 했다.그런데 회원 가입이 안됐다! 분명히 모든 것을 다 빠짐없이 적었는데,회원 가입이 안 되는 거였다.특수 문자를 넣으면 안된다는 메시지만 나오면서(특수 문자는 넣은 적도 없지만)..

 항상 느끼는 것을 몽마님이 지적해 주신 거였지만 정말 행정 처리와 관련된 것은 황당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규제를 뽑겠다고 그렇게 큰 소리치면서 대통령이 되도 현장에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그렇다고 현장의 공무원맛 탓할 일이 아니다.그런식으로 일하는 것에 계속 익숙해져온 데다 실제로 규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규정에 살고 규정에 죽는 공무원들은 그런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자기 목이 달아날 판이다.왜 숱한 민원인들 때문에 규정을 어기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나서서 규제를 없애려고 하겠는가.

이런 것은 인터넷이나 IT만의 문제가 아니다.규제를 없앤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법령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가장 중요한 규제 문제 해결은 쓸데없는 행정 절차를 줄이고 서류 제출을 간소화하는 것이지 멀쩡한 전봇대를 뽑는 것이 아니다.

네티즌들의 댓글 중에 이런 게 있었다. ‘게임을 영어로 만드시고, 맘편히 미국, 홍콩, 캐나다 엡스토어에 올리세요....그게 더 맘편하실듯..’

이 댓글처럼 실제로 이렇게 하는 개발자들이 많이 있다.아예 한국에서 뭔가를 개발하는 것을 관두고 해외에 나가기도 한다.인력의 해외 진출 아니냐고 정부가 좋아한다면 할 말 없겠지만 이 나라에서 창업과 기술 개발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면 생각을 달리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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