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맞춤셔츠를 입은 적이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 입지 않고 있다.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 기성복에 비해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 없는 가격, 단조로운 스타일 등이 주된 이유였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더 돈을 주고서라도 기성복 매장에 가서 만들어진 셔츠나 바지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맞춤셔츠를 입는 사람들이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최근엔 맞춤형 셔츠를 입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조짐도 보인다. 이번에 소개하는 스트라입스라는 회사는 이런 맞춤형 셔츠를 판매하는 회사다. 스타트업이지만, 사업 모델은 아주 오래된 기존 사업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 뭐가 다른 걸까. 바로 조금 전 언급했던 그 단점들을 스트라입스는 극복했을까. 그 단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고객들과의 접점을 넓히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물론 이 회사는 그런 모든 것을 감안하고, 준비해서 시작했다.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로 밤을 새고프다

2001년 서강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한 이승준. 전자공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08년 아이리버에 입사를 했다. 사회 생활의 첫 발을 내딛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중요했던 것은 병역특례로 군 복무를 대신하기 위해서였다. 3년이면 끝이 나지만 그는 아이리버에 1년을 더 있었다. ‘좀 더 배우고 싶었다’는 게 그가 말한 이유. 

 그가 입사했을 때 아이리버는 이미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회사였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회사로 탈바꿈하던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제가 들어가고 얼마 안 있어서 창업자인 양덕준 대표가 회사를 나가셨어요. 그리고 회사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정말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을 때였죠.” 회사는 약간 어수선했을 수 있지만 그 덕에 그는 좋은 경험을 했다. 전자사전, MP3 플레이어, 전자책 단말기 등 온갖 회사의 새로운 사업들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여러 유형의 사업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 처음 입사해 신기술 도입을 검토하는 일을 했던 그는 얼마 안 있어 PM(프로덕트매니저)로 보직을 변경했다. 그리고 이 때 훗날 창업을 같이 하게 되는 이창훈씨를 만나게 된다. 이창훈은 UX디자인 담당자였다.

 PM과 UX디자이너는 당연히 함께 할 일이 많았을 것이다. 일이 많을 땐 몇날 며칠을 밤을 새가며 일을 하기도 했고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고 자연히 신뢰도 쌓이지 않았을까. “제가 성격이 급해서인지, 뭘 하게 되면 끝을 보지 않으면 안됐고, 그것도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해내고 싶은 마음이 많았어요. 하루에 4-5시간밖에 잠을 못자면서 일을 하는 경우가 잦았죠.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차피 이렇게 밤을 새가며 일을 할 거면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밤을 새고 싶다’고요.”

 그는 간간이 창업 계획을 이창훈씨와 얘기했다. 그리고 2012년초 아이리버를 나왔다. 자신의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일단 회사는 나왔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심지어 명확한 아이템도 없는 상태였다. 그에겐 여러가지로 준비가 필요했다.

◆지금의 남성 패션은 뭔가 이상하다

 막연하게나마 그는 남성 패션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가 하고 싶은 일로 밤을 새고 싶다고 했쟎아요. 남성 패션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와 관련된 일을 하면 얼마든지 고된 일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죠.”

 그가 생각한 것은 남성 패션 시장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 고가 브랜드나 하이클래스 남성 패션은 실제로 그 복장을 하고 어디를 다닐 수도 없는, 잡지에서나 봐야 하는 패션이고, 중가 브랜드의 패션은 가격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는 ‘기존 패션업체들과 다르게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내세운 것이 ‘상식적인 패션’이었다. 

 2012년 9월부터 창업을 준비했지만 그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자금도 부족했다. 때마침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패스트트랙아시아(FTA)가 2차 CEO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바로 여기에 지원했다. “경쟁이 치열했어요. 큰 그림이나 전략을 들고 가봤자 안먹힐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저의 경력을 살리면서도 실행력이 좋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방법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어요.” 그의 이런 방식은 효과를 발휘, 헬로네이처와 함께 FTA의 지원을 받는 2차 기업 집단에 포함됐다.

 지원당시 그의 팀은 이창훈씨와 달랑 2명이 전부였다. 개발자가 없는 상태였고, 사업 아이템도 분명하지 않았다. FTA가 달라붙어 세부적인 계획을 세웠다. “남성 셔츠 분야로 도전을 하자고 일찌 감치 계획을 수립했는데 고민이 생기더라구요. 절대로 동대문보다 더 저렴하게 옷을 구해올 수 없다는 거죠. 이들과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까. 가격이 좀 더 나간다면 무엇으로 승부를 봐야할까 엄청 고민했어요. 그래서 내린 결론이 ‘찾아가는 서비스’였죠.”

 인력을 충원하고 사람들을 추가로 채용하면서 이들은 법인을 설립했다. 2012년 1월이었다. 회사 이름도 오디너리(Ordinary)에서 스트라입스(Stripes)로 확정했다. 옷을 떠올리면서도 누구나 쉽게 알 만한 단어라는 것도 중요했다. 처음에 팀 이름을 오디너리로 할 때 생각을 보통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상식적인’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셔츠를 제공하기 위해 스트라입스 창업 멤버들은 올초 동대문 시장과 종로바닥, 광장시장 등을 샅샅이 뒤졌다. 손발이 척척 맞을 맞춤셔츠 봉제공장을 찾는 작업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찾아가는 서비스 구현을 위해 스트라입스는 로드 테일러(Road Tailor) 3명을 채용했다. 모두 여성이다. 이들은 패션을 전공으로 했으며 옷 구매나 사이즈 측정을 원하는 사람에게 직접 찾아간다. 셔츠 구매에 필요한 사이즈 측정은 물론이고 컨설팅도 해 준다. 남성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에게 맞는 옷 스타일에 대해 잘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다. 잘 알고 있더라도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새로운 경지가 열릴 수도 있다. 평소에 패션이나 옷차림에 대해서 누군가 대화를 하는 적 자체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주제에 대한 대화 자체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 대표의 이런 생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 것 같다. “로드 테일러분들이 찾아가서 피부색, 체형, 얼굴형 등을 고려한 셔츠를 제안합니다. 이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도 알게 됐구요.”  

◆7월 바지, 9월 정장 서비스도 오픈

 4월말 서비스가 시작됐다. 이제 막 두달이 된 것이다. 그 동안 3000여명의 사이즈를 쟀다. 이 숫자가 1만명에 도달하면 본격적인 서비스 성장이 가능하리라는 게 이 대표의 예상. 현재는 셔츠만 주문할 수 있지만 앞으로 상품은 더욱 확대된다. 우선 7월에 바지, 9월에는 정장과 자켓 판매도 시작한다. “지금은 셔츠만 판매하지만 곧 바지 서비스와 정장 서비스도 시작되기 때문에 고객을 방문했을 때 몸 전체 사이즈를 다 측정합니다. 물론 동의를 받고 하는 거죠. 한번 사이즈를 측정해 놓으면 이분들은 언제든 원하는 옷을 주문하실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사이즈를 측정하면 약 닷새 후 옷을 받아볼 수 있다. 와이셔츠뿐 아니라 캐주얼 남방도 맞춤형 주문이 가능하다. 가격은 4만9000원대부터 있다. 이 대표는 처음에 손님 1명당 평균 주문 가격을 5만원으로 설정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이보다 금액이 훨씬 올라갔다. “손님 1명당 평균 구매금액이 10만원을 넘습니다. 반응이 썩 괜챦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왕 사이즈를 쟀는데 한 벌 사기는 뭐하다는 심리도 있지 않을까. 

 기꺼이 돈을 내고 살만한 그런 합리적인 가격, 좋은 퀄러티, 유행이나 개인의 취향 반영 등 세 가지를 충족하겠다고 했는데 현재까지는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이 대표는 1만명의 DB(데이터베이스)가 모이면 양복 판매 뿐 아니라 남성용 소품(가방, 구두, 벨트 등)에 대한 판매와 연계해 거대한 개인 맞춤형 남성 패션 서비스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헤어지기 전, 그에게 직장을 나와 창업을 해보니 어떤지를 물었다. 

 “정말 힘들더군요.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입니다. 회사를 다니던 때도 하루에 4-5시간밖에 안 잤기 때문에, 사실 스타트업을 해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일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그때보다 늘어난 것은 아니죠. 그런데 스트레스와 고민은 비교가 안됩니다.”

 “책임감 때문 아닐까요. 대표는 어디 도망갈 데가 없죠.”

 “맞습니다. 그런 것도 있구요, 또 제가 직원으로서 일할때는 전체적인 그림으로 그리고 전략을 세우는 것에 대해선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창업을 하니 이 모두를 해야되더라구요. 무엇보다 이것으로 인해 여러사람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거죠. ”

 그래도 그는 창업을 하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에 만족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꿈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꿈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이 더욱 중요하더군요. 당장 그 꿈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일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죠. 창업을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그 말씀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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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회사는 지금쯤 ‘한국의 스타트업 시즌2’에서 다뤄야 하는데..”

 회사에 대해 얘기를 듣고, 회사를 찾아간 순간 든 느낌은 그거였다. 공교롭게도 찾아간 시점에 이 회사가 큰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래도 어쩌랴.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이미 작년에 3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지금 서른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핸드스튜디오는 스마트TV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국내에서 사실상 유일한 회사라고 한다. 스마트TV는 나 자신도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면서도 의문투성이인, 그런 분야였다. ‘사람들이 TV에 더 이상 어떤 기대를 하고 있을까.’ ‘스마트TV에서 스마트한 것은 무엇인가.’ ‘스마트TV의 미래는 뭘까.’ 이런 질문들을 안고 핸드스튜디오 안준희 대표를 찾아갔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이야기는 스마트TV에는 과연 어떤 미래가 있는지, 지금까지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등에 모아졌다. 

◆은행원에서 벤처기업가로

한동대학교 경영학과 출신의 안준희 대표는 대학 졸업 후 바로 국내 모 대형 은행에 입사했다. 부모님은 물론 동네 어르신들이 모두 기뻐했다고 한다. 갈수록 취업이 어려워지고 있는 때에 대형 은행에 입사를 했으니 아는 사람들 누구라도 축하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는 은행을 6개월여만에 그만두고 나왔다. “너무 답답했어요. 제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간 미련없이 그만두고 나왔죠.” 이 정도면 그야말로 입사원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나온 셈. 

 대기업을 뛰쳐나온 그가 간 곳은 한 중소 벤처컨설팅업체. 하지만 여기서도 1년만에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는 표철민 대표의 위자드웍스에 입사했다. 위자드웍스에서도 그의 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자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다른 조직에서 일하기는 쉽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위자드웍스에서 생활은 의미가 있었다. 여기서 그는 홍윤선 수석을 만났고 그와 함께 핸드스튜디오를 창업하게 된다. 위자드웍스에서 안 대표는 이 밖에도 허정우 이사를 비롯한 여러 인재들을 만났고, 이들은 핸드스튜디오 창업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우여곡절끝에 2년여 동안 세 군데의 회사를 거쳐 창업에 나선 안준희 대표. 그가 창업에 도전하던 2010년 초반은 아이폰과 앱스토어가 뜨거운 화두가 되던 시절이었다. 너도나도 모바일 앱 개발 관련 사업을 시작하던 때, 그는 뜬금없이 스마트TV 앱 개발을 표방했다. 안 대표에게 이유를 묻자, “그당시 생각했을 때 앱 개발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이미 레드오션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TV로 시작을 하자’고 결정한거죠.”

 그래도 대체로 대세를 따라가기 마련인데, 왜 있지도 않은 분야에서 시작을 했을까. “사업을 하면 6개월 내에 BEP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투자를 계속 받아가면서 하는 사업 모델보다는 직접 돈을 벌면서 사업을 해야 한다고 본거죠. 그러려면 경쟁자가 너무 많은 분야는 곤란하다고 생각한거구요.” 

 그럼 그는 TV에서 충분히 시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가 사업을 시작하던 무렵에는 스마트TV란 말은 물론이고,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 스마트TV가 아니라 인터넷TV라는 것을 제조사들이 막 출시하던 때였어요. 어쨌든 스마트폰 쪽 앱 개발은 너무 많은 업체가 있는 것 같아서 힘들 것 같았고, TV로 방향을 잡았는데 때마침 삼성전자에서 3월1일 인터넷TV를 출시한다고 하더라구요. 이거다 싶었죠.”

 2010년 2월 창업한 안 대표는 ‘인터넷TV 콘텐츠 개발’이라고 회사 홈페이지에 소개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사업을 스마트TV에 맞춰서 할 수는 없었다. 외주 제작을 하기도 하고 스마트폰용 앱을 간간이 제작하기도 하면서 몇 개월이 지났다.

◆스마트TV와 함께한 성공과 방황

인터넷TV란 이름은 금새 없어졌다. 곧 ‘스마트TV’란 말이 생겨났다. 삼성을 비롯해 핸드스튜디오로 연락을 하는 업체들이 늘었다. 2010년 5월 삼성전자의 스마트TV 협력업체로 선정됐고, 그해 6월 삼성의 스마트TV에 들어가는 ‘헬로코치(Hello Coach)’ 앱을 출시했다. 핸드스튜디오로서도 첫 시도였는데, 결과가 어땠을까. “국내에서는 별로였어요. 그런데 해외에서는 반응이 좋았죠. 특히 유럽에서 반응이 좋았어요. 유럽의 반응을 보면서 이 분야의 앱을 계속 만들 수 있는 동력도 생겼고, 다른 제조업체들의 시각도 달라지기 시작했죠.”

 이렇게 시작된 핸드스튜디오의 스마트TV앱 개발은 이후 200개가 넘는 앱을 만들 정도로 확장됐다. 그는 처음에 생각한 자신과의 약속(6개월 내에 BEP를 맞추겠다고 하는 것)을 지켰을까. 놀랍게도 그의 말은 실현됐다. 그는 6개월 내에 BEP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매출이 꾸준히 늘었고 직원도 계속 늘었다. 작년에 핸드스튜디오는 3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30억원의 매출. 창업 3년차 기업으로서는 적지 않은 매출임에는 분명하지만, 앱을 200개나 만든 회사로서 올린 매출이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허탈한 느낌이 없지 않다. 안 대표는 “대부분 “B2B로 매출을 올렸기 때문”이라며 “그나마 이 매출도 전부 앱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왜 그런지는 사실 필자나, 안 대표나,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 사람들이 스마트TV에서 앱이란 것을 애시당초 쓰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다. 핸드스튜디오가 그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는 것이. 

 그러면 사람들은 왜 스마트TV에서 앱을 쓰지 않을까. 아마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 아닐까. 당장 집에 가서 TV를 켜고 보면서 앱을 다운로드 받아 인터넷 검색을 한다던가, 뭔가 다른 콘텐츠를 찾아본다던가, 게임을 하던가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거의 없지 싶다. 2011년이었던 것 같은데, 한 전자회사에서 일하시는 분이 찾아와서 스마트TV에 대해 여러 설명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설명을 듣고 나서 딱 한 마디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전에 리모컨이나 좀 제대로 만드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스마트TV라는 것 자체가 뚜렷한 개념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독자적인 가치는 없는 채 스마트폰에서 이름을 차용, 화면만 키워놓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안 대표 역시 이런 지적에 수긍했다. 물론 그 자신도 오랫동안 그런 이유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스마트TV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떤 식으로 변화해야 하는가, 핸드스튜디오는 무엇을 해야 하나.’

◆앱이 아닌 다른 길이 있다

안 대표는 답을 찾았을까. 그가 명확한 답을 발견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길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안 대표는 “지금 우리들이 보는 그런 스마트TV는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애초부터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줄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없이 시작된 것이 지금의 스마트TV다. 

 그럼 어떤 스마트TV가 나올까. 안 대표는 “스마트TV의 콘텐츠는 방송하고 연계돼야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로서는 힌트를 준 셈이지만,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올들어 삼성전자가 내놓은 이른바 3세대 스마트TV는 과거의 단점을 많이 보완했다. 그야말로 리모컨도 많이 개선됐고, 화면을 보는 방식도 앱을 다운받는 것에서 패널을 넘겨가며 보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가 보기엔 이 역시 불편하고, 본질적인 개편은 아닌 것 같다.

 안 대표는 스마트TV 시장에 본질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핸드스튜디오도 그에 맞춰 준비하고 있는 셈. 그 시점은 올해 가을께, 9월에서 10월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TV는 그저 디스플레이에 불과하다는 것, 여기에 아무리 복잡한 기능을 넣어도 소비자들은 피곤해한다는 것. 그것을 가전업계도 알았고, 앱 개발사들도 알게 됐다. 이제 어떤 변화가 오게 될까. 아마 그 변화는 TV 자체에 새로운 기능을 넣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TV를 통해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방식의 경험을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어쨋든 중요한 것은 TV 시장이 진화하고, 이대로 정체되지 않을 거란 점이다. 안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TV 시청 자체에 소비자의 역할과 권한을 확대하는 한편 TV를 데이터나 다른 기기와 연동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디스플레이로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바꿔나갈 겁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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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코스모스 신철헌 대표를 만난 곳은 beLaunch 행사가 한창 열리던 지난 달 초 코엑스 행사장에서였다. 그는 어딘가 ‘꿈꾸는 소년’ 같았다. 그런 첫인상을 배반하지 않고, 그와 나눈 대화속에서 그가 진행중인 서비스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그런 모습이 오롯이 반영돼 있었다. 남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게 꿈이라는 그는 그런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가 하는 사업은 자기 계발 분야이지만, 자신과 타협하고 때로는 갈등하면서 목표를 이루기 힘들어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그는 재미와 보상이라는 요소를 도입했다. 하지만 관건은, 이 서비스의 핵심적인 가치에 사람들이 얼마나 동조하고, 이를 필요로 할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 같다.

◆너 자신의 사업을 가져라

1999년 고려대학교에 입학, 생명유전공학(경영학 부전공)을 전공으로 한 신 대표는 2007년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창업을 했다. 주저없이. 

 그가 이렇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창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시절 자신을 사로잡은 한 마디때문. 그는 로버트 기요사키가 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에서 “21세기는 전문가라도 힘들다. 비즈니스 오너가 되거나 투자자가 되라”는 문구를 발견한다. “마침 나는 뭘 할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시점이었어요. 이 책은 저에게 ‘너 자신의 사업을 가져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그런데 사업을 하면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어지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생각을 하는 대로 사물이 보이는 법. 군대에 가서도 그는 비슷한 주제로 생각을 해 왔다. 그는 화천 7사단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수색대에 배속돼 있어서 하루하루가 터프했다고 한다. “부대에서 운동도 많이 했는데, 어느날 평소와 다름없이 축구경기를 하다가 문득 뭔가 깨달았어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축구에 자신있는 사람은 공격수가 되고 잘 못차는 사람은 수비수로 뛰더라구요. 내가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까, 어떤 역할을 할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가 이 얘기를 어떤 선배에게 했는데 이 선배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글쎄. 좀 더 크 그림을 봐봐. 그 경기를 열고 컨트롤한 사람은 중대장이었지. 경기의 룰을 좌우한 것도 그 사람이고. 그런 존재가 되는 것에 꿈을 가지면 어떨까.’

 이 말은 그를 크게 자극했다고 한다. 아직 생각이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창업에 대한 열망에 불타있었던 그는 학교를 졸업한 2007년 광고솔루션 회사를 차렸다. 이 회사는 ‘인텍스트 광고 솔루션’ 서비스를 아이템으로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뉴스 등 기사 내용을 분석해 클릭해 들어갔을 때 소비자가 광고를 볼 수있게 하는 그런 솔루션이었다.

◆실패와 방황의 시간들

2008년에는 언론사 사이트에도 광고 솔루션을 적용하는 등 조금씩 확대되는가 싶었지만 좀처럼 매출은 늘지 않았다. 결국 그는 2009년 6월 1일 씨디네트웍스에 회사를 매각했다. “말이 매각이지 얼마 안되는 회사 자산을 넘기고 그 돈으로 부채를 갚는 수준이었어요.” 그의 설명이다.

 신 대표는 회사 매각 후 씨디네트웍스 자회사인 엔톰애드에서 근무를 했다. 창업을 꿈꿨고, 첫 발을 내딛었다가 실패를 겪은 이가 다른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할 때 어떤 일을 겪을까. “너무 힘들었다”는 게 그의 간략하지만, 솔직한 심정이었다. “솔직한 심정은 ‘3개월도 버티기가 힘들다’였어요. 너무 힘들어서 못 참을 정도였고 나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됐죠. 나는 도대체 왜 창업을 한 걸까. 지금 뭘 하고 있는걸까. 내가 생각했던 그 꿈은 어디로 갔을까. 앞으로 계속 그 꿈을 위해 나아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어요.”

 방황을 하던 그는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달래는 한편 자신의 애시당초 결심을 다시 한번 환기하기 위해 드림코스모스(www.dreamcosmos.com)이라는 블로그를 만들었다. ‘꿈으로 우주를 가득 채우고 싶다’는 그의 생각이 반영된 블로그다. 

 이런 블로그를 만들어서 뭘 했을까. ‘꿈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는 게 그의 답. 실제로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이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사업에 도달하게 됐는지를 짐작케 하는 것들이 눈에 띈다. 

 신철헌 대표가 이 블로그를 운영한 것은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창업 현실을 경험하고 난 뒤 창업을 했을 때의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한켠에 있었지만 여전히 젊은 나이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도전하고픈 마음도 있었을 터. 여기서 문제는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명확한 실행계획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가 선택한 것을 결국 꿈. 그리고 방황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사람들이 가슴 뛰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다”로 정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한국리더십센터를 찾았다. 2011년 2월이었다. 

◆사람들이 꿈을 이루도록 돕는다

그가 한국리더십센터를 찾아간 것은 남이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일, 즉 이른바 자기계발이나 자기 경영과관련된 일이 ‘보람은 있지만 돈이 안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첫 사업 실패로 그가 얻은 교훈은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신 대표는 이런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버는 곳이 어딜까를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한국리더십센터였다. “‘고객의 성공을 돕는다’를 모토로 하고 있으면서도 수익을 내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부사장에게 다짜고짜 이메일을 보내고 회사를 찾아갔죠.”

 그가 생각한 것은 ‘프랭클린 플래너’,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워크숍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많은 사람들이 듣고 감동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도 교육을 받을때 뿐, 교육 이후에 팔로업이 되질 않으니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지속성이나 효과성이 떨어져 재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는데 생각이 미쳤어요. 그래서 현재의 드림멜로 모델을 들고 회장님을 찾아갔죠.”

 김영사 설립자인 한국리더십센터의 김경섭 회장은 신철헌 대표의 꿈과 아이디어를 듣고 흔쾌히 그를 지원하기로 했다. 일단 센터 사무실에 들어와 사무실 대용으로 쓸 수 있는 공간도 얻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꿈과 목표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서비스, 드림멜로를 오픈했다. 2013년 5월 1일이었다. 그로서는, 오랫동안 찾던 자신의 꿈에 대한 구체적인 솔루션을 발견한 셈이기도 하다.

 드림멜로는 수많은 자기계발 강연이나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들은 후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여기서 배운 것을 계속 실천해가면서 자기 자신을 성장하게끔 도와주는 그런 서비스다. 동기 부여를 위해 미션 완수시 보상 시스템을 적용했으며 친구나 동료들과의 경쟁을 통해 노력을 유도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드림멜로는 챌린지 게임을 지향하지만, 현재 핵심기능을 구현하려다 보니 재미요소가 빠진 상태로 베타서비스 중. 안드로이드 버전만 나와 있으면 아이폰 버전을 개발 중에 있다. 각종 교육프로그램이나 컨퍼런스에 대한 follow-up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많은 행사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란 게 신 대표의 기대. 처음엔 한국에서 우선 서비스하지만 자기 계발이라는 키워드로 해외 진출 장벽이 낮다는 것도 그의 판단이다.

 사실 그가 하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삶의 매우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하지만 너무 무겁고, 심각해서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조차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꺼리는 분야이기도 하다. 변화나 성장을 위해 온갖 강연이나 교육프로그램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이를 팔로업하는 서비스를 통해 기꺼이 자신의 하루하루를 관리하고 생활을 컨트롤할 것인가? 드림멜로의 성패는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달리지 않았을까. 물론 개개인이 직면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고, 진짜 원하는 게 뭐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어쩌면 처음엔 너무 두리뭉실한, 추상적인 차원의 문제보다 개인이 갖고 있는 고질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차원에서 시작하면 사람들이 서비스를 이해하고 접근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신 대표는 이 분야의 비즈니스가 향후 크게 성장할 것이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발견해서 그것을 극대화하도록 도와주고 현재있는 교육과 코칭 비즈니스 등을 발전시키면 머지않아 큰 비즈니스가 될거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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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연락이 온다는 것은 대체로 좋은 징조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특히 그런 것 같다. 뭔가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은 새롭게 뭔가를 시작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유저스토리랩 정윤호 대표와의 오랜만의 만남은 그래서 더 기대가 됐다. 그에 대해 기록한 지는 어느새 2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지난 2010년 11월3일 한국의 스타트업 스물 네번째 이야기(http://limwonki.com/397)로 정윤호 대표의 창업 스토리를 남겼었다. 당시 그는 창업 후 2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그 후 2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으니 정 대표는 이제 창업 5년차에 접어들었다. 창업 5년차가 된 그가 심기일전해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했다는 것이 이번 이야기의 주제다. 그 과정에 우여곡절이 없을 리 없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는 창업을 한 자신과 회사의 정체성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의 아이디어는 좀 더 구체화됐고, 출시된 서비스는 좀 더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나는 왜 창업을 했을까

그는 항상 소셜네트워크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온라인에서 인간관계의 확장이라는 그의 주된 관심사를 미디어를 통해 풀어내려는 것을 계속 시도해왔다. 처음에 프렌드피드 방식의 SNS를 고안했고, 텀블러와 같은 블로그를 기획했다가 트윗믹스, 유저스토리북 등으로 이어지는 시도를 한 것도 다 그의 관심사가 서비스화된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은 ‘많은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원하는 무언가’는 아니었다. SNS와 온라인미디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플 때 찾을 만한 그런 서비스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사용자 기반이 넓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줄기차게 시도하면서 좀 더 대중들에게 다가갔다는 점. 유저스토리북이 출시되던 시점부터 그와 그가 세운 회사는 대중들과의 접점을 찾은 것 같았다.

 하지만 접점을 찾았다고 다 잘되란 법은 없다.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래도 회사가 조금씩 성장하고, 직원들 수도 늘어나고, 한번도 월급을 밀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트래픽에 비해 제법 수익이 났던데다 실력있는 기획자와 개발자들을 기반으로 외주 업무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회사의 본질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랜만에 만난 그의 첫 마디는 이거였다. “내가 왜 창업을 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동안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작년초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회사를 운영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창업을 하고 4년차에 접어들었는데 별로 변한 게 없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직원들에게 대표로서 뭔가 비전을 제시해주기 힘들어졌어요. 저 자신도 점점 확신이 약해졌죠. 나는 왜 창업을 했을까.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당시 그가 사람들과 만나 외치던 말이 있었다. ‘Undead!’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외침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죽지않고 살아있는게, 한편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미있게 살아야할텐데. 하루하루 사는 건 힘들지 않지만 어떤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 동안 직원은 점점 늘어나 15명이 됐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것은 중요했다. 전환점이 필요한 그에게, 살아있었기에 기회가 찾아왔다.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

정 대표는 젊은창업가 모임에 나가고 있었다. 거기서 알게 된 사람이 그를 와이디온라인 신상철 대표에게 소개시켜줬다. 와이디온라인은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회사를 매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사업을 계속하는 쪽을 택했다. “다시 한번, 제대로 해 보자고 김봉간 부사장하고 다짐을 했어요. 마침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던 와이디온라인이 회사에 투자를 했고, 지분 7%를 보유하는 것으로 투자를 마무리했어요. 투자가 이뤄지면서 사무실도 청담동에 있는 와이디온라인 쪽으로 아예 옮겼죠.”

 와이디온라인의 투자는 그에게 큰 전환점이 된 것 같다. 투자를 받고 자금도 수혈되고, 사업에 대한 의욕과 의미를 어느정도 다시 회복한 그는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에게 옛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예전 태터앤미디어에 있을 때 김창원 노정석 두 대표가 옷깃이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어요. 그걸 맡아서 실무를 했던 사람이 지금 유저스토리랩의 김봉간 부사장이었죠.”

 “정 대표도 관여했었나요?”

 “아뇨 전 다른 팀에 있었어요. 옆에서 보기만 한 셈이죠.”

 당시 그가 직접 하진 않았지만 이 서비스는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관계의 확장이라는 컨셉트와 맞아 떨어졌다. 그 당시 한창 진행됐던 이 서비스는 태터앤컴퍼니가 구글에 M&A 되면서 중단됐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정 대표는 노정석 대표와 김창원 대표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중단됐던 그 프로젝트를 이어 다시 사업화하는 것에 대해 승낙을 받았다.

 “언뜻 보니 정 대표의 분위기나 스타일과 아주 잘 어울리는 서비스 같은데요?”

 “저는 나름대로 아주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사실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더군요. 매우 대단히 정윤호다운 서비스를 만들었다면서 말이죠. 하하”

◆옷깃으로 새출발

자 그럼 옷깃은 대체 무슨 서비스일까. 그는 왜 이 서비스에 꽂히게 된 걸까.

“아주 친한 사람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의 말대로 떠올려봤다. 

“그 사람이랑 왜 친하게 됐나요?”

글쎄 잘 모르겠다. 여러가지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친해지는 건 아주 우연한 계기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맞는 말이다. 그런 것 같다. 심지어 결혼도 정말 우연과도 같은 만남이 발전해 이뤄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은 아주 한정된 기회 속에 살고 있지만 그 기회조차도 매우 한정된, 자신의 생활습관이나 라이프스타일 등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기회를 만들려면, 아니 찾으려면 자신의 생활 속에서 발견해야 한다는 게 정 대표의 결론이었다.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해야 삶이 풍족해지는 것 같아요. 점점 외로워지는 현대사회에선 더욱 그렇죠. 그런데 친해지는 그 누군가는 뭔가 대단한 인연으로 만나는 것만은 꼭 아니에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만나고 친해지죠. 옷깃은 그런 우연한 듯 보이지만 내가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나와 비슷한 공간 속에서 자주 마주치는 , 하지만 서로 존재를 모르는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런 서비스에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 그대로다. 스친다는 것은 비슷한 장소에 비슷한 시간대에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내가 어떤 커피숍을 자주 간다면,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관이 있다면, 아니면 집 앞의 공원에서 자주 산책한다면 그 장소엔 분명 나처럼 종종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레미제라블에서 마리우스가 꼬제뜨를 만난 것도 파리 뤽상부르 공원이었다!) 

유저스토리랩이 5월 중순 출시한 앱 ‘옷깃’(Otgit)을 다운로드받으면 이런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내가 자주 가는 장소에 누가 또 자주 오는지. 그 사람은 어떤 외모를 하고 있고, 어떤 관심이 있는 정도를 간략하게 알 수 있다. 

 앱을 실행시키고, 탭을 하면 자신의 흔적을 남기게 된다. 이 앱에서는 이를 “옷깃하기” 라고 부른다.옷깃을 하면, 그 공간에 다른 사람이 남긴 옷깃 중 나와 자주 스쳤던 인연, 성별, 나이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인연을 소개해준다. 이용자는 앱 내에서 사용되는 아이템인 하트를 1개씩 사용해서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호감을 표시할 수 있다. 서로 하트를 보내 호감을 표시했다면 채팅창이 열려 대화를 할 수 있다. 하트는 매일 5개씩 충전되고 앱 내 스토어를 통해 구매할 수도 있다.

 정 대표답게 재밌는 설정이 하나 추가됐다. 하트를 보낼 때 상대방은 정확히 누가 보냈는지 모른다. 5명의 무작위 대상이 함께 제시된다. 내가 고백을 할 때 이들에게 섞여서 간다. 상대방은 그 중 누군가 한 명이 보냈다고 생각하고 답변을 보내는데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면 대화를 할 수 있다. 

 내가 오랜만에 정 대표를 만났을 때는 5월28일,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옷깃이 출시된 지는 정확히 2주가 지난 시점. 그 시점에 다운로드 수가 벌써 50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창업하고 서비스를 계속 내놨지만 이렇게 초반 사용자들 반응이 좋은 경우는 처음이에요.”

 내가 볼 때 이런 반응은 분명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어디서나 호기심을 느끼고 사용해보고픈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사용의 장벽이 낮고, 반복적으로 쓸 유인이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칭 서비스가 갖는 당연할 수 밖에 없는 어려움들 또한 존재한다. 그런 어려움은 초반의 6개월 동안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5년차 창업가로서 경험과 노하우가 헛되지 않았다면, 실력을 보여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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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rocks 이창수 대표는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한번 다뤘던 인물이다. 서른한번째 이야기인 아블라컴퍼니 노정석 대표의 창업 스토리를 다루면서 그의 이름이 언급됐고, 사진도 함께 찍어 올렸다. (http://limwonki.com/414 참고)그는 아블라컴퍼니를 노정석 대표와 함께 창업했고 회사 이름도 직접 지었지만 아블라컴퍼니 스토리를 쓸 당시 주인공은 노정석 대표였다. 세월이 흘러 아블라컴퍼니는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됐고,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창수 대표가 됐다. 

 이 대표를 만나러 간 사무실에는 노정석 대표도 함께 있었다.(5rocks 사무실은 아블라컴퍼니와 같은 곳에 있다. 왜?) 5rocks는 아블라컴퍼니가 분할되면서 나온 회사고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하는 신규 법인으로 새출발을 시작한다. 노정석 대표는 “아블라컴퍼니가 기업분할을 하면서 이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며 “언론에는 최초로 공개하는 것(웃음)”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스타트업이 계속되다보니 이제 이런 사례도 나온다. 애초에 소개했던 회사가 기업분할을 하면서 둘로 나뉘고 각각 다른 사업을 하게 되는 첫 사례인 것 같다. 아블라컴퍼니는 왜 회사를 나누게 됐을까. 5rocks는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일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이 대표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파프리카랩과 아블라컴퍼니

그에게 5rocks는 세번째 창업. 하지만 그가 대표이사를 맡게 된 건 처음인 것 같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97학번인 그는 SK텔레콤에서 그 유명한 윤송이 상무와 함께 일했다. MIT(메사추세츠공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SK텔레콤에 스카웃되면서 ‘천재소녀’로 불리기도 했던 윤 상무와 함께 그가 담당했던 업무는 일종의 지능형 홈로봇 개발. KT에서 2011년 키봇을 출시하고 홈로봇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했었는데, SK텔레콤에서도 그와 유사한 사업을 일찌감치 준비했던 것이다. 

 윤송이 상무는 당시 1㎜ 서비스를 의욕적으로 추진했었고 그는 차세대 로봇팀에 배속돼 있었다. 아쉽게도 그가 개발에 참여했던 홈로봇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지만 윤 상무와 함께 일했던 경험은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살았던 그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엔지니어 세계에서도 유난히 기획력이 뛰어나고 PM으로서 놀라운 자질을 보이고 있는 것에 이때의 경험이 일조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대기업 SK텔레콤에서의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7년 이 대표는 회사를 나와 김동신 등과 함께 파프리카랩을 창업하게 된다. 그로선 첫 창업이었다. 첫 창업에 시행착오를 느껴서일까, 그는 이듬해 파프리카랩을 나와 일본으로 건너가 게임온에서 일을 했다.

 그가 일본에 가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데는 사연이 있다. 카이스트 재학 시절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갔다온 경험이 있기 때문. 당시 일본어는 한 마디도 못했던 대학생 이창수였지만, ‘영어로 대부분의 수업을 하고 영어로 살기에 불편함이 없다’는 말만 믿고(?) 일본 동경공업대학에 갔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영어 수업은 고사하고 일본어를 하지 못하면 단 하루도 지내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마음이 맞을 것 같은 일본 학생 한 명에게 제안을 했어요. 내가 영어를 가르쳐 줄테니, 일본어를 가르쳐 달라고요.” 다행히 이 전략은 통했다. 첫 학기가 지나고 바로 그 다음 학기에 그는 일본어로 수업을 들으면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전략이 통한 것도 있지만, 언어적 감각도 있고 노력도 상당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여간 일본 게임온에서 잘 지내고 있던 그에게 2009년 어느날 카이스트 선배이자 SK텔레콤에서 같이 일했던 노정석 구글 PM이 같이 창업을 하자고 연락을 했다. 별 망설임없이 수락한 그는 ‘아블라컴퍼니’라는 회사 이름 작명도 직접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Lean Startup

이창수 대표가 창업 멤버로 두번째로 참여한 회사인 아블라컴퍼니. 그는 최고기술책임자(CTO)였다. 아블라컴퍼니는 철저하게 일반 소비자들이 쓸 수 있고,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테이블K, 포잉, 불레틴, 픽쏘 등의 서비스를 만들면서 그는 사업의 단계별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성취하는지,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고민을 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그의 생각은 에릭 리스가 저술한 린스타트업이라는 책의 기본 주제와 접목하게 된다. 때마침 개발자로 일하던 그에게 뜻밖의 번역 기회가 오게 된다. 

 언어적인 능력도 뛰어난 그는 번역작업을 하면서 책 속에 소개된 린스타트업에 그야말로 푹 빠져들어갔다. 이 책은 창업을 해서 사업의 성공을 이루는 것은 개인의 특출난 역량이나 마법과도 같은 것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재현 가능한 과학적 실천에서 비롯된다는 가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극도로 제한된 자원으로 출발하는 스타트업에서는 오히려 이런 가설에 근거한 구체적인 실천 전략이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단계별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포잉과 불레틴 등을 만들면서 린스타트업을 직접 적용해봤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단계별로 꼭 해야하는 과제를 달성하고, 필요한 조건들을 충족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이 우리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더 범용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죠.”

 그가 처음 생각한 것은 일종의 모바일 게임 솔루션. 특히 ‘Monetization solution’에 초점을 맞췄다. “사실 포잉을 만들면서 저희가 필요해서 여러가지 시도를 했어요. 그 중에서도 사용자들에 대한 자세한 데이터 분석이 필요했죠. 그냥 20대가 결제를 많이 한다더라 정도가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연령대, 성별 사용자의 시간대별, 직업별 결제나 이용 실적이 필요한거든요. 이런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록 서비스에 반영해 완성도를 높이고 그러면서 성공 가능성도 높아지는 겁니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벤처기업에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실제로 그가 실험적으로 시작한 솔루션에 대해 벤처기업 사장님들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왔다.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할 것 같은데, 따로 만들어주면 안될까?’ 이런 반응이 많았다. 무엇보다 린스타트업의 정신을 구현하려고 했던 이 대표는 포잉 등을 만들면서 이 솔루션을 직접 적용했고,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다.

◆게임비즈니스를 위한 intelligence layer

여기서 잠깐. 회사 이름을 왜 5rocks라고 지었는지 궁금했다. 이 대표에게 물었다. 그의 설명이 재밌다. “오락스라고 읽으면 답이 보일까요? 오락, 즉 게임이 저희 회사의 주요 테마거든요. 게임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라는 뜻에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습니다.”

 게임플랫폼이라. 언뜻 와닿지 않는다. 게임 플레이를 위한 플랫폼이 아니라 게임 운영 및 고객 분석을 위한 플랫폼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다시 좀 전의 대화로 돌아가보자. 린스타트업과 게임 플랫폼과, Monetization solution, 그리고 5rocks 간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이들 사이에 얽힌 상관관계에서 나온 답이 5rocks의 회사 분할인 것 같다.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해서, 리소스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적인 플랫폼이 필요하고 이를 포잉 등의 개발 과정에 직접 적용해보면서 확신이 든 이들이 이 기술적인 플랫폼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회사, 5rocks를 만든 것이다. 아블라컴퍼니의 기존 사업, 즉 포잉 등 서비스업은 별도 법인이 수행하게 된다. 

 이 대표가 지향하는 것은 ‘게임비즈니스를 위한 intelligence layer’. 말이 좀 어려울 수 있지만 쉽게 말해 모바일게임 사업자 또는 개발자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 즉 언제 어떤 고객들이 어떻게 게임을 이용하고 이들의 반응은 어떠하며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분석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 이를 통해 게임이 더욱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업데이트되고 품질이 개선되고 가장 적절한 방향으로 마케팅과 광고를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다. 고객을 정확히 알아야 정확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는 글로벌라이제이션, 즉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고 싶은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모바일이 나오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어느때보다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문화에 기반을 둔 서비스나 콘텐츠로는 세계화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희는 저희가 잘 할 수 있는 것, 즉 문화를 타지 않고 스타트업은 누구나 필요한 그런 B2B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결정을 한 거죠. 분석과 운영은 우리가 할 테니 서비스나 콘텐츠 업체들은 본연의 업무만 잘 하면 되게끔 하는 거죠. 이는 궁극적으로 광고나 마케팅 툴과도 연결돼 성장성이 클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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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템을 갖고 창업을 했느냐는 대부분 창업자 본인의 취향이나 주요 관심사에서 파생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분야인데 사업이 뜰 것 같아서, 또는 돈이 될 것 같아서 시작된 사업은 좋지 않은 결말을 내거나, 중도에 대대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반면 분명한 지향점이 있거나 ‘살아 생전 반드시 해보고 말리라!’는 확실한 분야가 있으면 중간에 여러가지 이유로 아이템, 일정 등에 변화가 생기거나 어려움을 겪어도 일관된 흐름을 갖고 사업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위플래닛은 여행을 좋아한 창업자의 꿈이 어떻게 구체화됐고, 어떤 변화를 겪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주는 회사다. 먼 훗날 돌이켜보면 찰나에 지나지 않겠지만, 마음속에 품은 창업에 대한 열망이 실현되기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2011년 봄, 캄보디아 여행중 창업을 결심하다

위플래닛 창업자 조덕기 대표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던 시점부터 창업을 꿈꿨다고 한다. 다만 자신의 생각이 좀 막연하다고 판단했던 ‘학생’ 조덕기는 이것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를 계속 골똘히 생각했다. 

 그가 생각한 창업 아이템은 ‘여행’. 여행을 무척 좋아해 여행을 즐겨 다녔지만 여행에 대한 정보, 경험의 공유 등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한 그는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어떻게 창업으로 풀어낼까를 고민했다. 물론 그가 여행사류의 처음에 그가 생각했던 것은 일종의 여행자 카페. 여행자들이 정보 공유를 할 수 있도록 카페 서비스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지만 고민에 그쳤다. 

 이노티브라는 회사에서 병특으로 군복무를 대신하고 학교 졸업후 모니터그룹(Monitor Group)이라는 유명 컨설팅업체에 들어가서도 창업에 대한 그의 관심은 꺾이지 않았다. “어떤 타이밍에 나가서 내가 원하는 창업을 하는게 좋을까를 틈날 때마다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아주 우연히 계기가 생겼죠.”

 2011년 3월 그는 약 2주간의 긴 휴가를 내고 캄보디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캄보디아에서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어디서나 와이파이가 잡혔다는 점. “막연하게 캄보디아는 그리 잘 사는 나라가 아니고 모바일 인터넷을 자유롭게 쓰는데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구요. 카페에 앉아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하고 있었죠. 이동하는 곳마다 와이파이를 잡아서 쓰는데 별 불편함이 없었어요.”

 생각지도 못하게 캄보디아에서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인터넷을 자유롭게 쓰는 나름 충격적인(?) 경험을 하면서 그는 ‘때가 무르익었구나’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창업을 해야 될 타이밍이라고 결론을 짓는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모바일이 훨씬 더 빨리, 많이 퍼졌구나. 이제 여행 관련 서비스에서도 진화가 필요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바로 퇴사를 준비했어요.” 2011년 7월. 그는 모니터그룹을 나왔다.

◆‘남길 수 없었던’ 삶에 대한 기록

어찌보면 아이디어만 갖고 무턱대고 회사를 나왔다고나 할까. 한동안 그는 백수로 지냈다. 카페베네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사업을 구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 시간들이 의미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모니터그룹 시절부터 같은 회사에 다니던 목진건 이사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회사를 나와서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면서 좀 더 논의를 구체화했죠. 그러면서 제 아이디어가 수정되고 다듬어졌어요. 여행에 관련된 서비스를 만들려던 생각이 목 이사와 이야기를 하면서 좀 더 포괄적인 일상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됐죠.”

 여행관련 앱 론리플래닛에서 힌트를 얻어 위플래닛으로 회사 이름을 정하고 2011년 12월 정식으로 법인을 설립했다. 처음엔 그가 학창시절 또는 컨설턴트 시절에 알게 된 지인들, 친구들이 와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회사 셋팅을 도와줬다. 목진건 이사가 공동창업자로 나섰지만 둘 다 개발자 출신은 아니었기에 운명을 같이 할 만한, 믿을 만한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필요했다. 한동안 친구들을 통해 공백을 메꿔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것의 한계도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2012년 3월부터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본격적으로 구하기 시작, 작년 7월 애플 iOS 개발자 홍순혁씨를 영입할 수 있었다. 홍순혁씨를 시작으로 개발자들이 속속 합류하면서 팀이 만들어졌고, 팀웍을 다지는 차원에서 이들은 첫 작품 ‘포켓쉐어’를 연말에 출시했다. 포켓쉐어는 포켓 모양의 앨범을 만들어서 다른 이용자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사진을 촬영하면 지정한 친구들과 바로 공유가 가능하고 페이스북 등과 연동도 할 수 있다.  

 포켓쉐어를 만들며 팀웍을 다질 때 조덕기 대표는 병특시절 만났던 이노티브 김호민 대표를 다시 만나게 된다. 김호민 대표는 스파크랩스(Sparklabs)라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회사를 만든 설립자로 참여하고 있었다. “김호민 대표에게 위플래닛이 구상하고 있는 사업을 말씀드렸죠. 그런데 스파크랩스의 지원 프로그램을 얘기하시더라구요. 얘기가 잘 되서 투자도 받고 초기 사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침도 얻을 수 있었어요.”

 당초 조 대표가 생각했던 것은 여행 기록을 남기는 서비스. 기존 여행 서비스에 사진과 글은 있지만 진짜 유용한 정보, 즉 여행을 가면서 꼭 필요한 정보(요금이라든가 경로, 소요시간 등)는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정보가 담긴 공간이 필요하다는게 조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목 이사와 논의하다가 여행을 빼고 데이텀나 남기면 어떨까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데이터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좀 있었던 것 같아요. 데이터를 모아놓고 그 이후에 하고 싶은 걸 하려는.”

 스파크랩스에 투자를 받을 때쯤 이들은 차기작 ‘STEP’의 기본 골격을 완성한 상태였다. Personal Smart Journal. 굳이 여행에 국한할 필요없이 일상의 정보를 담자는 거였다. 소소한 일상에 대한 기록. 남길 수 없었던 기록의 영역을 남길 수 있게 하자. 이것이 STEP의 지향점이었다. 

◆해외 시장 타겟

STEP의 또 다른 중요한 지향점은 처음부터 해외 시장에 포커스를 맞췄다는 것. 스파크랩스가 도움을 준 것은 이런 지향점을 갖고 가는 STEP에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디자인의 방향성, 메뉴의 구성 등 서비스 자체에 대한 조언 뿐 아니라 해외 시장을 겨냥할 때 꼭 만나야 할 사람들(시장 및 정부 관계자 등)도 소개시켜줬다. “스파크랩스가 아니었으면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스파크랩스 덕분에 해외 시장을 공략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하는지 등을 배울 수 있었죠.”

 STEP은 왜 해외 시장을 우선적으로 겨냥하고 있을까. 일단 STEP의 서비스 형식 때문이다. STEP은 소소한 일상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 커피 한잔, 독서, 낮잠, 수다 등 매 순간 벌어졌던 소소한 일상의 기록을 정해진 아이콘만 눌러서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어디 멀리 여행을 가거나, 큰 프로젝트를 끝내거나, 시험에 합격하거나, 입사하거나, 졸업을 하거나 등등 큰 사건 위주로 기록을 한다. 하지만 STEP은 일상에서 거의 매일 벌어지다시피하는 소소한 일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누구와 만나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같은 거 말이다. 매일 아침 산책을 한다든가, 식사 후에 담배를 핀다든가, 자기 전에 책을 본다든가, 퇴근하자마자 TV를 본다든가 하는 사소한 일들이 포함된다. 

 이런 소소한 기록에 대해 국내 유저들보다는 해외에서 더 관심을 가질 것 같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것이 데이터로서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보다 큰 시장에서 서비스를 하고 싶고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게 중요한 일이 된다. 즉 일상의 기록을 남기면 그 다음에 할 일이 있다. 그게 STEP과 위플래닛의 진짜 목표다. “개인의 생활 패턴이 나오는 거죠. 분석이 쉽고 대단한 알고리즘이 필요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하루를 보면 사람들이 뭘 재밌어 하는지,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죠. 전체 사용자 패턴을 나와 비교하는 서비스도 만들 수 있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죠. 그런 것을 해보려고 합니다.”

 현재 모습은 매우 심플하지만 큰 꿈을 꾸고 있는 STEP은 외부에서 서서히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5월초 열린 beLaunch 2013 ‘스타트업 배틀’에서 K-APP Award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미 3월에 아이폰용 앱을 우선 출시한 데 이어 안드로이드앱도 곧 내놓고 서비스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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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만에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이태호 위스캔 대표의 표정은 밝았다. 그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위스캔이 최근 새롭게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보낸 자료때문이었다. 아주 흥미로운 서비스를 그는 선보였고 그 자료를 보면서 이 대표를 처음 만났던 때가 생각났다. 2011년 9월 회사 앞으로 찾아온 그를 만났을 때 그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지만, 약간은 힘겨워 보인다는 느낌도 받았다. 대기업을 다니다 첫 창업을 한 불안감이 아직 남아서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심지가 굳어보였고, 묵묵히 자신이 믿는 바를 실현해나갈 것이라 생각했었다. 한국의 스타트업 쉰다섯번째로 남겼던 그에 대한 예전 기록을 보니 당시 나의 그런 생각과 느낌들이 글에도 남아 있는 것 같다. 

다시 만난 그에게는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변한 것은 힘겨워하던 모습이 사라졌고 좀 더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것. 변하지 않은 것은 강인한 신념과 굳은 심지가 여전하다는 것.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의 어느날, 간만에 만난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이 이처럼 빨리 흘러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3가지 착오

“위스캔은 잘 안됐어요. 결과적으로는.”

처음 봤을 때 그는 ‘인식이 검색의 미래다’는 화두를 갖고 명함 인식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었다. 이듬해인 2012년초 그가 구상했던 서비스는 출시됐다. 당시 그 서비스가 출시됐다는 소식은 들었고, 페이스북 타임라인 등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서비스는 결과적으로 잘 안됐다고 한다.

“20만 다운로드 정도 기록했죠. 지금도 물론 서비스를 계속 하고 있어요. 그런데 서비스가 나오고 두세달 정도 지나면서 ‘아, 이것만으로는 힘들겠구나’는 걸 깨닫게 됐죠. 그리고 제가 생각했던 가정들 중 최소한 세가지가 잘못됐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 세가지가 뭔지 궁금했다. 그가 가장 먼저 절감한 것은 벤처기업, 아니 스타트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명함을 스캔해서 간편하게 바로바로 저장할 수 있는 게 위스캔의 장점인데, 사람들이 개인정보가 많이 담긴 명함을 벤처기업이 하는 그런 서비스에 올려놓기가 좀 그렇다는 반응을 보이더라구요. 물론 극히 일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죠.”

 이런 반응은 그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제가 그 전에 KT를 다니다 왔쟎아요. 그런 대기업에 다닐 때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죠. 어떤 서비스를 출시했는데, 회사가 미덥지가 않아서 불안하다는 반응이 나왔던 적은 없었으니까요.”

 두번째는 무료라는 것도 시장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사뭇 달랐다. 그가 당초 생각했던 것은 무료로 출시를 하면서 유료로 제공되는 왠만한 다른 명함인식 서비스 수준의 퀄러티를 보장하면 시장에서 반응이 있을 거라는 점이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무료라고 하니까 뭔가 하자가 있는 서비스가 아닐까, 개인 정보가 보호가 안되는 것 아닌가, 등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신뢰를 하지 않더군요. 그런 인식을 극복하는 게 어려운 문제였죠.”

 마지막 문제는 인식률. 그는 인식률에 자신이 있었지만 막상 서비스를 해 보니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왠만한 유료앱에 비해서도 확실히 인식률이 나쁘진 않았어요. 하지만 최고는 아니었죠.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면 역시 서비스의 핵심 기능인 인식률에 있어서 좀 더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업이란, 처음 생각했던 가정들이 하나씩 무너지는 과정이라고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 역시 그랬다. 하지만 처음의 가정들이 하나씩 무너진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아니, 어려움을 겪어도 그 이후의 과정은 각자 다르기 마련이다. 첫 시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그래서 그는 실망했지만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잘하는 분야’에서 찾아온 기회

2001년부터 2011년 5월까지 KTH와 KT에서 근무한 그가 경력을 쌓은 분야는 UC(Unified Communication) Works. 통합커뮤니케이션 솔루션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분야는 서로 다른 통신 설비와 교환기로 인해 이종 설비간 커뮤니케이션 연결이 안되는 상황을 해결하는 솔루션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부재중 전화가 왔을 때 이 사실을 PC 모니터를 통해 알려준다던가, 전화를 당겨받는다든가, 전화 내역을 찾아볼 수 있다던가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 

 그런데 어느날 지멘스에서 연락이 왔다. 그의 창업 전 주특기인 UC 분야에서 솔루션을 개발해달라는 거였다. 2012년 봄의 어느날이었다. 어차피 당시 위스캔만 갖고는 당장 돈이 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던 그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지멘스와의 일이 시작됐는데, 생각보다 이게 돈이 꽤 됐다. 거기에 자신이 장점이 있는 분야의 일을 했기 때문에 자신감도 있었다. 무엇보다, 하다보니 이게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인식 분야의 기술 개발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는 사업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그가 시작한 것이 위노트(wenote)다. 위노트는 컨퍼런스나 기자간담회, 세미나, 회의장 등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일종의 문서 공유 서비스다. 그런데 문서 공유의 차원이 구글닥스 같은 곳에 올려놓고 누구나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예를 들어 대강당 같은 곳에서 강연을 한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발표자가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대체로 관련 자료를 프린트아웃해서 나눠주는 방식을 쓰지만 종이를 많이 낭비하는데다 수요 예측도 어렵다. 위스캔이 개발한 위노트는 앱 하나만 다운로드 받으면 발표자가 위노트 앱에 관련 자료를 올려놓고 이 발표를 듣는 사람은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서 해당 자료를 같이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구글닥스 같은 것과 뭐가 다른가 하면 발표자가 이를 실시간으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발표하면서 ppt 자료를 넘기면 다른 사람들의 스마트폰에 있는 자료도 같이 넘어간다. 문서를 인식해 이를 메시지화해 한꺼번에 여러대의 단말기에서 동일하게 작동하는 방식이다. 최소 수천대의 단말기에서 동일한 작동이 가능하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 B2B 서비스로는 인기를 끌 것 같고, 이미 기업들의 반응이 좋은 상품이다.

 위노트의 장점은 다른 문서 공유 서비스들과 달리 문서 인식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는 것. 그는 이를 직접 시연을 해서 증명했다. 대여섯명 수준이 아니라 수천명이 동시에 접속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차별화된 장점. 이 두 가지 차별점이 가능한 것은 위스캔이 계속해서 문서 인식에 대한 기술을 개발해온 데다 대표이사와 창업진이 UC 솔루션에 특화돼 있기 때문. 즉 두 가지가 결합된 결과물이다.

“위스캔은 제가 하고 싶었고, 좋아하는 것의 시도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냈죠. 제가 잘 할 수 있는 UC 솔루션을 만들다가 좋아하는 것과의 접점을 찾아냈습니다. 그게 위노트였죠. 뭔가 한 단계 진화하지 않았나요?(웃음) 다음엔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새로운 위스캔 6월중 출시

뜻하지 않은 기회로 인해 작년에 위스캔은 상당한 매출과 이익을 냈다. 사실상 회사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는 첫 해에 이미 수익을 낸 셈이다. 물론 그가 원래 하려고 했던 인식 서비스 그 자체에서 수익이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이태호 대표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매출과 이익이 났고, 그로 인해 성장하고 있으니 계속 새로 시작된 업무에 주력을 해야 할까.

 그가 내린 결론은 ‘아니오’다. 그는 결코 위스캔을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지금 하고 있는 위노트 사업과 UC 분야의 솔루션 개발도 그에겐 궁극적으로 위스캔으로 가는 하나의 중요한 관문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 진화되고 제대로된 위스캔을 만들기 위한 훈련의 과정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새로운 버전의 위스캔을 다음달 중 출시할 계획이다. 이번에 새롭게 출시될 위스캔은 물론 버전만 바뀐 것이 아니다. 지난해 그가 겪었던 시행착오에 대한 답이 고스란히 담길 가능성이 크다. 그럼 이번엔 유료로 출시될까. 이에 대해서도 그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서비스를 무료로 출시한다는 것은 우리의 철학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서비스를 하나하나 팔아 소비자에게 돈을 조금씩 받아 매출을 낼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새로 나오는 위스캔 역시 무료로 제공할 계획입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언젠가 인식 분야에서 큰 시장이 나올 것이라는 게 그의 신념. 세상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거다. 그런 그에겐 지금 약간의 돈을 버는 것보다 소비자들이 만족할 만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 

 5000만원 자본금으로 시작한 위스캔은 창업 후 2년이 지났지만 한번도 투자를 받지 않았다. 이태호 대표 본인이 중간에 증자를 더 했을 뿐이고, 작년부터는 이미 이익이 나는 체제로 바뀌었다. “현재로선 투자를 받을 계획은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미래를 향해, 더 열심히 제품을 만들어야죠. 인식은 분명 검색의 미래가 될 것이고, 검색을 대체할 겁니다. 그 시대가 왔을때 위스캔이 가장 준비가 된 회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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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벤처 창업이 활성화겠죠. 그런데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똑똑한 젊은이들은 여전히 창업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창업에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죠.”

 4월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KDI(한국개발원) 주최로 열린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정책방향’ 세미나에 앞서 이석우 카카오 대표를 만났다. 그는 현재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 관련 논의에 대해 “큰 방향은 맞다고 보고, 바람직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본다”면서도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에 대한) 체감도는 아직 낮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창조경제의 핵심으로 벤처창업 활성화 및 벤처생태계 조성을 꼽았다. 이를 위해선 똑똑한 젊은이들이 창업에 나설 수 있게 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 그런데 현실은? 여전히 똑똑한 청년들은 창업을 하지 않고, 고시 공부하고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의사가 되는 것을 꿈꾼다. 한국에서 창업에 나서는 사람들은 아직도 매우 독특한 인생관을 지녔거나, 무모할 정도로 겁이 없거나(또는 세상사에 무지하거나 철이 없거나), 자신만의 어떤 세계가 있는 특이한 인물 쯤으로 치부된다.

 왜? 창업 자체도 엄청난 모험인데, 실패했을 때 상상도 못할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창조경제의 걸림돌로 창업 의지를 꺾는 법과 제도를 꼽았다. 특히 대출을 받거나 정책 자금 등을 지원받을 때 창업자의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게 대표적. 이 대표는 “연대보증을 했다가 그 빚을 못 갚으면 사기죄로 형사처벌까지 받는 게 현재 한국의 현실”라며 “창업을 독려하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창업자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지우는 제도”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청년창업 생태계 조성 및 활성화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청년 벤처기업인 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4.3%는 ‘창업실패에 따른 사회안전망 미약’을 창업의 최대 걸림돌로 꼽았다. 이석우 대표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그는 “지금 이런 현실에서는 솔직히 저도 어디가서 젊은이들에게 창업하라고 선뜻 얘기 못 합니다. 실패를 했을 때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거든요. 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교육의 중요성을 거론했다. 어릴 때부터 창업을 준비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국에서 창업을 꿈꾸는 학생에게 고등학교 시절부터 소액이라도 신용카드를 만들어 차곡차곡 신용을 쌓아가도록 하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는 지적이다. 신용이 준비되고 창업 의지가 있는 준비된 창업자에게 연대보증이라는 가혹한 부담을 지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창조경제가 세계 시장을 무대로 한 것이라면 창업생태계도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창업하고 싶어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도 했다. 이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선 우스개소리로 벤처캐피털이 벤처 투자를 고려할 때 CTO(최고기술책임자)가 인도계이면 점수를 더 준다는 말이 있는데 그 정도로 실리콘밸리를 떠받치는 힘은 인도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것”이라며 “글로벌 인재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창조경제 달성이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 투자펀드 조성 다 좋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육성은 20년 걸리는 것이고 투자펀드 조성은 민간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정부는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 창업과 투자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부터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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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제민주화, 일감몰아주기, 동네 상권 살리기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업종이 있다. 바로 ‘빵집’이다. 아니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빵을 많이 먹었다고 빵집이 이렇게 계속 거론되는걸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빵집은 여러 이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빵집 문제는 두 가지. 우선 특정 브랜드의 빵집(제과점)이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문제가 하나 있고, 재벌 2,3세들이 제과점 관련업을 하면서 계열 호텔이나 회사를 통해 편하게(?) 사업을 영위한다는 문제가 또 하나 있었다. 공통적인 결과는 동네 빵집이 죽는다는 것. 동네 빵집이 고사하게 되면 소비자들은 다양한 스타일의 빵을 선택하지 못하게 되겠지만, 그에 앞서 대부분 영세 자영업자인 동네 빵집들이 문을 닫게돼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고 실업자가 늘어나고, 가계부채도 심화되는 게 더 큰 문제다. 즉 아주 복합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동네 상권 문제에서 빵집이 (의외로) 굉장히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헤이브레드는 이 문제를 약간 다르게 접근했다. 재벌 2세들의 빵집을 못하게 막는 차원이 아니라 동네 빵집 중 경쟁력이 있는데 제품을 판매하고 마케팅하는 경로를 확보하지 못한 이들을 도와주는 게 핵심이라는 것. (물론 헤이브레드에 그런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젊은 사장이, 정부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나섰다. 

◆티몬 창업자들과의 만남

헤이브레드 유민주 대표는 카이스트(KAIST)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건주립대에서 금융공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던 중 뉴욕에 있는 친구로부터 창업을 고민하는 한 청년을 소개받았다. 이 청년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곧 한국으로 가는데 함께 창업할 만한 사람을 소개시켜달라”고 유 대표에게 부탁했다. 당시 학생신분이었지만 유 대표는 창업 1번지인 카이스트 졸업생이었고 반면 이 청년은 외국에서 오랫동안 학교를 다녀 한국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상태였다.

 그 부탁을 받자마자 대학시절 룸메이트로 동고동락했던 권기현 이사와 김동현 이사가 떠올랐다는 유 대표.  두 사람은 대학 초년부터 창업을 꿈꾸며 수입 오디오 판매, 영어 교육 사업 등 다양한 경험을 해 왔다. 유 대표가 연락을 하던 시점에도 이들은 ‘지금은 모바일 시대’라며 KAIST 기숙사 방에서 둘이 머리를 맞대고 모바일 앱을 만들고 있었다. 

 2010년 1월15일, 유 대표의 소개로 만난 5명의 청년들은 티켓몬스터를 창업했고 5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첫 만남부터 1년간 그들을 지켜본 유 대표는 혼자서만 알기엔 아까운 이야기라는 생각에 창업기 출간을 티몬 측에 제안했고 11개월간의 집필 과정을 거쳐 ‘티몬이 간다’를 출간했다. 

 책을 쓰면서 그의 삶은 ‘혁명적으로’ 달라졌다. 책을 집필하던 기간에 유 대표는 하이닉스반도체에 근무하고 있었다. 군 복무를 위해 병역특례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이 창업에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창업에 대해 막연하게 동경하고 있던 그의 생각도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디어만 갖고는 사업이 안되는 법. 그에게는 냉정하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평가하고 사업화하는 데 필요한 현실적인 도움을 줄 만한 이들이 필요했다. 그 기회를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빵 배달하는 남자

고수의 도움을 받아야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프라이머’를 찾아갔다. 권도균 이니시스 창업자, 이택경 다음 공동창업자, 장병규 본엔젤스 대표, 이재웅 다음 공동창업자, 송영길 부가벤처스 대표 등이 만든 벤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프라이머 엔턴십에 참여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맛으로 소문난 동네 빵을 수도권 전역으로 배달하겠다’는 것.

 그가 느닷업이 빵을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학창 시절 프랑스에서 지낼 기회가 있었다. 그때 유럽의 맛있고 싼 빵을 그야말로 ‘실컷’ 먹어본 그는 그런 문화에 금새 익숙해졌다. 한국에 들어온 그가 아쉬웠던 것은 이런 맛있고 좋은 빵을 한국에서는 거의 맛볼 수 없었다는 것. “한국에서도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정말 맛있고 품질 좋은 빵을 소개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만 그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알릴지에 대해선 좀 더 고민이 필요했죠.”

 티몬의 창업스토리를 보면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빵을, 그 중에서도 엄선된 좋은 빵을 사람들에게 배달하자고 마음먹었다. 아이디어는 심플했지만 구체화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서비스야 온라인에서 소비자들과 만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좋은 빵을 확보하는 게 가장 급선무였다. 즉 이를 위해선 영업이 중요했고 공급자와의 신뢰, 그리고 신선한 빵을 소비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시간대에 배달하는 능력이 필수였다. 

 프라이머에서 창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을 습득한 유 대표에게 어느날 카이스트 동아리 후배인 유원상 씨가 전화를 걸었다. 그가 쓴 ‘티몬이 간다’를 읽고 창업에 대한 꿈을 갖고 있다가 유 대표의 창업 준비 소식을 듣고 연락했다는 거였다. 2012년 9월, 유민주, 유원상은 티몬 창업자인 김동현, 권기현과 함께 합숙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좋은 빵을 확보하기 위해 이들은 서울의 각 동네의 맛있기로 소문난 베이커리를 한곳 한 곳 찾아 다니며 설득 작업에 나섰다. 우선 경력, 재료, 추천 이 세가지를 기준으로 좋은 빵집을 선정했다. “예전 동네빵집들과 달리 요즘엔 유명 과자점에서 제빵 경력을 쌓거나 해외에서 제대로 빵을 배운 분들이 제법 있더라구요. 이처럼 경력이 받쳐주는 분들 가운데 재료를 엄선해서 쓰고, 주변 동네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빵집을 우선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온라인에서 구매하여 집으로 배달 받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이었기 때문에 반신반의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확신이더라구요. 사람들이 반신반의하는 것에 대해 끝까지 자기 생각을 믿고 사람들을 설득했죠. 자신의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사업을 제대로 시작도 못해볼 겁니다”

 2012년 10월, 헤이브레드는 첫 서비스를 시작했다.

◆‘건강한 아침식사’ 큐레이션

신사동에 위치한 헤이브레드 사무실은 항상 점심 무렵부터 바빠지기 시작한다. 아침에 만들어진 신선한 빵이 이 시간에 헤이브레드 사무실에 오면 이때부터 직원들이 달려들어 빵을 포장하고 배송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헤이브레드를 방문하면 수많은 빵이 쌓여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이 빵들은 오후 간식을 원하는 사람, 야참으로 먹고 싶어하는 사람, 아침 대용으로 빵을 찾는 이들에게 시간대별로 맞추서 배달이 된다. “산타가 빵을 놓고 간 것 같다고 좋아하는 사람, 맛있는 빵집 찾아 헤멜 필요 없어 좋다고 하는 고객 등 다양한 반응이 나왔어요. 그 덕에 힘을 냈죠.”

 헤이브레드는 서비스를 시작한지 5개월간 월평균 52%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빵을 배달한다는 것은 몇 가지 리스크도 안고 있다. 일단 빵을 먹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빵을 먹을 것인가의 문제(여기는 유럽이 아니다), 수요 공급 예측이 쉽지 않다는 문제, 빵 종류의 다양화에 대한 문제(항상 비슷한 종류의 빵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금새 질리는 사람도 있다) 등등.

 유 대표 역시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목표는 빵이 전부가 아니다. 맛있기로 소문난 동네 빵을 모두 배달하는 것은 1차적인 목표. 생과일주스, 목장우유, 샐러드, 과일 등 다양한 신선식품들을 차례로 선보일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건강한 아침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아침식사 큐레이션 서비스. 

 아직은 빵의 특성상 정기 배달보다는 그때 그때 구매하는 이들이 대부분. 하지만 동네빵집들에게 더 효과적인 판매채널 역할을 하기 위해서 정기배달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그가 당초 생각했던, 진정으로 실력있는 동네 빵집들을 제대로 도울 수 있고 자신도 살 수 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직원들에게 좋은 빵을 아침식사로 제공하려는 기업들의 문의도 제법 있더라구요. 카카오, D camp, NHN 등에 일종의 B2B로 빵을 아침마다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했거나 할 예정입니다. 입소문이 나면 개인들에 대한 서비스도 확대되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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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뭔가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자신의 색깔을 낸 창업을 더 하고 싶다. 그게 진짜 승부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 속에 있는 열정이나 아이디어가 이대로 멈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너무 젊은 나이에 선배나 친구들과 함께 창업을 했을 때 이런 경우가 있다. 아마 아블라컴퍼니의 노정석 사장이나 스터디맥스의 이비호 부사장이 여기에 해당될 듯 하다. 위버스마인드를 창업한 정성은 대표도 비슷한 케이스다. 두번째 회사는 훨씬 좋은 조건에서 시작됐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제는 스타트업이라고 불러도 될까 싶을 정도로 회사를 크게 성장시킨, ‘이인혜 학습기’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해진 워드스케치를 만든 회사 위버스마인드 정성은 대표를 만났다. 

◆반도체 설계하다 창업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 진학한 정성은 대표. 때마침 1996년 서울대 최초의 벤처창업동아리를 만들고 대학원에 1년 먼저 입학한 송병준 대표와 죽이 맞아 2000년 1월 게임빌을 창업하게 된다. 당시 서울대 창업보육센터 6층에 만들어진 이 회사에 그는 최고운영책임자(COO)로 합류했다. “바로 옆에는 이투스를 창업한 이비호 등의 멤버가 있었고 그 밖에도 창업을 하는 사름들이 제법 있었죠. 그 당시 분위기가 그랬어요.” 

 원래 그는 대학원에서 반도체 칩을 설계하는 연구를 했다. 반도체 관련 연구를 하다가 게임 회사를 창업하다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법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빌은 처음부터 게임을 한 회사는 아니었다. 원래 이름은 ‘Feat the netizen’의 준말격인 ‘피티즌’이었다. 채팅이나 길드를 서비스하고 게임랭킹을 알려주고 주식거래도 도와주는 여러가지 서비스를 제공했다. 온라인에서 하면 화제가 되고, 하루가 다르게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던 그런 시기였다. 

 이런 환경에서 이들은 모바일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다. 모바일이 반드시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기 보다는 그 쪽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뭐랄까. 너무나 먼 미래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어요. 과연 모바일이 온라인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런 시대가 올까. 2000년부터 이런 생각을 했었죠.”

 성공의 길은 느리지만 조금씩, 분명하게 열렸다. 너무나 멀게 느껴지던 모바일 세상이 다가오면서 게임빌의 사정도 좋아졌다. 하지만 게임빌에서 게임사업본부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던 정성은 대표는 게임이 아닌 다른 길을 꿈꾸고 있었다. 

 “게임 사업을 오래 하다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이 만큼 했으니 이제 좀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뭘 하기 전에 내공을 좀 쌓자는 생각에 공부를 하려고 했죠.”

 유학을 가려고 마음을 먹은 그를 붙잡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경험을 그대로 살려서 사업을 같이 하자는 대학 후배들이었다.  

◆‘What’ 보다는 ‘How’가 중요하다

후배들이 하려고 했던 사업은 교육 분야. 마침 그가 고민하고 있던 한 영역과 겹쳤다. 사람들이 그토록 영어공부를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는 뭔가?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아직도 영어 때문에 고민하고 있나? 이런 생각을 하다 이왕이면 게임 분야에서의 경험을 살려보고 싶었던 정 대표. 그렇다고 게임을 매개로 교육을 하는 이른바 지러닝(G-Learning)은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단다. “게임적인 요소는 공부에 도움이 되는 정도만 담고 싶었어요. 잘못하면 공부에 방해가 될 수 있거든요.”

 억지로 외우는 것이 아닌 머리속에 베를 짜듯 기억을 형성하게 해 주는 그런 학습을 지향, 회사 이름을 위버스마인드라고 짓고 2009년 2월 창업을 했다. 그로선 두 번째 창업이었지만 이번에는 그가 온전히 책임을 지는, 대표이사로서의 창업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아이템 그 자체보다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고 한다. 무엇(What)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How) 하느냐가 진짜 문제라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도 how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별 볼 일 없는 사업이 될 수 있고 평범한 아이디어도 대박이 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라는 고민은 그림을 보면 자연스럽게 연상을 하게 되는 사람들의 본능을 활용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물론 이것은 어릴때부터 공부를 하면서 어떻게든 단어를 더 외워보려고 노력했던 정성은 대표와 창업자들의 고민이 담겨 있는 해결책이기도 하다. 물론 무슨 거창한 이론적인 백그라운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단어든 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그림을 보면 해당 단어와 연결되는 추리가 발생하고, 그걸 이해하게 되면 머리 속에 각인돼 잊혀지지 않는다’  이것이 위버스마인드와 정성은 대표가 착안한 영어 단어 암기의 ‘왕도’였다. 

 “느낌이 강력해 사람들이 이름을 듣는 순간 한번에 기억하는 그런 브랜드를 만들자고 직원들이 모여 격렬하게 토론을 했어요. 그래서 뇌새김이라는 브랜드가 나왔습니다.”

 그의 말처럼 느낌이 강렬하다. 어떤 단어도 그림으로 표현해 단어를 뇌에다 새기듯 암기하게 도와주는 뇌새김 브랜드의 첫 작품은 2009년 11월, 세상에 나왔다.

◆시작하면 1등을 하자

첫 작품 ‘워드스케치’는 단어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컨셉트를 그대로 이름으로 지었다. 8만개의 영어 단어를 모두 손수 일일이 그리고 하드웨어까지 직접 설계할 정도로 전 직원이 매달려 작업을 했다. 물론 정 대표 본인이 먼저 팔을 걷어 붙였다. 

 그는 시작할 때부터 1등을 노리고 했다고 한다. “워드스케치에만 처음에 개발하며서 30억원을 투자했어요.”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나?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돈을 완전 신생 벤처에, 아무리 자기 회사라지만 투자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물론 그가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확신만으로 많은 돈을 넣은 것은 아니었다. “1000만원을 투자하면 사람들한테 1000원에 팔 수 밖에 없는 그런 앱이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죠.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1등을 할 수 없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자. 그래서 1등을 하자. 그런 당위성? 그런 걸로 투자를 했죠.”

 영어 공부하는 것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사람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줘서일까. 다행히 제품은 나오자마자 순조롭게 팔려나갔다. 이인혜씨를 모델로 내세운 것도 주효했다. 돈을 써서 만든 만큼 온라인을 중심으로 광고도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이인혜 학습기라는 이름으로 알려지면서 히트를 쳤다.

 하지만 내내 잘 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우선 위버스마인드의 사업 모델 자체가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저희 사업은 앱을 올려놓는게 아니라 영어학습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것을 직접 만든 단말기에 얹어서 파는 구조거든요. 단말기를 잘 만들어야 하고, 유통망을 갖춰야 하고, 재고를 관리해야 하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잘 판 뒤, AS까지 해줘야 하는 등 여러가지 복잡한 일이 많았죠.”

 그에게서 잠깐 동안 들은 에피소드만 해도 족히 십여가지는 됐다. 우선 하드웨어를 설계하는 일도 간단치 않았다. 간신히 제품을 만들어줄 곳을 찾고 나니 이 업체들이 제때 물건을 안 대 주거나 갑자기 잠적해버리는 일도 생겼다. 유통망이 없다보니 유통을 확보하려다 온갖 수모도 당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는 계속 길을 찾으며 3년을 버텼다. 어느새 올해는 창업 4년차.

◆올해 매출 200억원 넘을 듯

 워드스케치가 히트를 치면서 2011년 65억원의 매출을, 2012년엔 매출 100억원을 찍었다. 처음에 워드스케치를 만들면서 그는 영어 단어 암기에만 사업을 국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워드스케치를 토크와 토익 스피킹으로 확장하는 게 첫번째 목표. 이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 토익스피킹을 출시하면서 최근엔 태블릿PC 수준의 단말기도 업그레이드해 출시했다.

 뇌새김 토익스피킹은 토익스피킹을 준비하는 학습자들이 취업에 필요한 목표 레벨을 단기간에 마스터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학습자가 2주에서 2개월의 원하는 학습 기간을 설정하면 자동으로 최적의 커리큘럼을 제공, 단기간 내에 토익스피킹을 마스터할 수 있게 해 준다. 기존 학원, 온라인 강의의 학습 방식과 차별화되는 점은 말하기 연습을 하면 이를 인식해 발음, 억양, 강세까지 바로 원어민과 비교를 해준다는 점. 

 두번째 목표는 플랫폼을 확장하는 것. 현재는 전용 단말기 위주로 판매를 하고 있지만 스마트폰과 PC에서도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다. 물론 이는 보다 대중적인 시장을 타깃으로 한 전략이다. 세번째는 시장을 확장하는 것. 국내 시장에서만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 나가는 것도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목표다. 이미 작년에 매출 100억원을 돌파한 위버스마인드는 올 1분기 매출 55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예상 매출 200억원은 너끈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일본어를 비롯해 여러 나라 말을 학습하는 프로그램을 서비스 내에 포함시켰습니다. 외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과 필요성은 어느 나라에 사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요. 준비가 되면, 더 큰 시장이 있는 해외로 나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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