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 버스터는 그야말로 어떤 장벽을 깬다는 말이다.그 말이 엔터테인먼트에서 쓰이면 그 어려운 성공의 장벽을 다 깨부술만큼 대박이 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한국 온라인 게임 산업에도 이런 블록버스터가 많이 존재한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와 리니지2,웹젠의 뮤,넥슨의 카트라이더,메이플스토리,드래곤플라이(네오위즈)의 스페셜포스,게임하이(CJ인터넷)의 서든어택,네오플(NHN)의 던전앤파이터,티쓰리엔터테인먼트(예당온라인)의 오디션 등이 대표적이다.단기 매출액은 이에 미치지 못하지만 꾸준히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한게임(NHN)과 넷마블의 고스톱·포커류의 게임이나 윈디소프트의 겟엠프드,넥슨의 마비노기와 비앤비 등도 준블록버스터 반열에 오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일일이 다 나열하긴 힘들다)


 이런 게임들은 비록 10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갖고 있긴 하지만 아마 앞으로도 한국 게임사 기록에 남을 만한 작품들이다.이들 중에는 한국의 게임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킨 작품들도 상당수 있을 정도로 흥행성 못지 않게 작품 자체로서의 의미가 큰 경우도 많다.


 그런데 넥슨재팬의 수장이자 지난해까지 넥슨을 이끌었던 데이비드 리 넥슨재팬 대표는 “사실 지금까지 한국 게임 시장에서 대박 게임들이 과연 긍정적인 효과를 줬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외부인사와 대화할 때 비교적 완곡하게 표현하곤 하는 그의 성향을 고려할 때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대박 게임이 한국 게임산업을 망친 부분도 분명히 있다”인 것 같다.즉 블록버스터의 빛과 그림자인 셈이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대박게임들이 게임 시장을 키웠을 수도 있지만 게임의 혁신을 가로막은 측면도 크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그에 따르면 대박 게임의 출현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게임산업이 자꾸 보수적으로 되고,잘되는 게임을 따라하려는 경향이 크다.판타지 영화가 뜨면 판타지 영화가 계속해서 나오면서 비슷한 영화들이 자꾸 등장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반지의 제왕,해리포터가 성공을 거두자 나르니아연대기,황금나침반 등이 잇따라 영화화되는 것과 비슷하다.그 원작들의 독창성과 작품성에 상관없이 영화화되는 기준만 보면 그렇다.


 한국 게임 산업에서 유독 고스톱포커류게임에 이어 MMORPG,스포츠게임,슈팅에 이어 이제는 댄스게임과 횡스크롤게임에 이르기까지 장르별 편중이 극심한 것도 대박 게임에 따라 이리저리 쏠림 현상이 심했기 때문이다.데이비드 리 대표는 이런 점을 지적한 것 같다.업체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을 무작정 탓하기는 힘들다.블록버스터가 존재하는 장르는 수요가 충분히 있다는 얘기고 그렇다면 최소한 아주 망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안전한 선택을 하기에 이보다 좋은 것이 없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대박 게임으로 인해 산업의 혁신성이 저해된다는 점이다.최근 한국 온라인게임산업의 흐름을 보면 그의 지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그가 지적한 이유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게임들이 계속해서 나오면서 유저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히트작 부재 속에 산업은 계속 침체하고 있다.


 데이비드 리 대표는 ‘온라인게임에서 블록버스터의 시대는 갔다’고 말한다.블록버스터가 여전히 나올 수는 있지만 이제 그 의미가 축소됐다는 것이다.영향력이나 파급효과,시장성 등 모든 측면에서 블록버스터는 이제 예전과 같은 파워를 갖기 힘들다는.


 어찌보면 온라인게임에서도 롱테일 법칙이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말로 들린다.데이비드 리 대표는 “50만 동접 게임 1개보다는 10만 동접 게임 5개가 있는게 산업에 더 좋다”고 강조했다.아울러 넥슨도 그런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계획도 덧붙인다.롱테일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수요와 공급 모두에서 그렇다.그래서 중요해지는 것은 해외 시장이다.

“앞으로 한국 게임업체들은 해외 매출에 더 신경쓰게 될 겁니다.한국 시장이 작을 뿐 아니라 미국,유럽 등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국내 경쟁력있는 게임회사들은 곧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추월하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서야 비로소 한국 온라인게임의 진정한 글로벌 시대가 개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롱테일을 생각한다면 다양성을 위해 중요한 또 다른 한가지는 장르의 복합화다.달리 말하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엔터테인먼트의 전 영역을 커버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도 그의 이어지는 말은 내 생각을 마치 읽고 있는 듯했다.“넥슨은 단순 온라인게임 회사가 아닌 즐거움을 주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애니메이션,캐릭터 사업 등으로 확장하는 것이 단순한 틈새 시장이 아니라는 거죠.이미 온라인에서 게임과 커뮤니티의 경계는 사라지고 있습니다.게임은 점점 커뮤니티화되고 오락성을 극대화한 커뮤니티는 게임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장르 구분이 점점 의미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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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온라인게임의 법적인 성격과 범주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분인 수원지방법원의 윤웅기 판사는 온라인게임에 대한 한국과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의 해석이 다르다는 것을 지적한 적이 있다.아니 엄밀히 말하면 해석이 다르다기 보다는 생각하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는게 맞겠다.윤 판사께 들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최근에 넥슨재팬의 데이비드 리 대표께 같은 말씀을 들으면서 새삼스럽게 생각이 났다.
 두 고수와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정리를 한번 해봤다.

 미국이나 일본,유럽 등 콘솔 기반의 게임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온라인게임을 ‘네트워크로 연결된 게임’이라고 간주한다고 한다.즉 혼자하는 게임이나 둘,셋 정도가 같이 하는 게임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여러명이 동시에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게임을 한다면 이것을 온라인게임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라인게임이라고 할 때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물론 네트워크로 연결된 게임을 뜻한다.하지만 이것은 기본이다.여기에 조건이 더 붙는다.단순히 네트워크로 연결된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그것은 게임이 벌어지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람들간의 ‘관계’다.

 가장 쉬운 예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를 들 수 있다.이를 테면 ‘리니지’ 같은 게임 말이다.‘리니지’와 같은 MMORPG는 온라인게임이다.일본 사람이 봐도 그렇고,한국 사람이 봐도 그렇고,미국 사람이 봐도 그렇다.하지만 그렇게 보는 이유가 다르다.일본 사람이 볼 때는 이것이 온라인에서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온라인게임이라고 간주한다.하지만 한국에서는 이유가 다르다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필드에서 싸우면서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나가고 간혹 전우애나 동질성을 느끼기도 한다.채팅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갖기까지 한다.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아이템이나 게임 세계를 창조해내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하지만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는 그 본질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 더 중요한 것이 한국의 온라인게임이다.그리고 이것은 종종 게임의 성격이나 게임 세계 자체를 바꿔놓기까지 한다.유저가 게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것이 한국에서의 온라인게임이 지닌 특징이다.(중국이나 아시아권에서는 이런 한국식 개념이 더 통용된다고 볼 수 있다.WOW는 한국식 개념이 많이 투영된 온라인게임이다.)

 MMORPG가 아닌 다른 장르의 게임은 물론 이런 성격이 좀 약한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한국 온라인게임 사이트에서는 단순한 보드게임에서도 채팅을 하면서 게임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그냥 게임만 하지 않고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결론을 내리자면 해외,특히 일본에서 온라인게임이라고 할 때는 한국식으로 해석하면 네트워크게임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온라인게임으로 간주하고 대화를 하면 어느 순간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게 된다.

 윤 판사는 게임이라는 것이 서양의 언어이고 서양식 개념이라고 볼 때 한국의 온라인게임에는 게임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한국의 온라인게임은 게임이라기 보다는 놀이(play)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게임은 보통 있는 그대로의 환경에서 즐기지만 놀이를 하다보면 없던 성을 쌓을 수도 있고 도구를 활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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