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Mobile World Congress)에 취재하러 갑니다. 24일에 떠났다가 3월 2일에 돌아옵니다. 출장을 갈 때가 되면 왜 이리 일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리는지. 그래도 어디론가 멀리 간다는 것은 항상 사람을 들뜨게 합니다.

가급적 현지에서 MWC 소식을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스타트업도 많이 밀려 있는데, 언제 정리할지 요원하긴 하지만, 재미있는 소식들 전하겠습니다. 2월 보람있게 마무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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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일이 이제 생길 때가 됐다.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한번 등장했던 인물이 회사를 바꿔 다시 등장하는. 써니로프트를 창업한 정주환 사장은 2010년10월 한국의 스타트업 스물두번째 회사로 기록을 남겼었던 넥스알(http://limwonki.com/394)에서도 등장했었다. 넥스알을 창업한 한재선 사장을 도와 당시 그 회사에서 사업총괄이사(CSO)를 맡았다. 그해 연말에 회사를 KT에 매각한 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지분을 팔고 새롭게 회사를 차렸다. 
 
 그가 새롭게 도전하는 써니로프트(Sunnyloft)는 이름 그대로, 햇빛이 잘 드는 다락방에서 이름을 따 왔다. 볕 잘드는 다락방에 올라가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뭔가 재밌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이름을 짓고 출발한 이 회사는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주면서도 즐겁고 재미있는 아이템을 발굴해 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친구 6명이 시작한 써니로프트
정주환 대표는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으로 같은 학교 기술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SK커뮤니케이션즈,네오위즈게임즈 등에서 사업전략,기획,신사업 개발 등을 담당했다. 공대를 나와 기술 분야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서도 경영 분야를 따로 공부한 그는 엔지니어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던 넥스알에 들어가 사업 분야를 총괄하고 회사를 KT에 매각하는 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다. 

 한재선 넥스알 사장이 넥스알을 매각하고 KT에 들어갔지만 정 대표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지분을 모두 넘기고 회사를 나온 그는 종종 연락하던 친구들과 만나 무엇을 할까 고민을 같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때마침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서로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들이 비슷한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백그라운드가 비슷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창업멤버인 정하녕 이사와 김재호 CTO(최고기술책임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으로 했다. 정하녕 이사는 NHN에서, 김재호 CTO는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각각 상품개발과 검색기술 개발 분야에서 일했다. 창업멤버인 정윤수 부사장과 나영채 팀장은 서울대에서 과는 다르지만(컴퓨터공학과) 정 대표와 비슷한 시기 동문수학한 사이고 조민구 팀장은 네오위즈게임즈에서 정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좋은 회사에서 커리어를 잘 쌓고 비슷한 백그라운드에서 함께 고민했다는 이들이 생각한 아이템은 바로 현재 떠오르고 있는 인터넷 신서비스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이나 약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의 데이팅서비스엔 소셜이 없다
이들이 우선 주목한 것은 소셜데이팅서비스였다. ‘데이팅은 분명한 데 왜 소셜이 붙은 거지?’가 의문의 출발점이다. 즉 지금 온라인에서 데이팅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들의 대부분은 소셜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그냥 회원 가입을 하고, 하루에 한 쌍씩을 랜덤으로 연결해주는 것은 소셜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 점은 지금 온라인 데이팅 업체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즉 지금의 소셜데이팅이건, 온라인데이팅이건 데이팅 서비스에는 소셜 항목이 전혀 없다. 여기서 출발해 써니로프트는 소셜 항목을 새로 시도하고 있다.

 데이팅에서 소셜이 추가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써니로프트는 소셜의 핵심을 신뢰성(credibility)라고 생각하고 있다. 데이팅 업체가 아무리 나의 프로필과 맞는 좋은 사람을 소개해준다고 해도 그 업체의 선의를 신뢰하기는 힘들다. 즉 서류상 기준은 충족할 지 몰라도 나의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딱 맞는 사람을 소개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남자인 나의 친한 남성 친구와 내 여자친구의 친한 동성 친구 중 맞는 사람이 있다면 최상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그런 것을 반복하기는 힘들죠.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것을 시작하는 데는 자신이 쓴 프로필에 대한 불신이 출발점이 됐다. “보통 소셜데이팅 서비스에는 자신이 프로필을 쓰게 돼 있쟎아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가 자기 자랑을 한다는 게 얼마나 정확할까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일견 맞는 말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를 야구 전문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야구에 정통한 친한 친구가 볼 때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친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규정도 여러가지 부문에서 균형이 필요하다.

 써니로프트가 출시한 소셜데이팅 서비스 이름은 데이트프레소(Datepresso). 이 서비스의 특징 중 두드러진 부분은 자기 자신에 대한 규정에서부터 소셜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특징 이런 것에 대해 나 스스로 나를 평가할 수도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항목에 대해 다른 사람의 냉정한 평가가 덧입혀진다. 나는 스스로를 ‘나이스한 도시 남자’라고 평할 수도 있고 ‘노래가 특기’라고 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항목을 아무도 클릭 안하면 아주 썰렁하게 남아 있는다. 남들은 나를 ‘차가운 도시 남자’라고 정 반대의 평가를 할 수도 있고 ‘노래 좀 부르지 마’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자신에 대한 평가부터 자신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소셜네트워크에서 이뤄진다. 이것을 써니로프트는 Friends of Friends Network라고 명명한다. 일종의 플랫폼이다. 참으로 적절한 이름인 것 같다. 데이트프레소에는 이것 말고도 재밌는 장치가 많다. 상대방을 찜할 수 있는 기능 Dibs도 있다. 누군가 나를 마음에 두면 Dibs를 클릭한다.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굉장히 설레는 시스템이다. ‘Woo’는 일종의 ask out 이다. 고백하는 장치다. 마음에 드는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고백할 수 있다.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검색 장치가 필요하다
 데이트프레소의 서비스를 유심히 듣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것은 사실은 데이팅을 매개로 한 다른 서비스다.’ 정확히 말하면 소셜데이팅이 아니다. 정 대표는 이것을 데이팅을 앞세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고 설명했다. 소셜데이팅이라는 범주에 넣기보다는 그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실제로 정 대표가 지향하고 있는 바도 단순 소셜데이팅의 차원을 넘어서는 거였다. 데이트프레소는 데이팅을 사람들 간의 만남과 소통을 위한 일종의 주제로만 삼았을 뿐이다. 

 써니로프트는 소셜데이팅에 그치지 않는다. 좀 더 심각하고 좀 더 큰 시장에 대한 준비도 하고 있다. 클로즈베타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는 Qranga는 지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소셜 검색 서비스다. “이미 SK커뮤니케이션즈가 하고 있지 않나요?”라고 물어볼 만 하다. 나도 그렇게 물었다.

 SK컴즈 출신답게 정주환 대표는 “네이트에서 소셜검색을 시도했지만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1촌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제한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즉 구현 방식 자체는 비슷하지만 일촌들이 미니홈피에서 한 답변 중에서 의미있는 것만 추출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결과에 제약이 많았던 것이다.

 와인에 대해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세상 최고의 와인 전문가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전문성은 그보다 좀 떨어져도 우리 집 사정도 좀 알고, 내 취향도 잘 알면서 와인을 잘 아는 친구가 전해주는 정보가 훨씬 유익할 수 있다. 프로젝트명으로 진행중인 Qranga는 이런 점에 착안했다.

 자본금 3억원으로 시작했던 이 회사는 시작하자마자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투자도 유치했다. 일단 소셜데이팅 사업은 매출이 바로 발생할 수 있는 분야라는 게 여러 기존 회사들의 시도로 입증됐다. 소셜 검색 분야에서의 매출과 수익 문제는 써니로프트가 새롭게 도전해야 할 과제다.

 “앞으로 사람들의 네트워크와 지식, 정보는 아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훨씬 더 견고해질 것 같습니다. 거기서 생겨나는 엄청난 정보와 관계도 제대로 체크하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SNS가 발전할수록 끼리끼리 문화가 더욱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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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만나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은 꽤나 독특한 경험이었다. 1시간반 가량 대화를 나누다보니 내가 지구가 아닌 다른 별나라에 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하 17도라는 너무 추운 날씨를 뚫고 1km 정도를 걸어와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대학생들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클래스메이트(Klassmate)를 만든 이두희씨를 만났을 때 나는 잠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멈칫한 상태였다. 원래 나는 권도혁 대표를 만나는 줄 알고 찾아왔는데 권 대표는 마침 자리에 없었다.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니까...대표는 권도혁 님이시고, 이두희님은 개발총괄? CTO? 그렇죠?”
 “저는 그냥 사람입니다. 개발하는 사람.”
 “아, 네...큭.”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너무나 진지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거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보통 이러면 질문에 대한 답을 잘 하지 않는 분이 많은데, 그렇지도 않았다. 인터뷰를 하기엔 너무나 편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한두번쯤 더 생각하게끔 만드는 기이한 유머감각이 있었다. 울트라캡숑. 이름에서부터 4차원적인 냄새가 물씬나는 이 회사를 찾았다.

◆정의감에 불타는 서울대의 전설적인 해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03학번 이두희 ‘사람’은 정의감에 불타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엔지니어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한번도 정의감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스토리를 들으며 정의감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강의를 자발적으로 평가하는 ‘SNU EV(snuev. com)’를 만든 사람이 그다. ‘와플스튜디오’라는 서울대학교 프로그램 개발 동아리에 있던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중이던 2008년 이 사이트를 만들었다. 일종의 강의평가시스템. 서울대의 공식 프로그램은 아니다. 순전히 그가 친구, 후배들과 함께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대 전 학생이 다 사용하는 사이트다. “2월1일에 얼마나 접속했나 보니까 1만명이 들어왔더라구요.” 서울대 재학생은 1만6000여명 수준이니 전교생이 다 쓴다는 말이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그걸 왜 만들었어요? 서울대에도 자체적으로 강의평가를 하게끔 하는 프로그램이 있지 않나요?”
 “있죠. 그런데 그것을 학생들에게 공개를 안 해요. 정작 학생들은 모른다는 거죠.”
 “아 강의 평가 결과를 교수 평가 등의 목적으로만 사용하는군요.”
 “100만원짜리 노트북 하나를 사도 20,30개 리뷰를 읽어보는데 400-500만원 수업료를 내고 학교에 다니면서 내가 듣는 수업이 어떤 내용인지, 들어본 사람들의 후기는 어떤지 등 정보도 없이 신청해야 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학교다니던 시절에도 그랬는데, 지금도 그런가 보다. 막연하게 선배들의 경험담만 듣고 수업을 신청할 수 밖에 없는 게 대학 강의 신청 시스템의 현실이다.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딱히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잘 안하는데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들자마자 그날 1000명이 등록을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밖에도 그에 대한 일화는 수도 없이 많다. 2006년 ‘서울대 정보화 포탈 3만명 신상 정보 유출’을 학교에 가장 먼저 알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도 그였다. 서울대 전산시스템을 해킹해 김태희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꺼내온 사람도 그다. “김태희 사진은 왜 해킹했어요?” “보고 싶어서요.”

<서초동 울트라캡숑 사무실에서 찍은 울트라캡숑 창업 멤버들. 맨 왼쪽이 이두희,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권도혁 대표>

◆그냥 개발이 좋았을 뿐이다
정작 사람 이두희는 창업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개발을 계속 했어요.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죠. 개발을 해서 친구들의 삶을 좀 바꿔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는 그래서 생활 자체가 프로그램 개발이었다. 기획? 그는 기획하지 않고 뭔가 불편한 점이 있다고 하면 바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친구들과 그것에 대해 토론을 했다. 와플스튜디오는 그가 주로 거주하는 곳이었다. 서울대 연구실에서 그는 거의 하루종일, 한달 내내, 일년 내내 붙어 있다시피 했다. 그러다보니 별별 앱, 별별 프로그램을 다 만들었다. 노래방 래퍼토리 추천기도 만들었다. 노래를 한번 부르면 그 사람에게 맞는 노래를 추천해주는 그런 프로그램이다.

 서울대학교 앱을 만들기도 했다. 2010년. 학교를 소개하고 지리 정보를 제공하고 곳곳의 다양한 정보나 이야기를 전해주는 그런 앱이었다. 사실 서울대가 만들만한 앱이다. 그런데 그는 이런 앱이 있으면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좋고 학생들에게도 좋지 않을까 싶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대에서 이걸 싫어했다. 학교 허락도 받지 않고 만든데다가 학교 정보가 노출된다는 점이었다. 학교에 불려가 주의를 받은 그는 결국 서비스를 몇 달 해보지도 못하고 내렸다. 그래도 한달만에 1000명이 쓸 정도로 학교 내에서 인기를 끌었다. 

◆저커버그와 샌드버그?
서울대 연구실에서 살던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권도혁 대표가 그를 찾아오면서부터다. 2010년 11월. 늦가을치고는 꽤나 쌀쌀한 어느날 권도혁 대표가 이두희씨를 찾아왔다. 마침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울트라캡숑 사무실로 권도혁 대표가 들어왔다.

 “왜 이제 오셨어요?”
 “아 두 분 이야기 좀 나누시라구요”
 “그나저나 이두희님을 어떻게 알고 찾아갔어요?” 권 대표에게 물었다.
 “이두희님 친구가 큐박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일 잘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학교를 같이 갔었습니다. 그랬다가 만났죠.”

 이두희는 그때 컴퓨터공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중이었다. 
 “뭘 만들었는지 좀 봅시다.” 권 대표가 그에게 물어봤다. 이두희가 만든 SNU EV를 본 권 대표는 즉석에서 말했다고 한다. “저랑 같이 창업합시다.”

 그렇게 해서 이두희의 창업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바로 아이템을 내놓았다. “그냥 강의 평가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수업과 관련해서 학교에서 항상 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클래스메이트를 만들었죠. 강의 평가도 하고 친구들하고 수다도 떨고 학교 정보도 주고 받고 여러가지를 할 수 있게 했어요.”

 연세대 경제학과 94학번인 권도혁 대표는 졸업 후 베인앤컴퍼니를 다니다 2004년 NHN에 입사했다. 벤처로 성공한 친구들을 보면서 그는 대기업을 다니면서 안락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고정 관념이 산산이 부서졌다고 한다. 나도 벤처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해보자 이런 마음에 2006년 4월 첫눈에 입사했는데 하필이면 입사한 지 3개월여만에 첫눈이 NHN에 매각됐다. NHN에 있다가 나온 마당에 다시 들어갈 수 없어 자신이 직접 벤처를 해보기로 결심, 미국으로 떠났다. 거기서 큐박스팀을 알게 돼 큐박스를 미국에서 서비스하는 일을 맡았다. 큐박스를 3년 넘게 했을 때 그가 만난 이들이 바로 서울대 와플스튜디오에 있던 이두희와 그의 친구, 동료 등 7명의 개발자들이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뭔가 큰 일을 낼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대로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도 저커버그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두희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샌드버그같은 역할을 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설득했죠. 지금 봐도 이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개발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팀, 어디가서 만나기 힘들 겁니다.”

◆페이스북도 시작은 학교에서 했다!
권도혁 대표는 비즈니스와 자금을 책임지기로 했다. 창업 자금은 같이 댔지만 엔젤투자도 받고 사업에 대한 조언도 필요했다. 노정석 사장이 떠올랐다.

 “해커 출신인 노정석 사장이라면 이두희님과 이야기가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두 사람을 소개시켜줬죠.”
 “그랬더니 어떻게 됐나요?”
 “왠걸. 노 사장이 두희님을 만나자마자 바로 ‘제가 투자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뭘 더 하면 좋을까요?’라고 말하더군요.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이었습니다. 하하”

 노 사장은 그의 말처럼 즉각 엔젤투자를 했다. 작년 9월 클래스메이트 서비스가 나올 때 쯤 중요한 일이 또 하나 생겼다. 하버드대 행정학과 졸업생 아벨 아쿠나(23)가 미국 서비스 총괄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아벨과의 만남도 정말 극적이죠. 제가 큐박스를 나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고민하면서 글로벌 프로젝트 차원에서 인재를 모집한 적이 있었는데 사진을 잘 찍는 아벨이 자기가 해보겠다고 지원을 하더군요. 그런데 하버드대를 다니고 있는 친구였어요. 좀 놀랐죠. 바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 봤는데 말도 통하고 일도 아주 책임감있게 하는 사람이었어요. 나중엔 두희님과 제가 미국으로 가서 미국 서비스를 다 알아서 해 보라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네요.” 권 대표의 설명이다.

 아벨 아쿠나가 현지 운영진으로 나서면서 보스턴 지역 10개 대학 학생 1000여명이 사용하게 됐다. 하버드대 학보인 ‘하버드 크림슨’에도 소개되면서 하버드대학교 학생들이 쓰는 앱으로 성장했다. 
 클래스메이트의 사용자는 아직 그리 많지는 않다. 1만명 수준. 처음 서울대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Safari라는 항목을 만들면서 학교간 대화와 네트워크의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와 이대 학생들 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학생 인증(이메일)만 하고 가입하면 자기가 익명의 아이디를 만들 수 있다. 자기를 상징하는 것은 동물이다. 이를테면 섹시한 타조, 수다쟁이 개미핥기 등등.

 “인터넷에서는 익명이 가지는 장점이 정말 많습니다. 익명이 갖는 장점을 잘 살리면서 학생들간의 커뮤니티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월에 클래스메이트는 대대적으로 개편이 될 예정이다. 강의와 수다, 교제 정도가 아니라 모든 대학의 구전돼왔던 정보들을 문서화하고 다양한 강의, 행사, 공연 등의 기록을 남기는 것도 가능하게 개편된다. 궁극적으로는 대학 생활에 대한 종합적인 사이트로 성장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알려주는 공식적인 정보보다 훨씬 알차고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으며 다른 학교의 친구들을 사귈 수도 있는 진짜 대학 생활을 온라인에서 만끽할 수 있게 하겠다는 거다. 

 “굳이 대학에 한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중학교에서도 하고 고등학교에서도 하고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런 말을 권 대표에게 했다. 그도 수긍했다. “페이스북도 처음엔 하버드 대학교 내부에서만 쓰이던 사이트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인이 쓰는 것처럼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은 대학에서 기반을 착실하게 잡는 것이 중요해요. 한국 대학생이 350만명, 미국이 1500만명인데 1차 milestone은 이 중의 절반 즉 ‘한국과 미국의 대학생 절반인 1000만명이 쓰는 서비스가 되자!’입니다. 그리고 나면 얼마든지 서비스 확장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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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공유한다는 개념의 서비스들은 꽤나 여러 곳에서 나왔다. 통신사들이 출시하기도 했고 음악 전문 사이트가 선보이기도 했다. 국내외 벤처 기업들 중에 음악을 공유하고 음악을 매개로 사람들을 이어주는 서비스들은 숱하게 있었다.
 
 미로니(Mironi)는 이런 음악을 매개로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잘 만들었다. 디자인을 훨씬 세련되게 다듬었고 모든 기능을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알기 쉽고 쓰기 편하게 제작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등 기존의 SNS와도 연결이 되고 자신의 주소록에 있는 친구들과도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게 했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보면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실력과 성격이 보인다. 미로니라는 이 서비스처럼 이것을 만든 사람들은 아주 특출난 아이디어보다는 개발 능력이라는 자신들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실력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어찌보면 아주 무모해 보이고 별로 스마트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자신들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보겠다고 정면 도전하는 우직한 사람들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아주 다르게 말이다.


◆넥슨에서 만난 창업자들
미로니라는 음악 공유 SNS를 만든 회사는 제이제이에스미디어(JJS Media). 회사 이름이 한글로 적으면 좀 긴데, 창업자들의 이름 가운데 글자 이니셜에서 따 왔기 때문이다. 대표이사인 이재석 사장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02학번이고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는 박수레 이사는 같은 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나왔다.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백진욱 이사는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으로 했고 삼성전자에서 병역특례를 한 인물이다. 

 다들 엘리트이지만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경력을 가진 이들이 만남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넥슨. 이재석 사장과 백 이사는 2000년대 중반 넥슨에서 서로를 알게 됐다. 각각 83년생 84년생인 이들은 나이도 비슷하고 금방 친해졌다고 한다. 백 이사는 당시 카네기멜론대에 다니면서 방학 기간을 이용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넥슨에서 인턴 식으로 일을 했다. 공부도 열심히 했겠지만 평소 생활도 상당히 부지런한 사람이다. 박 이사와 이 사장은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점때문에 자주 마주치던 사이였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알게 되면서-지금까지 다른 스토리가 그랬던 것처럼-친분을 쌓다가 어느날 의기투합해 창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한 사람이 먼저 움직였고 그 사람이 부지런히 다니며 다른 창업자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이야기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언급해야할 일이 있다.

◆엉뚱한 발상에서 시작된 미로니
미로니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회사와 인물이 있다. 윤종일 레블릭스 대표다. 지금 레블릭스는 엔써즈에 인수돼 윤 대표는 엔써즈에서 서비스 총괄을 맡고 있지만 작년 레블릭스를 운영하던 시절에 이런 얘기를 했었다. “음악을 공유하고 음악을 매개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그런 서비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미로니는 개발중이었다. 그리고 당시 그것을 만들고 있던 이들이 윤종일, 이재석, 백진욱, 박수레였다.

 어떻게 된 걸까. 시간을 당시 이재석, 백진욱 두 사람이 넥슨에 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때 윤종일도 넥슨에 있었다. 윤종일과 이재석은 대구과학고-카이스트 동문이다. 대구과학고-카이스트 출신들은 이 코너에서 종종 등장하는데, 여기서 나온 인물들만 봐도 장병규 본앤젤스벤처파트너스 대표, 이제범 카카오 대표, 최정이 버드랜드소프트웨어 대표 등 쟁쟁하다. 하여간 이들은 넥슨에서 이런 고민을 같이 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나와 잘 맞는 이성 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윤 대표야 레블릭스 시절에도 여자친구를 데리고 갈만한 음식점을 잘 찾기 위해 라스트서퍼라는 음식점 찾기 앱을 만들었던 인물이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음악은 좋은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악을 뭘 좋아하는지를 알게 되면 대화하기가 편해진다. 그 사람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그걸 핑계로 친해질 수도 있고, 그 사람에게 접근할 구실을 만들 수도 있다. 

 윤 대표는 생각이 상당히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람이다. 꼭 같은 회사에 묶어두지 않더라도 믿을 만한 사람들과 일을 자유롭게 같이 한다. 그는 미로니라는 서비스를 레블릭스 사람이 아닌 이재석, 백진욱, 박수레에게 맡겼다. 사실상 이들이 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개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5월 아이폰 버전으로 먼저 서비스가 나왔다. 그런데 그때 의외의 변수가 생긴다.

◆미로니를 살려야 한다
 레블릭스에 대한 M&A 논의가 다양하게 이뤄지면서 레블릭스 차원에서 미로니를 챙기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이재석 사장은 당시 창의성연구소라는 것을 창업해 운영하고 있었다. 창의성을 진단하는 기준이나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를 기업이나 교육 기관 등에 제공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는 레블릭스와 함께 미로니를 만들면서 이 서비스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미로니를 같이 만든 사람들에 대해 큰 자부심과 함께 이들과 같이 뭔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미로니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윤종일 사장에게 말했죠. 미로니의 모든 권한을 창의성연구소에서 가져가겠다구요.” 이 사장의 설명이다. 윤종일 사장과 얘기가 되서 미로니는 창의성연구소로 왔다. 하지만 그는 미로니는 전문 개발사에서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창의성연구소 지분을 포기하는 대신 미로니만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는 두 사람을 찾았다. 

 “박수레 이사는 제가 아는 한 카이스트 출신의 국내 최고 디자이너입니다. 이분을 설득하는 게 창업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박 이사는 창업멤버 중 유일하게 기혼인데다 딸이 하나 있었다. LG전자에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던 그를 데려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삼성전자에 있었지만 합류를 먼저 결심한 백 이사와 함께 박 이사를 설득했다. “우리는 사실 이미 제품이 있었죠.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벤처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창업을 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죠.” 박 이사의 설명이다.

◆한국 시장은 좁다..해외로 나간다
 서울 강남 뱅뱅사거리 근처에 둥지를 큰 이들은 지난 해 12월 18일 법인을 설립했다. 백 이사는 12월초까지 병특을 하고 나오자마자 합류하는 형식이 됐다. 이 사장의 창의성연구소 시절 그가 직접 뽑은 인턴 직원이었던 장재용씨가 이 사장을 따라 창의성연구소를 나와 JJS Media로 와 PR 매니저 일을 하기로 했다.

 법인 설립 직전인 2011년 11월 미로니 안드로이드 버전이 나왔다. 미로니를 실행하면 주소록, 트위터, 페이스북 등으로 친구들과 연결할 수 있다. 내 친구들이 지금 무슨 음악을 듣는지 알 수 있고 음악을 같이 공유할 수도 있다. 음악을 통해 채팅도 하고 사람도 소개받는다. 소개팅을 나갔다가 들어와서 상대방이 어떤 음악을 듣는지 확인하고 서로 친분을 쌓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페이스북 등 기존 SNS에서 음악을 공유하는 서비스를 하는 게 더 쉬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사장은 음악이 사람들간의 관계를 좀 더 본질적으로 다른 방향에서 규정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즉 좋아하는 음악이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관계가 끝없이 확장되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광고를 포함해 수익 모델도 새롭게 창출될 것으로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재석 사장이 걱정하는 것은 국내 시장이 너무 작다는 점. 수익 모델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지만 미로니가 기반하고 있는 디지털 음악 시장이 국내에서 너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수익 창출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해외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5000만원으로 시작해 1억원으로 불어났지만 이 정도의 초기 자본금으로는 어차피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 수익 모델 뿐 아니라 사용자 기반을 넓혀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최적화된 광고도 보고 기업들은 이에 맞는 마케팅도 할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SI는 안하겠다고 하고 백 이사, 박 이사 두 분을 설득했습니다. 음악을 기반으로 한 본격적인 SNS 시장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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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앱은 뭘까. 얼마 전까지는 카카오톡이었고 카카오톡은 여전히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부분에서는 이 앱에 자리를 내 줬다. ‘틱톡’이다.

 틱톡의 성장세는 무시무시할 정도다. 12월 한달 동안 400만명이 이 앱을 다운로드했다. 그 덕에 출시된 지 5개월 만에 1000만명이 다운받은 앱이 됐다.1월이 아직 중순도 채 안됐는데 벌써 다운로드 숫자는 1200만을 넘어선 상태. 이 속도면 곧 2000만도 돌파한다. 카카오톡이 1000만명의 사용자를 모으는 데 걸렸던 시간은 1년. NHN이 올 6월 출시한 메신저 라인은 6개월만에 1000만명을 돌파했다. 틱톡은 1000만명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에서 라인의 기록을 1개월 단축시켰다. 

 틱톡은 카이스트 출신의 엔지니어 달랑 3명이 만든 앱이라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회사 이름은 매드스마트(MAD Smart). MAD는 다들 아는 그 뜻도 있지만 Mobile Application Developer의 약자이기도 하다. 매드스마트를 창업하고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 지각변동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김창하 대표를 만났다.


◆꿈없이 살아온 대학 시절
김창하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공학과 97학번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 꿈 없이 카이스트에 입학했다’고 한다. 원자력공학과를 선택한 이유도 “한국 전력에 입사하는 데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어찌보면 평범하고, 어찌보면 이 땅의 열심히 공부하는 수재들이 대체로 그랬던 것과 비슷하게 살아왔던 그의 인생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병역특례를 하면서부터다. 넥스콘월드라는 회사에서 병특으로 군복무를 대체하기 위해 일하기 시작한 그는 네오위즈로 회사를 옮겨 병특을 마무리하게 된다. 여기서 장병규 네오위즈 창업자를 알게됐다. 병특이 끝난 후에도 네오위즈에 계속 남아있던 그는 훗날 티켓몬스터의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되는 박상진씨와 일을 같이 하기도 했다.

 창업 DNA가 충만한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한국전력에 입사해서 편하게 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인생관(?)이 달라진 것은 병특 시절 벤처기업에서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배웠기 때문이었다. 네오위즈 시절 알았던 사람들 중 그와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 상당수가 장병규 사장이 새로 설립한 첫눈이라는 검색기술 벤처기업으로 갔다. 그는 조금 뒤늦게 합류했는데 첫눈에 입사한 지 불과 6개월여만에 이 회사가 NHN에 매각됐다. 그는 NHN 검색 팀으로 자연스럽게 가게 됐다.

 NHN 생활은 어땠을까. 당시 NHN은 이미 대기업이나 다름 없었다. 2006년 NHN에 입사해 검색팀에서 2년간 일한 뒤 그는 2008년 검색팀장이 됐다. 그의 나이 만 스물아홉때였다. NHN 내부에서도 그렇고 업계에서도 최연소 팀장이었다. 국내 최대 인터넷업체에서 일하는 것은 그에게 여러가지로 좋은 경험이 많이 됐을 것 같다. 하지만 검색팀장이 되고 나서 1년이 조금 지나자 벌써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에 뭔가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2010년부터 그런 생각이 한층 강해졌죠.”

◆기존 모바일메신저의 문제를 발견하다
 2010년 9월 장병규 본앤젤스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본앤젤스 최초의 예비창업자 과정(EIR)과 관련해서였다. 창업? 창업 아이템도 없었고 창업할 생각을 딱히 해 본적도 없었지만 젊을 때 다른 것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했다. “좀 지루했는데 잘 됐다 싶었습니다. 제가 만들어보고 싶은 것들을 시험해보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구요.”

 일단 본앤젤스 사무실로 와서 6개월동안 창업 공부를 했다.  본앤젤스가 주최한 2010년말 MAD Camp를 김창하 대표가 직접 맡았을 때였다. Mobile Application Developer Camp의 약자인 이 캠프에는 당시 11명이 참여해 6주동안 캠프처럼 운영하면서 창업 아이디어를 실험해보는 방식이었다. 1기는 2010년말부터 2011년 2월까지 진행됐고 2기가 2011년 여름에 있었다. 1기 캠프때 그는 메신저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카카오톡이 막 성장하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수많은 뉴스가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비슷한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을까?

 “처음에 카카오톡을 봤을 때 별로 잘 만든 메신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시장을 제패한 메신저에서 어떤 면을 보셨나요?”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엔지니어 관점입니다. 엔지니어로서 볼 때 카카오톡은 결코 잘 만들지 못했습니다. 핵심이 문자를 전송하고 받는 시스템인데 여기에 너무 불필요한 것들이 많이 들어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기술적인 측면의 이야기입니다. 소비자들은 잘 모를 수 있죠.”

 “불필요한 것이.. 예를 들어 뭔가요?”

 “엔지니어 입장에서 모바일 메신저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버를 제대로 개발해 속도를 높이는 것, 그리고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최대한 가볍게 가져가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그런데 카카오톡은 속도를 높이는 것에는 별로 공을 들이지 않은 것 같았어요.”

<김창하 대표(뒷줄 왼쪽)와 매드스마트 창업 멤버들. 사진을 찍을 당시엔 사무실이 본앤젤스 내부에 있었는데, 지금은 나와서 사무실을 따로 차렸다.>

◆3개월만에 만들어 5개월만에 1000만 돌파
MAD Camp에서 김 대표는 무전기 프로그램,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 메뉴판 인식 프로그램 등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해봤다. 다양한 서비스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던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전화번호 기반의 소셜네트워크, 즉 모바일 메신저였다. 인기 높은 서비스들이 이미 있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있었고 기존 서비스들이 잘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물여섯살 카이스트 전산과 학생 2명과 함께 2011년 3월 매드스마트를 만들었다. 모바일메신저의 최대 주안점을 속도에 뒀다. “서버를 개발하면서 기존의 프록그램을 가져오지 않고 완전 백지 상태에서 만들었어요. 기존 언어를 같다 붙이지 않았죠. 그렇게 했으면 좀 더 빨리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중에 서비스 속도에 문자가 생길 것이라고 봤습니다.”

 NHN 검색팀에서 그가 배운 것은 지식 자체보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 문제를 그냥 알기만 해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제를 알아도 그 심각성을 판단하는 것은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일단 그의 이런 문제 인식은 성공했다. 매드스마트는 틱톡을 출시할 때 같은 메시지를 보내더라도 다른 메신저의 메시지 용량에 비해 10분의 1에서 20분의 1에 불과한 적은 데이터 용량으로 전송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 덕분에 7월에 출시된 틱톡은 불과 5개월만에 가입자 1000만명을 모을 수 있었다. 아무런 마케팅도 하지 않았지만 순전히 ‘빠르다’는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탄 결과였다.

◆다른 길을 가겠다
틱톡은 처음에 분명 빨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메신저들의 속도도 많이 빨라졌다. “틱톡이 여전히 빠릅니다. 그런데 카카오톡이 금방 쫓아오는 것을 보고 ‘역시 만만치 않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틱톡의 메신저 전송 속도가 빠르다는 게 알려지자 카카오톡이 바로 황소프로젝트라는 것을 하면서 속도를 대폭 높였습니다.”

 지금 틱톡의 관건은 다른 모바일메신저들과의 차별화. 이미 3500만명에 육박하는 사용자를 모은 카카오톡과 같은 시장에서 똑같은 사용자를 놓고 경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게 김 대표의 판단이다. 

 매드스마트가 최근 구름 기능을 틱톡에 추가한 것은 그런 목적때문이다. 구름은 자신과 관심가나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다가가고 또 자신을 자신의 생각대로 알릴 수 있는 서비스다. 즉 자신만의 공간을 틱톡 내에 따로 만드는 것이다. 이 곳은 페이스북처럼 사용자의 일상을 올릴 수도 있고 모임을 만들 수도 있다. 전화번호 기반의 페이스북같은 그런 느낌이다.

 음성 인식, 동영상 공유, 위치 기능 등을 추가하는 것도 준비하고 있다. 내 구름을 통해 오늘 모임 장소를 공지할 수도 있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녹음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를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김창하 대표는 “틱톡은 메신저가 아닌 소통과 공유의 플랫폼 분야에서 1등을 노리고 있다”며 “개인화 기능과 음성인식, 위치 기능 등을 더해 사람들이 다양한 정보와 콘텐츠를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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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오브제(Ovjet)’. 언제부터인지 이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2010년 봄 SK텔레콤이 스마트폰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대대적인 광고를 할 때 등장했던 서비스가 오브제였다. 증강현실을 이용해 스마트폰을 길거리에 비추면 커피숍 위치를 보여주는 등 스마트폰의 다양한 활용 방법으로 오브제가 광고에 나왔다. 

 그 덕에 오브제는 안드로이드 폰 이용 초기에 제법 많은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회사가 정작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다소 난해했던 서비스 페이지를 개선하고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게 해주면서 한동안 주춤했던 다운로드 건수가 다시 늘었다. 지난해 11월 1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한 이 앱은 작년 12월 중순께 1100만도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증강현실이나 위치기반 서비스 수준을 뛰어넘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오브제 개발사 키위플의 신의현 대표를 만났다.

◆휴대폰 기획을 하다가 미래를 보다
서울대 전기공학부 94학번인 신 대표는 10년 동안 휴대폰 제조업에 종사했다. 2000년 SK텔레텍에 입사, 이 회사가 팬택에 인수되면서 팬택으로 옮겼다가 SK텔레시스에서 일했고 최신원 회장실에서 근무하며 특수 업무(?)도 맡았었다. 신 대표가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했던 일은 휴대폰 상품 기획이었다. 

 팬택 시절 그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른바 ‘슬라이드폰’이라는 걸 만들었다. 지금은 터치스크린의 스마트폰이 대세고 주위에 모두들 그런 폰을 쓰는 사람들만 보이는 것 같지만 2000년대 중반에 나온 슬라이드폰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전까지 대세였던 이른바 폴더폰은 한 손으로 폴더를 열고 닫기가 쉽지 않았고 전화를 받다가 폴더가 저절로 닫히면서 전화가 끊어지는 사례가 속출했다.

 가볍게 밀어올리면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게 하는 그런 방법을 그는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기술보다 사람의 마음에 더 관심을 가졌다는 게 그가 말한 답이었다. “공대를 나왔지만 정통 개발자의 길을 가지는 않았습니다. 상품 기획이라는 게 사실 인문학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하거든요. 그런 능력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일을 하면서 자기와 맞으면 특별히 발달이 되기도 합니다. 저에겐 이 일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제품에 대한 오랫동안의 고찰은 특히 그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됐다. ‘좋은 제품은 부품의 조합이나 스치는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람에 대한 인문학적인 고찰이 중요하더라구요. 결국 사람의 기호와 선택을 따라가게 돼 있습니다. 기술을 보기 전에 인간 욕망의 본질을 봐야죠. 예를 들어 지금은 모든 휴대폰이 널찍한 네모 모양입니다. 대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기 자체가 너무 강해요. 또 달라질 겁니다.”

 그는 상품 기획을 하면서 계속해서 2-3년 후의 미래를 보는 훈련을 했다. 그리고 그 훈련 속에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았다. 그건 휴대폰 제조가 아닌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업종에 대한 위기의식, 그리고 현실에 대한 절박함이 그를 변화로 이끌었다.

◆550가지 아이디어 중 한가지
회장실에서 근무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그래서 텔레시스에서 일하던 마지막 1년6개월여 동안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내서 정리를 했다고 한다. “정리해보니 550가지나 되더라구요. 잊을까 싶어 노트에 빼곡하게 적어놨죠.” 피아식별이 가능한 무기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아이디어, 집안 내부 전체를 디스플레이화하는 시스템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 체중연동보험이나 은행이자 상품 등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오브제는 550가지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 그는 이것을 구체화하고픈 마음이 있었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그와 뜻을 같이한 사람은 SK텔레텍 시절부터 함께 일했던 동료이자 서울대 후배인 최현정 이사. 신 대표가 SK텔레텍 2년차때 서울대에 채용하러 갔다가 두 사람은 알게 됐다. “그때 신 대표님은 일반 사원이었는데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아 저 사람과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회사로 들어와서 무조건 신 대표와 같이 일하겠다고 떼를 써서 부서를 바꿨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95학번인 최 이사는 신 대표의 창업에 대한 뜻을 알고 2008년말부터 함께 오피스텔을 얻어 사업을 구상했다. 그리고 5명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더 모아왔다. 이들 7명은 2009년 8월 키위플을 창업했다.  

 키위플 창업자들은 모두들 웬만큼 직장 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각자 돈을 내 2억원의 자본금을 만들었다. 그런데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회사를 차린 지 두달만에 3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그게 꼭 좋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너무 빨리, 너무 쉽게 투자를 받아서 아 우리가 열심히 하면 투자를 받을 수 있는거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내 생각은 좀 달랐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SI 안하고 오브제 개발에 전념하신거 아닌가요? 적절할 때 투자를 받지 못해 본업을 제대로 못하고 SI만 하다가 본업을 놓치는 회사들 많습니다.”

<키위플 본사에서. 전체 직원들이 모여. 사진제공=키위플>


◆사물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낸다
 오브제 아이폰 버전을 개발하던 중 SK텔레콤에서 연락이 왔다. “안드로이드 버전으로 먼저 만듭시다” SK텔레콤은 국내에서 KT와 대항할 대표 앱이 필요했다. 오브제는 증강현실에 위치 기반까지 더해 첨단 느낌을 주기에 딱이었다. “SK텔레콤에 3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사용자에게 돈을 받지 말 것, 일정 기간만 Favor를 주고 이후엔 다른 통신사에도 개방할 것, 해외 나갈 때 도와줄 것. 양해가 되면서 안드로이드용으로 먼저 나왔죠. 그 덕에 마케팅에 큰 도움도 받았구요.”

 오브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사물 또는 장소를 ‘팔로우(Follow)’한다는 독특한 개념 때문. 트위터에서 사람을 팔로우하면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다 볼 수 있듯이 오브제에서는 장소나 사물을 팔로우하면 관련 정보나 이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반응 등을 모두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 명동점이라는 특정 장소나 국회의사당, 한국경제신문 빌딩이라는 특정 건물을 팔로우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건물이나 점포를 방문했던 사람들, 또는 그 건물에 가지 않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남긴 글과 사진, 사연 등을 통해 서로 친구가 되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건물과 장소, 사물을 통해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찾고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팔로우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해당 별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일종의 소셜네트워크가 형성된다. 내가 황소자리를 좋아해 이를 관심사로 등록하면 황소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올린 글을 볼 수 있고 서로 별자리를 놓고 대화하다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증강현실을 이용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것도 오브제의 장점이다. 앱을 실행한 뒤 하늘에 비춰보면 대낮에도 하늘에 어떤 별자리가 있는지를 증강현실로 보여준다. 커피숍을 찾고 싶어 스마트폰 카메라를 거리에 비추면 인근 커피숍이 증강현실로 나타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숍이 있으면 이를 ‘관심사’로 등록하고 여기를 방문했던 사람들이 어떤 글을 남겼는지 알 수 있다.

◆올 상반기 미국, 유럽 등에도 진출
키위플은 왜 이런 앱을 만들었을까. 신의현 대표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지만 모든 사물과 공간에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호감도가 담겨 있게 마련”이라며 “같은 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간의 공통점을 연결하면 새로운 SNS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사물을 통한 SNS라는 개념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대한 그의 인식에서 나온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면 빨간 알약, 파란 알약 둘 중에 고르게 하쟎아요. 파란 알약을 고르면 편하지만 가상 세계에 살게 되고 빨간 약을 고르면 진짜 현실을 마주하게 되죠. 저는 사람들에게 빨간 약을 권하고 싶었습니다. 온라인, 모바일을 거치면서 더욱더 가상화된 삶에 익숙해지는 사람들을 현실 세계로 끄집어내고 싶었어요.”

 2011년 여름 퀄컴벤처스에서 15억원을 투자받으며 사업 역량도 인정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 등 수익성 면에서도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동안 오브제가 너무 무겁고 거한 앱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것을 인식, 가볍고 쓰기 편한 3.0 버전을 출시한 게 반응이 좋았다. 아직까지 오브제 이용자는 전부 국내 거주자들이다. 신 대표는 “올해 가장 중요한 경영목표는 미국과 유럽 등에 진출하는 것”이라며 “앱에 붙이는 간단한 광고 모델로도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만큼 단기 수익성보다는 중·장기 성장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내실을 다져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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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범 아이이펍 대표는 첫 눈에 운동선수를 연상케 한다. 다부진 몸매와 씩씩한 말투, 짧고 분명한 태도때문에 그렇다. 처음 만났을 때는 전자책 이야기만 했지만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정말 그는 운동선수 출신이었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그는 실패가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창업에 계속 도전해왔다. 분야를 가리지 않았고 나이나 환경을 가리지도 않았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 IT 분야 뿐 아니라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기도 했고 스킨스쿠버 강사, 스키 강사, 세탁소 운영까지 별 걸 다해 본 인물이다. 10년 넘게 창업에 도전하고 있는 김철범 대표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빚더미에 앉은 대학 시절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그의 집은 넉넉한 편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운동을 잘하고 체격이 좋아 중학교 졸업할 때가지 수영선수과 스키 선수로 활동을 했다. 두 가지를 번갈아할 만큼 체력이 좋았다고 한다. 한양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뒤 얼마 안돼 첫 시련이 시작됐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부모님은 미국으로 사업을 하러 떠나셨고 그는 등록금을 내기가 힘들어 대출을 받게 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돈을 더 빌렸는데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6000만원이 됐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의 일이다. 그 시절에는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다. 학생이 이런 빚을 지게 됐으니 학교 다니기가 어려웠을 터. 빚을 잔뜩 지고 그는 골방에서 두달동안 웅크리고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자살을 결심했다. 약을 사가지고 와서 막 입에 털어 넣으려다가 문득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죽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

 돈 때문에 죽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깟 돈이 내 목숨보다 중요할까? ” 그런 생각을 하자 세상이 달리 보였다. 그 길로 골방을 나와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수영 선수로 활동했을 정도였기 때문에 체력 하나는 남달랐다. 그 덕에 봄 여름 가을에는 수영강사로, 겨울에는 스키강사로 뛰면서 돈을 벌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고 한다. ‘사람이 목숨 걸고 하면 정말 되는 구나’ 

 “정말 가진 게 내 몸뚱이 하나 뿐이었던 시절이었지만 막 찾다보니까 길이 열리더라구요. 6000만원을 갚는 1년 6개월 동안 버는 족족 카드사에 보내주기 바빴는데 빚을 다 갚고 제로로 만들던 날 그 카드사 직원이 저에게 진심으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수고 정말 많으셨습니다’라고요. 카드빚 무서운 걸 그 때 똑똑히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학교로는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 한양대를 중퇴한 그는 포세이돈이라는 스킨스쿠버 장비 회사에 다녔다. 스킨스쿠버 활동을 하다보니 관련 장비를 하는 일에 눈을 뜬 것이다. 장비를 만들어 팔다가 직접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1년 친구와 함께 아쿠아코라는 회사를 창업, 삼성으로부터 발주를 받아 수중디지털카메라 ‘하우징’이라는 것을 개발했다. 100미터 방수가 되고 물속에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전문가용 장비였다.

◆계속되는 실패
아쿠아로는 그로서는 처음으로 하는 창업이었다. 삼성과 계약도 체결하고 해외 전시회도 나가는 등 기세 좋게 출발했다. 그런데 제품의 질이 따라오질 못했다. 물속에서 사진은 잘 찍혔지만 한 박자 느린 게 흠이었다. 처음엔 판매가 좀 됐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촬영이 늦게 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판매가 뜸해졌다. 결국 그는 2005년에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나왔다.

 “그 뒤에도 사실 사업이 잘 되진 않았습니다. 좀 꼬였죠. 방황을 많이 했어요.” 아이디어를 디벨로퍼하는 회사를 창업했지만 실패했고 수중 촬영장비 회사에 취직했는데 이 회사에도 큰 재미를 못 봤다. 2008년까지 버티다 미국으로 넘어가 샌드위치프랜차이즈 사업을 했다. 여기까지 정말 그는 온갖 종류의 일을 다 했다. 그가 창업을 하거나 관여한 회사만 10가지가 넘는다. 미국에서 금융위기때문에 사업 확장이 어려움을 겪자 2010년 2월 귀국했다. 그는 이번에는 다른 일을 할 생각을 하고 들어왔다. 스킨스쿠버나 스키 등과 관련이 없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천리안 등 시숍 활동도 하고 PC통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PC통신을 하면서 온라인에 눈 뜬 세대죠. 그런데 온라인에서 뭔가를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별로 못했습니다. 이제 해 볼 때라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에 들어온 직후 그는 한 출판사에 취직을 했다. 거기서 그는 전자책 업무를 배워 키워나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을 해보니 전자책과 종이책은 도저히 같이 갈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더라구요. 독자로 다르고 일을 하는 방식도 완전히 서로 상반되고, 문화도 달랐지요. 전자책을 하려면 전자책만 하는 전문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을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배웠습니다.”

<아이이펍 김철범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직원들이 포즈를 취했다. 지금은 광화문에 사무실이 있지만 사진을 찍을 당시엔 사무실이 화정역 인근에 있을 때였다.>

◆전자책에서 길을 찾다
 결국 2010년 11월 출판사는 나와 독립했다. 회사를 나올 때 11년간 도서관 사서로 일했던 아내가 그를 격려해주고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그래서 부부는 전자책 전문 업체 아이이펍을 2010년 11월 설립했다. 전자책을 기획하고 직접 제작을 하면서 직접 유통사에 전자책 파일을 주는 전자책 전문 출판사다. 기획 단계부터 전자책으로 만들 원고를 수집하고 제작을 하면서 전 유통사에 파일을 공급하는 업체는 국내에 많지 않다.

 처음엔 돈도 없고 사람도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창업하고 8개월 동안 사무실 없이 작업을 했어요. 가지고 있는 장비라고는 나와 아내 소유의 6년 된 노트북 두 대가 전부였고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정말 제로상태로 온 터라 처가에 있으면서 일을 시작했죠.”  그래도 작년 가을엔 기술보증기금 인증 벤처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국내 최초로 전자책들이 미국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협약도 체결했다. 
 
전자책은 기존 종이책을 단순하게 변형하는 방식의 수준에서 벗어나고 있다. 기획 단계부터 전자책에 최적화된, 형식도 그렇고 내용도 전자책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기획해서 만드는 그런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아이이펍은 이런 전자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종이책을 단순히 형태만 변형하여 전자책으로 만드는 것과 처음부터 전자책을 목적으로 기획을 하는 것과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일단 전자책과 종이책은 보는 독자 자체가 다르거든요. 형태만 전자책으로 변환한 콘텐츠는 전자책을 보는 독자들에게는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내에서 아직 전자책 시장은 그리 크지 않다. 2000년대 초부터 전자책 시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니, 미래의 핵심 콘텐츠 사업이니 하는 말들이 많이 나왔었지만 아직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어려운 사업 중의 하나다. 전자책을 볼 만한 단말기 문제도 있었고, 전자책으로 볼 만한 콘텐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콘텐츠 문제가 가장 컸는데 지금까지 전자책 업체들이나 출판사들은 기존의 오프라인 도서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해결책이 못된다는 걸 이제 모두가 알게 됐다. 전자책은 전자책 자체에서 콘텐츠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300-400페이지씩 하는 오프라인 도서를 전자책으로 바꾸면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김철범 대표는 전자책 전문 콘텐츠가 국내에서도 점차 활성화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장이 형성되면 우리나라의 콘텐츠를 기획해서 해외에 판매하고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마트 모바일 시대에는 장벽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K-POP이 인기라지만 꼭 연예분야 뿐 아니라 한국이 가진 사상과 아이디어가 책과 글을 통해서도 세계 사람들에게 충분한 매력을 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 그게 제 꿈입니다.”

 그의 인생은 정말 파란만장했다. 마흔이 넘어서 빈털터리 상태에서 다시 창업을 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고 얘기를 할까. “저는 KFC 창업자 할랜드 샌더스를 정말 존경합니다. 그 분은 남들이 다 은퇴할 나이에 도전하셔서 성공했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젊지 않은가요? 하하”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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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이 지나갔습니다. 어제 새해를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신묘년 2011년이 저뭅니다. 작년 3월 처음으로 한국의 스타트업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올해초에 29회로 막을 열었습니다. 올해 안에 70회까지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맞이했는데, 결과적으로 70회는 다 채우지 못했습니다. 이번이 예순일곱번째 이야기입니다. 약간 부족하지만 더 부지런하게, 더 노력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려고 합니다.

 스타트업과의 만남은 제가 취재를 하면서, 기자로서 10년 남짓하게 살면서, 가장 보람있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일입니다. 작년에 기록한 스물여덟명의 벤처인들, 그리고 올해 만나 기록한 서른아홉명의 벤처인들은 꿈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 꿈만 있고 용기가 없었다면 그들은 그런 시도를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기존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았고 힘든 과정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찾을 것 없이 그들이야말로 Stay Hungry, Stay Foolish를 정말 삶 속에서 구현하며 살아가는 이들이었습니다.

 올해는 예순일곱번째 이야기로 한 해를 마감하지만 새해에는 더 풍성한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 거란 소망을 가져봅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와주시고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격려와 비판을 해주시고 공감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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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쓰리래빗츠 대표는 헝그리 정신이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그의 이메일을 받고 그를 만났을 때 사실 그가 하는 사업에 대한 전망이나 사업성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사실 항상 그렇듯이 사업성을 판단하는 것은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었다. 다만 나는 이들의 스토리 속에서 가능성을 엿볼 뿐이었다.

 김 대표는 정말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이었다. 처음 봤고, 그와 그의 사업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 이 사람은 정말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이구나. 혹 실패를 한다고 하더라도, 아니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니면 큰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냥 묵묵히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겠구나.’ 그는 소박하지만 꿈이 있었고, 용기도 있는 사람이었다. 짧지만 오래 기억이 남을 만한 만남이었다.

◆개발에 꽂힌 경영학도들
 김세윤 대표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94학번이다. 그와 함께 창업한 두 명의 친구들이 모두 75년생 토끼띠 남자들이다. 토끼띠 남자들 셋이 모여서 회사를 만들었다고 해서 회사 이름을 쓰리래빗츠라고 지었다.

 김 대표는 경영학과를 나왔지만 그냥 일반 재무 관련 일을 하기 싫었다고 한다. 전공보다 그가 관심을 갖고 좋아했던 일은 프로그램 개발이었다.“개발을 하는 것에 대한 동경이 좀 있었습니다.”
 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경영대를 나와 다른 사람들이 가는 편한 길을 가지 않은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해서 현장에서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이런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이 창업한 김승환 이사도 경영학과를 나왔다는 점이다. 역시 경영학 일반보다는 엔지니어링에 더 관심이 많았다. 김 대표는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로 복학한 1998년 닷컴 열풍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때 자신의 진로를 확실히 정했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는 뭔가를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

 경영학과 출신으로서 그래도 비교적 제대로 컴퓨터 관련 일을 배울 수 있는 곳이 SI(시스템통합) 업체라는 이야기를 학교 다닐 때 들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SK C&C에 입사했다. 그런데 SK C&C는 외주 비율이 높아서 관리직 일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개발을 배우고 싶었는데 매니지먼트를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외주 비율이 가장 낮다는 LG CNS로 옮겼습니다. 개발을 정말 배우고 싶었거든요.” 2005년 LG CNS로 옮겼지만 그의 바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기서도 그는 프로젝트 관리 일만 맡았다.

◆대기업을 뛰쳐나오다
8년째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회사를 나왔다. SK C&C R&D 센터에서 일하던 김승환 이사는 조금 사정이 나았다. 연구개발직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일을 좀 더 일찍부터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점점 연차가 차면서 관리직을 맡게 됐다. 김 이사는 제니퍼소프트라는 회사롤 옮겨 일을 하던 중 김 대표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어느날 전화를 걸었다. 제니퍼소프트에 와서 같이 일하자고.

“어? 그런데 잠깐. 어차피 제니퍼소프트에 들어와서 개발을 할 거면 두 사람이 회사를 차려서 만들고 싶은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어떨까?” 김 이사가 이렇게 제안을 먼저 했다. 회사를 옮기려고 하다가 창업을 하게 되는 스토리다. 

 2009년 여름 두 사람과 또 다른 친구 한 명이 만나(이 사람 역시 경영학도다) 창업을 결정했다. 너무 시간을 질질 끌면 안되기 때문에 ‘2년 안에 결판을 내자’고 세 명이 합의를 봤다. 2년 안에 어떤 성과를 내려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해야만 했다. ‘쓰리래빗츠 북’이라는 서비스를 만드는 데 의견이 일치됐다. “사실 1년이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들은 기존 워드프로세서, 오피스 프로그램, 구글독스 등이 모두 불편한 점들이 있다는 데 착안했다. 그래서 웹 문서 프로그램을 만들면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드는 과정이 그들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몸은 고되도 행복하다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문서 작성 틀을 만드는 것이 만만치 않았구요, 언어와 관련된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1년 안에 제품 개발이 끝날 줄 알았는데 1년 6개월만에 끝낼 수 있었죠. 그나마 그것도 당초 생각했던 많은 좋은 기능들을 포기하고서야 가능했습니다.”

 2010년 말 제품을 내려고 했는데 2011년 7월에야 제품이 나왔다. ‘쓰리래빗츠 북’은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평소 결제용 문서나 제안서, 보고서 등 정형화된 글을 쓰고 이것을 여럿이 보고 협업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편하게 해 준다. 협업이 힘든 기존 오피스 프로그램보다 경쟁력이 있다. 구글독스의 경우 자유롭게 글을 쓰고 공유하기엔 좋지만 일반인들이 형식에 맞춘 글을 쓰려면 편집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모든 기존 프로그램들의 문제점을 쓰시래빗츠 북은 해결해 준다. 

 하지만 이 소프트웨어의 가장 큰 장점은 한번 글을 작성하면 웹 형식의 글로 저장될 뿐 아니라 PDF 문서와 이퍼브 방식으로 동시에 출간할 수 있다는 점이다. PC에 다운로드하는 것이 아니라 서버에 저장되기 때문에 항상 최신 버전의 글로 유지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여름에 제품을 출시하자마자 기업들을 대상으로 패키지 판매를 시작했다. 아직은 대단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입소문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계다. 기존 솔루션들에 비해 가격이 10%에 불과할 정도로 저렴하다는 점도 내세우고 있다. 개인이 이 프로그램을 쓸 경우 무료로 사용이 가능하고 소규모 기업체에서 10명 미만의 인원들이 20권 안팎의 책 또는 보고서 등을 출간할 때는 100만원에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문서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호주에 아틀라시안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가 만든 JIRA하는 프로그램은 국내 웬만한 회사들이 다 쓸 정도로 개발 오류 등을 관리, 등록해주는 유명한 솔루션입니다. 이 회사는 이 것만으로도 수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회사가 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요즘 흔히 말하는 ‘뜨는’ 비즈니스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남들이 모바일이다 소셜이다 이런 쪽으로 갈 때 고된 소프트웨어 개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행하고 안 맞더라도 우리가 하고 싶은 것, 잘 하는 것, 개선하고 싶었던 것 이런 것을 만들자고 하고 창업을 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잘 만들면 정말 세상의 많은 부분에 기여할 수 있거든요.”

 남들이 다 알아주는 대기업을 뛰쳐나와 힘들진 않을까. 이런 질문을 할 법하다.  “대기업에 다닐 때도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와서 창업을 하니 일이 훨씬 많고 고되더군요. 그래도 내가 주인이 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몸은 더 힘들어도 행복합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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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티켓몬스터 찾아라...전국민 벤처창업 오디션'이라는 제목으로 2011년 12월26일 한국경제신문 3면톱으로 나간 기사 원본입니다. 내용은 같습니다. 다만 문의하시는 분들이 있어 블로그에도 올리면서 간단히 설명을 붙입니다.
우선 투자 금액은 100억원에 조금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50억원에서 100억원 사이입니다. 초기 투자금액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변동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된 페이스북 페이지가 현재 열리지 않는 것은 28일부터 오픈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 열릴 겁니다. 패스트트랙아시아는 따로 법인으로 설립되고 아직 대표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법인 설립 일정은 내년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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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신화의 주인공들과 한·미 양국의 투자회사가 힙을 합쳐 국내 스타트업(초기 단체의 벤처) 육성에 나선다. 국내 최대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의 신현성 사장과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 아블라컴퍼니 노정석 사장은 한국의 스톤브릿지캐피탈, 미국의 인사이트벤처파트너스와 함께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회사 Fast Track Asia(패스트트랙아시아)를 설립한다고 25일 밝혔다. 성공한 벤처기업인들과 국내외 투자회사들이 순수 민간 차원에서 공동으로 벤처 육성에 특화된 회사를 만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내년초 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티켓몬스터 신화 재현하자
티켓몬스터를 성공적으로 매각한 경험이 패스트트랙아시아 설립의 계기가 됐다. 지난해 5월 설립돼 1년여만에 매출 2000억원을 올리는 국내 최대 소셜커머스 회사로 성장한 티켓몬스터는 올 8월 세계 2위 소셜커머스업체 리빙소셜에 매각됐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매각 가격은 4000억원. 창업자인 신현성 사장을 비롯해 초기 투자자인 노정석 사장, 스톤브릿지, 인사이트 등이 모두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티켓몬스터 매각 후 인사이트의 투자담당인 다니엘 프랜시스(Daniel Francis)와 박지웅 스톤브릿지 수석심사역이 만나 “티켓몬스터와 같은 성공적인 사례를 계속해서 발굴해내자”며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신 사장과 노 사장에게도 참여를 권유, 각자 20억원 안팎의 투자을 하기로 하면서 50억원-100억원에 달하는 초기 자본금을 마련했다.
 박지웅 심사역은 “최근 제2의 벤처붐이라고 할 정도로 창업도 많고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막상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팀 구성부터 아이디어 사업화, 개발, 마케팅, 해외진출, M&A까지 사업의 전 과정을 지원하고 멘토링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전국민 대상 창업희망자 공모
패스트트랙아시아가 기존 인큐베이팅업체와 다른 점은 창업 희망자들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한다는 점. 박 심사역은 “스타트업의 CEO가 되고 싶은데 아이디어만 있을 뿐 방법을 모르는 이들을 대상으로 공개 모집을 한다”고 말했다. 서류 접수는 페이스북 페이지 (www.facebook.com/pages/Fast-Track-Asia)를 통해 28일부터 시작되며 네 차례에 걸친 심사 과정을 통해 2012년 1월말 최종 선발할 예정이다.

 선발된 팀 또는 창업희망자에게는 패스트트랙아시아의 인력들이 달라붙어 창업 노하우와 실행 방법 등을 알려준다. 개발자가 없는 팀에는 개발 인력을, 기획인력이 필요한 팀에는 이와 관련된 인력을 지원해준다. 복잡한 행정적인 절차나 까다로운 규제 등으로 인한 시행착오도 막아준다.

 사업 부문과 투자 부문에서 모두 성공경험을 가진 인물들로 구성돼 있다는 게 패스트트랙아시아의 장점이다. 양측의 경험과 정보를 바탕으로 균형잡힌 멘토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노 사장은 1990년대말 보안회사 인젠, 2006년 인터넷업체 태터앤컴퍼니 등을 창업해 성공시킨 인물이다. 신 사장은 작년 티켓몬스터를 창업해 벤처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스톤브릿지는 티켓몬스터, 엔써즈 등 투자하는 회사마다 대박을 터뜨리며 화제가 됐다.

 노 사장은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성공 경험이 있는 창업자들의 밀착된 멘토링과 노하우 전수, 펀딩 지원까지 가능하다”며 “특히 미국 벤처캐피털이 참여하고 있어 해외 시장을 노리는 창업가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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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완 유아짱 사장이 이번에 세상에 내놓은 것은 동영상 기반 소통서비스 ‘짱라이브’였다. 지난 1999년 프리챌을 창업하고 커뮤니티 서비스를 선보였던 그가 12년만에 돌아와 도전한 것은 영상소통플랫폼이란 분야.

 “소셜 동영상 모바일 풀랫폼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어 2년 내 1억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겠습니다.”

 호탕하고 씩씩하게, 전 사장은 기자간담회장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8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장에 나타난 전 사장은  “짱라이브는 기존 문자만 주고받는 모바일 메신저와 달리 영상을 주고받고 생중계도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모바일 SNS”라며 “다음달 일본을 시작으로 세계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짱라이브 앱은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무료로 다운받아 이용할 수 있다.

 짱라이브는 세가지 핵심 기능으로 이뤄져 있다. 동영상 플랫폼이 첫번째고 영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두번째, SNS 기반의 커머스가 마지막이다. 이 중에서 핵심은 기기에 상관없이 주소록을 기반으로 연동된 친구들과 문자메시지, 동영상 채팅 및 공유, 모바일 생중계 등을 가능하게 하는 SNS 기능이다. 기존 모바일 메신저들이 휴대폰 주소록에 국한돼 있지만 유아짱이 이번에 공개한 짱라이브 버전 3.0은 여기에 더해 PC 주소록과 이메일 주소록까지 연결했다. 어떤 기기로든 짱라이브 앱이나 웹페이지에 접속해 있으면 친구들과 실시간 동영상 공유가 가능하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회의하는 장면이나 동창회 장면, 결혼식 장면 등을 지인들에게 현장에서 간편하게 생중계를 할 수 있고 이를 보면서 지인들끼리 바로바로 채팅도 할 수 있다.

윤태중 부사장은 “짱라이브가 추구하는 것은 방송이 아니라 영상 소통”이라며 “방송이라고 하면 아주 거창한 장비를 들고 힘들게 준비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짱라이브의 동영상 생중계는 소통이 목적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으로 촬영을 해 이를 지인들과 나눌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릴레이 방송 기능이 있는 것도 짱라이브의 특징이다. 릴레이 방송은 친구가 생중계하는 동영상을 다른 그룹의 사용자들에게도 중계로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로 계속 연결될 수 있어서 확장성이 클 것으로 짱라이브는 기대하고 있다. 

현재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는 있는 '****톡'류의 서비스보다 한층 진화된 서비스라는 차원을 강조한 짱라이브 3.0 캐치프레이즈도 눈길을 끌었다. '톡(Talk)까지 말고 비춰봐' 어렵게 말로 하지 말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영상으로 보여주면 된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

 전 사장은 2002년 12월 프리챌 사장 시절 긴급체포되면서 이후 회사 차원의 공식 행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로서는 9년 만의 공식 행사에 모습을 나타낸 셈이다. 만감이 교차할 만한 순간이지만 그는 의외로 담담해보였다. 지나온 일보다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서일까. 2008년 그가 재기를 노리며 창업한 유아짱은 3명의 직원에서 출발해 3년여만에 120명으로 불어났고 100만명의 회원도 확보했다.

전 사장은 해외 시장에서 승부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짱라이브는 페이스북처럼 이용자가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이나 문화의 장벽이 크지 않고 세계시장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해외에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구축하는 등 공격적으로 투자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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