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들은 완전히 새롭다기 보다는 기존에 있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크게 개선한 것이 많다. 더 편리하게, 더 싸게, 더 빠르게...
 
 아이디인큐라는 회사가 주력하고 있는 서비스도 그랬다. 이 회사는 세상이 스마트하고 모바일하게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왜 설문조사는 과거 구식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지에 의문을 품었다. 오래 걸리고, 비싸고, 불편한 이 설문조사 방식을 바꾸면 많은 이들에게 유익하지 않을까. 물론 이런 생각을 이 회사가 단숨에 한 것은 아니었다. 자잘한 시행착오와 고민들을 거쳐 기존의 오프라인, 온라인 설문 조사 방식을 개선하는 이 회사의 사업모델이 만들어졌다. 이 일을 한 것은 20대 중반의 젊은 청년들이 세운 아이디인큐였다. 김동호 아이디인큐 대표를 만났다.

<김동호 대표(오른쪽)와 정새봄 팀장>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의 실마리를 찾다
김동호 대표는 연세대 산업공학과 06학번. 올해 만 스물 넷의 청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창업을 한 이 청년에게는 어떤 동기가 있었을까. 계기는 그가 California State University San Jose에 있을 때 만들어졌다. 2008년 3학년이던 김동호 학생은 이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됐다. “몇몇 학교 중에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왕이면 실리콘밸리 근처에 있는 학교로 가는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글로벌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라는 수업을 듣던 중 그는 놀랐다. “수업 시간에 교수가 ‘스타트업 창업을 해 본 사람?’하고 물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손을 들더군요. 한국에서는 아마 수업 시간에 그런 질문을 하지도 않겠지만 질문을 하면 손드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그때 그는 ‘아 창업이란 것을 이렇게 젊은 나이에도 할 수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고 한다.그가 교환학생으로 오게 된 것도 계기가 있었다. 그는 2006년 한국경제신문과 중소기업청이 공동 주최한 대학생 창업경진대회에 참여했는데 그때 미국 UCLA에 1주일동안 기업가 정신에 대해 연수를 받고 오는 프로그램이 포함돼 있었다. 그 당시 관련 수업을 처음 듣고 나서 막연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2008년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다시 오면서 창업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2008년 5월 이 수업은 Silicon Valley Business Competition에 나가면 최종 과제물 제출을 대신할 수 있게 했다. 김동호 학생은 여기에 나갔고 태양열을 이용해 특정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서비스의 프로토타입을 제출, 파이널까지 진출했다. “그 때는 그 아이템으로 미국에서 창업을 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죠. 그런데 그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미국에서도 창업 자금을 얻기가 쉽지 않았죠. 군대 문제도 있고 해서 귀국했어요.”

◆과학영재학교 출신 3명이 뭉쳤다
 김동호 대표에게는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 한국과학영재학교 1회 졸업생인 김 대표와 동기동창인 이성호, 추승우가 그들이다. 이들 3총사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중에 같이 뭘 좀 해보자고 얘기를 하곤 했지만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이성호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진학한 뒤 공인회계사가 됐고 추승우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계속 서로를 챙기던 이들의 이야기는 2009년부터 조금씩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김동호 대표는 2009년 SK텔레콤이 주최하는 3개월짜리 신규사업공모전에 참가했었다. 여기서 그는 이지만씨(현 블링크팩토리 사장)와 한 팀이 되서 신규 사업 아이디어를 냈고 상도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 있었던 세 팀에서 세 개의 회사가 실제로 탄생했다는 점이다. 당시 신현석씨와 한 팀에 있던 정새봄씨는 김동호 대표의 아이디인큐에 최근 합류했고 다른 팀에 있던 박희은씨는 신현석씨와 함께 작년에 이음소시어스라는 소셜데이팅업체를 창업했다. 

 김동호 대표는 공모전 당시 병역특례로 와이즈FN이라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인덱스펀드를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조사를 하던 중 설문조사 비용이 너무 비싸고 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엔 거기까지 생각하고 생각이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2010년 그래텍으로 옮겨 병역특례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모바일로 전문서적 중고거래 사업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옛친구들을 불렀다. 아직 병역특례중이던 김 대표는 밖에 있고 이성호, 추승우 두 사람이 올 2월 아이디어인큐베이터의 약자인 아이디인큐를 창업했다. 이들은 책 바코드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다양한 중고서적 제품이 뜨고 이를 통해 학생들이 전문서적을 좀 싸게 살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일을 하기 전에 아이디인큐는 업종을 바꾸게 된다.

◆모바일 시대 설문조사 플랫폼 ‘오픈서베이’
 김동호 대표의 머리 속에 지금의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설문 조사 방식이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비싸다는 생각이 환기된 것이다. “예전에 보면 pc통신 이용자수가 600만명을 넘어설 때부터 온라인 설문조사가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스마트폰 사용자가 2000만명이 넘는데 아직 이 분야에 최적화된 설문조사 방식이 없다는 게 이상한 겁니다.”

 그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설문 조사 비용이 들어가고 한달 이상의 기간이 걸리며 그러다보니 자칫 꼭 필요한 시기를 놓치는 그런 설문조사 방식이 스마트 모바일 시대에 적합치 않다고 단언한다. 병역특례를 마치고 8월에 합류한 김동호 대표는 모바일 설문조사 플랫폼 오픈서베이를 만드는 작업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아직 비공개 테스트 중이지만 오픈서베이에서는 24시간 안에 설문 패널 90%가 응답을 한다. 아주 간단한 데다 보상을 제공하기 때문에 설문 조사에 참여하는 패널에게는 참여의 동기가 충분하다. 보상은 KT의 기프티쇼를 설문 참여 항목수나 주제, 참여자의 경험치에 따라 차등화해 지급하는데 모바일에서 각종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설문도 스마트폰을 터치하면서 아주 쉽게 참여할 있어서 부담감이 적다. 

 설문조사를 의뢰하는 업체나 개인 입장에서도 설문 항목을 등록하고 결제하는데 10분이면 충분해서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 이 내용을 아이디인큐에서 1시간 안에 검수하고 설문조사를 돌리면 하루 안에 데이터가 나오는 방식이다. “설문 항목이 10개에서 15개 사이면 한 사람당 1000원씩 계산을 합니다.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하면 100만원이면 충분하죠. 그런데 기존 설문조사 업체에 의뢰하면 2500만원까지 비용이 듭니다. 기간도 훨씬 오래 걸리구요.”

◆데이터수집 끝판왕
 그럼 오픈서베이는 설문조사 시장을 완전히 평정하려는 게 목적일까. 의외로 그렇지는 않다. “설문 조사에는 데이터 수집 분야와 데이터 분석 분야가 있습니다. 저희는 데이터 수집에 일단 주력할 겁니다. 데이터 분석에서 기술을 개발하려면 오랜 시간도 필요하고 관련 노하우도 많이 필요합니다. 우선은 데이터 수집에서 최고, 즉 데이터수집 끝판왕이 되겠습니다. 하하”

 오픈서베이는 현재 아이폰 버전 개발이 완료됐고 현재 시범서비스를 하고 있다.12월 중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안드로이드 버전은 내년초에 출시될 예정이다. 우선 패널 5만명을 모으고 내년에 안드로이드 버전으로도 패널 5만명을 모아 10만명 수준이 되면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처음 2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했던 이 회사는 신현성 권기현 티켓몬스터 창업자의 투자를 받아 자본금이 늘었다. 내년초 한차례 더 투자 펀딩을 진행할 예정이다. 비용이든 기간이든 2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설문조사가 대중화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대기업들이나 이용하는 것처럼 인식돼 있는 설문조사를 벤처기업들도 마케팅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시장이 크게 확장될 수 있다고 보는 거다.

 “돈만 보고 뛰어드는 것은 벤처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설문 조사 시장은 분명 있지만 아주 뜨거운 시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필요한 분야고 개선할 여지가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 저희는 미개척의 이 영역에서 최고가 되려고 합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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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와 인터넷은 삶을 포기할 뻔 했던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습니다.인터넷을 통해 다시 태어난 만큼 이제는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임현수 위인터랙티브 사장은 1급 지체·언어장애를 가진 중증 장애인이다.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힘겨웠다. 하지만 현재 그는 직원 11명을 거느린 벤처기업의 어엿한 CEO(최고경영자)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이 사람 사연이 보통 많은 게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그가 성장하면서 겪은 어려움과 이를 극복한 불굴의 의지를 어찌 사람의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진작부터 그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제대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주저하고 있었다. ‘우선 만나보고 그날 받은 느낌과 공감의 분위기를 그냥 풀어내도록 하자’ 하는 생각에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장애를 극복한 벤처기업인라는 차원에서 만난 것은 아니었다. 여기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찾고 있는 불굴의 기업가 정신, 그리고 새로운 시대로의 모험은 어떤 역경이나 환경 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장애를 극복했다는 것을 뛰어넘어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그를 상암동 위인터랙티브 사무실에서 만났다.


◆생후 6개월만에 찾아온 장애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뇌성마비에 걸리면서 그는 중증 장애인이 됐다. 정작 본인이 이를 의식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장애에도 불구하고 또래들을 뛰어넘는 총명함을 보인(이 부분은 그가 아니라 이날 인터뷰를 돕기 위해 동행한 김재갑 이사가 전한 말이었다. 김 이사는 임 사장의 대학교 동창이고 학교에서는 김 이사가 선배였지만 임현수 사장과 뜻을 같이해 함께 창업하게 됐다.) ‘어린이 임현수’는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얼마 안 있어 장애 아동을 위한 학교로 옮기게 됐다.
 그런데 몸은 불편해도 머리는 남달랐던 그에게 장애 학교 수업은 도저히 맞지가 않았다. 결국 그의 고집으로 그는 일반 학교로 다시 옮겼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의 장애가 문제가 됐다. 말만 좀 더듬어도 놀림당하기 십상인 철없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그의 존재가 부각될 수 밖에 없다.
“정말 철저하게 고립됐습니다. 어찌보면 그냥 얌전히 왕따만 당하는 것을 감사해야할 지도 모를 정도였죠. 정말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살고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삶을 포기하는 것 마저도 저에겐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더 이상 자세히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상황이 이해가 갔다.

 힘든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3이 됐을 때 그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1995년 당시 국내에 막 도입된 인터넷을 접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 세상에서 임현수 사장은 일반 사람과 똑 같았다. 열개의 손가락 중 한 개의 손가락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삶의 의욕을 찾으면서 학교 성적도 급격하게 올랐다.

 “처음에는 책을 보고 베이직으로 간단한 프로그램도 만들었습니다만 제가 원하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이때부터 대학을 가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죠.”

◆인터넷에서 삶과 꿈을 찾다
독학으로 홈페이지 만드는 법을 터득한 그는 인터넷 세상에서 펄펄 날아다녔다.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홈페이지 제작 방법을 알려주는 웹사이트를 열기에 이르렀다.“당시 개인이 만든 사이트인데 하루 5만여명이 접속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어요.사이트가 유명해지다 보니 라이코스가 관련 홈페이지 제작 관련 콘텐츠를 공급해 달라고 해서 졸지에 사업자가 됐습니다.”

 임현수라는 이름이 인터넷 업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고등학생이었지만 그가 홈페이지 제작에서 보여준 성과는 인터넷 업체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지금도 홈페이지 제작을 외주에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이와 관련된 업을 일찌감치 감각적으로 터득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000년엔 청와대와 제 2 건국위원회가 선정하는 신지식인으로도 뽑혔다. 막연하게 컴퓨터가 좋아서 몰두했던 그가 창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2001년 성균관대에 입학해 컴퓨터공학과 경영학을 복수전공한 그는 졸업을 앞두고 취직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그는 창업을 하고싶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우선 인터넷 분야의 비즈니스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2005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 입사해 인터넷에 대한 실무를 배웠다.

◆상금 5000만원으로 창업
“사장님은 경진대회의 제왕이에요”
임현수 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위인터랙티브 직원이 지나치듯 불쑥 던지고 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금껏 각종 경진대회, 공모전 등에서 상을 받았다. 얼추 잡아 각종 컴퓨터 경진대회와 벤처창업 경진대회에서 20여 차례 수상했고 정보통신부 장관상도 지금까지 네 번이나 받았다. 그의 사무실 벽 한쪽에는 그가 받은 경진대회 상장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2008년에는 창업경진대회에 출전해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개발해 대상을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3년전인데 그때 벌써 지금의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를 아이템으로 대회에 출전했어요.사람들이 깜짝 놀랐죠.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걸로 창업을 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여간 아이디어 하나는 참 많다. 옆에서 지켜보전 김재갑 이사도 한 마디 거든다. “대학때부터 10여년간 계속 지켜봤는데 정말 신기할 정도입니다.어디 가서 상도 잘 받고, 재미있는 생각도 많이 해요.”

 창업대회 대상으로 받은 상금 5000만원을 갖고 임 사장은 2008년 위인터랙티브를 창업했다. 지금 와서 모바일 메신저를 창업 아이템으로 할 걸 하고 생각하지만 당시엔 사실 시장 상황이 그에 적합하지 않았다. 너무 이른 시기였기에 꼭 성공했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래서 인생이나 창업이나 가정은 무의미한 듯 하다. 어쨋든 김재갑 이사와 함께 창업을 했지만 한동안 창업 아이템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검색 기술이나 소셜네트워크를 연결한 무엇을 계속 고민했지만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는 것과 이를 구체적으로 비즈니스화한다는 것은 확실히 조금 다른 문제였다.한동안 생각한 대로 사업이 풀리지 않으면서 어려움도 겪었다.

 “그동안 시장의 변화 등으로 인해 개발만 해놓고 오픈하지도 못한 서비스가 두 개나 있었습니다. 이러한 실패의 과정 속에서 자신감을 상실해 좌절에 빠지기도 했죠. 다행히 그때마다 구성원들이 응원을 해줬고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를 극복해 ‘1000만명이 이용하는 서비스를 만들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청년기업인 돕는 벤처사업가 되겠다
올들어 위인터랙티브는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현재 임현수 사장은 SNS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검색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SNS의 명성과 평판이 기본이 되기 때문에 검색에서 중요한 문서 자체의 신뢰도 뿐 아니라 문서 작성자의 신뢰도 역시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다. 이 회사가 개발중인 소셜검색 서비스의 이름은 ‘퀵플’.응답이 빠르다는 뜻이다. 빠르면 올 연말,늦어도 내년 초에는 출시될 예정이다. 우선 웹 서비스로 내놓고 바로 이어 모바일 서비스로도 출시할 계획이다. 모바일로 만들면 게임 등을 접목해 다양한 재미를 주는 것도 가능하다.

 지체장애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활발하게 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요즘 취업 등의 문제로 힘겨워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그는 “그런 심정에 십분 공감한다”면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식산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존 산업에 대한 일자리는 줄었지만 새로운 산업도 많이 생겨나고 있고 여기서 파생된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회사에 취직하는 것에만 목을 매고 있을 것이 아니라 좀더 큰 시야로 세상을 보면 세상에는 할 일도 많고 기회도 많습니다.‘청년들이여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임 사장은 실제로 청년들의 도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그는 “나의 몸은 불편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 세상에는 장애가 없다는 생각으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 왔다”며 “초기창업자들을 위한 벤처캐피털을 만들고 단지 돈만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멘토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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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썸노트(Awesome Note)라는 앱이 있다.2009년에 나와 2년째 계속 인기를 끌고 있는 앱이다.영어 버전으로 우선 출시됐고 비교적 아이폰 초창기 시절부터 인기를 끈 데다 해외 유저가 훨씬 많기에 처음에 이 앱을 한국 기업이 만들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그래서 이 앱을 만든 회사가 브리드라는 한국 앱 개발사라는 점,그것도 단 2명이서 만들었다는 것은 꽤나 신선하게 들린다.

 이 정도로 인기를 끈 앱을 만든 회사인데 별로 관련 인터뷰나 회사 소개가 인터넷에 많지 않다는 점도 재미있었다.가랑비가 흩뿌리던 날,광화문에서 브리드 백승찬 대표를 만났다.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 못지 않게 과거 개발자로서의 경력도 재야 고수라고 불릴 만큼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필드에서 경험 축적한 개발 고수
인터뷰를 하면서 페이스북에 백승찬 대표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이날 동행한 꼬날님이 올렸다.즉각 반응이 왔다.‘아 이 분 예전에 ‘신의 손’이라는 프로그램 만든 분인데..’

 이런 반응이 즉각 나오는 것은 그만큼 백 대표가 이른바 재야 개발자로서 명성이 높았기 때문이다.‘신의 손’이라는 프로그램은 그가 대학 재학중 만든 일종의 타자연습 소프트웨어였다.그는 이것을 판매하려고 했지만 당시 플로피디스크에 담아서 판매하는 것이 개발 과정보다 더 복잡해 포기했다고 한다.이때 그는 오프라인에서의 사업,특히 소프트웨어를 유통하는 것이 국내에서 얼마나 실익이 없고 비용이 많이 드는지 배운 것 같다.


 백승찬 대표는 이처럼 치열한 현장에서 경험을 쌓으며 개발자로 성장한 사람이다.그의 이력이 그것을 말해준다.1975년생인 백 대표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뒤 바로 미국의 니시미디어라는 회사에 취직했다.이 회사는 한국에 지사를 갖고 있었는데 백 대표는 처음에 한국 법인에 취직했다가 본사인 미국으로 건너가 일하게 됐다.

 미국 생활은 그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줬다.당시 그는 넷플릭스를 미국에서 처음 접했다.DVD를 가정으로 배송한다는 것이 사업이 된다고 생각했고 그는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 이와 비슷한 일을 한번 해보리라 마음먹었다고 한다.하지만 몇년뒤 한국에 들어와서 사업을 해보려고 했지만 그의 생각처럼 일은 풀리지 않았다.오프라인 사업은 돈을 벌기가 힘들었고 온라인에서 음원을 공식적으로 유통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왔다.저작권자들로부터 음원을 산다는 게 개인 사업자가 할 수 있는 차원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2003년 프루나(PRUNA)라는 P2P 파일 공유 사이트를 만들었다.혼자서 만든 이 사이트가 큰 인기를 끌면서 광고 수익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고 한다.하지만 프루나는 그가 개발자로서 실험적으로 도전한 것이지 계속 할 일은 아니었다.그는 사이트를 매각하고 2006년 뉴미디어라이프라는 PMP(휴대용멀티미디어기기) 회사에 들어갔다.

◆해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닌데 아주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2000년대 중반에 국내에서는 PMP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졌었다.당시 2G폰으로는 동영상을 보기가 쉽지 않았고 화면이 작아 DMB를 보는 것도 불편했다.이런 이들에게 PMP는 안성맞춤의 기기였다.순식간에 시장이 연간 100만대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커졌다.백 대표는 왜 PMP로 회사로 들어갔을까? “단말기를 만들어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습니다.” 단순하지만 명쾌하다.이해가 간다.

 계속 개발에 매진했던 그는 이 회사에서는 개발일을 하지 않았다.대신 기획을 했다.그런데 그가 회사로 들어간지 얼마 안돼 미국에서 아이폰이 나오면서 시장이 재편되기 시작했다.회사가 급격히 어려워졌다.

 “고생만 하셨겠네요?”
 “고생은 했죠.그런데 의미가 있었습니다.덕분에 아이팟터치와 아이폰을 열심히 연구를 했거든요.”

 경쟁을 해야하니 다른 회사 제품을 열심히 뜯어볼 수 밖에 없었다.그러면서 제품의 특징과 장단점을 알게 된 것이다.그것말고도 뉴미디어라이프에서의 생활은 또다른 면에서 중요한 기회가 됐다.이 회사에서 그는 함께 창업을 하게 되는 강영화 이사와 훗날 벤처를 창업하는 김호근 아이쿠 대표를 만나게 된다.

 “앞으로 딱 1-2년만 해 보고 싶은 것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더 이상 머뭇거리면 해보고 싶은 일을 못할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는 강영화 이사를 설득해 창업을 했다.회사 이름은 브리드(BRID)라고 지었다.Brilliant Idea를 줄인 말이다.자신이 개발을,강영화 이사는 디자인을 맡았다.

◆메모장 기능 개선해 대박
처음 창업할 때는 딱히 아이템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다만 아이폰을 열심히 연구한 바 있으니 앱을 만들어보자고 했다.2008년의 일이었다.일단 개인 사업으로 시작했다.앱스토어에 들어가보니 시장은 온통 게임 앱이 지배하고 있었다.물론 해외 앱스토어 이야기다(아직 국내에 아이폰이 들어오기 전이다.)

 게임으로 창업을 하려고 하니 막막한 것은 둘째고 재미가 없었다.창업자 두 사람이 모두 게임에 흥미가 없는 탓이다.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그냥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만들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백 대표는 평소 휴대폰에서 메모장을 가장 많이 썼다.자신이 많이 쓰기 때문에 기존 메모장들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다.제품별 특징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스마트폰 시대에 와도 사람들이 메모장을 많이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예상대로 메모장 관련 앱은 무수히 많았다.하지만 그 중에 그의 마음에 드는 앱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정말 편리하게 쓸 수 있으면서도 다양한 기능이 통합된 앱이 없더라구요.그래서 메모장 앱을 만들기로 했죠.”

 처음엔 UI(사용자인터페이스)나 UX(사용자경험) 등을 개선하는데 주력했다.그러면서 2009년 여름에 어썸노트 첫 앱을 출시했다.그런데 반응이 좋았다.그저 UI 중심의 개선이었는데도 사람들은 그 앱이 차별화됐다는 것을 알았다.그때부터 본격적인 기능 개선에 들어갔다.일정관리 등이 가능하게 하는 등 업데이트를 거듭했다.결국 3.99달러라는 비교적 고가(?)에 앱을 판매했는데도 100만개가 넘게 팔렸다.

 “유료로 나온 메모장 앱 중에는 가장 많이 팔렸어요.100만 다운로드까지는 카운트를 했는데 그 뒤로는 안 셌습니다.암튼 100만개에서 200만개 사이로 팔렸어요.”

◆남들이 레드오션이라고 하는 것에 블루오션이 있다
 메모장 앱은 결코 블루오션은 아니었다.그도 그때문에 잠깐 망설였다고 한다.주변에서 너무 레드오션이라는 충고도 있었다.하지만 그의 생각은 좀 달랐다.“레드오션이라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관련 제품도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아무도 제품을 안 만드는 영역이라면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쓸모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죠.많은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생각하는 분야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습니다.메모장은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쓰지만 제대로된 소프트웨어는 없었습니다.무수히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최고가 되면 된다고 생각했죠.”

 치열한 틈바구니 속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항상 이긴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그의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그는 향후 칼렌더 기능을 개선한 앱을 포함해 3-4가지 종류의 스마트폰용 앱을 개발하고 있다.2명이서 시작한 회사는 4명으로 불어났고 1명을 여전히 충원중이다.앞으로도 브리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지만 불편한 것을 개발한 그런 소프트웨어,그런 앱을 집중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안드로이드가 아닌 아이폰 앱스토어에 집중하는 것도 이 회사의 특징이다.유료 시장에 주력하는 이 회사로서는 무료 비중이 큰 안드로이드보다는 아이폰 앱스토어가 매력적이다.물론 그쪽으로 개발할 인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썸노트를 개발할 때 처음엔 영어만 지원하다가 나중에 한국어 등 12개국 언어로 확대됐습니다.앞으로 나오는 앱들은 한국어 영어를 포함해 여러 언어를 동시에 지원할 겁니다.영어권이 아닌 곳에서도 아이폰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거든요.전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그런 앱을 만들고 싶습니다. ”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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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노인터랙티브는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를 진행하면서 처음으로 나오는 본격 리얼 게임 회사다.이렇게 본격이니 리얼이니 하는 말을 강조하는 것은 이 회사가 국내에서 그리 흔하지 않은 콘솔 게임용 콘텐츠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콘솔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것 외에도 이 회사는 이 코너에서 소개했던 회사들과 차이가 나는 점이 많았다.아직 창업 초창기이지만 게임 개발사답게 비교적 많은 인력으로 구성돼 있고 투자도 상당히 많이 받았다.(물론 게임사로서는 반드시 금액이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창업진들은 모두 한국인이지만 중국,영국,미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경험을 쌓고 창업을 했다는 것도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최근에 아주 젊은 창업자들을 많이 소개했었는데 쿠노인터랙티브의 등장으로 한국의 스타트업 평균 연령대도 조금 높아지게 됐다.쿠노인터랙티브의 창업자들은 상당 기간 사회 경험을 한 뒤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꿈
 쿠노인터랙티브를 만든 김상준 사장은 스토리가 제법 있는 인물인 것 같다.첫인상부터 그랬다.사장이지만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하고 있는 그는 연륜이 느껴졌고 차분한 가운데 썰렁한 농담도 잘 하는 사람이었다.(대부분 개발자인데다 남자들로 득시글대는 사무실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서일까)

 김 사장은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어서 학교를 다시 들어갔다고 한다.90년대초반 다른 학교에 들어가 군대까지 마쳤지만 애니메이션을 해보고 싶다는 그의 생각은 국민대 미디어디자인학과 00학번으로 재입학하게 만들었다.국민대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나래디지털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서 3D(입체)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일을 했다.하지만 2002년 회사가 어려움에 빠지는 바람에 회사를 나와 광고회사,공공기관,게임개발사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나래에서 일은 뜻대로 안 됐지만 그는 훗날 함께 창업을 하게 되는 사람들을 모두 이곳 나래를 통해 만나게 됐다.이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 지금 쿠노인터랙티브를 공동 창업한 연경흠 부사장이다.나래디지털에서 만난 두 사람은 2002년 김상준 사장이 광고회사로 이직하고 연 부사장이 아주대학교로 옮기면서 헤어지게 된다.하지만 아주대를 통해 두 사람의 인연은 다시 이어진다.

 아주대에서 산학협력프로젝트를 맡게 된 연경흠 부사장은 애니메이션 팀장으로 일하면서 장진만씨(쿠노 CTO)를 만났고 장진만의 절친인 류태영 이사를 알게 된다.김상준,연경흠과 장진만,류태영은 조금씩 그리는 그림이 달랐던 것 같다.김상준과 연경흠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망이 강했고 장진만,류태영은 게임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연 부사장이 2008년 아주대를 떠나 CJ를 거쳐 중국으로 떠나면서 이들은 다시 헤어지는 것 같았다.하지만 이들이 다시 만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의리로 뭉친 사나이들
 사람이 어떤 일을 도모할 때 누군가가 떠오르는 것은 신기한 현상 중 하나다.수많은 이들을 경험하더라도 꼭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광고회사와 공공기관 등에서 일을 하면서도 김상준 사장은 가끔씩 연경흠 부사장과 연락을 해 왔다고 한다.그러면서 어떻게든 애니메이션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현실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그때 두 사람은 벤쿠버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만난 아주대 멤버들 중 류태영,장진만 두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연경흠 부사장이 아주대에 있던 시절 두 사람과 알게 됐고 이후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던 것도 이들이 합류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류태영 이사는 고품질의 애니메이션 기술을 게임을 통해 구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아주대를 나와 미국 USC(남가주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연구원 생활을 했던 류 이사가 합류하면서 4명의 창업진이 완성됐다.

 이들을 만나보면 그들만의 끈끈한 의리로 뭉쳐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여러 곳을 거치고 때론 허송세월을 하기도 했지만 꿈을 쫓아 노력해왔다는 점이 이들의 공통점이었다.각자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쿠노를 창업한 이들이 콘솔 게임이라는 국내의 희귀 분야에서 인재 찾기에 어려움을 겪을 때 최적의 인물이 느닷없이 회사를 찾아온다.김상준 사장은 “이런 게 운명이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10월 말께 쿠노에 합류한 이세현 아트실장은 프로그래머 출신이지만 아트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한 사람이다.남아공에 이민을 간 부모님을 따라 남아공에서 살다가 영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테크니컬아트리드로서 키넥트 스포츠 1,2를 개발하는데 참여한 이세현 실장은 쿠노가 찾던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정통 콘솔게임의 개발 과정을 다 겪었다는 점,글로벌 회사에서 팀을 이뤘다는 점,자신이 만든 게임을 출시해봤다는 점 등 여러가지 면에서 최적의 경험과 기술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가족 문제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와야 되는 상황이 된 이세현 실장은 공부나 하자는 차원에서 쿠노를 방문했다가 덜컥 입사를 하게 됐다.그가 낚인 것인지,화룡점정을 찍은 것인지는 곧 알게 될 것 같다.

<쿠노인터랙티브 창업멤버들.왼쪽부터 류태영 이사,김성준 대표,연경흠 부사장,장진만 CTO>


◆뮤턴트 디펜스 출시
 쿠노인터랙티브가 만들고 있는 게임은 뮤턴트 디펜스(Mutant Defense)라는 일종의 디펜스 게임이다.방어가 게임의 핵심인 이 장르는 콘솔게임 영역에서도 디펜스그리드,새비지문 등 유명작들이 포진해있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영역에 비해 경쟁이 덜 치열하고 대작의 수가 적은 곳이다.

 작년 4월부터 게임 기획을 한 쿠노의 창업진들은 작년 10월 법인 설립을 하고 게임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외부 활동을 했다.지난해 정부지원과제 중 뉴미디어 지원사업,게임 지원 사업 등에 선정되면서 7억원 가까운 돈을 지원받았다.올해 들어서는 LG전자의 모바일콘텐츠지원사업 1호 선정되면서 추가로 개발금을 지원받았다.

 벤처치고는 개발비가 넉넉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게임,그것도 콘솔게임이라는 분야를 감안하면 꼭 자금이 넉넉하다고 보기는 힘들다.쿠노인터랙티브는 액션게임 모로,퍼즐게임 룸즈2 등 뮤턴트 디펜스에 뒤이어 나올 게임들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 이 분야의 개발자들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다.김상준 대표는 “현재 내년 상반기에 출시될 뮤턴트 디펜스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지만 콘솔 전문 개발사로 크기 위해선 시장의 반응이 있을 때 좋은 게임들이 잇따라 나와야 해 동시다발적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며 “해외 퍼블리셔들과 협력해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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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자 한국경제신문 37면(인물면) 톱에 관련 기사가 이미 나갔습니다만,양이 좀 줄어서 처음 썼던 내용을 그대로 블로그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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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열 KT 홈고객부문 사장이 마라톤을 취미로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취미로 마라톤을 하면 어느 정도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달리기는 상당히 좋아할 것이 분명하고,가끔씩 하프코스를 뛰는 정도가 아닐까.분명치는 않지만 그런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서유열 사장을 만나자마자 그가 처음 한 말에 나는 놀랐다.

“2005년에 처음 마라톤을 하기 시작해 만 6년 동안 풀코스를 11번,하프마라톤을 20번 뛰었어요.”

 서초동에 위치한 KT 올레캠퍼스 10층에 있는 서유열 사장의 방에 들어서자 창가에 가득히 세워놓은 마라톤 관련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춘천국제마라톤,경주마라톤 등 선수들이나 뛸 것 같은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사진과 기록들이 빼곡했다.

 마라톤 선수들도 일년에 42.195㎞ 풀코스 완주를 두 번 정도만 한다고 한다.서 사장은 6년동안 11번을 완주했으니 1년에 얼추 두번씩 뛴 셈.거의 선수급이다.기록도 대충 취미생활로 뛰는 수준이 아니다.서 사장이 31번 뛴 풀코스와 하프코스 기록을 보여줬다.최고 기록은 2008년에 세운 3시간 32분 29초.3시간 35분내로 들어와야 마라토너들의 꿈 보스톤 국제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다.이 기록이 작년에 공인되면서 서 사장은 올해부터 보스톤 마라톤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올해는 너무 바빠서 출전을 못했는데 내년엔 가고 싶죠.그런데 가려면 일주일 휴가를 내야하니 사실 어렵죠.허허”

 그의 말을 듣다 새삼 서 사장을 쳐다봤다.유심히 보지 않았는데 다시 보니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 같았고 56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힘이 느껴졌다.사람이 탄탄해 보이면 역시 이유가 있었다.


 마라톤이 취미이자 특기이다 보니 그의 애장품은 모조리 마라톤과 관련된 거였다.갖고 있는 뉴밸런스 마라톤화만 스무켤레가 넘는다.“두 번만 완주해도 신발 뒤가 닳아요.돈 아낀다고 그거 그대로 신고 나가면 무릎에 무리가 오죠.마라톤 제대로 하려면 신발도 자주 바꿔줘야 합니다.”

 그가 보여준 마라톤복은 KT의 변천사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2005년 처음 대회에 출전할 때 입었던 마라톤복 상의에는 네스팟(Nespot)이 크게 적혀 있었다.KT가 당시 전국에 네스팟 와이파이망을 깔았기 때문이다.2007년에는 IPTV를 시작하면서 마라톤복에도 Mega TV가 프린트돼 있었다.2008년 옷에는 당시 KT의 캐치프레이즈인 ‘Life is Wonderful’이,2009년에는 ‘Qook’,그리고 작년 옷에는 ‘올레KT’란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대체 왜 이렇게 열심히 뛰는 걸까.어릴 적 유달리 몸이 약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초등학교 2학년때 숨을 쉬지 않아 가족들이 죽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죠.”
 
 아니 도대체 몸이 어느 정도 약했길래...“죽었다고 생각한 가족들이 거적대기를 덮어놨었어요.송장 치울 일만 기다리고 있었답니다.그런데 기적적으로 살아났어요.”

 그 뒤로 서 사장은 죽어라고 운동을 했다.태권도를 10년동안 해 3단까지 취득했고 대학에 진학한 뒤로는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스무살에 시작한 산행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등산 경력만 35년에 달한다.지금도 골프 대신 매주 북한산,도봉산 등 서울 시내 인근 산에 오른다.지리산 종주를 10시간만에 끝낼 정도로 빠른 속도로 등산을 한다.그렇게 단련된 체력이 고스란히 마라톤에서 이어지고 있다.

 “2005년에 기업고객 본부장이 되면서 시간이 없어서 멀리 있는 산을 찾아가 등산을 하기가 어려워지더라구요.그래서 마라톤을 하기 시작했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할 정도로 힘든 마라톤을 계속 하다 보니 에피소드가 없을 수 없다.작년 춘천국제마라톤대회에 나갔다가 35㎞지점에서 발에 쥐가 나서 쓰러진 것이다.“한 시간 동안 꼼짝 못하고 누워있었어요.” 
 
 진행요원들이 그를 들것에 실어 트랙 밖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때가 10월이었으니 1시간을 누워 있으면 등에 한기가 느껴질 터. 땀이 식으면 더욱 심했을 것이다. 왠만하면 포기하고픈 마음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어났다.

 “물을 중간에 안 마시고 좀 오버페이스했더니 바로 쥐가 나더군요.하지만 인생에 포기란 없습니다.기록이 한시간 늦어지긴 했지만 다시 일어나서 끝까지 뛰었어요.”

 흔히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곤 하는데 서 사장은 마라톤을 하면서 그 이유를 실감하고 있다.“35㎞ 구간을 통과하면 무아지경에 빠져듭니다.몸 속의 에너지가 다 타고 달리던 관성으로 앞으로 나가는 거죠.이때쯤 되면 표현하기 힘든 쾌감마저 듭니다.마치 인생을 좀 살아봐야 의미를 아는 것처럼 말이죠.힘들고 지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달려야 한다는 것.포기해선 안된다는 것.그래서 마라톤을 인생이라고 하나 봅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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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궁 OGQ 대표를 처음 봤을 때 평탄하게 잘 자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외모에 대한 인상때문이기도 하지만 미리 그에 대해 얄팍하게 알고 있던 정보때문이기도 했다.카이스트를 졸업해 이른 나이에 창업을 해서 회사가 잘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어쩌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김 대표의 이야기는 이런 나의 첫 인상을 완전히 배신하는 것들로 가득했다.남들이 보기엔 화려해 보이는 명문대학생의 이면에는 생각지 못했던 많은 고충이 있었다.어떤 누구보다 평탄치 않았던 삶을 살아온 그는 여전히 좌충우돌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만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벌써 10년이 넘는 창업 경험을 가지고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겪은 김무궁 대표와 명동에서 만났다.1시간 정도 예상했던 대화는 무려 2시간 30분이 넘게 이어졌다.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리하는데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옆 사진은 대화중인 김무궁 대표..사진 제공은 kkonal)
◆컴퓨터에 노래를 불러준 소년
1남 1녀의 장남인 김무궁 대표가 처음 컴퓨터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때였다.
 당시 삼성대리점에서 일했던 삼촌께서 자신의 PC를 써보라며 ‘어린이 김무궁’에게 주고 갔기 때문이다.PC는 그에게 상상도 못하던 완전 새로운 세상이었다.
 PC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김무궁 어린이는 PC를 계속 쓰면 PC가 힘들다고 생각했었다.PC가 쉬려면 잠을 자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PC를 앞에 두고 노래를 불러줬다고 한다.

 “당시 PC에 스피커가 있었는데 그 스피커가 저에겐 귀처럼 보였어요.노래를 부르면 PC가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PC를 너무 모르다보니 사고도 터졌다.더러워졌다고 욕실로 PC를 갖고 가 물로 박박 씻은 거였다.뒤늦게 그렇게 하면 PC가 작동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물로 씻은 다음이었다.김무궁 어린이는 PC를 전부 분해해 부품을 꺼내놓고 말렸다.말린 부품을 모아 PC를 다시 조립했다.어린이가 하기엔 쉽지 않았을텐데,어릴 때 대단한 경험을 한 셈이 됐다.다행히 PC는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컴퓨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컴퓨터를 처음 만진 이듬해인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다.그런데 한 1년쯤 배우니깐 재미가 없어졌다고 한다.학원에서는 베이직만 가르쳤기 때문이다.그는 exe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싶었는데 그걸 하려면 C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학원 원장 선생님에게 듣게 된다.

 “저도 C 언어가 배우고 싶어요”
 “어림도 없는 소리.초등학생이 어떻게 C 언어를 배우냐.”

 C 언어를 배우려고 해도 말도 안된다는 대답만 듣기 일쑤였다.결국 그는 삼성동 서울 서점(지금은 바디앤루니스로 바뀌었다)에 가서 C 언어와 컴퓨터 잡지 등을 닥치는 대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그러면서 불과 2-3년전 컴퓨터에 노래를 불러주던 이 소년은 개발자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중 2때 처음 프로그램 개발
중학교 2학년이 된 ‘청소년 김무궁’은 PC통신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친구 호스트’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이 서비스는 원하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그는 학생이었지만 이를 돈받고 팔 수가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서도 그는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 이것을 팔았다.계속해서 그런 쪽으로 시도를 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그가 그런 시도를 계속 한 것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넉넉치 않은 가정 형편 속에 그는 자신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고 한다.그냥 학교 다니면서 공부만 하면 되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고 1때 단체메일 발송기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지금이야 단체로 메일을 전송하는게 아주 일반화돼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기능이 흔치 않았다.그가 만든 프로그램을 대기업에서도 찾는 일이 생겼다.그는 이 프로그램으로 1억원 이상 돈을 빌렸다.

 “어린 나이에 돈을 그렇게 벌었는데, 그게 나중에 창업 자금이 됐겠네요?” 내가 물었다.
 “아니요.집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그럴 여유가 없어지게 됐어요.” 

 청소년 김무궁은 초등학교때 그랬던 것처럼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도 자신이 잘하고, 하고 싶은 것에 올인해서 살았다.그에게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가장 자신있는 일이었고 가장 재미있는 세계였다.그 세계에 흠뻑 빠져 살던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미래를 만들었다.

◆특기생으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입학
1999년 8월 고등학교 1학년때 정보올림피아드에 나간 그는 쇼핑몰 시스템을 만들어 금상을 타게 된다.“언젠가 모든 가게들이 온라인 샵을 낼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게 눈길을 끄는데 성공했죠.” 

 정보올림피아드 특기생을 따로 뽑았기 때문에 그는 이미 고등학교 1학년때 대학 진학이 결정돼 버렸다.“대학 진학이 결정됐는데 공부할 생각이 안 들더라구요.그래서 공부는 안한다고 하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냈어요.물론 학교는 갔죠.계속 자서 문제이긴 했지만(웃음)”

 둔촌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예정대로 2002년 카이스트 전산학과에 입학했다.입시를 안 치르고 학교를 가면 얼마나 좋을까.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지,그의 경우는 꼭 좋지만은 않았다.그는 중고등학교때 교육 과정을 따라가지 않은 것 때문에 결국 나중에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된다. “정말 삼각함수도 모르고 학교를 갔어요.미적분을 알 턱이 없었죠.그런 상태에서 전산학과를 갔으니 수업을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죠.”

 첫 학기 학점은 충격적이었다.제적 기준보다 점수가 낮게 나온 것이다.학교에서도 드문 일이라 대학생 김무궁 사례를 놓고 교무회의를 열 정도로 점수가 안 좋았다.다행히 1학년 1학기를 갓 마친 학생에게 기회를 주기로 해 그는 학교에 남을 수 있게 됐다.심각함을 느낀 그는 일단 휴학을 했다.

◆창업에 골몰한 대학생
휴학을 했지만 그는 도서관으로 달려가지는 않았다.그가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은 PC를 통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였다.P2P 중고거래 메신저가 당시 그가 선택한 아이템이었다.“당시 다른 학교 선배들과 팀을 만들었는데 그때 팀의 중요성을 알게 됐어요.저랑 잘 맞지가 않았죠.일은 했고 성과도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죠.그래서 잠시 하다가 2학년때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학교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터.그는 여전히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혹시 학교 중퇴를 생각하지는 않았나요?”
 “저 혼자 생각했으면 그랬을지 모르죠.하지만 어머니나 특히 여자친구가 학교를 정상적으로 마쳐야 한다고 저를 강하게 붙들었어요.그 덕에 대학에 들어와서 뒤늦게 공부를 했어요.”

 여자친구의 격려 덕에 그는 1학년때 제적을 당할뻔 했던 상황을 딛고 높은 학점을 계속해서 받으면서 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그리고 병역특례로 군 생활을 하게 된다.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분석하는 사이람이라는 회사와 나우콤에서 2008년까지 병특 기간을 보냈다.사이람과 나우콤에서 그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훗날 창업을 같이 하게 되는 박정수,이소라씨 두 사람을 각각 사이람과 나우콤에서 만난 것이다.역시 사람은 어디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참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경우에도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병특을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그는 이번에는 영어 점수와 씨름을 해야 했다.카이스트에서 졸업 요건으로 영어 점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아마 대부분의 카이스트 학생들에게는 별 거 아니겠지만 저한테는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영어 공부를 중고등학교때 별로 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가 영어와 씨름을 하고 있을 때 학교 친구가 그에게 ‘신철호’라는 사람을 소개시켜줬다.신철호씨는 2000년대 초중반 포스닥이라는 사이트를 개발해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다.그는 같이 창업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바로 창업을 하고픈 생각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주위 사람들이 학교 졸업이 우선이라고 말렸다.“그래서 일단 영어 점수를 받고 창업을 생각해보겠다고 말씀을 드렸죠.그런데 정말 기다려주시더라구요.”

 영어 점수 받는 일이 그에겐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그야말로 아무것도 생각 안하고 도서관에서 살면서 영어공부만 했다고 한다.지난해 2월 처음 만난 이들은 김무궁 대표가 영어 시험에 통화한 지난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창업 모의를 하기 시작했다.김 대표는 사이람에서 만난 박정수씨,나우콤에서 알게 된 이소라씨를 설득해 4명의 창업멤버가 완성됐다.올 2월 이들은 OGQ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배경화면 앱으로 히트
OGQ. 무슨 뜻일까? “회사 이름을 놓고 창업 멤버들이 토론을 좀 했습니다.우리들이 지향할 바에 대해 각자 단어를 하나씩 써보기로 했죠.그러면서 세 단어가 최종적으로 선택됐습니다.Open, Global, 그리고 질문을 많이 하자는 뜻으로 Question이었죠.그 세 단어의 각각 첫 글자를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었어요.”

 이사회 의장은 제일 연장자이자 창업 자금에 공헌을 한 신철호씨가 맡았고 김무궁씨가 대표를 맡았다.이들은 TED 강연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앱인 Ted Air를 출시했다.14일 동안 개발해 5월 23일 출시한 ‘배경화면(Backgrounds)’이라는 앱이 대히트를 쳤다.50일 동안 전체 안드로이드 앱 중 1위를 했고 누적 다운로드가 800만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매일 전 세계에서 10만명 정도가 다운로드하고 있어요.조만간 1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할 것 같습니다.”

 그는 스마트폰에서 배경화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지만 양질의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기존 배경화면 앱들이 검색이 불편한 것도 문제라고 생각했다.“여성을 타깃으로 하고 성인자텐츠는 배제하는 쪽으로 갔습니다.그래야 좀 더 많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보통 페이지를 넘기는 방식을 택했지만 모바일에 적합치 않다고 봤죠.그래서 저희는 툭툭 넘기고 스크롤 해서 볼 수 있는 방식으로 기획을 했습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적중했다.수많은 배경화면 관련 앱이 있었지만,그래서 그 쪽은 완저너 레드오션 시장인 것으로 비춰지고 있었지만 그 많은 앱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OGQ가 개발한 배경화면은 독보적으로 승승장구했다.

◆1000만 다운로드 이상 가는 앱 개발하겠다
 배경화면 앱이 잘 되면서 이 앱에 붙는 광고비 만으로도 회사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됐다.배경화면 히트에 힘입어 최근 OGQ는 ‘스타 배경화면’이라는 앱을 새롭게 출시했다.스타들의 사진으로 배경 화면을 꾸밀 수 있는 앱이다.시장의 반응을 보며 본격적인 마케팅 시기 등을 조율하고 있는 단계라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직 OGQ는 본게임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뭔가 좀 더 본격적인 앱을 만들 것 같았다.그의 다음 계획은 우선 텀블러 클라이언트 앱을 만드는 거였다.소셜게임 앱도 생각하고 있었다.“소셜게임을 모바일로 할 수 있는 그런 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그런데 그 앱은 기존 소셜게임을 모바일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모바일에서 턴제 방식의 게임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턴제 방식이란 서로 번갈아가면서 플레이하는 그런 게임이다.“바둑같은 게임처럼 서로 번갈아가면서 두는 그런 그럼에 모바일에서 상당한 수요가 있다고 봅니다.턴제 방식의 게임 중에서 어떤 것을 할지,어떤 방식으로 선보일지 등을 고민하며 기획하고 있어요.”

 무엇을 내놓든 이들의 목표는 명확했다.“1000만 다운로드 이상 간다고 확신하는 그런 앱들을 개발해 출시할 겁니다.그런 분야에 집중적으로 도전하려고 합니다.굳이 아주 특이할 필요는 없습니다.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이 찾고 즐기면 되죠.그런 앱들을 다수 보유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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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드립니다

카테고리 없음 2011. 11. 3. 07:46 Posted by wonkis
2일 올렸던 모나 심슨의 스티브 잡스 추도사는 원문을 쓰신 분들의 허락없이 올린 글이었기에 내렸습니다. 사전 허락이나 출처 표기 없이 글을 올린 점 사과드립니다. 이와 관련해 블로그 독자 여러분과 관계자 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도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당초 제가 직접 쓴 글만 올린다는 블로그의 원칙을 지켜왔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스티브 잡스와 관련된 몇가지 사안에서 감흥에 젖다보니 그러질 못했습니다.

앞으로 더욱 원칙을 지켜나가는 블로그가 되겠습니다.찾아주시고,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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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젊은이들이다.나이는 20대 초반이나 중반이 대부분인데 속칭 요즘 잘 나간다는 모바일 사업에는 관심이 없는 이들이었다.이들은 쓰레기통에 꽂혀 있었다.‘왠 쓰레기통?’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하다.이들을 만나보면 더 기가 막히다.앳되보이기까지 한데다 죄다 명문대학의 전기전자공학이나 경영학을 전공으로 한 이들이 쓰레기통 사업에 발벗고 나섰기 때문이다.하루종일 쓰레기통만 생각한다는 이들은 이큐브랩이라는 실험실 같은 이름의 회사를 차렸다.이달 중에 이큐브랩이 만든 쓰레기통이 세상에 나온다.그들의 쓰레기통이 세상에 나오기 직전,필동에 있는 이큐브랩 사무실을 찾아갔다.

<이큐브랩 창업 멤버들.왼쪽부터 이성구,권형석,구종현 이사,그리고 권순범 대표.맨 끝에 나도 오랫만에 끼여서 찍었다.사진은 아블라컴퍼니 인턴 강승리 군이 수고해줬다.>
◆속 마음을 들키다!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에 재학중인 권순범 대표와 창업 멤버인 이성구(고려대 경영학과 졸업),이승재(서울대 화학생물공학과),구종현(서울대 경영학과) 등 3명은 원래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다.학교가 제각각인 이들이 만난 곳은 소셜컨설팅그룹(SCG)이라는 모임에서였다.무료로 경영 자문을 해 주는 이 단체에서 만난 이들이 친해지게 된 동기가 재밌다.

 “다들 취미가 비슷했어요.특히 맛있는 집 찾아가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어요.주로 족발집이랑 곱창집을 찾아다녔죠.” 창업멤버인 이성구 팀장의 설명이다.담배도 안피고 술도 안마시는,남자들의 집합으로는 보기 드문 모임인 이들은 이성구 팀장의 말처럼 다들 족발을 좋아했다.술은 별로 마시지 않았지만 족발집에서,때론 곱창집에서 밥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다.이야기를 하다보니 모두들 창업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고 한다.

 “마음 속을 들킨 것 같았죠.저도 창업에 대해 어렴풋이 생각은 있었지만 밖에 얘기를 하고 다니진 않았거든요.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반복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창업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권순범 대표)

◆하필이면 쓰레기통?
창업 아이디어는 권순범 대표가 냈다.연세대 학생인 권 대표는 주로 신촌역과 강남역 인근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그는 작년 신촌역에 있는 스레기통을 보다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통이 넘쳐서 너무 지저분해보이더라구요.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을 했죠.”

 쓰레기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범상치 않다.SCG 활동을 하면서 봉사나 사회 공헌,사회적 기업 등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진 것은 아닐까.사람은 자기가 보고,듣고,경험하는 것에 의해 생각과 행동이 좌우된다고 하는데 권 대표의 경우도 그런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우선 쓰레기통 용량이 작아서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판단했다.쓰레기통 용량을 갑자기 늘릴 수는 없으니 쓰레기 용량을 줄이는 게 해답이다.여기에 그는 친환경과 디자인이라는 키워드를 대입했다.자신이 학교에서 배운 IT 지식을 적용하니 스마트하고 친환경적인 태양광 압축 쓰레기통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멤버들과 의견을 교환하니 모두들 찬성했다.

 그런데 태양광 압축 쓰레기통을 고안하고 기술 실현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시장 조사를 하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이미 미국에서 비슷한 제품이 나와 있는 거였다.“압축 기술에 있어서 차별점이 있고 이를 통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처음 생각했던 대로 밀어 붙이기로 했죠.”(권순범 대표)

 작년 연말부터 본격적인 쓰레기통 고안 및 기술 실험을 시작한 이들은 올 7월 정식으로 법인을 설립했다.법인을 설립할 즈음에 경사가 터졌다.7월 주한유럽상공회의소가 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이 후원한 유럽-코리아 비즈니스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탄 것이다.이를 계기로 이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그 뒤 영국문화원의 아시아 7개국 환경개선 아이디어 지원 사업에 선정되는 등 경사가 잇따랐다.처음 시작할 때는 자본금이 1000만원(대부분 권순범 대표 돈)이 고작이었지만 각종 경진대회 상금,후원금 등을 합쳐 자본금이 1억원으로 불었다.

◆사실은 IT가 핵심
이들이 만들고 있는 태양광 압축 쓰레기통의 이름은 ‘스마트 빈’.태양광을 동력으로 쓰레기 부피를 압축시켜 줄여주고 IT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쓰레기를 수거하는 솔루션을 결합한 제품이다.쓰레기가 일정량 이상 차면 센서가 작동한다.이때 쓰레기통 상부에서 400㎏의 압력을 가하며 쓰레기 부피를 최대 5분의 1까지 압축하고 더 이상 압축이 안 될 정도로 쓰레기가 차면 빨간 불이 들어온다.

 쓰레기를 5분의 1로 압축하기 때문에 같은 쓰레기통에 기존 용량 대비 쓰레기를 5배 정도 더 담을 수 있게 된다.각 구청에서 쓰레기를 수거하기 위해 출동해야 할 횟수가 줄어들게 된다.“수거 차량 운행 횟수가 10% 줄어들면 연간 약 1000톤의 이산화탄소가 저감되며 서울시의 5000여개 쓰레기통에 압축쓰레기통을 전면 도입할 경우 20%이상 운행 횟수가 줄어듭니다.이는 서울시에 나무 15만 그루를 심은 것이나 마찬가지 효과죠.”

 이큐브랩은 현재 완성된 시제품으로 지자체 대상 시범 사업을 준비 중이다.시범 사업은 11월중 강남역에서 우선 시작된다.
 태양광의 전력으로 바꾸고 이를 통해 쓰레기를 압축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통신 기술이다.센서가 제대로 작동해 이를 적시에 알려줘서 제때 수거 차량이 오게 하는 것이 태양광 압축 쓰레기통에서 매우 중요하다.이큐브랩은 KT의 3G 네트워크를 이용한다고 했다.비용이 저렴한 와이파이 사용을 검토했으나 지역에 따른 차이 문제로 3G를 최종 택했다.지역에 따라 와이파이가 잘 안 깔려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 제품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특히 눈으로 보이는 실질적인 효과를 입증하려면 IT 솔루션이 빈틈없이 작동해야 한다.

 이 솔루션은 센서로 측정한 쓰레기 잔량과 작동 정보를 3G망을 통해 중앙관리 서버로 전송한다.전송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적의 수거 주기와 최단 경로를 알려주는 등 담당자를 위한 종합 관리 솔루션이 제공된다.담당자는 PC 뿐 아니라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통해서도 이 솔루션을 사용할 수 있다.

◆쓰레기통으로 세상을 바꾼다
 스마트빈 한 대 가격은 150만원-200만원선.무슨 쓰레기통이 이렇게 비싼가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 서울 시내에서 쓰고 있는 아무 기능이 없는 철제 쓰레기통도 대당 50만원을 호가하는 제품들이다.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운영비 절감 등의 효과로 인해 설치 후 3년 내에 초기 비용은 바로 회수가 됩니다.그 뒤로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기존보다 훨씬 비용이 줄어드는 구조가 됩니다.그리고 초기 구매 비용이 부담스러운 지자체 등을 위해 리스 등 다양한 구매 옵션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술을 테스트하기 위해 이들은 지난해 겨울부터 서울 시내 철공소에서 직접 쓰레기통을 만들어 다양한 기술을 실험해봤다.사람들이 쓰레기통을 사용하는 다양한 행태에 대한 자체 조사도 시행했다.쓰레기통 뚜겅을 여는 경우,쓰레기통에 우산 등 긴 물건을 꽂는 경우 등 다양한 경우를 발견하고 이런 경우에도 문제없이 작동하도록 제품을 만들었다.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인 권형석,고려대 전기전자공학과 대학원 윤준식 등이 합류해 초기 멤버 6명이 꾸려졌다.

 현재 스마트빈은 독산동의 한 공장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생산하고 있지만 추가 자금을 확보해 자체 생산 설비도 갖춰나갈 계획이다.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특허도 신청한 상태다.

 “우선은 지자체와 대학교 등을 중심으로 하지만 앞으로 아파트 단지내,회사 공장,관광지,시민공원,골프장 및 리조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활용될 수 있습니다.도시 미관을 개선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등 효과가 큰데다 태양광을 이용해 친환경적이기 때문에 많은 지자체 등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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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뭔가 빈 공간이 있다.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으신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지금의 대부분 SNS들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비슷비슷하고 항상 유사한 사람들끼리 계속 겹쳐서 사용하는 SNS가 아닌 좀 특별한 SNS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박재욱 VCNC 대표다.

 그는 SNS가 모바일을 통해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회사를 차렸고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회사 이름을 VCNC(Value Creator and Company)로 만들었다.VCNC가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을까.서울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VCNC 사무실을 찾아갔다.오랫만에 Kkonal님과 동행했다.


◆그저 부속품으로 살긴 싫다
박재욱 대표는 서울대 전기공학과 04학번이다.좋은 학교를 나왔으니 그에게는 분명 다른 많은 길이 있을 터였다.삼성이나 LG같은 대기업에 입사할 수도 있을 것이고 서울대에서 유행하는 각종 고시준비반에 들어갈 수도 있다.그 밖에도 무수하게 많은 선택 가능성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창업을 했다.왜 그랬을까?

 우선 박 대표는 창업에 대한 생각을 대학 입학 때부터 했다고 한다.자신이 갖고 있는 꿈이 직장 생활이나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실현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럼 그는 어떤 꿈을 갖고 있었을까?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싶었습니다.직장인으로서 살기 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일들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그래서 대학시절부터 주위 사람들과 창업 이야기를 계속 하면서 같이 할만한 사람들을 모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박재욱 대표의 설명이다.

 그렇게 해서 모인 사람들이 함께 VCNC를 창업한 김영목,이정행,우경재,조성욱이다.하지만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뜻이 맞아 단번에 창업을 하자고 의기투합한 것은 아니었다.이들이 모이는 데는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그리고 박재욱 대표 역시 무엇으로 창업을 할 지에 대한 뚜렷한 아이디어가 없었다.

◆인포뱅크에서 창업 기반을 닦다
 2008년 대학생 박재욱은 병역특례로 군생활을 대신하기로 하고 인포뱅크라는 인터넷 솔루션 업체에 입사했다.여기서 일하면서 그는 훗날 창업에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는 일을 맡게 된다.

 인포뱅크는 원래 휴대폰에서 기업용 단체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하는 등 모바일 인터넷 솔루션 등을 제공해주는 기업이다.작년 매출이 600억원에 달하는 탄탄한 중견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주로 B2B(기업간 거래)에 집중하는 이 회사가 작년초 전국적인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다.바로 스마트폰용 메신저 엠앤톡(M&Talk)을 만들면서부터다.재미있는 것은 이 서비스를 만든 실무를 담당했던 이가 박재욱이었다.

 병역특례로 일하고 있던 그는 2009년말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를 개발하라는 명을 받고 함께 일하던 병역특례 직원 2명과 함께 달랑 세명이서 두달여만에 엠앤톡을 만들었다.“만들면서 이 서비스는 반드시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픈 욕구가 있는데 스마트폰에서 최적화된 서비스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미국에서 유사한 서비스인 왓츠앱이 뜨는 것도 확인했구요.”

 그의 예상대로 2010년초 출시된 엠앤톡은 돌풍을 일으켰다.그는 엠앤톡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서 2010년 3월 병역특례를 마치고 회사를 나왔다.“엠앤톡이 출시되고 6개월만에 200만명 가입자를 모았죠.그런 전국적인 서비스를 만들었다는 게 아주 신기했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엠앤톡은 결정적인 순간에 서비스를 더 확대하지 못하고 카카오톡의 출시와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엠액톡이 더 성장하고 확산될 수 있었는데 중요한 순간에 리소스를 더 투입하질 못했습니다.카카오톡이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최고경영자의 결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2년동안 자본금 5000만원을 모으다!
그는 인포뱅크에서 경험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을 쌓았다.바로 돈이다.창업을 하려면 자본금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이것을 병역특례를 하면서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2년 동안 월급을 받아서 모두 저축을 했어요.돈을 모아야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월급을 하나도 안 썼어요.그런데 그러다보니 생활이 어려워졌지요”(웃음)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그는 어떻게 직장 생활을 했을까.그가 택한 것은 공모전이었다.대학생벤처창업경진대회 등 숱한 공모전이나 창업 대회 등에 응모를 해서 여기서 받은 상금으로 버텨보자고 결심한 것이다.

 “김영목 CTO는 서울대 전기공학과 04학번 동기입니다.그래서 서로를 잘 알고 계속 창업을 논의했던 사이였죠.같은 과 동기인 우경재,고려대 컴퓨터공학과 07학번 이정행,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 05학번 조성욱 등과 함께 남자 5명이서 2008년부터 창업 스터디를 하고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내공을 쌓았습니다.”

 물론 내공 못지 않게 생활비를 버는 것도 중요했다.이들은 2010년에는 한꺼번에 공모전 2개에 응모해 1등과 2등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그가 돈을 모은 과정을 들어보면 ‘악착같이’모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실 이때 공모전을 준비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확인 과정으로서의 의미도 컸습니다.각자 창업에 대한 확신을 굳히는 동시에 이 멤버로 창업을 해도 될지를 확인해야 됐거든요.호흡을 맞추는 것도 중요했구요.”

 처음에 사무실이 없어 창업 멤버인 우경재씨 집에서 모여서 같이 살았다고 한다.비용을 아끼고 계속해서 일에 전념하며 준비 기간을 거쳤다.이렇게 해서 확신을 갖게 된 이들은 박재욱 대표의 창업자금 5000만원에 나머지 멤버들이 돈을 보태 자본금 8000만원으로 VCNC를 설립했다.법인 설립 기준으로는 올 2월 10일의 일이다.

◆끼리끼리 SNS ‘비트윈(Between)’ 출시
 VCNC의 첫 작품은 ‘비트윈(Between)’이다.현재 알파테스트 중이고 11월초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커플들을 위한 SNS를 표방하고 있다.

 “지금의 SNS를 보면 너무 공개돼 있고 개인적인 공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자기가 정말 좋아하거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일상을 공유하는 그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친밀한 관계에 집중했을 때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첫 타깃은 커플이다.그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앱을 살짝 보여줬다.앱을 통해 커플들끼리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여기서 그들만의 앨범을 만들어 사진을 공유하거나 기념일을 챙기고 특정 날짜와 시간을 정해 예약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일단은 커플로 시작하지만 가족,학교,학원 등 오프라인에 친밀감이 높은 소규모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는 분야면 어디든 확장 가능하다.

 관건은 널리 알리는 것이다.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접속돼서 쓰는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에 대중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박 대표도 이런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그래서 여러 업체들과 제휴해 서비스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소셜데이팅 업체 이음소시어스와 제휴를 맺고 여러가지를 해 보려고 합니다.그 때문에 박희은 이음 대표와 자주 상의를 하곤 하죠.범주는 다르지만 둘다 연애와 만남 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거든요.이음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 비트윈에서 애정을 키워나갈 수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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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었다.그래서 더 감동이 있었다.지난달 말 미국 출장을 가서 클라이너퍼킨스를 방문해 맷 머피 클라이너퍼킨스 파트너를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스타트업을 만나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묻습니까" 라고

 이 질문에 대해 그는 "창업가의 스토리를 듣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답했다.항상 창업가의 스토리,왜 창업을 했는지에 대한 배경,창업 멤버들의 가치관 등이 수익 모델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취재를 해 온 나에게는 참으로 용기와 위로를 주는 발언이었다.맷 머피와의 만남은 1시간 가량 진행됐다.실리콘밸리 멘로파크 샌드힐로드에 있는 클라이너퍼킨스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던 이야기를 정리했다.


“지난 40여년간의 투자 역사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회사의 수익모델보다 창업자의 스토리를 더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 클라이너퍼킨스 코필드앤바이어스(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의 모바일 분야 투자펀드 아이펀드(iFund) 대표를 맡고 있는 맷 머피 (Matt Murphy) 파트너는 “벤처 투자는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멘로파크시에 1972년 설립된 클라이너퍼킨스는 지난 39년 동안 475개 회사에 투자한 미국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털이다.특히 1990년대 벤처 열풍 시기에 스타트업 기업이었던 세계 최대 전자책회사 아마존닷컴,하드웨어업체 선마이크로시스템,세계 최대 게임업체 EA,인터넷업체 아메리카온라인(AOL),세계 최대 인터넷기업 구글 등에 투자해 대박을 터뜨린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역대 대통령이 실리콘밸리를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찾는다는 벤처투자자 존 도어(John Doerr)를 비롯해,선마이크로시스템의 공동창업자 빌 조이(Bill Joy),앨 고어(Al Gore) 전부통령,콜린 파월(Colin Powell) 전 미 국무부 장관 등이 이 회사의 벤처캐피털리스트 또는 벤처 투자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클라이너퍼킨스는 2005년 이후 페이스북,트위터,그루폰 등에 대한 투자를 통해 또 다시 큰 수익을 올려 뉴욕타임즈,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으로부터 “역시 돈 되는 사업을 가장 먼저 알아보는 벤처캐피털”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맷 머피 파트너는 “창업자의 스토리를 들으면 그 회사의 미래를 알 수 있게 된다”며 “경기 불황에 대한 우려가 높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혁신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 스타트업의 창업이 줄을 잇고 있어 투자하기엔 최적의 시기”라고 말했다.그를 만나 클라이너퍼킨스의 투자 철학과 실리콘밸리의 창업 동향 등에 대해 들었다.


▶사람에 투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창업자를 만나면 우선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인생의 가치관은 무엇인지를 듣는다.질문을 많이 하는 것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그리고 창업 멤버들이 창업자의 가치관과 경험을 공유하는지,어떤 비전을 품고 있는지도 확인한다.이런 것이 바로 우리가 확인하고 싶은 창업자의 스토리이고 사람에 투자한다는 말의 뜻이다.”

▶왜 그런 것을 먼저 보나
“사업은 생명체와 같다.긴 과정을 거친다.우리가 어릴 때 가졌던 꿈 그대로 살기 어려운 것처럼 처음 시작할 때의 사업 아이템 그대로 끝까지 유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예측 못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때 중요한 것은 그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다.창업자와 창업멤버들의 가치관,성장 환경과 교육,비전 이런 것들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두번 실패한 사람이 와도 투자하는가
“물론이다.실패한 경험은 결코 감점 요인이 되지 않는다.그것을 통해 많이 배웠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스티브 잡스도 여러번 실패했다.실패를 겪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중요하다.실패한 스토리도 물론 들어봐야 한다.하지만 그 이후 창업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스타트업의 가치 평가는 어떻게 하는가
“가치를 판단하는 것보다 어떤 회사에 투자할 지를 결정하는 것이 더 어렵다.가치 평가는 그 뒤의 일이다.물론 아직 상장하지 않은 회사의 적정 가치를 판단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우선 창업 팀과 아이디어,그들이 기반한 시장,지속 가능성 등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기존에 비슷한 사업을 하는 회사가 있는 경우 좋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이럴땐 기존 회사를 뛰어넘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시장성이 입증되지 않은 최첨단 기술인 경우 어떻게 하나.
“사람들의 기존 생각을 바꿀 만큼 혁신적인 부분이 있는지,아울러 이것을 시장화할 수 있는 기업가 정신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증강현실(AR)이 대표적인 사례다.분명히 새로운 기술이고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사업적으로는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증강현실은 투자 타이밍의 문제다.어떤 경우엔 타이밍 문제가 아니라 사업성 자체가 성립이 안될 수도 있다.그것을 판단하는 것이 벤처캐피털의 역량이다.”

▶특별히 관심을 갖는 사업이 있나
“크게 결제 분야와 커머스,커뮤니케이션,그리고 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을 갖고 있다.정보를 소비하는 패턴의 변화와 이것을 주도하는 서비스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하지만 시장은 계속 변화하고 특히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요즘 투자한 기업들의 투자 수익 회수 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게 실리콘밸리의 주요 화두다.그만큼 시장이 예측하기 어렵게 변한다는 뜻이다.내 관심사를 앞세우는 것보다는 이런 변화와 이것을 관통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트렌드는 무엇인가
“향후 5년간 IT(정보기술) 분야의 스타트업은 소셜(Social)과 지역(Location),모바일(Mobile)을 뜻하는 ‘솔로모(SOLOMO)’가 지배할 것이다.기존 기업들 중에도 이런 변화에 적응해가는 기업이 더 빨리 성장할 것이라고 본다.장담컨대 페이스북은 2년 뒤에 가장 큰 모바일 회사가 될 것이다.이미 구글과 페이스북 접속자의 절반 이상이 모바일에 접속하고 있다.모바일이 기업의 미래를 바꿔놓을 것이다.”

▶산업발전에서 벤처캐피털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스포츠에서 마이클 조던 같은 선수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창업을 해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같은 인물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하지만 스티브 잡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창업을 해서 IT분야에서 성공한 CEO가 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젊은이들이 GM(제너럴모터스)에 입사해 자신을 계속 채찍질해 높은 자리에 가느 것보다 스타트업을 해서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 미국에서는 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벤처캐피털은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즉 젊은이들이 창업을 하도록 이끌고 새로운 산업이 출현하도록 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정부의 역할이 있다면.
“한국의 경우 국가가 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안다.벤처 활성화를 위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혁신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 시스템이다.사람들에게 더 많은 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성과 그런 교육을 받는 목표를 명확하게 알게끔 하는 것이 첫번째다.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부의 창출이라는 측면 뿐 아니라 자아 실현과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불편한 것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도록 해야 한다.젊은이들이 현 단계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고 도전할 기회가 있다면 상당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젊은이들의 이런 동기부여가 축적될 때 혁신적인 문화가 만들어진다.”

▶한국 벤처에도 투자한 경험이 있나
“한국은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번째로 아이폰 앱 다운로드를 많이 하는 나라다.그만큼 한국 내에서도 아이폰 관련 앱 개발사가 많은 것으로 안다.하지만 아직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창업가들의 사례를 많이 만나지 못했다.실리콘밸리는 아니지만 뉴욕에서 한국인 정세주 사장이 창업한 워크스마트랩스가 클라이너퍼킨스가 투자한 유일한 한국 스타트업이다.한국의 벤처기업인들이 실리콘밸리 진출을 많이 시도하고 있다고 들었다.많은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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