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음을 보면 기운을 많이 차렸다는 느낌을 받는다.다시 만난 석종훈 대표에게서 그런 느낌을 더욱 확실히 받았다.제주도에 구글캠퍼스와 같은 다음 캠퍼스를 짓겠다고 하는 석 대표의 모습을 보면서 긴 호흡을 갖고 다시 출발선에 선 운동선수를 보는 것 같았다.

 확실히 반가운 일이다.한참동안 헤멨던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다시 기운을 내고 있다는 것은 산업 발전이나 한국 인터넷기업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결코 나쁠 게 없다.요즘 다음을 보면 한참 동안 1등을 하다가 병에 걸려 1등을 내 준뒤 다시 건강에서 회복해 교실로 복귀한 우등생을 보는 것 같다.

 석 대표는 나날이 건강해져 가는 것 같았다.다음 송년회 자리에 갔다가 우연히 일찍 가게 돼 석 대표와 나란히 앉아 얘기를 하게 됐다.
 “얼굴이 더 좋아 보이시네요.운동하시나봐요”
 “맞습니다.제주도에 있을 땐 아침에 5시에 일어나서 나옵니다.”
 “어휴 그렇게 일찍 나오시면 뭘 하시나요?”
 “회사에 가서 운동을 해요.회사에 가면 6시가 좀 못되는 데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1시간 가량 계속 걸어요.적당히 땀을 흘리고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운동 하고 나서도 7시반도 안 되겠네요”
 “네 예전엔 8시에 회의도 하고 그랬는데,요즘엔 그렇게 일찍 회의는 안 합니다.그래서 보통 아침에 책을 읽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책을 많이 보시겠네요”
 “거의 중독된 것처럼 봅니다.책을 열심히 보는 직원들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요즘엔 한달에 15권 정도 책을 보는 것 같아요”

 석 대표는 요즘 책을 읽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것 같았다.스스로 이틀에 한권씩 책을 읽어나가고 있다고 하니 대단한 수준이다.그는 책을 읽어야 창의력이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제가 요즘 깨달은 것은 이겁니다.창의력은 상상력에서 나온다.그런데 상상력은 독서,대화,여행에서 발현된다.직원들의 창의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직원들이 독서와 여행과 대화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저 자신부터 창의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고 체득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것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여행은 뜻대로 하긴 힘들더라도 말입니다 하하..서강대를 비롯해 몇몇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많이 강조하고 다닙니다.”

 정말 맞는 말이다.정확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상상력을 발휘하게끔 도와주는 것들이 많이 있다.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혼자 사색에 빠지거나.하지만 그 어떤 것도 책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대화는 사람과의 대면접촉이라는 점에서 영감을 떠올리게 하고 여행은 새로운 경험을 통한 창의력을 북돋워준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다는 말씀에 사실 굉장히 자극을 많이 받았다.본래 책이란게 의욕이 항상 앞서지 않는가.의욕이 앞서지만 몸이 잘 따라가지 않는 대표적인 것이 독서와 운동이다.그 두가지를 그는 다 해 내고 있었다.

,

다음 석종훈 사장은 올해 성적을 스스로 어떻게 매기고 있을까? 그에게 물었더니 놀라운 점수가 나왔다.90점.

 아쉬운 부분을 얘기하자면 끝이 없지만 그래도 애초에 세웠던 목표를 많이 달성했고 새로운 목표에 대한 비전을 세울 수 있는 한해 였다고 한다.
그러면 석 대표는 이제 본격적으로 네이버를 추월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까?
 “솔직히 당장 네이버를 제치고 1등으로 단숨에 도약할 수 있겠습니까.검색이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데,우리가 너무 늦게 깨달은 것도 있고,막상 해보니 검색이란 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겁니다.아마 시간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엔 그걸 인정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분명 예전에 1등을 했던 거는 맞다.하지만 지금은 2등 기업이다.그것도 1등하고 격차가 많이 나는.1등을 하다가 뺏긴 경우 다시 1등을 탈환하기는 더 어렵고 전 세계적으로 별로 사례가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그렇지만 이렇게 계속 우울하게 생각하고 있으면 답이 안 나옵니다.원래 기록이란 건 다 깨지기 위해 있는 거구요.
 그래서 직원들과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2등을 하더라도 행복한 2등이 되자..2등을 하게 해 준 고객에게 감사해 하고 우리가 스스로 행복해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더 좋은 가치를 제공하고자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겠냐.”

 티스토리나 동영상 서비스 등 최근 다음이 선보였던 서비스의 성과에 대해 석 대표는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를 많이 제공하고 있는 제주도 글로벌미디어센터의 성과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다음이 제주도에 다음 캠퍼스를 세우려고 하는 것은 이런 성과를 만들어낸 환경을 장기적으로 회사의 문화로 키우려고 하는 시도인 것 같았다.

 “사실 네이버와 같은 강력한 경쟁자가 있는 것에 이제는 감사해하고 있습니다.다음이 있어서 네이버가 크게 발전했듯이 지금은 네이버가 있기에 다음이 긴장을 잃지 않고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대외용 멘트일지 모른다.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라면,골방에 들어가 혼자 생각에 잠겼을 때는 진실로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

,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네이버와 비교 대상이 됐었다.그 중 대표적인 것이 비 전문적인 영역으로의 끝없는 사업 확장이었다.하지만 다음은 최근 다음자동차보험 지분 매각을 끝으로 사실상 99년부터 시작해 2005년까지 7년동안 지속했던 확장 사업의 정리를 마무리하고 있다.

 석 대표를 만나 이 얘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그는 다음자보 지분 매각이 곧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리고 내년부터는 다음이 핵심 영역에 역량을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지난 1999년 100% 지분을 출자해 온라인 전문 여행사 투어익스프레스를 세우면서 사업 확장을 시작했다. 2000년 3월에는 쇼핑 분야까지 넓혀 디앤샵을 시작했다.그 해 7월에는 다음금융플라자를 오픈했고, 2001년엔 연예기획사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 온라인 음반판매 업체인 오이뮤직을 인수해 주목을 끌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2003년엔 각 언론사의 뉴스와 함께 다음이 독자적으로 뉴스를 생산해 네티즌들에게 제공하는 ‘미디어 다음’을 오픈했고, 2003년 6월엔 보험에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 온라인으로 자동차보험을 판매하겠다며 자회사 다음다이렉트자동차보험을 설립한다. 또 2004년 8월엔 미국의 인터넷 포털 라이코스를 인수합병하면서 해외 진출 의지를 내세웠다.

 다음이 달라진 것은 2005년부터였다.다음은 2005년부터 사업을 차례차례 정리하기 시작했다.우선 라이코스 내 매치메이커, 쿼트닷컴, 와이어드뉴스 등을 차례로 매각했고 국내에서는 오이뮤직,JYP 등 계열사를 줄줄이 팔았다.올해 들어선 투어익스프레스도 매각하면서 여행 사업에서 손을 뗐고 보험 사업도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다음은 이미 99년 여행사업에 뛰어들 때부터 비판을 많이 받았었다.결코 핵심이 아닌 사업에 계속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다음이 뛰어든 분야가 대부분 온라인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이라기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원래 산업이 형성돼 있던 것을 온라인으로 끌어와 단순히 온라인을 이용한 가격 경쟁력 등을 앞세운 경우가 많았다.

 7년이 지난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미국,일본,중국을 막론하고 해외 사업은 그 어떤 것도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고 다음이 인수하거나 새롭게 진출했던 사업 영역들은 전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했다.그 사이 다음의 경쟁자인 네이버는 핵심 역량에만 집중해 따라잡기 힘들 만큼 저만치 달려나가고 있다.

 석 대표에게 물었다.“결국 지금까지의 7년 시도가 모두 헛수고였다는 말이네요”
 그가 허탈하게 웃었다.물론 지금까지의 이런 투자 결정을 한 것은 석 대표가 아니었다.그는 지금 정리 작업을 맡고 있다.하지만 그는 헛수고라는 부분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진 않습니다.의미는 나름대로 있었습니다.우리는 우리가 잘 하는 것을 해야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사실 처음에 다음자동차보험을 시작할 때는 오프라인의 보험을 온라인에서 하면 훨씬 싸게 서비스를 제공해 소비자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싼 가격으로 경쟁력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구요.하지만 막상 이 사업을 해보니 보험 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은 싼 가격에 팔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험금을 자산으로서 얼마나 잘 운용하느냐에 달린 것이었습니다.”

 모두 맞는 말이다.수긍도 간다.하지만 경쟁자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잘 하는 것만 하겠다’는 원칙을 세운 것에 비해 7년이나 시행착오를 벌인 끝에 깨달았으니,그것이 지금 다음의 모습을 만든 것 같다.석 대표의 말이 모두 수긍이 가지만 보험 사업을 해보고 알았다는 것에 대해선 정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아니 보험 사업의 근본이 그렇다는 것을 정말 해보기 전에는 몰랐단 말인가?기본적인 시장 조사와 원칙만 리서치했어도 알 수 있는 것 아니었나?”
 이렇게 계속 생각하다보면 생각이 결국 이렇게 미치게 된다.그걸 몰라서 보험 사업에 무모하게 진출한 것이 아니라,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진출한 것이라고 말이다.이를테면 주가를 끌어올릴 계획이었다든가 하는 등등

 하지만 그걸 확인할 수는 없다.어쨋든 석 대표의 말씀을 최대한 존중한다면 다음은 과거의 시행착오들을 정리하고 핵심 역량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다음은 지금까지 많은 댓가를 치뤘다.엉뚱한 사업으로의 확장으로 인해 네이버와 시가총액은 12배나 차이가 나게 됐고 인터넷 기업으로서는 그리 돋보이지 않는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다음은 2005년부터 오늘날까지 2년이 넘는 기간동안 과거의 실수들을 지우는 일에 주력해왔다.지금까지 계속해서 움츠려왔던 다음이 정신을 차렸을 때 얼마나 도약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

,

“윈도비스타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이 있나요?”
뜻밖의 발언이었다.발끈한 어투라고 생각할 만큼 강한 발언이 전혀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나왔다.
 

 이원진 구글코리아 사장은 최근 정보통신부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수요스터디에 강사로 참석했다가 이런 돌발 발언을 했다.한참 구글 검색 엔진의 재밌고 유익한 기능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던 중 어떤 기자가 ‘구글 데스크톱서치가 기능이 좋은데 왜 윈도비스타에서는 계속 에러가 나느냐’고 물으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원진 사장이 “윈도비스타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이 있기는 합니까”고 반문한 것이다.자리에 동석했던 김경숙 구글코리아 홍보담당 이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구글의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하다 나온 돌발적인 질문에 순간적으로 너무 솔직하게(?) 답한 이원진 사장도 바로 분위기를 눈치채고 당황해하기 시작했다.편하게 자리에 앉아서 기자들과 환담을 나누던 분위기였는데 이 대목부터 이원진 사장이 일어나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걸치고 있던 자켓도 벗었다.땀 나는 상황이었을 것 같다.

 원래 질문이 기대했던 답변은 (스터디라는 마일드한 분위기를 고려해볼때) ‘앞으로 에러가 나지 않도록 하겠다’던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 나중에 기술자의 상담을 받도록 해서 해결하겠다’ 정도인 것 같았다.하지만 답이 너무 멀리,세게 나갔다.그렇다고 이미 뱉어버린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는 일.바로 수습에 들어간 이원진 사장.

 이원진 사장은 이때부터 약 10분간에 걸쳐서 마이크로소프트(MS)의 폐쇄적인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개발단계부터 제품이 판매된 이후에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시스템(OS)에 대한 폐쇄적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제품 출시에 맞춰 제대로 된 서비스를 개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물론 상황 수습을 위해선 MS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부족했다.

 구글은 이와 전혀 다른 정책으로 고객 위주의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 이어졌다.최근 공
개한 안드로이드에서 보듯 구글은 개발 초기 단계부터 코드를 개방해 개발자들과 상생하는 구도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구글의 속셈이야 다른 곳에 있겠지만 어쨋든 틀린 말은 아니었다.MS의 그런 정책은 지금의 MS를 있게 해줬지만 그 덕에 여기저기서 욕도 많이 먹게 만들었다.

 수습을 위해선 더 나가는 것이 필요했다.이원진 사장은 한국 온라인광고 시장이 전 세계에서 5번째로 크다고 강조하면서 그만큼 한국 시장이 구글에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했다.(구글이 자주 하는 말이지만 사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구글이 왜 이제서야 호들갑을 떠는지 이해가 안 가긴 한다.어쨋든 한국 유저들 입장에서는 구글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노력이 나쁘지는 않다.)

 구글코리아 현재 직원이 100명 정도 되는데 이는 지난해 말에 비해 3배가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구글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1년새 직원이 3배 이상 늘어난 곳도 한국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은 여전히 한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이에 대해 이원진 사장의 답은 “한국 시장만큼 어려운 시장이 없다는 것을 구글 본사에서도 잘 알고 있다.한국 시장의 소비자들이 그만큼 앞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까다롭기 때문이기도 하다.그래서 우리는 한국에서 통하는 서비스라면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루하고 따분한 구글 자랑이 이어질 것이라고 당초 예상한 자리였는데,뜻밖의 상황과 재미난 발언이 이어진 ‘스터디’였다.끝은 당초 예상대로 진부하게 끝나긴 했지만 말이다.

,

처음부터 난 기분이 좀 상해있었다.중국 CDC게임즈의 샤오웨이 첸 사장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였다.중국 베이징까지 찾아가서(물론 그 사람때문에 간 것은 아니었지만) 힘들게 만날 약속을 정했다.당초 첸 사장 본인이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비로 오겠다고 했지만 갑자기 급한 일정이 있어서 오전 10시까지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로 오라고 했다.이 정도야 사장님께서 바쁘시다고 하시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기분이 상한 것은 약간 감정적인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왜냐하면 나는 정말 기를 쓰고 시간에 맞춰서 가려고 노력했는데 상대방이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나는 익숙하지 않은 베이징 시내길을,말도 잘 통하지 않은 중국인 기사가 모는 택시를 타고 손짓발짓으로 설명해가면서 하얏트호텔에 정확히 10시1분전에 도착했다.혹시나 첸 사장이 기다릴까봐서였다.잔돈을 챙기는 것도 잊고 헐레벌떡 들어갔지만 1층 로비에 첸 사장은 없었다.로비에는 직원 한명과 통역만 나와 있었다.좀 기다렸다.20분이 지나서야 첸 사장은 나타났다.

 이 정도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웃으면서 ‘많이 바쁘시죠.얼른 시작하시죠’라고 말하고 인터뷰에 들어갔을꺼다.바쁘다고 하니 어쩌겠는가.그런데 첸 사장이 오자마자 한 말은 이거였다.“제가 시간이 없어서요.10분만에 끝내야 합니다.”
 아니 이럴 거면 뭐하러 나왔나? 내가 언제 만나달라고 사정한 것도 아니다.내가 베이징에 간다고 하니깐 만나자고 한 사람은 첸 사장이다.시간도 본인이 정해놓고,그것도 멀리서 온 손님한테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로 오라고 해놓고선,자기가 늦게 나오고선,시간이 없댄다.

 20분 정도 늦는 거야 원래 별 상관이 없다.아침에 준비를 하다 늦을 수도 있다.첸 사장이 미리 그렇게 시간을 강조하지 않았으면 나도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첸 사장은 이날 미팅에 앞서 10시라는 시간을 세번이나 강조했다.'제가 다음 일정이 있으니 10시를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세번이나 강조한 시간을 어겨놓고선 이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그런데 첸 사장의 행동은 계속 내 심사를 뒤틀리게 했다.
 “시간이 없지만 사진을 잠깐 찍고 하시죠.그래도 인터뷰인데”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제가 지금 사진 찍을 상태가 아닙니다.”
 평상시면 상대방이 사진 찍기 곤란하다고 하면 ‘그렇지,정말 사진 찍기 힘드시겠네’ 하면서 이해를 하고 넘어가거나 오히려 사진을 찍자고 말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곤 했는데 이날은 정말 이래저래 신경질만 계속 났다.(솔직히 당시 기분은 ‘정말 이런 엉망진창인 인터뷰는 처음이군’이었다.)
 결국 사진을 못 찍고 첸 사장이 나중에 사진을 보내오긴 했다.그날 사진을 못 찍은 대신 아래 사람을 시켜서 사진을 보내준 것이었다.그런데 그 보내준 사진이란 게 정말 가관이었다.

 날 놀리는 것 같았다.내가 무슨 PC바탕 화면에 깔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나.물론 난 이런 사진을 PC에 깔고 싶은 마음도 추호도 없다.첸 사장 본인이나 자신의 PC 바탕 화면에 깔던가 말던가 할 사진이다.

 원래 기자는 현장을 중시한다.특히 난 하나의 신조 같은게 있는데,기사를 쓸 때 인터뷰할 때의 상황을 다시 머리 속에 떠올려가며 기사를 쓴다.기사를 쓸 때 인터뷰나 현장 취재때의 감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쓰기 위함이다.(물론 이게 잘 안되면 기사가 엉망이 되기도 한다.좋은 버릇은 아닐 수도 있다.)이를테면 그때 어떤 호텔에서 그 사람을 만났고,어떤 음악이 나왔고,주변에 누가 앉아 있었으며 나와 상대방이 어떤 옷을 입고 있었고,그날 날씨는 어땠고,호텔이나 식당의 조명 밝기는 어땠으며,어떤 부분에서 미소를 짓고,어떤 부분에서 표정이 변했는지 따위를 말이다.

 상황을 반추하는데 사진은 중요하다.서툴게나마 당시 상황에서 사진을 찍으면 그 당시 상황을 복기하는데 도움이 된다.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편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싫어한다면 안 할 수도 있다.어쨋든 이날은 이것조차 용납이 되질 않았다.나로서는 첸사장이 나에게 기사를 쓸 어떤 환경도 만들어 주지 않은 것이다.날 놀리는 듯한 사진을 받아보고 기가 막히다 못해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이게 원래 전략이라면 정말 잘 한 것 같다.기사 쓸 엄두가 나질 않는다.)
 
 암튼 계속 말한 대로 도무지 기사 쓸 만한 내용은 없었다.내가 이미 인터뷰 대상에 대한 애정을 상실한 상태에서 인터뷰를 했기 때문에 더 그런지 모르겠다.기억에 남는 것이라곤 엠게임에 대해 샤오웨이 첸 CDC게임즈 사장이 계속 독설을 퍼부었다는 거였다.

 “엠게임이 계속 예상치 못한 일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어떤 돌발적인 행동을 할 지 모르겠다.그래서 협상을 낙관하기 힘들다.결렬될 수도 있다.”
 “우리가 열혈경호만 있을 때는 힘들었지만,지금은 열혈강호 말고 다른 게임도 많이 서비스하고 있다.내년에는 10여개 정도의 신규 게임을 서비스할 예정이다.우리가 아쉬울 것이 없다”
 “엠게임은 열혈강호에 대해 업데이트나 A/S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다.심지어 서비스를 중단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샤오웨이 첸 사장은 사실 그날 엄청난 결례를 한 것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고 막대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만회할 수 있는 정말 많은 기회가 있었다.최소한 미리 조금 늦을 수도 있다고 말 할 수 있었다.그걸 예상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으니 늦은 데 대해 미안하다고 한마디 할 수도 있었다.인터뷰 시간이 짧지만 최대한 많은 얘기를 나누자고 해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도 있었다.미리 분명히 사진을 찍겠다고 말했음에도 거절할 때는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의지만 보여주면 됐었다.이 중에 단 한가지만 했어도 그 작은 사소한 행동으로 인터뷰는 기분 좋게 끝났을 것이다.하지만 그런 모든 기회를 그는 다 날려버렸다.

 아마 그가 한국 기자에 대한 반감 때문에 그랬을 지 모른다.내가 혹시 그를 화나게 한 뭐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하지만 모든 정황을 다 따져보더라도 그의 행동은 결코 사장으로서의 행동은 아니었다.기자 생활하면서 국내외 CEO 1000여명을 만나본 나의 기준에서는 그렇다.내가 아는 다른 사장님들 중에 그런 사람은 없다.사장은 결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예의와 협상,시간약속에 철저하다.무서울만치.

 그러고보면 첸 사장이 아직 순수해서 그럴 것이라고 좋게 봐줄수 있을지도 모른다.아직 그런 세상의 때가 뭍지 않았다는 거다.하지만 그는 나에게 “이러니깐 엠게임이 CDC게임즈와 계속 까칠하게 나가는군”이라고 생각하게끔 했다.사소한 거지만 CEO의 이런 행동에서 외부 사람들이 그 기업의 비전을 짐작한다는 것을 그는 알까.

 샤오웨이 첸 사장이 엠게임과의 문제에 대해 논한 일은 나중에 시간을 두고 정리할 생각이다.하필이면 이날은 날씨도 엄청 추웠다.영하의 날씨에 바람은 왜 이리 세게 부는지.이래저래 뭐 하나 받쳐주는 게 없는 날이었다.그는 인터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약속을 잡기 위해 노력한 CDC게임즈 코리아와 본사 통역 분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CDC게임즈에 대한 인식은 더 나빠졌다.인터뷰라고 할 수도 없는 이상한 자리를 끝내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못내 허망했다.

,

처음에 NHN에서 ‘책 읽기 캠페인’의 일환인 학교 도서관 만들어주기 행사 취재차 제주도에 함께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때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음...기사 쓰기가 쉽지 않을텐데..”

아무래도 NHN이 이런 것을 잘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행사가 구성될 것이 뻔하고 그걸 거창하게 포장하기란 참으로 낯간지러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었다.그래도 공식적인 행사에는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신조이기도 하고,예전부터 NHN 채선주 실장이 도서관 행사 때문에 지방을 갈 때마다 나도 한번 같이 따라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데다,또 한편으로는 네이버의 이런 면을 한번 봐두는 것이 내 책에 실린 콘텐츠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참여하기로 했다.

 원래 같이 가기로 했던 타사 기자들이 10명이나 빠지면서 전체 인원이 확 줄었고(개인적으로는 소수가 움직이는 걸 훨씬 좋아라하지만) 이 캠페인을 총괄하고 있는 권혁일 이사도 급한 일정이 있어 못 온다고 해서 출발 전에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 것이 사실이었다.그러고 보니 왠지 떠나기 전에는 분위기도 좀 가라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3가지 결정적인 이유 때문에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우선 NHN과 함께 학교 도서관 짓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사단법인 ‘작은 도서관을 만드는 사람들’을 이끄는 김수연 목사의 존재 때문이었다.그리고 마치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학교의 모습,그리고 거기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때문이었다.

 정말 아름다운 학교였다.서울엔 이미 눈이 내렸다는데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 2리에 위치한 토산초등학교 운동장 위로는 천사들이 이 지역에만 빛을 모아서 쏘아주는 듯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동행한 한 기자가 장탄식을 했다.“학교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토산 초등학교 입구에서 바라본 풍경>

 마치 그림책을 펼쳐놓은 것 같았다.실제로 아이들이 이 학교를 다닌다기 보다는 영화 촬영을 위해 세트장을 만들어놓은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하지만 거기서 아이들은 분명 교실 교실을 뛰어다니며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PC를 통해 인터넷을 이용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책 읽는 버스에서 책을 보는 어린이들>

 초등학교 어린이들 틈에 섞여서 책을 고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나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그 중에 한 명,마르고 까무잡잡하고 왠지 소심해 보이는 한 어린이의 모습이 바로 나였다.그 시절의 나처럼 이들도 이 학교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문득 눈물이 났다.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어떤 꿈을 갖고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냈을까.이 어린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평소에 전혀 올 일이 없었던 초등학교를 와 보니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그 학교가 생면부지의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울산의 한 시골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그냥 어슴푸레하게 담임 선생님의 얼굴만 그려졌다.내가 학교에서 더 많이 책을 접하고,훌륭하게 살아간 사람들의 경혐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고,세상이 굉장이 넓고 다양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책을 통해 더 많이 배웠다면 난 좀 다른 사람이 돼 있지 않았을까.

<책 읽는 버스>

 그렇게 생각이 미치니 ‘작은 도서관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런 활동이 참 의미있게 느껴졌다.이를 지원하는 NHN도 다르게 보였다.아울러 NHN이 단순히 홍보 목적으로만 이런 행사를 진행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됐다.책을 읽는 것은 꿈을 주는 행위이고 이런 행위들은 사실 여기에 있는 이 어린이들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김수연 목사님과 나눴던 대화가 계속해서 귓가에 남았다.

 “보통 책을 읽으라고 어른들은 쉽게 말합니다.하지만 어린이들이 책을 읽을 환경이 돼 있지 않습니다.어린이들이 보다 더 많은 책,좋은 책을 접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우리의 미래는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을 겁니다.
 우리는 서양 세계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이룩한 결과를 많이 따라했습니다.하지만 그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과정에는 신경쓰지 않습니다.그들이 그런 문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고 생각하고,상상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기 때문입니다.인터넷에 정보는 많습니다.하지만 거기서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어린이들은 책을 읽고 꿈을 갖고 상상을 하면서 자라납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이것이 정말 흔한 말입니다.하지만 이것을 실천하는데는 인색합니다.인생을 살면서 정말 어려운 것은 지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실천하면서 내가 얻은 지식을 삶에 적용해야 하는 것,이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시행착오를 줄이고 보다 바르고 가치있게 살기 위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죠.그런데 우리는 평생 지식을 그냥 습득하는데만 시간을 다 바칩니다.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훈련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죠.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이 어린이들에게 그대로 물려줘야 되겠습니까?”

<어린이들에게 강연하고 있는 김수연 목사님>

,

“올해 말까지는 인내하고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싸이월드차이나를 이끌고 있는 전주호 대표를 법인이 위치한 중국 베이징 시내 사무실에서 만났다.100여명 정도가 사무실이라기보다는 문화센터의 별관을 개조한 듯한 건물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전 대표는 “아직은 별로 보여줄 게 없다”며 멋쩍어 했다.더불어 “기사는 절대로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그래도 다행히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은 괜챦다고 했다.(덕분에 사진도 찍었다)

 2005년 5월부터 시작한 싸이월드 중국 사업은 아직은 내세울 만한 실적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중국 싸이월드(www.cyworld.com.cn)에는 현재 590만명의 회원을 확보한 상태지만 매일 로그인하는 사람의 숫자는 20만명 남짓한 숫자다.
 “매일 로그인하는 사람(LV)이 50만명은 넘어야 본격적으로 매출이 발생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작년말까지 매일 로그인하는 사람이 25만명 정도 됐고 올해말쯤 되면 50만명 정도 되겠죠.회원수는 1000만명은 연중 너끈히 돌파할 겁니다.”
 2005년말 싸이월드 차이나의 LV는 8000명에 불과했다.2006년 말에 5만명에 달했고 작년말에는 25만명에 달했다.분명 늘고 있기는 하다.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맞습니다.사실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죠.그래서 제가 올 연말까지는 인내하고 좀 기다려야 될 것 같다고 말한 겁니다.”

<싸이월드차이나 사무실 입구.>

 전 대표는 결국 현지화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이미 싸이월드가 한국에서 히트칠 때와 인터넷 환경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한국에서 싸이월드가 처음 히트칠 때는 사실 싸이월드밖에 없었죠.그런 유사한 서비스가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었습니다.그런데 지금은 사진 올리고 친구들끼리 공유하고 서로 관계를 인터넷에서 형성하고..이런 서비스들이 너무나 많습니다.싸이월드가 내세웠던 그런 서비스가 더 이상 신기하지 않게 된 거죠.중국에서만 봐도 왕이(Net ease)와 같은 게임업체 뿐 아니라 보통 인터넷포털 사이트에서 다 사진 올리고 친구들과 같이 볼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마이스페이스닷컴도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중국 시장에서는 여기에 맞는 특화된 전략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그럼 전 대표가 구상하고 있는 싸이월드의 현지화 전략은 뭘까? 그는 SNS의 세분화에서 방법을 찾고 있었다.한국 싸이월드와 다르게 여행 SNS,음악 SNS,직업SNS,Commerce SNS,동영상 SNS 등 카테고리를 만들어 특화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있다.회사의 체제 자체도 중국식으로 하고 있다.서비스 총괄을 중국 임원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있고 현재까지 채용된 직원 100명 중 95명이 중국인이다.한국에서 중국으로 온 직원은 사실 전 대표와 조경선 이사 두 사람 뿐이다.
 하지만 현지화를 한다고 꼭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다만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 뿐이다.“인터넷 사업이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사실 국경이 있습니다.문화적 차이가 굉장히 크고 그것을 극복한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우리는 철저하게 한국을 회사 소개에서 배제하고 있습니다.한국 싸이월드가 중국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새로운 인터넷 기업이 탄생한 것처럼 하자는 겁니다.이미 중국에서의 싸이월드 사업 모델은 한국과 전혀 다릅니다.그저 이름만 빌려 온 겁니다.문화 속으로 서서히 녹아들어갈 생각입니다.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입구에서 전주호 대표(오른쪽)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

와이프로거 문성실

임원기가 만난 사람들 2008. 2. 16. 21:45 Posted by wonkis

하루 평균 방문자 3만명,누적 방문자 1020만명에 달하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블로거 문성실(32세)씨.6살 쌍둥이 남자아이 둘을 키우면서 틈틈이 올린 블로그로 한국에서 ‘와이프로거’(주부블로거)란 말을 만든 그녀는 온라인에서 유명세를 넘어 이제는 오프라인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블로거다.

 그녀가 요리 블로그를 시작한 지 어언 3년 7개월.그녀가 운영하는 두 개의 블로그 ‘둥이맘 문성실의 아침점심저녁’(blog.naver.com/shriya)과 ‘문성실의 맛있는 밥상’(
www.moonsungsil.com)은 요리에 대한 정보 제공 수준을 뛰어넘는다.‘그녀가 블로그에서 추천한 요리 재료는 마트에서 품절이 된다’
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요리 정보 뿐 아니라 주부들의 식생활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깊어가는 늦가을 오후,땅거미가 깔릴 시점에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앞 카페 ‘모우’에서 그녀를 만났다.

 “사진으로 보는 것 보다 훨씬 미인이시네요.”
 그녀를 처음 보고 한 말이다.그런 말을 많이 들었는지 거침없는 대답이 나왔다
 “자주 듣는 말입니다..제가 사진이 좀 안 받는가 봅니다 ㅎ ㅎ”
 이미 문성실님과 잘 알고 지내온 태터앤컴퍼니의 꼬날님과 태터앤미디어의 한영 팀장께서 동석해 주셔서 첫 만남이었음에도 훨씬(?)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3년7개월전 아이들 키우며 집안에만 있다보니 삶이 문득 공허하더라구요.그래서 뭘 할 수 있을까 하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를 주제로 블로그에 글 올리자.이렇게 해서 시작했어요.정말 이렇게 유명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죠”

 요리에 관련한 책자만 4권을 낸 사람치고는 뜻밖에 평범한 시작이었다.이렇듯 단순하게 블로그를 시작한 그녀지만 그녀가 블로그로 이렇게 엄청나게 유명해질 수 있었던 데는 역시 비결이 따로 있었다.남들이 다 하는 요리 블로그를 하면서도 전혀 다르게 운영했던 것이 그녀의 경쟁력이었다.
 “시중에 요리책이 많지만 막상 그걸 보면서 요리를 따라하려고 하면 너무 재료도 많이 필요하고,정작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건너 뛰더라구요.요리 전문가가 아닌 일반 주부 시각에서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녀의 지론은 ‘마트에서 바로 살 수 있는 흔한 재료로,거창한 조리기구 없이도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요리’다.항상 같은 식탁에서 비슷비슷한 음식을 먹게 마련인 가족들에게 새로움을 주면서도 부담이 가지 않는 음식.하지만 그녀의 가이드를 따라가다보면 흔한 가정식 음식도 요리도 둔갑한다.그녀의 블로그가 주부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녀가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재밌다.9살때 처음 음식을 만들어본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당시 어머니께서 병원을 자주 드나드셔서 장녀인 문씨가 혼자서 먹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어느 날 어머니가 콩나물 무침을 만들기위해 먼저 콩나물을 삶을 것을 시키고 갔다고 한다.

 “콩나물을 삶을 때 뚜껑을 너무 일찍 열면 비린내 나니깐 충분히 삶은 다음에 열어”
 어머니가 당부하고 가셨지만 처음 해 보는 9살 소녀는 언제 뚜껑을 열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그래서 거의 콩나물죽이 될 때까지 콩나물을 삶았다고 한다.그 뒤로 그녀는 콩나물국을 끓이면서 국간장을 쓰지 않고 일반 양조간장을 쓰면 국이 시커멓게 된다는 것을 배우는 등 콩나물을 갖고 부엌에서 씨름을 하면서 요리의 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쌍둥이를 낳고 나서 그녀는 더욱 요리에 관심을 쏠렸다고 한다.대학때 미술을 전공했지만 전업주부로 생활을 하면서 엄마가 요리를 직접 해 먹이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2004년 4월부터는 자신이 만들어본 요리를 블로그에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이렇게 올린 음식 종류만 지금까지 1000가지가 넘는다.그녀는 블로그에 올린 음식들을 2005년 발간된‘쌍둥이 키우면서 밥해먹기’부터 시작해 최근 ‘문성실의 아침점심저녁’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요리책 4종에 담았다.

 그녀의 부엌이 남들과 다른 점은 항상 가까운 곳에 카메라가 있다는 것이다.식탁 풍경도 사뭇 다르다.요리를 만든 다음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반드시 먼저 사진을 찍고 식사를 시작한다.남편과 두 아들도 이젠 그것에 익숙하다.“엄마 얼른 사진 찍으세요”라고 말하며 두 아들이 먹고 싶은 것을 꾹 참고 기다린다고 한다.

 그날의 요리는 그날 바로 그녀의 블로그에 올라온다.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하루에 2개씩 글을 올렸다고 한다.(하루에 2개의 글을 블로깅하다니...정말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블로그를 해 본 사람은 안다.이틀에 1개씩 올리기도 쉬운 일이 아니건만,이 성실성 만으로도 평가받을 만하다) 지금도 그녀는 매일 하나꼴로 블로그에 올려놓고 있다.블로그에 그날 만든 요리에 대한 글과 사진을 올려놓고 사람들의 댓글에 답변을 하다보면 5∼6시간이 훌쩍 지나가기는 예사다.저녁 설겆이를 끝내고 시작한 작업이 다음날 동이 틀 때까지 이어진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결국 블로그는 그녀를 변화시켰고 남편과 아이들의 지지속에 그녀는 내년부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과 대학원에 입학,식생활문화 전공으로 석사학위 과정을 밟는다.이미 남편 뒷바라지에 쌍둥이 아이들 키우기,블로그 운영에 홈쇼핑 출연까지 1인 3역을 하고 있는 그녀가 4번째 역할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도전에도 뚜렷한 목표와 방향성을 갖고 있었다.그녀는 집에서 해먹는 음식은 사람들이 점점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음식을 찾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반대로 외식은 좀 비싸더라도 집에서 먹기 힘든,그러면서도 건강에 좋은 웰빙음식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블로그로 집에서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평정했다면 음식 문화에 대한 공부를 더 해서 외식 부분을 마스터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한 달 올릴 글 20여개를 항상 준비하고 산다” 고 할 정도로 블로그가 삶의 기반인 그녀.양육에 소홀하기 싫어 두 쌍둥이 아들이 잠든 후에 짬짬이 PC에 앉아 블로그를 운영하는 그녀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전업주부로서 삶이 변화됐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 가장 기쁘다고 한다.‘그런 분들의 반응 하나하나가 내 삶의 원동력’이라고 당차게 말하는 그녀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된다.

<성실님을 소개해 준 꼬날님께 감사드립니다>

,

아주 아마추어적인 수준에서 검색 얘기를 해 볼까 한다.

나는 내 이름으로 검색을 많이 하는 편이다.각 포털에서 다 해본다.기사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서이기도 하고 어떻게 인용되는지도 알아보기 위해서다.그런데 네이버에서 내 이름 임원기를 검색하면 블로그와 이미지,뉴스,카페 이런 순서로 통합검색 방식대로 검색 결과가 나온다.내가 유명인사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는 나에 대한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나보다 훨씬 잘 알려진 게이머 임원기에 대한 검색 결과가 주로 뜬다.

 그런데 구글에서 임원기를 검색하면 내 블로그‘세상 바꾸는 IT이야기’가 맨 위에 뜬다.내가 나의 콘텐츠를 찾을 때는 구글이 훨씬 유용한 셈이다.이런 차이는 어디서 연유할까.물론 검색 엔진의 차이에서다.검색 DB의 차이도 일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인덱싱해서 랭킹을 매겨 보여주는 방식에서 구글과 네이버가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근수 교수가 만든 검색 사이트 위스폰(www.wispon.com)을 방문했다가 검색 결과가 구글과 비슷하게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물론 여기서도 내 이름을 검색하면 내 블로그가 제일 위에 나온다.

 박근수 교수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네이버는 통합 검색에서 인물 DB를 따로 만들었습니다.그 과정에서 유명 인사들에 대해서만 따로 수작업으로 입력을 했기 때문에 유명인을 찾는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프로필과 사진이 잘 정돈되서 보여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하지만 구글이나 저희 위스폰 같은 곳은 수작업을 하지 않습니다.그저 검색 엔진의 알고리즘에 의해 기계적으로 검색 결과가 나옵니다.물론 원칙은 있습니다.구글은 이른바 널리 알려진 대로 ‘페이지랭크’라는 방식을 쓰고(물론 이것은 구글의 여러 검색 방식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긴 하지만),저희 위스폰은 웹 링크가 많이 연결돼 유명도가 높은 순서대로 보여지는 겁니다.”

 그런데 구글 방식에서는 오히려 유명인을 검색할 경우 검색 결과가 시원치 않은 경우가 많다.구글도 최근 유니버설서치로 이를 보완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구글의 검색이 그렇다는 것이다.이런 점이 한국인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비슷한 방식이지만 한글 DB에 강점이 있는 위스폰에서는 유명인 검색 결과가 훨씬 유용하다.(불멸의 이순신,하얀거탑 등에 출연했던 탤런트 김명민씨를 검색해보는 것이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박 교수는 네이버의 방식이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특히 스팸 공격에 취약하다는 것이다.더군다나 수작업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이 수작업에 대해선 이준호 박사와 박 교수의 견해가 크게 엇갈리는 부분이다) 한글 DB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한계를 맞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구글이 지금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DB 자체가 워낙 많기 때문이라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즉 네이버는 이런 상황을 맞이하기 전에 기술력을 키워야 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들이 네티즌 입맛에 맞는 서비스로 성공한 것은 분명하지만 기술력이 부족해 앞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가 선보인 검색 사이트 위스폰은 웹 링크의 유명도에 따라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게 특징이다.즉 여러 사이트에 링크돼 있거나 많이 인용되는 페이지일수록 검색 결과 상단에 노출된다.박 교수는 이런 점이 광고가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기존 포털의 검색 방식과 다르다고 주장했다.다시 말해 네이버,다음,엠파스 같은 포털에서 검색하면 스폰서 링크 등 광고 위주로 페이지 상단이 구성돼 사용자가 원하는 웹페이지를 찾기 어려운 때가 많다는 것이다.

 위스폰은 초기화면이 구글과 비슷하다.화면 중앙에 검색 창만 뜬다.박 교수는 “대다수 포털은 각종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 이를 검색 DB로 활용하지만 좋은 콘텐츠는 이미 웹 상에 다 올려져 있다”며 “콘텐츠를 나열하지 않고 검색 특화 서비스로 승부를 보겠다”고 말했다.(사실 구글이 항상 말하는 것과 비슷한 내용이다)

 *박 교수는 2002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대학원생 10여명과 함께 HM연구소를 창업했다.초기에는 보안 솔루션을 개발했고 지난해부터 검색 엔진 개발에 주력했다.현재 박 교수가 최고경영자(CEO),김성렬 건국대 교수(인터넷미디어학과)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다.

,

<먼저 썼던 지스타 참관기 1,2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지스타 개막일 첫날 첫 행사였던 지스타조직위원회 기자간담회 분위기가 좋았을 리가 없다.전국에서 온 80여명의 기자들은 지스타의 문제점에 대해 집요하게 캐물었다.

 “지스타가 점점 축소되고 있는 것은 지스타 참가 메리트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돈은 많이 받으면서 혜택은 없는 이런 방식으로는 앞으로도 업계의 참가를 유도하기 힘들 것 같다.대책을 말해 달라”
 “장소 문제가 1회때부터 거론되고 있는데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다.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참가업체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지스타 조직위가 너무 일을 안 한 것 아니냐?”
 “해외업체는 거의 없고,콘솔게임업체는 찾아보기 힘들다.사실상 국제 게임 전시회는 포기한 것 아니냐”
 “굳이 수능을 코앞에 둔 시점에 게임 전시회를 열 필요가 있는가,시기 문제를 재검토해 달라”

 조직위 입장에서 보면 민감한 질문들 투성이었다.하지만 홍기화 조직위원장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시기나 장소 문제가 많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알지만 우리가 볼 때는 시기나 장소 보다는 게임 전시회를 일관되게 운영하면서 정착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게임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되다 보니 참여 업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지 조직위가 일을 안 한 것은 아니다.우리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여기 계신 기자들은 모두 게임 산업을 진흥하자는 데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좀 협조해 달라.”

 홍기화 위원장이 결코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그리고 조직위의 어려움과 운영상의 고충도 얼마쯤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게임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적인 여론도 부담이 됐을 것이다.그러기에 더욱 씁쓸한 지스타였다.현재의 지스타 체제에서는 게임산업을 부흥시킬 실마리도,탈출구도 보이지 않는다.이것은 협소한 한국 게임 시장이 가진 한계인가,시대 흐름을 잘못 읽은 때문인가.미국도,일본도 B2C 방식의 게임 전시회를 축소하고 있는 시대에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
BLOG main image
임원기의 人터넷 人사이드
인터넷과 그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블로그.
by wonkis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766)
뉴미디어 세상 (119)
게임이야기 (66)
임원기가 만난 사람들 (55)
(책)네이버 성공 신화의 비밀-그 이후 (61)
夢幻泡影-삶과 꿈,살아가는 이야기 (55)
책 다시보기 (25)
한국의 스타트업 (293)
San Francisco&Berkeley (29)
스타트업 소식 (17)
한국의 스타트업 시즌2 (26)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VC (14)

달력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wonkis'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